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七 回. 각유소도(各有所圖)....각자 원하는 바가 있다.

작성자겨울나그네|작성시간26.06.10|조회수102 목록 댓글 11

           < 第 七 回. 각유소도(各有所圖)....각자 원하는 바가 있다. >




황해어는 그러나 보지 못한 척,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어색해하지 않은 채 손을 들어 방 문을 밀어 열며 가볍게 웃었다. “공자, 들어오십시오!”

주성한은 이제 와서 주저할 수 없었기에, 결국 한 가닥 머리를 뻣뻣이 굳힌 채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주성한은 이미 동월매의 임시 향방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으나, 심경이 달랐던 탓에 자연히 지금 느끼는 감정과는 차이가 있었다. 눈부신 비단 이불이 눈에 들어오고 향기가 코를 찌르는 데다, 황해어가 고운 몸을 살랑거리고 묘한 눈길을 때때로 흘리니, 그의 정력이 약하지 않음에도 마음의 깃발이 한 차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어려웠다.

황해어는 주성한을 정중히 맞아 앉힌 뒤, 솜 덮개가 씌워진 보온병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향기로운 차를 한 잔 따라 두 손으로 받들어 올리며 말했다. “타향에 객으로 머물다 보니 물이 그리 뜨겁지 않고 차 향도 깊지 못하니, 공자께서 부디 널리 량해해 주십시오.”

주성한 역시 두 손으로 잔을 받으며 말했다. “낭자께서 너무 과하십니다!” 말을 마친 뒤 찻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을 뿐, 마시지는 않았다.

황해어가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간드러지게 웃었다. “첩보가 공자처럼 풍채가 수려하고 준수한 소년 협사를 면식하게 되다니, 참으로 삼생의 유행(다행)입니다.”

이 말은 대단히 노골적이었고, 또한 경박하고 음탕함에 가까웠다. 평소 같았으면 주성한은 진작에 소맷자락을 뿌리치고 떠났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속에 품은 목적이 있었기에 노여움을 터뜨리지 않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낭자의 과분한 사랑을 받으니 소생 감격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물며 황 낭자께서는 당대 서법의 종장이신 황산노인의 후손이시니, 더욱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조를 약간 가다듬고 바른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 다만, 소생의 마음속에 약간의 의구심이 있어 낭자께서 명확히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황해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으나, 오직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 이내 다시 웃으며 말했다. “공자의 신색이 진중한 것을 보니, 필시 무슨 중대한 일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주성한이 일부러 안색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소생이 어젯밤 벗의 처소에 머무느라 돌아오지 못했으나, 객잔에서 일어난 일만큼은 완전히 꿰뚫고 있소. 듣자 하니 그 ‘경천궁’의 부궁주인 추오상이 어젯밤 삼경 무렵에 황 낭자의 방에 들렀다 하던데 말이오.”

황해어는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공자께서는 첩보가 그 추오상과 사사로운 정이라도 통했다고 의심하시는 것입니까?”

주성한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소생은 감히 낭자의 맑은 명예를 더럽힐 만한 추측을 함부로 하지 않소.”

황해어가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굳이 이 일을 물으십니까?”

주성한이 말했다. “무림의 남녀가 동반하여 강호를 호령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나, 남의 연정을 가로채는 ‘횡도탈애(橫刀奪愛)’는 커다란 금기요. 당연히 소생 역시 아무 하고나 함부로 사귀는 낭자와는 왕래하고 싶지 않기에 명확히 묻는 것이오.”

황해어가 깔깔거리며 가볍게 웃었다. “원래 그런 뜻이었군요...” 어조를 한번 가다듬고 미소를 거두며 말을 이었다. “공자께서는 그 추오상이 어떤 무기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지 아십니까?”

주성한이 말했다. “추오상은 ‘사절검(四絶劍)’이라 불리는 단검을 차고 다니지 않소, 그렇지 않소?”

황해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맞습니다. ‘사절검’을 쓰는 자의 첫 번째 금기가 바로 여색(女色)입니다. 추오상은 결코 고작 첩보 한 명 때문에 자신이 오랜 세월 고통스럽게 익혀온 검술을 망치려 들지 않을 것이며, 첩보 역시 비록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품었을지언정 물속의 달을 헛되이 구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이로 보아 첩보와 추오상 사이에 비록 왕래는 있었으나, 결코 남녀의 사사로운 정과는 무관하니 공자께서는 마음을 놓으셔도 됩니다.”

주성한이 가볍게 아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낭자께서 그 추오상과 깊은 밤에 만나기로 약조하여 이야기를 나눈 것은 또 무엇 때문이오?”

황해어가 희고 고운 손목을 연신 흔들며 말했다. “공자, 우선 묻는 것을 잠시 멈추시고 첩보가 먼저 사람 한 명에 대해 묻겠습니다. 일찍이 무림에 필치가 용과 뱀이 나는 듯하여 서법에 능했던 ‘금필성수(金筆聖手)’ 추일장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공자께서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주성한이 말했다. “아마도 추오상의 부친인 모양이구려!”

황해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옛날 그 추일장 어른께서 선친을 따라 서법을 배우셨으니, 가히 옛 벗이라 할 만하지요. 두 어른께서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그 후대들이 금릉에서 뜻밖에 마주쳤으니, 밤에 잠시 모여 세상사의 풍파를 한가로이 논한 것은 인간의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주성한은 내심 황해어의 말재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치에 맞게 이야기를 둥글게 짜 맞추어 빈틈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성한의 마음속은 구리거울처럼 맑았기에, 이내 숨을 가볍게 내쉬며 말했다. “소생이 낭자를 오해했으니 용서하십시오!”

황해어 역시 마음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공자께서 이처럼 책망하며 물으시니 첩보는 도리어 괴롭기는커녕 기쁩니다. 이는 공자께서 첩보와 사귀는 데 참으로 성의가 있고, 또한 먼 앞날을 도모하려 하신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성한은 듣기에 몹시 구역질이 났으나, 증오하는 감정을 표정에 호리만치도 드러내지 않은 채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말했다. “듣자 하니 낭자께서 황산노인의 묵보를 지니고 계신다던데, 소생이 한 번 눈을 뜨이게 해줄 수 있으십니까?”

황해어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공자께서는 필시 첩보가 황산노인의 딸이라는 사실을 아직 믿지 못하시는 모양이군요. 어차피 진짜 금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眞金不?火)이니, 보여드리지요!”

말을 마치며 비단 소맷자락을 한번 휘두르자, ‘모침황산원, 심냉추일장(暮??山?, 心冷秋日?, 저무는 황산은 멀고, 마음이 식으니 가을날이 길구나)’이라는 대구 가 새겨진 비단 천이 촤르륵 흘러나왔다.

주성한이 그것을 펼쳐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영락없는 황산노인의 필체였다. 그는 속으로 고심을 거듭하는 한편, 입으로는 찬탄을 마지않으며 말했다. “힘이 비단 뒷면까지 뚫고 들어간 것이 마치 철로 긋고 은으로 갈고리를 만든 듯하니, 참으로 좋은 글씨요! 좋은 글씨구려!”

황해어는 그 비단 천을 가볍게 던져 다시 소맷자락 속에 거두어들이며 생긋 웃었다. “공자께서 이토록 좋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애석하게도 선친의 유묵이 오직 이 한 폭만 남았으니, 그렇지 않았다면 첩보가 공자께 선물로 드렸을 것입니다.”

주성한이 연신 웃으며 말했다. “당치 않으십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황해어는 마침내 춘심이 동했는지 얼굴에 도화빛 홍조를 띠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첩보는 본래 공자와 오늘 밤 이곳에서 만나 가볍게 술을 마시며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려 했습니다. 그러나 첩보는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 지금 당장 가게 주인에게 분부하여 몇 가지 요리와 술 반 병을 들여오라 할 터이니, 우리 두 사람이 가볍게 아침 술을 몇 잔 나누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성한은 마음속으로 이미 주관을 세웠기에, 나직하게 웃으며 말했다. “낭자의 고운 미소와 달콤한 말을 마주하니, 소생은 술을 마시기도 전에 이미 취해버렸소!”

황해어는 상대방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미처 몰랐는지 신색이 살짝 굳어졌다가, 이내 깔깔거리며 요염하게 웃었다. “공자의 풍채가 이토록 단정해 보이거늘, 생각지도 못하게 당신 역시 참으로 경박한 무리이셨군요!”

주성한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낭자께서는 사내 못지않은 호방한 기상을 지니셨는데, 당당한 칠척장부인 소생이 어찌 구차하게 계집 같은 태도를 취하겠소? 낭자의 눈썹은 봄날의 산 같고 눈동자는 가을날의 물결 같으니, 소생이 어찌 취하지 않을 수 있겠소?”

황해어의 뺨에 어린 도화빛이 더욱 짙어지고 춘색이 한층 더 타올랐다. 그녀는 사뿐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간드러지게 흔들며 주성한의 앞으로 다가와 다정하게 속삭였다. “정말이십니까?”

주성한(朱星寒)은 한층 더 경박하게 두 팔을 활짝 벌려 그녀의 허리를 덥석 끌어안았고, 숨을 헐떡이는 척하며 말했다. “낭자의 얼굴은 도화보다 고우며 숨결은 천향(침향나무 향) 같으니, 소생은 이제 단순히 취한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명정대취(酩酊大醉) 하였소.”

황해어가 연신 교태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부드럽게 꺾어 주성한의 품으로 안겨들었고, 향기로운 고운 뺨을 주성한의 입술 향해 슬며시 들이밀었다.

주성한은 비록 딴속셈이 있었으나, 막상 부드럽고 향기로운 살결을 품에 안고 유혹적인 숨결을 코앞에서 맡게 되자 마음이 진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얼른 내심 내력을 운용하여 다소 들뜨려 하는 심맥을 꾹 눌러 가라앉혔다.

두 사람 중에서 진정으로 취한 쪽은 도리어 황해어인 듯했다. 그녀는 두 눈을 감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늘고 고운 열 손가락으로 주성한의 목덜미와 얼굴을 쉴 새 없이 더듬었다. 주성한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피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반쯤 열린 붉은 입술은 진작에 주성한의 입술에 찍혔을 터였다.

주성한은 한 손으로 그녀를 가볍게 쓰다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다가, 돌연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힘주어 꼬집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얇은 가죽 한 겹이 쓱 밀려 올라왔다.

황해어의 임기응변 역시 극도로 빨랐다. 그녀는 오른손을 아래로 홱 미끄러뜨려 엄지와 검지로 주성한의 ‘견정혈(肩井穴)’을 단단히 움켜쥐며, 동시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 씨! 당신이 만약 감히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했다간, 당신의 몸 절반을 이 몸이 폐인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주성한은 오른손으로 황해어의 얼굴에 씌워진 인피면구를 움켜쥔 채, 그녀를 감싸 안고 있던 왼손에 내력을 실어 ‘명문혈(命門穴)’을 꾹 찔러 누르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대가 나를 상하게 하는 것은 상관없으나, 그렇게 되면 나는 그대의 목숨을 취할 것이오.”

황해어가 어조를 한풀 꺾으며 말했다. “주 씨! 당신과 나는 아무런 원한도 없거늘, 어찌하여 이토록 괴롭히는가?”

주성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황산노인은 평생 장가를 들지 않았거늘, 그대가 그의 딸을 사칭한 것부터가 커다란 잘못이오. 조금 전 그대가 내보인 황산노인의 유묵 역시 소생이 아는 바로는 노인께서 추일장에게 선물한 글귀라 본래 상하관(서명과 낙관)이 적혀 있었을 터인데, 지금 보니 상하관이 그대에 의해 잘려 나갔구려. 그대가 다른 사람들은 속였을지 몰라도 나 주성한은 속이지 못하오.”

황해어는 놀랍게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도리어 연달아 냉소하며 말했다. “주 씨! 당신이 아는 것이 제법 많구나!”

주성한이 말했다. “그대 손에 든 황산노인의 이 묵보가 대체 어디서 난 것인지, 어서 바른대로 대시오!”

황해어가 말했다. “주 씨! 당신 스스로 타인의 비밀을 잘 알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나, 다른 이들 역시 당신의 비밀을 똑같이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성한이 살짝 멈칫하며 말했다.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단 말이오?”

황해어가 말했다. “당신은 기회를 보아 추오상에게 접근하는 한편, 전체 무림의 대국에 영향을 미친다는 구실을 대며 저 동 씨 성을 가진 계집에게 추오상을 향한 복수를 멈추라고 권유했지. 하지만 사실 당신의 목적은 단지 추오상의 선인이 남겨놓은 ‘그 물건’을 손에 넣으려는 것뿐이다. 이 몸이 틀린 말을 했는가!”

주성한의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갑자기 차가운 흥 콧소리를 냈다! 황해어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 씨! 나를 죽여서 당신의 비밀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일은 이미 또 다른 사람이 알고 있으니, 그 사실이 일단 밖으로 퍼지기만 하면 당신의 염원은 영원히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주성한의 신색이 한결 부드러워지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도 알고 있소, 그 무리 역시 이 객잔 안에 묵고 있다는 것을 말이오.”

황해어가 냉소하며 말했다. “알고 있다면 되었다. 내가 죽기만 하면 당신의 비밀은 발 없는 말이 되어 순식간에 천하로 퍼질 것이다. 다른 사람은 차치하고라도, 그 추오상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평생 당신이 원하는 그 물건을 얻을 꿈도 꾸지 못할 터다. 하지만 그 물건은 당신에게 비할 데 없이 중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주성한이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 물건이 그대에게도 비할 데 없이 중대하단 말이오?”



황해어가 말했다. "안심해라! 이 몸은 너와 결코 이권으로 다툴 생각이 없다. 이 몸의 뜻은 다른 데에 있다."

주성한이 캐물었다.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

황해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몸이 원하는 것은 추오상이라는 사람이다. 몸 밖에 있는 재물 따위는 전혀 신기할 게 없다!"

주성한이 냉소하며 말했다. "믿기 어렵군. 조금 전에는 너 역시 나 주성한이라는 사람을 원하지 않았더냐."

황해어가 말했다. "네 준수한 외모가 과연 이 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는 했다. 하지만 조금 전 내가 네 품에 안겼던 것은 온전히 너에게 미혹되어서가 아니라, 너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성한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낭자에게 묻겠는데, 너와 나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끝맺어야 하겠느냐?"

황해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뜻대로 해라!"

주성한이 말했다. "아무래도 난 억지로라도 너와 화해할 수밖에 없겠군."

황해어는 득의양양한 기색이 만연하여 연달아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화해할 셈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내가 너를 대신해 비밀을 지켜주고, 너도 나를 대신해 비밀을 지켜주며 서로 적대하지 않는 것이다."

황해어가 말했다.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느냐?"

주성한이 말했다. "네가 내 마음속 비밀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으니, 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을 터인데 어찌 그런 질문을 하느냐?"

황해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그렇게 약속하자. 하지만 이 몸에게 부대조건이 하나 더 있다."

주성한이 안색을 흐리며 말했다. "너무 가혹한 요구는 아니기를 바란다."

황해어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 조건은 그리 가혹하지 않다. 게다가 이 몸이 자그마한 비밀 하나를 보답으로 알려주겠다."

주성한은 분명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먼저 네 조건부터 말해 보아라!"

황해어가 말했다. "너와 내가 함께 이 '고승객잔'에 묵는 하루 동안은, 네가 언제든 내가 네 방에 가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 그리고 너 역시 수시로 내 방을 드나들어야 한다. 네가 마음을 굳게 닫고 여색을 멀리하는 것은 네 자유다. 하지만 내가 네게 고의로 친밀하고 추파를 던지는 태도를 취할 때, 너는 준엄하게 거절해서는 안 된다. 설령 사람들이 많은 대중 앞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주성한이 몹시 경악한 신정으로 말했다. "네가 이렇게 하는 정당한 의도가 대체 무엇이냐?"

황해어가 덤덤하게 말했다. "이 몸의 의도는 묻지 말고, 오직 네가 기꺼이 응할 것인지 아닌지만 말해라."

주성한은 거듭 고심하다가 마침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낙낙히 응했다. "좋다! 잠시 응하겠다. 하지만 가급적 공공장소에서 내게 친밀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피해 다오."

황해어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곤란하다! 만약 너와 나 둘만 있을 때 친밀하게 대한다면, 그것이 어찌 조건이라 할 수 있겠느냐?"

주성한은 한동안 어안이 벙벙하여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네 속셈을 나도 대략 한두 가지는 짐작할 수 있겠군. 내가 응한 것으로 하겠다만, 그래도 네가 너무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억지로 약속을 깨뜨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너와 나 모두에게 백해무익할 뿐이다."

황해어가 말했다. "주 공자! 참으로 시원시원하군. 시원스럽게 응해놓고선 어찌하여 굳이 이런 잔사족을 붙이느냐?"

주성한이 연달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만해라! 조금 전에 보답으로 알려주겠다던 비밀이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황해어가 말을 가로챘다. "먼저 손을 놓아라!"

주성한이 양손의 힘을 빼자, 동시에 황해어 역시 그의 '견정'혈을 놓아주었다. 그러나 그의 품을 벗어나는 순간, 쪽 소리를 내며 연달아 그의 뺨에 두 번 입을 맞추었다.

주성한이 몸을 튀기듯 일어나 손등으로 연신 뺨을 씻어내듯 닦으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몸가짐을 좀 단정히 해 다오!"

황해어가 냉소하며 말했다. "여긴 아직 사람이 없는 곳이다. 만약 사람들이 가득한 대중 앞에서 네가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어찌 허점이 드러나지 않겠느냐? 이미 응했으면 모름지기 약속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주성한이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이 사람은 경망스러운 행동에 익숙하지 않으니, 낭자께서 너무 지나치게 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황해어가 아양을 떨며 웃었다. "그렇다면 너는 절에 들어가 중이 되어야 마땅하겠군...." 어조를 잠시 멈추고 웃음기를 거두며 말을 이었다. "네가 원하는 그 물건은 추오상의 몸에 없다."

주성한의 두 눈썹이 획 치켜 올라가며 다급하게 말했다. "네가 한 말이 정녕 사실이냐?"

황해어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주 공자! 너와 나는 이미 약조를 맺었으니, 믿는 사람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주성한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번 금릉행은 헛걸음을 한 셈이 되는군!"

황해어가 예쁜 눈썹을 연신 치켜뜨며 요염하게 웃었다. "네 말투를 보아하니, 금릉을 떠날 작정인 모양이구나?"

주성한이 말했다. "내가 이곳에 남아 네 경망스러운 행동을 참아내야 한단 말이냐?"

황해어가 한 자 한 자 쇠와 옥을 두드리는 듯한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 공자! 너는 반드시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주성한이 말했다. "무슨 이유 때문이냐?"

황해어가 말했다. "그 물건은 추오상 선대의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추오상의 몸에 있지는 않으나, 그는 그것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추오상에게서 손을 써야만 단서를 따라가 네 소원을 이룰 수 있다. 너 역시 이 이치를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 물건이 아직 인간 세상에 남아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 어쩌면 진작에...."

황해어가 날카롭게 말을 가로챘다. "틀림없이 아직 있다. 선대의 유물이니 추오상이 결코 쉽게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그 물건을 그리 중하게 여기지 않으니, 자연히 그 물건이 두 사람의 목숨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주성한이 마치 별빛 같은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황해어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그제야 중얼거렸다. "두 사람? 네가 말하는 사람은...."

황해어 역시 표정이 굳어지며 놀란 듯 말했다. "너는 아직 모르고 있었느냐?"

주성한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사람 외에 또 누가 있단 말이냐...?"

황해어가 말을 가로챘다. "주 공자! 이거 네가 횡재를 한 셈이군. 만약 이 몸이 네가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진작 알았다면, 조건을 하나 더 걸고 너와 거래를 했을 것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낭자는 놀리지 말고, 어서 그 내막을 이 사람에게 말해 다오!"

황해어가 말했다. "우리 이 행랑방의 마지막 칸에 소월매라는 낭자가 묵고 있다. 너는 그녀의 내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주성한이 말했다. "대략 한두 가지는 알고 있다."

황해어가 말했다. "'합'자 호 대원에는 강호의 관상쟁이 황대선이 살고 있다. 그가 추오상에게 말하기를, 저 소월매는 무공을 전혀 할 줄 모른다고 했다던데, 너는 이 말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느냐, 믿지 못하겠느냐?"

주성한이 말했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조금 전에 내가 이 일 때문에 그 황대선이라는 자를 교훈해 주고 오는 길이다."



황해어가 말했다. "네가 보기에는 그 소월매라는 낭자가武功(무공)을 갖춘 사람이라는 말이구나!"

주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다! 소월매는 당년 '지장쌍절'이라 불리던 소자강, 구수지 부부의 유일한 외동딸이다. 오른손으로는 어머니의 '매화장'을 익혔고, 왼손으로는 아버지의 '일지한'을 익혀 '지장쌍절'의 공력을 한 몸에 모았다. 어찌 무공을 갖추었을 뿐이겠느냐? 가히 당금 일류 고수의 반열에 들 만하다."

황해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주 공자! 네가 제법 아는 것이 많구나...." 어조를 잠시 멈추고 말을 이었다. "안타깝게도 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소월매는 지난해 괴질에 걸려 무공을 남김없이 잃었다. 비록 여전히 '지장쌍절'의 초식을 펼칠 수는 있으나, 이미 내력이 흩어져 힘이 전혀 실리지 않는다. 그러니 그 황대선이 그녀가 무공을 반점도 할 줄 모른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주성한이 놀라며 말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느냐?"

황해어가 말했다. "조금도 틀림없다."

주성한이 말했다. "듣자 하니 어제 너와 은호가 그녀와 하마터면 무력을 행사할 뻔했다던데, 그녀가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맞서려 하자 너희 두 사람이 싸움을 두려워해 물러났다더군. 그건 또 어찌 된 일이냐?"

황해어가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만약 이 몸이 어젯밤에 난관을 보고 물러선 것이라 생각했다면 그것은 잘못 본 것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붓대로 위장한 네 소매 화살로 그녀를 죽이려 했다면 식은 죽 먹기였을 듯싶다. 상대는 무공마저 전부 잃었는데 너희는 도리어...."

황해어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첫째로 우리는 그녀를 죽일 필요가 없었고, 둘째로 가 장 중요하다! 그녀가 비록 현재 무공을 모두 잃었으나, 무공이 절정에 달한 인물이 어둠 속에서 그녀를 보호하고 있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자가 누구냐?"

황해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월매의 외조머니다. 매화장(梅花掌)을 스스로 창안하여 훗날 소월매의 어머니 구수지에게 전수한 자다. 그녀의 명호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

주성한이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혹시 당년 흑백 양도를 종횡무진하던 '매화선자' 유예향을 말함이냐?"

황해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그 늙은이는 결코 상대하기 쉬운 인물이 아니다. 생각해 보아라, 굳이 필요치 않다면 우리가 왜 사서 고생을 하겠느냐? 마침 황대선이 나서서 중재를 하기에, 나와 '은호'도 그 틈을 타 물러난 것이다!"

주성한이 말했다. "네 말은 소월매 역시 추오상의 그 선대 유물을 얻으려 한다는 뜻이냐?"

황해어가 말했다. "그녀 말고 또 누가 있겠느냐? 그 물건은 온갖 병을 고칠 수 있는데, 그녀는 하필 평범한 약재로는 고치기 힘든 불치병에 걸렸다. 다만 그녀 역시 네가 부친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 물건을 얻으려 한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했을 터이니, 누구 손에 들어갈지 지켜볼 뿐이다!"

주성한은 일시에 멍해져 들보를 올려다보며 묵묵히 말이 없었다. 갑자기 황해어가 자신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쪽 소리를 내더니, 이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 공자, 부디 새 사람을 보았다고 옛사람을 싫어하여 나를 가을날 버려지는 부채처럼 만들지 말아 다오. 그리해 준다면 감격해 마지않겠다!"

주성한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귀를 기울여 듣고서야 문밖에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알아챘다. 원래 황해어가 고의로 방 밖의 사람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발을 구르며 탄식했다. "에휴! 네가 나를 아주 곤란하게 만들었구나!"

황해어가 말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서예 종사의 후손이 의성 주도천의 후손인 너와 짝을 이루는 것이니, 가히 문벌이 서로 걸맞거늘 네가 어찌 길게 탄식하느냐. 이제 너는 황하에 뛰어들어도 오명을 씻을 수 없게 되었으니, 그저 이 몸과 함께 이 가짜 연극을 끝까지 해 나갈 수밖에 없다."

주성한이 중얼거렸다. "한 시대의 의성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렸으면서, 정작 자신은 고치지 못하는 병에 걸렸으니 이것이 정녕 천의란 말이냐!" 말을 마치며 밖으로 걸어 나가려 했다.

황해어가 몸을 가로막으며 그의 앞길을 막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 공자! 너와 나의 약조를 잊지 마라."

주성한이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나는 아버님의 병 때문에 이미 온갖 고초를 겪었다. 낭자가 설령 내 몸에 칼과 도끼를 들이댄다 해도 나는 그저 감당할 뿐이다. 도리어 낭자야말로 쉽게 약속을 깨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황해어가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심해라! 네 몸에 더해질 것은 그저 부드럽고 향기로운 살결뿐이니, 네가 마음을 열어 받아들인다면 마음껏 누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주성한은 이런 외설스러운 말을 도저히 더 들을 수 없어 서둘러 방 문을 열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하늘의 해를 올려다보니 그제야 정오에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자신도 모르게 황해어의 방에서 한 시진을 허비한 셈이었다. 그제야 그는 약간의 피로를 느꼈고,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고 숨을 고르며 내력을 조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방 문을 밀어 열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뜻밖에도 퉁월매가 그의 방에 앉아 있었다.

퉁월매는 아름다운 눈에 역력히 분노를 띠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걸음이 정녕 헛되지 않았나 보군. 그 황해어의 진짜 신분은 명확히 알아내었느냐?"

주성한은 상대에게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고 싶지 않아, 등을 돌린 채 대답했다. "그녀는 과연 황산노인의 딸이 맞다. 내가 아침에 잘못 말한 것이다!"

퉁월매가 냉소하며 말했다. "공자께서는 이미 남의 방에 몰래 들어가 향을 훔치는 목적을 달성하셨으니, 자연히 그렇게 말씀하시겠군."

주성한은 방금 황해어의 문밖에서 서둘러 떠난 이가 틀림없이 그녀일 것이라 짐작하고 속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얼른 말했다. "퉁 낭자! 네가 무언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 훗날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퉁월매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해라! 월매는 공자의 외모가 당당하고 기우가 비범함을 보고 그간 사사건건 네 말에 따랐다. 설마 네가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사악한 자일 줄은 몰랐구나.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으니, 이제부터 선을 긋고 절교하겠다. 내 일에 참견하지 마라."

주성한은 당연히 해명할 길이 없어 그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낭자가 권유를 듣는다면 잠시 금릉을 떠나는 것이 좋다. 그것이 네게 백해무익함을 멀리하고 이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만약 고집을 부려 이곳에 머문다면 오직 백해무익할 뿐이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퉁월매가 문득 말을 잘랐다. "너는 이 몸의 일을 참견할 자격이 없다!" 말을 마치고 서둘러 나가며 쾅 하고 방 문을 걷어차듯 닫았다.

주성한은 침상으로 돌아가 눈을 감고 잡념을 없앤 채 조용히 앉아 숨을 고르려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주성한이 서둘러 문을 열자, 문을 두드린 자가 뜻밖에도 그 맹채옥임을 발견했다.

맹채옥이 옷자락을 가다듬으며 정중히 절을 올리고 공손하게 말했다. "주 공자! 추 부궁주께서 공자를 모셔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주성한은 자신도 모르게 잠시 어리둥절했다. 추오상은 어제만 해도 그와 얼굴을 붉히며 무력을 행사했는데, 오늘 뜻밖에도 검희를 보내 그를 청하다니 이는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필시 무슨 중요한 일이 있으리라 직감했다. 그렇지 않다면 추오상이 먼저 고개를 숙일 리가 없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온화한 태도로 물었다. "듣자 하니 추 부궁주께서 옥체가 미령하시다던데, 점차 나아지셨느냐?"

맹채옥이 매우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이미 다 나으셨다! 다만 풍한을 맞을까 염려되어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주 공자께서 걸음을 옮겨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니 부디 죄를 사하여 다 오."

주성한이 말했다. "별말씀을 다 한다! 본래 내가 가서 문안을 올려야 마땅했으나, 추 부궁주의 정양에 방해가 될까 염려했을 뿐이다. 내가 지금 가겠다." 말을 하며 이미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추오상은 비록 침상에 반쯤 기대어 있었으나 여전히 안색이 당당했다. 주성한이 눈을 들어 보니, 어젯밤 실수로 마신 난성 약가루가 그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추오상이 침상에서 내려와 예를 표하려 하자 주성한이 얼른 가로막으며 말했다. "추 형, 예를 거두어라. 나 역시 격식을 따지지 않을 터이니 그냥 이렇게 앉자."

말인즉슨 어제의 앙금이 지금은 마음에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 나의 어제 무례함을 용서해 줄 수 있겠느냐?"

주성한이 시원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무림에 몸담은 처지에 서로 무공을 겨루는 일은 흔하니,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어조를 잠시 멈추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추 형이 나를 이리로 부른 것은 무슨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냐?"

추오상이 말했다. "듣자 하니 주 형이 어젯밤 객잔에 없었다더군?"

주성한이 말했다. "오늘 아침 진시 정각 무렵에야 돌아왔다."

추오상이 말했다. "그렇다면 주 형은 어젯밤 이곳에서 발생한 소란에 대해 이미 들었느냐?"

주성한이 말했다. "내가 퉁월매 낭자에게 대략 전해 들었다."

추오상이 말했다. "독도 '금도'가 사람을 보내 독해하려 한 것은 그리 탓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그 소월매 낭자가 몰래 난성 약을 써서 나의 무공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려 한 것은手法(수법)이 비열할 뿐만 아니라 그 속셈 또한 베어 죽여 마땅하다. 주 형은 이 일에 대해 어찌 판단하느냐?"

주성한이 말했다. "각자 은원 관계가 얽혀 있으니, 나는 일에서 벗어나 함부로 평을 내리지 않겠다."

추오상이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주 형이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며 명철보신하니 내가 매우 경탄스럽다." 어조를 잠시 멈추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기억하기로 주 형이 내게 경고하기를, 저 소월매 낭자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들은 것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길거리의 뜬소문일 뿐이니 꼭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이 전에는 그리 말해놓고 지금에 와서 핑계를 대며 발뺌을 하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군."

주성한이 말했다. "지난번에 언급한 것은 그저 추 형에게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제 추 형이 그 해를 입고서 옛일을 다시 꺼내니 분명 뿌리를 뽑아 끝까지 캐묻겠다는 기색인데, 내가 어찌 함부로 허튼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

추오상이 중얼거렸다. "해를 입었은들 이제 와서 어쩌겠느냐? 내가 소월매와 약조하기를 사십구일 동안 검을 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검을 잡지 못하니 마치 스스로 내 손을 묶은 격이구나...." 어조를 잠시 멈추고 주성한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주 형과 거래를 하나 하고 싶다."



주성한이 기다렸던 말이 바로 이 한마디였기에, 즉시 정신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내가 귀를 씻고 공경히 듣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이 금릉에 온 것은 필시 산수를 유람하기 위함이 아닐 터이나, 나 역시 주 형의 의도를 굳이 캐묻고 싶지는 않다...." 어조를 잠시 멈추고 말을 이었다. "내가 추측하기로 주 형의 이번 목적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성한은 덤덤하게 미소 지을 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추오상이 다시 말했다. "옛말에 독목불성림(獨木不成林)이라 했으니, 돕는 손길이 있는 것은 언제나 좋은 법이다. 그러니 내가 주 형과 거래를 하나 하고자 한다. 만약 주 형이 나를 위해 한 번 힘을 써준다면, 나 역시 주 형을 위해 한 번 힘을 써주는 것으로 맞바꾸는 것이다. 주 형의 생각은 어떠하냐?"

주성한은 마음이 움직여 천천히 말했다. "내가 과연 추 형을 위해 힘을 쓸 만한 능력이 있을지 모르겠군."

추오상이 말했다. "나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먼저 주 형에게 말하겠는데, 주 형이 승낙만 해준다면 나는 주 형을 위해 한 번 힘을 쓸 용의가 있다. 주 형이 명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결코 거절하지 않겠다."

주성한은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 다급하게 말했다. "추 형! 명하는 대로 따르겠다니, 그 범위가 너무 넓지 않느냐?"

추오상이 말했다. "무림에 몸담은 처지에 가장 큰 일이라 해봤자 살인과 약탈(殺人越貨)에 불과하다. 주 형이 나에게 상정을 벗어난 일을 시키지는 않을 것 아니냐?"

주성한이 중얼거렸다. "살인! 약탈? 그것이...." 어조를 잠시 멈추고 별빛 같은 두 눈을 부릅뜨며 말을 이었다. "내가 먼저 들어보고 싶은데, 추 형은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추오상이 말했다. "그 역시 살인과 약탈이라는 네 글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주성한이 말했다. "살인이라면 그 사람이 정녕 죽어 마당한지를 보아야 하고, 약탈이라면 그것이 불의의 재물인지를 보아야 한다."

추오상이 말했다. "만약 내가 주 형에게 저 소월매를 죽여달라고 한다면 어찌하겠느냐?"

주성한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무슨 이유로 그녀를 죽이려 하느냐?"

추오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 형이 전에 그녀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당연히 먼저 손을 쓰는 것이 상책이다!"

주성한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소 낭자가 죽어 마땅한지 여부를 떠나, 나의 힘으로는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기가 단연코 쉽지 않다."

추오상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무공을 반점도 할 줄 모르니, 그녀를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그 강호 관상쟁이의 허무맹랑한 헛소리를 믿었군."

추오상이 말했다. "내가 독도 '금도'의 부중에서 검을 뽑아 한 번 시험해 보았는데, 그녀는 정녕 무공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성한은 소월매가 깊은 병에 걸려 무공을 모두 잃었다는 비밀을 차마 밝힐 수 없었기에, 고의로 고심하는 척하며 물었다. "추 형은 소월매의 가세를 알고 있느냐?"

추오상이 말했다. "모른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은 일찍이 강호 상에서 한동안 명성을 떨치던 '지장쌍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

추오상이 놀라며 말했다. "그녀가 소자강의 후손이란 말이냐?"

주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그 소 낭자는 오른손으로 어머니의 '梅花掌(매화장)'을 익혔고, 왼손으로는 아버지의 독문무공인 '一指寒(일지한)'을 익혀, '지장쌍절'의 무공을 한 몸에 모은 절정 고수다. 추 형은 어찌 그녀가 무공을 전혀 모른다고 하느냐?"

추오상은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멍해져 묵묵히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길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만약 주 형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사십구일 동안 검을 봉하겠다는 약조를 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나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먼저 나에게 사십구일 동안 검을 봉하게 하고, 이어 몰래 난성 약가루를 써서 나의 원양의 몸을 무너뜨리려 했으니, 이는 나를 고양이 앞의 쥐새끼로 여기고 마음껏 희롱한 것과 다름없다. 그 속셈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주성한이 연달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은 나도 알지 못하겠다."

추오상은 호기를 완전히 잃은 듯 침상 난간에 등을 기대고 기운 없이 말했다. "주 형, 아무래도 너와 나의 거래는 성사되지 못하겠군."

주성한이 말했다. "내가 한 번 시도해 보겠다."

추오상이 획 하고 몸을 똑바로 일으키며 놀라움과 의혹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그는 주성한과 몇 초식을 겨루어 보았는데, 상대의 솜씨가 약하지는 않았으나 자신보다 월등히 높지는 않았다. 자신과 대동소이한 공력으로 어찌 '지장쌍절'의 무공을 한 몸에 모은 소월매를 상대한단 말인가.

추오상은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 있다가, 이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 형은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겠지?"

주성한이 진지한 안색으로 말했다. "추 형 역시 내가 농담을 할 사람이 아님을 알아볼 것이다. 다만...." 어조를 잠시 멈추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내가 비록 말로는 응했으나 반드시 해낸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 소월매를 금릉에서 쫓아낼 자신은 있다...."

추오상이 큰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주 형이 만약 그녀를 금릉에서 쫓아내 줄 수만 있다면 나 역시 한 맺힌 분통을 터뜨리는 셈이니, 그 또한 감격해 마지않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방금 말하기를...."

추오상이 가로채며 말했다. "주 형이 나를 대신해 이 일 하나만 해결해 준다면, 오직 명하는 대로 따르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나는 그저 추 형에게 물건을 하나 청하고 싶을 뿐이다."

추오상의 눈에서 정망이 번뜩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 형이 요구를 제기하기 전에 이미 세 사람이 그 물건을 얻고자 했으나 내가 완전히 묵살했다. 하지만 주 형에게는 자당히 달리 대해야 하니, 내가 반드시 온 힘을 다해 죽을 때까지 아끼지 않겠다. 주 형은 안심해라!"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은 내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추오상이 궤이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단비우의 손에 있는 그 '창랑보검'이 아니겠느냐!"

주성한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추오상이 크게 의외라는 듯 두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나는 출신이 빈한하나 시서를 아는 가문에서 자랐다. 그리하여 평생 동안 오직 두 분만을 앙모해 왔는데, 그 한 분은 황산노인이고 다른 한 분은 바로 추 형의 부친이다."

추오상이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오! 그것 참 대단한 영광이군!"

주성한이 말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늦게 태어난 탓에 그 두 분 서예 종사께 직접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 이에 내가 이 두 분 선대의 유물을 두루 찾아 모으며 앙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달래고자 한다."

추오상이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말했다. "선친께서 유물을 남기셨는지는 나 역시 아직 알지 못한다. 고거로 돌아가 정리를 해보아야 결정을 내릴 수 있으니, 지금으로서는 주 형에게 명확히 약속할 수가 없다."

주성한이 말했다. "추 형이 아직 고거에 돌아가지 않았단 말이냐?"

추오상이 말했다. "조만간 한 번은 돌아가야 한다."

주성한이 말했다. "부친께서 생전에 글을 쓰실 때는 대개 고거의 서재에서 하셨느냐?"

추오상이 말했다. "대부분 그러하셨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렇다면 되었다! 내가 구하는 물건 역시 틀림없이 아직 고거 안에 고이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무슨 물건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낡은 붓 한 자루, 벼루 하나, 그리고 쓰다 남은 먹 한 토막, 오직 이것뿐이다!"

추오상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 "주 형은 부디 마음을 놓아라. 하찮은 물건이니 설령 선친의 유물이라 해도 내가 인색하게 굴지 않을 터이며, 때가 되면 기꺼이 바치겠다."

주성한이 포권을 하며 대례를 올리고 말했다. "내가 먼저 감사하겠다! 이만 물러가겠다."

추오상이 말했다. "주 형은 어디로 가느냐?"



주성한이 말했다. "당연히 추 형을 위해 힘을 쓰러 가는 길이다." 말을 마치고 방을 나섰다.

이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정오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주성한은 피로할 뿐만 아니라 배고픔마저 느꼈으나, 흥분된 마음이 그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다. 아버님의 깊은 병은 오직 추일장이 당년에 극품 '용연향'에 구리산의 '묵석', 그리고 백 년 동안 저장된 '향갱찹쌀'을 섞어 달여 만든 '용연오묵'이 있어야만 완치할 수 있었다. 이제 그 쓰다 남은 먹 한 토막이 비록 아직 손에 들어오지는 않았으나 이미 실마리가 잡혔으니, 어찌 기뻐 미치지 않겠는가?

주성한은 본래 강직하고 탄백한 성품이었으나, 아버님의 깊은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이번만큼은 간교한 수단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소월매의 문 앞에 이르러 손을 들어 방 문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방 문이 끼이익 열리며 소월매의 고운 얼굴이 드러났다. 아름다운 눈으로 주성한의 얼굴을 한 번 훑어보더니, 약간 놀란 듯 말했다. "상공께서는 누구를 찾으십니까?"

주성한이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필시 낭자가 소월매 낭자이겠군! 이 사람은 주성한이라 하는데, 낭자와 긴히 나눌 중요한 일이 있다."

소월매는 경계하는 마음이 있어 머뭇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월매 홀로 이 방에 묵고 있으니, 공자를 안으로 모셔 차를 대접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싶다."

주성한이 말했다. "무림의 남녀가 어찌 이리 자잘한 격식에 얽매이느냐, 하물며 이는 낭자의 몸에 지닌 고통과 직결된 일이다."

소월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공자께서는 들어오십시오!"

주성한이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소월매는 방 문을 닫았으나 이내 문짝에 몸을 기대어 선 채, 주성한에게 자리를 권하지도 않았고 자신도 앉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때문이냐?"

주성한이 눈길을 그녀의 얼굴에 단단히 고정한 채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낭자의 병은 좀 나아졌느냐?"

소월매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썹을 연신 치켜뜨며 나지막이 꾸짖었다. "이 몸은 멀쩡하거늘, 어찌하여 나를 저주하며 병에 걸렸다고 하느냐?"

주성한은 여전히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말했다. "소 낭자! 이 사람이 염려하여 묻는 호의를 저버리지 마라!"

소월매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평생 알지도 못하던 처지에, 설령 이 몸에게 병이 있다 한들 공자가 이리로 찾아와 캐물으실 일은 아니다."

주성한이 말했다. "만약 낭자가 이 사람이 한 시대를 풍미한 의성 주개천의 후손임을 안다면, 이다지도 경솔하게 말을 내뱉지는 못할 것이다."

소월매는 가슴이 크게 출렁여 주성한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그제야 중얼거렸다. "네가 의성의 후손이란 말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낭자는 믿지 못하겠느냐? 이 사람은 단 한마디로 그 병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말할 수 있다. 만약 의성의 후손이 아니라면, 아마도 이런 안목은 없었을 것이다!"

소월매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아련한 어조로 말했다. "만약 공자께서 월매의 병에 어떤 약을 써야 고칠 수 있는지 단번에 꿰뚫어 보신다면, 그 은혜는 감격해 마지않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낭자 스스로도 어떤 약으로 고칠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소월매가 말했다. "공자의 말씀은...?"

주성한이 급히 말을 가로챘다. "낭자는 목소리를 낮추어라. 너와 나 사이에 마음으로 통하면 그만이다. 지금 금릉은 이미 시비가 가득한 곳이 되었으니,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월매가 주성한을 멍하니 한참 바라보고서야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렇다면 공자께서는 무슨 이유로 이곳 금릉에 오셨느냐?"

주성한이 말했다. "낭자는 더 캐묻지 마라. 만약 낭자가 아직 나를 믿어줄 수 있다면, 하루빨리 금릉을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소월매가 고개를 연신 저으며 말했다. "안 된다! 안 된다! 월매는 병을 고칠 물건을 얻기 위해 몸을 누이는 수치조차 불사하고 진회하의 기생으로 변장까지 하였거늘, 어찌 빈손으로 금릉 성곽을 나설 수 있겠느냐."

주성한은 속으로 나지막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동안 고심하다가 말했다. "소 낭자는 이곳에서 그저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하면, 원하는 물건을 손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소월매가 말했다. "추오상만 월매의 손아귀에 들어온다면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주성한이 말했다. "그 물건은 추오상의 몸에 없다."

소월매가 말했다. "그 사람의 몸이 이곳에 있기만 하면 된다."

주성한이 말했다. "낭자는 이 객잔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낭자와 같은 목적을 품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소월매가 놀라며 말했다. "그 말이 정녕 사실이냐?"

주성한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황대선, 황해어, 그리고 그 화냥년 같은 '은호'까지, 모두 이 일 때문에 온 자들이다."

소월매가 말했다. "공자께서 괜히 사람을 놀라게 하려고 위협 섞인 허풍을 떠시는 것은 아니겠지?"

주성한이 말했다. "듣자 하니 낭자는 가슴에 만 가지 계책을 품었고 총명함이 남다르다 하여, 스스로 시비를 밝히고 진위를 가릴 줄 알리라 믿었다. 설마 이다지도 의심 섞인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구나. 필시 병을 몸에 지녀 마음이 조급해진 탓이겠군...."

소월매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월매가 너를 믿어주겠다. 하지만 금릉을 멀리 떠날 생각은 없다."

주성한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냐? 구하는 물건이 추오상의 몸에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어찌 금릉에 미련을 두느냐. 그저 추오상의 동향을 살피다가 기회를 보아 도모하면 될 일이다."

소월매는 주성한의 설득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공자가 염려해 주는 융숭한 호의는 고마우나, 월매는 결코 경솔하게 금릉을 떠날 수 없다."

주성한이 말했다. "소 낭자! 현재 객잔 안에는 낭자와 목적이 같은 자가 세 명이나 있다. 만약 소 낭자가 깊은 병을 앓아 무공을 상실했다는 비밀이 한 번 누설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낭자에게 매우 치명적인 일이 될 것이다."

소월매가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월매가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공자의 염려 섞인 성의는 고마우나 더는 말하지 마라."

주성한은 속으로 은근히 초조해졌다. 만약 그가 소월매를 금릉에서 멀리 떠나보내지 못한다면 추오상의 기대를 저버리는 셈이 되고, 훗날 추오상 역시 선대의 유물 세 가지를 내어주기를 거절할 수 있었다. 이에 마음속으로 궁리를 굴리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소 낭자, 이 사람은 본래 온전한 호의로 한 말이다. 그러나 낭자의 안색과 말투를 보니, 아무래도 이 사람의 마음에 의구심을 품은 모양이군...."

소월매가 말을 받았다. "공자께서 과하게 의심하시는 것이다. 월매가 거듭 말했듯, 공자의 염려하는 정성은 이미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였다."

주성한이 말했다. "소 낭자! 이 사람이 심복의 경언을 한마디 올리고자 하는데, 낭자가 기꺼이 들을 용의가 있는지 모르겠군."

소월매는 고운 얼굴을 치켜들고 흑백이 분명한 두 눈을 둥그렇게 뜬 채, 형형한 눈빛으로 주성한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월매가 귀를 씻고 공경히 듣겠다."

주성한이 말했다. "낭자의 깊은 병은 반드시 추오상 선대의 유물인 '용연오묵'이 있어야만 완치될 수 있기에 금릉에 왔고, 추오상의 손에서 낭자가 필요한 물건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 역시 금릉에 온 것은 추오상 때문인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월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그렇다면 공자가 월매에게 금릉을 멀리 떠나라고 권하는 것은, 오직 공자의 거대한 대계에 방해가 될까 염려해서라는 말이구나?"

주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그런 뜻이 있다."

소월매가 냉소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공자 역시 그 두 토막의 '용연오묵'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군!"

주성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낭자가 잘못 짚었다. 비록 너와 나 두 사람 모두 추오상에게서 손을 쓰려는 것은 같으나, 너와 내가 얻고자 하는 물건은 서로 다르다."

소월매는 표정이 잠시 굳어지며 아름다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공자가 도모하려는 물건이 무엇인지 내게 말해줄 수 있느냐?"

주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히 낭자에게 말해줄 수 있다. 필시 낭자 역시 이 사람이 금릉에 와서 기도하는 바를 누설하지는 않을 터이니...." 어조를 잠시 멈추고 앞으로 두 걸음 다가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이 얻고자 하는 것은 '경천궁' 궁주 단비우의 손에 있는 그 '창랑보검'이다."

소월매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요동쳤다. 무림에서 그 '창랑보검'을 도모하려는 자가 적지 않았기에, 자연히 주성한의 말을 곧이듣게 되었다. 남몰래 길게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것 참 기이하군! 검은 개봉에 있고, 게다가 단비우의 허리에 채워져 있거늘, 공자가 추오상을 찾은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소 낭자! 그 안의 오묘한 이치는 낭자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조를 잠시 멈추고 말을 이었다. "낭자! 너와 내가 거래를 하나 하지 않겠느냐?"

소월매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된다! 공자께서도 필시 월매의 가세에 대해 이미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소씨 가문의 가법은 예로부터 그 어떤 무림인과도 맹약을 맺거나 연수하지 않는 것이니, 월매가 어찌 감히 전통적인 가규를 깨뜨릴 수 있겠느냐?"

주성한은 안색이 굳어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문을 두드려 방문한 것이 결국 허탕을 친 셈이군?"

소월매가 말했다. "공자는 한 시대의 의성의 후손이시니, 월매가 마땅히 숭경해야 한다. 비록 월매가 전통 가규를 엄격히 지켜야 하기에 공자와 그 어떤 거래도 하기 어렵겠으나, 공자의 생각은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주성한이 말했다. "사실 이 사람이 방금 말한 거래는 낭자의 전통 가규를 위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낭자가 잠시 금릉을 떠나 있겠다고 약조만 해준다면, 이 사람이 낭자를 위해 미약한 힘이나마 조금 보태겠다." 그는 이 말을 매우 두루뭉술하게 하여, 그녀가 필요로 하는 추일장의 유물 '용연오묵'을 구해주겠다는 뜻을 명확히 드러내지는 않았다.

소월매가 말했다. "월매는 결단코 명을 따르기 어렵다."

주성한의 안색이 흐려지며 말했다. "소 낭자의 태도가 이다지도 완고하니, 미련하여 너무 사리에 통달하지 못하는군."



소월매가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월매가 공자를 깍듯이 대하는 것은 오직 공자가 한 시대의 의성 주개천의 후손이시기 때문이지, 결코 월매가 깊은 병에 걸려 무공을 잃었기에 공자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말씀이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해라."

주성한이 냉소하며 말했다. "소 낭자! 이 사람이 알기로는 어떤 유능한 고수가 어둠 속에서 낭자를 수행하며 보호하고 있기에, 낭자가 이토록 믿는 구석이 있어 안하무인으로 구는 모양이군. 그러나 두 손으로 네 개의 손을 대적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하물며 낭자와 같은 목적을 품은 그 세 사람은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다. 저마다 독문무공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하나같이 궤계가 다모하니, 낭자는 절대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소월매가 말했다. "공자는 할 말을 다 마쳤느냐?"

주성한은 상대가 유화책도 강경책도 모두 받아들이지 않자, 자신이 공연히 입술과 혀만 낭비하고 적잖은 심기만 허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대로 손을 떼고 싶지 않았기에, 고의로 우려 섞인 기색을 띠며 깊은 탄식을 내쉬었다. "낭자가 이 사람의 간절한 고심을 저버리는군."

그러자 소월매의 안색이 갑자기 눈에 띄게 부드러워지더니, 역시 똑같이 탄식하는 어조로 말했다. "공자는 내막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월매가 공자의 아름다운 호의를 따라 잠시 금릉을 떠나지 못하는 데에는 정녕 말 못 할 고충이 있다."

주성한이 말했다. "낭자가 그 내정을 내게 말해줄 수 있느냐?"

소월매가 말했다. "월매의 병은 이미 몹시 위중하여, 길어봐야 올 해 연말이나 세말까지만 간신히 잔명을 유예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내년 초봄이 오기 전에 추일장이 당년에 글을 쓸 때 남겨둔 그 '용연오묵' 한 토막을 찾지 못한다면, 이제는 더 고칠 약이 없다. 그러니 월매는 결코 잠시라도 금릉을 떠나 허비하는 시간을 만들 수 없다."

그녀가 말을 할 때, 두 눈썹을 찌푸리고 미간을 가볍게 모으니 고운 얼굴에 애처롭고 가련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다.

주성한은 마음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시큰함을 느꼈고, 동시에 일말의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깊은 병을 얻어 급히 치료를 기다리는 여인을 마주하고서, 자신이 도리어 수단과 잔꾀를 부려 그녀를 금릉에서 멀리 떠나보내려 했으니, 이는 상대의 활로를 끊는 것과 다름없거늘 어찌 영웅의 소하라 하겠는가?

그러나 이내 침상에 누워 병고로 신음하는 부친 주개천의 모습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이에 마음을 모질게 먹고 말했다. "낭자가 이다지도 말하니, 이 사람 역시 더는 강권하기 어렵겠군. 다만 낭자가 금릉에 하루 더 머물수록 이 사람에게는 그만큼 한 걸음 더 불편함이 더해질 터이니, 훗날 혹여 무례를 범하더라도 낭자는 부디 탓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월매의 면색이 갑자기 다시 차가워지더니, 나지막이 꾸짖었다. "한 시대의 의성이신 주개천 선배께서는 인자한 마음과 뛰어난 의술로 무림에 적잖은 복을 심으셨거늘, 어찌 공자와 같이 사리에 어긋나는 억지를 부리는 아들을 두셨단 말이냐...." 어조를 잠시 멈추고 비단 소매를 연신 휘두르며 말했다. "공자는 어서 나가라!"

주성한이 말했다. "이만 물러가겠다!" 말을 마치고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주성한이 포권의 예조차 취하지 않은 것은 그가 무례하거나 속이 좁아서가 아니었다. 도리어 고의로 서로 물과 불처럼 용납할 수 없는 형세를 만들어 두어야만, 훗날 그 '용연오묵'을 빼앗을 때 비로소 모질게 손을 쓸 수 있고 단 한 걸음의 양보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채 방 문을 열기도 전에, 문이 먼저 밖에서 밀려 열렸다. 백발이 성성하고 몸이 구부정한 노파가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오더니, 눈빛을 주성한의 얼굴에 단단히 고정한 채 잠시도 떼지 않았다.

주성한은 찾아온 이가 누구인지 이미 팔구십 퍼센트는 짐작했기에 속으로 은근히 긴장했으나,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며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노파는 주성한을 한참 동안 매섭게 쏘아보고서야 차갑고도 사락사락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나이가 몇이냐?"

주성한이 말했다. "스물하나다."

노파가 말했다. "나이도 젊은 놈이 죽는다면 참으로 아까운 일이나, 살려두자니 또한 사람을 번거롭게 만드는군."

주성한은 이미 예감이 있었기에 이 말을 듣고도 과하게 놀라지 않고 담담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은 오직 천명에 달린 것이니, 어르신께서 마음 쓰실 일은 아니다."

노파가 차갑게 꾸짖었다. "그리 다정하게 부르지 마라, 이 늙은이는 달콤한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주성한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저를 알아보시는군요?"

노파가 말했다. "한 시대 의성의 아들, 강주의 주성한이 아니더냐?"

주성한이 말했다. "맞다. 이 사람이 어르신의 성명과 명호를 대어 보아도 되겠느냐?"

노파의 두 가닥 백미가 가볍게 떨리더니 말했다.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주성한이 두 손을 모아 포권을 하며 말했다. "매화선자(梅花仙子) 유예향(兪蘂香) 어르신이 맞으시겠지?"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상대는 즉시 두 눈을 부릅떴고, 곁에 있던 소월매 역시 나지막이 비명을 질렀다.

그 노파는 과연 소월매의 외조모인 매화선자(梅花仙子) 유예향(兪蘂香)이었다. 그녀는 거의 삼십 년 동안이나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거늘, 이제 새파란 후생 무명배에게 단번에 명호를 간파당했으니 당연히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얼굴에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녀는 두 눈을 부릅떴다가 이내 다시 지그시 감았으나, 사락사락 가라앉은 목소리는 한 자 한 자 칼날 같았다. "아해야! 본래 이 늙은이가 너를 죽일지 살릴지 고심 중이었으나, 이제 너는 필시 죽어야겠구나."

주성한은 마음이 점차 엄숙해지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께 묻겠는데, 내가 무슨 이유로 죽어야 한단 말이냐?"

유예향이 말했다. "이 늙은이는 그 어떤 자도 '매화선자'가 현재 금릉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주성한이 말했다. "내가 발설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유예향이 말했다. "네가 죽고 나면, 자연히 발설하지 못하겠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른손 바닥이 천천히 들려 올려졌다. 그 두 손바닥은 마치 마른 나뭇가지처럼 메말랐으나, 손바닥 중심에는 핏빛처럼 붉은 기운이 짙고 옅게 얽혀 있어 마치 대여섯 빛깔로 어지러이 핀 매화꽃 같았다.

곁에 있던 소월매가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부르짖었다. "외조모님, 어찌 이러십니까!..."

유예향이 차갑게 꾸짖었다. "닥쳐라...." 눈길을 주성한의 얼굴에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아해야, 이 늙은이가 네게 세 초식을 양보하겠다."

소월매가 황급히 달려가 유예향의 옷소매를 붙잡고 애원했다. "외조모님, 그를 보내주십시오! 그가 한 시대의 의성 주개천 선배의 후손인 이상, 결코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자신에게도 이롭지 않은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외조모님, 그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성한은 마음속으로 부끄러움이 더욱 깊어졌으나, 소월매의 마지막 그 한마디는 명백히 자신을 얕잡아 본 것이었기에 가볍게 노기가 일어 자신도 모르게 차가운 콧방귀를 뀌었다.

유예향이 백미를 치켜세우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물러서라! 저 아해가 냉소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느냐?"

소월매가 말했다. "그가 무지해서 그러는 것이니, 어르신께서는 부디 저런 아이와 똑같이 대하지 마십시오...."

유예향이 오른팔을 가볍게 한 번 흔들자, 소월매는 즉시 바닥으로 튕겨 나가 주저앉았다. 주성한은 이를 눈으로 보며 마음속으로 크게 경악했다. 만약 정녕 손을 써야 한다면, 자신의 내력으로는 단연코 버텨내기 어려울 터였다.

유예향은 어젯밤에도 소월매의 방에 왔었으나, 그때 본 그녀의 기색은 자애롭고 온화한 어르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정이 크게 변하여 폭압적이고 사나우니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녀는 소월매를 내팽개치고는 다시 손을 들어 방구석을 가리키며 호통을 쳤다. "가서 벽을 보고 무릎을 꿇어라. 감히 어른에게 대들다니, 이것이 어찌 교양 있는 가문의 규수가 할 짓이란 말이냐?"

소월매는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띠고, 눈망울을 아련히 굴려 주성한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정녕 방구석으로 가 벽을 보고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유예향(兪蘂香)은 다시 주성한을 향해 사납게 소리쳤다. "아해야, 손을 써라! 이 늙은이가 네게 세 초식을 양보하겠다."

주성한은 마음속으로 다소 불쾌함이 일었으나 감히 과하게 오만하게 굴지는 못했다. 첫째로 유예향이 닦은 '매화장'의 위세가 실로 놀라웠고, 둘째로 상대는 전대의 선배 인물이자 나름대로 품행이 곧은 자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주성한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찌 감히 전대의 어르신과 초식을 겨루겠습니까? 세 초식은 고사하고, 정성을 보아 서른 초식을 양보받는다 한들 이 사람이 어르신을 이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예향이 냉소하며 말했다. "말로 이 늙은이를 쪾매려 하지 마라. 세 초식이지, 단 한 초식도 더 양보할 수는 없다. 주개천이 부채 한 자루를 화후가 순숙하도록 부렸으니, 필시 그것을 관 속까지 가지고 들어가지는 않았을 터다. 어서 꺼내 들어라!"

주성한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정녕 이 후학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하십니까?"

유예향이 말했다. "잔말 말고, 너희 주씨 가문이 설마 살기를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후손을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월매는 벽을 보고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연신 흔들어댔다. 주성한은 이를 눈여겨보며 마음속의 노여움을 다시 가라앉히고,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어르신께서 이토록 주씨 가문을 높이 평가해 주시니, 마땅히 주문이 평소 신의를 엄격히 지킨다는 것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이 후학이 어르신의 행적을 발설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상 단연코 끝까지 지킬 터인데, 어르신께서는 어찌 이리 사람을 과하게 몰아붙이십니까?"

유예향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호통을 쳤다. "사내자식이 어찌 이리 아녀자 같은 소리를 하느냐! 이 늙은이가 먼저 네게 세 초식을 양보한 뒤, 너를 향해 세 장을 펼칠 터이니, 네가 만약 피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네 목숨이 질긴 탓이다."

주성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다. 게다가 상대는 물러설 기색이 전혀 없구나. 매화장이 비록 위세가 놀랍고 명성이 자자하나, 설마 세 장을 버텨내지 못하랴 생각하면 그것은 다소 과한 염려일 터다.'

이에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상황이 이와 같다면, 후학은 오직 명을 따를 뿐입니다...." 어조를 잠시 멈추고 말을 이었다. "다만, 양보는 필요치 않습니다. 후학은 내력을 온전히 보존하여 요행히 목숨을 잃을 액운을 피해보고자 하니, 선배님께서 먼저 손을 써 초식을 들여보내십시오!"



말소리와 함께 “샤샤각!” 두 번의 소리가 나더니 접선이 이미 손에 쥐어졌다. 번개처럼 한 번 펼쳐졌다 접히는 기세가 과연 범상치 않았다.

유예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성한을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해의 자세가 약하지 않으니, 제법 명가의 풍모가 있구나. 이 늙은이가 양보하겠다고 한 이상 기어이 양보할 터이니, 초식을 들이밀고 안 밀고는 네 알아서 할 일이다. 이제 이 늙은이가 먼저 세 번의 허초를 보낼 터이니, 너는 마땅히 그 네 번째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네'라는 글자가 아직 휵휵 혀끝에서 맴돌며 튀어 오르기도 전에, 주성한의 귀를 스치며 "훠어어억" 하는 광풍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장(掌)'이라는 글자가 유예향의 입에서 채 떨어지자마자, 그녀는 이미 주성한의 왼쪽으로 파고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장영이 태산처럼 강경하게 압박해 들어오니, 단연코 위맹하기 이를 데 없어 날카롭게 막아서기조차 어려웠다.

벽을 보고 무릎을 꿇고 있던 소월매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으나, 이내 날카로운 파공음에 묻혀 버렸다.

주성한이 어찌 감히 소홀히 하겠는가. 이는 가히 그가 어머니 태중에서 나온 이래 처음으로 조우한 강경한 고수였다. 즉시 기를 단전에 모으고 공력을 오른손 손목에 관통시키며 접선을 "촥" 하고 펼쳐 들었다. 칼날처럼 가로로 베어내며 몸을 압박해 오는 강력한 기운을 깎아내리는 동시에 그 방향을 틀어버릴 작정이었다.

"스윽"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압박하던 암경이 과연 왼쪽으로 치우치며 주성한의 왼쪽 스치듯 비껴지나갔다. 그러나 그의 신형은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오 척이나 비스듬히 날아가 튕겨 나갔고, 발끝이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고꾸라질 뻔했다.

유예향이 신형을 한 바퀴 돌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해야! 네가 과연 네 아비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는 않았구나!"

말소리와 함께 오른손 바닥이 다시금 들려 올려졌다.

주성한은 비록 중심을 잡고 바로 섰으나, 기혈이 홀로 뒤틀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찬 눈으로 힐끗 보니 방 안의 탁자와 의자가 모두 제자리를 잃고 무너져 내려 있었으니, 만약 저 바람 같은 경력이 몸에 직접 닿았다면 죽지 않아도 중상을 입었을 터였다.

보아하니 두 번째 장은 단연코 피해내기 어려울 듯싶었다.

이에 기지를 발휘하여 얼른 크게 소리쳤다. "어르신, 잠시만 손을 멈추십시오!"

유예향이 오른손 바닥을 천천히 내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유언이라도 있느냐?"

주성한이 말했다. "선배님보다 수십 년은 늦게 태어난 후학이 전대의 고수와 초식을 겨룰 수 있었으니, 참으로 무상의 영광입니다. 어르신께서 그 초식의 명칭을 하나하나 알려주신다면, 이 후학은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사실 그는 핑계를 대어 시간을 끌어둠으로써, 자신에게 다시 내력을 모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고자 함이었다.

유예향이 말했다. "아해가 제법 배움을 좋아하는구나! 좋다! 이 늙은이가 알려주마! 방금 펼친 초식은 바로 '매압군방(梅壓群芳)'이라 한다! 고작 삼 분의 경력에 불과했거늘 네 녀석이 피해냈으니 그리 신기할 것도 없다! 이번에는 이 '매개이도(梅開二度)'라는 초식을 받아볼 터이니, 과연 네가 피해낼 수 있을지 보아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형이 폭발하듯 움직였고, 동시에 오른손 바닥을 다급히 내뻗었다. 그 메마른 두 손바닥이 한번 뒤집히고 다시 엎어지는 순간, 공력이 십 분이나 실린 두 갈래의 장풍이 주성한을 향해 협공을 전개해 왔다.

다급한 와중에 주성한은 오직 공격으로써 수비를 삼을 수밖에 없었기에, 목숨을 건 타법을 펼치기로 했다. 홍문을 빼앗고 중궁을 열어젖힌 채 피하지도 비키지도 않은 채, 접선을 탁 접어 쥐고 분연히 유예향의 천령대혈을 향해 중하게 점혈하듯 내질렀다.

만약 서로 양보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동시에 목숨을 잃고 동귀어진할 터였다.

유예향은 꿈에도 주성한이라는 이 어린 녀석이 목숨을 걸고 덤벼들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이름을 날린 고수들은 대개 초식을 끝까지 쓰지 않고 여지를 남겨두는 법이기에, 그녀는 황급히 초식을 거두고 공력을 회수하며 신형을 허공으로 날려 물러섰다.

주성한 역시 한바탕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유예향은 신형을 바르게 세우고 서서 성난 목소리로 꾸짖었다. "아해야! 누가 네게 그런 타법을 가르치더냐?"

주성한이 말했다. "병법에 이르기를 사지에 빠진 뒤에야 비로소 살아날 수 있다(置之死地而後生)고 하였으니, 이는 철칙처럼 다툴 여지가 없는 이치입니다."

유예향이 말했다. "흥! 설마 네 녀석이 병서와 전책까지 읽었을 줄은 몰랐구나...." 어조를 무겁게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이 늙은이가 비록 너를 죽이려 하나, 마땅히 정정당당하게 죽이고자 한다. 만약 방금 이 늙은이가 왼손 바닥으로 격격하고 오른손 바닥을 거두지 않았다면, 죽은 것은 사리를 분간하지 못한 네 녀석이었을 터다!"

주성한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깨달았다. 말투를 보아하니 유예향이 자신에게 여전히 배려하는 마음을 두고 있는 듯싶었다.

이에 얼른 공손하게 손을 모으며 말했다. "선배님께서 손을 높이 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상황이 이와 같으니, 남은 한 장은 면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예향이 말했다. "이 늙은이 역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주성한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동시에 접선을 소매 안으로 거두어 넣으려 했다.

유예향이 손을 휙 치켜들며 말했다. "아해야, 잠시 멈추어라!"

주성한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어르신, 아직도 더...?"

유예향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이 늙은이는 한 번 뱉은 말에 결코 에누리를 두지 않는다. 자연히 네 목숨을 살려두기 위해 내 평생의 관례를 스스로 깨뜨릴 수는 없다. 죽고 사는 것은 오직 네 녀석의 운명에 달렸으니 장을 받아라, 이 초식의 명칭은 '매오한상(梅傲寒霜)'이라 한다...."

'상(霜)'이라는 글자가 채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오른손 바닥이 번개처럼 찍혀 나왔다.

주성한은 어금니를 질끈 물고 장경이 날아오는 기세를 묵묵히 살피며, 영활한 신법으로 온 힘을 다해 몸을 날려 피해볼 작정이었다.

유예향은 오른손 바닥을 내뻗어 그 기세가 멈추지 않았고, 차가운 콧방귀를 뀌며 그대로 끝까지 찍어 누르려 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벽을 보고 무릎을 꿇고 있던 소월매가 크게 한 번 소리를 지르더니, 휙 몸을 굴려 그 고운 자태로 유예향과 주성한의 두 사람 사이로 굴러 들어왔다.

유예향은 당연히 자신의 외손녀를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황급히 초식을 거두고 공력을 거두어들이며 성난 눈빛을 형형하게 빛내며 소월매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소월매는 바닥에 엎드린 채 흐느끼며 말했다. "외조모님, 손녀의 불효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르신의 이 '매오한상(梅傲寒霜)'이라는 초식에 얼마나 많은 이름난 고수들이 파멸하였는데, 그가... 그가...."

유예향이 광노하여 사납게 호통을 쳤다. "닥쳐라...." 번개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주성한을 한 번 훑어보고는 말을 이었다. "아해야, 아직도 어서 꺼지지 못하겠느냐!"

주성한은 이미 넋이 나간 듯 나무 닭처럼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 못했으나, 마음속은 극도로 요동치며 가라앉지 않았다. 소월매가 이토록 목숨을 걸고 자신을 비호해 주었거늘, 자신은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간교한 수단을 부려 그녀의 활로와 생기를 끊어버리려 했으니, 이것이 정녕....

유예향이 다시금 나지막이 꾸짖었다. "꺼져라! 들리지 않느냐?"

주성한이 길게 탄식하며 고개를 돌려 가버렸다. 그는 앞으로 자신의 양심에 따른 모진 채찍질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한편으로는 부친의 병세 때문에 필시 그 '용연오묵' 한 토막을 얻지 않으면 안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저히 천良(천량)을 속여가며 소월매의 활로를 끊을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이요, 참으로 진퇴양난이었다. 속마음으로 끊임없이 길고 깊은 탄식만 흘려보낼 뿐이었다.

금까마귀가 서쪽으로 떨어지고 달빛이 점차 오르니, 강 위에는 오색찬란한 등불 그림자가 밝아왔다. 진회하는 다시금 또 다른 세상의 모습으로 변모해 있었다.

돛대와 깃대가 숲처럼 빽빽이 들어서고 등불 그림자가 곳곳에 가득한 화방과 소정들 사이에, '은(銀)' 자 호를 단 중형 채방 한 척이 떠 있었다. 이 배는 이날 밤 배의 현측들이 서로 맞닿아 있는 화방 무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홀로 남쪽 기슭 나루터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노화당(갈대밭)'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방상에는 녹색 비단 전등 하나가 높이 걸려 있었는데, 이는 "이 이름난 꽃은 이미 주인이 있으니, 고기 잡는 사내들은 더는 길을 묻지 마라"는 신호였다.

이 채방은 외관상으로 보기에 '금(金)' 자 호에 비하면 다소 뒤떨어지는 편이었으나, 내부만큼은 매우 넓고 아늑했다. 게다가 침실이 바로 방상에 갖추어져 있다는 장점이 있어, 호방한 손님이 묵어가더라도 굳이 정교한 침선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배 앞머리에 걸린 두 개의 큰 홍색 풍등에는 각각 '은(銀)'과 '화(花)'라는 글자가 나뉘어 적혀 있었으니, 과연 이것이 '은화방(銀花舫)'인 모양이었다.

침실 안에서는 마침 스무 살 안팎으로 보이는 얼굴이 요염하고 몸매가 아리따운 홍분가인이 거울을 마주하고 화장을 고치고 있었고, 그녀의 등 뒤에는 열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어여쁜 침모(몸종)가 은근히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 홍분가인은 주사를 고르게 섞어가며 검지 손가락 끝으로 살짝 찍어 뺨에 가볍고 가늘게 펴 바르면서, 등 뒤의 침모에게 교태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추월아! 어젯밤 그 양씨 성을 가진 부유한 도령이 지은 그 대련이 제법 흥미롭더구나, 네가 내게 한 번 읊어주려무나."

추월(秋月)이라 불리는 침모가 말했다. "'연꽃이 피어 봄빛을 보내고, 향기가 가득하여 가을바람을 맞이하네'였던 듯싶은데, 저도 그리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거울을 보며 연지를 바르고 화장을 하던 고운 가인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맞다! 바로 그것이다. 추월아! 너는 이 두 구절의 대련이 품은 뜻을 알겠느냐?"

추월이 웃으며 말했다. "그 양 도령이 풀어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 연꽃이 초여름에 피어나니 이내 봄날을 보내주는 것이고, 초여름의 연꽃은 색이 고우며 여름이 끝날 무렵의 연꽃이라야 비로소 향기가 나는 법입니다. 그러니 향기가 일시에 가득 퍼질 때, 비로소 가을바람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기이하다 하겠으나, 머리글자 두 자에 낭자님의 존명을 은근히 박아 넣었으니 그것이야말로 정녕 절묘하다 할 것입니다!"

알고 보니 거울을 마주하고 연지를 고르며 화장을 하던 이 홍분명기는, 바로 그 두부 총관 채금당의 오랜 정인인 하향 낭자였다.

하향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길게 탄식했다. "휴! 그 양가 도령은 인물도 훤칠하고 돈도 많은 데다 재기까지 넘치더구나. 어젯밤 술자리에서 내가 슬쩍 떠보았는데, 제법 무공 밑천도 있는 것 같았어. 어쩌면 강호를 유람하는 협사일지도 모르지. 안타깝게도 나 하향이에게는 그런 사람과 인연을 맺을 복이 없나 봐. 휴...."

말끝에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이 이어졌다.

추월은 상전이 탄식하며 한탄하는 것을 보고는 좋은 말로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낭자님, 마음을 편히 먹으십시오. 예로부터 인연이 있으면 천 리 길이라도 찾아와 만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향이 고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받았다. "관둬라, 추월아! 너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내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를 거다. 일편단심으로 그 어린 원수를 방상에 머물게 하고 싶었건만, 그이가 통 입을 열지 않더구나. 간신히 오늘 밤 다시 오라고 약조를 받아냈는데, 하필이면 우리 염라대왕 같은 영감탱이가 오늘 밤에는 성이 채 씨인 그 말라깽이 원숭이를 부르라고 하니 원.... 참으로 하늘이 사람 뜻을 따르지 않는구나. 오늘 밤을 놓치면 이제 다시는 그 어린 원수를 만나지 못할까 두렵다!"

추월이 문?(문렴)이 드리워진 곳을 날카로운 눈길로 힐끗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낭자님, 말씀하실 때 제발 조심하십시오. 이 몸은 낭자님께 충성을 다하니 절대 말을 옮기거나 고자질하지 않겠지만, 만약 춘화가 듣기라도 하면 큰일 납니다! 그년은 그야말로 우리 염라대왕 영감의 귀와 눈노릇을 하는 밀고쟁이 아닙니까!"

하향이 냉소하며 말했다. "어차피 나도 살 만큼 살았으니, 죽는대도 별수 있겠느냐. 평소에는 그 염라대왕 같은 영감에게 짓밟히고, 이제는 이 진회하까지 끌려와서...."

추월이 급히 말을 가로챘다. "낭자님, 더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말을 할수록 화만 치밀 뿐이니, 화로 몸을 상하면 결국 자신만 고생입니다. 속담에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으니, 살아있다 보면 반드시 좋은 기회가 올 것입니다."

어린 침모치고는 제법 조리 있고 사리에 맞는 말이었다.

하향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 "춘화 그 화냥년은 정녕 뼈속까지 천한 년이야! 열두세 살 때 이미 우리 염라대왕 영감에게 몸을 더럽히더니, 지난해에는 '시랑호표(豺狼虎豹)' 네 형제에게 아부하겠답시고 억지로 그년을 짐승 같은 굴에 밀어 넣지 않았더냐. 칠흑 같은 밤을 나흘이나 보내고 돌아왔을 때는 겨우 가죽만 남았었지. 사리가 이렇다면 우리 염라대왕 영감에게 뼈에무치는 한을 품어야 마땅하거늘, 도리어 거꾸로 온갖 아양을 떨며 비위를 맞추고 있으니, 참으로 뼛속까지 천한 년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추월이 연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낭자님! 제발 더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하향은 분노 섞인 안색 속에서도 살짝 교태 어린 미소를 지으며 연거푸 말했다. "좋다! 말하지 않으마, 말하지 않고말고! 솔직히 말해서 오직 너만이 나를 아껴주는구나. 그러면서도 꼭 어린 시어머니처럼 나를 꽉 쥐고 흔들려 하니 원."

추월이 다급히 말했다. "낭자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이 몸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낭자님께서 저를 잘 대해주시니, 이 몸 역시 마땅히 성심으로 보답해야지요...."

하향이 말을 가로챘다. "추월아! 내가 진작 말하지 않았더냐, 우리는 자매와 다름없으니 늘 이 몸이니 저 몸이니 하며 아랫사람 행세를 하지 마라. 귀에 들릴 때마다 영 개운치 않구나. 추월아, 우리 좀 즐거운 이야기를 하자...." 어조를 잠시 멈추고 말을 이었다. "이 한 달 남짓한 선상 생활 동안, 너는 어찌 지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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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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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상아분월 | 작성시간 26.06.11 고맙습니다
  • 작성자왕타 | 작성시간 26.06.13 고맙습니다
  • 작성자사니조아 | 작성시간 26.06.16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모백 | 작성시간 26.06.17 얼굴은 도화같고, 숨결은 천향과도 같으니 ^^ 향을 훔치는 등 주옥같은 문장들이군요 ^^ 대단합니다
    용연오묵을 둘러싼 암투가 치열하군요
  • 작성자영영 | 작성시간 26.06.1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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