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 六 回. 의운중중(疑雲重重)....의심이 첩첩이 쌓이다. >
추오상은 서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쥐고 있던 비단 수건을 치켜들고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한 번 보시오."
황대선은 눈꺼풀을 힐끗 치켜뜨며 말했다.
"그것은 그저 비단 수건 한 장이 아니오? 호수색(湖色)인 것을 보니 마땅히 사내의 물건이로군."
추오상이 말했다.
"비단 수건 안에 무엇이 싸여 있는가?"
황대선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함을 질렀다.
"공자가 기어이 나를 난처하게 만들 작정이오?"
추오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관상쟁이들은 대개 스스로를 반선(半仙)이라 칭하고, 귀하는 대선(大仙)이라 호칭하는데 어찌 난처할 리가 있겠소?"
황대선은 오만한 신색으로 말했다.
"공자가 맞게 말했소! 그 누구도 나를 난처하게 만들 수는 없지. 비단 수건 안에 싸여 있는 것은 소주(?州)에서 생산된 은색 실 한 가닥이니, 결코 틀림없을 것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틀렸소."
황대선이 말했다.
"틀렸다면 간판을 부숴도 좋소."
추오상이 말했다.
"귀하의 간판은 어디에 있는가? 꺼내어 추 아무개가 부수게 한 뒤, 이 비단 수건 안에 진정 무엇이 싸여 있는지 보여주겠소."
황대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소, 나 황대선은 결코 잘못 판단한 적이 없단 말이오."
추오상은 냉소하며 말했다.
"헤헤! 이번만큼은 귀하가 완전히 잘못 판단했소. 비단 수건 안에는 '섬여사(蟾??)'가 싸여 있소."
황대선은 먼저 흠칫 놀라더니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갑자기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절묘하군! 절묘해...."
추오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이 그리 우스운가?"
황대선은 웃음기를 거두고 안색을 정돈하며 말했다.
"공자가 기꺼이 은자를 조금 더 쓸 의향이 있으시오?"
추오상이 말했다.
"방금 전 그 판단만 보더라도 이치에서 완전히 벗어났거늘, 내가 어찌 억울하게 돈을 날리겠소!"
황대선은 한쪽 손을 내밀어 흔들며 말했다.
"그저 은자 다섯 냥이면 족하오. 내가 추 공자가 방금 전 겪은 일을 털끝만치도 틀림없이 명명백백하게 판단해 줄 터이니 말이오. 한 번 시험해 보시겠소?"
추오상이 말했다.
"만약 또 틀린다면 어찌하겠는가?"
황대선은 허풍을 떨며 큰소리를 쳤다.
"간판을 부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만약 반 마디라도 틀림이 있다면 내 목을 베어 요강으로 쓰게 해도 좋소!"
추오상이 말했다.
"귀하는 정녕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자요?"
황대선이 말했다.
"철구(鐵口)라 함은 철석같이 단정하여 움직이지 않는 법이오! 자연히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소."
추오상은 주머니에서 다섯 냥 중량의 무늬 은괴를 꺼내 허공으로 던지며 말했다.
"추 아무개가 먼저 은자를 지불하겠소."
황대선은 은자를 손에 받아 무게를 달아보더니 품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방금 전 사람이 하나 죽지 않았소?"
추오상이 말했다.
"과연 그렇소."
황대선이 말했다.
"그자는 두 '금도(金刀)'가 보낸 자로, 섬여사 한 가닥을 가져왔을 터인데...."
추오상이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맞소, 그 섬여사가 지금 이 비단 수건 안에 싸여 있소."
황대선이 말했다.
"비단 수건 안에는 그저 실이 들어 있을 뿐, 섬여사가 아니오. 나 황대선은 결코 잘못 판단하지 않소!"
추오상은 아연실색하여 물었다.
"그렇다면 설마...?"
황대선은 손을 들어 추오상에게 말을 자르지 말라는 시늉을 해 보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 섬여사는 서쪽 상방에 묵고 있는 저 소월매 낭자가 교묘한 손속을 부려 바꾸어 가 버렸소."
추오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진정입니까?"
황대선이 말했다.
"절대로 틀림없소...."
어조를 잠시 바꾸며 이어 말했다.
"다만, 지금 그 은색 실 위에도 똑같이 약 분말이 묻어 있소. 섬여사와 마찬가지로 술기운이 한 번 닿기만 하면, 실 위의 약 분말이 곧장 술즙 안으로 스며들게 되어 있지요."
추오상은 미간을 바짝 찌푸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어찌하여 이런 수단을 쓴단 말인가?..."
황대선이 말을 가로채며 대답했다.
"저 소 낭자가 공자를 독살하려 한다고는 생각지 마시오. 그 실 위에 묻은 약 분말은 그저 강렬하게 이성을 잃게 만드는 미약(亂性藥物)일 뿐이오. 그녀는 공자와 저 해어화(解語花)의 좋은 일을 성사시켜 주려 한 것이외다!"
추오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의 판단이 확실한가?"
황대선이 말했다.
"절대로 틀림없소! 공자가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비단 수건 안의 실을 술에 담갔다가 잔에 따라 내 침상 위에 있는 저 기생에게 마시게 해 보시오. 그저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실 만한 시간이 지나면, 아주 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길 터이니 말이오."
추오상이 말했다.
"소월매가 이토록 행동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의도인가?"
황대선이 말했다.
"공자가 지금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은 오직 저 '사절검(四?劍)'과 '선풍검법(旋風劍法)' 덕분이오. 만약 이성을 잃고 계율을 깨뜨려 몸을 더럽힌다면(亂性破戒), 공자에게 무슨 위풍당당함이 남아 있겠소?"
추오상이 말했다.
"대선! 내가 귀하에게 정녕 감복했소. 우리 다시 한 가지 거래를 하십시다. 귀하가 나를 위해 소월매가 나와 맞서는 진짜 의도를 판단해 준다면, 원하는 은자의 액수는 귀하가 말하는 대로 따르겠소!"
황대선이 말했다.
"헤라! 이것은 진정으로 큰 장사로군."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면 은자를 벌 이 좋은 기회를 결코 놓치지 마시오."
황대선은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역시 자연히 놓치지 않을 터이나, 다만 공자가 그 값을 치러내지 못할까 두렵구려."
추오상이 말했다.
"사자처럼 터무니없이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이 아니라면, 추 아무개가 반드시 힘을 다해 따르겠소."
황대선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나는 단비우의 손에 든 저 '창랑검(滄浪劍)'을 원하오."
추오상은 마음속으로 크게 경악하여 서늘하게 꾸짖었다
"이것이 귀하가 금릉에 온 진짜 목적이었군?"
황대선이 말했다.
"검은 개봉에 있고 나는 지금 금릉에 있으니, 두 곳의 거리가 자못 멀지 않소!"
추오상은 더 물어보아야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것임을 직감했다. 무리하게 얼굴을 붉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여지를 남겨두는 편이 나았다. 그리하여 서늘하게 말했다.
"추 아무개가 그 검을 손에 넣게 되면, 그때 다시 와서 귀하와 거래를 하겠소!"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몸을 돌려 가 버렸다.
황대선이 뒤에서 소리쳤다.
"공자, 천천히 가시오!"
추오상이 몸을 돌려 물었다
"무슨 일인가?"
황대선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공자, 저 비단 수건 안의 실은 내게 남겨두고 가시오. 저 기생 년이 영 흥이 나지 않으니, 실 위의 약 분말이 어쩌면 그녀를 조금 더 기운 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르지 않소."
추오상은 냉소하며 말했다.
"귀하가 쓴 은자가 겨우 한 냥도 되지 않으니, 저 사람의 목숨 하나는 제발 살려두시오!"
말을 마친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신속한 걸음으로 동쪽 행랑방을 걸어 나갔다.
서쪽 상방으로 돌아온 그는 소월매의 방문 앞에 이르렀다. 손을 들어 방문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방 안에서 소월매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분이십니까?"
추오상이 대답했다. “추모요!”
문이 열리자 소월매는 옷차림이 단정했다. 분명 추오상이 올 것을 예상한 듯 그를 한참 동안 살펴보더니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추오상이 말했다. “추모가 들어가서 좀 앉고 싶다.”
소월매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들어오세요! 당신에 대해서는 이 몸이 경계할 필요가 없겠지요.”
추오상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찌하여 추모를 전혀 경계하지 않는 거지?”
소월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사절검’의 소유자이니, 자연히 쉽게 계율을 깨지 않을 테니까요.”
추오상이 냉소하며 말했다. “소 낭자의 아름다운 외모라면, 한 번 친밀해질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깟 ‘사절검’은 더더욱 아무것도 아니니, 낭자는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소월매는 그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가, 이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깊은 밤에 찾아온 게 고작 이렇게 홧김에 하는 소리를 늘어놓기 위해서인가요?”
추오상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마라. 조금 전 추모가 옆방 황 낭자의 방에 있었던 것을 분명 너도 알고 있었을 터다.”
소월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그 붓 한 쌍에 담긴 무공을 겨루고 있었겠지요!”
추오상이 손에 쥐고 있던 비단 수건을 탁자 위에 던지고 그것을 펼쳤다. 등불 빛에 비추어 자세히 살펴보고서야 황대선이 한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것은 과연 은색 실선이었다.
추오상이 소월매의 얼굴을 매섭게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은사는 분명 네 물건이겠지?”
소월매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으나, 이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그걸 어떻게 알았나요?”
추오상이 말했다. “우리 이 객잔에 모르는 것이 없는 대선이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소월매가 웃으며 욕했다. “또 그 입방정을 떠는 녀석이군요. 그자도 제법 능력이 있나 보네요!”
추오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에게 묻겠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소월매가 말했다. “황대선이 아마 충분히 설명했을 텐데요. 두 ‘금도’가 사람을 보내 당신을 해치려 하기에, 이 몸이 실선을 ‘두꺼비실’로 바꿔치기했어요. 물어보나 마나 이 몸은 당신이 죽는 것을 원치 않아서인데, 설마 아직도 모르겠나요?”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 실선에 또 무슨 약 가루를 묻혀둔 거지?”
소월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없어요!”
추오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선 위에 이성을 잃게 만드는 약 가루를 묻혀두어, 술기운에 닿으면 술잔 속으로 흡수되게 만들었다. 네가 나로 하여금 계율을 깨뜨리게 하여 내 무공의 근본을 망치려 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소월매가 말했다. “그것도 그 황대선이 말해주던가요?”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
소월매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당신은 그 녀석의 큰 꾐에 빠진 거예요. 실선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추오상이 말했다. “내 눈으로 분명 실 위에 가루가 얹혀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소월매가 두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비단 수건에서 실끝을 집어내어 반쯤 끌어당기며 가볍게 웃었다. “다시 잘 보세요, 이 위에 무엇이 있나요?”
추오상이 정신을 집중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그 실선은 이상하리만치 매끄러웠고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월매가 다시 말했다. “어쩌면 비단 수건에 닦여 깨끗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비단 수건에 당신이 마음속으로 의심하는 약 가루가 묻어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추오상은 자연히 끝까지 파헤쳐 보려 했다. 그는 그 실선을 완전히 뽑아내어 자세히 살폈다. 다시 그 두 장의 비단 수건을 반복해서 검사했으나,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문득, 추오상은 은은하고 기이한 향기가 허파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깜짝 놀라 얼른 숨을 멈추었다. 그러나 이미 한 발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체내의 혈기가 이미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추오상이 몸을 튀겨 일으키며 힉 소리치듯 꾸짖었다. “소월매, 네가 어찌 이리 비열한 수법을 쓸 수가 있느냐?”
소월매가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비열한 수법으로 비열한 사람을 상대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추오상이 분노 찬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나 역시 약속을 깨고 검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소월매가 말했다. “당신은 지금 손이 솜처럼 부드러워지고 몸은 불처럼 뜨거워져서, 검을 뽑을 힘조차 없을 텐데요.”
추오상이 기운을 운용해 보았으나, 과연 아무런 힘도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랫배 쪽은 이상하게 뜨겁고 팽창했으며, 눈앞의 소월매도 요염하고 매혹적으로 보였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이성을 잃게 만드는 약물을 들이마셨음을 깨달았다.
소월매가 두 손바닥을 마주쳐 청아한 소리를 내자, 한 알몸의 여인이 드리워진 휘장 뒤에서 유혹적인 몸매를 뒤틀며 걸어 나왔다. 다름 아닌 바로 진회하의 유명한 기생 은취 낭자였다.
소월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은취 낭자! 이분이 바로 당신이 마음속으로 흠모하던 추 공자예요. 은 백 냥도 받으셨겠지요. 이제 어떻게 추 공자를 시중들어야 하는지 잘 알겠지요.”
은취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소 낭자께서 분부하지 않으셔도 아옵니다. 다만 낭자께서는... 계속 여기 서 계실 건가요...?”
소월매가 말을 받았다. “이 몸은 나가서 지킬 테니, 나는 누군가 당신들의 좋은 일을 방해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녀가 아직 채 나가기도 전에, 저편의 추오상은 이미 미친 듯이 은취를 끌어안았다.
추오상은 검을 뽑을 힘은 없었으나, 여인의 고운 몸을 끌어안는 힘은 이상하리만치 강했다. 이것이 바로 그 신비한 약물이 부리는 부작용이었다.
소월매가 걸음을 재촉하여 방 문밖으로 향했다. 비록 이것이 그녀가 직접 꾸며낸 추태극이었지만, 추오상의 추한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막 손을 들어 문을 열려고 할 때, 방 문이 갑자기 넘어지며 두 그림자가 번개처럼 뛰어들었다.
앞선 사람은 머리가 온통 은발이었다! 그녀는 ‘은호’였고, 뒤따른 사람은 황해어였다.
‘은호’가 번개처럼 손을 뻗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가볍게 찔러 추오상의 ‘혼혈’을 봉했다. 추오상은 즉시 바닥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졌다.
황해어는 양손에 붓을 쥐고 소월매를 노엽게 려보았다.
소월매는 속으로 은근히 놀랐으나, 겉으로는 이상하리만치 침착함을 유지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다니, 도적 떼와 다를 바 없군요. 어찌 된 일인가요?”
‘은호’가 냉소하며 말했다. “그건 네놈에게 물어야겠지.”
황해어 역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 낭자! 겉보기에는 조신하고 단정해 보이더니, 당신이 이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
소월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이 무슨 자격으로 참견인가요?”
‘은호’가 말했다. “늙은이가 개봉을 지나다가 ‘경천궁’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단 궁주께서 이 늙은이에게 추 부궁주를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하셨으니, 자연히 수수방관할 수 없다.”
소월매가 다시 황해어에게 물었다. “황 낭자는요?”
황해어가 말했다. “나와 추 공자는 이미 정을 맺은 사이니, 자연히 그가 진회하 기생에게 더럽혀지는 것을 눈뜨고 볼 수 없다.”
소월매가 안색을 어둡게 굳히며 매섭게 꾸짖었다. “추 공자가 옛 정인인 은취 낭자와 회포를 푸는 것인데, 당신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황해어가 말했다. “소 낭자! 변명하려 하지 마라. 이것은 명백히 당신이 파놓은 함정이다.”
소월매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은 당장 나가세요. 그러지 않으면 이 몸의 손속이 사정을 두지 않아도 원망하지 마세요.”
‘은호’가 냉소하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마침 네 무공 절학을 한번 가르침 받고 싶던 참이다.”
황해어 역시 말을 이었다. “허세 부리며 위협하는 짓은 그만둬라. 당신은 근본적으로 무공을 조금도 할 줄 모른다.”
소월매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을 모르는 철부지 같으니라고, 어디 한번 시험해 보세요.”
말을 마치며 천천히 오른손 바닥을 들어 올렸는데, 눈 속에서 매섭고 날카로운 두 줄기 광망이 폭발하듯 뿜어 나왔다.
‘은호’와 황해어는 가슴 속으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월매의 그 날카로운 두 줄기 눈빛을 보니, 어찌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무공을 할 줄 알 뿐만 아니라, 그녀의 내력 수위는 거의 천인의 경지에 이른 듯했다.
소월매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쪽이 먼저 와서 죽음을 맞이하겠나요? 이 몸은 결코 한 손바닥도 더 쓰지 않겠어요.”
‘은호’와 황해어는 서로를 바라볼 뿐, 누구도 감히 망동하지 못했다. 소월매의 무공이 너무도 고금 모측할 정도로 깊었기 때문이다.
문득 이때, 황대선이 갑자기 걸어 들어왔다. 그는 소월매를 향해 공경하게 읍을 하며 말했다. “소 낭자께서는 벼락같은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 화근은 모두 나 황대선이 부른 것이니, 황대선이 와서 잔무리를 수습하게 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소월매가 손바닥을 내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황대선이 말했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소 낭자께서 무공을 못 하신다고 말했지만, 사실 낭자의 내력 수위는 아마 무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일 것입니다. 만약 저들이 멋모르고 시험했다가 낭자의 손바닥 아래 죽기라도 한다면, 나 황대선의 죄업이 어찌 무겁지 않겠습니까?”
소월매가 말했다. “당신은 어찌하여 헛소리를 부리고 다녔나요?”
황대선이 말했다. “헛소리를 부린 것이 아니라, 낭자께서 너무도 교묘하게 숨기셔서 조금도 알아챌 수 없었던 탓입니다.”
소월매가 말했다. “눈앞의 이 잔무리를 당신은 어떻게 수습할 생각인가요?”
황대선이 말했다. “추오상은 그의 두 검희가 부축하여 방으로 돌아가 돌보게 하고, 이 두 분 역시 물러가게 청하겠습니다.”
소월매가 말했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일은 어떻게 매듭지을 건가요?”
황대선이 말했다. “가게 주인을 불러 수리하게 하면 됩니다. 낭자께서 탓하시려거든 내 머리 위로 돌려주십시오.”
소월매가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 면복이 아주 넓다고 생각하나요?”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낭자께서 낯을 세워주셔야지요!”
소월매가 말했다. “당신이 오후에 추오상을 가로막아 두 ‘금도’의 교활한 계책에 빠지지 않게 한 것을 보아, 낯을 세워주겠어요!”
황대선이 연달아 읍을 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몸을 돌려 ‘은호’와 황해어 두 사람에게 연신 포권을 하며 말했다. “두 분은 이만 돌아가십시오!”
‘은호’와 황해어는 잔뜩 억울하고 분한 기색을 띠며 차갑게 흥 하고 콧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돌려 떠났다.
황대선이 두 손바닥을 마주치자, 하용미와 맹채옥이 다급한 걸음으로 동시에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하용미와 맹채옥 두 사람의 얼굴에는 모두 성난 기색이 역력했다. 동시에 소월매를 향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첩형 등은 부궁주를 시종하여 금릉에 오며 수호의 책임을 맡았다. 낭자가 명백히 추 부궁주를 해하려 의도했으니, 첩형 등은 침묵할 수 없다.”
소월매는 침착한 태도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두 분은 어쩔 생각인가요?”
하용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에게 교훈을 주겠다!”
두 검희가 진작에 뜻을 모았는지, 말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은 즉시 좌우로 갈라섰다. 왼손으로 동시에 허리춤의 비단 띠를 걷어 올리고 오른손 바닥을 검자루에 대며, 차가운 번개 같은 네 줄기 눈빛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소월매의 얼굴에 고정했다.
소월매는 마치 깊은 못이나 높은 산처럼 우뚝 선 자태로, 표정은 마치 고요한 우물물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미풍에도 움직이지 않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은 먼저 망동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당신들은 살아서 이 방을 나가지 못할 테니까요.”
두 검희가 동시에 말했다. “주인을 위해 망하는 것이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소월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충성심이 지극하니 그 뜻은 가륵하네요. 하지만 두 분은 참으로 어리석고 가소롭군요!”
맹채옥이 오른 손목을 미세하게 움직여 반짝이는 장검을 반쯤 뽑아내며 매섭게 꾸짖었다. “어리석은 곳이 어디인지 한번 가르침을 청하겠다!”
소월매가 말했다. “추오상은 현재 혼수 상태에 빠져 있으니 누구라도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어요. 두 분은 주인의 안전을 지키지 않고, 도리어 이 몸과 이런 무의미한 다툼을 벌이려 하니 어리석고 가소롭지 않나요? 두 분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예요.”
두 검희는 그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둘 다 멍해졌다.
황대선이 끼어들며 말했다. “좋습니다! 두 분은 추 공자를 부축해 방으로 돌아가 편히 쉬게 하십시오!”
두 검희가 차갑게 흥 콧소리를 내고는, 각자 몸을 굽혀 추오상의 한쪽 팔을 붙잡고 그의 신체를 부축해 일으켰다.
황대선이 품속에서 작은 종이 꾸러미를 꺼내 두 검희의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추 공자는 방금 강렬한 ‘란성향’을 들이마셨습니다. 이 약을 술과 함께 마시게 하면 한 시진 만에 이성을 잃게 만드는 약물의 독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두 검희는 선뜻 받지 않고 서로 눈을 맞추며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을 띄었다.
황대선이 다시 말했다. “받으십시오. 만약 나 황대선이 정말로 추 공자에게 독수를 쓰려 했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굳이 이런 귀신같은 장난을 부릴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하용미가 종이 꾸러미를 받아 쥐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존장께서 부린 귀신같은 장난이 이미 적지 않다...”
맹채옥이 말을 받았다. “흥! 당신 마음속에 무슨 속셈을 품고 있는지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저 소 씨 성을 가진 자는 명백히 내력이 깊고 무공이 매우 강함에도 당신은 그녀가 무공을 조금도 할 줄 모른다고 말했으니, 분명히 의도적으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황대선이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노련한 말도 발을 헛디딜 때가 있는 법이니, 나 황대선이라 해도 실수를 면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이 일을 잘못 판단하여 추 공자의 복채를 받기가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이 해독 약 한 꾸러미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어조를 한번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이 해독 약은 거금을 주어도 구하기 어려우니, 나 황대선이 이미 크게 밑진 셈입니다!”
하용미가 차갑게 흥 콧소리를 내고는 맹채옥을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가자!”
두 검희가 깊이 잠든 추오상을 부축해 떠난 후, 황대선이 능글맞은 얼굴로 말했다. “소 낭자! 나 황대선이 당신을 위해 한바탕 막아주었으니, 낭자께서도 무언가 하사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월매가 사정두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당신 낯을 세워준 것만으로도 하늘 만한 면복인데, 당신은 득촌진척하려 하지 마세요!”
황대선이 헤헤 연달아 웃으며 말했다. “나를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그래도 낭자께서 실속 있는 물건을 조금 더 하사해주셨으면 합니다!”
소월매가 말했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나요?”
황대선이 손을 들어 방구석에 있는 은취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차피 낭자께서 이미 은자를 지불하셨으니 다시 찾아올 수도 없을 터, 저 기생 누이를 나에게 하사하시어 반 밤 동안 즐기게 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황대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월매가 매섭게 꾸짖었다. “닥치세요! 당신은 이 몸 앞에서 하류 같은 소리를 지껄이지 마세요!”
황대선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낭자께서 참으로 정을 너무 몰라주신다!”
소월매가 그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목소리를 낮추어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황대선! 당신의 밑천을 이 몸은 똑똑히 파악하고 있다. 추오상 역시 당신이 손을 쓴 수법이 ‘현기문’의 ‘무팔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신이 성명을 바꾸고 금릉에 섞여 든 목적이 어디에 있든, 이 몸의 머리 위로 기어오르지만 않는다면 이 몸 역시 당신의 바닥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그러니 당신도 공연히 멋쩍은 일을 자초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낭자께서는 참으로 귀가 밝고 눈이 예리하시다. 하지만 나 역시 낭자의 내막을 아주 똑똑히 파악하고 있으며, 당신의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당신에게 진회하의 기생 한 명을 달라고 청했을 뿐인데, 어찌 이리 인색하게 구시는가?”
소월매가 고운 얼굴을 굳히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말해보아라. 이 몸에게 무슨 남 부끄러운 내막이 있기에 당신이 들추어낼까 봐 두려워하겠는가?”
황대선은 목소리를 지극히 낮추어 모기 울음소리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낭자께서는 근본적으로 무공을 조금도 할 줄 모른다!”
소월매가 나직이 꾸짖었다. “어디 한번 시험해 보아라.”
말 소리와 함께 오른손 바닥을 천천히 들어 올렸는데, 눈에서 사람의 넋을 잃게 만드는 매서운 냉망이 두 줄기 뿜어 나와 보는 이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황대선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낭자의 이 장기 하나는 참으로 사람을 기가 막히게 위협한다. 조금 전 ‘은호’와 황해어 역시 낭자의 눈에서 예리한 광망이 뿜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감히 멋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사실 저들 두 사람은 손가락 하나만 내밀어도 낭자를 찔러 넘어뜨릴 수 있었을 텐데, 나 황대선이 틀린 말을 했는가?”
마치 정말로 황대선이 정곡을 찔렀는지, 소월매의 신색이 한결 부드러워지며 애매모호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이 몸의 말문을 열어 떠볼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것이다!”
황대선이 말했다. “서로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둘 다에게 이롭다...” 어조를 약간 가다듬고 방구석의 은취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떻겠는가! 저 기생을 나에게 하사해 주시겠는가?”
소월매가 몸을 돌리며 연달아 냉소했다. “내가 보니 당신의 무공은 모조리 그 두꺼운 낯가죽에 몰려 있는 모양이다.”
황대선이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침대 위의 덮개 천을 걷어내어, 알몸이 드러난 은취를 감싸 품에 안았다. 그 은취는 온몸을 바르르 떨며 반쯤 죽은 듯 겁에 질려 말 한마디조차 꺼내지 못했다.
소월매는 명백히 묵인한 듯, 황대선의 행동을 전혀 아는 체하지 않았다.
황대선이 은취를 안고 방 밖으로 걸어 나가며 가면서 말했다. “하사해 주셔서 감사하다. 내 방에 원래 기생이 한 명 있었는데, 이리도 요염하고 아름다운 미인까지 더해졌으니, 나 황대선이 오늘 밤에는 제인의 복을 크게 누리겠다!”
소월매가 급히 침대 밑에서 보따리 하나를 꺼내어 방 문 앞까지 쫓아가 황대선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이것은 은취의 옷가지다. 내일 아침 일찍 수고스럽지만 그녀를 진회하의 배로 돌려보내 주어라.”
황대선이 한 손을 비워 그 보따리를 받아냈는데, 보따리가 던져질 때의 힘이 제법 컸던지 손에 쥐자마자 연거푸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뜰 한가운데로 넘어질 뻔했다.
저편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소월매가 방 문을 닫아걸었다.
황대선 역시 날쌔게 뜰을 가로질러 서쪽 별채를 벗어나, ‘합’ 자 대원에 자신이 빌려 묵고 있던 곁방으로 돌아왔다.
방 안의 커다란 침상 위에는 과연 한 여인이 침대를 향해 쿨쿨 곤히 잠들어 있었고, 침상 위 역시 이불과 요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며, 기생의 겉옷 and 속옷이 온 방 안에 던져져 있었다.
황대선이 은취를 침상 위에 내려놓으며 헤헤 웃고는 말했다. “은취 낭자! 듣자 하니 당신이 진회하의 유명한 기생이라 안팎의 수양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던데, 오늘 밤 나 황대선의 눈을 좀 뜨이게 해주어야겠다!”
말을 마치고 옷을 벗어 침상에 오르며 이불 한 자락을 끌어당기고, 손바닥을 한번 휘둘러 탁자 위의 기름등잔을 쳐서 껐다. 넓은 이불 한 장이 황대선과 은취 두 사람을 틈도 없이 빽빽하게 덮었다. 황대선의 그런 태도를 보면 영락없이 색을 탐해 안달이 난 자 같았다. 그러나 막상 알몸의 은취와 한 침상에서 베개를 나란히 베고 몸을 가까이 밀착하게 되자, 도리어 대단히 얌전해졌다.
은취가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침대 안쪽의 저 기생은 정말로 깊이 잠든 것이 맞는가?”
황대선 역시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심해라! 내가 그녀의 ‘혼혈’을 가볍게 찔러두었으니, 때가 되기 전에는 깨어나지 못한다.”
잠시 고요함이 흐른 후, 은취가 다시 말했다. “당신은 저 소월매가 몸에 무공을 조금도 지니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그녀가 나에게 이 옷 보따리를 던졌을 때는...”
황대선이 말을 가로챘다. “근본적으로 아무런 힘도 실려 있지 않았는데, 내가 일부러 비틀거리는 척한 것이다.”
은취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황대선이 말했다. “내가 방 문을 나서자마자 ‘은호’와 황해어 두 사람이 긴 회랑 끝의 원형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엿보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일부러 눈속임 수법을 부린 것이다...” 어조를 한번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저 소 씨 성을 가진 계집이 비록 무공은 못 하지만 약간 사악한 구석이 있다. 그녀가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잡을 때의 그 예리한 두 줄기 눈빛은 그 누구라도 보면 감히 멋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은취가 입술을 쯧쯧 다시며 말했다. “당신은 대외적으로 소 씨 계집이 무공을 조금도 할 줄 모른다고 소문을 퍼뜨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녀가 무공을 못 한다는 비밀을 처처에 감춰주고 있으니, 이것은 무슨 의도인가?”
황대선이 말했다. “대외적으로 소문을 퍼뜨린 것은 소 씨 계집의 마음속에 경각심을 주어, 그녀가 설령 천하 사람들을 속일지라도 나 황대선은 속일 수 없으니 앞으로 매사에 나에게 조금씩 양보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은취가 말을 끼어들었다. “음, 그렇다면 또 일부러 그녀의 무공을 가늠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스스로 제 뺨을 때리는 꼴이 아닌가!”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지금 금릉 성안의 밝은 곳과 어두운 곳에 이미 여러 무리의 인마가 나타났고, 저마다 목적을 품고 있어 어느 하나도 만만한 자가 없다. 어쩌면 언젠가 우리와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소월매는 내가 자신의 바닥을 드러낼까 봐 두려워 필시 나와 거래를 하려 할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녀의 무공 밑천이 헤아릴 수 없이 깊다고 여기니 누구도 경거망동하지 못할 터, 그렇다면 우리가 수많은 번거로움을 덜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은취가 차갑게 흥 콧소리를 냈다. “당신은 그 주판알을 너무 튕기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어쩌면 제 불에 제가 탈지도 모른다!”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지금의 강호는 이미 ‘책략을 논하지 검을 논하지 않고, 지혜를 겨루지 힘을 겨루지 않는’ 세상이다. 심계를 움직이고 책략을 논하는 데 있어 내가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다만 저 불쌍한 추오상 녀석은, 말하자면 커다란 악행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불행히도 모든 화살의 과녁이 되어버렸으니...”
은취가 몹시 참을 수 없다는 듯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만두어라. 이 사람도 불쌍하고 저 사람도 불쌍하다니, 내가 보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바로 나다. 도대체 당신은 나를 진회하에서 얼마나 더 머물게 할 작정인가?”
황대선이 말했다. “머지않았다!”
은취가 갑지기 고운 몸을 움직여 황대선에게 더욱 가까이 밀착하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내가 진회하에서 매일같이 낯선 사내들을 맞이하고 보내며, 새로 오는 이를 반기고 떠나는 이를 배웅하는 그 기분이 얼마나 괴로운지 생각이나 해보셔야 한다...”
황대선이 손가락 하나를 뻗어 은취의 가슴을 쿡 찔러 그녀의 신체를 밀쳐내며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짐짓 꾀를 부리며 착한 척하지 마라. 진회하로 가기 전에 당신이 단 하루라도 얌전했던 적이 있습니까? 그런 깊은 밤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생활이 바로 당신의 적성에 딱 들어맞는 게 아니었는가?”
은취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당신은 함부로 입방정을 떨지 마라. 예전에는 내가 사람을 골랐지만 지금은 내가 남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게다가 당신과 그런 악연을 맺은 이후로 나는 아녀자의 도리를 아주 번듯하게 지키고 있다...”
황대선이 말을 받았다. “아녀자의 도리라는 말은 꺼내지도 마라. 들으니 소름이 돋는다...”
어조를 한번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진지하게 말하는데, 당신은 소월매의 그 약병을 똑똑히 보았는가?”
은취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 약병은 조랑박 모양이었고 그리 크지 않아, 손바닥 안에 딱 쥐면 양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청옥으로 만든 것 같았고, 병마개는 침향나무였다...”
황대선은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참지 못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그 위의 글자들을 똑똑히 보았는가?”
은취가 말했다. “보지 못했다. 글씨가 너무 작았고 등불도 어두웠으며, 소월매가 약을 꺼낼 때 거리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황대선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흥, 당신은 언제나 핑계 댈 도리가 아주 가득하다. 금릉에 온 지 반년이 넘도록 당신이 제대로 성사시킨 일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두 ‘금도’와 추오상이 ‘금취방’ 위에서 무슨 논의를 나누었는지 당신은 알지 못했고, 서이우가 어떤 내력을 가진 자인지도 당신은 그저 고개만 저으며 모른다고만 했으며, 오늘 밤에도 당신은 허탕을 쳤습니다. 내가 그 약병 위의 글자를 유심히 보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거늘, 에휴...”
은취가 불안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그 약병 안에 든 것이 ‘란성향’이라는 것을 알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병 위의 글자가 또 무슨 대수라고 그러시는가? 내가 보기에 당신은 두부 안에서 뼈를 고르듯, 일부러 내 허물을 들추어 나무라려는 것 같다. 내 팔자가 사납다!”
황대선은 상대방을 지나치게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듯, 다시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 “에휴! 내가 일부러 당신의 허물을 나무라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이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해서 그렇다.”
은취가 말했다. “어디 한번 말해보아라!”
황대선이 먼저 길게 한숨을 쉬고는 천천히 말했다. “저 소 씨 성을 가진 계집은 비록 무공은 조금도 할 줄 모를지언정 지혜가 맑고 영리하며 가슴속에 만 가지 계책을 품고 있다. 그녀를 죽이는 것은 어쩌면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겠지만, 만약 잘 이용하기만 한다면 우리에게 엄청난 보탬이 될 것이다.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선 그녀의 내력부터 명확히 파악해야 알 수 있는 법인데...”
은취가 말을 끼어들었다. “그것이 약병 위의 글자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황대선이 한 자 한 자 지극히 힘주어 말했다. “대단히 상관이 있다...” 어조를 한번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그 약병은 ‘옥호병’이고, 약 가루는 ‘란성향’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이런 약병이 모두 세 개가 있는데 형태는 같지만 병에 새겨진 글자는 저마다 다르다. 병 위에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는지 똑똑히 보기만 했다면 그녀가 어떤 내력을 가졌는지 단정할 수 있었을 터인데, 에휴, 눈앞의 이 좋은 기회를 네가 그냥 날려버렸구나!”
은취가 잠시 침묵하더니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원래 그런 일이었는가. 당신이 사전에 나에게 똑똑히 말해주지 않았다.”
황대선이 길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너를 원망해 보아야 소용없다...” 어조를 한번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 일찍 배로 돌아가거든 하향이에게 전해라. 사람을 보내 그녀의 옛 정인인 채금당에게 소식을 전하여, 내일 밤 진회하에서 한번 만나자고 약속을 잡으라고 해라.”
은취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러한 긴박한 시국에 채 ‘칠성’이 그런 한가한 마음을 내겠는가!”
황대선이 말했다. “채 씨 성을 가진 자는 마음이 심란하여 마침 울적함을 달래고 싶을 터이니, 필시 하향이를 만나러 갈 것이다.”
은취가 말했다. “어찌 되었는가! 그를 제거할 생각인가?”
황대선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런 인물은 내가 직접 손을 쓰는 심계를 허비할 가치조차 없다. 그를 요긴하게 한번 써먹을 생각이다!”
은취가 가소롭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또 주판알만 튕기지 마라. 채 씨는 ‘금도’의 심복으로 두 씨 성을 가진 자를 따른 지 이십 년 가까이 되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황대선이 말했다. “나를 그를 쓸 뿐만 아니라 두 씨 성을 가진 자까지 함께 엮어 쓸 것이다. 하향이에게 채금당과 만난 후 예전 방법대로 나에게 소식을 보내라고 전해라. 나에게 다 묘책이 있다!”
은취가 말했다. “알겠다...” 어조를 약간 가다듬더니 고운 몸을 슬며시 움직이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둘이 헤어진 지 오래되었으니, 오늘 밤에는 나에게 좀...”
황대선이 차갑게 그녀를 밀쳐내며 말했다. “정신이나 차려라. 나는 그럴 만한 기분이 아니다!”
은취가 갑자기 말했다. “흥! 당신이 나를 싫어하는구나! 진회하 화방에 올라가 조진모초(조나라를 섬기다 초나라를 섬기다 함, 지조 없이 행동함)의 생활을 하게 만든 것은 바로 당신의 생각이었다!”
황대선이 몸을 돌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억울한 소리는 마라. 생강은 늙을수록 매운 법이니, 당신은 풍파를 겪을수록 더욱 요염하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다만 내가 온종일 지쳐서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는구나! 내일 하향이와 만나는 것을 잊지 마라...”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써 코 고는 소리가 울렸으니, 과연 정말로 지쳤던 모양이다!
은취는 분해서 남몰래 이를 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한 명은 강호를 떠도는 낙魄한 관상쟁이요, 또 한 명은 진회하 화방의 기생이니, 그 누구도 이들이 흉책을 품은 무림인일 줄은 알아보지 못했다.
신호 소리가 바뀌며 객잔 밖 장터 거리에는 이미 사경을 알리는 딱따기 소리가 들려왔다.
서쪽 별채 마당은 이미 사방이 고요했다. 추오상과 소월매의 상방 두 칸에만 여전히 붉은 촛불 그림자가 흔들릴 뿐, 나머지 상방은 창문이 온통 어두컴컴했으니 분명 진작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을 터다.
사경의 딱따기와 북소리가 막 울려 퍼지자, 백발이 성성한 노파 한 명이 느린 걸음으로 서쪽 별채 마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한 손에 기름종이 풍등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대나무 장대를 쥔 채, 회랑을 따라 처마 밑에 매달린 등롱의 불씨를 하나씩 꺼 나갔다.
노파는 온통 머리를 든 채 매달린 등롱만 바라보았기 때문인지, 회랑 위에 쓰러져 있는 그 시체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설령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저 크게 소리를 지르고 가게 주인을 놀라 깨운 뒤 관가에 고하여 오작(검시관)을 부를 뿐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이것이 무공을 하는 자들의 소행임을 알 터였다. 결국 금릉 부윤이 “기한을 두고 원흉을 체포해 오라”는 빈말 몇 마디를 뱉는 것으로 끝날 일이었다.
이 노파가 소월매의 방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문이 끼익 열리며 소월매의 고운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가 노파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오늘 밤은 어르신이 당번인가요?”
노파가 어라 하며 몸을 돌려 말했다. “낭자가 아직 주무시지 않았군요! 무슨 심부름이라도 있으십니까?”
소월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수고스럽겠지만 어르신께서 뜨거운 물 한 통만 가져다주세요...”
노파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신 대답했다. “있고말고요! 아궁이에 데워둔 것이 있으니 이 늙은이가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소월매가 다시 말했다. “만약 끓는 물이 있다면 뜨거운 차도 한 주전자 부탁해요!”
노파는 또 연달아 대답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다만 낭자께서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늙은이가 먼저 처마 밑의 풍등부터 꺼야겠습니다. 주인놈이 워낙 지독해서 사경이 되도록 불을 끄지 않으면 들켜서 또 욕을 먹습니다!”
소월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하셔도 괜찮아요!” 말을 마친 뒤 머리를 거두고 방 문을 닫았다.
그 노파는 머리가 희고 피부가 쭈글쭈글하여 보기에 대략 예순 대여섯 살은 되어 보였다. 평소 부지런히 움직이고 일하는 데 익숙해서인지 걸음걸이는 제법 꼿꼿하고 튼튼했다.
그녀는 양쪽 회랑에 매달린 풍등 불씨를 하나씩 다 끈 뒤, 빠른 걸음으로 서쪽 별채를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파가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한 손에 작은 주전자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물 한 통을 들고 있었다.
소월매의 방 문 앞에 이르러 노파가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낭자! 뜨거운 물과 차를 가져왔습니다!”
방 문이 열리자 소월매가 손을 뻗어 차 주전자를 받으며 노파를 안으로 맞아들였다.
방 안으로 들어서서 노파가 뜨거운 물을 내려놓자, 얼굴의 표정이 홀연히 변하며 나직하게 말했다. “매야!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저 사람들과 정면으로 충돌하지 마라. 만약 네가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저들이 알아채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
소월매는 그러나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말했다. “외할머니! 외할머니가 계시는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어요?”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과연 외할머니와 외손녀 사이였다!
노파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에휴! 이 외할머니가 당연히 누구도 네 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지만, 그래도 네가 무공을 전혀 못 한다는 비밀을 되도록 남에게 들키지 않는 편이 좋다.”
소월매가 말했다. “알겠어요! 외할머니 말씀을 들을 테니 앞으로는 저들에게 좀 양보할게요...” 어조를 한번 가다듬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외할머니! 조금 전에 내가 옷 보따리를 그 입방정 떠는 관상쟁이에게 던졌는데, 그가 손으로 받으면서 크게 비틀거렸어요. 이것은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노파가 말했다. “그자가 일부러 눈속임 수법을 부린 것이다. 그 ‘은호’와 황 씨 성을 가진 계집이 회랑 끝에 숨어서 엿보고 있었으니, 그렇게 함으로써 저들 두 사람에게 네 무공이 깊이를 알 수 없다고 오해하게 만든 것이다!”
소월매가 중얼거렸다. “참 기이한 일이네요. 그자가 왜 공연히 나를 위해 감춰주었을까요?”
노파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천하에 이유 없이 남을 도와주는 좋은 일은 없다. 그자가 분명 딴속셈을 품고 있는 것이다.”
소월매가 가볍게 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할머니가 보시기에 그자의 무공이 정말 ‘현기문’의 실전된 무공인 ‘무팔괘’인가요? 그것 참 이상하네요!”
노파가 말했다. “그는 현기문 소속이 아니다.”
소월매가 말했다. “할머니는 어찌 그자가 현기문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하시나요?”
노파가 말했다. “내가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그의 거동과 언행은 현기문의 규칙을 전혀 따르고 있지 않았다!”
소월매가 말했다. “그가 스스로 현기문 제자가 아니라고 인정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요...”
노파가 말을 가로챘다. “매야! 그의 공력을 보아하니 결코 현기문의 일반 제자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몸에 밴 습관이 어찌 하루아침에 고쳐지겠느냐?”
소월매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조하듯 말했다. “그자가 아는 것이 정말 많네요. 내가 무공을 못 한다는 사실도 그렇고...”
노파가 소월매의 앞으로 다가와 나직하게 속삭였다. “매야, 네가 오늘 밤 ‘란성향’을 쓸 때, 저 진회하 기생 은취의 눈앞에서 쓴 것이냐?”
소월매가 말했다. “네! 하지만 할머니는 안심하세요, 병 위에 새겨진 글자는 절대 보여주지 않았어요.”
노파가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내가 의심하기로는 그 무슨 대선이라는 자와 은취가 한패인 것 같다.”
소월매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설마 그렇겠어요!”
노파가 냉소하며 말했다. “매야! 너는 앞면을 보았지만, 내가 본 것은 뒷면이다...” 말을 갑자기 멈추더니 예리한 눈빛으로 사방을 한 번 둘러보고는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자거라! 날이 곧 밝겠구나!”
말을 마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소월매도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소월매는 손과 얼굴을 씻고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신 뒤, 턱을 괸 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닭이 세 번 울부짖는 것을 보고서야 불을 끄고 침상에 올라 잠자리에 들었다.
신시 정각, 마차 한 대가 은취를 태우고 떠났다. 말발굽이 막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고승객잔’으로 풍채가 수려하고 준수한 소년 한 명이 걸어 들어왔다. 알고 보니 그는 거동이 선비처럼 얌전한 주성한이었다.
그는 흔들리는 마차 커튼 사이로 분홍색 비단 치마가 보아 여인임을 짐작하고 자신도 모르게 몇 번 더 바라보았다. 마침 문 앞에 서 있던 가게 주인이 그가 마차를 눈여겨보는 것을 보고, 그가 마차 안의 미색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여겨 비위를 맞추며 능글맞게 말했다. “상공, 마차 안의 미인이 제법이지요?”
주성한이 느긋하게 응대했다. “어느 집안의 가솔인가?”
가게 주인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주 상공! 저 여인은 진회하의 유명한 기생 은취 낭자입니다!”
주성한은 마음이 움직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듣자 하니 그 기생은 금릉의 명망 높은 두통둔 두 영감의 옛 정인이라던데! 어찌 이 객잔까지 와서 몸을 파는가? 만약 두 영감이 알게 되면 질투로 한바탕 난리를 피우지 않겠는가?”
가게 주인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창기 열 중 아홉은 밑 빠진 독인데, 은자가 생기는데 그들이 벌고 싶지 않겠습니까? 다만, 저 은취 낭자가 오늘 아침 ‘합’ 자 대원에 있는 그 관상쟁이의 곁방에서 걸어 나왔으니, 이것 참 기이한 일입니다...”
주성한은 내심 또 한 번 놀라 다급히 물었다. “어느 관상쟁이인가?”
가게 주인이 가소롭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황대선이라고 합니다. 상공께서는 십중팔구 모르실 것입니다. 그 지저분한 꼴을 보면 돈을 펑펑 쓸 만한 호객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설령 은자가 있다 한들 낭자가 그에게서 나는 냄새를 싫어하지 않았겠습니까!”
주성한이 말했다. “그렇다면 은취 낭자는 그 황 씨 성을 가진 관상쟁이가 어젯밤에 불러들인 것인가?”
가게 주인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젯밤에 소인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 잘 모르겠습니다...” 어조를 한번 가다듬고 주성한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상공께서는 어젯밤에 돌아오지 않으셨습니까?”
주성한이 말했다. “벗과 술을 몇 잔 더 마시다 보니 그곳에서 묵게 되었다.”
가게 주인이 엄숙한 표정으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상공, 어젯밤 서쪽 별채 상방에 도적이 들었습니다. 어떤 분이 그 도적에게 소털 같은 강침 한 무더기를 선사했는지, 대자로 뻗어 처마 밑에 쓰러져 있던 것을 날이 밝아서야 마당을 쓸던 머슴이 발견했습니다. 관가에서 보낸 검시관이 방금 떠났습니다!”
주성한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도적의 시체는 어디에 있는가?”
가게 주인이 말했다. “검시관들이 이미 데려갔습니다!”
주성한은 어젯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몹시 알고 싶었기에, 더는 가게 주인과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서쪽 별채 상방을 향해 걸어갔다.
신시 정각 무렵이 되자 해가 이미 중천에 높이 떴다. 그러나 길목에 들어선 상방의 문들은 하나같이 굳게 닫혀 있어, 저마다 여전히 베개를 높이 베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했다. 시체를 검시하느라 소란스러웠던 소리도 이들을 깨우지 못한 모양이었다.
주성한은 먼저 자신이 빌린 상방으로 돌아와 냉정한 눈길로 훑어보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으니 어젯밤에는 아무도 다녀가지 않았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지체 없이 걸어 나와 동월매가 묵고 있는 방 문 앞에 이르렀고, 손을 들어 문을 두 번 가볍게 두드렸다.
동월매는 진작에 일어났는지 문을 두드리자마자 안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십니까?”
주성한이 대답했다. “소생 주성한입니다!”
동월매가 말했다. “문이 걸려 있지 않으니 소협은 들어오십시오!”
주성한이 문을 밀고 들어가니 동월매는 이미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동월매가 그 고운 눈길을 주성한에게 던지며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협은 어젯밤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하셨습니까?”
주성한이 가볍게 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꺼풀을 치켜뜨며 말했다. “어젯밤 이곳에 일이 있었습니까?”
동월매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으로 주성한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그에게 뜨거운 차를 한 잔 따르고 나서야 어제 오후부터 한밤중 삼경까지 일어난 일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었다.
주성한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 때로는 미간을 찌푸리고 때로는 눈을 부릅뜨며 표정에 끝없는 경악과 의구심을 드러냈다.
동월매가 단숨에 말을 마친 뒤에야 주성한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의혹을 품을 만한 일이 세 가지가 있군요...”
동월매가 다급히 물었다. “어떤 세 가지입니까?”
주성한이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고 천천히 흔들며 말했다. “첫 번째 일은, 황산노인은 평생 장가를 들지 않아 결코 후사가 없다. 황해어라는 그 여인은 분명 이름을 빌려 사칭하는 것이다.”
동월매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습니까? 나는 그 여인이 황산노인의 친필 유묵을 꺼내 보이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주성한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황산노인의 유묵을 손에 넣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소생이 단언하건대 유묵은 혹 진짜일지 몰라도 그 여인의 신분은 거짓이다.”
동월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황해어는?... 오...”
그녀의 짤막한 외마디 소리에서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음이 드러나자, 동월매가 다급히 물었다. “소협은 누구인지 짚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뜻밖에도 주성한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동 낭자! 그것을 어찌 추측할 수 있겠습니까?”
동월매는 주성한이 얼버무리는 말임을 알았지만, 더는 캐묻기가 거북했다.
주성한이 다시 말했다. “두 번째 일은 바로 그 황 씨 성을 가진 관상쟁이다. 이 사람 역시 대단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동월매가 아 소리를 내며 말했다. “소협! 당신은...”
주성한은 그녀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 듯, 얼른 손가락 세 개를 펼쳐 흔들며 말했다. “이 세 번째 일은...” 어조를 약간 가다듬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소생이 알기로 그 소 낭자는 명문가 출신으로 교양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데, 어찌 그런 하구류의 수법을 써서 추오상을 상대했단 말인가?”
동월매가 말했다. “그것은 추호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주성한이 들보를 올려다보며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기이한 일이다. 그런 이성을 잃게 만드는 약물은 정숙한 가문의 낭자가 몸에 지니고 다닐 만한 물건이 아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이해할 수가 없어...”
그가 소월매에 대해 사색에 잠겨 있을 때 동월매는 그를 유심히 살펴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협의 몸에 먼지가 가득한 것을 보니, 어젯밤 이 한 차례 걸음이 분명 가깝지 않은 거리였던 모양입니다.”
주성한이 정신을 차리고 대수롭지 않게 응대했다. “가깝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리 멀지도 않았다. 왕복 삼백여 리에 불과했다!”
동월매가 말했다. “강을 건너셨습니까?”
주성한이 애매모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낭자는 참으로 혜안을 타고나셨다!”
동월매가 눈에 예리한 빛을 띠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소협이 그 하화련의 뒤를 쫓아가셨으니 무슨 수확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주성한이 살짝 멈칫하며 말했다. “동 낭자! 당신은 참으로 끈질기게 캐물으십니다!”
동월매가 말했다. “만약 중대한 일이라 비밀로 부쳐야 한다면 소협은 답변을 거부하셔도 됩니다. 나는 절대 당신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주성한이 웃으며 말했다. “상황이 이리되니 소생이 답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어조를 한번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이번 걸음이 헛수고는 아니었으나 수확이 그리 크지도 않았다. 그저 추오상의 현재 처지에 대해 아주 조금 파악했을 뿐이다.”
동월매가 이어서 물었다. “나에게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주성한이 말했다. “이 역시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단비우가 추오상에게 두통둔을 죽이라고 명했으나 추오상이 한 차례 격살에 실패했고, 소월매와 마흔아홉 날 동안 검을 쓰지 않겠다는 약조를 맺었다. 이 때문에 글을 써서 하姬로 하여금 급히 ‘경천궁’으로 돌아가 단비우에게 명을 복하게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지시를 청하도록 한 것이다. 소생이 아는 것은 이 정도가 전부다!”
동월매가 웃으며 말했다. “소협께서는 분명 어젯밤 하화련이 객잔에 투숙했을 때 그녀의 몸에 있던 서신을 몰래 뜯어보셨겠군요?”
주성한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말했다. “또 낭자께 들키고 말았군요!”
동월매가 갑자기 미소를 싹 거두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하화련과 두 차례 겨루어 보았는데, 그녀의 검술은 예사롭지 않고 기지 또한 풍부했습니다. 그런 기밀 서신이라면 틀림없이 몸에 지니고 있었을 텐데, 소협은 어떻게 손에 넣으셨습니까?”
그녀의 질문에 주성한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목줄기가 팽팽해지며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못했다. 동월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서신을 몰래 뜯어보기 전에 필시 은밀히 여인의 마음을 훔치는 과정이 있었겠지요. 소협처럼 출중한 인재라면 그 하화련의 환심을 사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성한의 안색이 슨연히 굳어지며 노여운 목소리로 꾸짖었다. “낭자, 제발 입을 다무십시오!”
동월매 역시 자신의 언사가 다소 지나쳤다고 느꼈는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협, 부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주성한이 몸을 돌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께서는 필시 소생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고, 소생이 그 하화련과 은밀하고 모호한 짓을 벌였다고 추측하신 모양입니다. 하지만 사실 소생의 얼굴이 뜨거워진 까닭은, 하화련이 잠든 방에 향을 피워 서신을 훔친 스스로의 행동이 몹시 부끄럽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동월매가 나직하게 아 소리를 내며 말했다. “소협! 조금 전 소생이 말실수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말을 마치며 그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서서 깊이 허리를 숙여 읍했다.
주성한 역시 급히 손을 맞잡아 답례하며 말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당치 않으십니다!”
동월매가 자세를 바르게 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월매가 금릉에 온 것은 오직 원수를 갚기 위해 추오상을 죽이려는 목적뿐이었습니다. 목적은 지극히 단순하여 일이 성사되면 그자가 죽는 것이고, 실패하면 내가 죽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처럼 극도로 복잡한 국면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소협이 보시기에 이 월매는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습니까?”
주성한이 말했다. “네 글자면 됩니다... 정관기변(靜觀其變, 고요히 상황의 변화를 지켜봄)입니다!”
동월매가 말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주성한이 한숨을 길게 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열흘이나 보름, 어쩌면...” 어조를 한번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낭자께서는 잠시 쉬고 계십시오. 소생은 ‘합’ 자 대원에 잠시 다녀와야겠습니다...”
동월매가 물었다. “그 강호의 관상쟁이를 찾아가시는 것입니까?”
주성한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사이, 그의 신형은 이미 동월매의 상방을 걸어 나간 뒤였다.
‘합’ 자 대원은 대개 장사꾼이나 마부, 꾼들이 묵는 곳이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이때는 이미 진시와 사시가 교차할 무렵이라 마당 안은 고요했고, 객잔에 묵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집을 나선 뒤였다.
주성한이 막 안방 문턱을 넘어섰을 때 가게 주인이 마주 오며 물었다. “상공, 어느 분을 찾으십니까?”
주성한이 말했다. “이곳에 용한 관상쟁이인 황대선이 묵고 있다고 들었다. 그를 한번 만나보려 한다.”
가게 주인이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면 세 번째 방입니다. 상공, 들어가 보십시오. 다만 그자가 이 시간까지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까 걱정되는데 말입니다!” 말을 마치고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려 했다.
주성한이 손을 한번 휘저으며 말했다. “쉬고 있게나. 내가 알아서 찾아가겠네.”
세 번째 방 문 앞에 이른 주성한은 방 문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 번 퉁겼다.
방 안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렸다. “들어오시오!”
침상 위의 이불과 요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니 황대선은 진작에 일어난 모양이었다. 방금 세수를 했는지 얼굴에서는 번지르르하게 윤기가 흘렀다. 비록 황색 피부였으나 병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으시오!”
주성한은 대꾸도 하지 않고 황대선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황대선이 주성한을 향해 눈길을 한번 쓱 던지더니 천천히 말했다. “나 황대선은 존귀하신 분이 찾아올 줄 진작에 알고, 한 걸음 먼저 일어나 공경히 기다리고 있었소.”
주성한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과연 대선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구려!”
황대선이 말했다. “귀하의 성은 주 씨요, 이름은 성한이며 강호의 인물인데, 나 황대선이 틀리게 말했소?”
주성한은 내심 약간 멈칫했으나 표정에는 아무런 기색도 드러내지 않으며 말했다. “그것은 그리 신기할 것이 없소. 성명과 처소는 장부에서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는 일이지.”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믿고 안 믿고는 당장 시험해 보면 알 것이요, 영험하고 안 영험하고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는 법이지...” 어조를 약간 가다듬고 한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귀하께서 만약 한 해의 운수를 묻거나 흉길을 점치고자 한다면, 먼저 은자부터 내놓으시오.”
주성한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허튼소리는 믿지 않소.”
황대선이 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것참 괴이하구려! 점쟁이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 나를 무엇 하러 찾아왔소?”
주성한이 말했다. “그대에게 몇 가지 물어볼 말이 있소.”
황대선이 말했다. “나 황대선은 입을 놀려 밥을 벌어먹는 사람이오. 물음이 있으면 답을 하되, 답을 하려면 입을 열어야 하니 돈을 주지 않고 어찌 되겠소?”
주성한이 말했다. “그대가 제대로 답변만 해준다면 은자를 얼마를 원하든 상관없소.”
황대선이 말했다. “그때 가서 귀하가 주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주성한은 소맷자락 안에서 다섯 냥짜리 은원보 한 덩이를 꺼내 탁자 위에 쾅 내려놓으며 말했다. “은자가 여기 있소. 그대가 내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한다면 이것은 그대의 몫이 될 것이오.”
황대선은 먼저 탁자 위의 은자를 힐끗 눈독 들인 뒤, 눈동자를 굴려 주성한의 얼굴을 한 바퀴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신형을 꼿꼿이 세우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해 보시오.”
주성한이 말했다. “그대는 서쪽 별채 상방에 묵고 있는 소월매 낭자가 무공을 조금도 할 줄 모른다고 단언했다는데, 과연 그런 일이 있소?”
황대선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주성한이 말했다. “확실하게 맞춘 것이오?”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지금 논하기에 아직 시기가 이르오.”
주성한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그것이 무슨 소리요?”
황대선이 말했다. “이른바 ‘영험하고 안 영험하고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안다’고 했소. 그 소 낭자가 정말로 무공을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는 당연히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야 증명될 수 있는 법이오. 지금까지 소 낭자는 아직 남과 손을 섞어 겨룬 적이 없지 않소!”
주성한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이오?”
황대선이 말했다. “그저 그 소 낭자가 남과 한 차례 겨루어본 뒤라면, 그녀가 무공을 하는지 못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오!”
주성한이 갑자기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대의 말이 맞구려. 겨루어본 뒤에 만약 소 낭자가 죽임을 당한다면 그녀가 무공을 조금도 못 한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요, 반대로 적이 그녀의 손에 죽는다면 그대의 판단이 틀렸음이 증명될 터인데, 그런 뜻이오?”
황대선이 말했다. “정확히 보셨소! 하지만 반드시 사상자가 나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오. 소 낭자가 손을 한 번 쓰기만 해도 바로 알 수 있는 일이지.”
주성한이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것은 그대가 한 말이오?”
황대선이 살짝 멈칫하며 말했다. “당연히 내가 한 말이오. 그 말을 묻는 의도가 대체...”
주성한이 홧김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 그대가 그 소 낭자의 방을 나설 때, 그녀가 그대에게 작은 천 보따리 하나를 던졌소. 그런데 그대가 그것을 손으로 받을 때 크게 비틀거렸지. 이것은 소 낭자가 무공을 할 줄 알 뿐만 아니라 그 경지가 대단히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오, 그렇지 않소?”
황대선의 얼굴에 살짝 경악한 기색이 스치며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둠 속에서 그것을 지켜본 것이오?”
주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이로 보아 그대의 판단은 확실히 틀렸소!”
황대선이 말했다. “원래 그런 일이었구려! 사실 그것은 내가 그때 걸음걸이가 불안정하여 발을 헛디뎌 미끄러진 것뿐이오...”
주성한이 나직하게 꾸짖었다. “구차하게 변명할 생각은 마시오!”
황대선의 안색도 차갑게 굳어지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믿고 안 믿고는 귀하 마음대로 하시오! 나 역시 길게 말하고 싶지 않소!”
주성한이 말했다. “말하지 않는다고 끝날 일이 아니오! 그 소 낭자는 상승의 무공을 지니고 있거늘, 그대가 대외적으로 그런 망발을 퍼뜨린 것은 명백히 다른 사람들을 유인해 함정에 빠뜨려 죽게 만들려는 속셈이니, 발뺌할 생각은 마시오.”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 오늘 귀하가 나를 찾아온 목소요?”
주성한이 말했다. “지금 금릉 성안으로 각 파의 무림 인물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으니, 이는 조만간 뼈를 깎는 명쟁암투가 벌어질 것임을 암시하오. 바야흐로 ‘산우욕래풍만루(山雨欲????, 큰 사건이 터지기 직전의 긴박한 상황)’의 때를 맞이하여, 그대처럼 유언비어로 대중을 현혹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무리가 이곳에 발을 붙이게 둘 수는 없소.”
황대선은 내심 약간 멈칫했으나, 이내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의 그 말은 너무 오만무례한 것 아니오?”
주성한이 냉소하며 말했다. “이 주 아무개의 말버릇은 본래 이러하오. 탁자 위의 은자는 그대가 이곳을 떠날 노자로 셈치시오.”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은어야 당연히 챙기겠지만, 떠나고 안 떠나고는 내 기분이 내켜야 하는 법이지.”
주성한이 말했다. “떠나지 않아도 좋소. 다만 내 손에 든 이 부채가 허락할지는 물어봐야 할 것이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촤르륵 소리를 내며 소맷자락 속에 숨겨져 있던 접선(접는 부채)이 이미 주성한의 오른손에 쥐어졌다.
이것이 바로 주성한이 이곳에 온 목적이었다. 억지 논리를 펼치며 상대방이 무력을 쓰도록 강요한 뒤, 상대가 초식을 펼칠 때 그 수법을 보고 내력을 똑똑히 파악하려는 속셈이었다.
주성한이 접선을 드러내자 황대선은 과연 크게 한 차례 놀랐다. 그러나 아주 잠깐이었을 뿐, 그의 얼굴에 스친 경악한 기색은 이내 사라지고 대신 음험한 꾀가 깃든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목소리를 지극히 낮추어 말했다. “귀하의 그 접선 안에 혹시 소털 같은 강침이 숨겨져 있는 것 아니오?”
주성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시험해 보아야 알 일이지.”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내 귀하에게 귀띔을 하나 해주겠소. 어젯밤 서쪽 별채 마당에서 누군가 죽임을 당했는데, 온몸에 소털 강침이 가득 박혀 있어 관가의 포교들이 흉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오!”
주성한이 차갑게 흥 콧소리를 내더니, 접선을 촤락 접어 마치 단도처럼 황대선의 가슴팍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황대선은 줄곧 의자에 앉아 있었기에, 만약 공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자였다면 이 매서운 일격을 결코 피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주성한의 접선이 몸에 닿기 직전 허리를 맹렬히 뒤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사람과 의자가 함께 한꺼번에 삼 척 넘게 미끄러져 나가며 주성한의 공격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주성한 역시 이 초식에 고작 삼 성의 힘만 실었을 뿐이었다. 상대방의 무공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 황대선의 무공 초식의 갈래는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으나, 상대가 대단한 고수라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이에 신형을 홱 돌리며 접선을 촤르륵 펼쳐, 도검처럼 가로로 베어 가며 황대선의 목덜미를 겨누었다.
황대선은 조금 전 주성한의 일격을 피한 뒤 잠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주성한의 두 번째 초식이 막 시작되려는 찰나, 그는 이미 유성처럼 방 문밖으로 튀어나가며 연달아 크게 소리쳤다. “살려주시오! 어떤 놈이 나를 죽이려 하오!...”
주성한은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상대방이 이토록 비열하게 굴며 대뜸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탓이다.
황대선이 방을 나서자마자 주성한이 바로 뒤쫓아 나왔으나, 이미 마당 안에는 무슨 일인가 싶어 몰려든 무수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황대선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 것을 보고 일부러 더 크게 소리치며 호도했다. “여러분, 증인이 되어주시오! 바로 저자가 사람을 죽이려 했소!”
강호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은 눈빛만 보아도 주성한이 고수임을 알아챘기에, 하나같이 멀찍이 서서 그 누구도 이 혼탁한 물에 발을 담가 괜히 망신을 당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 행상이나 나그네들은 내막을 알 리 없었으므로, 저마다 구름처럼 몰려들어 순식간에 인장(사람 장막)을 이루며 주성한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중 스스로 말재주가 좋다고 여기는 자가 얼른 나서서 말했다. “여보시오 손님? 무슨 일이든 말로 좋게 해결해야지, 대낮에 이리 훤한 천지 아래서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법이오!”
주성한은 내심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여기서 손을 써서 눈앞의 철부지 같은 인간들을 동서남북으로 때려 눕히지 않는 한, 이들에게 꼼짝없이 발이 묶일 판이었다.
황대선이 이토록 교활한 인물일 줄은 미처 몰랐으나, 어쨌든 그자의 얄팍한 수로 인해 자신의 계획은 보기 좋게 수포로 돌아갔다.
따라서 그는 이쯤에서 손을 떼기로 하고, 손에 든 접선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여러분, 저자의 터무니없는 허튼소리를 믿지 마십시오. 소생이 저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공연히 은자 다섯 냥을 건넸다가, 그것을 다시 돌려받으려 하자 저자가 억지를 부리며 소생이 사람을 죽이려 한다고 고함을 친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소생이 어찌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탐할 무리로 보이십니까?”
사람들이 보니 주성한의 풍채가 선비처럼 얌전한 데다 손에 도검도 쥐고 있지 않아 자연히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 이에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일제히 말했다. “손님이 재수가 없었다 셈 치십시오! 강호의 점쟁이 무리라는 게 열에 아홉은 사기꾼이니, 다음부터 조심하시면 됩니다.”
주성한이 손을 맞잡아 읍하며 말했다. “여러분 후의에 감사드립니다. 소생도 더는 저자를 찾지 않겠습니다.”
말을 마친 뒤 사람들을 밀쳐내고 황대선의 앞으로 걸어갔다.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주 씨 성을 가진 양반! 아직도 흉계를 부려 사람을 죽이고 싶소? 이 금릉 성안은 엄연히 왕법이 살아있는 곳이오!”
주성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황대선! 방금 그대가 보여준 신형을 피하는 신법만 보아도 당대 무림의 일류 고수 반열에 들기에 부족함이 없거늘, 고작 싸움이 두려워 이딴 하책을 쓰다니 참으로 대방(식견이 높은 사람)의 웃음거리가 될 일이오. 오늘은 그대의 운이 좋았으나, 그대가 감히 이 금릉 성안에 계속 머문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터이니, 그때 가서 나 주성한의 접선이 무정함을 원망치 마시오.”
말을 마치자마자 대걸음으로 ‘합’ 자 대원을 걸어 나갔다. 등 뒤로 황대선의 연이은 냉소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주성한 역시 더는 그자를 상대하기 귀찮았으므로 곧장 서쪽 별채 마당으로 향했다.
막 아치형 문을 들어서려는데, 마침 미색이 극에 달한 여인 한 명과 정면으로 딱 마주쳤다.
주성한은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길을 비켜주었으나, 상대방은 도리어 연꽃 같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향해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상대방이 황색 저고리를 입고 눈가에는 요염함이 깃들었으며 눈동자에 춘태(봄날의 나른하고 교태 가득한 기색)가 어려 있는 것을 본 주성한은 내심 마음이 움직였다. 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낭자께서는 어제야 이 서쪽 별채 상방에 투숙하신 모양이군요? 소생이 아직 뵌 적이 없었습니다!”
황색 옷을 입은 여인은 다름 아닌 황해어였다. 주성한이 먼저 말을 건네며 아는 체를 하자 그녀는 더욱 요염하게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첩보(여자의 자칭)는 성이 황이요, 이름은 해어라고 합니다. 어제 객잔에 들었을 때 공자와 급히 스치듯 한 차례 대면한 적이 있지요. 공자의 성명은 어찌 되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주성한이 대답했다. “소생은 주성한이라 하며 강주 사람입니다. 소생 역시 서쪽 별채 상방에 묵고 있습니다...” 어조를 약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소생이 동 낭자라는 분에게 듣기로, 낭자께서는 당대 서법의 종장이신 황산노인의 후손이라 하던데 과연 사실입니까?”
황해어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황산노인이 바로 선친이십니다.”
주성한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황산노인께서 세상을 떠나셨단 말입니까?”
황해어의 신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 “이미 별세하신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주성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애석하구려! 애석해!”
황해어는 갑자기 슬픈 기색을 싹 거두더니, 고운 얼굴 위에 다시금 요염한 미소를 띄우며 비단 소맷자락을 가볍게 휘둘렀다. “이곳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무척 번거로우니, 첩보가 감히 공자를 방 안으로 모셔 잠시 앉기를 청하고 싶은데, 공자께서 자리를 빛내 주시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주성한은 내심 번쩍 속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상대방의 청은 그야말로 자신이 바라 마지않던 바였다. 그러나 그는 짐짓 머뭇거리는 척하며 말했다. “이것 참...”
황해어가 정색을 하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공자는 강호를 호령하는 소년 협사이고, 첩보 역시 무림을 떠도는 여염집 아낙이니, 어찌 이까짓 남녀의 구별에 얽매이겠습니까? 하물며 머리 위 석 자에 신명이 계시고 군자는 어두운 방에서도 속이지 않는다(君子不欺暗室)고 했거늘, 공자께서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주성한은 이미 동월매에게서 어젯밤 황해어와 추오상이 한밤중에 약조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내심 웃음이 나왔으나, 표정에는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두 손을 맞잡아 올렸다. “황 낭자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소생 공경불여종명(恭敬不如?命, 공손히 따르는 것이 명을 따르는 것보다 못함) 하겠습니다!”
황해어가 웃으며 말했다. “첩보가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몸을 가볍게 돌려 회랑을 향해 걸어갔다.
주성한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막 황해어의 방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놀랍게도 동시에 세 칸의 방 문이 활짝 열리며 살쩍을 높이 빗어 올리고 패물을 짤랑거리는 미인 네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앞장선 이는 하용미와 맹채옥이었고, 그다음은 동월매였으며, 회랑 끝 마지막 상방에서 고개를 내민 이는 바로 소월매였다.
주성한은 순간 멍해졌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이 달아올라 도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 바를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