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十 回. 오중암산(誤中暗算)....암수에 걸려들다.

작성자겨울나그네|작성시간26.06.21|조회수71 목록 댓글 4

              <  第 二十 回. 오중암산(誤中暗算)....암수에 걸려들다. >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의 말이 맞을 걸세.”

추오상이 말했다. “사람이 적지 않네, 아무래도 스무 명 남짓은 되는 듯하군.”

주성한이 말했다. “도대체 어디서 온 자들인지 모르겠군.”

추오상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보아하니 살아가는 게 지겨워진 놈들인 모양이네.”

보통 그의 이 도발에 상대가 벌떡 나설 법도 하건만, 그의 말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이때 강추로와 봉음이 말을 잘 매어두고 숲속으로 들어왔다.

세세히 묻지 않아도 그녀들 역시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렸다.

강추로가 물었다. “봉음! 방금 전에도 이 가느다란 넝쿨이 길을 막고 있었느냐?”

봉음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없었습니다.”

강추로가 말했다. “추 부궁주! 이리 되니 명백하게 우리를 노리고 온 자들이 맞군요.”

추오상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아쉽게도 이 자들이 하나같이 거북이처럼 대가리를 처박고 있으니 원, 그렇지 않았다면 내 이 단검이 사람 피를 아주 배불리 마셨을 터인데.”

이 말은 꽤나 매섭게 욕을 퍼부은 것이었으나, 오직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쓸쓸한 소리만 들릴 뿐, 그 외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강추로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봉음! 우리 둘이서 이 숲을 한 번 수색해보자.”

주성한이 말했다. “안 되네.”

강추로가 말했다. “어째서 안 됩니까?”

주성한이 말했다. “상대는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어하며 어둠 속에서 밝은 곳을 엿보고 있으니,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네.”

강추로(江秋路)가 말했다. “그럼 이대로 계속 대치하고만 있겠습니까?”

주성한이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본인이 가서 대추를 실은 저 마차 여섯 대를 먼저 살펴본 후에 다시 이야기하세.”

추오상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가세! 함께 가서 보세.”

주성한이 연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본인 혼자 가서 보는 편이 좋겠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을 튕겨내듯 날려 그 마차 여섯 대의 곁에 착지했다.

그는 마차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이내 손 가는데로 대추 한 알을 집어 들었다. 먼저 자세히 살펴본 후에야 입안에 털어 넣었는데, 씹는 소리가 아작아작 요란하게 울렸다.

추오상이 웃으며 말했다. “주 형! 맛이 제법 괜찮은 모양이군!”

말소리와 함께 그 역시 걸어갔다.

강추로와 봉음도 당연히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네 사람은 그 마차 여섯 대의 주위를 몇 바퀴나 맴돌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실 만한 시간이 또 흘러갔으나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고요했다!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나뭇가지를 흔들던 가을바람마저 멎어버린 듯 고요했다.

이러한 죽은 듯한 가혹한 침묵이 이어짐에 따라, 주성한과 추오상 두 사람의 신색도 엄숙해졌다.

주성한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추 형의 내력이 본인보다 훨씬 심후하니 묻겠네만, 이 숲속에 과연 사람이 매복해 있는 게 맞는가?”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주성한이 또 말했다. “상대는 어찌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이 아우가 경거망동하지 못하는 이유라네, 상대의 고요함이 두려울 정도군.”

주성한이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두려울 정도라니? 이것이……”

추오상이 말했다. “무림에서 비할 데 없는 정력을 지녀 ‘고요할 때는 처녀 같고 움직일 때는 달아나는 토끼 같다’는 말을 실천할 수 있는 자는 적지 않네. 허나 이토록 많은 사람이 뜻밖에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멈춘 물처럼 고요할 수 있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강추로가 말했다. “이 무리는 도대체 어디서 온 자들입니까?”

추오상이 말했다. “추측할 수가 없군.”

그 뒤로 그들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여덟 줄기의 눈빛이 무성한 숲을 한시도 한눈팔지 않고 주시했다.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드는 그 고요함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또다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실 만한 시간이 흘러갔다.

추오상이 문득 물었다. “내 말이 다치지는 않았느냐?”

강추로(江秋路)가 고개를 돌려 한 번 보더니 말했다. “고개를 숙이고 풀을 뜯고 있으니, 다치지는 않은 듯합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자네와 봉음이 말을 끌고 먼저 숲 밖으로 나가 있게, 나와 주 형이 곧 뒤따라가겠네.”

강추로와 봉음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어가 각자 고삐 두 줄기씩을 쥐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들 둘이 마침 그 마차 여섯 대를 지나칠 때, 갑자기 쉭쉭 하는 파공성이 울리더니 사방팔방에서 한 바탕 화살 비가 쏟아졌는데 마치 비가 내리듯 빽빽했다.

추오상이 한 자루 단검을 사방으로 휘둘러 바람과 비도 통하지 못하게 막았고, 주성한 역시 접부채를 휘둘렀다. 강추로와 봉음 또한 제각각 몸을 굴려 그 마차 여섯 대의 아래로 기어 들어가 몸을 피했다.

한 차례 거센 화살 비가 지나간 후 네 사람은 모두 다치지 않았으나, 그 말 네 필은 몸에 화살이 꽂혀 마치 고슴도치처럼 변해버렸다. 화살을 맞은 말들이 미쳐 날뛰며 격렬하게 질주하니 말발굽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고, 비장한 울부짖음이 귀를 찢는 듯하더니, 오직 한 순간 만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고요한 숲속에는 다시금 죽은 듯한 침묵이 감돌았다.

사방에는 여전히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주성한이 나직하게 말했다. “추 형은 저 화살들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 명백히 보았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나무 꼭대기, 숲 사이, 사방팔방일세.”

주성한이 말했다. “화살이 날아오는 기세를 보아하니, 적어도 백 장 이상의 활이 있겠군.”

마차 밑에 숨어 있던 강추로가 끼어들며 말했다. “이 숲속에 활을 쥔 자가 백 명이나 매복해 있다면, 아무리 적어도 그 흔적이 조금은 드러나야 마땅합니다. 허나 뜻밖에도 사람 그림자조차 하나 보이지 않는군요.”




추오상이 말했다. “한 번 고요하면 전부 고요하고, 한 번 움직이면 일제히 움직이며 터럭만큼도 어지러움이 없으니, 이 백 명의 궁수들은 필시 엄격한 훈련을 거쳤을 걸세.”

주성한이 말했다. “규율 또한 대단히 엄격할 터이네. 본인이 전력을 다해 묵묵히 살폈으나, 거친 숨소리조차 단 한 자락 느끼지 못했네.”

추오상이 말했다. “참으로 두려운 문파로군.”

주성한이 말했다. “당연히 세력이 방대하고 웅후한 문파이겠지. 다만 본인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군. 상대가 이토록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것은 명백히 의도적으로 과시하는 셈인데, 그 목적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추오상은 더 이상 주성한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단검을 살짝 흔들며 말했다. “자네들 둘도 줄곧 마차 밑에 숨어있을 필요는 없으니, 나오시게!”

봉음과 강추로가 마차 밑에서 나오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는데 마차 밑에 숨은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요!”

주성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돌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추 형! 이 무리는 명백히 본인을 노리고 온 자들이네.”

추오상이 말했다. “무슨 뜻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오직 말만 다치게 하고 사람은 상하게 하지 않았으니, 명백히 추 형의 고향 행차를 저지하려는 목적이네.”

추오상이 말했다. “그건 꼭 그렇다고 볼 수 없네. 자네와 나 두 사람은 논외로 치더라도, 저 둘이 만약 빠르게 피하지 않았다면 이미 화살에 다쳤을 걸세.”

주성한이 말했다. “상대는 당연히 우리들의 무게를 가늠했을 터이니, 화살 따위로는 우리를 상하게 할 수 없음을 명백히 알았을 것이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아우는 주 형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군.”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에겐 어떤 고견이 있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상대가 만약 그저 탄 마차나 말을 손상하려 한 것이라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으니 굳이 이토록 대대적으로 일을 벌일 필요가 없었네. 게다가 말을 쏘아 죽인다고 해서 자네와 나의 여정을 저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주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추 형의 말이 극히 옳네.”

추오상이 숲그늘 깊은 곳으로 눈빛을 한 번 싹 비추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주 형 무리는 이 자리에 머물러 계시게. 이 아우가 숲 사이에 먼저 가 매복한 자들을 핍박해 모습을 드러내게 하겠네.”

주성한이 말했다. “본인의 뜻으로는, 그저 계속 길을 재촉하는 편이 좋겠네!”

추오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 쥐새끼 같은 무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 아우가 비록 나를 침범한 자들을 단번에 일망타진하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상대가 어느 문파인지, 목적이 무엇인지는 명백히 알아야겠네.”

주성한이 말했다. “그렇다면 본인이 추 형과 동행하겠네.”

추오상이 차갑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주 형이 동행할 필요는 없네. 이 아우 혼자 움직이는 편이 더 수월할 걸세.”

단검을 가슴 높이로 수평으로 치켜들고 천천히 숲 사이로 걸어 나갔다.

숲이 깊고 무성하며 가지와 잎이 빽빽하니, 궁수 백 명을 숨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활을 당겨 화살을 날리는 와중에도 종적을 터럭만큼도 드러내지 않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추오상은 감히 상대를 가벼이 보지 않았고, 움직이는 와중에 각별히 조심하며 눈을 한시도 떼지 않고 마음을 다른 곳에 두지 않았다.

숲 사이로 대략 쉰 걸음쯤 깊이 들어가 아름드리나무 백여 그루를 지나쳤으나, 단 한 곳의 매복도 발견하지 못했다.

추오상 역시 나무 꼭대기를 우러러 살폈는데, 비록 가지와 잎이 극도로 무성했으나 그에겐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이라면 설령 깃들어 쉬는 새 한 마리라 할지라도 그 예리한 눈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 어찌 괴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백 명의 궁수가 이 한 순간에 하늘로 솟구치거나 땅으로 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추오상은 마음속으로 의아해하면서도 여전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쉭쉭 하는 소리가 연달아 나더니, 빽빽한 화살 한 무리가 부채꼴 모양으로 그의 머리와 얼굴을 향해 쏟아져 들어왔다.

추오상은 기어이 그 궁수의 은신처를 찾아낼 작정이었기에 신형을 터럭만큼도 움직이지 않은 채, 오직 손에 든 단검으로 펼쳐낸 선풍검법으로 그 화살 무리를 모조리 쳐 떨어뜨렸다.

그의 차가운 번개 같은 눈빛은 이미 화살들이 한 무더기 잡풀 속에서 발사되었음을 포착했다.

잡풀 무더기 위의 푸르고 누런 색조가 일정하지 않았으니, 아주 명백하게도 누군가 풀 위에 베어낸 야생초를 더 얹어둔 상태였다.

저 잡풀 무더기 아래에 사람이 매복해 있단 말인가?

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구덩이를 하나 파고 위에 나뭇가지를 얹은 후 다시 잡풀로 덮는다면, 지극히 양호하게 위장되어 알아채기 어려운 땅굴이 될 터였다.

추오상은 마음속으로 냉소하며 천천히 그 잡풀 무더기를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 그가 막 검을 움직여 잡풀 무더기를 들추어내려 할 때, 돌연 다시 동작을 멈추었다. 어떤 물건 하나를 갑작스레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공하여 가늘게 쪼갠 소 힘줄이었다.

소 힘줄의 한쪽 끝은 잡풀 속으로 뻗어 있었고 다른 쪽 끝은 어디로 가닿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추오상은 다른 쪽 끝이 필시 어떤 사람의 손에 쥐여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곳에는 궁수가 매복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잡풀 무더기 속에 기관 장치를 설치해 둔 것이었다. 어둠 속의 인물이 소 힘줄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기관에서 메뚜기 떼 같은 화살이 쏟아져 나오는 구조였다.

흥! 원래 그러했군.

어쩐지 기척을 조금도 알아챌 수 없었던 것이다.

추오상은 짐짓 모르는 체하며 잡풀 무더기 주위를 한 바퀴 돌고는, 이어서 숲그늘 깊은 곳으로 수색해 들어갔다. 그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목적 없이 헤매는 듯 보였으나, 사실 그의 눈길은 시종일관 그 소 힘줄을 떠나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그 소 힘줄이 나무줄기를 따라 올라가, 두 사람이 합장해야 겨우 안을 수 있을 만큼 굵고 커다란 느릅나무 한 그루로 이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 소 힘줄을 잡아당긴 사람은 필시 이 느릅나무의 꼭대기에 잠복해 있을 터였다. 그러나 추오상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지 않았다.

이 한 순간 그는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으니, 마치 호흡조차 가다듬은 듯 굳건한 신형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가 손목을 떨치며 검을 내뻗어 그 느릅나무를 베어갔다.

추오상이 사용하는 ‘사절검’은 겨우 일 척 팔 촌 길이에 불과했고, 그 느릅나무는 적어도 삼 척 두께는 되어 보였다. 도리상 한 번 베어내는 것으로 허리를 동강 내기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추오상의 현재 공력은 이미 검신 밖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경지였다. 쩌억 하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높이가 다섯 장 남짓 되는 커다란 나무가 뜻밖에 두 동강이 나며 쓰러졌다.

동시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부러져 쓰러지는 나무 꼭대기 위에서 몸을 튕겨내듯 날아오르더니, 숲그늘 깊은 곳을 향해 도약했다. 오랫동안 정찰한 끝에야 비로소 적의 종적을 보았으니 추오상이 어찌 놓아주겠는가, 그 역시 몸을 날려 뒤쫓아갔다.

그 사람의 신형이 비록 빨랐으나 추오상은 한층 더 우세했기에, 오직 몇 번의 도약 만에 이미 그 사람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가 몸을 돌려 상대의 안면을 명백히 확인했을 때, 가슴속으로 참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단검을 본래 내찌르려 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천천히 아래로 떨어뜨린 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소월매의 외조모인 ‘매화장’ 유예향이었다.

유예향(兪蘂香) 역시 멍하니 서 있었는데, 추오상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을 뒤쫓아 앞질렀음에 몹시 경악한 듯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유예향이 사글사글한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어 말했다. “추 부궁주는 어찌하여 검을 든 채 움직이지 않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오직 그대의 외손녀인 소 아가씨의 체면을 보았기 때문이네. 그렇지 않았다면 추모가 이토록 평온히 서 있지는 못했을 걸세.”

유예향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것참 믿기 어려운 말이로군.”

추오상이 말했다. “가르침을 청하겠네. 숲속에 사방으로 매복을 설치하고 어둠 속에서 냉전을 쏘아댄 의도가 무엇인가?”

유예향이 말했다. “네가 지금 누구에게 묻는 것이냐?”

추오상이 말했다. “당연히 그대에게 묻는 것이네.”

유예향이 말했다. “노신이 대답하기 어려우니 양해하시게. 노신은 숲속에 사방으로 매복을 설치한 적도 없고, 더더욱 냉전을 쏘아댄 적도 없기 때문이네.”

추오상이 말했다. “그대는 명성을 떨친 지 오래된 인물이거늘, 어찌 감히 행하고도 감당하지 않으려 하는가.”

유예향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해야, 미쳐 날뛰지 말아라. 네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느냐?”

추오상이 말했다. “추모는 그대가 저 느릅나무 위에서 몸을 튕겨내듯 날아오르는 것을 친히 보았네. 틀렸는가?”

유예향이 말했다. “설마 노신이 저 느릅나무 위에서 날아올랐다고 해서 반드시 냉전을 쏜 자란 말이냐?”

추오상이 말했다. “다른 숨겨진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네.”

유예향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래도 네 아해가 어찌어찌 짚어내기는 했구나. 과연 다른 사정이 있기는 하다네.”

추오상이 말했다.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네.”

유예향이 말했다. “저 느릅나무의 무성한 가지와 잎 사이에 과연 누군가 잠복해 있었으나, 노신은 아니었네.”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면 누구란 말인가?”

유예향이 말했다. “네가 몸을 돌려 다시 가서 보아도 무방하네.”

추오상이 말했다. “이미 진작에 도망쳐 자취를 감추었을까 두렵네.”

유예향이 말했다. “도망치지 못하네. 노신이 이미 한 손바닥으로 그의 심맥을 끊어놓았네.”

추오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래 선배께서 나무 꼭대기에 사람이 매복해 있음을 발견하시고, 추모를 대신해 손을 써서 그 어둠 속의 말뚝을 뽑아내 주신 것이었군요.”

유예향이 차갑게 한 번 웃으며 말했다. “당당한 ‘경천궁’ 부궁주가 뜻밖에 노신에게 선배라 칭하니, 이 어찌 노신의 수명을 감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추오상이 포권을 하며 허리를 굽혀 말했다. “장유유서가 있으니, 마땅히 존경해야 합니다.”

유예향이 말했다. “처음에는 거만했다가 나중에는 공순해지니, 노신은 이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네.”

추오상이 말했다. “모르고 한 일이니 탓할 수 없고, 선배의 도량이 넓으시거늘 어찌 굳이 마음에 두고 사사건건 따지려 하십니까?”

유예향의 얼굴에 어린 신색은 추오상의 연이은 공손한 어조에 이미 한층 완화되어 있었다. 차가운 눈빛을 치켜뜨며 추오상을 슬쩍 훑어보고는 말했다. “듣자 하니 네가 월매와 중양절의 약조를 맺었다더군?”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유예향이 말했다. “노신 역시 오직 이 점을 보았기에 방금 너를 조금 도와준 것이네. 숲속에 매복해 있던 여섯 사람은 선후로 모두 매화장 아래에서 하나하나 목숨을 잃었네.”

추오상이 조금 멍해지더니 말했다. “선배께서는 어찌하여 산 목숨 하나를 남겨두지 않으셨습니까?”

유예향이 말했다. 탐욕이 본성이 되어 쌓인 업이 무거우니, 한 치를 얻으면 한 자를 더 나아가려 드는 법이네. 만약 노신이 내 보배 외손녀가 구구 중양절 날에 눈이 빠지도록 기다릴까 염려하지 않았다면, 노신이 어찌 자네의 이런 번거로운 일에 참견하려 들었겠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추모가 감사드립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상대가 어느 패거리인지,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군요.”

유예향이 말했다. “네 스스로 가서 알아내 보아라!”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추오상이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 잠시만 걸음을 멈추십시오.”

어조가 다소 주춤하더니, 앞으로 다가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선배께 여쭙건대, 소 아가씨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유예향이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칠 척 단단한 체구를 가진 사내가 처자의 행방을 캐물으니, 무슨 속셈인가?”

추오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배께서는 꼭 뇌공의 안사람 같으셔서, 말씀하실 때마다 늘 천둥 번개 같은 기세를 띠시니 추모가 더 이상 할 말이 없군요.”

유예향이 말했다. “네 아해가 제 분수는 아는구나……”

몸을 돌려 가려 하다가 문득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 강호의 돌팔이 의원 아들은 자네와 동행하고 있는가?”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추모 역시 이 사실을 소 아가씨에게 고한 바 있습니다.”

유예향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기억하게! 저 주 씨 성을 가진 자식에게 노신이 다녀갔다고 말하지 말아라.”

추오상이 말했다. “이 중에 혹 무슨 내막이라도 있습니까?”

유예향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인생은 모르는 게 약이고, 모르는 것이야말로 크나큰 복이거늘, 네 아해는 굳이 끝까지 캐물어 솥을 깨부수고 바닥까지 보려 드는구나……”

어조를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구구 중양절 날을 기억하여 내 보배 외손녀가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게 하거나 애간장을 태우게 만들지 말아라.” 말을 마치고는 숲을 뚫고 사라졌다.

추오상은 멍하니 서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그 느릅나무가 쓰러진 곳으로 되돌아갔다. 과연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시체 한 구를 발견했다.

그것은 한 사내의 시체였는데, 죽은 자는 나이가 쉰 살 남짓 되어 보였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어 참으로 눈을 감지 못하고 죽은 원통함이 깃들어 있었다.

추오상이 재삼 뜯어보았으나, 이 죽은 자를 결코 본 적이 없음을 확신했다.

그렇다면 이 무리는 또 어느 문파에 속한 자들이란 말인가?

그들이 이곳에 매복하여 기관 노궁을 설치하고 암암리에 냉전을 쏜 목적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유예향은 숲속에 매복한 여섯 사람을 자신이 매화장으로 하나하나 심맥을 끊어놓았다고 말했으나, 추오상이 지금 본 것은 오직 시체 한 구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유예향이 허튼 거짓말을 하지 않았음을 깊이 믿었다.

추오상 역시 굳이 다른 다섯 구의 시체를 찾아 나설 마음이 들지 않았으니, 어차피 이미 죽어 대조할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의 가슴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솟구쳤다. 유예향이 나타났으니 소월매 역시 필시 부근에 있을 터였고, 보아하니 그녀는 구구 중양절의 약조를 대단히 무겁게 여기는 듯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추오상의 신색은 이내 다시 어두워졌다. 소월매가 중양절의 그 약속을 중히 여기거늘, 자신은 정작 그녀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단 말인가?

마음속 생각이 풍차처럼 수천수만 번을 맴돌았으나, 발걸음은 이미 자신도 모르게 그 마차 여섯 대가 있는 곳으로 가닿아 있었다.

주성한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추 형이 고개를 숙인 채 급히 걸어오니, 혹 무슨 심사라도 있는가?”

추오상이 세차게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들고서야 이미 세 사람의 앞에 도달했음을 깨달았다. 조금 멍해지더니 말했다. “이 아우는 상대가 도대체 어디서 온 자들인지 생각하던 참이었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적의 종적을 발견했는가?”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빛을 슬쩍 봉음에게 주며 말했다. “바로 조금 전 봉음이 보았던 그 여섯 사람일세.”

주성한이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경악하여 말했다. “겨우 여섯 사람뿐이란 말인가?! 방금 그 빽빽한 화살 비로 보아, 숲속에 적어도 백 명의 궁수가 매복해 있었을 터인데.”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은 모르는 바가 있네. 상대가 풀숲 사이에 기관 노궁을 설치해 두고 선 하나를 잡아당겨 백 발의 화살이 일제히 발사되도록 만들었으니, 우리들이 속은 셈이네.”

주성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깨달은 바가 있는 듯하더니, 돌연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그 여섯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추오상(秋傲霜)이 말했다. “이미 아우가 섬멸했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은 어찌하여 활구를 하나도 남기지 않아 그들의 내력을 물어보지 않았나?”

추오상이 말했다. “그자들은 극도로 완강하여 산 채로 잡기가 어디 그리 쉽겠나?”

그는 꽤 신의를 지켜 유예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소홀한 점이 있었다. 만약 주성한이 이 여섯 사람의 시체를 조사하러 간다면 허점이 드러날 터였다. 죽은 이들은 장력(掌力)에 의해 죽은 것이지 단검에 찔린 것이 아니라는 점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성한은 죽은 이들의 유해를 조사할 생각이 없었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추 형, 우리가 더 이상 이곳에서 지체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 길을 서두르는 것이 중요하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아우가 알기로는 앞에 마을이 하나 있으니, 틀림없이 좋은 말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주성한(朱星寒)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십 리를 더 가면 대왕집(大王集)이니, 대용으로 탈 말을 몇 필 사는 것은 문제없을 것이다.”

추오상이 강추로와 봉음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너희 두 사람이 먼저 가라. 나와 주 형이 뒤를 맡겠다. 앞길에 여전히 매복이 있을까 염려된다.”

그러나 강추로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 느릿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이 소동으로 이미 한 시진 가까이 소모했으니, 한 시각 더 지체된다 한들 어떠하겠나. 우리 잠시 시간을 내어 이 대추 수레가 무슨 묘용이 있는지 합의해 보는 게 어떻겠나?”

추오상과 주성한 두 사람의 눈빛이 동시에 빛났다. 서로를 한 번 바라본 후, 다시 네 줄기 시선을 그 여섯 대의 큰 수레에 고정했다. 마치 그 수레 안에 무슨 매혹적인 비밀이라도 있는 듯했다.

강추로가 다시 말했다. “이 여섯 수레의 대추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녀의 어조는 마치 혼잣말 같았으나, 그녀의 시선은 봉음을 향하고 있었다.

추오상과 주성한의 네 줄기 시선이 여섯 대의 수레에 고정되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으니, 자연히 봉음만이 말을 받았다. 그녀가 되물었다. “네 생각은 어떤가?”

강추로가 말했다. “만약 이 여섯 수레의 대추가 청천진(?泉?)에서 온 것이라면, 그들은 수레를 밀고 우리는 말을 탔으니 진작에 그들의 앞을 질렀어야 했다.”

봉음(鳳吟)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왕집에서 온 것이겠구나?!”

강추로가 말했다. “대왕집은 대추가 나지 않는다.”

봉음이 말했다. “그렇다면, 서주부(徐州府)에서 운반해 온 것이겠구나?!”

강추로가 말했다. “네가 서주부 성 안팎에서 대추 한 알이라도 보지 못한다는 것에 내기를 걸겠다.”

봉음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더 북쪽으로 가면 제루(??) 지방이다.”

강추로가 말했다. “제루 지방은 과연 대추가 많이 나지만, 이곳까지 운반해 오려면 먼 길을 걸어 햇빛을 받고 바람을 맞아야 하니, 대추가 썩지 않더라도 진작에 흠집이 생겼을 것이다. 어찌 이 여섯 수레의 대추처럼 하나같이 푸르고 싱싱하여 즙이 뚝뚝 떨어질 듯하겠나.”

주성한이 몇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말을 받았다. “이 사람의 고향인 강주(江州)도 대추가 나는데, 이 대추와 같다. 이로 보아 이 여섯 수레의 대추는 대개 남쪽에서 자란 듯하다.”

추오상이 말했다. “설마 남쪽과 북쪽에서 나오는 대추에 무슨 차이라도 있나?”

주성한이 말했다. “북쪽 지방의 대추는 살이 많고 씨가 많으며, 질감이 부드럽고 껍질이 얇아 색택이 확연히 다르다. 이 사람은 이 여섯 수레의 대추가 청천진의 대추나무 정원에서 자란 것이라 확언할 수 있다.”

추오상이 웃으며 말했다. “주 형은 훗날 은거하게 되면 적어도 대추를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다. 아우가 아는 것이 없고 재주가 없는 것에 비하면 훨씬 훌륭하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은 농담하지 말라. 이 사람은 가친에게서 본초강목을 조금 배웠는데, 대추도 약재 중 한 가지 성분이다.”

어!조는 극히 담담했으나, 눈 속의 광망은 갑자기 날카롭게 변했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접선(접부채)을 펼치더니 칼처럼 날을 세워 대추가 가득 찬 첫 번째 큰 수레를 내리쳤다.

쾅 하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큰 수레가 사분오열되었고, 수레 가득했던 대추들이 탄환처럼 하늘로 치솟았다가 투두둑 떨어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주성한이 접선을 접으며 말했다. “강 낭자는 이 여섯 수레의 대추 속에 무슨 매복이라도 있다고 생각했나?”

강추로(江秋露)가 아직 답하기도 전에, 추오상이 이미 단검을 휘둘러 두 번째 큰 수레를 내리치는 것이 보였다.

수레가 부서지고 대추가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여전히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추오상은 손을 멈추지 않고, 쉭 쉭 쉭 연달아 세 번 검을 휘둘러 다시 세 대의 큰 수레를 부쉈다.

이제 마지막 큰 수레 한 대만 남았다.

추오상이 잠시 멈추더니, 다시 한 검을 그 수레를 향해 내리쳤다.

그의 검이 아직 수레 몸체에 닿기도 전에, 그 수레 가득했던 대추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어떤 사람의 그림자도 그 대추 무더기 속에서 튀어 올랐다.

추오상 등 네 사람은 그 어린 계집종인 봉음까지 포함하여 모두 적을 상대한 경험이 풍부했기에, 그 사람이 땅에 떨어지기를 기다려 이미 분분히 움직여 각자 한 방향을 차지하고 상대방을 포위했다.

그 사람은 푸른 도포를 입었고 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으며, 손에는 무기도 없었다. 그러나 얼굴에는 검은 복면을 쓰고 있어 오직 형형하게 빛나는 두 줄기 눈빛만 드러나 있었다. 그 두 줄기 눈빛을 통해, 비록 겹겹이 포위당했으나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추오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포교!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 추 아무개는 머리를 숨기고 꼬리를 숨기는 쥐새끼 같은 무리를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여긴다.”

복면인은 말도 하지 않았고, 신형 역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추오상이 돌연 차가운 콧소리를 내더니, 단검을 세차게 뻗어 그 복면인의 얼굴에 있는 검은 복면을 걷어 올렸다.

그 복면인은 여전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추오상의 손에 든 단검이 상대방의 검은 복면을 걷어 올리자, 잿빛의 죽은 듯한 얼굴이 나타났다.

갑자기……

슈슉! 하는 두 번의 소리와 함께, 몇 점의 은성(은빛 탄환)이 추오상의 정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추오상이 신형을 급히 물러서며 단검을 연달아 휘두르자, 십여 개의 은색 탄환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주성한이 전음술로 추오상에게 물었다. “추 형! 방금 면포가 날아올랐을 때, 상대방의 용모를 똑똑히 보았나?”

추오상 역시 전음술로 답했다. “얼굴이 잿빛 같아 산 사람 같지 않다.”

주성한이 다시 물었다. “아는 사람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평생 본 적이 없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 이 사람이 괴이한 일을 한 가지 발견했다.”

추오상이 말했다. “무슨 괴이한 일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그는 두 손을 아래로 내린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 몇 개의 은색 탄환이 어떻게 날아온 것일까?”

그들이 암중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강추로가 이미 상대의 등 뒤에서 몸을 날려 접근하여 검으로 왼팔을 깎아 쳤다.

그 사람은 뜻밖에도 피하지도 않고 비키지도 않으니, 마치 전혀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강추로의 손에 든 장검이 그 사람의 왼쪽 어깨를 파고들었고 장검은 그 안에 그대로 박혔다.

그 사람은 여전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봉음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나무 인형이다!”

나무 인형이라니?! 나무 인형이 한 번에 수 장을 뛰어오르고 땅에 내릴 때 소리조차 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농락당했다는 기분이 문득 추오상의 마음속에서 치밀어 올랐고, 단검을 세차게 뻗어 카창 하는 소리와 함께 기관이 장치된 나무 인형을 두 동강으로 잘라 버렸다.

돌연, 무수한 우모강침(소털처럼 가느다란 강철 바늘)이 그 나무 인형의 내부에서 뿜어져 나왔다.

네 사람은 매우 가까이 서 있었고, 그 무수한 우모강침은 밀집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세 또한 매우 강력했다. 추오상이 그 직격을 받게 되었는데, 가슴이 번쩍 마비되는 느낌이 들더니 한 개의 우모강침이 그의 단검이 휘둘러 만든 검막의 틈새를 뚫고 들어와 앞가슴의 유천혈(乳泉穴)에 박혔다.

강추로와 봉음 두 사람은 틀림없이 더 많은 우모강침에 맞았을 터, 얼굴색이 참백해져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했다.

주성한은 오히려 극히 냉정하여, 자신을 돌볼 뿐만 아니라 타인을 돌볼 생각까지 해냈다. 신형을 날려 앞으로 나아가 접선을 연달아 내지르며 강추로와 봉음 두 사람의 전신 여러 곳의 대혈을 모조리 점혈하여 봉쇄했다.

두 사람은 즉시 혼절하여 쓰러졌다.

추오상은 이때 이미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급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 형의 상황은 어떠한가?”

주성한은 암중으로 공력을 운행하며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이 사람은 모두 세 개의 우모강침에 맞았는데, 잠시 우측 팔의 혈맥 내에 머물러 있다. 강침에 극독이 묻지 않았다면 아직 큰 문제는 없다.”

추오상이 말했다. “아우도 유천혈 부위에 한 개를 맞았다. 이것은 모두 아우가 일시적으로 경솔했던 탓이니, 이로 인해 큰 화를 불러왔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은 이처럼 후회하는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시선을 돌려 땅에 혼절해 누워 있는 강추로와 봉음을 슬쩍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들 두 사람은 틀림없이 적지 않은 우모강침에 맞았을 것이다. 이 사람이 비록 그들의 전신 각 처의 주요 혈도를 점혈하여 봉쇄했기에 강침이 혈맥을 따라 사방으로 흘러 다니지 않아 잠시 일시적으로는 보존할 수 있겠으나, 이것 역시 장구한 책략은 아니다!”

추오상이 머리를 들어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다가 발을 구르며 말했다. “주 형! 아우는 지금 마음이 어지럽다.”

주성한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특히 강 낭자는 추 형의 무공이 보존되느냐 폐해지느냐와 관계가 있으니, 하루빨리 좋은 방책을 생각해야 한다.”

추오상의 신색이 갑자기 차분해지더니, 주성한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세찬 바람이 불어야 강한 풀을 안다고 했다! 주 형이 아우에게 베푸는 염려가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드러나니, 아우는 뼛속 깊이 새겨 잊지 않겠다.”

주성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추 형은 이때 이런 경지에 어찌하여 아직도 그런 말을 하나? 이 사람 스스로 생각하기를, 가친의 병을 구하기 위해 그 먹 조각을 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마음 외에는, 추 형에 대해 참으로 다른 마음은 없다……”

어조를 한 번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귀하와 나 역시 우모강침에 맞았으나 다행히 큰 문제는 없는 듯하니, 서둘러 방법을 생각해 이 두 낭자의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추오상이 말했다. “우선 체내의 우모강침을 꺼낼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만년자석이 있어야 한다. 눈앞에 두고 지금 그것을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주성한이 갑자기 나직하게 부르짖었다. “추 형! 보라!”

그의 손에 든 접선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바라보던 추오상은 가슴이 크게 진동하는 것을 금치 못했다. 알고 보니 강추로와 봉음 두 사람의 얼굴색이 이미 푸르게 변해 가고 있었다. 그 우모강침에는 필시 극독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추오상 역시 경악하여 소리쳤다. “주 형! 자네 손이!”

주성한이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과연 그의 오른손 역시 거무스름한 자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손에 든 접선이 갑자기 느슨해져 떨어졌으나, 그 접선이 땅에 닿기 전에 그의 왼손이 뻗어 나와 다시 낚아챘다.

주성한은 그리 크게 황망해하지 않고 심신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추 형은 어서 상처 부위를 검사하여 중독된 현상이 있는지 보라.”

추오상이 단검을 위로 향해 안팎의 옷을 찢어 한 줄기 틈을 만들고 우측 젖가슴 아래를 검사해 보니, 오직 자그마한 붉은 점 하나만 있을 뿐 피부의 색은 변하지 않았다.

추오상이 약간 멍해졌다가 이내 물었다. “주 형의 우측 팔 느낌은 어떠한가?”

주성한이 말했다. “약간 마비되는 느낌이 들고, 부드러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추오상이 말했다. “아우의 가슴 깊은 곳은 오히려 아무런 느낌이 없다. 어쩌면 아우의 이 우모강침에는 독이 묻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주성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상황은 결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추오상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주성한이 말을 받았다. “말하자면 이 사람이 추 형에게 축하를 건네야 마땅하겠다. 추 형의 현재 공력은 아마도 백독이 침범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 듯하다.”

추오상의 심정은 기쁨과 우려가 반반 섞여 중얼거렸다. “정말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이것이 유일한 설명이다……”

어조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의 현재 독이 발작하는 상황이 아직 심각하지 않은 틈을 타서, 우리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두 낭자를 대왕집으로 업고 가자! 그곳에 도착해서 다시 방법을 생각하자.”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듯 말했다. “결국 그럴 수밖에 없겠다.”

돌연, 어떤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분께서는 이 사람의 한마디 말을 들어보시겠나?”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백운표가 그들로부터 약 오 장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뒤에는 가벼운 복장을 하고 병장기를 차고 있는 네 명의 대한들이 더 있었다. 백운표는 뒷짐을 진 채 고개를 들고 바라보고 있었으며, 미간에는 득의양양한 기색이 은연중 드러나 있었다.

주성한은 가슴이 약간 놀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군!”

추오상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주 형! 이 사람은 누구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은 ‘옥면살성’ 백운표라 한다. 매번 웃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사람을 공격하며 심계를 부리는 데 정통하니, 험악한 소인배다. 추 형은 필히 조심해야 한다.”

추오상이 차갑게 콧소리를 냈다. “아우 역시 이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 단검으로 백운표를 가리키며 차갑게 꾸짖었다. “백 성을 가진 자여! 짐작건대 필시 귀하의 걸작이겠구나.”

백운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추 부궁주는 미친 듯 오만하다고 하더니, 오늘 보니 과연 그러하다. 이 사람은 계책을 헌상하러 온 것이니, 부디 좋은 사람을 악한 사람으로 오해하지 말라. 그러면 좋지 않다.”

주성한은 마음이 암중으로 동했다. 추오상이 이 유일하게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릴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급히 발걸음을 앞으로 옮겨 암중으로 추오상의 옷소매를 한 번 잡아당기고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귀하는 무슨 계책을 헌상하려 하는가?”

백운표가 말했다. “자연히 사람을 구하는 계책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귀하는 두 낭자의 상처 상황을 알고 있나?”



백운표가 말했다. “자연히 알고 있다. 침은 혈맥에 머물고 독은 폐부를 넘나드니, 자시(子時)를 지나면 오시(午時)를 보지 못하고 오시를 지나면 자시를 보지 못한다. 만약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부상자들은 여섯 시진 안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두 분의 상황도 같으나, 다만 두 분은 침을 적게 맞고 공력이 높아 잠시 일시적으로 견디고 있을 뿐이다.”

주성한은 신색을 바꾸지 않고 완만하게 말했다. “귀하의 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으니, 필시 이 우모강침이 누구의 독이 묻은 암기인지도 알고 있겠다.”

백운표가 말했다. “이 백 아무개는 자연히 알고 있으나,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주성한이 말했다. “무슨 까닭인가?”

백운표가 말했다. “지금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원수를 갚는 것은 그다음이다. 말해 보아야 괜히 사람의 마음만 어지럽히지 않겠나?”

주성한이 말했다. “귀하의 말이 매우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사람을 구하는 도리에 대해 청하고자 한다.”

백운표가 말했다. “다만 두 분이 믿지 않을까 염려된다.”

주성한이 말했다. “이른바 급한 병에는 아무 의사에게나 매달린다고 하니, 믿지 않으려 해도 믿을 수밖에 없다.”

백운표가 말했다. “우선 혈맥 속의 우모강침을 흡입해 꺼내야 한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것은 만년자석이 있어야 한다.”

백운표가 말했다. “의성의 후예라 그런지 말하는 것이 과연 전문가답다. 하지만 그 만년자석을 어디 가서 찾겠나?”

주성한이 말했다. “바로 그것을 여쭙고자 한다.”

백운표가 말했다. “눈앞에 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온갖 병을 잘 고치는 신의도 아니고 우모강침을 사용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침을 흡입해 꺼내고 독을 풀 수 있다. 두 분이 그를 찾아갈 용의가 있는지 모르겠다.”

추오상은 진작에 성미를 참지 못하고 차갑게 꾸짖었다. “그 사람은 필시 당신이겠구나.”

백운표(白雲飄)가 말했다. “추 부궁주가 이 백 아무개를 너무 높이 평가했다. 비루한 이 사람에게는 아직 그런 능력이 없다.”

주성한이 말했다. “귀하가 계책을 헌상하러 온 바에야 굳이 뜸을 들일 필요 없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라!”

백운표가 말했다. “그 사람은 대왕집 마을에 살고 있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 사람의 성명이라도 알려 주길 청한다.”

백운표가 말했다. “그는 마을의 심가점(沈家店) 합(合) 자 상방(上房)에 묵고 있으니, 두 분이 가설 그를 만나 보면 자연히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 백 아무개가 먼저 여기서 힌트를 주자면, 인명에 관한 일이라 그 사람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할 수도 있다. 두 분이 속이 쓰리더라도 그저 한 번 참아야 할 것이다.”

말을 마치고 포권을 해 보인 뒤, 뒤에 있던 네 명의 대한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백운표 일행이 멀리 가고 나서야 주성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추 형! 이것은 분명 누군가 우리를 암습한 것이다.”

추오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설령 그자가 머리가 세 개고 팔이 여섯 개라 한들, 내가 한 검에 두 동강을 내버리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 참아야 할 때는 참아야 한다. 눈앞에 낭자의 상처가 매우 무겁고 그녀의 생사는 추 형의 무공이 보존되느냐 폐해지느냐와 관계가 있으니, 바로 참아야 할 때다. 추 형은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추오상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주 형이 아우에게 만반으로 참으라 하니, 그렇다면 오직 한 가지 방법뿐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은 말씀하라.”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이 가서 그 사람을 만나고, 아우에게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하라. 또한 그 사람이 어떤 조건을 내걸었는지도 아우에게 말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아우는 절대로 이 한 자락 분통을 참아내지 못할 것이다.”

주성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 사람이 어찌 추 형을 대신해 결정을 내리겠나? 이것은 그리 타당하지 않은 듯하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의 말이 맞다. 강 낭자의 생사는 아우의 무공 보존과 관계가 있고, 심지어 아우의 생명까지도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대가를 아끼지 말고 강 낭자의 생명을 구해야 하니, 주 형은 그저 아우를 대신해 결정을 내려 주라.”

주성한이 중얼거렸다. “이 사람의 사사로운 짐작으로는, 상대가 요구할 조건이 결코 금은보화 같은 종류는 아닐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든 주 형이 허락한다면, 아우는 반드시 준수하여 이행하겠다.”

주성한이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리 되면 이 사람의 책임이 너무 무거워진다.”

추오상이 말했다. “아우가 목숨과 직결된 대사를 기꺼이 주 형에게 기탁하는데, 주 형은 설마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 두려운가?”

주성한(朱星寒)이 말했다. “추 형! 우리 먼저 두 낭자를 업고 신속히 대왕집으로 달려가서 다시 이야기하자!”

추오상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그가 강추로를 업고 주성한이 봉음을 업은 채 앞으로 직진해 달렸다. 각자 혼미해진 여인을 한 명씩 업고 있으니 필시 남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으나, 다행히 그들이 보법과 경공을 아낌없이 펼쳤기에 길 가던 사람들이 똑똑히 보기도 전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대왕집이라는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서주부로 통하는 관도인 까닭에 제법 번화했다.

심가점은 마을에서 비교적 깨끗한 객잔이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기름종이 풍등에 큰 글씨로 ‘심(沈)’ 자가 적힌 것이 보였다.

객잔 안으로 들어가 상방 두 칸을 잡고 강추로와 봉음을 침상에 눕힌 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은 옆방에 가서 잠시 쉬라. 이 사람이 합 자 상방으로 가서 그 침을 흡입해 꺼내고 독을 풀 수 있다는 고인을 만나 보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은 필히 기억하여 그 사람이 아우를 보지 못하게 하라. 아우 역시 쉽게 방 문밖으로 나가지 않겠다.”

주성한은 무거운 신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때 강추로와 봉음 두 사람의 상처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처 역시 염려하고 있었다. 우측 팔이 마비되는 상황이 이미 매우 심각함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합 자 상방에 도착하여 그는 가볍게 방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

주성한은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 백운표가 말한 그 고인이 뜻밖에도 여인이란 말인가? 그는 심신을 가다듬고 문을 밀고 들어갔다.

방 안에 단정히 앉아 있는 그 여인을 보았을 때, 그는 단지 멍해진 것이 아니라 크게 경악했다.

알고 보니 그 여인은 다름 아닌 ‘은호(銀狐)’였다.

그녀의 등 뒤에는 용모가 요염하고 자태가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 서서, 들어오는 주성한을 요염하게 웃으며 흘겨보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녀는 은호의 딸이자 역용술에 능한 해옥환(解玉歡)이었다.

용모가 요염한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주 소협! 아직 이 몸을 알아볼 수 있겠나?”

용모는 낯설었으나 목소리는 익숙했다. 그녀는 일찍이 황해어의 모습으로 금릉에 나타난 적이 있었고, 주성한은 그녀와 접한 적이 있었다. 상대가 입을 열자마자 그는 곧장 알아차렸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연히 낭자를 알아보겠으나, 이 사람은 낭자를 어떻게 호칭해야 할지 모르겠다.”

은호가 말했다. “그냥 해옥환이라 부르라.”

주성한이 신색을 바르게 하고 말했다. “이 사람은 ‘옥면살성’ 백운표의 추천을 받아 찾아왔다. 두 분 역시 이 사람의 내의를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은호(銀狐)가 웃으며 말했다. “주 소협이 결코 헛걸음하지는 않을 것이다. 옥환의 입은 만년자석보다 나으니, 침을 흡입해 꺼내고 독을 푸는 데는 그리 힘이 들지 않는다. 소협은 우측 팔을 뻗어 그녀에게 시도해 보라.”

주성한은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 알고 보니 해옥환은 입을 상처 부위에 대고 빨아들이는 방법으로 상처를 치료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독수는 얼마간 빨아낼 수 있을지 모르나, 혈맥 속에 잠긴 우모강침까지 빨아낼 수 있단 말인가?

해옥환이 주성한의 앞으로 다가와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협은 소매를 걷어붙이라! 이 몸이 장기인 절기 한 번을 소협에게 보여 주겠다.”

주성한이 냉연히 말했다. “이 사람은 백운표에게 듣기를, ‘이 사람을 위해 침을 흡입해 꺼내고 독을 풀 수 있는 고인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이 사람이 먼저 묻고자 하니, 낭자의 진료비는 얼마인가?”

해옥환(解玉歡)이 말했다. “당신에게는 한 푼도 받지 않겠다.”



주성한이 아연해하며 말했다. “무슨 까닭인가?”

해옥환이 말했다. “소협도 알아야 하니, 우리 모녀가 찾고자 하는 대상은 저 추오상다.

이 몸이 먼저 당신을 위해 침을 흡입해 꺼내고 독을 풀어 준 것은,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치료할 능력이 확실히 있음을 당신에게 증명해 보이려 한 것뿐이다.”

주성한이 중얼거렸다. “정말 그러한가?”

은호가 말했다. “만약 주 소협의 마음속에 의구심이 남는다면, 왼손에 접선을 쥐고 있어도 좋다. 옥환이 당신의 우측 팔을 한 번 물었을 때, 소협은 부채살로 그녀의 머리를 부수어 버려도 상관없다.”

주성한은 더는 대답하지 않고, 즉시 우측 소매를 걷어붙였다.

해옥환은 이미 마비된 그의 우측 팔을 받쳐 들고 먼저 한 번 살펴보더니, 이내 붉은 입술을 팔에 밀착하고 쫩 쫩 소리를 내며 연달아 두 번 빨아들였다.

그녀가 손으로 치아 사이를 슬쩍 만지자, 뜻밖에도 은빛으로 빛나는 가느다란 침 네 개가 만져져 나왔는데 과연 소털처럼 가느다란 바늘이었다.

해옥환은 다시 주성한의 우측 팔을 몇 번 더 빨아들여 검은 피를 한 모금 뱉어내고는 말했다. “소협은 한번 공력을 운행해 보라. 우측 팔의 독성은 이미 완전히 제거되었다.”

주성한이 고개를 숙여 살펴보니, 과연 팔의 거무스름한 자색이 이미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암중으로 공력을 운행해 보아도 뜻밖에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사사로운 마음속으로도 해옥환의 상처 치료 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호가 웃으며 물었다. “소협의 상처는 회복되었나?”

주성한이 말했다. “영애의 기술이 과연 신비에 가까우니 이 사람은 감격을 금치 못하겠다. 이에 이 사람이 한마디 충언을 올리고자 하니, 진료비를 요구하는 것은 과한 일이 아니나, 너무 심하게 협박하여 추오상을 격노하게 하지는 않는 것이 좋겠다. 두 분은 혹시 모를지 모르겠으나, 추오상은 이미 백독이 침범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가 비록 우모강침에 맞았으나 조금도 해를 입지 않았다.”

해옥환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는 차라리 분통을 조금 참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모강침이 그에게는 손상을 입히지 못했을지언정, 그의 목숨과도 같은 강추로를 다치게 했다! 그녀는 내 어머니의 또 다른 보배 같은 딸이니,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은 우리 모녀가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만약 죽는다면 추오상 역시 살지 못할 터다. 소협이 그에게 전해 주라, 차라리 똑똑하게 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이다.”

주성한은 가슴이 암중으로 놀랐으나, 표면에는 아무런 기색도 드러내지 않고 완만하게 말했다. “추오상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이미 두 분의 협박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음을 의미한다. 다만 두 분 역시 저울질을 해보아야 하니, 만약 조건이 너무 가혹하여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두 분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다.”

해옥환이 말했다. “조건은 가혹하지 않다. 그저 우리 모녀의 두 가지 일만 들어주면 된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 두 가지 일이 무엇인가?”

해옥환이 말했다. “첫 번째는 그가 ‘경천궁(擎天宮)’의 궁주가 되겠다고 승낙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녀는 교태롭게 웃으며 은호를 한 번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어머니! 두 번째는 역시 어머니가 말씀하라!”

은호가 말했다. “그가 정식으로 옥환을 아내로 맞이해야 하니, 자연히 성대한 잔치를 열어 무림 인물들을 널리 청해야 한다.”

주성한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두 분의 말은 마치 아둔한 자가 꿈을 꾸는 듯하다. 저 단비우의 ‘창랑검법’ 한 세트는 무림을 멸시하고, 손에 든 보검은 무쇠를 자르고 옥을 벨 만큼 날카롭다. 추오상이 설령 경천궁의 궁주가 되고 싶어 한들 해내기 어려울 터다. 이것은 억지로 남에게 어려운 일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은호가 냉소하며 말했다. “솔직히 한마디 하겠으니 소협은 놀라지 말라. 저 단비우는 이 노신의 손바닥 안에 있다.”

주성한이 멈칫하며 말했다. “이 말은 과연 이 사람을 크게 놀라게 한다.”

은호가 말했다. “수년 동안 이 노신은 무림에서 온갖 비아냥을 받았으나, 그것은 단지 빼어난 남자들을 더 많이 사귀기 위함이었다. 경천궁은 무림에서 당당하고 바른 일대 문파다. 이 노신이 만약 궁주의 장모가 될 수 있다면, 오랫동안 가슴에 쌓인 원망을 비로소 한 번 토해내는 셈이 된다.”

주성한이 말했다. “이른바 바른 문파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만약 추오상이 경천궁을 이어받고 영애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경천궁은 더는 무림의 존경을 받기에 부족할 것이다.”

은호가 두 눈을 부릅뜨고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협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나?”

주성한이 말했다. “백운표의 추천을 듣고, 영애에게 우리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독을 풀어 달라고 청하러 왔다.”

은호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곳에 머물며 옳고 그름을 따질 때가 아니다. 어서 가서 추오상에게 물어보라. 그가 만약 내가 제시한 두 가지 일을 기꺼이 따른다면, 단지 뜨거운 차 한 잔 마실 시간 만에 옥환이 너희를 아무 탈 없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이 노신이 밝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두 분은 추오상이 수치심에 분노하여 검을 휘두르고 흉포함을 부릴까 두렵지 않나?”

해옥환이 말을 끼어들었다. “소협이 자연히 그가 그렇게 하도록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해 낭자의 이 말은 과연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해옥환이 냉소하며 말했다. “소협은 총명이 절정인데 어찌 이 몸이 한마디로 파헤쳐 말해야 하겠나. 만약 추오상이 한 번 노하여 검을 움직여 국면을 수습할 수 없게 된다면, 가친의 고질병 역시 구치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주성한은 가슴속 분노가 극에 달했으나, 또한 발작하기가 곤란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이 사람이 반드시 말을 추오상에게 전하겠으나, 만약 그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 사람 역시 어찌할 방법이 없다.”

해옥환이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소협은 이미 아무 탈 없게 되었으니, 기껏해야 가친의 목숨 하나를 날리는 것뿐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해 낭자의 언사 사이에는 조금 두터운 정이 있는 편이 좋겠다……”

어조를 약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만약 추오상이 단번에 승낙한다면, 두 분은 또 어찌하겠나?”

해옥환이 말했다. “이 몸이 즉시 그들 세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두 분은 추오상이 거짓으로 승낙하고 마음속에는 약속을 이행할 성의가 없는 것인지 어찌 알겠나?”

은호가 말했다. “이 노신은 그 아이의 성정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는 광오하고 길들여지지 않아 안중에 사람이 없으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가 승낙한다면 반회하지 않을 것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대가 잘못 보지 않았기를 바란다……”

포권을 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이 즉시 가서 말을 전할 테니, 두 분은 잠시만 기다려 달라.”

해옥환이 말했다. “우리 모녀 역시 몸에 중요한 일이 있어 오래 머물기 곤란하니, 많아야 오시(午時)까지만 기다릴 수 있다.”

주성한은 그녀에게 대꾸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방을 걸어 나왔다. 막 문턱을 넘어섰을 때, 익숙한 사람의 그림자가 그의 눈앞에서 휙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주성한은 눈이 날카로워 그 사람이 백운표임을 똑똑히 알아보고, 즉시 뒤쫓아 갔다.

백운표는 일부러 그를 피하려는 마음이 없는 듯, 몸을 돌려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는 잘 되었나?”

주성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는 언제부터 은호 모녀를 위해 심부름을 하기 시작했나?”

백운표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이 백 아무개는 집에 고정된 재산이 없으니, 강호를 행하며 훔치지도 않고 빼앗지도 않으면서 남의 심부름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어디서 은자를 내어 쓰겠나?”

주성한은 양계령과 은호 모녀 사이에 혹시 결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추궁하고 싶었으나, 괜한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입가까지 맴돌던 말을 다시 배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하의 지시 덕분에 상처를 치료하고 독을 푸는 고수를 찾았으니, 이 사람이 어찌 보답해야 하겠나?”

백운표가 말했다. “귀하가 이 백 아무개의 번거로움을 찾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매우 감사할 따름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훗날 필히 귀하를 모실 날이 있을 것이다.”

백운표는 자연히 그의 말속에 담긴 뼈 있는 뜻을 알아들었으나, 대꾸하지 않고 그저 헤헤 건조하게 웃을 뿐이었다.

주성한이 추오상의 방으로 걸어 들어가니, 추오상이 침상 위에서 정좌하여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막 물러나려 할 때 추오상이 이미 눈을 뜨고 물었다. “주 형은 이미 그 고인을 만났나?”

주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났다……”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추 형은 정말로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은가?”

추오상이 연달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절대로 말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아우는 필시 노하여 죄를 물으러 갈 것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의 유천혈 부위에도 우모강침 한 개가 박혀 있으니, 그 사람이 만약 와서 추 형의 침을 흡입해 꺼내고 독을 풀어 주려 한다면 여전히 서로 얼굴을 마주해야 하지 않겠나!”




추오상이 말했다. “아우가 방금 공력을 운행하여 그 우모강침을 밖으로 밀어냈으니, 그 고인의 손길은 필요치 않다……”

어조를 약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그 고인이 정말로 침을 흡입해 꺼내고 독을 풀어 주는 능력이 있나?”

주성한이 우측 팔을 뻗으며 말했다. “추 형은 이 사람의 우측 팔을 보라, 이미 완쾌되었다.”

추오상이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중얼거렸다. “참으로 신비에 가까운 기술이구나.”

주성한이 말했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이 사람은 상대가 제시한 조건을 상세히 고하고자 한다……”

추오상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받았다. “필요 없다. 아우가 상대가 제시한 조건을 듣고 나면,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터인데, 그리되면 또 이 한 자락 분통을 참아내기 어려울까 염려된다.”

주성한이 말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어찌 감히 독단으로 결정을 내리겠나!”

추오상이 말했다. “아우가 방금 이미 말하지 않았나, 주 형이 대신 결정을 내리면 된다고 말이다. 주 형이 상대에게 승낙한 것이라면, 훗날 아우가 하나하나 약속을 이행하여 다스릴 테니 절대 식언하지 않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본래 수단을 가리지 않을 수 있고, 상대의 조건이 비록 가혹할지라도 우리들이 우선 거짓으로 응해 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하필 추 형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니, 이 사람으로서는 아무래도 꺼려지는 바가 있다.”

추오상이 손을 한번 휘두르며 말했다. “주 형은 어서 가서 회답하라! 모든 조건을 모조리 허락하겠다고 말하라. 다만, 시일을 조금 기다려 준 후에야 약속을 이행할 수 있으니, 최소한 구구중양(9월 9일 중양절) 이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전하라.”

주성한이 약간 멈칫하며 말했다. “구구중양의 날에 추 형에게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나?”

추오상이 말했다. “실로 숨기지 않고 말하건대, 아우는 그날 소월매 낭자와 약속이 있어 가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중양절 이전에는 귀하와 내가 필시 주 형이 급히 필요로 하는 용연오묵을 이미 얻었을 터이니, 그때가 되면 아우 역시 그리 마음에 걸릴 일도 없다.”

그는 지극히 소탈하게 말했다! 마치 이 진세(속세) 사이에서는 오직 주성한과 소월매 두 사람의 일만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주성한 역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어,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추 형이 이토록 깊이 배려해 주는 정을 이 사람은 영원히 잊지 않겠다.”

추오상은 비록 심정이 만반으로 무거웠으나, 이때 뜻밖에 가볍게 한 번 웃으며 말했다. “주 형이 이리 말했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진부한 표현으로 흐르는 셈이다……”

어조가 갑자기 무거워지며 말을 이었다. “무림의 풍운은 변화무쌍하다. 다가올 날에 어떤 국면이 될지 알 수 없고, 귀하와 내가 어떤 입장에 서게 될지 예측하기 자못 어려우니, 주 형은 절대 가벼이 약속하지 말라!”

이 대화가 귀에 흘러들자 주성한은 문득 경각심이 일어 더는 말을 받지 않고, 몸을 돌려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주성한이 다시 은호 모녀의 방에 임하자, 해옥환이 앞다투어 물었다. “추오상이 어떻게 회답했나?”

주성한이 말했다. “원칙적으로 그는 받아들이기로 승낙했다. 다만 약속을 이행할 시일은 최소한 구구중양 이후까지 기다려야 한다.”

은호가 말했다. “상관없다, 우리들은 그가 정한 시일에 따르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이 사람에게 한 가지 부대 요구가 있다.”

은호가 말했다. “말씀하라.”

주성한이 말했다. “구구중양 이후, 이 사람은 이 객잔에서 두 분의 방가를 공손히 기다릴 것이니, 오 일을 기한으로 삼겠다. 두 분이 제때 이곳에 와서 이 사람과 한 번 만나 주기를 바라는 바가 크다.”

해옥환이 말을 끼어들며 물었다. “무슨 까닭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두 분이 만약 추오상로 하여금 약속을 이행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이 사람이 중간에서 소식을 전해야 하지 않겠나.”

해옥환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 참 희한한 일이다. 만약 이 몸이 추오상과 혼인하여 신방에 들어간 후에도 소협이 중간에서 말을 전해야 한단 말인가?”

주성한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낭자는 절대 농담하지 말라. 이 사람이 이처럼 하는 데는 자연히 까닭이 있으니, 만약 낭자가 믿지 않는다면 그만두면 될 뿐이다.”

은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저 소협의 뜻에 따르겠으니, 혹시 다른 분부라도 있나?”

주성한이 말했다. “해 낭자는 즉시 상처를 치료하고 독을 푸는 일을 진행해 주라. 다만, 추오상은 잠시 두 분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해옥환이 말했다. “그 역시 우모강침에 맞지 않았나! 설마 내가 그를 도와 흡입해 꺼내 줄 필요가 없단 말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낭자가 마음을 쓰실 수고는 필요 없다. 추오상은 이미 공력을 운행하여 체내의 우모강침을 밖으로 밀어냈다.”

해옥환이 기뻐하며 말했다. “어머니! 정말 뜻밖에도 추오상의 내력이 이만한 경지에 이르렀다. 추로 그 비천한 년이 헛되이 공을 들였으나, 뜻밖에 내가 와서 그 성과를 앉아서 누리게 되었다.”

은호가 말했다. “옥환아! 나는 네가 교묘함을 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 어서 가자! 오후가 되면 우리들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

해옥환이 얼굴을 길게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예! 제 어머니.”

말을 마치고 주성한에게 손을 한 번 흔들고는, 두 사람이 나란히 방을 나와 떠나갔다.

석양은 무한히 좋으나 다만 황혼에 가까운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늘 가득한 붉은 노을이 단풍잎을 비추니 마치 불 같았고, 더욱이 피 같았다!

산그늘 길 위에 두 개의 그림자가 온 힘을 다해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은호와 해옥환이었다.

갑자기 한 백의인이 수풀 사이에서 신형을 드러내며 튀어나와 그들 두 사람의 길을 가로막았다. 이 백의인은 다름 아닌 ‘옥면살성’ 백운표였다.

은호가 잠시 멈칫하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은자는 이미 네게 주었거늘, 너는 아직도 이 늙은 어미를 찾아와 무엇을 하려나?”

백운표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이 백 아무개는 아직 한탕 더 벌고 싶다.”

은호가 말했다. “눈앞에 너 같은 녀석이 할 만한 일거리는 없다.”

백운표가 눈꺼풀을 깜빡이며 괴이한 신형으로 말했다. “이 백 아무개가 천지개벽할 만한 큰 비밀을 하나 알아냈다.”

은호가 말했다. “한번 말해 보라.”

백운표가 말했다. “귀하는 부디 화내지 말라. 듣고 싶다면 귀하가 재물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해옥환이 차갑게 꾸짖었다. “내가 보니 당신은 아예 이름을 ‘돈만 보면 눈이 뒤집힌다’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말하라! 이번에는 얼마나 원하나?”

백운표가 말했다. “백 냥이다.”

은호가 말했다. “너라는 녀석은 갈수록 속이 좁아지는구나. 꼭 무슨 비밀스러운 소식을 전해 듣지 않더라도, 이 늙은 어미에게 손을 벌려 백 냥 은자를 도박 밑천으로 달라고 한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해옥환에게 고개를 한 번 돌리며 말을 이었다. “옥환아! 그에게 주어라.”

백운표가 두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라! 두 분은 필히 똑똑히 아셔야 하니, 이 백 아무개가 원하는 것은 황금 백 냥이다!”

은호가 두 눈을 부릅뜨고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얀 녀석! 재물을 갈취하려 해도 좋은 길목을 찾아야지! 너는 그야말로 매를 버는구나.”

백운표는 조금도 신색을 바꾸지 않고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백 아무개가 돈을 요구하는 데는 자연히 분수가 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 없다면, 어찌 감히 이처럼 큰 가격에 팔겠나?”

은호가 이를 악물고 손을 한번 휘두르며 말했다. “옥환아! 그에게 주어라.”

해옥환이 말했다. “어머니! 대체 무슨 천지개벽할 비밀이기에 황금 백 냥의 가치가 있단 말인가! 이것을 그에게 주고 나면 우리 모녀의 노잣돈이 얼마 남지 않는다.”



은호가 말했다. “그에게 주어라! 백 성을 가진 자가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니니, 그가 만약 터무니없이 재물을 갈취한 것이라면 결코 무사히 날아오르지 못할 것이다.”

백운표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이 백 아무개 역시 제 분수를 알아야 하니, 두 분을 상대로 재물을 갈취하는 것은 정말 스스로 망신을 자초하는 일이다.”

해옥환은 자못 내키지 않는다는 듯 허리춤의 주머니를 풀어 황금빛이 감도는 금괴 열 개를 꺼내 백운표에게 건넸다.

백운표는 조심스럽게 금괴를 챙겨 넣고는 가볍게 기침을 한 번 한 뒤 말했다. “두 분은 혹시 송 성을 가진 분을 알고 있나?”

모녀는 서로를 한 번 바라보고는 동시에 말했다. “모른다.”

백운표가 중얼거렸다. “이것 참 괴이하군?! 그 사람은 대략 예순 살가량 되었고, 용모가 고아하며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나 다른 이들이 모두 송 선생이라 부르니, 두 분은 아무쪼록 자세히 생각해 보라.”

해옥환이 말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니, 금이나 다시 내놓으라!”

은호가 그녀의 딸에게 눈짓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너라는 녀석은 송 성을 가진 자를 언급하여 무엇 하려는가?”

백운표가 말했다. “두 분이 대왕집을 한 발 먼저 떠나자, 이 송 선생이라는 자가 한 발 늦게 심가점에 도착했다. 책방(카운터)에서 두 분에 대해 묻고는, 그 후 주성한과 추오상의 방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은호가 말했다. “계속 말하라.”

백운표가 말했다. “이 송 선생이라는 자는 심가점에서 나온 후 서둘러 대왕집을 떠났다.

그는 큰길로 가지 않고 오지(지름길)를 돌아서 가니, 분시 앞길에서 지름길로 가 두 분을 가로막으려는 속셈이다.”

은호는 신색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더 있나?”

백운표가 말했다. “이 백 아무개의 ‘몰영신공(沒影神공)’에 대해서는 두 분 역시 매우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당시 그 송 선생이라는 자를 뒤쫓아 가면서 그가 조금도 알아채지 못하게 했으니, 그의 동향이 하나하나 이 백 아무개의 눈에 들어왔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의 내의가 선량하지 않다.”

은호가 말했다. “이 소식은 과연 가치가 있구나. 하지만 단지 황금 오십 냥의 가치일 뿐이니, 나머지 절반은 네가 필히 돌려주어야겠다.”

백운표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귀하가 만약 더 들어본다면, 이 소식의 가치가 단지 황금 백 냥에 그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은호(銀狐)가 눈꺼풀을 치켜뜨며 말했다. “계속 말하라.”

백운표가 말했다. “앞으로 오 리를 더 가면 유명한 경혼애(驚魂崖)가 나오는데, 그 송 선생이라는 자가 바위 틈새에 몸을 숨기고 있다. 길이 험준하여 발 한 자락만 잘못 디뎌도 경혼애 아래로 추락하게 된다. 만약 두 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기습을 당한다면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갈 것이다!”

은호의 신색이 미미하게 변하더니 중얼거렸다. “너라는 녀석이 감히 거짓말을 하지는 못하겠지.”

백운표가 말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실화이니, 황금 백 냥의 가치가 있지 않나?”

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치가 있다.”

백운표(白雲飄)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귀하의 그 한마디가 있으니 이 백 아무개는 안심하고 가겠다. 두 분은 앞길을 조심하라.”

은호가 나직하게 불렀다. “돌아오라!”

“설마 이 백 아무개에게 한탕 더 벌게 해 주려는가?” 백운표가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은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모녀에게 금산이나 은광이 있는 것이 아니니, 늘 돈을 바랄 생각은 말라. 방금 이 늙은 어미가 그 황금 백 냥을 시원하게 내놓은 성의를 보아서라도, 너라는 녀석이 우리 모녀를 한 번 도와야 마땅하다.”

백운표가 말했다. “이 백 아무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은호가 말했다. “네가 앞으로 가고 우리 둘이 뒤따라갈 테니, 경혼애를 지날 때 네가 방법을 써서 그 늙은 자를 유인해 내라.”

백운표가 연달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일은 이 백 아무개가 해낼 수 없다.”

은호가 눈을 부릅뜨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인가?”

백운표가 말했다. “그 송 선생이라는 자는 이 백 아무개가 감당할 수 없다.”

해옥환이 말했다. “그자가 설마 활염라(살아 있는 염라대왕)라도 된단 말인가?”

백운표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 백 아무개의 두 눈은 모래 한 알도 용납하지 않아, 이제껏 만나 본 무림 인물만 해도 수천 명에 이른다. 단지 그 송 선생이 걷는 기세만 보아도 그가 절정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은호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해옥환이 그녀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 그 송 노인이 어떤 내력을 가진 자인지 알고 있나?”

은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의 내력을 모른다.”

해옥환이 말했다. “어머니!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했단 말인가! 앞으로 길을 재촉하자! 이 몸이 도대체 그 송 노인의 재주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흑도에서 명성이 쟁쟁한 ‘옥면살성’을 이토록 벌벌 떨게 만들었는지 한 번 보고 싶다.”

백운표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낭자가 믿지 못하겠다면 얼마든지 가서 시도해 보라. 다만 귀하가 그의 그림자조차 보기도 전에, 귀하가 먼저 경혼애 아래로 떨어질까 염려된다. 이 사람은 이만 물러가겠다.”

은호가 손을 한번 치켜들며 급박하게 말했다. “잠시 멈추라.”

백운표가 발걸음을 멈추었으나 몸을 돌리지는 않은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백 아무개는 기꺼이 돕고 싶으나 목숨을 잃고 싶지는 않으니, 명을 거역한 죄를 용서하라.”

은호(銀狐)가 말했다. “백 성을 가진 자여! 황금을 챙기자마자 뺑소니를 치려 하지 말라. 네가 해내지 못할 일이라면 이 늙은 어미도 결코 억지로 남에게 어려운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백운표가 유유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 “혹시 다른 분부라도 있나?”

은호가 말했다. “이 늙은 어미는 일찍이 수없이 경혼애를 지나다녔다. 그 늙은 자가 숨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네가 조금 더 상세히 말하라.”

백운표가 말했다. “그는 절벽 꼭대기 굽은 길의 한 바위 틈새 사이에 숨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은호가 말했다. “이 늙은 어미가 기억하기로 절벽 꼭대기에 오를 즈음 길가에 산독(산동굴)이 하나 있으니, 당년에 비착괴객이 그 동굴에서 출몰하여 연달아 일곱 명의 목숨을 해쳤기에 무림 중인들이 모두 ‘소혼동(索魂洞)’이라 이름 지었는데, 너 역시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백운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백 아무개도 들어본 적이 있다.”

은호가 말했다. “수고스럽겠지만 청천진으로 한 걸음 가서 그 주 성을 가진 자에게 소식을 전해 주라. 우리 모녀가 소혼동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송 선생의 일은 언급하지 말고, 그에게 필히 와야 한다고 전하라.”

백운표가 말했다. “혹시 의성의 아들 주성한을 말하나?”

은호가 말했다. “맞다.”

백운표가 말했다. “그가 오겠나?”

은호가 말했다. “네가 그에게 전하기를, 와서 이 늙은 어미와 한 번 만나면 자못 막대한 이익이 있을 터이니, 그가 자연히 올 것이라 하라.”

백운표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귀하는 아마도 그 주 씨 성을 가진 자를 길잡이(개로선봉)로 삼으려는 속셈이겠군?”

은호가 차갑게 꾸짖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어서 가라!”

백운표가 말했다. “소식은 반드시 전하겠으나, 주 씨 성을 가진 자가 기꺼이 올지 안 올지는 이 백 아무개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말을 마치고 신속히 청천진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해옥환이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그 늙은 자를 본 적이 있나?”

은호가 말했다. “나는 본 적이 없으나, 네가 이미 보았다.”

해옥환(解玉歡)이 신형을 멈칫하며 중얼거렸다. “이 몸이 보았다고?”

은호가 말했다. “그 ‘일모황산원(日暮黃山遠 : 해 저문 황산은 멀고), 성침추일장(星沈秋日長 :별 잠긴 가을날은 길구나)’이라는 족자를 바로 그에게 산 것이란다!”


                               < 한매오상(寒梅傲霜) 第 二 卷, 續 비천팔조(飛天八爪) 第 一 卷 完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노상인(路上人) | 작성시간 26.06.21 깊이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조상 | 작성시간 26.06.22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사니조아 | 작성시간 26.06.22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왕타 | 작성시간 26.06.22 new 고맙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