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十三 回. 대뇨기원(大闹妓院)....기원에서 떠들썩하게 놀다

작성자겨울나그네|작성시간26.06.23|조회수61 목록 댓글 6

            < 第 二十三 回. 대뇨기원(大闹妓院)....기원에서 떠들썩하게 놀다. >




추오상이 손을 들어 하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낭자가 증인이 될 수 있을 터인데、이 추모는 결코 허언을 늘어놓는 게 아니오. 금릉 성안에서 이 추모는 일찍이 염군도(閻君濤)와 몇 차례 안면을 익힌 적이 있소.”

하향(荷香)이 묵묵히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동천(童天)이 말했다.

“듣기로 염 궁주는 타고난 자질이 기이하게 뛰어나 백가의 무공을 두루 통달했으니、무림의 커다란 기재라 하더이다.”

추오상이 냉소하며 말했다.

“보잘것없는 잔재주요、날뛰는 조무래기일 뿐이니 어찌 대성할 수 있겠소.”

호도가 확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추 부궁주、그대도 호모가 염군도와 막역한 결의형제 사이임을 알 터인데、이 호모의 면전에서 말을 할 때는 얼마간 여지를 남겨두어야 할 것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추모는 원래 말할 때 여지를 두지 않소. 다만 귀하의 모친이 외간 남자와 간통한 증거를 붙잡지 못했을 뿐이지、만약 붙잡았다면 이 또한 똑같이 대중 앞에 들추어내어 무림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만들었을 것이오.”

이 말이 다소 하류하고 속될지언정、천면귀 호도 같은 자를 상대하기에는 그야말로 대증하약(對症下藥)이라 할 만하다.

호도의 인내심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낸다. 두 줄기 처진 눈썹이 일직선으로 팽팽하게 맞서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의 말을 빌려 쓰자면、입이 번지르르한 것보다는 도검이 강한 게 낫고、말이 강한 것보다는 밑천이 단단한 게 나은 법이오!”

추오상이 덤덤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하께서 이 추모와 한 판 겨루어보고 싶으신 모양이구려?”

천면귀(千面鬼) 호도(胡道)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추오상이 천천히 일어서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유유서라 했으니、귀하께서 먼저 판을 짜 보시오.”

호도가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농사꾼 같은 자세를 취하더니 험악하게 말했다.

“호모는 먼저 그대와 술을 겨루고 싶소.”

추오상이 크게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술을 겨루자고!”

천면귀 호도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예부터 영웅치고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이가 없었소. 술을 마실 줄 알아야 사내대장부라 할 수 있고、호쾌하게 들이켜야 진정한 장부요. 호모가 먼저 열 근을 마실 터이니...”

마르고 거친 팔을 한 번 휘두르며 호통을 친다.

“술을 들여오너라!”

호통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다섯 근짜리 술단지 두 개가 즉시 주석 위로 옮겨진다.

천면귀 호도가 술단지를 움켜쥐고 꿀꺽꿀꺽 연거푸 크게 들이켜더니、순식간에 다섯 근의 화주(燒刀子)를 배 속으로 털어 넣는다.

추오상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미간을 찌푸린다. 그 역시 술을 잘 마시는 편이지만、한숨에 연달아 열 근을 들이켤 만한 양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칠랑(沈七郞)과 홍수(洪秀)는 더욱 경악하여 눈을 크게 뜨는데、그들은 분명 추오상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반면 천산이살(天山二煞)과 오색채접(五色彩蝶)은 마음속으로 은밀히 비웃어댄다. 주량을 논하자면 천면귀 호도가 가히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으니、추오상이 이 첫 번째 관문조차 절대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 여긴 탓이다.

추오상이 속으로 멍하니 궁리하고 있을 때、문득 강추로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추오상、자네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부리고 있는 건가?”

추오상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전음술로 말했다.

“내가 염군도를 끌어내려 하오.”

강추로(江秋露)가 말했다.

“그 염군도가 어떤 인물인데 그러는가. 그가 작정하고 자취를 감춘 채 나오지 않는다면、자네가 그의 조상 만대를 욕한다 해도 얼굴을 내밀지 않을 걸세. 내가 보기에는 더는 헛수고하지 않는 게 좋겠네!”

추오상이 말했다.

“그대의 의견은 어떠하오?”

강추로가 말했다.

“우리는 염군도가 오늘 밤 이 기괴한 국면을 짜놓은 목적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서둘러 알아내야 하네.”

추오상이 말했다.

“어떻게 알아내겠소?”

강추로가 말했다.

“저 이삼이라는 자가 안팎으로 드나들며 실마리를 잇는 핵심 인물인 듯싶네.”

추오상이 말했다.

“그는 지금 연자루로 떠났소만...”

강추로가 말을 가로챈다.

“그놈의 허풍을 곧이듣다니! 나와 봉음이 교대로 그놈을 계속 감시하고 있었는데、대문 밖으로는 단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네.”

추오상이 말했다.

“그럼 이삼이 지금 어디에 있소?”

강추로가 말했다.

“뒤채로 들어갔네.”

추오상이 말했다.

“아마도 염군도를 만나러 간 모양이구려.”

강추로가 말했다.

“일은 그렇게 처리함세. 내가 어떻게든 이삼을 압박해 캐묻고 올 테니、자네는 그곳에서 상황을 안정시키고 있게나.”

추오상이 말했다.

“상황이 내게 불리하오. 천면귀 호도가 지금 나와 주량을 겨루자고 다그치고 있소.”

강추로가 말했다.

“마시게나!”

추오상이 말했다.

“한두 잔이 아니오. 나더러 한숨에 열 근을 들이키라고 하잖소!”

강추로가 냉소하며 말했다.

“추오상、자네가 정말 잠시 판단력이 흐려졌구려. '선풍검법' 중 그 '만천화우'라는 초식을 설마 홀랑 다 잊어버린 것인가?”

추오상이 번뜩 깨닫는 바가 있다.

이때 천면귀 호도가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술이로다、좋은 술이야! 추 부궁주、이제 자네 차례요!”

추오상이 말했다.

“정말로 좋은 술이오?”

동천이 끼어들며 말했다.

“진짜 보정산(保定産) 화주(燒刀子)가 틀림없소.”

추오상이 말했다.

“좋소! 개봉하지 않은 원장 술단지로 진흙 봉인이 그대로 박힌 놈 두 개를 가져오시오.”

천면귀 호도가 팔을 휘두르며 소리친다.

“술을 들여오너라! 개봉하지 않고 진흙 봉인이 그대로 박힌 놈으로 두 개 가져오너라.”

두 단지의 술이 들어오자、추오상이 천천히 사절검을 뽑아 든다. 순간 방 안 가득 광채가 번뜩이니、자리에 앉은 자들은 천면귀 호도를 포함하여 모두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경악하는 기색이 스친다.

추오상이 정밀하게 검 끝으로 단지 입구의 진흙 봉인을 헤집어 열고는、단검을 술단지 속에 찔러 넣는다. 그러자 한 줄기 술샘이 즉시 검신을 타고 솟구쳐 오르고、추오상이 입을 벌려 이를 받아 마신다. 이 고도의 공력을 다루는 솜씨에 천면귀 호도는 그만 넋을 잃고 안색이 변한다.

사실 추오상은 강추로의 일침을 들은 뒤 은밀히 수작을 부린 터였다. 술기운의 대부분은 검신의 미세한 진동에 의해 미세한 물방울로 변해 공중으로 날아갔고、실제로 그의 입속으로 들어간 양은 두 근도 채 되지 않는다.

다만 천면귀 호도가 그 광경에 다소 넋을 잃은 탓에 파탄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며、자리에 있던 천산이살과 오색채접은 당연히 안목이 서툴러 그 심오한 이치를 엿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추오상이 단지 안의 술을 다 마시고 사절검(四絶劍)을 얌전하게 거두어들이자、천면귀 호도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좋은 주량이요、좋은 공력이로다! 나와 자네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니、이제 두 번째 라운드를 겨루어야겠소.”

추오상이 덤덤하게 묻는다.

“어떻게 겨루시겠소?”

천면귀 호도가 기괴하게 한 번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주색재기(酒色財氣)를 떠날 수 없는 법이니、술은 이미 겨루었고 이제 호모는 추 부궁주와 저 '색(色)' 자를 두고 겨루어보고 싶소.”

추오상은 그만 크게 어리둥절해한다.

천면귀 호도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추 부궁주는 인물이 출중하니、이 방면에서도 필시 독보적인 솜씨가 있을 터이지요.”

술자리에 늘어선 시중드는 기생들이 저마다 비단 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킥킥거리며 교태 섞인 웃음을 터뜨린다.

추오상의 신색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으며、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만약 이 방면으로 겨루게 된다면、눈앞의 이 술자리는 이만 흩어져야 할 것이오.”

천면귀 호도가 사악한 어조로 웃으며 말했다.

“우리 둘이 겨루고 난 후에 다시 상을 차려도 늦지 않소.”

추오상이 말했다.

“귀하께서는 강호에 일찍 출두하여 경험이 많으시고、남들과 판을 짜 본 적도 필시 적지 않을 것이오. 이처럼 서로 겨루는 싸움판 또한 수없이 보아오셨을 터인데、오늘 밤에는 한 가지 규칙을 간과하셨구려.”



천면귀 호도의 눈빛이 미세하게 번뜩이며 말했다.

“무슨 규칙이란 말이요?”

추오상이 말했다.

“첫 번째 라운드는 귀하께서 판을 짜 오셨으니、이 두 번째 라운드는 마땅히 이 추모가 문제를 낼 차례요.”

홍수는 추오상이 한턱내는 술을 얻어마신 데다、나중에 사람들이 그를 '추 부궁주'라 부르는 것을 들었고、조금 전 술샘이 스스로 뿜어져 나오게 하는 내공의 한 수까지 보았기에 진작부터 그에게 아첨할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에 기회를 틈타 끼어들며 말했다.

“연달아 그쪽에서만 판을 짜고 문제를 낸다는 게 말이 안 되지요.”

추오상이 고개를 돌려 동씨 형제에게 묻는다.

“두 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두 사람이 일제히 말했다.

“마땅히 추 부궁주께서 문제를 내셔야지요.”

천면귀 호도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좋소! 좋소! 자네가 문제를 내 보시오! 감정싸움을 벌이거나 죽기 살기로 덤비는 겨루기 방식만 아니라면、이 호모는 무엇이든 받아들이겠소. 판을 짜 보시오!”

추오상은 이미 가슴속에 복안이 있었기에 덤덤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서로 질문을 하나씩 던져서、답을 하지 못하는 자가 지는 것으로 하십시다.”

천면귀 호도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그렇게 하십시다.”

잠시 말을 멈추더니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자네가 먼저 물어보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본래 이 추모가 먼저 묻는 것이 순리요.”

천면귀 호도가 크게 소리친다.

“물어보시오、물어봐!”

추오상이 한 자 한 자 힘주어 묻는다.

“염군도는 지금 어디에 있소?”

그야말로 한마디 말이 좌중을 놀라게 하니、오늘이 어떤 세상인지도 모른 채 어리둥절하게 앉아 있는 기생들과 심칠랑、홍수를 제외하고는 모두의 안색이 싹 변한다. 그들은 일제히 천면귀 호도를 바라보며 그가 어떻게 대답할지 주시한다.

천면귀 호도의 얼굴에 스친 경악하는 기색은 찰나 사이에 사라졌고、그는 평온한 어조로 답한다.

“호모는 모르오.”

이 대답은 오히려 추오상의 예상을 다소 벗어난 것이라、추오상은 즉시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 그렇다면 귀하가 진 것이오?”

천면귀 호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모가 졌소...”

어조를 잠깐 멈추더니 말을 잇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네가 이 라운드를 이겼다고 볼 수는 없소. 왜냐하면 이 호모는 아직 질문을 던지지 않았으니 말이요. 만약 자네 역시 답을 하지 못한다면 이 판은 비긴 셈이 되오.”

추오상이 말했다.

“물어보시오.”

천면귀 호도가 느릿한 어조로 묻는다.

“듣자 하니 자네의 부친인 추일장이 사실은 '비조괴객'의 화신이라 하던데、그 말이 사실이오?”

여기 이르자 추오상의 인내심은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다. 게다가 말로써 염군도를 자극해 끌어내려던 계획마저 실패했음을 깨달았기에、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사절검을 뽑아 든다.

천면귀 호도의 눈빛이 서늘해지며 경악하여 말했다.

“추 부궁주、답을 하지 못해도 상관없거늘、어찌 이리 급하게 검을 쓰려 하시오?”

추오상이 검을 들어 겨누니、등불 아래에서 만 장의 검화가 번뜩이며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하게 흩어진다. 그가 무겁게 호통친다.

“호도! 네놈이 이 추모의 가장 큰 금기를 건드렸다.”

그 천면귀 호도는 뜻밖에도 당황하지 않고 연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멈추시오! 멈춰! 이 호모가 대체 무슨 금기를 건드렸다는 것인지、먼저 명확히 일러주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너는 돌아가신 내 아버님의 함자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았어야 했고、더구나 그 '비조괴객' 따위와 나란히 비교하지 말았어야 했다.”

천면귀 호도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호모가 잘못했소. 자네 부친께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술 석 잔을 벌주로 마시겠소.”

세간에 여우가 가장 교활한 동물이라 전해지는데、이 호도는 과연 여우의 도리를 제대로 배운 자라 상황에 따라 재빨리 돛을 바꾸고 기회를 보아 물러설 줄 알았으며、추오상이 쥔 '사절검'의 날카로운 기세를 정면으로 받아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추오상은 그를 순순히 놓아주지 않는다. 호도가 막 술잔을 들려 할 때、명황황한 단검이 스윽 뻗어 나가 그 술잔을 단단히 찍어 누른다. 호도는 내공으로 대적할 수 없음을 진작에 알아챈 듯、서둘러 손을 쏙 거둔다.

추오상이 차갑게 말했다.

“벌주로는 안 된다.”

호도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찌해야 하오?”

추오상이 말했다.

“내 검을 세 차례 받아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단검이 초식도 없이 초연하게 쓱 치고 올라간다.

천면귀 호도가 휙 자리를 피하며 몸을 빼는데、그 신법이 기이할 정도로 빠르다.

그가 입으로는 연신 말을 내뱉는다.

“추 부궁주、검을 쓰기 전에 잠깐만 기다리시오. 호모는 검법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니、세 차례는 고사하고 단 한 검도 받아내지 못하오.”

추오상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리 겸손할 필요 없다. 첫 번째 검은 네놈이 이미 피해 가지 않았느냐.”

호도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추 부궁주! 자네가 허초를 뻗어 준 덕분이지、안 그랬으면 이 호모는 진작에 대자로 누웠을 것이오!”

추오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면귀 호도를 향해 압박해 들어가며 차갑게 말했다.

“호도! 너 역시 강호에서 이름 깨나 날리는 인물인데、어찌 이리 사람 맥을 빠지게 하느냐. 검을 받아라!”

호도가 굽신거리며 읍을 하고 말했다.

“추 부궁주、장난치지 마시오. 자네의 그 검은 한기가 번뜩이는 게 분명 예리하기 그지없을 터인데、스치기만 해도 핏자국이 날 테니 어서 거두어들이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내가 검을 거두길 바란다면、무릎을 꿇고 내게 머리를 세 번 조아려라.”

무림 인물들은 목숨을 잃을지언정 명예를 잃지 않으려 하니、머리를 세 번 조아리게 하느니 차라리 죽여도 결코 응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천면귀 호도는 툭 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어 버린다.

쿵! 쿵! 쿵! 연달아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데、조금도 대충 하는 기색이 없다.

추오상은 이처럼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는 인간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해、결국 검을 칼집에 거두어들인다.

천면귀 호도는 여전히 바닥에 엎드린 채 말했다.

“추 부궁주、이 호모는 이제 일어나도 되겠소?”

추오상이 손을 한 번 내저으며 말했다.

“일어나시오!”

천면귀 호도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갑자기 한 줄기 한기가 번뜩이더니 그의 소맷자락 안에서 순식간에 수십 발의 수살(袖箭)이 뿜어져 나온다. 수법도 기괴하게 빠르고 화살이 날아오는 속도 역시 전광석화 같아、일순간 차가운 광막이 추오상의 온몸을 덮쳐 누른다.

추오상은 설마 이런 수작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파공성을 듣자마자 번개처럼 신형을 회전시키며 두 팔을 동시에 휘둘러 화살들을 모조리 바닥으로 쳐낸다. 그러나 그의 왼팔은 끝내 두 발의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박히고 만다. 푸르스름한 비단옷 겉으로 붉은 깃털이 드러나니 유독 선명하게 눈에 띈다.

홍수가 번개같이 달려들어 급히 외친다.

“추 공자님! 왼팔에 화살을 맞으셨습니다.”

추오상은 산처럼 우뚝 선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천천히 왼팔에 박힌 두 발의 수살을 뽑아내어 눈앞에 대고 살펴본다.

수살은 깃털까지 합쳐도 두 치가 채 되지 않고 은침처럼 가느다란 것이、그 자체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만한 크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화살촉에 극독이 발려 있다는 뜻이다.

추오상이 호도를 매섭게 노려보며 냉소한다.

“훌륭한 수법이구나!”

이때의 천면귀 호도는 이미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하며 오만하게 웃어댄다.

“대장부는 모름지기 굽힐 때와 펼 때를 알아야 하고 강온을 겸비해야 하는 법이지. 그리하여 이 호모가 강호를 누빈 이래로 가는 곳마다 이기지 못한 적이 없었소.”

추오상이 말했다.

“화살촉에 필시 극독이 발려 있겠지.”

호도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어조를 잠깐 멈추더니 말을 잇는다.

“하지만 이 호모가 추 부궁주를 해할 생각은 없소. 자네가 이 호모와 함께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담소를 나누다가 날이 밝은 뒤에 헤어지겠다고 약조만 한다면、이 자리에서 즉시 해독약을 바치겠소.”

추오상은 영리하기 이를 데 없는 자라、이 말을 듣자 가슴속으로 덜컥 깨닫는 바가 있다. 하향과 이삼이 했던 말들을 세심히 떠올리며 서로 맞추어 본 끝에、마침내 그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다. 염군도가 이처럼 국면을 짜놓은 목적은 분명 오늘 밤 자신과 송 선생이 연자루에서 만나기로 한 약조를 막으려는 수작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가슴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긴 척하며、실제로는 전음술로 은밀히 부른다.

“강 낭자...”

강추로가 말을 가로채며 답한다.

“그 이삼이라는 자를 내가 처단해 버렸네. 질문은 한마디도 캐내지 못했어.”

추오상이 말했다.

“더는 조사할 필요 없소. 내가 이미 염군도의 기괴한 국면을 깨뜨렸소.”

강추로가 말했다.

“그게 어찌 된 일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자세히 말할 겨를이 없소. 그대와 봉음은 안팎으로 드나드는 통로를 굳건히 지켜 주시오. 내가 곧 이곳을 벗어날 터이니...”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심칠랑과 홍수 두 사람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두 분은 먼저 걸음을 옮기시는 게 좋겠소.”

심칠랑은 진작부터 추오상이 무림의 대단한 인물임을 알아차렸고、이곳이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될 곳임을 본능적으로 느꼈기에 서둘러 홍수를 이끌고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러자 천산이살이 앞을 가로막으며 일제히 말했다.

“두 분! 술자리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가시려 하다니、이 무슨 흥을 깨는 짓입니까.”

오색채접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붙잡는 시늉을 취하는데、실제로는 '모란청'의 큰 대문을 굳건히 봉쇄한 형국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동씨 형제! 당신들과 나 모두 이 기방의 손님 입장일 뿐인데、굳이 염군도를 위해 서로 얼굴을 붉히며 부딪칠 필요가 있겠소.”

동천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추 부궁주、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상에 깨지지 않는 술자리는 없고 이 술판 역시 조만간 끝날 터인데、굳이 이 두 친구를 먼저 보내실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추오상이 냉소하며 말했다.

“천산이살도 사람을 잘못 볼 때가 있구려. 이 두 사람은 이 추모의 부하가 아니며、더구나 무림 인물도 아니오. 그들을 여기 붙들어 둔들 대체 어디에 쓰겠소?”

동천은 그만 멍해지고 만다.

심칠랑이 말했다.

“소인들은 비단 장사를 하는 상인들일 뿐입니다. 객잔에서 우연히 추 공자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을 뿐、평생 도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으니 부디 저희를 보내 주십시오!”

홍수 역시 몇 가지 권법과 발차기를 할 줄 알아 스스로 무술을 닦은 자라 자부해 왔으나、눈앞에 있는 인물들의 무시무시한 기세를 보고 나서는 감히 위세를 떨칠 엄두도 내지 못한 채、겁을 집어먹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다.

천면귀 호도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추 부궁주、자네가 호모를 상대하여 날이 밝을 때까지 술을 마시겠다고 응할 것인지 어서 빨리 대답하는 게 좋을 것이오. 조금이라도 더 지체했다가는 자네의 그 왼팔을 아주 쓰지 못하게 될 터이니 말이요.”

추오상이 말했다.

“호도! 네놈의 잔꾀가 참으로 교묘하고 수살의 공력 또한 훌륭하다만、내게 부질없이 머리를 세 번 조아린 꼴이 되고 말았구나. 이 추모는 백독이 침범하지 못하는 몸이니、그딴 잔재주로는 나를 상하게 할 수 없다.”

천면귀 호도의 신색이 흠칫 굳어지더니、맹렬하게 오른발을 차 올린다.

슈슉! 파공성이 연달아 들리며、신발 끝에서 한 무리의 한기가 번뜩이는 비도가 십여 자루나 연달아 뿜어져 나온다.

추오상은 자신이 정말로 백독불침의 능력을 갖추었음을 확실히 증명해 보이기 위해、신형을 번개처럼 회전시키며 왼손을 뻗어 그 십여 자루의 비도를 모조리 낚아챈다. 그러고는 손을 털어 다시 날려 보내니、십여 자루의 비도가 천면귀 호도의 발끝 앞에 일직선으로 나란히 박히는데、칼날이 돌바닥을 한 치나 뚫고 들어간다.

천면귀 호도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하며 연달아 서너 걸음 물러선다.

그 천산이살과 오색채접 역시 약속이나 한 듯 안색이 싹 굳어진다.

추오상이 말했다.

“이살 형제、아직도 손님을 더 붙들고 싶으시오?”

천산이살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볼 뿐、일시적으로 할 말을 잃고 침묵한다.

이 한 판의 술자리에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심칠랑과 홍수는、이제 도망쳐도 좋다는 말을 듣자마자 네 다리를 번개처럼 놀려 잽싸게 '모란청'을 빠져나간다. 바깥 통로에는 필시 가로막는 자가 없을 터이고、설령 가로막는 자가 있다 한들 강추로와 봉음이 버티고 서서 보호해 줄 터였다.

추오상이 냉소하며 말했다.

“호도! 네놈이 조아린 세 번의 머리는 조금도 억울할 것이 없다. 이 추모가 네놈을 세 번 살려주기로 하겠으니、이것이 첫 번째요、아직 두 번의 기회가 더 남았으니 장부에 잘 적어 두거라...”

고개를 돌려 천산이살에게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두 분! 이만 실례하겠소. 우리 후일을 기약하십시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간다.

오색채접이 과연 몸을 던져 가로막아야 할지 갈팡질팡 망설이고 있을 때、다청 밖에서 갑자기 네 명의 홍의 여인이 걸어 들어오니、바로 '백화궁'의 홍의호법들이다.

추오상이 차갑게 말했다.

“네 사람이 수고스럽겠지만 염 궁주에게 말을 좀 전해 주시오. 이 추모가 맛 좋은 요리와 술을 과분하게 대접받았으니、다른 날 대면하여 감사 인사를 올리겠다고 말이요.”

그중 사공이 한 명의 홍의 여인이 가볍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사녀는 사홍영이라 하옵니다. 마침 염 궁주님을 대신하여 술을 세 차례 권하려 하던 참이니、추 부궁주께서는 부디 체면을 보아 발걸음을 멈추어 주십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손님을 붙잡는 데도 분수가 있는 법이오. 이 추모는 기방에 미련을 둘 생각이 전혀 없으니 굳이 괴롭게 붙잡지 마시오. 물러서시오.”

손에 쥔 단검을 가볍게 치켜 올리니、상대 네 사람이 좌우로 쩍 갈라선다. 그 틈을 타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가려 한다.

갑자기 천면귀 호도가 멈추라며 크게 호통을 친다! 추오상이 몸을 돌려 고개를 돌리는 순간、눈앞에 붉은 광채가 한가득 들이닥친다.

단검을 휘둘러 한 줄기 맑은 검막을 환시하니、붉은 광채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천면귀 호도가 기이한 암기를 내뿜은 것인데、그것은 마치 날아다니는 바퀴 같기도 하고 고슴도치 같기도 한 형태에 온통 혈홍색을 띠고 있으며、공중을 빙글빙글 선회하며 춤추듯 날아다니다가、지금은 추오상의 사절검에 턱 하니 꿰여 있다.

추오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호도! 네놈이 가진 암기가 참으로 다양하구나!”

호도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추 부궁주 앞에서는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며、그저 보잘것없는 잔재주일 뿐이지요.”

추오상이 말했다.

“이번에도 너를 살려줄 터이니、이제 네놈에게 남은 목숨은 단 한 번뿐이다.”

손을 털어 휙 던지며 단검에 꿰인 바퀴 같고 고슴도치 같은 괴상한 물건을 떨어뜨리려 했으나、뜻밖에도 그 괴상한 물건은 몇 바퀴 뱅글뱅글 돌 뿐、여전히 단검 위에 단단히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천면귀 호도가 하하 크게 웃으며 말했다.

“추 부궁주、그것은 만년 빙곡의 자철로 주조한 것이라 결코 떨어뜨릴 수 없소. 이제 자네의 그 무림에 명성이 자자한 사절검에 장식품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니、이 어찌 더 멋지지 않겠소...”

어조를 가라앉히며 말을 잇는다.

“이살(二煞)! 오접(五蝶)! 사호법(四護法)! 어찌 어서 빨리 염 궁주님을 위해 손님을 붙잡지 않는가!”

이 한마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남녀 아홉 명이 일제히 병기를 뽑아 들고 추오상을 겹겹이 포위한다. 사정과 상관없는 몇몇 기생들은 이미 내청의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겼으나、오직 하향만은 여전히 술자리 앞에 단정히 앉아 싸움에 가담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다.

천산이살이 뽑아 든 것은 검 같기도 하고 갈고리 같기도 한 괴상한 병기인데、추오상은 안목이 높은 전문가라 그것이 '옥구사'라 불리는 외문 병기임을 대번에 알아본다.

오색채접은 각자 한 쌍의 한기가 번뜩이는 비수를 쥐고 있는데、추오상이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그것이 예리하기 그지없는 명검임을 알 수 있다.

네 명의 홍의호법은 각자 한 가닥의 붉은 줄을 쥐고 있고 줄 끝에는 철환과 갈고리가 달려 있으니、이는 사람을 옭아매는 사파의 기괴한 병기다.

추오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과인한 내공과 예리한 검법을 지니고 있기에、비록 포위망 속에 갇혀 있을지언정 결코 겁을 집어먹지는 않는다. 다만 단검 위에 괴상한 물건이 척 달라붙어 있는 탓에 검을 마음먹은 대로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없으니、마음속으로 은밀히 고통을 삼킨다.

홍의호법(紅衣護法)의 우두머리인 사홍영(謝紅英)이 말했다.

“추 부궁주、다시 자리로 돌아가 술을 몇 잔 더 나누는 것도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닐 터인데、어찌 이리 서로 병장기를 겨누며 피를 흘리는 지경에 이르려 하십니까?”

그녀의 말로 인해 추오상은 자신의 판단이 전적으로 옳았음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염군도가 이처럼 대대적으로 장황하게 일을 벌여 자신과 송 선생의 약조를 가로막는 데는、필시 이 뒤에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을 터였다.

송 선생이 정해 둔 연자루에서의 약조는 비록 구체적인 시각을 명시하지는 않았으나、상대방이 기다려 준다 한들 기껏해야 자정까지일 터였다. 바깥 큰길에서 흘러나오는 야경꾼의 딱따구리와 북소리를 들으니 분명 이미 밤 11시 무렵이라、더는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추오상의 가슴속은 자신도 모르게 타들어 간다. 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 낭자! 귀하들은 머릿수가 많다는 것만 믿고 이 추모를 여기에 붙들어 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오?”

사홍영(謝紅英)이 웃으며 말했다.

“부디 추 부궁주께서 체면을 세워 주십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추모는 기어이 그 체면을 세워주지 않겠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검이 맹렬하게 대기를 가른다.




그 괴상한 물건이 검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탓에、추오상도 더는 초식의 격식을 따지지 않고 오직 칠 할의 내력을 검신에만 집중시킨다. 누구든 이 검에 부딪히기만 하면 죽지 않으면 중상을 입을 터였다.

오색채접 중 한 명이 비수를 휘두르며 가로막으려 하자、펑 하는 둔탁한 파공성과 함께 그 여인은 도리어 뒤로 번쩍 날아가 바닥에 처박힌 채 일어나지 못한다.

추오상이 대호한다.

“나를 가로막는 자는 죽으리라!”

손에 쥔 단검을 붕붕! 소리가 나도록 매섭게 휘두르며 다청 밖으로 돌파해 나가려 하자、홍의사호법이 일제히 붉은 줄을 내젓는다. 촤르륵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네 개의 연환套鉤(갈고리)가 뜻밖에도 한꺼번에 추오상의 단검을 옭아맨다.

검신에 자철로 주조된 암기가 엉겨 붙어 있었기 때문에、이 네 개의 갈고리가 비로소 단단히 달라붙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홍영(謝紅英)이 다급히 외친다.

“이살은 길을 비켜 주시고、오접은 뒤로 물러서시오!”

천산이살과 오색채접이 번개같이 몸을 피하며 물러서자、홍의사호법은 동서남북 각 한 자리씩 흩어져 차지한 채 붉은 줄을 맹렬하게 잡아당긴다. 추오상이 사절검을 아주 포기하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한、이제 그가 포위망을 벗어나기란 만무한 일이었다.

한쪽에 서서 싸움을 관전하던 천면귀 호도가 하하 크게 웃으며 말했다.

“추 부궁주、염 궁주님의 성의를 저버리기 어려우니 그만 자리에 남으시는 게 어떻소!”

추오상은 눈을 감은 채 아무 말이 없다. 실제로는 은밀히 전음술을 펼쳐 부르고 있다.

“강 낭자! 어디에 있소?”

강추로가 소리를 전해온다.

“나는 모란청(牡丹廳)과 금란청(金蘭廳) 사이에 있는 화랑(花廊 :꽃핀 행랑)에 있네.”

추오상이 묻는다.

“바깥 상황은 어떠하오?”

강추로(江秋露)가 말했다.

“대문은 이미 굳게 닫혔고、누각 지붕과 처마 모퉁이마다 궁수들이 매복해 있네. 우리가 이곳을 뚫고 나가려면 골치 꽤나 썩여야 할 걸세.”

추오상이 말했다.

“나 역시 이쪽에서 난관에 봉착했소.”

강추로가 말했다.

“내가 진작에 말하지 않았나. 염군도가 쳐놓은 기괴한 국면을 깨뜨리려면 머리를 써야지、무력을 과시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고 말이네.”

추오상이 말했다.

“내가 귀하에게 일러두는데、염군도의 속셈은 나와 송 선생이 연자루에서 만나기로 한 약조를 방해하려는 것이 틀림없소.”

강추로가 말했다.

“확실한가?”

추오상이 말했다.

“절대 틀릴 리 없소. 그대는 아직 신분이 노출되지 않았으니、어떻게든 이 '백화루'를 슬쩍 빠져나가 연자루로 가서 송 선생을 만나 주시오. 그리고 이곳의 상황을 전하면、그가 연자루에서 조금 더 기다릴지 아니면 이곳으로 직접 찾아올지 그가 알아서 결정을 내릴 것이오. 나는 오늘 밤 필히 그를 만나야 하오.”

강추로가 말했다.

“봉음은 어쩌고?”

추오상이 말했다.

“우선 이곳에 남겨 두시오.”

강추로가 말했다.

“오늘 밤 이곳에 포진한 숨은 고수들이 제법 많고 꽃나무 그늘마다埋伏이 깔려 있으니 자네도 조심하게나.”

추오상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접어두고 어서 가시오!”

천면귀 호도는 추오상이 오랫동안 눈을 감은 채 기척이 없자、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추 부궁주、생각을 좀 정리하셨소?”

추오상이 말했다.

“호도! 이따위 보잘것없는 잔재주로 이 추모를 정말 가둘 수 있을 거라 여기지 마라. 다만 염 궁주와 나 추모가 적인지 동지인지가 아직 명확하지 않아、내게 다소 꺼려지는 바가 있었을 뿐이다.”

천면귀(千面鬼) 호도(胡道)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적인가 동지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추 부궁주의 처신에 달렸소.”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염군도(閻君悼)를 직접 나오게 해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러자 하향이 돌연 말을 받는다.

“이 사녀가 가서 모셔오겠나이다.”

사홍영이 분노하여 호통을 친다.

“하향(荷香)...!”

하향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북은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고、말은 꺼내지 않으면 밝혀지지 않는 법입니다. 염 궁주님과 추 부궁주께서 직접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책이 아니겠습니까.”

추오상이 말했다.

“하향 낭자의 말이 맞소.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훌륭한 상책이지. 이 추모는 염 궁주가 지금 이 건물 안에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으니、숨으려 해도 숨을 수 없을 것이오.”

이때 문득 다청 밖에서 어떤 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향은 발걸음을 멈추고、사호법은 손을 떼시오. 호도 역시 무기를 거두어들이게.”

그 말 한마디에 깃든 권력이 끝이 없는 듯、목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홍의사호법이 일제히 연환 갈고리를 거두어들인다. 슈욱 하는 파공성과 함께、자철로 주조되어 톱니바퀴 같기도 하고 고슴도치 같기도 하던 그 괴상한 암기 역시 천면귀 호도의 손안으로 쏙 되돌아간다.

말을 한 자가 천천히 대청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자줏빛이 도는 대추색 얼굴에 쓸개를 매단 듯한 헌앙한 코를 가진 마흔 살 안팎의 사내였다. 몸가짐이 묵직하고 걸음걸이가 견고한 그가 추오상을 향해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본인은 황금악(黃金岳)이라 하오. '백화궁'의 부궁주로서、우선 이 자리에서 사죄의 말씀을 올리겠소.”

추오상이 차갑게 말했다.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이오?”

황금악이 말했다.

“백화궁 문인들이 손님을 붙잡는 도리에 있어 예의를 잃었으니、부디 추 부궁주께서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신다면 다행이겠소.”

추오상은 이제 도리어 급하게 떠나려 하지 않는다. 첫째로 강추로가 이미 연자루를 향해 떠났기 때문이고、둘째로 황금악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 기색으로 보아 송 선생이 필시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이미 연자루를 떠났을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천천히 사절검을 칼집에 거두어들이며 냉소한다.

“오늘 밤의 수작들이 참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구려. 또 무슨 새로운 장난질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소만?”

황금악(黃金岳)이 접대성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추 부궁주께서 말씀을 너무 과하게 하십니다. 만약 이곳에 더 머무르며 술을 몇 잔 더 나누시겠다면 본인이 직접 잔을 올릴 것이고、떠나실 마음이라면 본인이 친히 배웅해 올린 뒤 다른 날 다시 청하겠소.”

추오상이 말했다.

“염 궁주는 어찌하여 얼굴 한 번 비추는 것을 이리 아까워한단 말이오?”

황금악이 말했다.

“추 부궁주께서 이미 우리 궁주님이 이곳에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계시니、본인 또한 더는 숨기지 않겠소. 다만 안타깝게도 궁주님께서 금릉에서 돌아오신 이후로 줄곧 몸이 온전치 못하셨기에 직접 마중을 나오지 못하셨소. 대신 본인이 염 궁주님을 대행하여 귀하께 세 차례 경의의 술잔을 올릴 수는 있소이다.”

추오상이 웃으며 말했다.

“만약 염 궁주가 정말로 병환을 앓고 있는 중이라면、이 추모가 마땅히 먼저 찾아가 안부를 물어야 도리일 것이오. 게다가...”

어조를 무겁게 가라앉히며 말을 잇는다.

“내게 또 한 가지 중대한 사안이 있으니、필히 염 궁주를 직접 대면하여 가르침을 청해야겠소.”

황금악(黃金岳)의 얼굴에는 곤란한 기색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으며、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추 부궁주께서 기어이 염 궁주님을 한 번 만나보셔야겠다면、본인이 즉시 사람을 시켜 살펴보라 하겠소. 만약 궁주님께서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으셨다면 설마 면회를 거절하시겠소...”

고개를 돌려 하향에게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하향이 한 번 다녀오너라. 만약 궁주님께서 아직 주무시지 않는다면 추 부궁주께서 뵙기를 청한다고 전하고、궁주님께서 어찌 분부하시는지 살펴보고 오너라.”

하향이 막 문을 나서려 할 때、돌연 청의를 입은 한 명의 장한이 급히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 장한이 황금악의 귓가에 입을 대고 몇 마디 나직하게 속삭이자、황금악의 안색이 찰나 사이에 무섭게 돌변한다. 그는 우선 손을 저어 하향에게 잠시 걸음을 멈추라 신호한 뒤、차가운 목소리로 추오상에게 묻는다.

“추 부궁주께서는 오늘 밤 하인을 몇 명이나 데리고 오셨소?”

추오상은 속으로 필시 이삼의 시체가 발각된 것이라 짐작했으나、그의 얼굴빛은 추호의 동요도 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하인은 데려오지 않았소. 객잔에서 새로 알게 된 두 명의 친구라면 이미 진작에 길을 떠났소만. 황 부궁주께서는 어찌 그런 질문을 던지시오?”

황금악이 말했다.

“줄곧 추 부궁주의 수발을 들던 이삼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소. 설마 이 '백화루' 안에 또 다른 불순한 음모를 품은 자가 숨어들어 와 있다는 말이오?”

사홍영이 놀라며 말했다.

“이삼이 살해당했단 말입니까?”

황금악이 외친다.

“홍의사호법은 명을 받들라.”

사홍영이 극진히 공손한 태도로 응한다.

“부하들이 여기 있나이다.”

황금악이 분부한다.

“각 다청에 들어와 있는 한량과 손님들을 샅샅이 수색하여、만약 행적이 의심쩍은 자가 있다면 즉시 결박하여 내 앞으로 끌고 오너라. 만약 무력을 행사하며 불복하려 든다면 그 자리에서 즉시 격살해도 좋다.”

사홍영(謝紅英)이 명을 받들고는 손짓을 하자、네 사람이 소매를 나란히 한 채 잽싸게 밖으로 나간다.

황금악(黃金岳)이 다시 외친다.

“오색채접(五色彩蝶)은 명을 받들라.”

그 다섯 명의 채의를 입은 여인들이 일제히 소리친다.

“부하들이 여기 있나이다.”



황금악이 말했다.

“너희 다섯 사람은 순찰과 경비를 한층 더 강화하라. 만약 행적이 의심쩍은 자를 발견하면 즉시 멈추라 명하고 검사를 진행하되、만약 명을 어기려 든다면 그 자리에서 격살해도 좋다.”

다섯 사람은 마치 한 조각 채운(彩雲)처럼 사뿐히 다청을 빠져나간다.

황금악이 추오상을 매섭게 노려보며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더니、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살인 원흉을 붙잡지 못하고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기 전까지는、추 부궁주께서도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 주셔야겠소.”

추오상이 말했다.

“귀하의 말씀은、내가 설령 떠나고 싶다 해도 떠날 수 없다는 뜻이오?”

황금악이 말했다.

“이삼이 살해당했으니、이 '백화루' 안에 있는 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용의선상에 있소...”

추오상이 말을 가로채며 응수한다.

“귀하가 관가의 포두(捕頭)도 아니고、이삼 역시 선량한 백성이 아니었소. 무림에 몸담은 자가 불행히 살해당했다면 그것은 제 재주가 서툴고 무공이 남보다 못해 그리된 것이니、죽어도 싼 일이지요. 이 추모는 본래 남아서 염군도를 만나볼까 했으나、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오히려 떠나고 싶어지는구려. 이만 가보겠소.”

그가 포권을 해 보이고는 유유히 '모란청' 밖으로 걸어 나간다.

황금악(黃金岳)은 이를 가로막지 않은 채、코방귀를 힝 하고 뀔 뿐이다.

천면귀 호도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외친다.

“추 부궁주、잠시 발걸음을 멈추시오.”

추오상이 몸을 돌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묻는다.

“귀하께서 아직도 할 말이 남았소?”

천면귀 호도가 몇 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며 헤헤 웃는다.

“예부터 이르는 말에 싸우는 입에 고운 말 없고 부딪치는 손에 부드러움 없다 했소. 이 호모가 방금 수살로 추 부궁주를 상하게 한 것은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이제 호모가 해독약을 바칠 터이니、즉시 삼켜서 독기가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막으시오.”

추오상이 손을 휙 저으며 말했다.

“부질없이 은근한 척 굴 필요 없다. 이 추모는 백독이 침범하지 못하는 몸이니、네놈이 부리는 하삼류의 독 묻은 암기 따위로는 나를 상하게 할 수 없다.”

천면귀 호도가 황금악과 천산이살을 향해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세 분께서 증인이 되어 주시오. 만약 추 부궁주가 나중에 독이 퍼져 죽게 되더라도、그것은 나 천면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오...”

그러고는 다시 추오상을 향해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귀하、어서 가 보시오!”

추오상은 참으로 기가 막히고 실소가 터져 나와 더는 그를 상대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채 몸을 돌려 가려 했으나、돌연 한 노인에 의해 앞길이 가로막힌다.

그 노인은 예순 살 안팎의 나이로 보였는데、수염과 머리카락이 누르스름하고 얼굴빛은 홍안처럼 붉었으며、두 눈에서는 차가운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내공이 심오하고 정순한 절정 고수임이 분명했다.

추오상의 가슴속이 자신도 모르게 덜컥 내려앉는다. 이 노인이 도대체 언제 자신의 등 뒤로 다가왔는지 전혀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침착하게 몸을 살짝 틀어 살펴보니、황금악과 천면귀 호도、그리고 천산이살 등도 저마다 의아하고 어리둥절한 신색을 띠고 있었다. 이 자가 누구인지 판단하는 것은 이제 추오상의 몫이었다.

그러나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추오상은 몸을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양보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가 택한 방책은 바로 '정(靜)으로써 동(動)을 제압하고、편안함으로 피로함을 상대하는 것(以逸待勞)'이었다.

노인이 차가운 눈빛으로 추오상의 얼굴을 스윽 훑어보더니、무거운 목소리로 묻는다.

“협사의 성이 추 씨인가?”

목소리는 비록 가라앉고 무거웠으나 대단히 분노한 어조는 아니었다. 그 노인은 본래 타고난 목소리가 이래서 부드럽게 말하는 법을 모르는 듯싶었다.

추오상이 잠시 흠칫하더니、이내 평정심을 유지하며 덤덤하게 답한다.

“이 사람은 추오상이라 하오만...”

노인은 귀가 다소 먹었거나 아니면 매사에 지나치게 꼼꼼한 성격인 듯、다시금 다그쳐 묻는다.

“춘추(春秋)라고 할 때 그 추(秋) 자를 쓰는가?”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가르침을 청하외다.”

남이 자신의 성씨를 꼬치꼬치 캐묻는 데는 필시 어떤 연유가 있을 터였다. 이에 추오상은 더는 피하지 않고、오히려 기회를 틈타 상대방에게 반문함으로써 기세를 꺾지 않으려는 선제공격의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노인은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가장 가까이 서 있는 황금악을 힐끗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여 묻는다.

“듣자 하니 이곳에서 사람이 죽었다면서?”

황금악 역시 이 노인이 대체 어떤 내력을 가진 자인지 알 수 없었기에、질문을 받자 서둘러 대답한다.

“여기서 부리던 하인 한 명이 원문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소.”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관가에 고하여 포두(捕頭)들을 불렀는가?”

황금악이 말했다.

“본인은 관부를 경동시키고 싶지 않소.”

노인의 두 가닥 성긴 눈썹이 휙 치켜 올라가더니、괴상하고 비꼬는 듯한 어조로 묻는다.

“그것참 기이한 일이로군! 문을 굳게 닫아걸고 밖에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안에서는 나가지 못하게 막기에、나는 당연히 관가의 포두(捕頭)들이 와서 수색하기를 기다리는 줄 알았거늘...”

황금악이 말을 받는다.

“본인이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소. 이 일로 관청을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으며、본인 스스로 살인흉수를 찾아낼 자신이 있소이다.”

노인이 제 수염을 매만지며 자득한 어조로 말했다.

“그거야 이 늙은이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이 늙은이가 다만 묻고 싶은 것은、살인흉수를 붙잡기 전까지는 이곳에 술을 마시러 온 손님들이 아무도 떠날 수 없다는 뜻인가?”

황금악은 무어라 대답하기 곤란했는지、일시적으로 멍하니 굳어 버린다.

이에 천면귀 호도가 얼른 앞으로 나서며 끼어든다.

“어르신! 술을 몇 잔 더 드신들 어떻습니까? 예부터 이르는 말에 석양은 무한히 아름다우나 다만 황혼에 가까울 뿐이라(夕陽無限好、只是近黃昏) 했으니、인생이란 즐길 수 있을 때 마땅히 즐겨야 하는 법이지요!”

이 말은 분노를 사기에 딱 좋은 비아냥이었다. 노인의 나이가 머지않아 흙으로 돌아갈 만큼 잔뜩 들었으니 이 기회에 차라리 실컷 즐기다 갈 것이지、무어 그리 급하게 떠나려 하느냐는 암시였기 때문이다.

늙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늙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니、이는 마치 못생긴 여인이 추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과 같다. 과거 제갈공명은 이 심리를 깊이 꿰뚫어 보고 일부러 황충이 늙었다고 자극하여 그의 웅심을 격동시켰고、그 덕에 촉나라는 정군산 전투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천면귀 호도 역시 이 역사적인 고사를 읽어본 적이 있고 시 구절도 몇 줄 나부랭이로 외우고 있었을지 모르나、지금 이 자리에서 부린 잔재주는 영 맥락이 좋지 못했다. 노인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입술을 비틀어 올리는 꼴을 보니、십중팔구 공을 세우려다 도리어 화를 자초하는 꼴(弄巧反拙)이 될 판이었다.

노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안광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천면귀 호도의 얼굴을 스윽 훑고 지나가더니、무거운 목소리로 묻는다.

“네놈은 누구냐?”

호도가 아주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읍을 하더니 헤헤 웃는다.

“소인은 성은 호요 이름은 도라 하며、사람들은 천면귀라 부릅니다.”

노인이 냉소하며 말했다.

“과연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군. 다만 아쉽게도 악명(臭名)일 뿐이지만 말이 고야.”

호도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여전히 비굴한 웃음만을 흘리며 응수한다.

“헤헤! 사람이 이름을 백세에 길이 남기지(流芳百世) 못할 바에야、차라리 악명이라도 만년에 퍼뜨리는 게(遺臭萬年) 낫지 않겠습니까. 이름만 날릴 수 있다면 향기로운지 구린내 나는지 따져서 무엇하겠습니까.”

노인의 안색이 무섭게 가라앉으며 말했다.

“호도! 이리 가까이 오너라. 이 늙은이가 네놈의 관상이나 한 번 보아주마.”

호도가 다시 앞으로 두 걸음 더 걸어 나오더니、나직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께서 관상까지 보실 줄은 몰랐군요. 만약 용하게 맞히신다면、이 호모가 당장 술상을 거창하게 차려 대접하겠나이다.”

노인이 한 자 한 자 황금을 두드리고 옥을 울리듯 쟁쟁하게 뱉어낸다.

“내가 보아하니、네놈의 눈앞에 당장 피를 흘릴 횡액(血光之災)이 끼었구나.”

천면귀 호도의 신색이 순간 흠칫하더니、이내 두 손을 연신 내저으며 말했다.

“안 맞소、전혀 안 맞아! 이 호모는 평생 사람들을 너그럽고 두텁게 대하며 살아왔거늘...”

그의 말이 채 반도 끝나기 전에、돌연 눈앞에서 붉은 선혈이 번쩍 튀어 오른다.

천면귀 호도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신형을 급격히 뒤로 뺀다.

그가 물러서는 속도는 가히 귀신 같았으나、온전한 몸으로 물러서지는 못했다. 그의 오른팔 한쪽이 어깨죽지째로 완전히 잘려 나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더니、메마른 다섯 손가락이 피바닥 위에서 여전히 경련하며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황금악(黃金岳)이 크게 경악한다!

천산이살이 크게 경악한다!

추오상 역시 커다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노인은 그 자리에서 몸 하나 까딱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천면귀 호도의 팔 한쪽이 그야말로 찰나 사이에 뚝 끊어져 버린 것이다.

도대체 그가 어떤 병기를 썼단 말인가?

더구나 그것이 대체 어떤 수법이란 말인가?

오직 추오상만이 그 궤적을 똑똑히 보았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부터 이 돌연히 나타난 노인을 한순간도 한눈팔지 않고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노인은 소매 속에 숨겨두었던 단검으로 ‘천면귀’ 호도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검신에 녹이 잔뜩 슬어 있어 차가운 빛을 발하지 않았기에、황금악 일행의 주의를 끌지 못했던 것이다.

그 단검은 길이가 한 자도 채 되지 않아 가장 긴 비수보다도 짧았다. 하지만 추오상은 그것이 자루、호구(코등이)、양날을 모두 갖춘 엄연한 하나의 검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았다.

추오상은 이 노인이 매우 두려운 존재임을 깨달았다. 노인은 칼을 뽑아 사람을 해치기 전에는 전혀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고、일을 저지른 후에도 얼굴에 그저 덤덤한 신색을 띠고 있었다. 마치 방금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버린 듯한 태도였다.

천면귀 호도가 왼팔을 홱 치켜들며 암기를 날리려 하자、황금악이 몸을 날려 그를 가로막았다. 황금악은 눈짓으로 천산이살에게 호도의 상처를 치료하라고 지시하는 한편、노인에게 포권을 하며 물었다.

“노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손을 써서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이오?”

노인이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알고 싶소?”

황금악이 말했다.

“이곳에서 소생은 주인이고 이 사람은 손님이오. 노선생 역시 손님인데、빈객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주인 된 입장에서는 그 내막을 알아야겠소.”

노인이 말했다.

“노부가 보름 전 보정부에서 흑도의 고수 한 명을 죽였다오. 그는 죽기 직전 아직 풀지 못한 염원이 있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다고 하더군. 그래서 노부가 그 염원을 대신 풀어주겠다고 약속했소.”

황금악이 말을 끼어들며 물었다.

“설마 호도와 관련이 있는 일이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호도는 여색에 목숨을 걸 정도라、결국 그자의 아내를 강간하고 살해했더군. 내가 그자에게 어떻게 원수를 갚아줄까 물었더니、호도의 한쪽 팔을 잘라내어 살아있는 동안 고통을 받게 해달라고 하더군. 노부는 호도와 아무런 원한이 없으나、그저 타인을 대신해 수치를 씻고 복수를 해주었을 뿐이오.”

천면귀 호도가 힘을 쥐어짜며 소리쳤다.

“터무니없는 소리! 그놈 이름이 무엇이오?”

노인이 말했다.

“사람이 이미 죽었으니 노부는 더 이상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소.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오.”

황금악이 말했다.

“그렇다면 노선생의 성명은 어떻게 되시오?”

노인이 말했다.

“노부의 이름은 듣기에 썩 좋지 않으니 굳이 묻지 않는 게 좋겠소.”

황금악이 냉소하며 말했다.

“나무는 그림자를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소. 노선생이 방금 보여준 솜씨는 절묘하고도 독랄했으니、소생으로서도 어느 길의 고수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소!”

노인이 말했다.

“노부의 성은 송(宋)이오.”

이 송이라는 글자가 입 밖으로 나오자、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추오상은 더욱 맹렬한 눈빛으로 노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나와 약속을 한 송 선생이란 말인가?’

그러나 자세히 보니 닮지 않았다. 용모도 다르고 체구도 맞지 않으며 목소리도 달랐다. 특히 그 눈빛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황금악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물었다.

“함자는 어떻게 부르오?”

노인이 말했다.

“천한 이름은 일초(一招)요、별호는 사람들이 흑심장(黑心腸)이라 부른다오. 이어서 부르면 좀 어색하겠지만、‘흑심장이 한 초를 보내주는데(黑心腸送一招)、딱 한 초만 줄 뿐 더는 주지 않는다’라는 뜻이라오.”

황금악은 눈꺼풀을 뒤집으며 이 괴상한 이름을 생각하는 듯했으나、뇌리에는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추오상 역시 기억을 더듬었지만、그 역시 이런 인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황금악이 차갑게 말했다.

“그 한 초가 정말 독하구려! 사전에 미리 기별조차 없었소.”

스스로 송일초라 밝힌 노인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시오! 당신이 ‘백화루’의 이장궤(二掌櫃)요?”

황금악이 말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소.”

송일초가 말했다.

“문을 열라고 명령하여、이곳에 더 머물고 싶지 않은 손님들을 집으로 보내시오. 이삼은 노부가 죽였소. 왜냐고? 그저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오. 장부를 계산하려면 노부를 찾아오고、다른 사람과는 상관없는 일이오.”

황금악(黃金岳)은 멍해졌다.

추오상은 더욱 크게 경악했다. 이삼은 명백히 강추로가 죽인 것인데、이 노인네가 왜 억지로 제 몸에 죄를 짊어지려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는 일부러 무공을 믿고 사람을 기만하며 ‘백화궁’에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닌가?

황금악은 도저히 이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즉시 눈을 부릅뜨고 눈썹을 세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 갚고、빚을 졌으면 돈으로 갚아야 하오. 그냥 가려 하다니、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소.”

송일초가 냉소하며 말했다.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죽음을 자초하는가...”

그는 몸을 돌려 추오상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가세! 우리 한적한 곳을 찾아 세 잔 더 마십시다.”

그의 말투는 마치 오랜 친구에게 말하는 듯했다.

추오상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황금악이 갑자기 분노의 포효를 지르며 손바닥을 치켜들고 송일초의 명문을 향해 전력으로 내질렀다.

송일초가 아무렇게나 손을 휘두르자、황금악은 뜻밖에도 뒤로 세 걸음이나 연거푸 물러서더니 입에서 핏줄기를 뿜어냈다. 명백히 내상이 가볍지 않았다.

송일초가 냉소하며 말했다.

“노부가 방금 말하지 않았소. 죽을 때가 되지 않았는데 어찌 죽음을 자초하느냐고. 그런데도 결국 사서 고생을 하는구려. 이장궤! 노부가 당신에게 준 이 한 초는 가장 가벼운 것이오.”

이때 밖에서 갑자기 누군가 목청을 높여 외쳤다.

“손님 여러분! 대장궤의 지시입니다. 오늘 밤 저희 가게에 문제가 생겨 손님 여러분의 흥을 깨뜨렸으니 술값은 일절 받지 않겠습니다. 당내에 시신이 멈추어 있어 귀한 손님들을 오래 모시기 어려우니、내일 저녁 일찍 찾아주십시오. 결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송일초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이 대장궤라는 자는 그래도 세상 물정을 좀 겪어보았군. 눈치를 볼 줄 알아...”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추오상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가세! 이곳에서 대접을 못 받으면 다른 곳에서 대접받으면 그만이오. 술 몇 잔 마실 곳을 찾아보십시다.”

추오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너무 늦지 않았소?”

송일초(宋一招)가 말했다.

“대장부라면 시원시원해야지、아녀자처럼 굴지 말고 가세!”

그는 추오상의 손목을 덥석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추오상은 손목에 철사슬이 채워진 듯한 느낌을 받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크게 놀랐으나、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송일초를 따라 밖으로 향했다.

화랑에 이르렀을 때、마침 봉음이 정면에서 마주 오고 있었다.

추오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문앞에서 강 낭자를 기다렸다가、그녀가 오면 함께 먼저 여관으로 돌아가시오. 나는 곧 돌아가겠소.”

봉음은 의아한 눈빛을 보냈지만 더 묻지 않았고、송일초 역시 더 묻지 않았다. 다만 추오상과 봉음이 말을 나눌 때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이 ‘백화루’를 나오자、송일초는 그제야 손목을 놓아주며 말했다.

“노부는 무력으로 사람을 누를 생각이 없었소. 다만 자네가 그곳에서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다가 허점을 드러낼까 염려했을 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소생은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하나 있소. 그 이삼은 분명 소생의 친구가 죽인 것인데、노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살인 죄명을 스스로 짊어지려 하시오?”

송일초가 말했다.

“노부가 짊어진 피의 빚이 어찌 천 개뿐이겠소. 거기에 이삼의 목숨 하나가 더해진들 대수롭지 않소.”

말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마침 야식을 파는 주막을 지나게 되자、송일초가 고개를 흔들며 신호를 보냈고 두 사람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위층의 아늑한 자리에 자리를 잡자 점소이가 시중을 들기 위해 따라왔다. 송일초는 조각 은 한 덩이를 꺼내 탁자 위에 쾅 놓으며 말했다.

“점소이! 우리는 그저 장소를 빌려 이야기하려는 것이니 술이나 안주는 필요 없네. 좋은 차 한 주전자만 가져오게나. 이 조각 은은 자네 술값이나 하라고 주는 걸세.”

그 점소이는 연신 감사를 표하더니、이내 향기가 코를 찌르는 뜨거운 차 한 주전자를 올렸다.

송일초는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추오상、노부가 자네를 찾느라 고생이 많았네!”

추오상은 속으로 은근히 당황했으나、얼굴에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노선생께서 소생을 무슨 일로 찾으셨소?”

송일초가 말했다.

“강추로가 자네를 무림의 기재로 키우려고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네만、안타깝게도 그녀는 사도(邪路)를 걸었네. 설령 성취가 있다 한들 크게 쓰이기에는 부족하지. 그리하여 노부가 자네를 입실제자로 거두고자 하네.”

추오상이 말했다.

“노선생의 호의는 소생이 마음으로 받겠소. 하지만 옛사람이 이르기를、평생 두 스승을 모시지 않는다 하였소...”

송일초가 말을 받았다.

“추오상、옛사람의 말로 나를 누르려 하지 말게. 자네가 당시에 스승을 모셨던 상황을 내가 잘 알고 있네. 그저 이름만 올려둔 기명제자일 뿐、입실의 예는 올리지 않았지 않았는가.”

추오상은 속으로 내심 기이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비로소 말했다.

“노선생께서 방금 ‘백화루’에서 밝히신 성명은 아무래도 가짜이겠지요?”

송일초가 말했다.

“추오상、쓸데없는 소리는 접어두게! 노부는 은거한 지 오래되었으나、이번에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오직 자네만을 위해서라네. 부디 노부를 헛걸음하게 만들지 말게.”

추오상이 말했다.

“일이 너무 갑작스러워、소생이 한 시에 답을 내리기가 참으로 어렵소.”

송일초가 말했다.

“노부의 이만한 나이면 자네의 스승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추오상이 말했다.

“차고도 넘치오.”

송일초가 말했다.

“노부가 방금 천면귀 호도를 상대한 그 한 초면 자네의 스승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추오상이 말했다.

“소생이 외람되이 분에 넘칠까 두려울 뿐이오.”

송일초가 말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망설이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소생은 강추로와 몸을 합한 인연이 있은 후로、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송일초가 말했다.

“그것은 사소한 일이네. 노부가 깊고 두터운 내력으로 자네의 기혈이 엉키는 난제를 해결해 줄 수 있네.”

추오상은 결코 경솔하게 믿지 않았다. 만일 상대가 딴마음을 품고 자신과 강추로를 떼어놓았다가、그때 가서 기혈이 무너져 내린다면 그동안 쌓은 공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는 잠시 생각한 끝에 말했다.

“노선생께서는 소생에게 지금 당장 답을 원하시오?”

송일초가 말했다.

“그렇네.”

추오상이 말했다.

“인정상 소생은 어쨌든 강추로와 상의를 해보아야 하오. 이 몸의 공력 중 최소한 절반은 원래 그녀의 것이니、소생이 어찌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겠소.”

송일초가 말했다.

“만약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추오상이 말했다.

“강추로가 당초 몸을 바쳐 소생에게 내력을 쏟아부었을 때는 분명 희생할 각오를 했을 것이오. 소생에게 더 깊이 수련할 기회가 생긴다면、그녀는 결코 가로막지 않을 것이오.”

송일초는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추오상、그것은 명백히 자네의 핑계로군.”

추오상이 웃으며 말했다.

“무림의 수많은 이들이 명스승과 고인을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하는데、소생은 좋은 기회가 눈앞에 있으니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해야 마땅하오. 어찌 핑계를 대며 거절하겠소?”

송일초가 차갑게 말했다.

“추오상、자네는 명백히 노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네. 노부가 모를 줄 알았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노선생께서 오해하셨소.”

송일초가 말했다.

“자네가 무어라 말하든 이 일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니 밀어내지 못하네. 내일 정오、노부가 남문에서 기다릴 테니 함께 수련할 곳으로 가세. 강추로와 봉음 두 사람을 어떻게 떼어놓을지는 자네에게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노부가 먼저 한 발 물러서지.”

말을 마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려 했다.

탁、탁、탁! 층계가 울리며 누군가 위로 올라왔다.

추오상은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놀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루 위로 올라온 사람은 뜻밖에도 연자루 위에서 만나기로 약조했으나 끝내 보지 못했던 ‘송 선생’이었다.

이 두 명의 송 씨 성을 가진 이들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들 중 한 명은 성씨가 가짜일지도 몰랐고、어쩌면 두 사람 모두 송 씨가 아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두 사람의 안색이 모두 지극히 엄숙했고、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빛이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 마치 대적을 마주한 듯했다.

송 선생이 다시 앞으로 몇 걸음 걸어오더니、다른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멈춰 섰다.

쿵、쿵、쿵! 층계에서 다시 소리가 나더니、강추로와 봉음이 잇달아 따라 올라왔다. 그녀들은 여전히 남장을 한 상태였다. 봉음은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해 표정이 매우 홀가분해 보였으나、강추로는 안색이 무거웠으며 시선이 송일초와 추오상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오갔다.

점소이가 계단 입구에서 머리를 쏙 내밀었다가 다시 거두어들였다.

2층 전체에는 오직 그들 다섯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추오상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송 선생...”

그가 막 입을 열자마자 송일초 역시 잇달아 입을 열었다.

“추오상、자네는 누구를 부르는 것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저 노선생께서도 성이 송 씨라 하셨소.”

송일초는 분명 다소 의외라는 듯 잠시 멍해졌으나、이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존경하는 귀하께서 성을 송 씨로 바꾸셨다니 우리 송 씨 가문의 영광이구려. 하지만 귀하는 먼저 송 씨 가문의 조상님께 절부터 올려야 할 것이오.”

그렇다면 송 선생은 성이 송 씨가 아니란 말인가?

추오상은 송 선생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살폈다.

뜻밖에도 송 선생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송일초가 또 말했다.

“귀하의 눈에 흉광이 서린 것을 보니 아무래도 좋은 뜻으로 온 것 같지는 않구려. 이대로 대치하느니 차라리 통쾌하게 끝을 내는 게 어떻소? 귀하가 나에게 한 초를 보내겠소、아니면 내가 귀하에게 한 초를 보내줄까?”

그 송 선생은 여전히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추오상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노선생께서는 성이 송 씨가 아니십니까?”

그제야 송 선생이 입을 열어 말했다.

“만일 노부가 송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돌아다니지 않았다면、진짜 송 선생이 서주부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을 걸세!”

송일초가 웃으며 말했다.

“귀하의 수작이 참으로 훌륭하구려. 천하에 송 씨는 둘이 없거늘、마치 노부가 손을 쓰면 결코 두 번째 초식을 내지 않는 것과 같소. 이제 무림에 또 다른 송 선생이 활개를 치고 다니니、노부는 우리 송가(宋家)의 후손인가 했더니 뜻밖에 당신 같은 늙은이였군.”

추오상이 말을 끼워 들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노선생의 존함은 어찌 되십니까?”

송 선생이 말했다.

“노부는 문공정(文公庭)이라 하네.”

문공정이라는 세 글자를 듣자 추오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원래 그는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나、며칠 전 옛집에서 부친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문공정이 그의 부친과 주고받았던 서찰 한 묶음을 발견했기에、문공정이 부친의 유일한 지기임을 알고 있었다.

송일초가 하하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 강호에 문공정이라는 자가 분명히 있기는 하지. 하지만 이 늙은이가 진짜 문공정인지는 크게 의심스럽구려. 그가 송 씨 성을 사칭할 수 있었다면、문 씨 성이라고 사칭하지 못하겠는가.”

문공정(文公庭)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송일초(宋一招)! 자네는 분명히 노부를 알아보고 있네!”




송일초가 말했다.

“당연히 자네를 알아보네. 하지만 나는 자네가 진짜 문 씨 성인지 알 수가 없구려!”

문공정이 말했다.

“자네는 시비를 뒤바꾸고 이목을 현혹하려 하지 말게.”

송일초가 말했다.

“자네가 문공정이라 쳐두지! 자네가 나에게 술을 대접하겠소? 아니면 이 노부가 주인이 되어 세 잔을 올릴까?”

문공정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게! 당년에 자네가 빼앗아 간 노부의 물건을 이제는 돌려주어야겠네.”

송일초가 말했다.

“그 말은 참으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구려. 내가 자네에게서 무슨 물건을 빼앗았단 말인가?”

문공정(文公庭)이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

“묵옥검(墨玉劍)이네.”

송일초가 천천히 소매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단검 한 자루를 꺼내어 한 번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을 말함인가?”

추오상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그 단검의 검집은 상어 가죽으로 만들고 겉을 금으로 둘러 매우 정교하고 화려했다. 묵옥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마도 검신이 검고 빛이 나지 않기 때문인 듯했다.

문공정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바로 문某의 물건이네.”

송일초가 말했다.

“무슨 증거가 있소? 자네가 한 번 불러보아서 단검이 대답한다면 자네의 소유로 인정해주겠소.”

이것은 명백히 억지 주장이었다. 추오상은 마음속으로 이미 문공정과 송일초의 인품의 고하를 가려냈고、아울러 문공정의 신분이 진짜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두 사람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상황 변화를 관망했다. 동시에 강추로와 봉음 두 사람에게도 간섭하지 말고 지켜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문공정의 무공은 추오상도 이전에 본 적이 있었고、당시에는 무림에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추오상은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송일초가 방금 ‘백화루’에서 보여준 솜씨 역시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는 예리한 무기까지 손에 쥐고 있었다. 만약 이 두 사람이 손을 쓰게 된다면 누가 높고 누가 낮을지、추오상으로서도 쉽사리 판단하기 어려웠다.

추오상은 그들이 치열하게 싸워 자신의 견문을 넓혀주기를 바라면서도、한편으로는 그들이 무력을 쓰지 않기를 바랐다. 어느 한쪽이라도 패배한다면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순간、추오상의 마음은 매우 모순되었다.

송일초가 억지스러운 말을 내뱉은 후、문공정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문모는 진작에 다른 사람과 손을 써서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네. 자네가 당년에 저지른 비열하고 음험한 행위에 대해서도 추궁하고 싶지 않네. 오직 문某의 물건을 되찾고 싶을 뿐이니、자네가 노부로 하여금 이미 세운 결심을 어기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걸세.”

송일초가 냉소하며 말했다.

“그 말 참 희한하구려! 자네가 이 묵옥검이 자네 것이라고 우기려면 무슨 증거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어찌하여 도리어 이 송 씨가 자네에게 결심을 어기도록 강요한다고 말하는가!”

문공정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곳이 자네와 내가 결사전을 벌일 장소라는 말인가?”

송일초가 말했다.

“그것은 자네에게 그만한 용기가 있는지에 달렸소.”

문공정은 갑자기 분노를 가라앉히고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흑심장’ 송일초의 초식은 받아내기가 불가능하여 이미 이십 년 전에 무림에 명성을 떨쳤고、무림의 흑백양도 호걸들이 그 기세에 모두 무릎을 꿇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네. 하지만 무림인들은 알지 못하지. 나 문某가 가남관 천리평에서 자네의 초식을 백스무 초나 받아냈다는 사실을 말이네. 설려 자네는 지금 그때의 일이 재현되기를 바라는가?”

송일초가 말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오. 이십 년 전의 일을 어찌 지금과 같은 선상에서 말할 수 있겠소.”

문공정의 신색이 멍해지더니 말했다.

“자네가 정녕 문모에게 무공을 쓰도록 강요하려는가?”

송일초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나는 결코 사람을 강요하지 않소. 자네 스스로 찾아온 것이지.”

문공정이 고개를 돌려 추오상에게 말했다.

“노부는 문공정이라네. 조카는 나를 믿을 수 있겠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당연히 믿을 수 있소.”

문공정이 말했다.

“그렇다면 노부가 자네에게 당부할 말이 있네. ‘흑심장’ 송일초와 얽혀 싸우면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우니、노부가 부득이 미리 안배를 해두어야겠네.”

추오상이 말했다.

“노선생께서 무슨 일을 당부하려 하시오?”

송일초가 하하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자네 부친의 면망을 보아서 자신에게 좋은 관 한 자루를 사주고 명당자리를 골라달라고 자네에게 부탁하려는 모양이구려...”

문공정이 말했다.

“송일초! 대가의 풍모를 조금이라도 보여주게. 손을 쓰기 전에는 큰소리를 치지 않는 것이 좋을 걸세.”

지금껏 입을 열지 않던 강추로가 갑자기 말을 끼어들었다.

“송일초! 내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자네의 무공에 대해서는 들은 바 있네. 내가 먼저 한 가지 일깨워 주겠는데、문 노선생의 무공은 당년과 비교할 바가 아니니 강함을 뽐내며 승부를 다투다가는 도리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네.”

송일초가 하하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만인미’! 자네는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게나. 이 송 씨가 독한지、아니면 문 씨가 강한지 보란 말이네.”

그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문공정은 이미 추오상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추오상의 안색이 순식간에 몇 번이나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송일초는 문공정이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어 얼굴에 의혹의 빛을 띠었다.

문공정이 나지막이 말을 마치자、추오상이 갑자기 강추로와 봉음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우리 가십시다!”

송일초가 크게 소리쳤다.

“추오상、계책에 빠지지 말게! 이 늙은이가 명백히 수작을 부리고 있네.”

추오상은 이미 계단 입구까지 걸어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문 노선생께서 당부하신 일은 중대하기에、소생은 믿지 않을 수가 없소. 이만 가보겠소、우리 후일을 기약하십시다.”

송일초가 크게 외쳤다.

“이 사람아、지체하게...”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문공정 역시 루판 위에서 한 장 남짓 뛰어올라 공중에서 송일초의 기세를 가로막았다. 펑 하는 굉음이 울리며 두 사람은 공중에서 분명히 손바닥을 한 차례 부딪쳤다.

계단 입구에 서 있던 추오상이 급히 손을 휘두르며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 빨리 가십시다!”

강추로가 말했다.

“송일초는 예리한 검을 손에 쥐고 있으니 문 노선생이 손해를 볼 수 있네. 우리가 어찌 그냥 가버릴 수 있겠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빨리 가야 하오! 이것은 문 노선생의 당부이며、일이 중대하니 지체해서는 안 되오.”

말을 하는 사이 그는 이미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강추로와 봉음도 급히 발걸음을 옮겨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이 막 주막 문을 나서려 할 때、갑자기 쿵 하는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누각의 바닥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자욱한 먼지 속에서 송일초가 마치 천신이 하강하듯 단숨에 날아 내리더니、다섯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벌려 추오상의 목덜미 쇄골을 낚아채려 했다. 그 수법이 어찌나 빠른지 피할 겨누조차 없었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추오상은 급박한 와중에 사절검(四?劍)을 뽑아 송일초가 움켜쥐려는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

송일초가 차갑게 꾸짖었다.

“방자한 놈!”

그가 왼손을 번개처럼 뻗어 추오상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이때 문공정 역시 무너진 바닥 틈새로 단숨에 날아 내려오며、공중에서 송일초의 등 뒤를 향해 연거푸 두 차례 손바닥을 내질렀다. 한순간 장영(掌影)이 산처럼 뒤덮고 등불 그림자가 흔들리니、그 위력이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송일초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얼른 추오상을 놓아준 뒤、몸을 돌려 적을 맞이했다.

문공정(文公庭)이 크게 외쳤다.

“조카、빨리 가게!”

송일초 역시 크게 외쳤다.

“이 사람아! 가지 말게! 그렇지 않으면 자네는 후회해도 소용없을 걸세.”

추오상은 왼손으로 봉음을 잡고 오른손으로 강추로를 잡은 채、연거푸 신형을 솟구쳐 그 주막에서 백 걸음쯤 떨어진 곳으로 벗어났다. 그의 귀에는 여전히 문공정과 송일초의 호통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강추로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 송일초의 무공이 너무도 해괴하고 놀라워、아무래도 문 노선생이 적수가 되지 못할까 두렵소.”

추오상이 말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이제는 관여할 수도 없소.”

강추로가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예상치 못한 중대한 일이 발생했소.”

강추로가 말했다.

“설마 문 노선생의 생사조차 돌보지 않아도 될 만큼 큰일이란 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안심하시오! 문 노선생이 비록 적수가 되지 못할지언정、송일초의 손에 죽지는 않을 것이오.”

강추로가 말했다.

“어찌 그리 단정할 수 있소?”

추오상이 말했다.

“문 노선생께서 친히 말씀하셨소. 자신은 그저 잠시 송일초를 붙잡아두는 것뿐이니、우리가 성을 벗어난 후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전력을 다해 몸을 빼내겠다고 하셨소.”

강추로가 말했다.

“듣기로 송일초는 ‘백화루’에서 한 초식 만에 천면귀 호도의 한쪽 팔을 잘랐다고 하더구려.”

추오상이 말했다.

“음! 그런데 말이오?”

강추로가 말했다.

“그 천면귀 호도가 비록 흑도에 몸을 담아 행적이 광명정대하지는 못하나、무공의 수로는 유독 기이하여 결코 암습을 당할 인물이 아니오. 송일초가 손을 쓰는 사이에 그의 한쪽 팔을 잘랐으니 송일초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가고도 남소. 아무래도 문 노선생이 온전히 몸을 빼내기는 어려울 듯싶소.”

봉음이 갑자기 소리쳤다.

“추 공자님!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소.”

추오상이 말했다.

“이 길이 남문으로 곧장 가는 길이 아니란 말이오?”

봉음이 말했다.

“맞소、하지만 우리가 묵고 있는 여관은 북대가에 있지 않소!”

추오상이 말했다.

“길을 서둘러 시간을 벌어야 하니、여관으로는 돌아가지 않겠소.”

강추로가 급히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의 옷가지와 노자가 모두 여관에 있단 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상관없소! 내 품에 화주 값을 치르려고 준비해 둔 은자 한 주머니가 있으니、가는 동안 쓰기에는 충분할 것이오.”

강추로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강주(江洲)요.”


                          ※     ※     ※


회하를 건너 동남쪽으로、세 필의 쾌마가 강주를 향해 곧장 달렸다.

강추로와 봉음이 아무리 캐물어도、추오상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토록 급히 길을 재촉하는지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비록 내막은 알지 못했으나、일이 필시 중대하다는 것만큼은 눈치챘다. 그렇지 않다면 추오상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밤을 새워 가며 길을 달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주를 떠난 지 이틀째 되던 밤이었다.

하늘에는 달도 없이 오직 몇 점의 성긴 별만 빛나고 있었다. 야색은 비록 어두웠으나 길을 달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강북 지대는 산이 드물고 온통 평원이라 시야가 넓게 트여 있었다. 추오상이 앞장서서 말고삐를 늦추며 질주했다.

대략 술시(戌時) 초 무렵、세 필의 말이 갈림길에 이르렀다.

추오상은 길을 알지 못했기에、말을 멈추고 뒤에서 따라오는 강추로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강추로는 추오상이 말을 멈추고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는、말의 옆구리를 강하게 차며 추오상의 곁으로 다가와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추오상、정말 밤을 새워 길을 갈 작정이오?”

추오상은 대답 대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강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오?”

강추로가 말했다.

“동쪽 길은 연운해항으로 곧장 가는 길이고、강주로 가려면 약간 남쪽으로 치우친 오른쪽 길이오. 하지만 이 길로 계속 내려가면 더는 마을이나 주막이 없으니、우선은 동쪽 길로 가십시다.”

추오상이 그녀를 차갑게 쏘아보며 말했다.

“왜、지쳤소?”

강추로가 말했다.

“사람은 지치지 않았으나 말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추오상이 말을 가로챘다.

“샘물이 있는 곳을 지나게 되면、그때 말에서 내려 잠시 쉬십시다.”

강추로가 말했다.

“내 말의 오른쪽 앞굽 편자가 떨어진 듯싶소. 그러니 역시 동쪽 길로 가십시다. 앞으로 십 리쯤 가면 외딴 마을이 하나 있는데 마침 대장간이 있소. 말 편자를 갈고 나면 다시 지름길을 택해 남쪽 길로 접어들 수 있으니、그리 많이 돌아가지도 않소.”

봉음 역시 거들었다.

“제 말도 편자를 갈아야 할 때가 되었소. 단숨에 사백 리를 달려오지 않았소!”

추오상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강 낭자! 이 부근의 지세를 잘 알고 있소?”

강추로가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내일 아침 일찍 강주에 당도하게 해줄 테니.”

말을 마친 그녀는 말을 채찍질하여 앞장서서 동쪽 길로 달려갔다. 추오상은 백만 번 내키지 않았으나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편자가 떨어진 채 길 한복판에서 말이 주저앉는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터였다. 과연 십 리쯤 앞으로 나아가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추오상이 정신을 집중해 바라보니 길가에 서른에서 쉰 가구쯤 되어 보이는 민가가 나타났으나、불빛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시골의 외딴 마을은 이맘때면 벌써 불을 끄고 온돌에 누웠을 시간이었다. 강추로가 대장간을 찾아내자 세 사람은 일제히 말에서 내려 북을 치듯 문을 두드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쉰 줄의 노인이 기름등잔 하나를 들고 문을 열었다.

그 노인이 잔뜩 경계하는 빛으로 물었다.

“세 분、무슨 일이시오?”

강추로가 웃으며 말했다.

“저 세 필의 말이 보이지 않소? 장삿속이 제 발로 찾아왔구려! 어서 제자를 깨워 화로에 불을 지피고 우리 말들에게 새 편자를 박아주시오. 우리는 밤을 새워 길을 가야 하오.”

노인이 말했다.

“짐승 세 마리에 발굽이 열둘이니、화로를 다시 열려면 제법 수고로울 텐데 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잔말 말고 은자를 넉넉히 줄 테니 그리 하시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 노인이 은자를 더 바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세 분이 오래 기다리지 못할까 염려되어 그렇소.”

추오상이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소?”

노인이 말했다.

“대략 한 시진(두 시간)은 걸릴 걸세.”

추오상이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일을 시작하시오! 빠르면 빠를수록 좋소.”

두 사람이 말을 나누는 사이、강추로는 이미 옆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초가집 처마 아래에는 천 가림막과 불이 꺼진 유치등롱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십중팔구 허름한 주막인 듯했다.

노인이 소리쳤다.

“낭자、더 두드리지 마시오! 이 심야에 누가 감히 문을 열겠소. 이 노인이 뒷문으로 가서 한번 불러 주겠네!”

그 노인은 말을 마치고 대장간의 뒷문으로 나갔다.

이윽고 주막 문이 열리더니 중년 여인 하나가 안색이 잔뜩 질린 채 문밖의 불청객 세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강추로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아주머니! 놀라지 마시오! 우리는 길을 지나던 행인인데、옆 대장간에서 말 편자를 가느라 잠시 쉬어 가려는 것뿐이오.”

중년 여인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낭자! 거친 시골 주막이라 잠잘 만한 좋은 방도 없고 마실 만한 좋은 술도 없는데、어찌 귀한 손님 세 분을 대접하겠소...”

강추로가 이미 한 걸음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말을 받았다.

“우리는 먹지도 자지도 않을 것이니、그저 뜨거운 차 한 주전자만 끓여주시오. 찻잎은 가장 좋은 것으로 쓰고、주전자와 찻잔만 깨끗이 씻어주면 그만이오!”

그 중년 여인은 연신 대답하며 안채의 기름등잔에 불을 붙이고는、서둘러 불을 피워 차를 끓이러 갔다. 이웃 대장간에서 불을 지피고 풀무질을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주막 안에는 팔선탁(네모난 큰 탁자) 두 개와 몇 개의 긴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차림새가 극히 허름했다. 오랫동안 찌든 기름때와 먼지 탓에 탁자와 의자는 온통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추오상이 자리에 앉으며 나지막이 미간을 찌푸렸다. 긴 나무 의자는 차갑고 딱딱했으며 기름때가 옷에 묻어날 것만 같았다. 저 중년 여인이 끓여오는 차를 마시고 속이 뒤집히지 않는다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대장간의 쉰 줄 노인이 주막 입구에서 머리를 쏙 내밀며 물었다.

“세 분은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추오상이 그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서주부요.”

노인이 말했다.

“길을 오는 동안 한 번도 말에서 내리지 않은 게요?”

봉음이 가볍게 꾸짖었다.

“어르신! 어서 일이나 하러 가시오! 여기서 무슨 잔소리를 그리 하시는 거요!”

노인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노인이 잔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라、짐승 세 마리에 발굽이 열둘인데 그중 아홉 군데 발굽에서 피가 비치고 있어서 그러네. 비록 짐승이라 하나 아껴야지 않겠소. 세 분은 우선 좀 넉넉히 쉬어 가시구려!”

강추로가 냉소하며 말했다.

“왜요! 당신이 말들을 위해 불평이라도 해주는 거요?”

노인이 말했다.

“낭자가 오해를 하셨구려! 말은 세 분이 은자를 내고 사신 것이니 어떻게 처분하든 상관없으나、피가 나는 발굽에는 편자를 박기가 참으로 어렵네. 이 노인이 모진 마음을 먹고 이를 악물며 박아넣는다 해도、가던 반중에 떨어져 나가 도리어 세 분의 일정을 지체하게 만들 걸세!”

추오상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오?”

노인이 말했다.

“이 노인이 이미 제자에게 생강물을 달이도록 일러두었네. 피가 나는 말발굽을 물에 담가 달랜 뒤、그 위에 질 좋은 참기름을 한 겹 발라 편자를 박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걸세. 다만 시간이 다소 지체될 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얼마나 더 지체되겠소?”

노인이 말했다.

“지금이 대략 술시 초 무렵이니、으음... 자정 무렵이면 세 분이 길을 나설 수 있을 걸세.”

추오상이 말했다.

“두 시진이나 기다려야 한단 말이오?”

노인이 말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네. 이 노인이 최대한 서둘러 보겠네.”

말을 마친 노인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를 떴다.

강추로가 말했다.

“이 노인네가 마음씨도 좋고 일도 꼼꼼하게 잘하는데、잔소리가 조금 심하구려.”

봉음이 웃으며 말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대개 잔소리가 많은 법이오.”

말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중년 여인이 차를 다 끓여 내왔다. 뜻밖에도 찻주전자와 찻잔이 무척 깨끗했고、쟁반은 붉은 칠에 금박을 입혀 아주 공을 들인 모양새였다. 십중팔구 질 좋은 경덕진 가마의 차구인 듯싶었다.

찻잎 또한 나쁘지 않아 향기가 코를 찔렀고、덕분에 추오상의 조급했던 마음도 다소 누그러졌다.

세 사람이 묵묵히 차를 마시고 있을 때、갑자기 봉음이 의아한 소리를 냈다. 마치 기이하고 괴상한 것을 발견한 듯한 기색이었다.

강추로가 급히 물었다.

“왜 그러오?”

봉음은 대답하는 대신 탁자 모서리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그 팔선탁의 한쪽 모서리가 잘려 나가 있었는데、흔적이 아주 새것이라 마치 도(刀)로 깎아낸 듯했다. 탁자 상판의 두께가 자그마치 석 치나 되었는데、단면에는 나무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고 매끄럽고 정연했다. 이는 좋은 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깊고 두터운 내력이 내포되어야 가능한 일이었으니、결코 평범한 자의 솜씨가 아니었다.

강추로와 봉음 두 사람이 멍하니 추오상을 바라보았으나、그의 시선은 이미 바닥을 훑고 있었다.

바닥은 흙바닥이었지만、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짓밟아 돌판보다 크게 연하지 않았다. 추오상은 마침내 삼각형 모양으로 움푹 팬 흔적을 찾아냈다. 그것은 분명 탁자 모서리가 도로 깎여 바닥으로 떨어질 때 부딪쳐 생긴 흔적이었다.

추오상이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바닥을 찔러보니 돌처럼 단단했다. 그가 서서히 힘을 가하다가 내력을 삼 성쯤 실었을 때야 비로소 바닥이 손가락에 눌려 살짝 움푹 들어갔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지붕을 살폈다. 빽빽한 짚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흐트러짐 없이 그 더부룩한 짚풀 한 군데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 모습은 강추로와 봉음을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때 추오상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손을 뻗어 위를 낚아챘다.

그가 다시 자리에 앉아 손바닥을 펼치자、그 안에는 삼각형 모양의 나무토막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바로 팔선탁에서 예리한 도로 잘려 나갔던 그 모서리 조각이었다.

강추로가 그것을 가져다 떨어진 부분에 맞추어 보았더니、실 한 올 틈도 없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추오상이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가 여기 오기 전에、어떤 고수가 이곳에 머물렀던 모양이오.”

강추로가 중얼거렸다.

“고수인 줄 어찌 아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도가 탁자 모서리를 깎아내릴 때、그 작은 나무토막이 바닥을 치고 퉁겨 나가 지붕의 짚풀 속에 박혔소. 이만한 공력은 제법 여러 해를 연마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오.”

강추로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대단한 화후구려. 그런데 그자는 어찌하여 이 거친 시골 주막에서 무공을 자랑질해댄 것이오?”

추오상이 차갑게 말했다.

“누가 알겠소?”

봉음이 말을 끼어들었다.

“저 여인을 불러다 물어보는 게 어떻겠소?”

강추로가 말했다.

“맞소! 내가 가서 슬쩍 기색을 떠보겠소. 봉음、너도 옆 대장간에 가서 한번 살펴보아라. 우리보다 먼저 다녀간 고수가 있다면 조금은 경계해야 하느니라.”

한 사람은 앞으로、한 사람은 뒤로 분주히 걸어 나갔다.

추오상은 여전히 제자리에 앉아 담담한 태도로 뜨거운 차를 마실 뿐、이 일에 크게 마음을 두지 않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추로가 서둘러 돌아왔는데、얼굴 가득 엄숙한 빛을 띠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불과 한 시진 전쯤에、장한 다섯 명이 이곳에 와서 잠시 앉아 있었다고 하오.”

추오상이 물었다.

“어떤 형색들이라 하오?”

강추로가 말했다.

“여인은 잘 알지 못하지만、도를 찬 자가 대략 쉰 줄은 되어 보였다고 하오.”

추오상이 물었다.

“그 도를 찬 자가 어찌하여 탁자 모서리를 깎아버렸는지 여인은 알고 있소?”

강추로가 말했다.

“여인의 말로는、도를 찬 자가 어떤 마른 체구의 자에게 화를 내는 듯했다고 하오. 그들은 강주로 가려던 참이었는데 그 마른 자가 길을 잘못 들었던 모양이오. 도를 찬 자가 호통치기를 ‘이런 중차대한 판국에 또 실수를 저지르다니、한 번만 더 틀리면 네 대가리도 이 탁자 꼴이 날 줄 알아라!’라고 했다더구려. 그러고는 지름길을 물어보고는 차도 마시지 않은 채 가버렸다고 하오.”

추오상이 말했다.

“도를 찬 쉰 줄의 노인이라면 혹시 ‘금도’ 두동둔이 아니겠소...”

강추로가 번개같이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마른 체구는 ‘칠성지’ 채금당이 아니겠소?”

추오상이 고개를 끕끕거리며 말했다.

“틀림없소!”

강추로가 당황하며 말했다.

“금릉에서 강주로 가는 길은 이 길이 아닐 텐데 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아마 그들도 은밀히 서주에 당도했던 모양이오.”

강추로가 말했다.

“그럼 지금 서주에서 강주로 급히 가는 중이란 말이오?”

추오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아하니 그들이 치밀하게 계책을 세워 우리보다 앞서가려는 모양이오. 네 발 달린 짐승이 두 발에 뒤처진다면 말이 되지 않소. 가서 대장간 노인네를 재촉하시오. 말발굽에서 피가 나든 말든 상관 말고 얼른 편자만 박으라고 하시오. 우리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야 하오. 정 말이 달리지 못하면 말에서 내려서 발로 뛰면 그만이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추로는 이미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나가는 것도 빠르더니 돌아오는 것도 금방이었다. 강추로는 사색이 된 얼굴로 다급하게 물었다.

“봉음은 어디 갔소?”

추오상이 말했다.

“대장간에 있지 않소?”

강추로가 고개를 연신 가로저으며 말했다.

“없소、대장간에는 없단 말이오!”



추오상이 홱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 노인네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소?”

강추로가 말했다.

“딩동댕동 소리가 들리지 않소? 그는 말편자를 두드려 만들고 있고、두 어린 제자는 생강물로 말발굽을 불리고 있소.”

추오상은 문득 봉음이 나갔을 때부터 대장간에서 메질하는 소리가 한 번도 끊이지 않고 계속 울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봉음이 사라진 일을 두고 저 노인네를 의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비로소 나지막이 속삭였다.

“강 낭자! 상황이 아무래도 좋지 않소. 지금 이 순간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대는 내게서 단 한 걸음도 떨어져서는 안 되오. 명심하시오! 나를 따르시오.”

노인은 이미 상의를 벗어 던지고 맨살을 드러낸 채 일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비록 많았으나 몸집이 제법 단단하여、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팔뚝의 근육이 마치 가죽을 뚫고 튀어나오려는 토끼처럼 꿈틀거렸다.

문앞에서는 두 어린 제자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양동이를 들고 말발굽을 불리고 있었다. 두 녀석 모두 나이가 열다섯을 넘지 않아 보였는데、한밤중에 깨어났음에도 여전히 기운차게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추오상이 쪼그리고 앉아 물었다.

“얘들아! 혹시 너희 앞을 지나쳐 간 사람이 있더냐?”

두 제자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는지 잠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볼 뿐、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메질을 하던 노인이 입을 열어 말했다.

“손님! 애들한테 말 걸지 마시오! 생강물이 식으면 다시 달여야 하니、자정에 길을 나서지 못하게 되면 또 이 노인을 탓할 게 아니오.”

추오상이 대장간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차갑게 말했다.

“어르신! 우리는 이미 길을 떠날 수 없게 되었소!”

늙은 대장장이는 멍해지더니、손에 들고 있던 검게 변한 철덩이를 화로 속으로 툭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우리와 동행하던 낭자 한 명이 사라졌소.”

늙은 대장장이는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강추로를 한 번 바라보더니 다시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그 붉은 옷을 입었던 낭자요?”

추오상이 말했다.

“맞소. 어르신께서 그녀를 보셨소?”

늙은 대장장이가 고개를 연신 가로저으며 말했다.

“보지 못했소!”

추오상이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이리로 와서 어르신이 일하는 모습을 보라고 일렀소. 두 곳의 거리가 열 걸음도 채 되지 않소. 그녀가 만약 어르신의 문앞에 도달했다면 보이지 않았을 리가 없소. 고작 이 몇 걸음 사이에 다 자란 처자가 평지에서 홀연히 사라졌으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오.”

늙은 대장장이는 망치를 내려놓고 손을 비비며 말했다.

“혹시 그 낭자가 어디 숨어서 손님들을 골려 주려는 게 아니겠소?”

강추로가 말을 받았다.

“밤을 새워 길을 오느라 지칠 대로 지쳤는데、누가 숨바꼭질이나 할 흥이 남아있겠소?”

늙은 대장장이가 대장간 밖으로 걸어 나가며 두 제자에게 소리쳤다.

“이 녀석들아! 붉은 옷을 입은 낭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느냐?”

두 제자가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보았습니다!”

추오상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르신、애쓰실 것 없소. 사람은 틀림없이 잃어버린 것이오.”

늙은 대장장이가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잃어버리다니요? 귀신이 잡아간 게 아니라면 그 낭자가 비명이라도 한 번 질렀어야 하지 않소!”

추오상이 말했다.

“그녀를 잡아간 자는 귀신보다 더 지독한 고수요. 어르신! 견문이 넓으시어 이 길목에서 대장간을 하시는 동안 필시 이름난 명마들을 많이 다루어 보셨을 테고、그 주인들 또한 대개 강호의 호걸들이었을 텐데、제발 실마리라도 좀 짚어주시오!”

늙은 대장장이는 다소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이내 다시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손님... 과찬이시오.”

추오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생은 빈말을 하는 게 아니오...”

어조를 무겁게 바꾸며 그가 다그쳤다.

“하나 물어봅시다. 이 대장간은 대개 몇 시쯤 화로를 끄고 문을 닫소?”

늙은 대장장이가 말했다.

“그야 딱 정해진 바가 없소만...”

강추로가 가로채며 물었다.

“오늘 밤을 예로 들어보시오!”

늙은 대장장이가 말했다.

“이 노인이 보기에 날씨가 음산하여 밤을 새워 길을 갈 손님은 없을 듯싶었소. 그리하여 유시(酉時)가 지나자마자 제자들에게 불을 끄고 화로를 덮으라 일렀지 고요. 목욕을 하고 막 온돌에 누웠는데 세 분이 당도하신 게요.”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면 옆 주막에 장한 다섯 명이 찾아왔던 것은 알고 계시겠구려?”

늙은 대장장이가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소. 이 노인이 문틈으로 슬쩍 내다보았는데、그 사람들은 타고 온 짐승이 없기에 그냥 문을 닫아걸었소. 이 노인이 바라는 손님은 말을 탄 자들이나 짐승이 끄는 큰 수레뿐이니 말이오.”

추오상이 물었다.

“그들이 언제 떠났는지는 알고 있소?”

늙은 대장장이가 고개를 저었다.

“이 노인은 미처 살피지 못했소.”

이때 한 제자가 말을 끼어들었다.

“그리 오래 앉아있지 않고 금방 떠난 듯합니다. 개 짖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른 제자 역시 거들고 나섰다.

“저도 옆집 장 씨 아주머니가 문을 닫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 짖는 소리가 멎었는데、제가 막 잠이 들려 할 때 개가 다시 짖기 시작했습니다.”

강추로가 추오상의 귀에 바짝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틀림없이 그 무리가 가다가 되돌아온 것이오.”

추오상은 은밀히 팔꿈치로 그녀를 툭 치며 다시 그 제자에게 물었다.

“개가 얼마나 오래 짖었느냐?”

그 제자가 말했다.

“꽤 오래 짖었습니다. 동쪽에서도 짖고 서쪽에서도 짖는 것이、마치 양쪽 모두에서 사람이 온 듯했습니다.”

늙은 대장장이가 말했다.

“춘자(春子)야! 똑똑히 들은 게 아니라면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 이 손님께서 네게 이런 걸 물으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느니라.”

그 제자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똑똑히 들었습니다. 저 역시 다시 일어나 일을 해야 할까 봐 걱정이 되어、말발굽 소리가 나는지 유심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개 짖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늙은 대장장이가 말을 이었다.

“개가 한바탕 요란하게 짖어대긴 했소. 그때 마침 내가 마구간 옆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대략 밥 한 끼 먹을 만한 시간이 지난 뒤에 세 분이 당도하셨소. 평소 같으면 이 노인은 문앞에서 말발굽 소리가 멈추자마자 즉시 문을 열었을 텐데、오늘 밤은 어쩐지 예감이 해괴하여 세 분이 문을 한참 동안 두드리게 만들었소.”

추오상이 물었다.

“어떤 점이 괴이했다는 말이오?”

늙은 대장장이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

“이 노인도 무어라 꼬집어 말하긴 어렵소.”

강추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은 어찌하여 자꾸 이런 쓸데없는 소리만 묻는 거요? 사람을 찾으려는 거요、아니면 우리의 길을 서두르려는 거요? 어서 결단을 내리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사람을 찾는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소. 차라리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게 만드는 편이 낫지...”

그가 말을 잠시 멈추더니 늙은 대장장이를 향해 이어 말했다.

“어르신! 차라리 이 말들의 발굽 상처를 푹 쉬게 해줍시다. 제자들에게 말들을 마구간으로 끌고 가 좋은 여물을 먹이라 이르시오. 우리는 날이 밝으면 떠날 테니、그때 비용을 한꺼번에 정산해 주겠소. 그리 아시오.”

늙은 대장장이가 말했다.

“손님! 그럼 잃어버린 그 낭자는...”

추오상이 손을 흔들며 가로막았다.

“어르신! 어르신도 보아하니 아시겠지만、우리는 모두 강호에서 밥을 빌어먹는 자들이라 필시 이곳에서 원수를 만난 모양이오. 할 말 없소、사람을 잃어버렸으니 달게 받아들여야지 별수 있겠소. 옆집 장 씨 아주머니가 묵을 만한 객방 하나를 내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늙은 대장장이가 말했다.

“두 분이 여기서 묵으시겠다면 눈높이를 많이 낮추셔야 할 걸세!”

추오상은 더는 그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이 강추로의 소매를 잡아끌었고、두 사람은 다시 그 허름한 주막으로 들어갔다.

주막 주인인 장 씨 아주머니는 이미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눈치챘는지 문앞에서 머리를 껌벅거리고 있다가、두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급히 물었다.

“듣자 하니 처자 한 명을 잃어버렸다면서요?”

추오상이 웃으며 말했다.

“그 자매 둘이 워낙 자주 투정을 부리는 터라、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곧 되돌아올 것이오. 아주머니! 우리에게 비교적 깨끗한 방 하나를 마련해 주시오. 오늘 밤은 도저히 길을 갈 수가 없게 되었소!”

장 씨 아주머니(張大嫂)가 말했다.

“방이 있기는 합니다만、두 분께서 더럽다고 하실까 염려스럽습니다.”

강추로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어서 정리해 주시오! 대충 묵을 만하면 그만이오...”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가 장 씨 아주머니가 멀어지자 비로소 나지막이 이어 말했다.

“추오상、당신이 낚시터의 강태공처럼 태연자약하게 아무 일도 없는 듯 굴고 있으니、내가 아주 어리둥절할 지경이오.”

추오상이 목소리를 바짝 낮추어 말했다.

“우리는 지금 단 한 걸음도 움직여서는 안 되오.”




강추로가 말했다.

“상대를 그렇게 대단하게 보고 있는 거요?”

추오상이 말했다.

“적은 어둠 속에 있고 우리는 밝은 곳에 있으니 대처하기가 쉽지 않소. 게다가 봉음이 문을 나서자마자 그들의 수작에 걸려든 것이 분명한데도 내가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으니、상대의 솜씨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소.”

강추로가 말했다.

“당신에게도 남을 두려워할 때가 있을 줄은 몰랐구려.”

추오상이 말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대요.”

강추로가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상대가 봉음을 납치할 수 있었다면 그대 역시 납치할 수 있소. 그때 가면 내가 어찌해야 하겠소? 우리 두 사람에게는 아직 열 달의 이슬 같은 인연이 남아있으니、나는 그대와 헤어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소!”

강추로가 말했다.

“그럼 봉음의 생사는 돌보지 않겠다는 말이오?”

추오상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저 내버려 둘 수밖에 없소!”

강추로가 말했다.

“그 애가 있으면 유독 거추장스럽기도 하니、생사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오. 하지만 당신이 갑자기 이 더러운 시골 주막에 묵겠다고 하니 참으로 어리둥절할 따름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본래는 최대한 빨리 강주로 가려 했으나、이미 누군가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해치려 수작을 부리고 있으니、이제는 도리어 조급할 이유가 없어졌소.”

강추로가 말했다.

“추오상、당신이 갑자기 강주로 급히 가려는 진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아마 어둠 속에서 나를 노리는 자들 역시 내가 왜 강주로 가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오. 그래서 봉음을 납치한 것이겠지. 사실 그 애는 아무것도 모르니、어쩌면 억울하게 매질이나 당할지 모를 일이오.”

강추로가 말했다.

“맞구려! 문공정이 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는데、그것이 아마 당신이 밤을 새워 강주로 달려가려는 원인이겠지요.”

추오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틀렸소! 문공정은 그저 내게 묵옥검이 송일조의 손에 있고 그 누구도 송일조의 적수가 되지 못하며、자신 또한 차 한 잔 마실 시간 동안 버티는 것이 고작이니 우리더러 어서 현장을 떠나라고 당부했을 뿐이오. 그러지 않으면 온전히 몸을 빼내기 어렵다고 말이오.”

강추로가 말했다.

“한참을 말했는데도、당신은 여전히 왜 그렇게 급히 강주로 가야 하는지 말하지 않고 있소.”

추오상의 신색이 엄숙해지더니 말했다.

“강 낭자! 내가 그 이유를 말하면 그대는 필시 크게 실망할 것이오.”

강추로가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어째서요?”

추오상이 말했다.

“내가 서주를 나서자마자 왜 급히 건장한 말 세 필을 샀는지 알고 있소?”

강추로가 말했다.

“나와 봉음이 당신을 따라잡지 못할까 염려해서가 아니오.”

추오상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틀렸소! 만약 걸어서 갔다면 틀림없이 내가 그대들을 따라잡지 못했을 것이오.”

강추로가 크게 경악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추오상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봉음이 실종된 것을 알았을 때 내 필시 흔적을 쫓아 추적했을 것이오. 그런데 오늘 밤에는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 도리어 이곳에 묵으려 하니、이것은 또 무엇 때문이겠소?”

강추로가 다급하게 말했다.

“추오상、어서 자세히 말해보시오! 정말 답답해 죽겠소.”

추오상이 다시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그날 숲속에서 뜻밖에 자오쇄혼침에 당했을 때、그대와 봉음은 모두 독이 퍼져 정신을 잃었으나 나는 강철 침 두 개를 맞고도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소. 그리하여 내 내력이 이미 백독에 당하지 않는 경지에 이른 줄로만 알았소. 그런데 뜻밖에도 천면귀 호도의 독이 묻은 소매 화살이 나를 상하게 했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송일조와 대화를 나눌 때야 비로소 경혈 내에 이미 독이 퍼졌음을 깨달았소. 현재는 내력으로 독성을 억누르고 있기에、의성 주신천에게서 해약 한 제를 구하고자 급히 강주로 가려던 것이었소. 강 낭자! 내가 만약 걸어서 간다면 십 리도 못 가 땅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할 것이고、누군가와 초식을 겨룬다면 세 초 안에 반드시 패할 것이오. 그대는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소!”

강추로가 놀라며 말했다.

“상황이 이토록 심각하단 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내가 어찌 그대에게 거짓말을 하겠소? 평소 같았으면 상대가 아무리 고수라 해도 봉음을 납치할 때 내 필시 무슨 소리라도 들었을 텐데、방금은 도통 아무 기척도 느끼지 못했소.”

강추로가 말했다.

“독성이 이토록 심각한데 어찌 여기 머물 수 있겠소. 내가 가서 늙은 대장장이를 재촉할 테니...”

추오상이 손을 치켜들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앉으시오! 상대는 봉음을 납치하고도 그리 멀리 가지 않았소. 나의 현재 체력으로는 결코 곤경을 벗어나기 어려우니、차라리 가만히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우리를 깊이 알 수 없게 만드는 편이 낫소.”

강추로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물었다.

“그럼 내일 아침은 어찌할 요량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상대는 내가 독에 당한 사실을 알지 못하니、날이 밝으면 절대로 이곳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붕 위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이내 장한 세 명이 문앞에 나타나 호시탐탐 추오상을 노려보았다.

추오상의 얼굴에 약간의 경악하는 빛이 스쳤으나、그는 자리에 앉은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강추로가 번개같이 몸을 일으켜 추오상의 앞을 가로막고는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중 한 장한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추 부궁주! 오랜만이외다.”

추오상이 차갑게 말했다.

“추모의 안목이 둔하여 귀하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겠소...”

그 장한이 말을 받았다.

“소인은 호여해라 하오. ‘금도’ 두 어르신 수하의 졸개이외다. 추 부궁주께서 당시에 두 부(府)의 상빈이셨으니、자연히 소인 같은 실없는 인물에게는 마음을 두지 않으셨겠지요.”

추오상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오? 호 형은 이곳을 지나던 길이오? 아니면 특별히 찾아온 것이오?”

호여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인이 어찌 추 부궁주와 형제라 칭하겠소. 솔직히 말해、소인은 특별히 이곳에서 대가를 기다리고 있었소.”

추오상이 말했다.
“무슨 볼일이오?”

호여해(胡如檜)가 말했다.

“추 부궁주께서 금릉에 계실 때、몇 번이고 두 어르신의 목숨을 취하려 하셨던 일을 아직 기억하고 계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그것은 그저 오해였소. 기회가 된다면 추某가 직접 두 어르신을 뵙고 죄를 청할 것이오.”

호여해가 냉소하며 말했다.

“굽힐 때 굽히고 펼 때 펼 줄 아시니 추 부궁주는 과연 대장부라 할 만하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말을 할 때가 아닌 듯싶소...”

그는 스윽 소리를 내며 허리춤의 유엽단도를 뽑아 들고 이어 말했다.

“소인이 추 부궁주에게 그간의 공도를 좀 받아내야겠소.”

강추로가 차갑게 꾸짖었다.

“멈추어라! 네놈이 망동한다면 본 낭자가 너를 죽여 묻힐 곳도 없게 만들 것이다.”

호여해가 냉소하며 말했다.

“낭자의 그 얇은 검 한 자루로 우리 단도 세 자루를 당해낼 수 있겠소?”

그의 말투로 보아、아무래도 추오상의 말을 엿듣고 그가 독에 당해 내력이 흩어져 대적할 힘이 없음을 알아챈 듯했다.

하지만 추오산은 지극히 의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 형! 추모가... 추모가 아직 여기 있고、또 추모의 이 사절검 또한 만만치 않으니 부디 호 형은 삼가 생각하시오...”

호여해(胡如檜)가 말했다.

“마침 그 명검의 예리함을 겨루어보고 싶던 참이었소...”

말과 동시에 그가 몸을 들이밀며 발을 내딛더니、도를 휘둘러 강추로의 목덜미를 베어 갔다. 그와 동시에 다른 두 장한 역시 도를 뽑아 들고 주막 안으로 뛰어들어、좌우에서 추오상을 향해 협공을 펼쳤다.

추오상의 눈빛에 서린 경악의 빛이 완연했으나、그는 여전히 꼿꼿이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였다가는 독성이 온몸으로 흘러 다니게 될 터였다.

강추로가 장검을 내뻗었다. 비록 공력은 당년보다 크게 못 미쳤으나 대적한 경험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일 대 삼의 싸움이라 해도 상대들이 그저 두 부의 호위 무사 부류에 불과했기에 한동안은 버텨낼 수 있었다. 문제는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추오상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었고、이 때문에 그녀의 손발이 다소 허둥지둥 꼬이기 시작했다.

세 자루의 단도는 아주 일사분란하게 공격을 가해왔다. 아무래도 손을 쓰기 전에 이미 약조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강추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추오상으로 하여금 손을 써서 초식을 내도록 압박하는 데 있었다. 아무래도 추오상이 이미 독에 당했다는 말을 온전히 믿지 못해、속으로 그를 시험해보려는 심산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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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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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상인(路上人) | 작성시간 26.06.23 new 깊이 감사드립니다. 재활훈현 잘 다녀오세요.
  • 작성자사니조아 | 작성시간 26.06.23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상 | 작성시간 26.06.23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駕馬 선생 (1954년생) | 작성시간 26.06.23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태사 | 작성시간 26.06.23 new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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