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十一 回. 경세절기(驚世絶技)....세상을 놀라게 하는 절기.

작성자겨울나그네|작성시간26.06.21|조회수64 목록 댓글 4


                                 중국무협장편소설(中國武俠長篇小說)
                         원 제 : 한매오상(寒梅傲霜) + 續 비천팔조(飛天八爪)       작 가 : 와룡생(臥龍生)
                                 한매오상(寒梅傲霜) 또는 자룡기(紫龍旗) 또는 양자강(楊子江)의 혈투(血鬪)


                                           차 례  제 3 권

                                 第 二十一 回. 경세절기(驚世絶技)....세상을 놀라게 하는 절기.
                                 第 二十二 回. 구심투각(勾心鬪角)....옥신각신하다.
                                 第 二十三 回. 대뇨기원(大擾妓院)....기원에서 떠들썩하게 놀다
                                 第 二十四 回. 계취효웅(計取梟雄)....책략으로 효웅을 얻다.
                                 第 二十五 回. 기홍사편(欺哄詐騙)....사기 행각을 벌이다.
                                 第 二十六 回. 십면매복(十面埋伏)....십면매복.
                                 第 二十七 回. 풍우회양(風雨淮陽)....회양에서의 고초.
                                 第 二十八 回. 대의름연(大義凜然)....정의롭고 늠름하다.
                                 第 二十九 回. 기봉질기(奇峰達起)....기봉에 출현하다.
                                 第 三十   回. 진상대백(眞相大白)....백일하에 드러나다.




                               < 第 二十一 回. 경세절기(驚世絶技)....세상을 놀라게 하는 절기. >



해옥환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금릉성 중남대가에 있는 그 표구점의 늙은 주인 말인가?”

은호가 말했다. “그자다.”

해옥환(解玉歡)이 말했다. “비쩍 말라서 가죽과 뼈밖에 없던데、그런 자가 절정고수란 말인가?”

은호가 말했다. “그 늙은 자의 무공은 이미 겉모습에 얽매이지 않는 경지(不着皮相)에 이르렀으니 네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해옥환이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 역시 그를 본 적이 없으면서、그가 겉모습에 얽매이지 않는 심오한 무공을 지녔는지 어찌 아나?”

은호가 말했다. “백운표의 그 천한 눈은 금은보화를 알아보는 것 외에도 사람을 알아볼 줄 안다. 그자가 본 것이라면 결코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해옥환이 말했다. “둘이서 하나를 상대하는데、설령 그자가 무림고수라 한들 또 어찌하겠나?”

은호가 말했다. “옥환아! 네가 이제껏 내가 지금처럼 긴장한 모습을 본 적이 있더냐? 저 단비우조차 내 치맛자락 아래에서 곤두박질을 쳤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느냐? 하지만 이 송 성을 가진 늙은 자는 다르다.”

해옥환이 말했다. “어머니의 말씀은 들을수록 나를 헷갈리게 만든다.”

은호가 말했다. “이 어미가 익힌 무공은 좌도방문에 속하기에 기혈 속에 극히 심후한 마성(魔性)이 있다. 이 마성과 영성은 비록 천양지차이나 공통된 부분도 있으니、매번 화가 닥쳐오기 전에 반드시 징조가 있단다. 이 어미는 지금 돌연 마음이 번잡하고 초조하구나.”

해옥환의 신색이 변하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 잘 맞나?”

은호(銀狐)가 말했다. “시험해 볼 때마다 틀린 적이 없다.”

해옥환이 말했다. “내가 익힌 무공도 어머니와 같은 부류인데、왜 내게는 그런 느낌이 없나?”

은호가 말했다. “그것은 네 공력의 깊이(火候)가 아직 이 어미의 정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옥환이 말했다. “이제 우리들은 어찌해야 하나?”

은호가 말했다. “날이 완전히 저물기를 기다렸다가 앞으로 나아가자. 그런 다음 소혼동에서 주성한을 기다리겠다.”

해옥환이 말했다. “그가 오겠나?”

은호가 말했다. “반드시 올 것이다.”

해옥환이 말했다. “청천진은 여기서 하마터면 백 리는 떨어져 있을 터다.”

은호가 말했다. “백운표의 경공이 절정이고 주성한의 보법 역시 약하지 않으니、그들 둘이 전력으로 길을 재촉한다면 많아야 두 시진이면 도착할 것이다.”

해옥환이 말했다. “우리 둘은 그 칠흑 같은 동굴 속에서 두 시진이나 기다려야 하겠구나.”

은호가 말했다. “그것이 죽는 맛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해옥환이 말했다. “어머니! 나는 이제껏 어머니가 이런 낙담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오늘 정말 무언가 불길하다.”

은호는 그녀에게 대꾸하지 않고、그저 무겁게 한숨을 한 번 내쉴 뿐이었다.

두 사람은 깨끗한 바위 위에 앉았고、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사방이 어두워졌다.

은호가 일어나 손짓을 하자、모녀는 앞뒤로 대형을 유지하며 경혼애를 향해 완만하게 걸어갔다.

여기서 단지 삼、오 리 거리였기에 두 사람이 비록 극히 느리게 걸었으나 순식간에 도착했다.

사방이 칠흑 같고 가을바람이 쓸쓸히 부니 숙살(肅殺)스러운 분위기가 더욱 배가되었다.

해옥환은 입으로 두렵지 않다고 말했으나、지금 이 순간 가슴속에 서늘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금치 못했다.

은호가 어둠 속에 엎드려 한참 동안 살피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옥환아! 이 어미의 등 뒤를 바짝 따르라. 행동은 신속해야 한다.”

해옥환이 말했다. “어머니! 여기에 머무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무엇 때문에 반드시 그 칠흑 같은 산동굴 속으로 숨으려 하나.”

은호가 말했다. “어서 나를 따르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은 이미 탄력 있게 솟구쳐 올랐다.

해옥환은 백만 번이나 내키지 않았으나 역시 바짝 뒤따라 몸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본래 잠복하여 관망하던 곳은 그 동굴 입구와 불과 십 장 거리였기에、은호가 신형을 솟구치자 이미 동굴 입구에 다다랐다. 돌연、그녀는 허공에서 격렬하게 허리를 틀더니 억지로 땅으로 내려앉았다.

해옥환은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그녀의 어머니 등 뒤에 머리를 쿵 하고 부딪쳤다. 다행히 그녀의 두 손이 빠르게 은호의 허리를 감싸 안았기에 망정이지、그렇지 않았다면 그 충돌하는 기세에 필시 반대로 튕겨 나갔을 터였다.

몸은 중심을 잡았으나 해옥환은 머리가 핑 돌며 눈앞이 아찔했다. 그녀가 막 어머니에게 응석 섞인 불평을 하려다 입가 맴돌던 말을 다시 삼켰다.

알고 보니 그녀 역시 동굴 입구에 어떤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녀가 말했던、온몸이 비쩍 말라 가죽과 뼈밖에 없다던 그 송 선생이었다.

상식대로라면 해옥환은 재벼르게 어머니의 등 뒤에서 벗어나 두 사람이 부채꼴로 흩어져 협공하는 자세를 취해야 마땅했으나、해옥환은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어머니의 허리를 안은 두 손에는 오히려 힘이 더 들어가、뜻밖에 은호를 자신의 방패로 삼아 버렸다.

아마도 송 선생의 그 기세에 그녀가 제압당했기 때문이리라.

과연 송 선생에게는 사람의 혼백을 위압하는 기세가 있었다.

그는 두 손을 등 뒤로 짐진 채 당당하게 서 있었으니 그 형상이 자못 유령 같았으나、살아 움직이는 기개가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감촉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은호는 본래 전후좌우에 사람이 없음을 똑똑히 확인하고 몸을 날렸던 터라、그녀가 몸을 허공에 띄웠을 때 비로소 상대가 돌연 동굴 입구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으니 도대체 그가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단지 이 등장하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만했다.

은호는 어쨌든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놀라기는 했으나 넋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암중으로 해옥환에게 손을 풀고 비켜 서라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귀하가 바로 송 선생인가?”

송 선생(宋先生)의 시선은 본래 땅을 향하고 있었으나、이때 갑자기 고개를 드니 마치 두 개의 차가운 별 같았다. 칠흑 같은 밤하늘 속에서 수정처럼 맑은 광망이 번뜩였다.

그는 말 한마디 없이 우측 손을 돌연 치켜들었다.

검은 그림자 한 덩어리가 즉시 은호를 향해 날아왔다. 그것은 암기 같지 않았고 날아오는 기세 또한 극히 완만했다. 은호가 손을 들어 상대방이 던진 물건을 받아 쥐니 묵직했다. 보지 않아도 그녀는 그것이 방금 백운표에게 주었던 그 황금 주머니임을 알았기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송 선생은 그녀가 황금을 손에 쥐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처음 뵙는 터라 이 늙은이가 마땅히 인사 선물을 올려야 하니、웃으며 받아 주길 바라네.”

목소리는 낮고 힘이 있었으나 어조는 자못 화기애애했다. 은호는 자신도 모르게 암중으로 어리둥절해졌다. 상대방의 내의를 참으로 짐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동시에 그녀는 암중으로 백운표를 위해 염려하는 마음이 생겼으니、그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기에 이 황금 주머니가 임자를 바꾸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송 선생이 다시 말했다. “아직 증정할 물건이 하나 더 남아 있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등 뒤로 짐지고 있던 좌측 손이 갑자기 치켜들려 지더니 또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은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은호는 그것을 그대로 손으로 받아 쥐었다.

이번만큼은 그녀로서도 비위가 완전히 상해、하마터면 낮에 청천진에서 먹은 상등 음식들을 모조리 토해낼 뻔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사람의 머리、바로 백운표의 머리였기 때문이다.

밤빛은 비록 어두웠으나 은호의 안력이 워낙 뛰어났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그녀를 해괴하고 두렵게 만든 것은、백운표의 머리가 목덜미째 끊겨 있었는데 칼로 자른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채로 손으로 뜯어낸 형상이었다는 점이다.

은호는 몸을 부르르 떨며 냉한을 흘렸으나、그래도 담량이 있는 편이라 이를 악물고 그 인형을 여전히 손에 쥔 채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귀하의 걸작인가?”

해옥환은 어머니의 훈도 아래 평소 심지가 모질고 수단이 악랄했으나、이 순간만큼은 와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경악하는 듯했다.

은호가 나직하게 꾸짖었다. “옥환아! 이 어미의 낯을 깎아 먹지 말고 한쪽으로 비켜 서라.”

송 선생이 말했다. “영애가 필시 이처럼 겁이 많지는 않을 터인데!”

은호가 말했다. “귀하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 백운표를 귀하가 살해한 것인가?”

송 선생이 말했다. “맞네.”

은호가 말했다. “단지 그가 귀하의 행적을 누설했기 때문인가?”

송 선생이 말했다. “이 늙은이는 남에게 재물을 갈취하고 이익을 도모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네. 이에 그에게 황금을 추궁하여 찾아내어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려(완벽귀조) 한 것인데、뜻밖에 그가 발을 빼고 도망치려 하더군. 이 늙은이가 뒤쫓아 갔을 때 또 암기로 사람을 해치려 하니、그가 스스로 죽기를 자초한 바에야 이 늙은이가 어찌 성취해 주지 않겠나. 다만 귀하의 소식을 중간에서 지체하게 만들었으니 미안하네! 그러나 이 늙은이가 귀하를 위해 황금을 찾아다 주었으니 공과 과는 상쇄될 수 있을 것이네.”

은호가 손을 한번 치켜들어 백운표의 머리를 멀리 던져 버리고 비단치마에 손의 핏자국을 닦아냈다. 그녀는 심념을 굳게 먹고 용기를 짜내어 물었다. “듣자 하니 귀하가 우리 모녀를 찾고 있다고 하던데?”

송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말이 있네.”

은호가 냉소하며 말했다. “귀하의 무공이라면 우리 모녀에게 해를 입히고자 할 때 자못 식은 죽 먹기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경혼애 바위 틈새 사이에 몸을 숨겨 소인배처럼 구나?”

송 선생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귀하의 격장법이 제법 훌륭하군. 여자가 어쨌든 남자보다 심계가 훨씬 깊은 법이지. 안타깝게도 이 늙은이는 귀하 모녀에게 해를 입히러 온 것이 아니네.”

은호는 가슴이 자신도 모르게 한 자락 놓여 말했다. “그렇다면 무슨 가르침이 있나?”

송 선생이 말했다. “이 늙은이는 귀하와 상의를 한 번 하고자 하네.”

은호가 말했다. “귀하가 너무 겸손하군.”

송 선생이 말했다. “상의를 하러 온 바에야 자연히 조금은 겸손해야 하지 않겠나. 왜냐하면 이 일은 귀하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네.”

은호는 마음속으로 암중으로 흠칫했으나、입으로는 지극히 평담하게 말했다. “상할 일이 비록 있다 한들、이 늙은 어미는 귀하의 보호(문파나 이름)를 청하고자 한다.”

송 선생이 말했다. “이 늙은이는 남들이 송 선생이라 부르네.”

은호가 말했다. “글과 그림을 표구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하던가.”

송 선생이 말했다. “귀하는 필시 믿지 않을 것이네.”

은호가 말했다. “귀하의 성씨조차 진짜인지 이 늙은 어미의 마음속에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송 선생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에게 성이 없고 이름이 없으며 오직 호만 하나 있을 뿐인데、영애의 성명 역시 진짜라고 보기 어려울 터이네. 상황이 이와 같거늘 귀하는 어찌하여 반드시 이 늙은이가 정말 송 씨 성인지 추궁하려 하나?”

은호가 말했다. “화려한 말놀림과 교묘한 변설은 한결같이 내력을 숨기고자 함이겠구나. 이 늙은 어미가 고루하다고 여기지 말라.”

송 선생이 말했다. “무림 중인들 가운데 명민하기로는 은호만 한 자가 없군.”

은호가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고、이 늙은 어미와 상의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곧장 말하라.”

송 선생이 말했다. “귀하는 필히 똑똑히 들어야 하네.”

은호가 말했다. “내가 아직 귀가 먹지는 않았다.”

송 선생이 갑자기 어조를 무겁게 가라앉히며 말했다. “은호! 귀하가 얼마나 큰 야심을 품고 있든、또한 귀하가 손을 써서 강산을 뒤흔들고 파도를 일으키든(번강도해)、이 늙은이는 결코 나서서 귀하의 사사로운 일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네.

다만 귀하 모녀는 절대 추오상을 건드려서는 안 되네. 똑똑히 들으라. ‘경천궁’ 부궁주 추오상、절대 그의 몸에 엉뚱한 수작을 부리지 말라. 오직 이 한 가지 일이네.”

해옥환이 말을 끼어들었다. “추오상이 귀하와 무슨 관계인가?”

은호가 나직하게 꾸짖었다. “옥환아! 말참견하지 말라...”

고개를 돌려 송 선생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귀하는 방금 이 늙은 어미와 상의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송 선생이 말했다. “바로 이 일이네.”

은호가 말했다. “청컨대 상의라는 두 글자를 어찌 풀이해야 하나?”

송 선생이 말했다. “귀하에게는 거절할 권리가 있네.”

은호가 말했다. “귀하의 말이 맞다. 만약 이 늙은 어미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어찌하겠나?”

송 선생이 말했다. “나를 범하는 자는 곱게 죽지 못하니、백운표가 바로 그 본보기이네.”

은호가 말했다. “귀하는 참으로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이처럼 광망하고 안중에 사람이 없다면서 무엇 때문에 내력을 숨기나.”

송 선생이 말했다. “물건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장인은 다듬어지지 않은 옥(푸른 옥)이라도 알아보는 법이네. 단지 귀하가 눈이 없어 알아보지 못할 뿐이지(안우무주). 이 늙은이는 할 말을 마쳤으니 어떻게 할지는 귀하 스스로 잘 판단해 보라. 이만 물러가네.”

포권을 해 보이고는 돌연 몸을 길게 솟구쳤는데、찰나의 순간에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해옥환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참으로 빠른 신법이구나. 마치 귀신의 그림자 같다.”

은호가 중얼거렸다. “그가 만약 귀신이라면 필시 악귀일 것이다.”

해옥환이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의 징조가 빗나갔다. 한 자락의 화도 발생하지 않았다!”

은호가 그윽하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화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단지 백운표가 대역을 치렀을 뿐이다.”

해옥환이 갑자기 송 선생의 말을 떠올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깊이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들은 어찌해야 하나?”

은호가 말했다. “무슨 일인가?”

해옥환이 말했다. “이 몸은 추오상에 관한 그 일을 말하는 것이다!”

은호가 말했다. “그저 완만하게 도모할 수밖에 없겠다.”

해옥환이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정말로 그가 두렵나?”

은호가 말했다. “그가 만약 이 어미의 마음속으로 짐작하는 그 사람이라면、참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해옥환이 말했다. “어머니는 그가 누구라고 짐작하나?”




은호가 말했다. “이 어미도 아직 확신이 서지 않으니、천천히 다시 네게 일러주마!”

해옥환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자의 말투를 보아하니、십중팔구 추오상과 무슨 깊은 연관이 있는 듯싶다.”

은호가 말했다. “이 어미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만...”

말을 잠시 멈추더니、중얼거리듯 이었다. “추오상의 아비는 이미 죽었으니、그의 스승이란 말인가?”

해옥환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맞다! 틀림없이 그의 스승일 것이다.”

은호가 말했다. “옥환아! 말을 이토록 단정 지어 하지는 말라. 우리 어서 경혼애를 지나가자! 가장 가까운 저잣거리까지 가려면 한 오십 리 길은 남았을 터인데、이 어미는 벌써 창자가 뒤틀릴 정도로 배가 고프구나.”

양가보(楊家堡)의 이날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떠들썩하기 짝이 없었다.

보루 안팎이 모두 말끔하게 청소되어 땅 위에는 낙엽 한 장 보이지 않았고、들보 위에는 거미줄 한 가닥조차 찾아볼 수 없어 실로 일점진애도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보루 문 앞에는 오색찬란한 등롱이 한 줄로 길게 내걸려 있어、마치 무슨 경사스러운 혼사라도 치르는 듯했다. 정오가 지난 후、보루 안의 젊은 낭자들은 모두 새 옷과 새 신으로 갈아입고는 마치 꽃 사이를 넘나드는 채접(오색 나비)들처럼 분주히 일손을 놀렸다.

‘금령아(金鈴兒)’ 양계령이 몸소 진두지휘를 맡아 하다가、스스로 만족스럽다고 여긴 후에야 비로소 곁방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녀가 막 자리에 앉아 찻잔을 들고 채 반도 마시기 전、갑자기 맑고 칼칼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보주께서 납시었다!”

이윽고 패옥이 쟁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채색 옷을 입은 여덟 명의 시녀들이 한 중간의 부인을 옹위하며 걸어 나왔다.

그 중간의 부인은 겉보기에 대략 마흔 살가량 되어 보였는데、용모가 단정하고 체태가 풍만했다. 양가보는 여인이 권력을 쥐는 곳으로、사내들은 모두 보루 안으로 장가를 들어와 살아야 했다. 딸을 낳으면 보루 내에 머물게 하여 무공을 익히게 하고、아들을 낳으면 보루 뒤편의 농장으로 보내 농사를 짓게 하였으니、보루 안의 여인들은 전형적으로 모두 양(楊) 씨 성을 썼다. 그러므로 이 옹용하고 화귀한 기품을 지닌 중년 부인이 바로 이곳의 보주였다.

양계령이 황급히 일어서서 읍을 하며 말했다. “어머니를 뵈옵니다.”

중년 부인이 종용하게 자리에 앉으며 완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계령아! 네가 이른 아침부터 지금까지 이토록 분주히 움직였는데、만약 추오상이 기어이 오지 않겠다고 버틴다면 네가 헛수고를 한 셈이 되지 않겠느냐?”

양계령(楊桂玲)이 말했다. “딸년에게 반드시 그를 오게 할 방도가 있으니 염려 마옵소서.”

중년 부인이 말했다. “듣자 하니 그의 성정이 자못 강퍅하고 억세다고 하던데、너는 결코 그와 맞서거나 거슬러서는 안 된다.”

양계령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머니! 저는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있습니다. 추오상은 그저 시오(간웅이나 효웅)의 무리에 불과하여 겉만 금옥 같고 속은 썩은 넝마(金玉其表 敗絮其中)와 다름없거늘、어머니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딸년의 동창쾌서(기량 좋은 사위)로 낙점하신 것입니까!”

중년 부인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계령아! 네가 또 이 어미에게 이 같은 말을 하는구나!”

양계령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딸년이 다음부터는 감히 그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중년 부인의 안색이 그제야 조금 누그러지며 말했다. “계령아! 네 말로는 추오상이 와서 단지 하룻밤만 묵고 곧바로 떠날 것이라 하더냐?”

양계령이 말했다. “어쩌면 보루 내에서 더운 차 한 잔만 마시고 갈지도 모릅니다. 그가 만약 하룻밤이라도 묵어 준다면、그것은 이미 천만다행한 체면을 세워 주는 일입니다.”

중년 부인이 중얼거렸다. “이치대로라면、그가 이미 발걸음을 한 이상 다시는 그를 떠나보내지 말아야 할 터인데.”

양계령이 말했다. “어머니! 이 일은 주성한의 도움 덕이 큽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추오상은 보루 문 앞을 지나치면서도 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성한은 또한 추오상을 따라 그의 옛 고거(고향 집)로 돌아가 부친의 병을 고칠 약인자(약의 효능을 돕는 보조 약재)를 취해야 하니、우리들이 그의 대사를 지체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중년 부인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저 네 뜻대로 하려무나. 그들은 언제쯤 도착한다더냐?”

양계령이 말했다. “그들이 미초(오후 1시 경)에 김가집을 떠났으니、딸년이 셈해 보건대 신정(오후 4시 경)이면 필시 당도할 것입니다.”

중년 부인이 말했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이 어미는 가서 잠시 쉬고 있을 터이니、그들이 오거든 먼저 사람을 시켜 내게 알려라.”

양계령이 절을 올리며 공손히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편히 쉬십시오.”

어머니를 배웅하고 양계령이 다시 자리에 앉아、막 미지근해진 향다를 들어 입가에 가져가려 할 때였다. 갑자기 날렵한 경장 차림을 한 젊은 낭자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선 이는 양가보 여무사들 중에서도 단연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는 양취영(楊翠英)이었다. 그녀가 지닌 한 쌍의 금령(금방울)은 비록 양계령처럼 신화(神化)에 이른 경지는 아닐지라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오늘 상황이 특수한 만큼、양계령은 특별히 그녀에게 보루 문을 순찰하는 중책을 맡겨 둔 상태였다.

그녀가 다급히 들어오는 것을 보자 양계령은 얼른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서며 물었다. “취영아! 무슨 일이냐?”

양취영(楊翠英)이 앞으로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계령 언니! 어떤 비쩍 마른 노인네가 보주님을 뵙고자 청하고 있습니다.”

양계령이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혹시 명함(拜貼)이라도 지니고 있더냐?”

양취영이 말했다. “없습니다. 그저 성이 송(宋) 씨라고만 밝히더군요.”

양계령이 말했다. “보주님을 뵙고 무엇을 하려 든다더냐?”

양취영이 말했다. “보주님과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합니다.”

양계령이 손을 한번 휘저으며 말했다. “쫓아내 버려라.”

양취영(楊翠英)이 목소리를 더욱 낮추며 말했다. “그 늙은 자가 아무래도 보통 내기가 아닌 듯싶으니、언니가 직접 나가서 한 번 만나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양계령이 윽 하고 신음을 내며 신속하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보루 문 밖에 당당하게 서 있는 자는 바로 이름 없이 성만 가진 송 선생이었다. 그는 양계령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자 앞으로 다가와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양 보주님을 뵙나이다.”

양계령(楊桂玲)은 답례조차 하지 않은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본 낭자는 보주가 아니오. 그대는 보주님을 뵙고 무슨 일을 도모하려 하오?”

송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이 자리에서 고하기 곤란하니、혹 보주께서 친히 나와 한 번 만나주실 수 있겠소?”

양계령이 말했다. “보주의 존귀함이 어찌 가벼이 움직여 아랫사람의 가르침을 구하겠소.”

송 선생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 늙은이가 안으로 들어가 안 알현하는 것은 어떠하오?”

양계령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양가보가 대체 어떤 곳인지 귀하 역시 필시 똑똑히 알아보고 왔을 터요. 여인네들이 거처하는 보루에 어찌 성만 있고 이름은 없으며、내력조차 불분명한 인물을 들여보내 접대할 수 있겠소?”

이 말은 자못 무겁고도 가시가 돋친 핀잔이었으며、특히 명성이 자자한 양계령의 입에서 나온 터라 듣는 이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송 선생은 그녀의 말에 조금도 노하지 않고、여전히 온화하게 웃으며 물었다. “낭자는 뉘시 오?”

양계령이 말했다. “보주의 딸、양계령이라 하오.”

송 선생이 말했다. “과연 당금 무림에서 명성이 자자한 장본인이셨군、실례가 많았소! 실례가...”

어조를 나직하게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허나、낭자께서 혹 모친을 대신하여 판단을 내리고 결정을 지을 수 있겠소?”

상대방이 나이가 지긋함에도 이토록 깍듯이 예의를 차리자、양계령의 안색도 아주 조금은 부드러워져 말했다. “그것은 어떤 일인가에 달려 있소. 만약 본 낭자가 독단으로 처리하지 못할 일이라면、자연히 보주님께 상세히 고하여 처분을 기다릴 것이오.”

송 선생이 고개를 들어 길게 내걸린 등롱 무리를 한 번 올려다보며 말했다. “귀보가 오늘 이처럼 장등결채(등불을 달고 채색 천을 매닮)를 해 두었으니、혹 무슨 경사스러운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오?”

양계령의 얼굴이 다시금 차갑게 굳어지며 냉랭하게 물었다. “귀하는 어찌하여 그것을 캐묻는 것이오?”

송 선생은 기색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의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짐작하건대、필시 귀한 손님이 당도하시는 모양이구려.”

양계령의 얼굴에 비로소 노기가 완연히 떠올랐다. 그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그렇다면 또 어찌하겠다는 말이오?”




송 선생이 말했다. “그 귀한 손님이 혹시 무림의 후기지수 추오상인가?”

양계령이 호되게 꾸짖으며 추궁했다. “어찌하여 묻는가?”

송 선생(宋先生)도 이때 갑자기 안색을 굳히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노부가 알기로는 추오상은 본래 귀보에 손님으로 올 생각이 없었으나、귀보에서 억지로 붙잡아 두려 했다 들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 노부는 관여하고 싶지 않으나、추오상의 행로를 방해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 충고하겠다.”

지금껏 양계령에게 이런 어조로 말한 사람이 있었던가?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소매 안에서 한 쌍의 탈혼금령(奪魂金鈴)이 나타났고、그녀의 두 눈동자에서 분노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송 선생이 나지막하게 외쳤다. “낭자、손을 쓰기 전에 잠시 기다려라.”

양계령(楊桂玲)이 매섭게 말했다. “틀림없이 그대도 몇 마디 유언을 남기려는 모양이다.”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가 낭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좋은 말이 몇 마디 있다.”

양계령이 말했다. “본 낭자는 한가한 시간이 없다.”

송 선생이 말했다. “낭자가 손에 쥔 금령 한 쌍을 쉽게 움직인다면、‘금령칠보탈혼초’의 위명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양계령이 말했다. “본 낭자는 기어이 한 번 시험해 보겠다.”

말소리가 채 떨어지기도 전에 몸을 날려 접근하더니、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손의 금령으로 송 선생의 얼굴을 격타했다.

송 선생의 신형이 급격히 물러나며 이미 세 장 밖으로 비켜섰다.

양계령은 이토록 크게 화를 낸 적이 없었기에、첫 손길부터 살초를 펼쳤다. 공격이 허공을 가르자 양손의 금령이 모두 날아갔고、쨍그랑거리는 소리 속에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지며 급격히 회전한 채 송 선생의 좌우 태양혈을 향해 날아갔다.

송 선생이 양손을 동시에 내밀어 열 손가락을 갈퀴처럼 벌리자、그 탈혼금령 한 쌍이 공중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곁에 있던 양취영이 갑자기 교성을 지르며 손에 쥐고 있던 두 개의 금령을 휙 하고 날려 보냈다.

송 선생이 양 손목을 한 번 털자 네 개의 금령이 일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송 선생이 앞으로 다가가 발로 밟으니、두 쌍의 금령은 매끄럽고 평평한 청석 바닥 안으로 박혀 버렸고 그의 발 주변으로 청석 가루가 피어올랐다.

양계령과 양취영은 가슴이 크게 진동하며 멍해지고 말았다.

보문을 지키던 여걸들도 모두 기가 죽어 잠잠해졌다.

송 선생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노부 한 사람만 알고 있으니 귀보의 위망을 손상할 수준은 아니다. 낭자는 똑똑히 들어라. 추오상을 건드리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귀보는 조만간 파멸할 것이다!”

양계령은 강호에 발을 들인 이래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기에、지금 분노와 수치심 등 여러 감정이 가슴에 가득 차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양취영(楊翠英)은 도리어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대의 심오한 내력과 뛰어난 무공으로 보아 무림을 좌지우지하고 호령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안하무인인 사람 같지 않으니、이 일에 관여하는 데는 필시 내막이 있을 터、부디 알려주기를 바란다.”

송 선생이 말했다. “이 낭자는 제법 말솜씨가 좋으나、아쉽게도 그 내막은 알려줄 수 없다.”

양취영이 말했다. “그렇다면 진짜 성명과 보호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달라. 본보의 무예가 남만 못하여 진심으로 승복하나、어떤 고인의 손에 패했는지는 알고 싶다.”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의 성은 송가요、사람들은 송 선생이라 부른다. 방금 낭자에게 말했으나 다시 한 번 반복하겠다. 추오상을 건드리려 한다면 필시 보가 파멸하는 화를 당할 것이니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

그는 포권을 해 보이고는 고개를 돌려 가 버렸다.

송 선생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양계령이 연달아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도대체 어떤 내력을 가진 자인가! 이토록 대단하다니 정말 화가 나 죽겠다. 취영! 너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양취영이 말했다. “금령아! 저 늙은이는 필시 오랫동안 은거했던 절정고수일 것이다. 내 생각에는 어서 이 사정을 보주께 보고하는 게 좋겠다. 보가 파멸하는 화는 진정 너무 심각하다.”

양계령은 침묵에 잠겼다. 분명 그녀는 아직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그녀는 추오상이라는 사람에게 호감이 없었고 단지 어머니의 명을 어기기 어려웠을 뿐인데、지금 송 선생이 훼방을 놓자 오히려 승부욕과 오기가 발동했다.

문득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건강한 말 한 마리가 날아오듯 도착했다.

말 위의 사람은 건장한 대한이었다. 보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린 그는 양계령에게 읍을 하며 말했다. “계령 낭자께 아룁니다. 추오상 일행이 앞의 고개를 넘어 곧 보 앞의 관도를 지나갈 예정입니다.”

양계령이 목소리를 높였다. “취영! 명령을 내려라. 방금 전의 일은 당분간 누설하지 마라. 내가 가 보겠다.”

그녀는 몸을 날려 그 준마 위에 올라탔다.

양취영이 크게 소리쳤다. “금령아...”

그녀가 하려는 말이 채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양계령은 말을 몰아 질주했고、순식간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양계령은 단숨에 관도로 나갔으나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자 고삐를 돌려 다시 고개 쪽으로 말을 몰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추오상、주성한、강추로、봉음 등이 각자 준마를 타고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강추로(江秋露)와 봉음(鳳吟) 두 사람은 비록 극독에 중독된 적이 있었으나、지금은 예전처럼 건강하고 씩씩하여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주성한(朱星寒)은 양계령과 사전에 약조한 바가 있어 마음이 켕겼기에 얼른 큰 소리로 외쳤다. “저기 계신 분은 양 낭자가 아닌가?”

양계령이 말을 멈추고 말등 위에서 말했다. “그대들이 이곳을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마중을 나왔다.”

추오상은 상대방에게 얽매일까 염려되어 황급히 말을 가로챘다. “재가 본래 귀보로 가 영부인을 뵈어야 마땅하나、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지체할 수 없었으니 낭자께서는 혜량해 주기를 바란다.”

양계령이 웃으며 말했다. “본보는 오늘 이미 등을 달고 오색천을 걸었으며、돼지와 양을 잡고 여러분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뜻밖에도 방금 변고가 생겨 설령 여러분이 귀보에서 잠시 쉬어가고 싶다 해도 계령이 감히 대접할 수 없게 되었다.”

추오상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무슨 변고가 생겼는가?”

양계령이 말했다. “방금 본보 문 앞에 송 선생이라 자칭하는 노인네가 찾아와、계령에게 추 부궁주를 대접해서는 안 되며 만약 그렇다면 본보가 하루아침에 파멸할 것이라 경고했다.”

추오상은 마음속으로 의아하여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주성한을 바라보았다. 양계령이 다시 말했다. “계령은 우리 보가 파멸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부득이 여러분을 소홀히 대할 수밖에 없으니 량해해 주면 다행이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양 낭자는 평소 마음이 높고 오만하여 남의 지시를 받들 리 없는데、혹시 그 안에 다른 내막이 있는 것은 아닌가?”

양계령이 말했다. “추 부궁주는 비웃지 마라. 그 늙은이가 입을 열어 그런 말을 했을 때 계령은 허파가 뒤집힐 뻔하여 그 자리에서 손을 썼다.”

추오상(秋傲霜)이 말했다. “결과가 어찌 되었는가?”

양계령이 말했다. “그걸 꼭 물어야 아는가? 손을 섞자마자 내 탈혼금령 한 쌍이 그의 손바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추오상이 놀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가?”

양계령이 말했다. “계령이 우리 보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이런 일을 지어내겠는가?...”



어조를 무겁게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계령이 말을 몰아 달려온 것은 추 부궁주에게 경고를 하기 위함이다. 그 늙은이가 당신과 다소 구원(舊怨)이 있는 듯하니、앞길을 무척 조심하고 절대 그의 수작에 말려들지 마라.”

추오상이 말했다. “낭자는 그 송 선생이라는 자가 나와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양계령이 말했다. “그가 직접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나、계령이 그의 신태(神態)를 보고 짐작한 것이다. 좋다! 모두들 앞길에 순풍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말을 마치고는 말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달려갔다.

추오상이 고개를 돌려 주성한에게 말했다. “주 형은 양계령의 말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틀림없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지금의 무림에서 단 한 초식 만에 양계령의 손에 든 금령을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 말고는 아마 제이인자가 없을 것이다. 이 송 선생이라는 자는 보통 내력이 아닌 모양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 우리 이 일로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 없이 어서 길을 재촉하자! 여기서 서주까지는 아직도 팔십 리나 남았다!”

그러나 추오상은 즉시 말을 몰아 떠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깊이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괴이하군! 그 송 선생은 어찌하여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 양계령의 말을 가볍게 믿어서는 안 된다. 송 선생의 이번 거동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양계령이 필시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 그 송 선생은 도대체 어떤 내력을 가진 자인가?”

주성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말하기 어렵다!”

추오상이 말했다. “지금 그를 시험해 볼 기회가 한 번 있다.”

주성한이 말했다. “무슨 기회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양 낭자가 우리를 보 안으로 청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가도 상관없다. 양가보는 계란이 아니며、송 선생의 말은 대단히 오만하기 짝이 없다. 양가보를 멸하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겠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 길을 재촉하자!”

추오상이 말했다. “아니다! 소제는 양가보에 한 번 가보기로 결정했다.”

주성한이 연달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가 어디 있는가、우리에게는 길을 재촉하는 게 급선무다!”

강추로도 곁에서 말참견을 했다. “무엇 때문에 이런 번거로움을 자초하는가? 그냥 앞으로 가자!”

추오상이 말했다. “당신들이 가고 싶지 않다면 여기 머물러도 좋다. 나 혼자 가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만약 송 선생이 말한 대로 실행하여 양 낭자에게 화를 옮긴다면...”

추오상이 말을 받았다. “그가 정말로 양가보를 파멸시키려 한다면 그렇게 하라지! 소제를 위해 큰 강적 하나를 없애주는 것뿐이다.”

말을 마치자마자 두 다리로 말배를 강하게 차며 말을 몰아 앞서 나갔다.

현재 추오상은 성부(城府)가 극히 깊어、이처럼 행동하는 것이 결코 임기응변이나 욱하는 성미 때문이 아니라 따로 뜻하는 바가 있어서였다. 한편으로는 그 신비로운 송 선생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탐지하려는 것이었고、다른 한편으로는 핑계를 대어 양계령에게 번거로움을 더해주려는 속셈이었다. 무림을 독패하려는 정벌의 길에서 ‘금령칠보탈혼초’는 확실히 성가신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성이 강직한 주성한은 그의 간계를 꿰뚫어 보지 못했다.

추오상이 말을 채찍질해 나아가는 것을 보자 미간을 찌푸리며 급히 소리쳤다. “강 낭자! 우리 두 사람이 필시 저지해야 한다.”

강추로가 말했다. “추오상은 늘 제멋대로 행동하니 첩신이 어찌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소협이 수고해 달라!”

주성한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말을 끝내자마자 두 다리로 세차게 말배를 조이며 이미 말을 몰아 앞으로 쫓아갔기 때문이다.

봉음이라는 계집아이는 내막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낭자! 이 길에는 늘 끝없는 일들이 생기니 비자는 정말 어리둥절하다. 낭자께서 가르침을 주실 수 있는가?”

강추로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어찌하여 추 부궁주에게 묻지 않는가?”

봉음이 말했다. “비자가 어찌 감히 그러겠는가?”

강추로가 말했다. “그렇다면 입을 다물어라. 나는 진정 추 부궁주가 어찌하여 너 같은 것을 눈여겨보았는지 모르겠다.”

봉음(鳳吟)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말했다. “낭자...”

강추로(江秋露)가 말을 가로챘다. “봉음! 한 가지 말해둘 게 있다. 앞으로 추 부궁주 앞에서 아양을 떨지 마라. 무림에 그를 유혹하려는 천한 것들이 이미 널렸으니 너까지 발을 들이지 마라. 듣지 않으면 내가 네 입을 찢어놓을 것이다.”

봉음은 심유향의 곁에 있을 때 으뜸가는 인물이었기에 이 같은 화풀이를 당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 목놓아 울고 싶었으나 억지로 참아냈다. 그녀는 비록 추오상이 왜 자신을 동행하게 했는지 잘 알지 못했고、무슨 내막이 있기에 늘 사람들이 추오상과 얽히고설키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강추로가 추오상 앞에서 가지는 비중이 자신보다 훨씬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를 눈 밖에 나게 하는 것은 염라대왕의 어머니를 노하게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떨어질 듯한 눈물을 머금고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비자는 자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으니 어찌 그런 사악한 생각을 품겠는가. 다만 낭자의 가르침은 좋은 뜻이니 비자의 마음속에 새겨두겠다.”

강추로가 냉소하며 말했다. “강한 장수 밑에 약한 군사가 없다더니、심유향 밑의 비자들은 하나같이 말재주가 좋구나. 똑똑히 알아라! 강가 고모님은 이런 수작에 넘어가지 않는다.”

봉음은 어찌할 바를 몰라 웅얼거렸다. “낭자...”

강추로가 말을 이었다. “더 말하지 마라! 앞으로는 눈에 오직 추 부궁주 한 사람만 담지 마라. 솔직히 말하겠는데、추 부궁주 역시 나 강추로의 말을 들어야 한다.”

봉음이 멍해지며 말했다. “당신이 만인미(萬人迷) 강추로 낭자인가?”

강추로가 말했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알았는가? 노추강은 가명일 뿐이니 앞으로 조심해라.”

봉음이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자 명심하겠다...”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이었다. “낭자의 강호 명호로 성명을 바꾸기까지 하셨으니 참으로 억울하겠다.”

강추로의 얼굴에 갑자기 사나운 기색이 떠오르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봉음! 듣자 하니 네가 심유향의 충직한 비자라 하더군.”

봉음은 성품이 영민하여 이 말이 좋지 않음을 눈치채고 얼른 웃으며 말했다. “지금 비자는 추 부궁주의 충직한 노예다.”

강추로가 말했다. “옛말에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고、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했다.”

봉음이 말했다. “심유향(沈留香) 낭자마저 추 부궁주의 노비나 다름없으니、비자가 추 부궁주를 모시는 것은 다른 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강 낭자께서 명찰해 달라.”

강추로가 콧구멍으로 찬바람을 뿜으며 힝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충노라 칭하니、그렇다면 추 부궁주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겠구나?”

봉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은 당연하다.”

강추로가 말했다. “만약 추 부궁주가 네게 죽으라 한다면?”

봉음이 말했다. “비자는 감히 살지 못한다.”

강추로가 말했다. “만약 추 부궁주가 여정 중에 흥이 일어 네게 옷을 벗고 수침(侍寢)을 들라 한다면 너는 어찌하겠는가?”

봉음의 안색이 굳어지며 웅얼거렸다. “비자는...”

강추로가 추궁했다. “어찌하겠는가?”



봉음이 말했다. “비자는 스스로 그럴 만한 복이 없다고 생각한다.”

강추로가 차갑게 꾸짖었다. “중요한 요점을 피하려 하지 마라. 나는 네가 사실대로 대답하기를 원한다. 말해라、어찌하겠는가?”

봉음이 말했다. “예로부터 노비의 생사는 모두 주인의 손에 달린 법、하물며 이 미천한 몸뚱이뿐이겠는가. 비자는 오직 명을 따를 뿐이다.”

강추로가 말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너는 즉시 내게 말해라. 내가 알아서 너를 위해 해결해 주겠다.”

봉음이 말했다. “비자 명을 따르겠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나란히 말을 몰아 천천히 걸어갔다. 강추로가 추오상이 양가보에 가서 쉬려 하는 일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기색이었다.

이때 주성한이 탄 말 한 마리가 미친 듯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강추로가 그제야 고삐를 조이며 마중해 나갔다.

세 마리의 말이 마주치자 주성한이 외쳤다. “강 낭자! 어찌 이리 느릿느릿 가는가?”

강추로가 말했다. “소협이 추오상을 설득하기 편하도록 첩신이 고의로 한 걸음 뒤처진 것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재가 혼자서 어찌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는 지금 이미 홀로 말을 몰아 양가보로 가 버렸다. 우리도 어서 쫓아가서 힘을 합쳐 그를 만류할 수 있을지 보자.”

강추로가 말했다. “소협은 이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주성한(朱星寒)이 말했다. “일이 많은 것보다 없는 게 나은 법이다. 여정 중에 굳이 번거로운 일을 더 만들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강추로가 말했다. “소협! 첩신이 생각하기에 추오상이 양가보로 가는 것을 굳이 억지로 만류할 필요는 없다.”

주성한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낭자가 찬성한다는 말인가?”

강추로가 말했다.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첩신은 단지 추오상이 이처럼 행동하는 데는 필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그는 비록 성품이 오만하나 조급하지는 않으며、더욱이 제멋대로 행동할 사람도 아니다. 소협! 그를 그냥 두어라! 설령 소협이 권하려 해도 말릴 수 없을 것이다.”

주성한이 잠시 멍해지더니 말했다. “우리도 따라서 가야 하는가?”

강추로가 말했다. “그것은 당연하다. 우리 어서 가자!”

말소리와 함께 가죽 장화를 신은 발로 말배를 세차게 차자、그녀가 탄 말이 즉시 선두로 치고 나갔다. 주성한이 손을 한번 흔들고는 봉음과 나란히 말을 몰아 뒤를 쫓았다. 말발굽 소리는 천둥 같고 흙먼지는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가운데、세 마리의 말이 품(品) 자 모양을 이루며 양가보를 향해 질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마리의 말은 이미 양가보 앞에 도착했다.

주성한이 갑자기 외쳤다. “좋지 않군!...”

외침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가 탄 말은 이미 앞서 달려 나가 보문을 향해 직진했다. 그가 갑자기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추자、말이 히히힝 하고 울부짖으며 앞발을 공중으로 치켜들었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돈 후에야 비로소 멈추어 섰다. 말이 제대로 멈추기도 전에 주성한은 이미 안장에서 뛰어내렸다.

강추로(江秋露)와 봉음(鳳吟) 두 사람이 탄 말이 뒤이어 도착했고、그녀들이 말을 멈추고 나서야 주성한이 좋지 않다고 크게 외친 이유를 알아차렸다.

추오상이 보문을 마주하고 서 있었고、그의 앞 십 보 거리에 용모가 맑고 기이하며 정력이 넘쳐흐르는 송 선생이 서 있었다. 보문의 계단 위에는 한 줄로 여자들이 서 있었는데 양계령도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 여인들의 정중앙에는 품위 있고 화려한 차림의 중년 부인이 서 있었으니、그녀가 바로 양가보의 현임 보주였다. 양측에는 또 이십여 명의 도검을 찬 젊은 여인들이 서 있었는데、자리에 모인 사람들 거의 모두가 시선을 그 송 선생에게 던지고 있었다.

사태는 명백했다. 추오상이 기세를 부리며 양가보에 들어가 쉬려 하자、송 선생이 갑자기 나타나 가로막은 것이다.

현장에는 오십여 명의 사람이 있었으나、방금 도착한 세 마리의 말이 푸르르 하며 숨을 몰아쉬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고、말 한마디 꺼내는 사람조차 없었다.

까악! 까악! 둥지로 돌아가는 까마귀 떼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는데、그것은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닌 듯했다.

그 까마귀 떼가 멀어지고 사방이 다시 고요해졌을 때야 비로소 추오상이 천천히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송 선생! 이제 나의 동행들이 도착했으니、귀하께서는 방금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반복해 줄 수 있겠는가.”

송 선생이 주성한 등 세 사람에게 한 차례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추오상의 얼굴에 고정하며 쇳소리처럼 힘찬 어조로 말했다. “산천이 장려하고 대지가 넓으니 삼산오악과 오홍사해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이 없으나、오직 이 양가보만큼은 갈 수 없다.”

그 중년 부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첩신은 양가보주 양류월(楊柳月)이라 한다. 송 선생에게 한 말씀 여쭙고 싶다.”

송 선생이 몸을 반쯤 돌려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노부 귀를 기울여 듣겠다.”

양류월(楊柳月)이 말했다. “내 딸 계령의 말에 따르면、송 선생의 무공이 기이하고 뛰어나 손을 쓰는 사이에 본보의 ‘금령칠보탈혼초’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하더군. 지금 보문을 가로막고 귀한 손님을 가로막는 것은、혹 자신의 재주를 믿고 사람을 기만하며 이를 빌미로 위세를 떨쳐 무림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려는 속셈인가?”

송 선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보주께서 비록 여류이시나 참으로 달변이시니 노부 깊이 감탄했다. 하지만 보주께서도 마음속으로 아실 터、노부에게 결코 무공을 믿고 사람을 기만하려는 마음은 없다.”

양류월이 말했다. “그렇다면 손님이 보에 들어오는 것을 가로막는 용의가 무엇인가?”

송 선생이 말했다. “손님이 보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게 아니라、추오상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귀보에서 호기를 부려 무림 사람들을 널리 청하고 백일 동안 성대한 연회를 열어도 상관없으나、오직 추오상만큼은 보에 들어와 손님이 될 수 없다.”

주성한이 앞으로 다가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송 노선생! 재가 비록 강호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것이 적으나、노선생이 결코 억지를 부리거나 제멋대로 행동할 분이 아님은 알아볼 수 있다. 추 형이 보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 데는 필시 내막이 있을 터이니、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명백히 밝혀주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만약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암시를 해 달라. 그리하면 추 형이 스스로 물러날 것이다.”

송 선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안의 내막은 말로 밝히기가 곤란하다.”

주성한이 말했다. “노선생께서 전음술로 추 형 한 사람에게만 알려주어도 되지 않겠는가. 추 형이 사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송 선생(宋先生)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된다.”

주성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러면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다.”

추오상이 적절한 때에 말을 받았다. “송 선생! 만약 당신과 나의 처지가 바뀌었다면 당신은 어찌하겠는가?”

송 선생이 말했다. “네가 노부만큼의 나이가 된다면 필시 눈치를 채고 물러설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만약 내게 노선생 같은 무공이 있다면、필시 무력으로 관문을 돌파하려 했을 것이다.”

송 선생이 말했다. “지금의 너로서는 돌파할 수 없다.”

추오상이 말했다. “노선생 앞에서는 ‘금령칠보탈혼초’마저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무너졌는데、하물며 나의 이 보잘것없는 검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 역시 돌파할 수 없음을 안다.”

송 선생이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즉시 떠나야 마땅하다.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으니 길을 서둘러야지、무엇 때문에 이런 오기 싸움을 벌이는가?”

추오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필 무림 사람들은 모두 오기 싸움을 벌이기를 좋아한다. 내가 젊고 혈기가 왕성하니 자연히 면하기 어렵다. 사실 노선생께서도 그 아까운 나이에 어찌 오기 싸움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송 선생의 그 부릅뜬 두 눈에서 갑자기 사람을 서늘하게 만드는 안광이 뿜어져 나오더니 양류월의 얼굴로 옮겨갔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보주께서 손님을 돌려보내야 하겠다.”

양류월이 냉랭하게 말했다. “귀한 손님이 먼 길을 오느라 풍진이 묻었으니 정중히 맞아들여도 모자랄 판이다. 차 한 모금 축이지 못하고 술 한 잔 들지 못했는데 어찌 이대로 손님을 돌려보내겠는가? 죄송하나 첩신은 그 명을 따를 수 없다.”

송 선생이 시선을 양계령에게 한 차례 던지며 말했다. “낭자는 노부의 말을 어미에게 전했는가?”

양계령이 말했다. “전했다. 우리 보에서 추 부궁주를 대접한다면 귀하께서 양가보를 파멸시키겠다고 말이다.”

송 선생이 다시 양류월을 응시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보주께서는 정녕 보가 파멸하는 화가 두렵지 않은가?”

양류월(楊柳月)이 말했다. “만약 귀하께서 보를 파멸시킬 마음이 있고 실제로 그럴 힘이 있다면、우리 보에서 추 부궁주를 대접하지 않더라도 귀하는 똑같이 우리 보를 하루아침에 파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첩신은 먼 길을 온 손님을 소홀히 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만 알 뿐、복이 올지 화가 올지는 생각지 않는다.”

송 선생이 그녀들 모녀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추오상은 암중에 전음술로 주성한에게 말했다. “주 형은 목이 말라 차를 빌려 마신다는 핑계를 대고 당당하게 보 안으로 들어가라. 그리하여 소제가 틈을 타 관문을 돌파할 수 있게 해 달라.”

주성한 역시 전음술로 답했다. “추 형! 재가 살펴보건대、이 송 선생이 가로막는 의도는 도리어 추 형을 보호하려는 듯하니、절대 타인의 그 극진한 호의를 저버리지 마라.”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은 그가 극진한 호의를 베푸는 것인지 어찌 아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재가 보기에 그의 용모가 맑고 기이하며 정력이 넘쳐흐르니 결코 간사하고 망령된 사람이 아니다. 추 형은 삼가 생각하는 게 좋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어찌 되었든 그의 이런 행동은 너무 오만하여 사람이 참아내기 어렵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은 기어이 보 안으로闖입(闖入)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보 내에 단 한 걸음이라도 들여놓을 수 있다면 소제는 달게 받아들이겠다. 주 형은 더 이상 권하지 마라.”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이토록 완강하게 고집하니 재도 그저 명을 따를 수밖에 없다.”

추오상이 다시 전음술로 강추로와 봉음 두 사람에게 말했다. “추로와 봉음은 유의해라. 주 소협이 차를 빌린다는 핑계로 보문을 향해 걸어갈 때 너희 두 사람도 같은 이유로 뒤따라 움직여라. 걸음걸이는 느리게 하고、저 늙은이의 시선을 교묘하게 가로막아라. 내가 틈을 타 관문을 돌파하겠다.”

강추로가 말했다. “알았다.”

이때 송 선생과 양가 모녀의 대화는 이미 멈추어 있었고、주성한이 가볍게 기침을 한 번 하더니 말했다. “양 낭자! 길을 재촉하느라 목이 타서 견디기 어려우니 차를 좀 빌려 마실 수 있겠는가.”

양계령이 어찌나 영리한지 얼른 말했다. “주 소협은 이쪽으로 오라.”

주성한이 즉시 천천히 걸음을 옮겨 보문으로 향했다.

송 선생은 여전히 우뚝 선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강추로도 뒤이어 말했다. “양 낭자、우리 둘도 목이 몹시 마르니 사람을 시켜 향기로운 차를 두 잔 더 부어주게 해 달라.”

양계령이 말했다. “두 분도 이쪽으로 와서 드셔라!”

강추로가 즉시 봉음의 손을 잡고 나란히 보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송 선생은 여전히 꿈적도 하지 않았다.

강추로는 강호에서 구른 지 오래되어 잔꾀를 부리는 데 능했다. 그녀는 봉음을 이끌고 서로 마주 서 있는 송 선생과 추오상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가더니、갑자기 손을 들어 귀밑머리를 정리하는 척했다. 그 바람에 옷소매가 정확히 송 선생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추오상은 진작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두 발로 땅을 세차게 구르며 몸을 날려 솟구쳤다.

보문 앞에 서 있던 양류월、양계령 모녀를 포함한 한 줄의 여인들도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라、이때 갑자기 좌우로 갈라지며 한가운데로 통로를 열어주었다.

주성한은 마침 송 선생의 뒤쪽 측면에 도달해 있었다. 그는 추오상이 양가보에 들어가겠다고 고집하는 결정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나、지금은 이미 시위에서 떠난 화살 같은 형세였기에 돌보지 않을 수 없었다. 추오상이 움직이는 것을 본 그는 즉시 송 선생의 등 뒤로 바짝 다가섰다. 상대가 움직이려 할 때 그저 가볍게 옷자락만 잡아당겨도 송 선생이 나아가는 기세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강추로와 봉음은 한 걸음 더 앞질러 나가 두 사람의 신형으로 송 선생의 길을 단단히 봉쇄했다.

추오상이 날아가는 기세는 시위를 떠난 화살보다도 빠른 듯했다. 그가 원래 서 있던 곳에서 보문까지의 거리는 약 삼십 보였는데、신형이 솟구치자마자 이미 그 절반을 지나쳤다. 설령 송 선생이 주성한 등에게 제약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를 가로막을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 주성한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돌았다. 뒷일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고、눈앞에서 송 선생의 위풍을 꺾어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추오상의 신형이 이미 송 선생을 십 보 넘게 지나쳐 발끝이 보문 앞의 계단을 밟으려 하던 찰나였다. 송 선생의 왼팔이 거칠게 뻗어 나왔다. 그의 신형은 마치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듯했으나、갈퀴처럼 벌린 다섯 손가락이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이미 추오상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

강추로는 가슴이 서늘해져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으나、봉음이 갑자기 손을 써 송 선생의 곡지대혈을 점해 갔다.

송 선생이 나지막하게 호통을 치며 오른팔을 가볍게 휘두르자、봉음의 신형은 줄 끊어진 연처럼 삼 장 밖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그가 신형을 한 바퀴 돌리니 추오상은 뜻밖에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주성한이 급히 외쳤다. “봉음 낭자...”

송 선생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협은 대경실색할 필요 없다. 노부는 그녀를 상하게 하지 않았다.”

과연 봉음은 몸의 먼지를 털어내며 바닥에서 스스로 기어 일어났다.

추오상은 뜻대로 되던 계산이 어긋나자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자리에 있던 무리 역시 모두 경악하는 기색을 띠었다. 송 선생의 이 기이한 초식과 심오함을 헤아릴 수 없는 내력은 그야말로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추오상은 속으로 놀라면서도 얼굴에는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랑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는 관문을 돌파할 뜻이 없었고、단지 뜨거운 차 한 잔을 얻어 목을 축이려 했을 뿐이다!”

말을 하며 등 뒤로 돌리고 있던 손을 앞으로 옮기자、그의 손에는 뜻밖에도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향기로운 차 한 잔이 들려 있었다.

송 선생도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추오상이 관문을 돌파하는 데는 실패했으나 그 찰나의 순간에 뜨거운 차 한 잔을 낚아챘으니、이 역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하기 힘든 기이한 일이었다.

송 선생이 냉랭하게 말했다. “너는 이 뜨거운 차를 마시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추오상이 눈꺼풀을 치켜뜨며 말했다. “차 안에 독이라도 들었는가?”

송 선생이 말했다. “차가 입술에 닿는 순간 너는 양가보의 대접을 받아들인 셈이 되니、이는 양가보에 멸문의 화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것이 바로 재가 바라는 바다. 재가 보에 들어가 잠시 쉬어가겠다고 고집한 것은、귀하께서 호언장담하신 바를 정말로 실행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송 선생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노부가 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귀하의 무공으로 말하자면 만 사람을 죽일 수는 있겠으나、무림의 수대 문파 중 하나로 꼽히는 양가보를 파멸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송 선생이 말했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추오상이 말했다. “수천수백 년 동안 무림에는 귀하 같은 신수를 지닌 이들이 있었으나 여전히 여러 문파가 이어져 번성하고 있다. 이로 보아 만 사람을 죽이기는 쉬우나 한 문파를 파멸시키기는 어려운 법이니、귀하는 어찌하여 방금 하신 호언장담을 거두어들이지 않는가?”

양계령의 눈짓에 따라 보 안의 여인들이 일제히 술렁이며 환호성을 질렀다.

송 선생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노부는 한 번 말하면 반드시 실행하니 결코 거두어들이지 않는다. 너는 타인의 존망과 존속을 가지고 결코 장난감 다루듯 하지 마라.”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면 재가 한 번 시험해 보겠다...”

말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찻잔을 받쳐 들고 입술로 가져갔다.

송 선생이 갑자기 휙 하고 장풍을 한 차례 내뿜었다.

장력의 기세가 극단적으로 괴이하여 추오상은 이변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찻잔 역시 여전히 추오상의 두 손바닥 안에 들려 있었다. 그러나 찻물만큼은 한 줄기 가느다란 비처럼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추오상은 깜짝 놀랐고 자리에 있던 무리 역시 모두 안색이 변했다. 이만한 고수라면 양가보를 파멸시키는 것쯤은 정녕 식은 죽 먹기일 터였다.

송 선생이 말했다. “재앙은 스스로 자초해야 하는 법이지 타인의 손을 빌려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이 때문에 노부는 네가 이 차를 마시는 것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추오상이 두 손바닥을 천천히 벌리자 찻잔은 가루가 되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송 선생이 방금 허공에서 내뿜은 장풍의 경력은 참으로 사람을 놀라게 할 만큼 대단했으나、추오상의 머리카락 한 올 상하게 하지 않았다. 이러한 화후(火候)는 정말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니、무림을 둘러보아도 아마 비교할 수 있는 제이인자가 없을 것이다.

추오상의 표면적인 신태는 마치 놀라서 멍해진 듯했으나、암중에 전음술로 강추로에게 말했다. “강추로! 이 송 선생의 공력이 어떠한가.”

강추로가 말했다. “심오함을 헤아릴 수 없다.”

추오상이 말했다. “이와 비교할 만한 다른 이가 또 있겠는가?”

강추로가 말했다. “그의 발끝에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를 무림의 기재로 만들어 주겠다는 당신의 말은 그저 꿈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강추로가 말했다. “내가 큰소리치는 게 아니라、훗날 당신의 공력은 필시 그자보다 위에 서게 될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당신의 말은 참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

강추로가 말했다. “내가 말한 것은 실정이다. 현재 당신의 공력은 아직 잠재해 있는 단계이니、다시 십일 개월 동안 조식(調息)을 취하면 점차 발휘될 터、그때가 되면 당신도 자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지금 무림은 다사다난한 때이니、십일 개월은 무척이나 긴 세월이 될 것이다.”

강추로가 말했다. “그러니 당신은 인내해야 한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을 두고 하는 말인가?”

강추로가 말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추오상이 말했다. “심오함을 헤아릴 수 없는 저 송 노선생 앞이라면 내가 물러서지 않을 수 없으나、지금은 때가 아니다.”

강추로가 말했다. “당신은 대체 언제까지 더 기다리려 하는가?”

추오상은 더 이상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더니 중얼거렸다. “날이 이미 저물었군.”

양계령은 분명 그의 암시를 알아차렸다. 그녀가 손을 휘둘러 신호를 보내자、보문에 매달려 있던 한 줄의 채등(彩燈)이 먼저 불을 밝혔고、이어 땅에 박혀 있던 네 개의 거대한 송지(松脂) 횃불도 이글거리는 불꽃을 뿜어냈다.

불빛이 추오상의 얼굴을 비추자 그가 매우 정력적으로 보였으나、아쉽게도 미간에는 어렴풋이 숙살(肅殺)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주성한의 마음은 비할 바 없이 초조했으나、그저 조용히 추오상의 다음 행동을 기다릴 뿐이었다. 아버지를 고치기 위해 그는 추오상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했기에、설령 그가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이라 명한다 해도 거절하지 않을 것이요、거절할 수도 없었다.

송 선생의 태도는 더없이 침착했고、그의 시선은 시종 추오상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추오상이 갑자기 강추로와 봉음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양가보 대청 안에는 비록 좋은 술과 가공할 만한 요리가 있겠으나 우리에게는 즐길 복이 없으니、아무래도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하겠다. 어서 가서 들토끼 몇 마리를 잡고 산천수를 한 호 가득 길어오며 마른 장작 한 묶음을 주워와라. 우선 배부터 채우고 보자...”

말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려 주성한에게 말했다. “주 형! 우리 오늘 밤은 여기서 앉아서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하겠다.”

주성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저 추 형의 처분대로 하겠다.”

강추로와 봉음 두 사람은 추오상이 농담을 하는 게 아님을 알았다. 그가 저 송 선생과 끈질기게 대치할 작정인 듯 보이자、말안장에 매달려 있던 수통을 떼어 들고 두 사람이 나란히 떠났다.

송 선생이 말했다. “추 부궁주、네 이런 거동은 극히 현명하지 못하다.”

추오상이 말했다. “재가 결코 지혜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나、다만 인내심이 조금 있을 뿐이다.”

송 선생이 말했다. “너는 계속 기다릴 작정인가?”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송 선생이 말했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귀하께서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떠나기를 기다린다.”

송 선생이 말했다. “그러고 나면 너는 보 안으로 들어가 손님 대접을 받겠다는 말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그것이 바로 재의 뜻이다.”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 역시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재는 그래도 기다리겠다.”

송 선생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것만큼은 노부도 이해할 수 없군.”

추오상이 말했다. “춘추가 어찌 되시는가?”

송 선생이 말했다. “오십은 넘었고 육십은 채 되지 않았다.”

추오상이 말했다. “재는 스물하나이니 귀하에 비해 훨씬 젊다. 귀하께서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은 다툴 여지가 없는 사실이니、그러므로 대치 상태가 길어질수록 재에게 유리하다.”

송 선생이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고 입술 위의 짧은 수염을 가볍게 파르르 떨었다. 분명 크게 분노한 기색이었기에、곁에서 지켜보던 주성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암중에 추오상을 위해 식은땀을 흘렸다.

다행히 송 선생의 안색이 다시 느슨해지며 중얼거렸다. “참으로 철부지라 가르칠 수가 없구나!”

방금 송 선생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을 때 추오상 역시 속으로 내심 실겁했으나、이제 상대의 신색이 가라앉는 것을 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께서 비록 나이가 많으시다 하나、그러한 어조는 조금 과하신 게 아닌가?!”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는 너와 대치하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 없다. 만약 보 안으로 들어가 귀한 요리와 좋은 술을 즐기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다만、네가 들어간 후에는 영원히 보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재는 내일 아침에 길을 떠나야 한다.”

송 선생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일이 바로 양가보가 멸문하는 날이 될 터이니、말이 이쯤 이르렀으니 네가 스스로 잘 생각해라!” 말을 마치고는 당당하게 가 버렸다.

주성한이 얼른 추오상의 곁으로 다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추 형! 매사는 적당한 선에서 그쳐야 하는 법이다. 이 송 선생이 나타나 가로막은 것은 필시 선의에서 나온 듯하니 추 형은 깊이 생각하라.”

추오상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손님의 처지이니、주인에게 물어보는 게 어떻겠는가?”

그의 목소리가 무척 높았으니、이는 분명 양류월과 양계령 모녀 두 사람이 들으라고 의도한 것이었다.

양계령이 즉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주 소협! 이 일은 오직 당신의 결정에 달렸다.”

주성한이 말했다. “재는 감히 결정하지 못하겠다.”

양계령(楊桂玲)이 말했다. “가르침을 청하건대、저 송 선생이라는 자가 정말로 우리 보를 파멸시킬 만한 재간이 있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낭자께서 친히 보셨으니 굳이 다시 물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송 선생이 만약 귀보를 파멸시킬 마음을 먹는다면 그저 손을 한 번 번쩍 드는 사이에 끝날 일이다.”

양계령이 말했다. “그가 정말로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만약 정세가 핍박한다면 그는 크게 분노하여 흉계를 부릴 가능성이 매우 크니、절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양계령이 말했다. “소협께서 이토록 말씀하시니 우리 보에서 여러분을 대접하기가 곤란하겠다.”

사실 추오상 역시 보에 들어가 대접을 받을 생각이 없었기에 웃으며 물었다. “낭자는 겁이 나는가?”

양계령이 말했다. “만약 겁이 나지 않는다 한다면 필시 추 부궁주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우리 보가 감히 무림에 문을 열고 자리를 잡은 이상 누군가의 도발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나、무림 사람은 차라리 목숨을 잃을지언정 명성을 잃고 싶어 하지는 않는 법이니、우리 보의 생사존망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면 낭자는 무엇을 기피하는가?”

양계령이 말했다. “이 일에 추 부궁주를 연루시킬 수는 없다. 만약 우리 보가 정말로 하루아침에 파멸한다면 내막을 모르는 이들은 추 부궁주가 고의로 사단을 일으켰다고 여길 터이니、그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그녀는 과연 말솜씨가 좋아 하는 말이 사리에 맞고 당당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추오상은 속으로 다 알고 있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은 채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추 아무개가 심려해 준 정에 깊이 감사드린다. 훗날 만약 송 노선생이 마음을 바꾼다면 추 아무개가 다시 찾아와 뵙겠으니 이만 작별하겠다.”

양류월이 그제야 입을 열어 말했다. “소홀히 대접한 죄를 용서해 달라.”

말을 마치고 손을 한 번 흔들자 보문 밖에 있던 수십 명의 무리가 차례로 보 안으로 물러갔고、두 짝의 철문도 천천히 닫혔다.

결국 이처럼 끝이 나자 주성한은 꽤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추 형! 우리 길을 재촉하자! 서주부까지는 아직도 육십 리나 남았다!”

추오상은 그에게 대꾸하지 않고 혼자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고개를 들며 말했다. “소제가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저 송 선생이 소제를 양가보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용의가 무엇인지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군.”

주성한이 말했다. “재가 짐작하기로는 필시 선의에서 나온 듯하다.”

추오상이 말했다. “어찌하여 그렇게 생각하는가?”

주성한이 말했다. “한 가지 일이 있으니、재가 안 지는 이미 오래되었으나 그간 추 형에게 줄곧 말하지 못했다.”

추오상이 말했다. “무슨 일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은 양계령 낭자가 어찌하여 줄곧 기회를 보아 추 형과 친해지려 했는지 아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거기에도 필시 무슨 연유가 있는 모양이군?”

주성한이 말했다. “큰 연유가 있다. 양계령 낭자는 현재 아직 출가하지 않고 친정에 머무는 중인데、그녀의 어머니가 추오상 형을 데릴사위로 삼으려 한다.”

추오상은 듣고 나서 표정이 순간 멍해지더니、이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참으로 사람을 우습게 만드는군.”

그러나 주성한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양가보의 전통에 따르면 역대로 마음에 두었던 데릴사위를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다.”

추오상이 말했다. “이번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만약 송 선생이 중간에서 훼방을 놓지 않았다면、그녀들의 뜻이 어긋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추오상이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양가보는 역대로 늘 여인이 장문인을 맡아왔기에、아무리 대단한 영웅호걸이라 한들 일단 데릴사위로 들어가면 곧두각시가 되고 만다. 영웅호걸이 아니라면 양가보의 눈에 들지도 못했을 터인데、수많은 세월 동안 사위를 고르는 일로 분쟁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고、데릴사위가 다시 양가보를 탈출했다는 소문도 없었으니、이로 보아 그녀들에게 필시 사위를 부리고 제어하는 수단이 따로 있는 게 분명하다.”

추오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부리고 제어하는 수단 따위는 오직 어리석은 자에게나 통할 뿐、추 아무개를 막을 수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돌연 목소리를 높여 이었다. “송 선생이 소제에게 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한사코 허락하지 않은 것은、설마 들어가자마자 양가보의 악독한 함정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었단 말인가?”

주성한이 말했다. “그것까지는 알 길이 없다.”

추오상이 말했다. “언제쯤 그 송 선생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그때가 되면 소제가 직접 그에게 물어보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 역시 추 형에게 순순히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강추로와 봉음이 급히 돌아왔는데、그녀들은 마른 장작을 줍지도 못했고 들토끼를 잡지도 못했다. 마치 현재의 정세를 미리 알기라도 한 듯、이미 그러한 물건들이 필요하지 않음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봉음이 앞으로 깡충 뛰어 나오며 기쁜 기색으로 말했다. “저 노선생의 무공은 참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더군. 옷소매를 한 번 휘두르는 기세로 사람을 삼 장 밖으로 날려 보내면서도、머리카락 한 올 상하게 하지 않는 수법은 내 평생 들어본 적도 없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를 만났는가?”

봉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났다. 그는 우리에게 어서 돌아가라 일렀고、아까 넘어졌을 때 손발을 다치지는 않았는지 묻기까지 했다. 보아하니 그는 좋은 사람인 듯하다.”

강추로가 그녀를 한 차례 흘겨보며 차갑게 꾸짖었다. “봉음! 네 말은 끝이 없구나?”

봉음은 즉시 고개를 숙이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강추로가 추오상의 곁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가 당신에게 구구중양절 밤에 홀로 서주부 서남쪽 성모퉁이에 있는 연자루(燕子樓)로 와서 자신과 만나라 했다. 그리고 내게 시 한 수를 전해 주며 당신에게 숙독하라 일렀다.” 말을 마치며 소매 안에서 백견(白絹)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추오상이 횃불의 불빛을 빌려 백견을 펼쳐 보니 글씨가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듯 힘찼고、그 시의 내용은 이러했다.


  만창반월만렴상(滿窓盼月滿簾霜)、

  피냉등잔불와상(被冷燈棧拂臥床)、

  연자루중상월야(燕子樓中霜月夜)、

  추래지위일인장(秋來只爲一人長)。


  창가 가득 달을 바라보니 휘장 가득 서리 내리는데、

  이불은 차고 등불 스러져 잠자리를 보살피네.

  연자루 안 서리 내리는 달밤、

  가을이 오니 오직 한 사람 위해 깊어만 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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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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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상인(路上人) | 작성시간 26.06.21 깊이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무극태극권 | 작성시간 26.06.22 new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조상 | 작성시간 26.06.22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사니조아 | 작성시간 26.06.22 new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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