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八 回. 암반교역(暗盤交易)....암거래.

작성자겨울나그네|작성시간26.06.11|조회수90 목록 댓글 13

 

               < 第 八 回. 암반교역(暗盤交易)....암거래. >





추월이 눈썹 끝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저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만, 낭자님께서 매일 낯선 사내들을 맞아들이며 이리저리 마음을 두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하향이 몸을 돌리며 말을 받았다. "그만해라! 즐거운 이야기를 하기로 해놓고, 어찌 또 울상 가득한 얼굴이냐! 말하자면 이 기생 선상 생활이 여인에게는 비참한 처지이겠으나, 우리가 염라전(지옥)에 있던 때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다. 적어도 하루 종일 그 염라대왕 영감의 험악하고 괴상한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추월이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낭자께서 마음을 편히 가지시니, 저도 한시름 놓입니다."

하향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바퀴 빙 돌며 비단 치마를 가다듬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명랑하게 말했다. "나는 진작에 마음을 비웠단다. 비단옷에 맛난 음식을 먹으며 근심 걱정 없이 살다 보니 문득 양 도령이 생각나는구나. 추월아! 그 어린 원수의 이름이 양 무엇이라 했지?"

추월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보십시오! 입으로는 온통 그 어린 원수만 그리워하면서 정작 사람 성명은 잊으시다니요. 이름은 양귀린(楊貴麟)이라 합니다. 귀린이란 기린이 귀함을 주관한다는 뜻이지요. 낭자님, 이제는 절대 잊지 마십시오!"

하향의 눈썹에 기쁜 기색이 완연해지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음! 양귀린, 서주 사람으로 시서에 능통하고 가산이 만관이라 했지. 명산대천을 두루 유람하고 그윽한 절경과 승적을 빠짐없이 탐방하고자 이 금릉에 왔다지...."

이때 추월이 남몰래 그녀의 옷소매를 슬쩍 잡아당기며, 동시에 발을 내린 발채 쪽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향은 말을 멈추었고, 귀에 가볍고 영활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자 붉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문렴(門簾)이 젖혀지며 추월과 같은 옷차림을 한 침모가 들어왔는데, 나이는 추월보다 약간 많아 보였다.

자세히 보니 코는 오뚝하고 뺨은 둥글며, 허리는 가늘고 눈매가 요염했으나, 그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 속에는 은근히 음험하고 독살스러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이 침모가 바로 그들이 방금 전까지 이야기하던 춘화인 모양이었다.

춘화는 선실 안으로 들어서서 하향에게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읍을 하며 말했다. "낭자님께 아룁니다! 요리는 모두 차려졌고 술도 데워두었으며, 차를 나르는 주방선도 이미 물리쳤습니다. 낭자님, 다른 분부라도 있으십니까?"

하향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몸을 돌려 외면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춘화야! 지금이 어느 시각이냐?"

춘화가 대답했다. "대략 유시(酉時)와 술시(戌時)가 교차할 무렵입니다."

하향이 물었다. "채 나으리께서는 언제 오신다고 하더냐?"

춘화가 말했다. "곧 오실 것입니다!"

하향이 갑자기 몸을 훽 돌리며 고운 눈을 부릅뜨고 성나 호통을 쳤다. "춘화야! 너는 네 처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너는 그저 나를 시중드는 비복이자 침모일 뿐이니, 눈에 뵈는 게 없다고 사람을 얕잡아 보지 마라!"

춘화(春花)의 눈빛에 억울하고 가당치 않다는 기색이 스쳤으나, 이내 공손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이 몸이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하향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그러지 못한다면서, 어찌 그런 말투로 내게 대답을 하느냐. 채 나으리가 계신 곳에 서신을 보낸 것은 바로 너다. 내가 그분이 언제 이곳에 오시냐고 물었으면 너는 마땅히 정확한 시각을 대야지, '곧 오실 것'이라니 내가 그 뜻을 어찌 알겠느냐. 글자 수가 너무 많아 입술과 혀를 놀리기가 귀찮았던 게냐?"

하향은 명백히 마음속에 쌓인 원망을 핑계 삼아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춘화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고운 얼굴을 숙인 채 나지막이 말했다. "채 나으리께서 술시 초입(오후 7시경)에 도착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이 마침 유시와 술시가 교차하는 참이라 곧 당도하시리라 헤아려 그리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 몸이 죄를 지었으니, 다음부터는 결코 그리하지 않겠습니다."

추월(秋月)이 황급히 하향의 옷소매를 잡아끌며 부드럽게 만류했다. "낭자님, 화를 가라앉히십시오! 춘화는 결코 낭자님을 소홀히 대하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향이 고운 눈을 힐끗 흘기며 꾸짖었다. "추월아! 네가 무슨 칭찬을 듣겠다고 끼어드느냐? 너는 뼈대가 없어서 남에게 구박받는 게 버릇이 되었구나. 나는 그런 자잘한 것에 개의치 않는다, 우리 중에 누가 안 그렇겠느냐...."

바로 그때, 강 위에서 한 차례 호각 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춘화가 다급히 말했다. "낭자님! 채 나으리께서 오셨습니다, 이것은 약조해 둔 신호입니다."

하향은 안색을 바꾸며 나지막이 말했다. "추월아! 나를 따르라...." 눈길을 춘화에게 한 번 던지며 말을 이었다. "술이 세 차례 돌고 나거든 선상의 큰 홍색 풍등을 끄고, 우리 염라대왕 영감을 배 위로 모셔라. 네게 이르노니, 네 살가죽이 성하고 싶거든 조심해라!" 말을 마치고 손을 한 번 휘두르며 추월과 함께 침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다섯 개의 계단을 밟고 선상으로 올라가니, 과연 쾌선 한 척이 배 옆에 멈추어 서 있었고, 채금당이 신형을 날려 가볍게 뛰어내리고 있었다.

채금당이 타고 온 쾌선을 돌려보내자, 하향은 황급히 마중을 나가 허리를 굽혀 읍을 하며 교태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채 나으리! 이제야 오셨군요! 정녕 이 몸의 간장이 다 녹는 줄 알았습니다."

추월 역시 하향의 뒤를 따라 채금당에게 인사를 올렸다.

채금당이 손을 한 번 휘두르며 말했다. "하향아,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아담하고 정교하게 꾸며진 화청(거실) 안으로 들어서자, 추월은 서둘러 발을 내린 뒤 다시 다가와 술을 따랐다.

하향(荷香)은 채금당을 붙잡아 자리에 앉히고는, 자신의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몸을 상대의 품 안으로 폭 들이밀며 애교를 떨었다. "채 나으리! 필시 마음이 변하신 게지요! 저 하향이의 시중이 마음에 차지 않으셨던 가요? 정녕 그렇다면 이 몸은 온전히 나으리의 것이니 때리시든 꾸짖으시든 달게 받겠으나, 이리 통 오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채금당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길게 탄식했다. "휴! 네가 이 채 나으리가 얼마나 바쁜지 몰라서 하는 소리구나!"

하향이 코를 쫑긋거리며 짐짓 투정을 부렸다. "바쁘시다고요? 관두세요! 그저께 밤 두 나으리께서 '금취방'에서 연회를 베푸셨을 때는 정녕 사람 속을 빤히 뒤집어놓으시더니만!"

채금당이 말했다. "하향아! 두 나으리의 연회 자리에 내 자리가 어디 있겠느냐, 너를 거길 불러 무엇 하겠느냐?"

하향이 교태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저 그 화려한 구경이라도 하면 좋지 않습니까! 거기 다녀온 기생 자매들이 돌아와서는 하나같이 어찌나 거드름을 피우던지 배가 아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채금당은 비록 가슴속에 근심이 가득하여 시름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으나, 오래된 정인이 이토록 사근사근하게 구니 잠시 번뇌를 잊을 수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하향의 고운 뺨을 살짝 꼬집으며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하향아! 네가 화려한 구경을 하는 것은 상관없다만, 만약 두 나으리의 귀한 손님 눈에 들어 정조라도 빼앗기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니냐! 너는 오직 이 나으리의 사람이어야 하거늘!”

하향이 말했다. “이 몸은 오직 나으리의 사람이 맞사오나, 나으리께서는 온전히 저만의 나으리가 아니시지요. 금릉성에서 두 나으리를 제외하면 오직 우리 채 나으리뿐이신데, 정을 나누고자 줄을 선 기생들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지난 사흘 동안 채금당은 연거푸 여러 차례 호된 꼴을 당했다. 스스로 헤아려 보아도 현재 금릉성 안에서 제2인자는 고사하고, 제20인자 자리에나 낄 수 있으면 다행인 처지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하향의 아양 섞인 말은 귀에 지극히 달콤하게 감겨들었다. 품 안의 미인을 더욱 품어 안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향아! 네가 정녕 이 나으리의 진정한 홍분지기(紅粉知己)로구나. 괜한 질투는 거두어라! 이 나으리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틈을 내어 너를 보러 왔으니, 어서 은혜에 감사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향이 교태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이따가 침실로 들어가서 할 일이고, 지금은 우선 벌주를 한 잔 받으셔야겠습니다.” 말을 마치며 술잔을 들어 채금당의 입술 부근으로 가져갔다.

채금당이 단숨에 술을 들이켜고는 탄식했다. “하향아, 내가 여기 앉아 한가롭게 술이나 마실 처지가 아니다.”

하향이 버들잎 같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럼 무엇을 하시게요?”

채금당이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우리 어서 선실 침실로 내려가 회포를 풀자꾸나!”

하향이 목소리를 한껏 높여 짐짓 투정을 부렸다. “아니, 이 나으리가 정녕 왜 이러실까! 안 오실 때는 며칠씩 얼굴도 안 비치시더니, 오시자마자 만나기 무섭게 엉큼한 생각부터 하시다니요. 안 됩니다! 우선 술을 몇 잔 더 드셔야 마땅합니다.”

채금당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목소리를 극도로 낮추어 말했다. “하향아! 내 말을 들어라. 이틀 동안 나는 정말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바빴단다. 춘화가 소식을 전해왔기에 겨우 틈을 내어 너와 회포를 풀러 온 것이다. 해시 초입(오후 9시경)이면 나를 데리러 올快선(쾌선)이 당도할 터인데, 어찌 여기서 마냥 지체할 시간이 있겠느냐?”

하향이 고운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그것이 정녕 사실입니까?”

채금당이 말했다. “당연히 사실이고말고. 내가 본래 술을 좋아하고 네가 곁에 있으면 천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으니 나 역시 너와 오래 머물고 싶다만, 정무가 시급하니 어쩌겠느냐!”

하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으리께 공무가 있으시다면 이 몸이 감히 방해할 수 없지요. 다만, 딱 세 잔만큼은 마저 비우셔야 합니다....” 그러고는 추월을 향해 고개를 돌려 분부했다. “추월아! 채 나으리께서 피곤하시어 잠시 쉬고자 하신다. 가서 춘화에게 서둘러 침상을 정리하라 일러라. 채 나으리께서 술은 더 들지 않겠다고 하시는구나. 어서 가보거라!”

채금당은 연거푸 두 잔을 더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향아, 우리 선실로 내려가자.”

하향이 다시 그를 붙잡아 앉히며 교태를 부렸다. “나으리! 빈속에 술만 축내시면 어찌합니까? 안주도 좀 드셔야지요!” 말을 마치며 서둘러 요리를 집어 채금당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기자기하게 시간을 끌다가, 하향은 얼추 계산이 섰다고 판단하자 그제야 채금당을 이끌고 선실 아래 침실로 내려갔다.

“툭!”

갑자기 등 뒤에서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채금당이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하향이 두 눈을 뒤집은 채 침상 위에 가로누워 있었다. 다시 시선을 돌린 순간, 그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 입구에 서 있는 자는 다름 아닌 첫날 ‘고승객잔’에서 자신을 세 번이나 메쳐 메치게 만든 그 황대선이었다.

채금당은 속으로 은근히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으나, 여전히 애써 엄숙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존각께서는 어찌하여 이토록 모진 마음으로 가련한 기생을 죽이신 거요?”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채 총관! 그리 애틋하게 연향석옥(憐香惜玉)할 필요 없소. 내가 그저 그녀의 혼혈(昏穴)을 짚었을 뿐이오. 저 휘장 뒤에서 깯아 자빠져 자는 두 침모년들까지 더해서, 이 배 위에는 이제 황대선이 귀신도 모르게 승선했다는 사실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소.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도 당연히 모를 테고 말이오.”

채금당은 상대의 기색과 말투를 보니 딱히 살기가 없음을 알아채고 마음을 조금 놓으며 차갑게 물었다. “존각의 의도가 대체 무엇이오?”

황대선이 말했다. “원래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하지 않소. 이 황 아무개는 채 총관과 붕우의 사귐을 맺고 싶소만.”

채금당이 말했다. “내 어찌 감히 고판(高攀)할 수 있겠소!”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과인이오....” 어조를 잠시 멈추고 말을 이었다. “채 총관이 그리 말하는 것을 보니, 필시 어제 ‘고승객잔’에서 있었던 일로 앙금을 품은 모양이구려. 하나 실상 이 황 아무개는 두 나으리를 위해 깊이 고심하는 중이오.”

채금당이 냉소했다. “어디 그 고견을 한 번 들어나 봅시다.”

황대선이 말했다. “두 나으리는 추오상이 사십구 일 동안 검을 쓰지 못한다는 제약에 묶여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으니, 그를 가부(두부)로 청하기만 하면 손쉽게 명줄을 끊을 수 있으리라 여기는 모양이오. 그러나 추오상 그 아해는 천복이 두터운 녀석이라, 그를 죽이기가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오.”

채금당이 말했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두 나으리의 ‘금도(金刀)’와 이 채 아무개의 ‘칠성(七星)’ 공력을 합치고도, 맨손에 병장기조차 들지 못하는 추오상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다는 말이오?”

황대선이 말했다. “두 사람의 힘만으로도 그를 대적하기엔 가히 넘치고도 남소.”

채금당이 물었다. “그렇다면 존각의 말은 어찌 이리 앞뒤가 맞지 않는단 말이오?”

황대선이 말했다. “채 총관은 이 황 아무개의 설명을 마저 들어보시오....”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현재 금릉성 안에는 성이 추씨인 그 아해가 죽기를 바라는 자도 적지 않으나, 반대로 그 추씨 아해를 살려두고자 하는 고수들 역시 도사리고 있소. 두 나으리는 천라지망을 펼쳐놓아 그 아해가 절대 재앙을 피하지 못하리라 장담하겠으나, 정작 때가 되면 누군가 개입하여 그를 구하려 들 터인데, 굳이 사서 또 다른 강적을 불러들일 이유가 어디 있겠소?”

채금당이 냉소하며 말했다. “존각이 고의로 위협하여 허풍을 떠는 모양이구려!”

황대선이 말했다. “믿고 안 믿고는 오직 당신의 처사에 달렸소!”

채금당이 말했다. “그다음에 존각은 필시 ‘영험한지 아닌지는 일이 지난 후에야 알 것’이라는 식의 강호의 흔한 핑계를 대겠구려. 그것은 일단 제쳐두고....” 어조를 무겁게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존각이 정녕 두 나으리를 위하는 자라면, 어찌하여 대중이 보는 눈앞에서 이 채 아무개를 그토록 개망신을 주어 낯을 들지 못하게 만든 것이오?”

황대선이 말했다. “타인의 이목을 가리기 위함이었소.”

채금당의 안색이 흐려지며 호통을 쳤다. “그게 무슨 뜻이오?”

황대선이 간교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것은 고의로 다른 이들에게 이 황 아무개가 두 나으리와 척을 지고 사사건건 어긋나는 자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소. 실상인즉슨, 이 황 아무개는 남몰래 두 나으리를 거들어 큰 공을 세우고자 하오.”

채금당이 짙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존각의 신수와 가슴속 계책을 보아하니 과연 두 나으리를 위해 한 차례 힘을 보탤 역량은 있어 보이나, 정녕 성심으로 돕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딴속셈을 품고 있는 것인지 내 어찌 믿겠소.”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채 총관이 그리 말씀하시니, 참으로 이 황 아무개를 억울하게 만드시는구려!”

채금당은 잠시 멍하니 굳어 있다가, 이내 안색을 부드럽게 풀며 말했다. “이 채 아무개가 일단 들어나 보겠소. 존각이 어느 방면에서 두 나으리를 위해 힘을 쓰겠다는 것이오?”

황대선이 말했다. “당연히 추씨 아해와 직결된 일이지 않겠소.”

채금당은 거듭 깊은 고심에 잠겼다가 마침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좋소! 이 채 아무개가 일단 존각을 전적으로 믿어보리다. 나와 함께 두 나으리를 알현하러 가십시다....” 목소리를 뚝 떨어뜨리며 덧붙였다. “존각의 무공이 뛰어나다 하여 오만하게 굴지 마시오. 두부에 발을 들인 뒤 조금이라도 궤계를 부릴 작정이라면, 단언코 좋은 꼴을 보지 못할 터이니, 이 채 아무개가 먼저 경고해 두는 바이오.”

황대선이 허허통쾌하게 웃어젖혔다. “채 총관, 만약 이 황 아무개가 정녕 두 ‘금도’와 채 ‘칠성’ 두 분과 진솔한 붕우가 되고자 마음먹은 게 아니었다면, 방금 그 한마디만으로도 당신은 내게 매타작을 면치 못했을 것이오.”

채금당의 안색이 홱 변하더니 말했다. “이 채 아무개가 존각을 오해한 셈이니, 훗날 내 정중히 사죄하리다.”

황대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것까지는 없소.”

채금당이 손을 한 번 휘두르며 말했다. “그럼 존각께서는 선상으로 올라가 대기해 주시오. 이 채 아무개가 쾌선을 불러 모실 터이니, 함께 두 나으리를 뵈러 가십시다.”

황대선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역시 필요치 않소.”

채금당은 자신도 모르게 멍해져서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그럼...?”

황대선이 말을 가로챘다. “이 황 아무개에게 묘책이 한 가닥 있으니, 채 총관이 몸소 두 나으리께 전하여 오직 이 계책대로만 행하도록 하시면 그만이오.”

채금당은 가볍게 아차 하는 기색을 띠었으나, 선뜻 대답을 잇지 못했다.

황대선이 다시 말을 이었다. “채 총관은 얼굴에 의심 섞인 기색을 띨 필요 없소. 돌아가서 두 나으리께 고한 뒤, 이 황 아무개가 올린 계책이 쓸 만하다 여기시면 행하고, 마땅치 않다 여기시면 그저 쓰지 않으면 그만이니 결코 억지로 권하는 바가 아니오.”

채금당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황대선의 앞으로 걸어가 고개를 바짝 들이밀었다. 그는 상대가 어떤 간교한 수단을 부리리라고는 털끝만큼도 의심치 않았다. 이미 어제 뼈저리게 겪어보았기에, 만약 황대선이 진심으로 자신을 고꾸라뜨릴 작정이었다면 무슨 수를 써도 절대 피해낼 수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황대선이 채금당의 귀에 바짝 다가앉아 한참 동안 소근소근 귓속말을 속삭였다. 이야기를 듣는 채금당의 얼굴에 점차 기쁜 기색이 완연히 번져갔으니, 필시 더없이 기발하고 오묘한 상책임이 분명해 보였다.



황대선이 계책을 다 올린 뒤, 가볍게 한 걸음 물러서며 물었다. “채 총관, 명심해 두셨소?”

채금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했소....” 어조를 잠시 멈추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만약 두 나으리께서 따로 여쭈어볼 것이 있다면, 존각과 어찌 연락을 취해야 하오?”

황대선이 손가락 하나를 뻗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이오. 채 총관의 앞발이 닿으면, 이 황 아무개의 뒷발이 이내 따를 것이오.”

채금당의 얼굴에 미미하게 놀란 기색이 스쳤고,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침상 위에 혼절해 있는 하향에게로 향했다.

황대선의 안색이 홱 가라앉으며 말했다. “채 총관, 가당치 않은 오해는 거두시오. 이 황 아무개가 무능할지언정 기생집 화류계 여인과 손을 잡을 위인은 아니오. 그저 이곳이 은밀하여 타인의 이목을 피하기에 가장 수월하기 때문일 뿐이오.”

그제야 채금당은 황대선에게 지극히 공순한 태도를 취하며 얼른 미소 지었다. “존각께서 도리어 오해를 하셨소!”

황대선이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이 황 아무개는 먼저 한 걸음 물러갈 터이니, 수고스럽겠지만 채 총관께서 저 세 사람의 혼혈을 풀어주시오.” 말을 마치고 선실을 나가버렸다.

채금당은 마음속으로 일말의 의구심이 남아 있었기에, 침상 위에 누워 있는 하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과연 그저 혼혈만 짚여 있을 뿐이었다. 휘장 뒤의 두 침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의 기혈을 남몰래 짚어보니 내력의 흔적이 전혀 없었기에, 그제야 마음을 완전히 놓고 한 사람씩 혼혈을 풀어주었다.

하향이 눈을 뜨더니 짐짓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정녕 너무 피곤했나 봅니다, 어서 일찍 쉬십시다!” 이내 교태롭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나으리를 이토록 소홀히 대하다니요....” 두 침모에게 손을 휘두르며 분부했다. “너희는 물러가거라!”

그러나 채금당이 지금 어느 한가한 심사로 풍류를 즐기겠는가. 얼른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관두자! 시각이 이미 늦었으니, 다음을 기약하마!”

하향 역시 억지로 붙잡지 않고 아양을 떨며 말했다. “나으리, 이 몸을 탓하시지는 않겠지요?”

채금당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나으리가 어찌 탓하지 않겠느냐. 다음번에 오면 내 정녕 휘장 갈고리로 네 그 앙증맞은 전족(小金蓮)을 옭아매고 아주 호되게 괴롭혀 줄 터이다!”

그렇게 농을 던지며 선상으로 올라온 채금당은 호각을 불어 쾌선을 불러들였고, 파도를 가르며 멀어져 갔다.

하향은 춘화에게 술과 안주를 치우라 분부하고, 추월과 함께 침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구리거울을 마주하고 비녀와 귀걸이를 빼내며 깊은 탄식을 흘렸다. “또 이리 아름다운 밤을 헛되이 보냈구나. 만약 이런 번거로운 일만 없었어도 오늘 밤 진작에 그 어린 원수와 마주 앉아 있었을 터인데. 휴! 참으로 하늘이 사람 뜻을 따르지 않는구나.”

그녀의 등 뒤에 서 있던 추월이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낭자님! 이제 그만 누우십시오! 괜한 잡념은 거두시고요!”

하향이 갑자기 몸을 돌려 물었다. “추월아, 지금이 어느 시각이냐?”

추월이 말했다. “달빛을 보아하니, 대략 술시와 해시가 교차할 무렵(오후 9시경)인 듯합니다.”

하향이 일시에 정신을 바짝 차리며 고운 팔을 연신 휘둘렀다. “해시 초입이야말로 진회하 화류계의 풍류가 가장 무르익는 참이지 않느냐. 춘화에게 일러 돛대의 녹색 비단 전등을 내리고, 배를 남쪽 기슭 나루터로 대라 해라.”

추월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은 다소 부적절하지 않겠습니까?”

하향이 고운 눈을 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무엇이 부적절하단 말이냐? 우리가 하는 짓이 본래 기생 노릇이거늘, 당연히 옛 사람을 보내고 새 사람을 맞이해야지. 채 씨 성을 가진 영감을 보냈으니, 어쩌면 양 씨 성을 가진 어린 원수가 찾아올지 어찌 알겠느냐!”

추월이 중얼거렸다. “벌써 이 시각입니다! 양가 도령이 정녕 풍류를 즐길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에 다른 배에 올랐을 터이고, 만약 낭자님을 보지 못해 발길을 돌렸다면 지금쯤 나루터에 남아 있을 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하향이 연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서 가서 춘화에게 분부나 해라. 우리는 본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오늘 하루 즐거우면 그만인 처지다. 내일의 해를 정녕 볼 수 있을지 누가 안단 말이냐!”

추월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낭자님께서 또 그런 불길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하향이 살짝 교태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아라! 저 어린 시어머니가 또 안색을 바꾸며 나를 가르치려 드는구나.”

추월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낭자님께서 그저 오늘 하루 즐겁게 놀자는 심정이시라면 상관없으나, 만약 그 양가 도령에게 정녕 미혹되신 거라면 그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낭자님께서는 예로부터 ‘다정함은 언제나 헛된 한만 남긴다(自古多情空餘恨)’는 시구도 읽지 못하셨습니까? 결국에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향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추월아! 네가 보기에 누가 그 어린 원수에게 미혹되었다는 게냐?”

추월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낭자님 당신이십니다!”

하향이 고운 고개를 연신 저으며 목소리를 뚝 떨어뜨렸다. “추월아! 내가 그이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이나, 결코 미혹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다 내막이 있단다.”

하향이 은밀히 속삭였다. “그 어린 원수는 살결이 희고 고우며, 입술이 얇고 치아가 하얗더구나. 게다가 눈은 둥그렇고 눈썹은 가늘며 열 손가락이 어찌나 가녀린지, 세상에 이토록 수려하고 고운 남자가 어찌 존재하겠느냐?”

추월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남자가 아니라면, 설마 여인이라도 간단 말입니까?”

하향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맞다! 내가 바로 그렇게 짐작했기에 정녕 다시 만나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다. 만약 여인이라면 그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 파헤쳐야 할 것이고, 만약 정녕 사내라면 그것은 참으로 나 하향이의 복일 터다. 이토록 준미한 남자는 천하를 통틀어 두 번 다시 없을 테니 말이다.”

추월은 조용히 선실을 물러 나와 선상으로 올라갔고, 춘화와 힘을 합쳐 ‘은화방’을 남쪽 기슭 나루터 향해 저어갔다.

배가 막 기슭에 닿자마자, 뭍에서 기생들의 손님을 전문적으로 받아주는 노파가 마중을 나오며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어이! 춘화야, 추월아, 너희 대체 어디를 갔었느냐?”

추월이 황급히 대답했다. “하향 낭자님께서 속이 답답하시다 하여, 갈대밭(芦花?) 쪽으로 배를 몰아 바람을 좀 쐬고 오는 길입니다!”

노파가 참으로 기이하다는 듯 말했다. “그 양 공자라는 양반이 오늘 밤 정녕 오겠다고 확답을 주었거늘, 너희가 돌연 자취를 감추어 버렸으니 원. 이제 잘되었구나! 굴러 들어온 재물 신선 같은 귀한 분을 너희가 억지로 밀어내 버린 셈이 아니더냐.”

춘화가 차가운 목소리로 응수했다. “돈 많은 나으리들이야 널리고 널렸습니다! 붉은 옷 입은 놈이 가면 푸른 옷 입은 놈이 오는 법인데, 할멈이 어찌 이리 안달이요!”

이 대화는 선실 문가에 서 있던 하향의 귀에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다. 그녀는 검지 손가락을 깨물며 마음속으로 밀려오는 일말의 쓸쓸하고 아련한 한탄을 지우지 못했다.

황대선이 ‘고승객잔’으로 돌아왔을 때, 객잔 안은 마침 한창 시끌벅적하고 분주한 참이었다. 그가 차가운 눈으로 힐끗 살피니 다행히 아무도 자신에게 주목하지 않는 듯싶었기에, 걸음을 재촉하여 ‘합(合)’ 자 대원(큰 안채)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막 행랑채 통로를 지나친 순간, 갑자기 황색 그림자 하나가 번쩍 스치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황대선이 고개를 들어보니, 길을 막아선 자는 다름 아닌 황해어였다. 즉시 헤헤 웃으며 말했다. “낭자, 무슨 일이오?”

황해어가 말했다. “당신 같은 대점술가와 이야기나 좀 나누고 싶어서 그렇소....” 비단 소매를 가볍게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정원 안의 ‘도라정(陶然亭)’에 가서 잠시 앉는 것이 어떻겠소?”

황대선이 말했다. “낭자는 남들이 쑥덕거리는 시비가 두렵지도 않소?”

황해어가 까르르 웃어댔다. “어젯밤에는 추오상이 본 낭자의 방에 들렀고, 오늘 낮에는 이목이 집중된 대중 앞에서도 내 그 주성한을 방으로 청해 잠시 앉지 않았소. 우리는 그저 탁 트인 정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뿐인데, 뉘라서 감히 수군거린단 말이오?”

황대선이 다소 음탕하고 난잡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사정이 다르오. 그 두 놈은 나름대로 정인군자(正人君子)라 할 수 있겠으나....”

황해어가 버들잎 같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소인배라도 간단 말이오?”

황대선이 말했다. “말이 어찌 그리 가오. 이 황 아무개는 평소 법도와 행실이 문란하여, 어젯밤만 해도 진회하 기생 두 명을 동시에 한 침상에 끼고 잔 위인이오. 낭자가 이 황 아무개와 과하게 가까이 지내면 필시 낭자의 명성에 해가 될 것이오.”

황해어가 말했다. “한 붓으로 두 개의 황(黃) 자를 쓰지 못하는 법이니, 우리는 엄연히 같은 일가(一家) 친척벌이오. 남들이 중상모략을 하려 한들 무슨 구실을 찾겠소. 어서 가십시다!”

황대선은 그녀와 엮이는 것을 지극히 원치 않았기에 온갖 핑계를 대며 밀어내려 했으나, 결국 상대의 집요한 악착같음을 꺾지 못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황해어의 뒤를 따라 정원 안의 ‘도라정’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정자 안으로 들어서서 석등(돌의자)에 마주 보고 앉았다. 황대선이 안색을 정돈하며 말했다. “낭자는 이 황 아무개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오?”

황해어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소문에 들으니, 당신은 입술과 혀로 밥을 먹는 자라 한 번 입을 열 때마다 반드시 은자가 오간다더군. 필시 이 본 낭자에게도 예외는 없겠지요?”

황대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그것이 바로 이 황대선의 철칙이오. 당신이 물으면 나는 대답할 터이나, 대답을 들으려면 마땅히 먼저 은자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오.”

황해어가 물었다. “만약 대답해내지 못한다면 어찌 되는 거요?”



황해어가 말했다.

“답은 하되 진실하지 않다면, 또 어찌하겠는가?”

황대선의 신색이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가, 이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억지를 부리는 것은 안 된다. 낭자가 증거를 들기만 한다면, 이 황 모는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겠다.”

황해어가 말했다.

“패배를 인정하면 그다음엔 어찌하겠는가?”

황해어의 눈빛이 반짝였다. 상대를 한참 동안 매섭게 노려보던 황대선이 갑자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 뜻대로 하겠다.”

황해어가 말했다.

“그것이 네가 한 말인가?”

황대선이 말했다.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

황해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양을 떨듯 웃으며 말했다.

“좋다, 우리 그렇게 약속한 것이다...”

말투를 한 번 멈추더니 이어 말했다.

“본 낭자가 한 가지 일만 물으려 하는데, 은자(銀子)를 얼마나 주어야 하는가?”

황대선이 말했다.

“문은(紋銀) 다섯 냥이다. 늘 받던 가격이다.”

황해어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황대선, 글자를 풀이하고 관상을 보는 데는 네가 전문가일지 몰라도 흥정하는 데는 너무 형편없구나. 문은 다섯 냥이라니, 네가 요구한 게 너무 적다.”

황대선이 양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천하에 자진해서 가격을 올리는 구매자가 있다니,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다.”

황해어가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마침 네가 그것을 보게 되었다.”

황대선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네가 은자를 쓸 데가 없어 안달이 났다면, 줄 수 있는 만큼 듬뿍 주려무나!”

황해어가 말했다.

“본 낭자는 네게 은자를 주지 않을 것이다.”

황대선이 말했다.

“설마 금자를 주겠다는 말인가?”

황해어가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목소리를 낮추어 이어 말했다.

“황대선! 본 낭자가 물으려는 문제는 답하기가 아주 어렵다. 네가 마음으로 탄복하고 입으로도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 본 낭자가 아주 커다란 보수를 주려는 것이다.”

황대선이 말했다.

“그렇다면 금은보화를 한꺼번에 다 가져오겠다는 뜻인가?”

황해어가 고개를 연신 저으며 말했다.

“금도 아니고 은도 아니다. 하지만 금은보화보다 훨씬 귀중한 것이다.”

황대선은 저도 모르게 멍해졌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지막이 물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황해어는 얼굴 가득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콕 짚고는 속삭였다.

“그것은 바로 본 낭자 자신이다. 너 황대선이 아무리 수많은 미색을 거쳐 왔다고 한들, 본 낭자처럼 아리따운 미인을 만져보고 품에 안아본 적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하는 말이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으니, 참으로 낯가죽이 두꺼웠다.

황대선은 저도 모르게 안색이 차갑게 굳어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는 농담이 지나치다. 낭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붓 한 자루로 두 개의 황(黃) 자를 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황해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황대선, 너는 허세 부리지 마라. 우리 두 사람 중에 진짜 황 씨 성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황대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는 당치 않은 소리 마라.”

황해어가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자. 네가 이 거래를 맡지 않겠다면 그것도 좋으나, 너는 즉시 금릉(金陵)을 멀리 떠나야 할 것이다.”

황대선이 말했다.

“황 모가 어찌 제 발로 찾아온 거래를 쫓아내겠는가? 다만, 이 황 모는 금은만을 원할 뿐, 다른 것은 원치 않는다.”

황해어가 냉소하며 말했다.

“네가 기녀를 불러 즐기는 것에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면, 너처럼 여색을 탐하는 자가 어찌 본 낭자가 품으로 뛰어드는 것을 단호히 거절하겠는가?”

황대선은 내심 깜짝 놀랐으나, 이내 마음을 모질게 먹고 말했다.

“좋다! 할 말이 있으면 물어보아라!”

황해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가, 문득 다시 웃으며 말했다.

“황대선! 만약 네 거짓말로 본 낭자를 속일 수 없다면, 너는 실토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너는 본 낭자 자신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본 낭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야 할 테니, 그것이야말로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황대선이 말했다.

“낭자가 마음 쓸 필요 없다.”

황해어가 말했다.

“그렇다면 본 낭자가 묻겠다...”

말투를 한 번 멈추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이어 말했다.

“네 성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네 얼굴의 인피면구 뒤에 숨겨진 본래의 얼굴이 무엇인지 본 낭자는 아주 똑똑히 알고 있다. 본 낭자는 그것을 구태여 묻고 싶지 않다. 다만 존경하는 그대가 금릉에 와서 강호의 관상쟁이로 위장한 데에는 어떤 기도가 있는지만 묻겠다.”

황대선은 깜짝 놀라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황해어는 차가운 번개 같은 두 줄기 눈빛으로 상대를 매섭게 노려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생각해 보아라. 만약 거짓말을 하다가 본 낭자에게 들통나면, 너는 앞으로 내 손아귀에서 놀아나야 한다. 역시 실토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황 모가 금릉에 온 후로 처음으로 지독한 상대를 만났다. 아무래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러지 않으면 낭자의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이다.”

황해어는 연신 간드러지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거면 되었다. 본 낭자의 고운 몸을 기꺼이 그대에게 바쳐 넋을 잃게 해줄 터이니, 그대가 하고 싶은 진실한 이야기는 침상 머리의 은밀한 대화로 남겨두는 게 좋겠다! 이경(二更)이 지난 후, 본 낭자가 침상을 깨끗이 치우고 그대를 공경히 기다리겠다.”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가려 했다.

황대선이 낮게 외쳤다.

“낭자, 잠시 멈추어라!”

황해어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물었다.

“아직 무슨 일이 더 있는가?”

황대선이 냉소하며 말했다.

“황 모는 비단 이불과 수놓은 침상에 익숙하지 않다. 이경이 지난 후, 수고스럽겠지만 낭자의 옥체를 ‘합(合)’ 자 대원의 황 모의 방으로 보내 달라. 딱딱한 구들과 거친 이불이니 낭자가 조금 양해해 달라!”

황해어가 말했다.

“그대가 본 낭자를 난처하게 만들 수는 없다. 이경의 북소리가 울리면 사람이 도착할 터이니, 절대 시간을 어기지 않겠다.”

말을 마치고 연꽃 같은 걸음걸이로 가뿐하게 정자를 나갔다.

황대선은 황해어의 뒷모습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응시하며 저도 모르게 미간을 깊이 찌푸렸고, 이내 음산하고 차가운 암소리를 터뜨렸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합’ 자호 대원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사방은 고요해졌다. 일경(初更)을 알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이어 이경의 딱따기와 북소리도 울려 퍼졌다.

이경이 막 울리기 시작했을 때, 황해어가 ‘합’ 자호 대원의 행랑채에 모습을 나타냈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밤번 점원은 몽롱한 와중에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가, 눈앞이 번쩍 뜨이며 잠이 싹 달아났다.

이 사람은 서쪽 별채 상방에 묵고 있는 그 아리따운 미인이 아닌가? 깊은 밤중에 여기에 무슨 일로 온 것일까?

점원은 급히 일어서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낭자, 무슨 일로...?”

황해어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가로챘다.

“강호의 관상쟁이 황대선이 어느 방에 묵고 있는가?”

점원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정(正) 자 세 번째 방이다.”

황해어가 말했다.

“고맙다!”

막 안으로 걸어가려는데, 점원이 문득 다시 물었다.

“낭자는 그 황대선을 무슨 일로 찾는가?”

황해어가 말했다.

“그에게 관상을 보러 간다!”

점원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시간에 그 황대선에게 관상을 보러 가다니, 낭자는 가지 않는 편이 좋겠다!”



황해어가 말했다.

“어째서 갈 수 없다는 것인가?”

점원은 신비롭게 웃더니, 이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 관상쟁이 녀석은 색귀(色鬼)라오. 이 시간에는 이미 낚시골목에서 은자 여섯 냥짜리 하룻밤 묵는 지저분한 창녀를 품에 안고 잠들었을 것이오.

낭자가 그를 찾아갔다가 도리어 구역질이 나지 않겠소?”

황해어는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이경의 약속이 있거늘, 황대선은 어찌하여 또 기녀를 불러 즐긴단 말인가? 이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비로소 점원에게 물었다.

“네가 잘못 안 것은 아니겠지?”

점원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틀림없소! 일경도 되기 전에 불러왔다오. 자색이 나쁘지 않고, 얼굴을 보니 아직 앳된 티가 나더군. 그 계집이 어떻게 생겼든 간에, ‘합’ 자호 대원에 와서 밤을 보내고 또 그 지저분한 관상쟁이의 여자가 되기를 자처했으니, 좋은 물건은 아닐 것이오!”

황해어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점원의 이마를 콕 짚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그만 달콤한 잠이나 자거라.”

그 점원은 과연 고개를 떨구고 탁자 위에 엎어졌다. 이 한 번의 잠으로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는 분명 깨어나지 못할 터였다.

황해어가 방문을 가볍게 밀고 들어가자, 눈앞의 광경에 그녀는 약간 멈칫했다.

황대선은 의복을 단정히 입은 채 대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고, 침상 위를 보니 과연 한 여인이 있었으나 침대 안쪽을 향해 옷을 입은 채 누워 있었다.

황해어가 침상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인가?”

황대선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가 방금 점원에게 이미 똑똑히 물어보았으면서, 어찌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묻는가?”

황해어가 말했다.

“너와 나는 깊은 밤에 약속이 있거늘, 어찌하여 한발 먼저 기녀를 불러 즐기는가?”

황대선이 말했다.

“기녀를 부른 것은 사실이나 즐기지는 않았다. 그저 남의 눈을 속이기 위함일 뿐이다.”

상대의 해명을 듣고서야 황해어는 의혹을 풀고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본 낭자의 고운 몸이 이미 제시간에 도착했으니, 존경하는 그대도 약속대로 금릉에 온 목적을 말해야 할 때가 된 듯싶구나.”

황대선이 손을 한 번 저으며 말했다.

“낭자는 먼저 침상에 오르라. 침상 머리의 은밀한 대화로 나누겠다.”

황해어는 약간 멍해졌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침상 머리의 은밀한 대화라는 말은 본 낭자가 한 말이니, 결코 약속을 어기지는 않겠다. 다만, 그대가 실토하기 전에는 본 낭자는 먼저 치마를 벗지 않을 것이다.”

말을 마치고, 발에 신은 누에고치 가죽신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침상에 올라 옷을 입은 채 누웠다.

황대선도 침상에 올라 그녀와 마주 보며 옆으로 누웠는데, 두 사람 사이에는 자 반 정도의 거리가 남았다.

황해어는 반짝이는 두 눈빛을 황대선의 얼굴에 던지며 나지막이 말했다.

“말해 보아라.”

황대선이 말했다.

“낭자는 이 황 모의 내력에 대해 이미 아주 똑똑히 파악했다고 말했는데, 참으로 믿기 어렵구나.”

황해어가 말했다.

“설마 본 낭자가 그것을 들추어내야 하겠는가?”

황대선이 말했다.

“이곳에는 다른 사람이 없으니, 말해도 상관없다.”

황해어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누가 이곳에 다른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 내 등 뒤에 바로 진회하(秦淮河)의 창녀가 있다.”

황대선이 말했다.

“그 창녀는 이 황 모가 혼혈(昏穴)을 점했으니, 닭이 울고 날이 새기 전에는 깨어나지 못한다.”

황해어가 아름다운 눈을 치켜뜨고 뺨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

“정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대담하게 입을 열겠다...”

말투를 약간 멈추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이어 말했다.

“내가 오직 ‘염(閻)’ 자 한 글자만 말해도, 그대의 마음속에는 짐작이 갈 것이다.”

황대선이 헤헤 웃더니 얼굴에 갑자기 모진 기색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모진 기색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고, 이내 놀란 기색이 뒤따라 일어났다.

황해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놀랄 필요 없다! 침대 안쪽의 창녀는 혼혈이 점해지지 않았기에, 본 낭자가 손을 써서 대신 처리해 주었다. 이제 그녀는 정말로 날이 새고 닭이 울 때까지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황대선은 몸을 활처럼 구부리더니 침상에서 탄지하듯 튀어 일어나며 낮게 외쳤다.

“낭자가 온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침상에 누워 있는 황해어의 고운 몸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즐거운 약속을 지키러 왔거늘, 또 어찌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묻는가?”

황대선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듯싶다.”

황해어가 몸을 뒤집어 일어나 앉으며 안색을 어둡게 하고 말했다.

“대선! 너는 본 낭자가 어찌하여 네 내력을 아주 똑똑히 파악했는지 생각지 못했구나. 그것은 자연히 네가 진회하에 매복시켜 둔 몇 송이 기녀들의 몸에서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너는 제 분수도 모르고 감히 창녀 하나를 침대 안쪽에 재워두고 본 낭자의 등 뒤에서 암암리에 손을 쓸 생각이었으니, 그것은 참으로 크게 잘못된 일이다. 본 낭자가 그녀의 머리 비녀를 한 번 보고는, 그녀가 현재 진회하의 ‘은화방(銀花舫)’에 있는 춘화(春花)라는 비녀인 것을 알아챘으니, 틀림없지 않겠는가?”

순식간에 황대선의 안색이 몇 번이나 변했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비로소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말했다.

“낭자의 눈빛이 횃불 같으니, 이 황 모는 마음으로 탄복하고 입으로도 인정하겠다. 묻겠는데, 낭자는 어찌하여 이 황 모가 금릉에 온 의도를 국문하려 하는가?”

황해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대의 이번 행차의 목적이 본 낭자와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지 보려는 것이다.”

황대선이 말했다.

“만약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황해어가 말했다.

“남몰래 방비를 더할 것이다.”

황대선이 또 물었다.

“만약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면 어찌하겠는가?”

황해어가 말했다.

“정세에 따라, 그대와 연수(聯手)할 것이다. 그대가 비록 사문외도(邪門歪道)에 몸담고 있으나 과인한 면모가 있고, 게다가 본 낭자 역시 사파 인물들과 교제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황대선이 말했다.

“이 황 모가 현재 금릉에 머물고 있는 각색 인물들에 대해 감히 속속들이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대략은 알고 있다. 유독 낭자에 대해서는 비밀이 너무 깊으니, 조금만 밝혀줄 수 있겠는가?”

황해어가 말했다.

“본 낭자는 너와 오십보백보로 별반 다르지 않다. 네가 여자들에게 공을 들인다면, 본 낭자는 남자들에게 공을 들이는 편이다.”

황대선의 눈빛이 반짝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그대는...”

황해어가 급히 말을 가로챘다.

“설령 정말로 네가 알아맞혔다 해도, 경솔하게 입 밖에 내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이 황 모와 똑같은 수법으로 금릉에 섞여 든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게다가 성씨까지 같은 종친이니, 참으로 기묘하고도 기묘한 일이다...”

말투를 한 번 멈추더니 이어 말했다.

“낭자가 이곳에 온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황해어가 냉소하며 말했다.

“흥! 네가 먼저 내게 묻는구나. 역시 네가 금릉에 온 의도부터 먼저 말해 보아라.”

황대선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낭자가 방금 이 황 모를 사파 인물이라 지칭했는데, 이 황 모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사파 인물들은 대부분 야심이 있어 결코 남의 밑에 엎드려 지내려 하지 않으니, 이 황 모가 금릉에 온 목적은 틈을 타서 난을 일으켜 대업을 펴기 위함이다.”

황해어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조가 예사롭지 않구나...”

말투를 한 번 멈추더니 이어 말했다.

“하지만 본 낭자가 이곳에 온 목적과는 부딪치는 면이 없구나.”

황대선이 말했다.

“이 황 모가 마음을 놓게 되었다.”

황해어가 말했다.

“네가 진실을 말했으니, 본 낭자도 약속을 지켜 몸을 바쳐야 하겠구나...”

황대선이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감당할 수 없다! 감당할 수 없다...”

황해어가 두 눈을 부릅뜨고 매섭게 외쳤다.

“어찌하여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인가?”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첫째로는 감히 낭자에게 불경을 저지를 수 없고, 둘째로는 가르침을 받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황해어가 냉소하며 말했다.

“네가 감히 그러지 못할 줄 알았다!”

말을 마치고, 몸을 날려 침상을 벗어나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문 앞에 이르러 황해어가 다시 몸을 돌려 나지막이 말했다.

“대선! 만약 정세가 요구한다면, 본 낭자와 연수할 용의가 있는가?”

황대선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황 모가 바라던 바다.”

황해어가 말했다.

“그럼 그렇게 약속한 것이다.”

방문을 밀고 걸어 나갔다.

황대선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그제야 손을 써서 침상 위에 있는 춘화의 혼혈을 풀어주었다.

춘화가 몸을 뒤집어 일어나 앉으며 놀라서 말했다.

“나으리! 그 여자의 손속이 어찌나 빠르던지...”

황대선이 손을 한 번 들어 그녀의 말을 막더니, 이내 커다란 이불을 끌어당겨 두 사람의 머리까지 푹 덮었다.




춘화가 그의 품으로 파고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인가?”

황대선이 말했다.

“춘화! 날이 새고 방(舫)으로 돌아가거든, 하향(荷香)과 거짓으로 말다툼을 벌이고는 이내 강에 뛰어들어 자살하거라...”

춘화가 깜짝 놀라 말했다.

“나으리께서 이 몸더러 죽으라 하시는가?”

황대선이 말했다.

“소춘화! 내가 어찌 너를 차마 죽게 하겠는가? 네 수성(水性)이 아주 훌륭하니, 사람이 없는 곳을 골라 뭍으로 올라오면 되지 않겠는가?”

총애를 받은 춘화는 매우 득의양양해져서 고운 몸을 더욱 바짝 밀착시키며 느린 목소리로 물었다.

“음, 뭍에 올라온 다음에는 어찌해야 하는가?”

황대선이 말했다.

“낙하(洛河)에 한 번 다녀오너라.”

춘화가 약간 멍해져서 말했다.

“설마 그 ‘시랑호표(豺狼虎豹)’ 네 형제를 찾으러 가는 것인가?”

황대선이 대답했다.

“음! 그들에게 화속히 금릉으로 오라고 일러라.”

춘화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작년에 그곳에 가서 나흘 동안 객으로 머물던 정경을 생각하면 참으로 조금 두렵다.”

황대선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무엇이 두렵다는 말인가? 내가 네게 전수해 준 그 내공이 있거늘, 시랑호표는 고사하고 사자나 코끼리, 곰인들 너를 어찌하겠는가?”

춘화가 간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다 나으리께서 내려주신 덕분이다...”

말투를 한 번 멈추더니 이어 말했다.

“참! 나으리께서는 방금 그 황 씨 성을 가진 낭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는가?”

황대선이 말했다.

“그자는 골수까지 빨아먹고 뼈까지 삼켜버릴 요염한 여우년이다. 나는 감히 그자를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춘화가 요염하게 연신 웃으며 말했다.

“그것 잘되었다. 이 몸이 나으리를 시봉하겠다!”

황대선이 말했다.

“그만두어라. 내게 한 바탕 시달리고 나면 너는 적어도 사흘은 쉬어야 할 터인데, 너는 내일 또 길을 떠나야 하지 않느냐!”

춘화는 필시 그 맛을 본 적이 있는지, 그 말을 듣고는 묵묵히 고운 몸을 더는 뒤틀지 않고 얌전해졌다. 한참이 지난 후, 춘화가 문득 다시 말했다.

“나으리! 한 가지 아뢸 일이 있다.”

황대선이 말했다.

“무슨 일인가?”

춘화가 말했다.

“어제 저녁에 ‘은화방’에 한 소년 손님이 찾아왔다. 용모가 영준하고 거동이 사문하여 부유한 집안의 자제라 부르던데, 이 몸이 냉정하게 관찰한 바로는 도리어 무림인 같았다.”

황대선이 예사롭게 대답했다.

“음! 그런데 어찌 되었는가?”

춘화가 말했다.

“하향이 그에게 완전히 홀린 듯싶다. 오늘 밤 채 ‘칠성(七星)’을 접대할 때도 연신 혼이 나간 듯 굴었다.”

황대선이 엇 하고 소리를 내며 물었다.

“그 소년의 성명을 아는가?”

춘화가 말했다.

“본인 말로는 이름이 양귀린(楊貴麟)이라 하던데, 이 몸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황대선이 말했다.

“음! 알았다. 자거라!”

춘화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만 자야 하겠다. 내일 밤에는 낙하에 도착해야 하는데, 그 네 녀석은 이 몸이 가는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밤을 도와 길을 재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몸이 네 가문을 연달아 꺾으려면 참으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겠다!”

곁에 누운 황대선은 더는 대꾸하지 않았고, 도리어 정말로 잠든 듯싶었다.

물시계가 울리고 시간이 흘러 천색이 다시 밝아왔다.

푸른 하늘은 씻은 듯 맑고 만리에 구름 한 점 없으니, 참으로 일찍 일어나 사방을 거닐기에 좋은 날씨였다.

그러나 서쪽 별채 상방은 한없이 고요할 뿐, 단 한 사람도 걸어 나오는 자가 없었다. 다만, 방 안의 사람들이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추오상 같은 이는 진작에 일어나 세수를 마친 상태였다.

하용미와 맹채옥 두 시녀는 연이틀 밤을 추오상의 방에 머물며, 의자에 기대어 어슴푸레 잠을 청하거나 번갈아 망을 보면서 주군에 대한 충성심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이때 두 시녀는 추오상이 창가에서 뒷짐을 진 채 불쾌한 신색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암암리에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이어 하용미가 추오상의 곁으로 다가가 공손히 말했다.

“부궁주(副宮主), 오늘 날씨가 매우 좋으니 성 밖 자금산(紫金山)으로 산책이라도 다녀오시는 게 어떠하겠는가? 부궁주께서 이틀 동안 방문을 나서지 않으셨으니, 이리하시면 몸이 답답해질까 염려된다!”

그러나 추오상은 동문서답하듯 말했다.

“하희(夏姬)가 오늘 밤에는 궁으로 돌아올 수 있겠지?”

이 한마디로 두 시녀는 주군의 심사가 얼마나 무거운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눈빛을 교환한 후 하용미가 대답했다.

“길을 떠날 때 부궁주께서 하 언니에게 화속히 돌아오라 당부하셨으니, 그녀는 필시 전력을 다해 길을 재촉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밤에는 도착할 것이 틀림없다.”

추오상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빠르다면 날이 저물 무렵에 단(單) 궁주님의 회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희의 노정이 어떠한지 몰라 참으로 이 부궁주의 마음이 초조하고 불타는 듯하다.”

두 시녀가 막 어찌 대꾸해야 할지 모를 때, 방문 위로 ‘똑똑’ 하고 두 번의 노크 소리가 전해졌다.

세 사람이 묵연히 대답하지 않자, ‘똑똑’ 하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울렸다.

하용미가 수신호를 보내자 맹채옥이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녀가 걸어가 방문을 열고 몸으로 문 구멍을 막아서니, 문앞에 머리를 땋은 시녀 하나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시녀는 맹채옥이 문틈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고는 급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묻겠는데 언니! 여기에 혹시 추(秋) 공자라는 분이 묵고 계시는가?”

맹채옥이 말했다.

“그렇다! 너는 어찌하여 묻는가?”

그 시녀가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낭자께서 전정으로 배방(拜訪)하러 오셨다.”

맹채옥이 시녀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시선을 던졌다가, 긴 회랑의 끝자락에 똑같은 차림새를 한 세 명의 시녀와 화려한 성장을 한 아름답고 염려한 홍삼(紅衫) 여인 한 명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맹채옥은 약간 멍해졌다가 이내 다시 물었다.

“너희 집 낭자의 방명(芳名)을 어찌 부르는가?”

시녀가 대답했다.

“우리 낭자께서는 성은 양 씨이고 이름은 귀령(貴玲)이라 하는데, 부인께서는 늘 ‘금령이(金玲兒)’라 부르곤 하신다...”

맹채옥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단 소매를 한 번 휘저으며 말했다.

“잠시 기다려라.”

그녀가 몸을 돌려 방문을 닫자, 하용미가 참지 못하고 다급히 물었다.

“어떤 사람인가?”

맹채옥이 말했다.

“양계령이라는 낭자가 부궁주를 전정으로 뵙고자 왔다고 한다.”

추오상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양계령?...”

고개를 저으며 이어 말했다.

“단 한 번도 그 낭자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구나!”

하용미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거절해라. 부궁주께서 가벼운 병환으로 잠시 객을 맞지 않는다 해라...”

추오상이 말을 가로챘다.

“아니다! 그 양 낭자를 안으로 모셔라!”

하용미는 약간 의외라는 듯 말했다.

“부궁주께 아뢰는데, 그 양 씨 성을 가진 낭자는 우리와 평소 일면식도 없는 자다...”

추오상은 신색이 번잡한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말을 많이 할 필요 없다, 가거라!”

두 시녀는 감히 어기지 못하고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좌우로 갈라져 서서, 일제히 공손히 외쳤다.

“추 부궁주께서 귀령 낭자를 정중히 맞이한다.”

문밖에 서 있던 시녀가 다시 한번 말을 전하자, 그 홍삼 미인이 다른 세 명의 청삼(?衫) 시녀들에게 옹위된 채 문앞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이름을 양계령이라 밝힌 홍삼 미인은 미색이 지극히 염려하여 별연히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었고, 자태는 더욱 낭롱하고 영롱했다. 그러나 그 흑백이 분명한 크고 반짝이는 눈망울 속에서 투사되는 사람을 위압하는 차가운 눈빛은, 도리어 사람들이 감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양계령은 문안으로 들어서며 수행해 온 네 명의 청의 시녀들에게 손을 한 번 젓고 말했다.

“밖에서 대기해라!”

말소리가 채 떨어지기도 전에 몸이 이미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백옥 같은 손목을 가볍게 휘두르니 방문이 쾅 하고 닫혔다.

추오상은 상대를 가만히 한 번 타량하고는 이내 두 주먹을 모아 쥐며 말했다.

“이 사람은 추오상라 한다...”



양계령은 차가운 번개 같은 두 줄기 눈빛을 그에게 쓱 던지며 말을 가로챘다.

“네가 바로 추오상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정확히 이 사람이다.”

양계령이 가볍게 웃었다.

“풍채가 영준하고 체격이 위풍당당하니, 제법 사내 대장부다운 기개가 있구나. 다만...”

말투를 뚝 꺾으며 말했다.

“본 낭자가 보기에는 네가 어찌 황금 일천 냥의 가치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두 시녀는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일제히 꾸짖었다.

“양 낭자! 그것이 무슨 말인가?”

양계령은 몸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본 낭자는 너희 주군과 말하고 있다. 검희(劍姬)의 신분은 시첩과 다름없거늘, 너희가 말참견할 자리가 없으니 한쪽으로 물러서라.”

하용미와 맹채옥이 어찌 이토록 오만방자한 말을 참아낼 수 있겠는가? 저도 모르게 버들가지 같은 눈썹을 거꾸로 세우고 분노를 얼굴에 띤 채, 각자 손을 검자루에 가져갔다...

추오상이 급히 그들에게 엄한 눈빛을 보낸 후,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양 낭자는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는가? 이 사람은 그 상세한 내막을 듣고 싶다.”

양계령이 말했다.

“네가 직접 보아라!”

백옥 같은 손목을 휙 휘두르자, 한 권의 황표지(黃표紙)가 추오상의 발편에 떨어졌다.

추오상이 그것을 집어 들고 펼쳐 보니, 황표지 위에는 녹두만 한 글자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금릉의 “금도(金刀)” 두동돈(杜桐屯)이 무림 동도들에게 삼가 고한다. 무림의 거물 추오상이 사람을 위압하는 권세를 지닌 “사절검(四?劍)”을 앞세워 무림을 잔해하고, 무림을 패칭하려는 야심을 채우려 한다.

현재 그는 금릉성 고루(鼓?) 근처의 “고승객잔(高升客棧)” 서쪽 별채 상방에 머물고 있다. 이 두 모는 금릉성 안의 무림 세가로서, 자연히 좌시할 수 없다. 다만 이 두 모가 나이가 많고 몸이 쇠약한 데다, 진작에 문을 닫고 은거하여 더는 강호를 행도하지 않으니 힘이 미치지 못한다. 무릇 우리 무림 동도들 중에 저 무림의 거물 추오상을 제재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생사를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황금 천 냥을 상금으로 받칠 것이다. 자금을 비축하고 기다릴 터이니 절대 식언하지 않는다.’

추오상은 읽기를 마치고 저도 모르게 내심 깜짝 놀랐다. 두동돈의 이 수는 매우 독랄했다. 그 황금 일천 냥은 어쩌면 유혹거리가 되기에 부족할지 몰라도, 무림에는 스스로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한다고 여기는 무리가 적지 않으니, 필시 분분히 문을 두드려올 터였다. 그리되면 나는 사면초가에 빠져 영원히 평안할 날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추오상은 내심 놀랐으나 표정에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낭자가 온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양계령이 말했다.

“자연히 황금 일천 냥의 몸값을 지닌 자가 어떤 인물인지 보고 싶었다.”

추오상이 말했다.

“낭자는 이제 보았거늘, 아직도 더 도모할 게 있는가?”

양계령이 말했다.

“네 “사절검”을 한 번 받아보아, 그 기세가 어느 정도까지 사람을 위압하는지 보고 싶다.”

추오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는 아무래도 현재로서는 소원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양계령이 아름다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본 낭자는 모태에서 나온 이래로 줄곧 소원을 성취해 왔고, 내 뜻에 어긋나는 일을 만나본 적이 없다. 오늘 역시 자연히 예외는 아닐 것이다.”

추오상이 말했다.

“낭자가 정녕 이 사람의 사절검(四絶劍)을 견식하고 싶다면, 사십칠 일 후에 다시 오너라.”

양계령이 말했다.

“무슨 까닭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낭자는 귀가 밝고 눈이 예리하니, 금도(金刀) 두 씨의 현상금을 볼 수 있었다면 설마 이 사람의 저 “사절검”에 관한 일은 듣지 못했단 말인가?”

양계령이 말했다.

“본 낭자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추오상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양 낭자는 먼저 나가서 알아보는 편이 좋겠다.”

양계령이 말했다.

“어디로 가서 알아본단 말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금릉성 안의 각처를 거닐어 보거나, 아니면 바로 이 객잔 안에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계령의 신색이 차갑게 굳어지며 싸늘하게 꾸짖었다.

“본 낭자는 참을성이 없다!”

추오상 역시 가라앉은 목소리로 호통쳤다.

“그럼 어찌해야 하겠는가?”

그의 말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문득 등 뒤에 있던 두 검희가 일제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여기 있다.”

동시에 두 자루의 장검이 한 쌍의 비단 띠처럼 떨리며, 좌우 양측으로 갈라져 양계령을 향해 휘감아 들어갔다.

양계령(楊桂玲)은 고운 몸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 한 쌍의 장검이 들이닥치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야 두 손목을 가볍게 털었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하용미와 맹채옥의 신형이 각각 다섯 자씩 뒤로 밀려났다.

반면 저 양계령은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자세히 보니 그녀는 양손에 각각 금빛이 번쩍이는 금령(金玲)을 쥐고 있었는데, 크기가 사람의 주먹만 했다. 그 청의 시녀가 어머니가 그녀를 ‘소금령’이라 부른다고 말한 이유를 알 만했다. 원래 이 한 쌍의 금령이 바로 그녀의 병기였던 것이다. 단 한 번의 손속으로 두 검희를 격퇴한 공력으로 보아, 이 자그마한 금령은 양계령의 손에서 매우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양계령은 두 검희를 물리친 후, 즉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본 낭자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엄격히 준수하여 이름 없는 피라미들과는 초식을 겨루지 않는다. 그리하여 너희 두 년은 운 좋게 죽지 않은 것이다. 만약 죽기를 자처한다면, 본 낭자가 문밖에 있는 여종들을 불러들여 너희의 소원을 성취해 주겠다.”

두 시녀는 이미 할 말을 잃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추오상 역시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억지로 진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양 낭자의 공력이 비범하고 어조와 신태가 더욱이 예고담대(藝高膽大)한 절정 고수 같구나. 다만...”

말투를 한 번 가라앉히며 이어 말했다.

“이 사람이 한 가지만 묻겠는데, 낭자는 설마 저 황금 일천 냥의 현상금을 탐내는 것인가?”

양계령이 냉소하며 말했다.

“흥, 본 낭자는 가재가 만관이거늘, 어찌 이 황금 일천 냥에 연연하겠는가?”

추오상은 저도 모르게 신색이 약간 멍해져서 말했다.

“낭자가 상금을 도모하는 게 아니라면, 여기에 와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양계령이 말했다.

“현재 무림에서 황금 일천 냥의 몸값을 지닌 자가 많지 않으니, 본 낭자가 와서 한 번 배알하려 한 것이다. 또한...”

말투를 한 번 멈추더니 손에 쥔 한 쌍의 금령을 흔들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본 낭자 역시 지금의 무림에 이 “탈명금령(奪命金鈴)”보다 더 기세가 놀라운 무기가 있는지 보고 싶다.”

추오상이 말했다.

“이 사람의 저 “사절검”이 비록 검국의 존엄이라 과언할 수는 없으나, 결코 범상한 물건은 아니니, 도리어 낭자의 저 “탈명금령”과 한 번 겨루어보고 싶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계령이 두 눈을 부릅뜨고 매섭게 호통쳤다.

“그렇다면 어서 검을 뽑아라.”

추오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낭자는 모르는 사실이 있다. 이 사람은 타인과 칠칠사십구 일 동안 검을 봉하기로 약조했고, 오늘이 사흘째 되는 날이니 결코 신의를 저버리고 약속을 깨뜨려 검을 움직일 수 없다.”

양계령이 가볍게 오라 소리를 내며 말했다.

“어찌하여 그런 약조를 했는가?”

추오상이 말했다.

“구태여 물을 필요 없다.”

양계령이 또 물었다.

“누구와 약조했는가?”

추오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사람 역시 봉고하고 싶지 않으나, 낭자가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양계령이 말했다.

“설마 누군가 너를 죽이려 해도, 너는 검을 뽑아 자신의 생명을 지키지 않겠다는 말인가?”

추오상이 말했다.

“무림인은 명예를 중히 여기고 목숨을 가벼이 여기거늘, 이 사람이 어찌 경솔하게 약속을 깨뜨리겠는가?”

양계령이 웃으며 말했다.

“말은 참으로 듣기 좋구나. 하지만 본 낭자가 한 번 시험해 보겠다.”

추오상은 쉽게 분노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양계령의 저 번개처럼 차갑고 위압적인 두 눈빛을 통해 그녀의 내공이 지극히 높음을 이미 알아보았기에, 만약 검을 뽑지 않고 맨손으로만 상대한다면 아무래도 버텨내기 어려울 터였다. 그러나 상대의 신색과 어조는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생각을 풍차처럼 부지런히 굴리던 그는, 몸을 돌려 옷장을 열고는 이미 붉은 비단 수건으로 단단히 묶어둔 “사절검”을 꺼냈다.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낭자는 보아라, 이 검은 이미 봉해졌거늘 어찌하여 이토록 다그치며 사람을 핍박하는가?”

추오상의 얼굴을 향한 양계령의 시선은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고, 말투는 냉막하기 그지없었다.

“본 낭자는 네가 검을 봉했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네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지라도 약속을 깨고 검을 움직이지 않겠다는 네 말이 과연 허풍인지 아닌지만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여기에 이르러 말투를 뚝 멈추더니 백옥 같은 손목을 갑자기 치켜들었고, 그녀의 손에 있던 금령 하나가 돌연 손을 떠나 날아갔다.

두 검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검을 보살피며 앞으로 뛰어들려 했다. 이때 하용미가 눈이 밝고 손이 빨라 급히 신형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곁에 있던 맹채옥을 한 번 맹렬하게 잡아끌었다.

원래 손을 떠나 날아간 그 금령은 추오상을 타격한 것이 아니라, 저 “사절검”의 검자루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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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용가가 | 작성시간 26.06.12 수고하셨습니다^^
  • 작성자조상 | 작성시간 26.06.12 감사합니다
  • 작성자왕타 | 작성시간 26.06.13 고맙습니다
  • 작성자사니조아 | 작성시간 26.06.16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모백 | 작성시간 26.06.17 재활훈련 잘 하시기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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