第 十九 回. 편지형극(遍地荊棘)....도처에 가시덤불이다.

작성자겨울나그네|작성시간26.06.20|조회수71 목록 댓글 6

                < 第 十九 回. 편지형극(遍地荊棘)....도처에 가시덤불이다. >




가게 주인이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 “방을 잡으시려나? 손님, 처마 밑의 유지 풍등을 좀 보라. 등불이 꺼져 있으니, 우리 작은 가게는 이미 방이 꽉 찼다!”

추오상이 이미 안으로 밀고 들어가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을 찾는 것은 괜찮겠지?”

가게 주인이 아직 잠이 덜 깬 두 눈을 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손님, 누구를 찾으시나?”

추오상이 말했다. “봉음이라는 이름의 처자다. 방금 전 방을 잡았을 터인데, 그녀가 어느 상방(上房)에 머물고 있나?”

가게 주인이 연신 대답했다. “있다! 이 사람이 지금 손님을 모시고 가겠다....”

문득 물에 흠뻑 젖은 강추로를 휙 훑어보더니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 처자는 어찌하여 온몸이 물바다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조심하지 못해 강물에 빠졌다. 빈방이 없다니, 우리는 그저 봉음 처자의 방에서 함께 끼여 지내겠다. 더운물을 좀 가져오고, 화로에 불을 왕성하게 피워다 달라. 팁은 넉넉히 주겠다.”

열 명의 가게 주인 중 아홉 명은 돈을 보면 눈이 뒤집히는 법이라,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 사람이 전부 대행하겠다. 먹을 것도 좀 필요하시나?”

추오상이 손을 휙 저으며 말했다. “그만두라....”

문득 또 다른 일이 생각나 황급히 목소리를 낮추며 이어 말했다. “동쪽 행랑방에 투숙했던 그 염 어르신은 아직 여기에 머물고 있나?”

가게 주인이 말했다. “아직 방을 빼지는 않았으나, 오늘 밤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맞다! 손님께서 어제저녁에 오신 적이 있다.”

추오상이 나지막이 대답할 뿐 더 이상 말을 받지 않은 채, 홀로 안마당을 향해 걸어갔다. 가게 주인이 황급히 앞장서서 길을 인도했다.

봉음의 방문을 두드려 열자, 그 어린 계집아이는 그리 과하게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황급히 침상의 휘장을 내리고 강추로를 붙들어 휘장 뒤로 데려가더니, 물에 흠뻑 젖은 옷을 모두 벗겨주었다.

강추로는 맨몸으로 휘장 뒤에서 침상 위로 올라가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화로가 들어오자, 봉음은 강추로의 젖은 옷을 말리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추오상은 봉음이 보는 앞에서 강추로와 침상을 함께 쓰기가 불편했기에, 그저 의자를 침상 삼아 앉은 채 눈을 감고 양신(養神)을 취했다.

방 안은 고요하기 적막했고, 오직 숯불이 톡톡 터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꼬박 한 시진의 시간을 허비한 후에야, 봉음은 마침내 강추로의 젖은 옷을 모두 말려 옷을 가지런히 접어 평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추오상의 맞은편 의자에 가만히 앉았다.

추오상이 천천히 눈을 뜨며 물었다. “봉음! 너는 어찌하여 아직 자러 가지 않느냐?”

봉음이 말했다. “내가 추... 공자님을 모시려고 그런다.”

추오상이 말했다. “가서 자라! 나를 모실 필요 없다.”

봉음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사람이 어찌 감히 노 검희(?姬)와 침상을 함께 쓰며 잠들겠나? 이 사람이 그냥....”

추오상이 나직하게 호통쳤다. “내가 방금 전에도 네게 일렀거늘, 다시는 자신을 낮추는 어조를 쓰지 말라. 우리는 평등하게 지내며 잠도 함께 자고 밥도 함께 먹을 터이니, 다시는 귀천을 나누지 말라. 어서 가서 자라.”

봉음은 그제야 평상 위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긴 거리에 이미 사경(四更)을 알리는 타악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추오상이 눈을 감고 한동안 운기조식을 하니 더 이상 곤한 기색이 없어, 내친김에 등불을 끄고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그는 갑자기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본다는 옛말이 생각나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는데, 오직 사방이 네모난 창공만이 보일 뿐이었다. 자신은 현재 그저 작은 국면 속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으나, 개봉과 금릉 외에도 무림의 강역은 아직 광활하게 넓지 않은가!

마땅히 사방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명성을 널리 퍼뜨려야 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추오상의 정신이 부쩍 진작되었고, 날이 밝은 후 고향으로 향할 걸음에도 자신감이 가득 찼다. 그의 선친이 생전에 철필성수(???手)였든, 비조괴객(??怪客)이었든 간에, 자신이 추 씨 가문의 후대라는 것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었으며 가문을 빛내야 할 중임이 이미 자신의 어깨 위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마음속의 상념이 풍차처럼 쉴 새 없이 회전했으나, 눈빛은 사방이 반듯한 창공을 응시한 채 조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추오상의 눈에屋? 위로 사람의 머리 하나가 쑥 내밀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사내의 머리였는데, 형형한 눈빛으로 자신을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다.

추오상은 마음속으로 은밀히 놀랐으나 신형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눈길 또한 돌리지 않았다.

처마 끝에 엎드려 있던 자가 갑자기 손을 또 하나 내밀더니, 추오상을 향해 검지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추오상이 발끝을 가볍게 디디니, 사람은 이미 지붕 위로 올라서 있었다.

그 자는 분명히 처마 끝에 엎드려 있었거늘, 추오상이 지붕 위로 뛰어오른 순간에는 이미 지붕마루를 넘어가 버린 후였다.

추오상이 속으로 감탄했다. ‘참으로 신속한 신법이구나!’

그 자가 몸을 돌려 추오상에게 손짓을 해 보이더니, 몸을 쑥 펴며 담장 밖으로 사뿐히 낙하했다.

추오상이 그 뒤를 쫓아갔는데, 그가 긴 거리에 내려앉았을 때 그 자는 이미 다시 몸을 날려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추오상이 속으로 은밀히 이빨을 악물며 마음을 모질게 먹고, 전력을 다해 상대방과 경공의 고하를 겨루어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객실 안에 있는 봉음과 강추로가 생각났다. 만약 이 자가 단지 조호이산(?虎?山)의 계책을 쓰고 있는 것이라면 자신은 속아 넘어가는 셈이었다.

그 자는 추오상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몸을 돌려 다시 걸어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부는 결코 악의가 없다. 그저 귀하와 대화를 좀 나누고 싶을 뿐이다.”

추오상은 상대방의 목소리가 꽤 낯익다고 느꼈는데,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상대방은 바로 그 표구점의 주인인 송 선생이었다. 이에 이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송 선생이셨구나.”

송 선생이 말했다. “귀하는 노부를 따라 한적한 곳으로 가 대화를 나눌 의향이 있으시나?”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이 멀리 떠나기 불편하니 양해하라.”

송 선생이 말했다. “그렇다면 귀하와 내가 담장 아래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괜찮겠다!...”

목소리를 낮추며 이어 말했다. “방금 전 귀하와 함께 소점에 왔던 그 처자는...?”

그가 여기까지 말하고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는데, 이는 분명히 추오상이 스스로 답을 말하도록 유도하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추오상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주시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송 선생은 대답을 얻지 못하자 잠시 멍해지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노부가 어쩌면 너무 당돌하게 물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노부는 참으로 순수한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니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다행이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 처자는 성이 소 씨이고, 이 사람과는 단지 금릉에서 처음 만난 강호의 친구일 뿐이다.”

송 선생이 가벼운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했다. “그러한가? 그 소 낭자의 안색이 좋지 못하니, 아무래도 몸에 숨겨진 고질병을 앓고 있는 듯싶다.”

추오상이 말했다. “알고 보니 송 선생께서 의술에 정통하시겠다.”

송 선생이 말했다. “아니다! 노부는 그저 기색을 잘 살필 뿐이다.”

추오상이 물었다. “그렇다면 내 기색은 어떠한가?”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가 낮에 이미 관찰해 보았다.”

추오상이 말했다. “어떠하던가?”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가 감히 평을 내리지 못하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어찌하여 감히 평을 내리지 못하겠다는 말을 쓰나?”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 스스로 평이 정확할지 자신이 없으니, 차라리 졸렬함을 숨기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한 핑계였고 추오상 역시 그것을 알아들었기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송 선생이 다시 말했다. “귀하께서는 머지않아 멀리 떠나실 모양이다?”

추오상이 멍해지며 말했다. “이것 역시 기색을 보고 관찰해낸 것인가?”

송 선생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금릉성 안에서 사람들이 이 일을 논하는 것을 들었다.”

추오상의 안색이 침울해지며 말했다. “송 선생께서 설마 일부러 위태로운 말을 지어내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송 선생의 신형이 잠시 주춤하더니, 의아해하며 말했다. “귀하의 말씀을 듣자 하니, 혹시 이번 걸음이 매우 기밀한 일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기밀이랄 것까지는 없다. 다만 외인들은 알지 못하는 일인데, 송 선생께서는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으셨는지 가르침을 청하겠다.”

송 선생이 말했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풀어야 한다....”

어조를 약간 가다듬으며 이어 말했다. “귀하께서는 근대의 서법 종장(宗匠)이신 황산노인(黃山老人)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시나?”

추오상의 마음이 미미하게 움직였으나 기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략 들은 바가 있다.”

송 선생이 말했다. “듣자 하니 이 한 세대의 종장께서 이미 작고하셨으나, 세상 사람들은 도리어 이 어르신의 필적을 몹시 아끼는 터라 너도나도 모방하여 위작이 속출하고 있다네. 노부의 가게에서도 이미 무수히 많은 작품을 표구했지.”

추오상이 나지막이 대답하며 물었다. “어찌 되었나?”

송 선생이 말했다. “얼마 전, 어떤 처자가 황산노인의 묵보(墨?)를 한 점 가져와 노부에게 정교하게 표구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게다가 노랗게 물을 들여 오래된 것처럼 꾸며달라고 하더군. 그것은 대련(??)이었는데, 글귀에 이르기를 ‘저물녘 황산은 멀어지고, 별빛 차가운 가을날은 길구나(暮??山?,星冷秋日?)’라고 되어 있었지. 노부가 한눈에 보고는 이름을 도용한 위작임을 알았다네.”

그 대련은 추오상이 이미 황해어의 손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제 황해어의 신분이 드러났고, 추오상 역시 그녀가 해옥환이 변장한 인물임을 알았으니 대련을 쓴 것이 거짓임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순간 조금도 놀라지 않은 채 오직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뒷이야기를 기다렸다.

송 선생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 말했다. “방금 전 두 분이 떠나신 후에 손님 두 명이 찾아왔는데, 옷차림은 젊은 문사 같았으나 노부가 보기에는 글방 선비의 기질이 털끝만큼도 없었지.”

추오상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설마 그 두 사람도 황산노인의 묵보를 지니고 와서 표구해달라고 하던가?”

송 선생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틀렸다! 그들은 다른 서법 명가인 추일장(秋日?)의 손끝에서 나온 묵보를 사고 싶어 했는데, 은자가 얼마이든 상관없으니 반드시 진적(眞迹)이어야 한다고 하더군.”

추오상은 여기까지 듣자 자신도 모르게 크게 술렁이며 황급히 물었다. “추 선생의 필적이 시중의 서점에서도 팔리고 있단 말인가?”

송 선생이 말했다. “진적은 보기 드무나 위작은 도처에 널려 있다네.”

추오상이 말했다. “그 두 손님은 기필코 진적을 사겠다고 했단 말이지.”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는 문을 열고 찾아온 손님을 속일 마음이 없었으나, 그 두 손님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낼 수 있을지 다소 믿기지 않아 시험해볼 심산이었지. 뜻밖에도 그들은 가문의 보물을 읊조리듯 훤히 꿰고 있어, 위작을 알아챌 뿐만 아니라 위작에 도대체 어떤 유파들이 있는지까지 말하더군.”

추오상이 말했다. “전문가들이었군! 이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겠다.”

송 선생이 말했다.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으나, 노부는 도리어 그들의 대화 속에서 은밀한 비밀을 들었다네.”

추오상이 말했다. “내게 들려줄 수 있나?”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가 바로 이 일 때문에 온 것이다....”

목소리를 낮추며 이어 말했다. “노부가 서첩을 꺼내느라 분주한 틈을 타서, 그 두 사람은 끊임없이 소근거렸는데 소리가 모기 울음 같아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도청할 수 없었을 걸세. 그러나 노부에게는 남다른 청력이 있어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았다네.”

추오상이 말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던가?”

송 선생이 말했다. “바로 귀하께서 멀리 떠나시는 일에 대해 담론하고 있었지. 노부가 대본을 읽듯 사실대로 고하기에는 불편하니 양해하라.”

추오상이 불쾌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 감히 송 선생께서 이 밤중에 강을 건너오시도록 수고를 끼쳤겠나?”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가 고스란히 옮겨 전한다면 그 행적은 소인배와 다름없을 걸세. 다만 노부가 약간의 암시는 줄 수 있으니, 이번 걸음은 도처에 초연이 자욱할 터라 귀하께서 반드시 조심하셔야 하네.”

추오상이 말했다. “사절검이 손에 있거늘, 무엇을 두려워하겠나?”

송 선생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참으로 호기가 대단하구나! 노부가 묻겠는데, 검을 쓰는 자는 단지 검의 날카로움만 믿고 격검의 술수를 구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오직 격검의 기술만 구하고 검의 날카로움은 구하지 않는 것인가?”

그의 질문은 뼛속을 찌르듯 예리하여 추오상으로 하여금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잠시 생각한 후에야 대답했다. “마땅히 둘을 겸비해야 한다.”

송 선생이 말했다. “그렇다면 노부가 귀하의 머리 위로 찬물 한 바가지 부어야겠군. 사절검은 결코 검 중의 진품이 아니며, 선풍검법(旋風劍法) 역시 상승의 어검 술수가 아니라네. 방금 전 ‘무엇을 두려워하겠나’라는 그 한마디는 귀하께서 다소 심사숙고하지 못하고 뱉은 말씀 같구려.”

추오상은 본래 ‘그대가 한 번 날카로움을 시험해보고 싶은가’라는 말을 내뱉으려 했으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광망한 짓임을 알아차렸다. 특히 심기를 헤아릴 수 없으면서도 완전히 낯선 무림 인물을 마주하고서야 더더욱 그랬다.

마음속의 들뜬 기운을 억누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송 선생께서 내가 익힌 것이 선풍검법인지 어찌 아셨나?”

송 선생이 말했다. “귀하께서는 어찌하여 노부가 귀하께서 이 객잔에 머물고 계신 것을 알았는지부터 먼저 묻지 않으시나?”

추오상이 말했다. “마침 여쭈어보려던 참이다.”

송 선생이 말했다. “실상 감출 것도 없이, 노부가 비록 웅재대략이나 장장한 호기는 없으나 강호의 친구들은 적지 않다네. 예를 들면 장강의 일패인 김전표와 노부는 서로 왕래가 있는 터라, 귀하께서 머무시는 곳을 알아내고자 한다면 그리 큰 어려움은 없다네.”

추오상이 말했다. “과연 그러했군! 송 선생께서 걸음을 굽혀 이곳에 오신 것은 단지 내게 경고를 주기 위함이었나?”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는 늘 귀하에게 빚을 진 듯한 마음이 있어 이로써 약간의 보상을 하려는 것이다.”

추오상이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이 사람이 감사드린다.”

송 선생이 말했다. “구만장천에 오르는 것을 용이라 하고, 강해에 잠기는 것을 교룡이라 하며, 산택에 갇히는 것을 뱀이라 한다네. 세 가지 물건은 본래 동종이나 오직 조우하는 바가 달라 귀천이 단번에 나뉘는 법이지. 강호는 변화가 많고 사람의 마음은 더욱 변화무쌍하니, 용이 되느냐 뱀이 되느냐는 오직 한 생각 사이에 달렸으므로 귀하께서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네.”

이 말을 듣자 추오상은 크게 멍해졌다.

송 선생이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노부의 직언을 용서하라. 이만 작별하겠네. 귀하의 앞날이 붕정만리(鵬程萬里)하기를 기원하겠네.”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

추오상은 본래 상대방을 붙잡아 몇 마디 더 가르침을 청하려 했으나, 오만한 성품 탓에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소리를 다시 삼켜버렸다. 멍하니 서서 그 송 선생의 종적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 천색을 바라보니 이미 날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추오상은 방으로 돌아가 강추로와 봉음을 깨워 깨끗이 씻은 후 아침 식사까지 마치고 나서야 방값과 밥값을 정산하고 강포진의 동쪽 어귀로 나왔다.

주성한은 일찌감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걸어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추 형, 참으로 일찍 오셨다.”

마을 어귀에 찻집 천막이 하나 있었기에, 추오상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주 형! 귀하와 내가 저 찻집 천막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자.”




주성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에 이미 안장까지 얹어두었거늘, 어찌하여 아침의 서늘한 기운을 틈타 길을 더 재촉하지 않으십니까?”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께서 작은 일 한 가지를 수고해주셔야겠습니다.”

말을 마치고는 자고로 혼자 찻집 천막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성한은 하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는데, 자리에 앉기도 전에 목소리를 나직하게 낮추며 물었다. “추 형, 이 사람이 처리해야 할 일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추오상이 말했다. “두 부(府) 맞은편에 표구점 하나가 있고 그 주인이 스스로 성은 송 씨라 칭하며 나이는 대략 쉰 살 안팎이라 하던데, 주 형께서는 혹시 이 자를 아십니까?”

주성한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자는 가슴속에 만 가지 기틀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공 또한 기이하게 뛰어나니, 자연히 무림의 은둔 고수일 것입니다. 듣자 하니 그가 김 형님과 서로 왕래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우는 주 형께서 지금 바로 김 형님을 찾아가 만나보시고, 그가 과연 그 송 선생의 내력을 알고 있는지 알아보셨으면 합니다.”

주성한이 말했다. “매우 중요한 일입니까?”

추오상이 말했다. “귀하와 나의 이번 걸음과 제법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주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다녀오겠습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얼마 만에 돌아오실 수 있겠습니까?”

주성한이 말했다. “밥 한 끼 먹을 시간이면 됩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아우가 이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주성한이 떠난 후, 추오상이 손을 저어 신호를 보내 강추로와 봉음에게 다른 탁자에 가서 앉으라고 일렀다. 두 사람은 비록 그 까닭을 알지 못했으나 지시대로 따랐다.

이때 찻집 천막 안에는 다른 손님이 없었으므로, 천막 주인 역시 자연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탁자가 비어 있으니 손님이 혼자 한 탁자를 차지하고 앉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고운 해가 이미 석 장 높이로 솟아오르자, 오가는 행인들도 점차 많아졌다. 찻집 천막 안에도 다리를 쉬러 들어오는 손님들이 제법 늘어났다.

갑자기 버들잎 모양의 단도를 차고 날렵한 경장 차림을 한 장한 한 명이 급히 걸어 들어왔다.

그 장한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형형한 눈빛으로 사방을 훑어보더니, 곧장 추오상의 탁자 앞으로 다가와 포권을 하며 말했다. “결례를 범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자리를 좀 함께합시다.”

추오상이 무심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편한 대로 하시오!”

차가 나오기를 기다려 그 장한은 새끼손가락에 찻물을 찍어 탁자 위에 세 점을 찍어대며 먼저 강호의 예법을 밝히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은 황하팔걸(黃河八杰)의 둘째인 ‘단기사어(單?梭魚)’ 모비라 하오. 추 부궁주께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소.”

추오상은 상대방이 핑계를 대고 자리를 같이한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알았으나, 상대방이 황하팔걸 중 한 사람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더욱이 입을 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내면서도 어조가 이토록 공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잠시 멍해지더니, 미소를 띠며 말했다. “대면하게 되어 기쁘오!”

모비가 말했다. “황하팔걸은 줄곧 황하 수역을 경계로 삼아 그리로 넘어가는 일이 극히 드물었으나, 이번에 멀리 금릉까지 발을 들인 것은 따로 연고가 있었소. 어제저녁에 착오로 추 부궁주께서 타신 배의 바닥을 뚫은 것은 참으로 뜻밖의 일이었소. 팔걸의 우두머리이신 구 형님께서 특별히 이 사람에게 당부하여 죄를 청하러 오게 한 것이오. 팔걸 형제들은 오늘 즉시 금릉을 떠날 것이며, 아울러 향후 5년 동안은 결코 황하 수역을 벗어나지 않기로 결정하여 깊은 사죄의 뜻을 표하기로 했소.”

이것은 또 하나의 커다란 뜻밖의 일이었기에 추오상의 마음이 크게 술렁였으나, 입으로는 덤덤하게 말했다. “구 큰형님께서 어찌하여 이리 작은 일을 이토록 신중하게 여기신단 말이오?”

모비(莫飛)가 말했다. “추 부궁주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이 사람도 마음이 많이 놓이오. ‘경천궁(擎天宮)’이 개봉에 자리 잡고 있어 황하 수역과는 지척의 거리이거늘, 팔걸 형제들이 이토록 경솔하게 범포한 짓을 저질렀으니 참으로 유감스럽기 그지없소. 만약 추 부궁주께서 너그럽게 용서해주신다면 감개무량하겠소.”

추오상이 말했다. “구 큰형님께 전해주시오, 이 정도 작은 일은 마음에 두실 필요 없다고 말이오. 그가 나를 이리 좋게 봐주었으니, 추某 또한 훗날 직접 대면하여 감사를 표하겠소. 어제저녁의 일은 아무래도 어떤 오해에서 비롯된 듯하구려.”

모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하나의 오해였소.”

추오상이 물었다. “그렇다면 그 오해는 어디서부터 일어난 것이오?”

모비의 신색이 순간 주춤하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그게....”

추오상이 말을 받았다. “아무래도 타인의 유혹에 빠진 모양이구려.”

모비가 말했다. “팔걸 형제들이 황하 수역에서 작게나마 위명을 떨치고 있으니 다들 세 살 먹은 어린아이가 아니거늘, 어찌 남의 유혹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겠소? 여하튼 이 일은 마땅히 우리 팔걸 형제들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바이니, 추 부궁주께서 이미 용서해주셨다면 더 이상 추궁하지 마시기를 바라오.”

과연 구등이 그를 설객으로 보낼 만했으니, 말솜씨가 대단히 유창하고 도리에 밝았다.

추오상으로서도 자연히 더 캐묻기가 거북했기에,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돌려 물었다. “내가 이곳에 발을 멈춘 것은 어찌 아셨소?”

모비가 말했다. “구 큰형님께서 이른 아침에 수방의 김전표 형님을 찾아가 죄를 청하셨고, 현재 여전히 김 형님의 처소에 머물고 계시오. 김 형님의 지시를 받은 덕분에 이 사람이 이곳으로 급히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이오.”

추오상이 침吟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 주성한이 빠른 걸음으로 찻집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의 얼굴에는 신색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모비(莫飛)가 일어서며 포권을 해 보였다. “우리 팔걸 형제들은 즉시 이곳을 떠나야 하니, 이 사람도 오래 머물기 불편하구려. 이만 작별하겠소.”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

추오상은 주성한의 안색이 기이한 데다 모비와는 더 이상 나눌 대화가 없었기에, 굳이 붙잡지 않은 채 그가 떠나도록 내버려 두었다.

주성한이 자리에 앉은 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추오상이 말했다. “황하팔걸의 둘째인 ‘단기사어’ 모비요.”

주성한이 말했다. “그가 무엇 하러 왔습니까?”

추오상이 말했다. “어제저녁 팔걸 형제들이 강 한가운데서 내가 탄 배의 밑바닥을 뚫으려다 실패하자, 오늘 사죄의 뜻을 표하러 온 것이오. 팔걸 형제들이 향후 5년 동안은 황하 수역을 벗어나지 않으며 자성하겠다고 하더군. 이 속의 현기는 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헤아리기 어렵게 만드는구려....”

목소리를 더 낮추며 이어 말했다. “주 형, 알아오라고 부탁드린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주성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김 형님 역시 그 송 선생이라는 자가 도대체 어떤 내력을 가졌는지 알지 못하더군요.”

추오상이 말했다. “송 선생은 도리어 자신이 김 형님과 서로 왕래가 있다고 말했거늘, 이것은 또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이오?”

주성한이 말했다. “김 형님의 말에 따르면, 오늘 아침 전까지는 그 자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이것 참 기이하구려! 내력을 알지도 못하면서, 김 형님이 어찌하여 이 아우가 머무는 곳을 그에게 쉽게 발설했단 말이오?”

주성한이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말하기 부끄러우나, 김 형님은 핍박을 당해 말한 것입니다.”

추오상이 두 눈썹을 켜 세우며 말했다. “그 말은 다소 경악스럽구려. 명색이 ‘수방’의 우두머리이신 분이....”

주성한이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이것은 천진만확한 사실이며, 김 형님은 현재 여전히 침상에 누워 부상을 치료하는 중입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어디를 상하셨소?”

주성한이 말했다. “그 송 선생이 단 한 번 출수하는 사이에 김 형님의 온몸 위아래로 무려 일곱 군데의 대혈이 제압당했습니다. 본래 김 형님은 죽어도 추 형의 행방을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그 송 선생이 뜻밖에도 분골착근(分骨錯筋)의 독한 수단을 썼다고 합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사람이 고통을 참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 김 형님으로서도 어쩔 수 없이 말했겠구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잘못 짚으셨습니다. 김 형님은 그 송 선생의 언행을 관찰한 끝에 그가 결코 악의가 없음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비로소 추 형의 행방을 발설한 것입니다.”

추오상이 중얼거렸다. “그는 과연 악의가 없었소.”



주성한이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냐?”

추오상이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이번 행차를 이미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더군. 강호에 바람 잘 날이 없으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하대.”

주성한(朱星寒)은 표정이 굳어지며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더 이상 말을 받지 않았다.

추오상(秋傲霜)은 오히려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주 형은 송 선생의 이 말을 그리 마음에 둘 필요 없다네. 강호에 처처마다 피바람이 부는 거야 당연한 일인데, 새삼스레 그의 일깨움이 왜 필요하겠는가. 주 형! 우리 이른 아침 날씨가 서늘할 때 길을 떠나세!”

주성한은 정신을 가다듬고 기쁘게 말했다. “좋네! 내가 먼저 가서 말에 안장을 얹으라 이르겠네.”

추오상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수고해주시게...”

이어서 옆자리의 강추로와 봉음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출발하자.”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성한의 뒤를 따라 찻집을 걸어 나왔다. 이때의 하늘은 대략 진시(辰時) 말 무렵으로, 태양은 이미 높이 솟아 있었다.

청천(淸泉)! 금릉에서 서주부로 가는 도중에 있는 커다란 요충지다.

왕구도방(王九賭坊)! 청천진(淸泉鎭)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도방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오락거리가 아주 많았다. 왕구는 수많은 고수를 모아두었는데, 이곳은 백여덟 가지 요리가 나오는 만한전석을 차려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쪽으로는 진회에 뒤지지 않고 북쪽으로는 연경에 못지않은 기녀들도 갖추고 있었다. 이 때문에 왕구도방은 명성이 자자한 돈을 물 쓰듯 하는 유흥가로 통했다.

지나가는 부유한 손님들이 아주 많았는데, 단 한 가지, 몸에 돈이 없으면 절대 안으로 들어서지 말아야 했다.

등불을 켤 무렵! 왕구도방 안은 한창 북적였다. 이쪽 객실에서는 주사위 굴리는 소리가 요란하고, 저쪽 객실에서는 술잔을 권하며 소리 높여 놀았다. 딩동거리는 거문고 가락에 실린 노랫소리가 집 안팎을 스쳐 길 한복판까지 아련히 떠돌았다. 지나가던 풍류객이 들어와 구경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천하 제일의 바보가 틀림없었다.

서쪽 객실 옆 홀에서는 마침 패구 판이 벌어져 한창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도박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여섯 명으로, 탁자 위에는 은표가 가득 쌓여 있었다.

패를 돌리는 고주는 나이가 스물여섯 남짓 된 젊은 사내였는데, 얼굴이 뽀얗고 입술이 붉어 그 모습이 처자보다 더 고왔다. 다만 얼굴 가죽이 지나치게 하얘서 다소 음산하고 처량한 느낌을 풍겼다.

그의 손재수가 아주 좋은 모양인지 연거푸 판을 쓸어 담아, 앞에는 은표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신이 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아주 노련한 도박꾼이었다.

그가 골패를 잘 쌓아 문을 열고 막 손바닥 안의 주사위 두 개를 던지려는데, 갑자기 짙은 눈썹에 큰 눈을 가진 건장한 사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나직하게 말했다. “백 나으리! 잠시 쉬시지요! 소인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이가 어린데도 그를 백 나으리라 부르는 것을 보니, 이 젊은 소년은 보통 내기가 아닌 인물인 듯했다.

얼굴이 옥 같고 입술이 붉은 소년이 두 줄기 검썹을 치켜세우며 아직 입을 열기도 전에, 도박판의 다른 사람이 그 건장한 사내를 향해 냅다 질렀다. “형씨! 그런 수작 부리지 마시오. 당신 주인인 ‘옥면살성’ 백운표는 강호에서 명성이 자자한데 은자를 안 만져봤겠소? 왜 이런 수를 쓴단 말이오? 이건 명백히 당신 주인이 이기고 있을 때 손을 떼게 만들려는 수작이 아니오!”

건장한 사내가 비굴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 나으리, 농담 마십시오. 정말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거들었다. “그럼 그만 일어납시다! 마침 밥 먹을 때도 되었으니 말이오!”

성 씨가 유 씨인 사내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백 형제! 당신 인복이 좋다고 치세. 이 만 냥 가까운 은자는 당신이 딴 것으로 해두지!”

백운표白雲飄)라 불리는 옥면 소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도 그저 유 씨 성을 가진 사내를 향해 치아를 드러내며 한 번 싱긋 웃어 보이고는, 탁자 위의 커다란 은표 뭉치를 챙겨 밖으로 걸어 나갔다.

소식을 전한 건장한 사내가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옆 홀의 밖은 꽃과 나무가 우거진 정원이었다. 백운표는 외진 곳에 이르자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패! 소식이 왔느냐?”

오패라 불리는 건장한 사내가 말했다. “그들이 도착했습니다.”

말하는 안색이 몹시 엄숙한 것을 보니, 그가 말한 '그들'은 필시 극히 중요한 인물들인 모양이었다.

백운표는 조금도 놀라운 기색을 보이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도착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

오패가 말했다. “조금 전입니다.”

백운표가 말했다. “어디에 묵었느냐?”

오패가 말했다. “마을 동쪽의 ‘부귀거’입니다. 남자 둘에 여자 둘인데, 상방 세 칸을 잡았습니다.”

백운표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몰래 감시하되 기색을 드러내지 말아라. 그리고 ‘부귀거’의 향 점주를 이리로 불러오너라. 내가 왕 점주의 방에서 기다리겠다.”

오패(吳覇)가 연달아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떠났다.

대략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실 만한 시간이 지난 후, 머리는 오소리 같고 눈은 쥐 같은 왜소하고 비열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왕구도방에 도착했다.

그가 바로 ‘부귀거’의 점주 향삼이었다.

문 앞의 한 거구가 그에게 턱짓을 하며 말했다. “빨리 가보게! 백 나으리가 우리 점주 방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계시네!”

향삼은 이곳이 꽤 익숙한 듯, 집 안팎을 거쳐 왕구의 방 문 앞에 이르러 휘장 밖에 서서 가볍게 기침을 했다.

방 안에서 백운표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너라!”

향삼이 휘장을 걷고 들어서자, 문가에 서 있던 왕구는 그가 들어온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백운표의 얼굴은 웃을 때는 봄바람을 맞는 듯한 느낌을 주었지만, 웃지 않을 때는 사람을 얼음판 위에 서 있게 만드는 듯하여 절로 가슴을 졸이고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지금 백운표가 바로 그러했다. 얼굴에는 그늘이 져 웃음기라곤 전혀 없었고, 두 줄기 차가운 눈빛이 향삼의 얼굴을 곧장 쏘아보고 있었다.

향삼도 청천진(淸泉鎭)에서는 제법 뼈가 굵은 자로, ‘흑심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옥면살성’ 백운표를 보자마자 기가 팍 죽어버렸다. 그는 허리를 굽혀 절을 올리며 말했다. “백 나으리께서 부르셨다니, 무슨 가르침이 있으십니까?”

나이로 따지면 그가 백운표보다 적어도 스무 살은 더 많았지만, 호칭은 이토록 공손했다.

백운표가 눈을 치켜뜨며 차갑게 말했다. “향삼! 장사가 잘되는구나!”

향삼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저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지요.”

백운표가 몸을 앞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며 말했다. “해질 무렵, 네 가게에 어떤 낯선 손님이 찾아왔느냐?”

향삼(向三)이 조금 멍해지더니 곧바로 대답했다. “네 명이 왔습니다. 남자 둘에 여자 둘, 그리고 좋은 말 네 필이었습니다...”

백운표(白雲飄)가 말을 받았다. “그들의 이름이 장부에 올랐느냐?”

향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올랐습니다. 한 남자의 이름은 주성한이고, 다른 하나는 추오상이라 하더군요...”



백운표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됐다! 내가 그들을 아는데, 어떤 친구가 미리 귀띔을 해주었으니 잘 보살펴야 한다.”

향삼이 황급히 대답했다. “내 당장 돌아가서 분부하여 유별나게 정성껏 모시도록 하겠다.”

백운표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렇게 번거롭게 굴 필요는 없다...”

말을 멈추고 품속에서 초록색 도자기 병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이것을 네게 주마.”

향삼이 도자기 병을 집어 들고 보더니 안색이 약간 변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 나으리! 이것은 미...”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운표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잔말 말고 가서 그 귀한 손님들을 잘 모시기나 해라.”

향삼이 말했다. “백 나으리, 이 물건을 술과 요리, 혹은 차와 음식에 타라는 말씀인가?”

백운표(白雲飄)가 냉소하며 말했다. “그럼 내가 너 더러 목욕물에 타라고 했겠느냐? 얼간이 같으니!”

백운표의 말투에 불이 붙자, 향삼은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비록 그가 이 ‘옥면살성(玉面煞星)을 뱀이나 전갈처럼 두려워했으나, 여전히 용기를 내어 말했다. “도리상 백 나으리의 분부를 내 감히 어길 수는 없다. 다만, 이 일은...”

백운표가 말했다. “어쨌단 말이냐?”

향삼이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방법이 없다!”

백운표가 말했다. “향삼! 네가 예전에 이런 짓을 해본 적이 없다면 나도 너를 찾지 않았을 터다. 그래, 왜 방법이 없는지 말이나 해보아라.”

향삼(向三)이 말했다. “내가 여관을 열어 수많은 뜨내기 객상들을 맞아왔기에, 눈빛만 슬쩍 봐도 남의 뱃속 창자가 몇 번 꼬였는지 알아볼 수 있다. 그러니 말하자면...”

백운표가 차갑게 꾸짖었다. “향삼! 그럼 그 무리의 뱃속 창자는 몇 번이나 꼬인 것 같더냐?”

향삼이 말했다. “백 나으리!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 주 씨와 추 씨 성을 가진 자들은 눈빛이 맑게 빛나고 몸이 묵직하며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않으니, 한눈에 봐도 강호의 고수들이다. 이런 수작이 어찌 통하겠는가.”

백운표가 말했다. “자정 전까지 그 무리가 쓰러지지 않는다면 오직 네게만 책임을 묻겠다.”

말을 마치고는 소매를 뿌리치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향삼이 당황하여 외쳤다. “백 나으리!...”

백운표(白雲飄)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헛걸음하게 하지는 않으마. 왕 점주가 그에게 은표 천 냥을 내어주게 하고 내 장부에 달아두어라.”

왕구(王九)가 공손히 응답했다. “즉시 시행하겠다.”

향삼은 도리어 멍해졌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이 천 냥이라는 돈이 손이 데일 만큼 위험한 물건임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서둘러 ‘부귀거(富貴居)’로 돌아온 향삼의 미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수심이 가득 얹혔다.

저승에도 대귀가 소귀를 부리는 법이 있듯, 당연히 흑심귀(黑心鬼) 향삼(向三)에게도 그의 흠하이지가 되어주는 소귀 둘이 있었다. 대점주의 미간이 찌푸러지고 얼굴이 펴지지 않는 것을 보자, 두 사람이 즉시 다가왔다.

그중 정소권(丁小權)이라 불리는 자가 나직하게 물었다. “향 형! 무슨 일로 언짢으신가?”

향삼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얀 얼굴의 ‘옥면살성(玉面煞星)이 내게 다루기 힘든 일을 맡겼다네.”

두 사람이 동시에 앗 하고 소리를 내며 얼굴에 약간 경악하는 기색을 띠었다.

향삼이 그들의 귀에 대고 한참 동안 은밀히 속삭였다.

다른 한 명인 범오자라 불리는 자가 말했다. “이 일은 정말 조금 까다롭군. 그 무리는 이미 술과 밥을 다 먹었으니, 지금 약을 쓸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향삼이 그를 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백운표가 내린 일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내일 아침의 태양을 볼 수 있겠는가?”

정소권이 환심을 사려는 듯 얄밉게 말했다. “향 형! 내게 좋은 생각이 있네. 어쩌면...”

향삼이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 “무슨 좋은 생각인가?”

정소권(丁小權)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우리 청천진의 명전용정 차는 인근에 명성이 자자하지 않은가. 향 형이 새로 우려낸 뜨거운 찻주전자 세 개를 들고 가서, 먼 곳에서 온 귀한 손님들에게 이 차 맛을 보시라고 청하면...”

향삼이 말했다. “그 물건을 차에다 타란 말인가?”

범오자(范五子)가 말했다. “밥은 이미 먹었으니 이 방법대로 행할 수밖에 없네! 내가 사람을 시켜 차를 우리라 하겠네.”

향삼이 말했다. “좋네! 다만 그 두 자의 밝은 눈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을까 두렵군. 그렇다면 나 ‘흑심귀’는 즉시 목 없는 귀신이 될 터이고, 밥 먹는 목숨줄은 틀림없이 남에게 뜯길 걸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누군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향삼(向三)이 몸을 돌려 보니, 경악스럽게도 그가 음해하려던 투숙객 주성한이었다.

당직이 그의 흠하이지에게 눈짓을 보내자, 세 사람은 뿔 모양의 진형을 갖추어 주성한을 에워쌌다.

그제야 향삼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객관께서는 나를 찾아 여기에 무슨 일로 오셨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한 달 전, 나 역시 이 관도에서 한 차례 오갔으며, 두 번 다 귀 점방에 투숙했다네. 점주의 별칭이 ‘흑심귀’ 향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네.”

향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주성한이 말했다. “사람이 강호에서 구르며 마음이 독하지 않고 손이 매섭지 않으면 틀림없이 손해를 보니, 점주가 그런 별호를 지은 것도 탓할 일은 아니네. 다만, 왜 사람이 되지 않고 굳이 귀신이 되려 하는가?”

향삼은 이미 말속에 담긴 뼈를 알아채고 마음속으로 은밀히 서늘한 소름이 돋아 잠시 말을 받지 못했다.

주성한이 또 말했다. “자네 향삼이 청천진에서 가진 무게로 보아, 누가 감히 자네가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겠는가?”

향삼은 짐짓 침착한 체하며 말했다. “객관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

주성한이 차갑게 꾸짖었다. “향 점주는 모른 척하지 마시게...”

앞으로 다가서며 손을 내밀고 말을 이었다. “차에 타려고 준비한 그 물건을 가져와 내게 보여주시게.”

향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자신도 모르게 그의 흠하이지를 쳐다보았다. 정소권과 범오자는 이를 신호로 여기고 제각각 품속으로 손을 넣어 시퍼런 칼날이 번쩍이는 단검을 꺼내 들고 좌우에서 주성한의 양옆구리를 찔러갔다.

주성한이 양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챙강 하는 두 번의 소리와 함께 두 자루의 단검이 땅에 떨어졌고, 그 흠하이지 역시 제각각 발걸음이 비틀거리며 다섯 걸음이나 연속으로 물러섰다.

주성한은 자연스럽게 방문을 닫아걸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향삼! 이 일이 만약 저 추 씨 성을 가진 객관에게 알려진다면 자네는 틀림없이 목숨을 잃을 걸세. 그러니 순순히 그 물건을 꺼내시게!”

향삼은 진작 주성한이 무림의 고수임을 알고 있었으나, 지금 그의 초식을 보니 더더욱 경거망동할 수가 없었다. 품속에서 백운표가 준 초록색 도자기 병을 꺼내 두 손으로 받들어 올리며 말했다. “객관께서 방금 내 대화를 들으신 모양인데,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협박당해 한 짓이라네.”

주성한은 그 작은 초록색 도자기 병을 품속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나도 이미 알았네. 그렇지 않았다면 향 점주에게 이토록 정중하게 대하지 않았을 걸세...” 어조를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그 자가 누구인가?”

향삼은 꺼리는 바가 있는 듯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주성한이 말했다. “향 점주! 그 자를 말하지 않으면 이 일은 끝나지 않네. 되도록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걸세.”

향삼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자는... ‘옥면살성’... 백운표라네.”

주성한이 눈꺼풀을 치켜뜨며 맑은 눈동자를 연달아 굴렸는데, 마치 이 인물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물었다. “백 씨 성을 가진 자는 어디에 있는가?”

향삼이 말했다. “왕구도방이라네.”

주성한이 말했다. “고맙네.”

말을 하며 상대에게 포권을 해 보이더니, 갑자기 번개처럼 손을 뻗어 눈앞의 세 사람의 혼혈을 찔렀다.

백운표는 왕구도방(王九賭坊 후원의 작은 거실에 앉아 신색이 다소 불안해 보였다. 비록 그의 하얀 얼굴이 나타내는 표정은 여전히 예전과 같았으나, 그가 잠시 서 있다가, 앉았다가, 다시 두어 바퀴 서성이는 동작을 통해 그의 초조한 심경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문가로 다가와 나직하게 꾸짖었다. “사람이 있느냐!”



한 건장한 사내가 휘장을 걷고 들어와 손을 내린 채 지시를 기다렸는데, 그는 여전히 조금 전 백운표에게 소식을 전했던 바로 그 자였다.

백운표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향삼 그 얼간이에게서 소식이 왔느냐?”

건장한 사내가 대답했다.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아직 시간이 이릅니다! 백 나으리, 그리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기녀 둘을 불러 나으리를 모시게 할까요?”

백운표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됐다, 유일도 그 무리는 어찌 되었느냐?”

건장한 사내가 대답했다.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유일도는 일 처리할 때 은자를 따지는 자인데, 저녁 영접 전 판에서 패구를 하다가 오천 냥을 잃어 마침 수중에 돈이 쪼들리던 참이었습니다. 방금 소인이 은표를 보냈더니, 유 씨 성을 가진 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백운표가 가볍게 들으니 무척 만족스러운 듯했다. 이윽고 다시 물었다. “유일도가 우리를 도와 무슨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 알고 있느냐?”

건장한 사내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소인이 말하지 않았고, 그도 묻지 않았습니다.”

백운표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물러가거라! 소식을 탐지하는 자는 좀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터다. 저쪽 사람들이 쓰러지기만 하면 우리는 바로 움직여야 한다.”

건장한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백 나으리, 부디 마음을 놓으십시오. 마차는 다 채비했고, 말도 배불리 먹였으니,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백운표는 명백히 더 듣고 싶지 않은 듯 상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가거라! 일이 성공하면 내 두둑이 상을 내리마.”

건장한 사내가 말했다. “백 나으리, 감사합니다!”

그 건장한 사내가 물러갔다가, 돌연 그가 다시 걸어 들어왔다.

백운표는 이미 몸을 돌려 안쪽을 향하고 있었기에, 그 역시 몸을 돌리기 귀찮아하며 차갑게 물었다. “또 무슨 일이냐?”

그러자 한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다. “귀하가 ‘옥면살성’ 백운표인가?”

찾아온 이의 말이 채 반도 끝나기 전에 백운표는 이미 신형을 빠르게 돌렸다.

하지만 그는 어떤 공격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얼굴에 경악하는 기색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번개 같아, 슬쩍 보는 사이에 찾아온 이의 태도가 온화하여 적의가 없는 듯함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긴 숨을 가볍게 내쉬며 완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인이 백운표라네. 감히 친구의 함자를 물어도 되겠는가?”

찾아온 이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본인은 강주의 주성한이라네.”

백운표가 받은 놀라움은 참으로 대단했으나, 그는 표면적으로 여전히 온화한 태도를 유지하며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말했다. “참으로 뜻밖이군, 여기 앉으시게.”

허리를 굽히고 팔을 들어 공손히 손님을 인도했다.

주성한 역시 미소로 화답하며 천천히 의자를 향해 걸어갔다.

이때 백운표가 돌연 신형을 반쯤 돌리더니 허리를 틀고 몸을 낮추며, 들어 올렸던 오른팔을 뒤로 낚아채듯 끌어당겼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쫙 펼쳐 주성한의 오른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가 과연 ‘옥면살성’이라 불릴 만한 것이, 뜻밖에도 담소하는 와중에 상대를 공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방비하려 해도 방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초식이 괴이하고 신속하며 경력이 가득 실려 있어, 날카로운 손가락 바람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주성한은 절대 이러한 불의의 변화가 있을 줄 예상하지 못했기에, 눈치챘을 때는 이미 피하기에 늦은 상태였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주성한의 오른 손목이 백운표의 철고리 같은 다섯 손가락에 정통으로 붙잡혔다.

슈욱! 하는 소리와 함께 주성한은 왼손으로 그의 접부채를 펼쳐 들더니, 칼로 가로 자르듯 백운표의 오른 손목을 베어갔다.

이 초식 또한 기이할 정도로 빨랐다.

백운표는 안목이 있는 전문가였기에, 얼른 손을 풀고 몸을 뒤로 빼며 물러섰다.

착! 접부채가 다시 접히며 소맷자락 속으로 들어갔다.

주성한이 말했다. “반근팔냥으로 막상막하니, 만약 손을 써서 싸운다면 필시 기력만 허비할 걸세. 자네와 내가 어찌 입만 움직이고 손은 쓰지 않는 군자가 되지 않겠는가.”

그의 기도는 백운표에게 다소 의외였으며, 흑도에서 명성을 날리던 이 사악한 무리로 하여금 은밀히 마음으로 감복하게 만들어 결국 멍하니 서 있게 했다.

주성한은 도리어 방금 아무런 불쾌한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편안한 태도로 자리에 앉았다.

백운표 역시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연 일대 의성의 후손답군, 과연 기도가 웅혼하네.”

주성한이 웃으며 말했다. “과찬이네...”

허리 주머니에서 그 작은 초록색 도자기 병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백운표는 일이 실패했음을 직감하고 더 이상 거리낄 것 없이 차갑게 말했다. “실상을 말하자면, 주 형은 주인공이 아니라네.”

주성한이 말했다. “주인공은 필시 저 ‘경천궁’의 부궁주 추오상이겠군?”

백운표가 말했다. “그렇다네.”

주성한이 말했다. “귀하의 수법은 대단히 사람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군. 한 사람을 죽이고자 하면서 세 사람을 순장하려 하다니 말이네.”

백운표가 웃으며 말했다. “주 형이 말을 너무 무겁게 하는군. 병에 든 것은 독약이 아니니, 복용한 사람은 그저 잠시 혼미해질 뿐이라네.”

주성한이 말했다. “목적이 무엇인가?”

백운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말해주기 어려우니 양해하시게.”

주성한이 말했다. “본인은 여로에 번거로운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기에 추 부궁주를 놀라게 하지 않은 걸세. 본인이 보기에 귀하는 이 작은 일을 크게 키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듯싶네.”

백운표가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남의 부탁을 받으면 그 일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했네. 지금 일이 실패했으니 이미 부탁한 사람에게 면목이 없는데, 어찌 감히 다시 기밀을 가볍게 누설하겠는가? 본인이 비록 흑도에 몸을 담고 있으나 규정은 아직 알고 있다네.”

주성한이 말했다. “귀하는 친분에 의지해 남을 위해 일을 처리하는가?”

백운표가 말했다. “은자에 의지하네.”

주성한이 말했다. “얼마인가?”

백운표가 말했다. “백은 만 냥이라네.”

주성한이 말했다. “과연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는 호화로운 손님이군. 이제 일이 성사되지 못했으니, 그 은자는 필시 돌려주어야겠군?”

백운표가 말했다. “미리 약조하기를,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절반을 돌려주기로 했다네.”

주성한이 말했다. “이렇게 되면 본인과 추 부궁주의 여정이 지체될 걸세.”

백운표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무슨 뜻인가?”

주성한이 차갑게 말했다. “귀하는 강호의 규칙을 중히 여겨 일을 부탁한 자를 가볍게 누설하지 않으려 하고, 본인은 앞날의 안녕을 위해 필시 어느 고수가 어둠 속에서 궤계를 부리는지 명백히 알아야겠네. 귀하가 말하지 않으니 본인 역시 억지로 핍박하기 곤란하므로, 오직 한 가지 미련한 방법뿐이네. 귀하가 은자를 돌려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본인이 귀하를 바짝 따르겠네. 결국에는 누가 주사한 자인지 명백히 알 수 있을지 모르지 않겠는가.”

백운표가 말했다. “주 형이 정말로 그렇게 할 작정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본인은 농담을 즐기지 않네.”

백운표가 마음속으로 생각을 굴리더니 말했다. “사실 나에게 부탁한 자가 누구인지 주 형은 알지 못하는 편이 나을 걸세.”

주성한이 말했다. “귀하는 말뜻을 좀 더 명백히 말해줄 수 있겠는가?”

백운표가 말했다. “자네가 그를 당해낼 수 없다네.”

주성한이 말했다. “본인 역시 그를 건드릴 필요가 없네, 왜냐하면 주인공은 추 부궁주이기 때문이네.”



백운표가 말했다. “추오상 역시 그를 당해낼 수 없다네.”

주성한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림의 흑백 양도의 호걸과 간웅들을 통틀어 논하자면, 귀하는 그저 이류 인물에 불과한데, 인정하는가?”

백운표가 웃으며 말했다. “주 형이 나를 아주 높이 평가해주었군.”

주성한이 말했다. “추오상은 현재 일류 인물이라 불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류 중에서도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데, 귀하는 믿는가?”

백운표가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말했다. “주 형이 설마 사실을 과장하여, 일부러 ‘경천궁’을 띄워주고 널리 알리려는 것은 아니겠지.”

말속에 가시가 돋아 있고, 칭찬 속에 비하가 담겨 있으니 언변의 기세가 약하지 않았다.

주성한이 안색을 굳히며 엄한 어조로 말했다. “귀하조차도 감히 추오상을 건드리려 하는데, 추오상이 감히 나서지도 못하고 그저 잔꾀나 부리는 그 고명한 인물을 당해내지 못하겠는가?”

백운표는 순간 웃음기를 싹 거두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주 형이 오늘 밤 찾아온 의도가 무엇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실제 상황을 명백히 알아내려는 것이네.”

백운표가 말했다. “죄를 물어 문책하려는 것은 아닌가?”

주성한이 말했다. “귀하에게 죄를 묻는단 말인가? 본래는 마땅히 그래야 하네. 하지만 본인은 여정이 지체되는 것을 원치 않기에 생략하겠네.”

백운표가 말했다. “주 형은 내게 일을 부탁한 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반드시 캐내야겠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앞날의 안녕을 구하기 위해서라네.”

백운표가 말했다. “가서 그에게 따지지는 않을 것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그렇네!”

백운표가 말했다. “내막을 추오상에게 말하지는 않을 것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그렇네!”

연달아 두 번이나 “그렇네”라며 대단히 단호하게 대답했다.

백운표(白雲飄)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리되니 내가 강호의 커다란 금기를 한 번 깨뜨리겠네, 주 형 역시 신의를 지켜주어야 하네...”

돌연, 챙강! 하는 소리와 함께 파공성이 무섭게 들렸다.

이 순간 주성한은 이미 어떤 이가 실외에 당도했는지 알아차렸고, 찾아온 이가 바로 백운표가 말하려던 막후의 주사자임을 더욱 명백히 알았기에, 속으로 백운표를 위해 은밀히 식은땀을 흘렸다.

백운표의 하얀 얼굴은 이때 더욱 하얗게 질렸고, 음산하고 처량한 신색 속으로 끝없는 경황함이 다시금 비쳐 나왔다.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치명적인 암기가 있음을 명백히 알면서도, 차마 발걸음을 옮겨 피하지 못했다.

또다시 챙강 하는 소리가 나더니, 뜻밖에도 백운표는 무사했다.

문장의 휘장이 펄럭이며, 요염함이 넘쳐흐르고 미간에는 은밀히 살기가 서린 젊은 처자가 문가에 나타났다.

그녀는 바로 별호가 ‘금령아’인 양계령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탄지간에 사람을 죽이는, 금빛이 번쩍이는 두 개의 금령이 들려 있었다.

양계령이 냉소하며 말했다. “백운표! 방금 왜 피하지 않았느냐?”

백운표가 말했다. “아가씨의 ‘금령칠보탈혼조’ 아래에서 누가 감히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한 말은 결코 아첨이 아니었다.

양계령이 말했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네가 만약 피하려 했다면, 지금쯤 이미 쓰러져 있었을 터다. 네가 이미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렸으니, 본 아가씨도 너를 한 번 봐주어 며칠 더 살려두마...”

고개를 돌려 주성한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주 소협! 정말 산이 돌지 않으면 길이 돌고, 길이 돌면 사람이 돈다더니, 우리가 또 마주쳤군.”

주성한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강호가 너무 좁군요.”

양계령이 돌연 웃음기를 싹 거두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 소협! 당신이 또 본 아가씨의 큰일을 망쳤군.”

주성한(朱星寒)이 일부러 모르는 체하며 물었다. “무슨 큰일입니까?”

양계령이 말했다. “모른 척하지 마라, 본 아가씨가 천방지축으로 추오상을 ‘양가보’에 한 번 오게 하려 했던 것을 당신도 명백히 알지 않느냐.”

주성한이 말했다. “그렇다면 청첩을 보냈어야지, 어찌 미약을 쓰신단 말입니까? 아가씨처럼 영리하신 분이 어찌 이런 미련한 짓을 하셨습니까?”

백운표가 끼어들며 말했다. “주 형, 말조심하게나. 내가 자네를 위해 조금 걱정이 되는군...”

양계령이 차갑게 꾸짖었다. “너는 잔말 마라...”

다시 고개를 돌려 주성한에게 말을 이었다. “커다란 붉은 청첩은 추 씨 성을 가진 자가 거들떠보지도 않을 터이니, 어쩔 수 없이 이 하오문의 방법을 썼는데, 또 당신에게 들키고 말았으니 정말 본 아가씨가 화가 나 죽겠군.”

주성한이 말했다. “아가씨도 화를 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저와 추오상이 동행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미약 병이 제 배 속으로 들어갈 염려가 없었다면, 저 역시 이 한가한 일에 참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양계령(楊桂玲)이 말했다. “본 아가씨가 당신을 탓하지는 않겠다.”

주성한이 고개를 돌려 백운표에게 웃으며 말했다. “귀하가 방금 양 아가씨를 십전염라보다 더 사납게 말씀하시더니, 보십시오! 양 아가씨는 온화하고 사랑스러우며 사리에 밝으시니, 대화하기가 아주 편하지 않습니까!”

백운표가 말했다. “주 형의 운이 좋군.”

양계령이 말했다. “주 소협! 당신과 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추오상이 고향 집으로 돌아간 후에 본 보에 한 번 들르겠다고 내게 약조한 바 있다. 하지만 본 아가씨는 그런 인내심이 없다네.”

주성한이 말했다. “그럼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양계령이 말했다. “당신이 도움을 좀 주어야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아가씨께서 너무 정중하십니다.”

양계령이 말했다. “본 아가씨는 당신들이 이번 여정에 어디로 가는지 묻고 싶지 않으나, 다만 당신들이 서주부를 거쳐 가는지 묻고 싶다.”

주성한이 말했다. “당연히 거쳐 갑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 길로 들어섰겠습니까?”

양계령이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방도를 내어, 추오상을 본 보에 며칠 머물다 가도록 청해주어라.”

주성한이 말했다. “아가씨께서 정말로 이토록 급하십니까?”

양계령이 말했다. “어머니의 재촉이 몹시 심하다네.”

주성한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실상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가씨의 이 청을 돕고 싶지 않습니다.”

양계령이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왜냐?!”

주성한이 말했다. “제가 추오상과 동행하는 것에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추오상이 귀 보에 들어가 새로운 사위가 되어버린다면, 저의 중요한 일은 아예 도모할 수도 없게 됩니다.”

양계령이 말했다. “당신 지금 농담하는 거냐?”

주성한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양계령이 말했다. “본 아가씨가 당신에게 약조하마. 오직 사흘만 머물게 할 터이니, 하루도 더 붙잡지 않겠고 다른 일은 더더욱 논하지 않겠다, 이만하면 되겠느냐?”

주성한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제가 우선은 아가씨께 약조하겠습니다. 다만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렸으니, 아가씨께서도 너무 큰 기대는 품지 마십시오.”

양계령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고개를 돌려 백운표에게 말했다. “네가 만약 이 일을 외부로 가볍게 누설한다면, 본 아가씨의 금령 한 쌍이 네 머리를 부수어버릴 터다.”

백운표가 웃으며 말했다. “감히 그리하지 못합니다.”

양계령이 말했다. “됐다! 본 아가씨가 보 안에서 두 분 귀빈을 공손히 기다리겠다.”



몸을 돌려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백운표가 외쳤다. “아가씨, 잠시만 멈추시게. 그 은자 오천 냥은 마땅히 돌려주어야 하거늘...”

양계령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자네 도박 밑천으로나 쓰게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는 이미 멀어져 가고 없었다.

주성한이 말했다. “귀하의 운이 좋군.”

백운표가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양 아가씨가 뒤에서 받쳐주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감히 두 분을 가해하려 했겠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그 말은 어쩐지 처음에는 거만했다가 나중에는 공순해진 듯하군.”

백운표가 말했다. “주 형의 부채와 추오상의 단검은 진작 위명이 널리 퍼졌다네. 만약 내가 이를 듣지 못했다면 진작 집에 가 마누라나 안고 있었어야지, 무슨 면목으로 강호에서 구르겠는가?”

주성한이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과찬이네! 이만 물러가겠네.”

백운표가 말했다. “부디 향삼을 난처하게 하지는 말아주게.”

주성한이 말했다. “본인은 그저 그의 혼혈을 찔렀을 뿐이니, 돌아가서 바로 풀어주겠네.”

가을 햇살이 높이 내리쬐어 날씨가 맑고 온화했다.

말 네 필이 관도를 따라 천천히 달렸는데, 이 일대의 경치가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고 평원이 탁 트여 시야가 넓었다. 추오상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호탕한 흥취가 일어 뜻밖에 고삐를 늦추고 연도의 풍경을 유람하기 시작했다.

봉음(鳳吟)이 말을 타고 앞장섰는데, 이 처자는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데다 추오상이 그녀를 대단히 다정하게 대해주니 가졌던 조심성이 진작 싹 사라진 터였다. 고삐가 늦춰져 심심해지자 그녀의 말은 어느새 화살 하나가 날아갈 만한 거리만큼 앞서 나갔다. 그 뒤를 강추로가 따랐고, 추오상과 주성한은 나란히 말머리를 맞대고 뒤에서 나아갔다.

추오상이 문득 말했다. “주 형은 어젯밤 점방을 비웠던 모양이더군?”

주성한이 말했다. “그렇네, 본인은 그저 마을을 서성이며 임의로 좀 걸었을 뿐이네.”

추오상이 말했다. “그 송 선생이라는 자의 말이 주 형의 경각심을 높인 것인가?”

주성한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본인의 부채와 추 형의 검은 진작 위명이 널리 퍼졌으니, 만약 아직도 이를 듣지 못한 자가 있다면 남자는 얼른 집에 가 마누라나 안고 여자는 집에 가 자식이나 안을 일이지 강호 도상에서 싸돌아다니지 말아야 할 걸세. 송 선생이 괜한 걱정을 한 셈이네.”

그는 뜻밖에 백운표의 어조를 흉내 내어 이 말을 내뱉었다.

이에 추오상이 하하 대소하며 말했다. “그 말 참 재미있군, 과연 호랑이 아가리 옆에서 털을 뽑으려 들 자는 없을 터이지.”

주성한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만 본인에게 한 가지 남모를 걱정이 있네.”

추오상이 멍해지더니 물었다. “무슨 걱정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만약 여정에 막힘이 없다면 내일 저녁에는 서주부에 묵을 수 있을 걸세.”

추오상이 음 하고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일 신시(申時) 정각 무렵에는 ‘양가보’를 지나쳐야 하네.”

추오상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주 형은 양계령 아가씨가 혹여...?”

주성한이 말을 받았다. “본인의 뜻은 그것이 아니네.”

추오상이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이 아우는 주 형의 걱정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군?”

주성한이 말했다. “보를 그냥 지나치고 들어가지 않는다면, 양 아가씨가 서운해할까 두렵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이 과하게 마음을 쓰는군. 자네와 나에게 중요한 일이 인 채 얹혀있는데, 어찌 그녀의 보에 들어가 객이 될 겨를이 있겠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본인이 과려한 것일 수도 있네. 허나 만약 양 아가씨가 길을 막고 붙잡으며 자네와 나에게 보에 들어와 이야기 나누기를 견지한다면, 추 형은 어찌하겠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부드럽게 거절하겠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양 아가씨의 성격을 무척 잘 알 터인데, 그녀가 그리 응해줄지 두렵네.”

추오상이 말했다. “그럼 무시하면 그만이지.”

주성한이 말했다. “본인의 걱정이 바로 여기에 있네. 이른바 원망을 하나 쌓는 것은 우의를 하나 다지는 것만 못하고, 적을 하나 만드는 것은 친구를 하나 더 두는 것만 못하다 하지 않았는가. 거절할 수 있다면 물론 가장 좋겠으나, 만약 양 아가씨가 완강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면 추 형이 그녀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편이 좋을 걸세.”

그는 완곡하게 중재를 서며 양계령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으려 애썼다.

추오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세...”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연 봉음이 말을 몰아 돌아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 기세로 보아 분명히 무슨 상황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봉음이 말을 몰아 앞까지 돌진하더니 맹렬히 고삐를 잡아당겨 말발굽을 멈추었다. 그 말이 히히힝 하며 길게 울부짖더니 앞다리를 마치 사람처럼 곧게 쳐들었다. 추오상이 손을 뻗어 그 말의 재갈을 움켜쥔 후에야 겨우 말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강추로 역시 말을 몰아 돌아오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봉음... 어찌 된 일이냐?”

봉음(鳳吟)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보이십니까? 저 앞에 무성한 숲이 있습니다.”

추오상이 고개를 들어 한 번 보더니 말했다. “어쨌단 말이냐?”

봉음이 말했다. “숲 속에 대추를 파는 무리가 쉬고 있는데, 마차 여섯 대에 여섯 사람입니다.”

주성한과 강추로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냐?”

봉음이 말했다. “이른 아침은 마침 길을 재촉하기 좋은 때인데, 어찌 게으름을 피우며 쉴 도리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과일을 파는 행상은 밤을 새워서라도 길을 재촉하여 길에서 너무 오래 지체되어 과일이 썩어 밑천을 까먹는 일을 면하려 바삐 움직이는 법인데, 이 무리의 행적은 크게 상식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방금 제가 그들을 슬쩍 살펴보았는데, 하나같이 옷이 깨끗하여 장거리를 달려와 온몸에 땀을 흘린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 어린 계집이 뜻밖에 이토록 노련할 줄은 몰랐다.

그녀의 한마디 말에 다른 세 사람은 한동안 멍해졌다.

참 오래 지나서야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 내가 먼저 말을 몰아 숲 속으로 가 보겠네.”

추오상이 냉소하며 말했다. “주 형이 어찌 이리 대수롭지 않은 일을 크게 만드시는가, 설령 우리를 향해 오는 자들이라 한들 어쩌겠는가? 우리 함께 말을 몰아 가세.”

채찍을 휘두르며 말을 쳐 앞장서 나아갔다.

주성한이 서둘러 말을 몰아 뒤쫓으며 크게 외쳤다. “추 형! 괜한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아무 일도 없다면 그저 채찍질을 더 가해 저 숲을 단숨에 통과하면 되지 않겠는가.” 추오상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세차게 채찍질을 하더니 선두로 숲속에 돌진했다.

주성한 역시 당연히 그 뒤를 바짝 따랐다.

갑자기 말의 긴 울부짖음이 들리더니, 추오상이 탄 말이 뜻밖에 크게 앞으로 거꾸러졌다. 마치 발밑에 무언가 걸린 듯했다.

추오상은 말 위에서 허공으로 솟구쳤으나, 이내 허리에 힘을 주며 평온하게 착지했다. 동시에 그 일 척 팔 촌 길이의 사절검이 이미 칼집을 벗어나 있었고, 나뭇잎 틈새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차가운 검영이 번쩍였다.

주성한은 추오상의 말이 실족하는 것을 보고 서둘러 고삐를 바짝 당겨 숲 밖에서 말을 멈추었다. 이어서 뒤따라 도착한 강추로와 봉음을 향해 소리쳤다. “두 아가씨는 숲 밖을 지키시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날려 안장에서 내리더니, 숲속으로 뛰어들어 추오상과 등을 맞댄 채 서서 사방을 매섭게 둘러보았다.

알고 보니 숲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에 가느다란 넝쿨 한 줄기가 가로질러 있었는데, 추오상이 미처 살피지 못해 말이 넘어졌던 것이다.

다시 숲속의 공터를 보니 마차 여섯 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봉음이 보았던 대추 장수 여섯 명은 종적을 감추고 없었다.

주성한이 나직하게 말했다. “추 형! 발견한 것이 있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보아하니 오직 우리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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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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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상 | 작성시간 26.06.20 감사합니다
  • 작성자출수무심 | 작성시간 26.06.20 감사합니다.~~
  • 작성자왕타 | 작성시간 26.06.21 고맙습니다
  • 작성자사니조아 | 작성시간 26.06.22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상아분월 | 작성시간 05:56 new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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