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양권(見樣券)은 대량으로 제작되는 홍보용 견양권과
소량으로 제작되는 연혁(沿革)용,실험용, 교정용(작업용), 기타 용도? 등의 견양권으로 나눌 수 있겠지요.
여러분이 수집 대상으로 하는 것은 대량 제작 배포한 홍보용 이겠지요.
사실 통용권은 액면과 같은 가치를 보유하고 있으나,
견양권은 그액면가치를 소멸시키기 위해, 초기에는 (1)견본(見本)이라는 한자(漢字)를 가쇄(加刷)하고 여러군데에 천공(穿孔,구멍 뚫음)까지한 경우, (2)천공 없이 눈에띄는 색갈로 견본(見本)이란 한자(漢字)를 가쇄한 경우,또는 외국처럼 (3)스페시먼(SPECIMEN) 이라는 영자(英字)를 가쇄한 경우, 또는 (4)견양권(見樣券)의 한자(漢字), 또는(5)견양(見樣)이라는 한자(漢字) 또는(6)한글를 가쇄하여 통용권에 손상을 입힌 것, 또는 확실하게 구별시켜 화폐의 역할을 못하게 만든 것 등이며,
통용권의 참조품으로 태어난 것에 불과하므로 통용권 잔존량이 아주 적어 수집이 거의 불가능한 화폐에 한해서 할 수 없이 값싸고 흔한 견양권 수집을 하는 것이 전통적인 화폐수집의 정석 이었으나,
지금은 손상이 안된 멀쩡한 미사용 통용권이 수집대상으로 널려 있는데도 아주 고액을 지불하고 손상?(가쇄된 부분은 화폐가 손상된 것으로 판단, 즉 미사용화폐에 낙서하거나 도장을 찍는 것과 동일한 개념)된 통용력이 전무하였던 참조용으로 제조된 견양권을 수집한다는 것은 비상식적(북러버 개인적인 생각)인 것으로 생각 됨.
판매 가격이 통용권과 큰 차이가 없다면 몰라도!
이것(견양 수집)도 한 때의 유행인지!
이상(以上)은 요즘 대세에 벗어난, 옛책 좋아하는 사람(Booklover)의 개인적인 짧은 소견이므로 참고 하시지 마세요.
사실 현재의 흐름을 잘 읽는 것이 훨씬 더 중요 하니까요.
1..견양권은 화폐개혁 또는 화폐도안등이 변경된 신종 은행권이 최초 발행 될때 대량(1000장 또는 그 이상?)으로 제작되어 외국의 중앙은행 및 유명은행(?) 국내 은행(?) 등에 거의 전량 가까이 홍보용으로 배포 될 것으로 추측됩니다. 신규 발행되는 외국화폐도 몇 세트씩 한국은행으로 보내오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약 30년전에 이승만 초상의 6.25동란 중 발행(1952년 10월)의 기호(000)의 지폐가 100장 다발(준미사용내지 미사용 상태 1장당 700원? 정도로 기억)로 중간 상인이 헐값으로 팔려고 시도하였으나, 사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수십년 년에는 수십가들은 아주귀한 구한국지폐 을백 황색지백원 등의 희소도 정도의 것만 미사용이아닌 사용한 깨끗한 상태를 수집하였으며, 세종오백원이하희소도정도의 것은 미사용만이 수집 대상이 되었슴. (예를들면 그당시 세종오백 이상의) 귀한지폐견양권은 통용권지폐거래가격의 절반이하 가격 정도 였으며, 아주 흔한지폐 견양권은 통용권 미사용 보다 비싸게 거래 되었음.
아주굉장히 희소 하게나온 시작(試作)품 지폐[앞뒤 따로 단면(單面)으로 인쇄되고 지폐 가로가 더 길게하여 색도표시가 있고 발행은행권과는 다른색갈의 동일 도안 은행권, 즉,색상 선택 결재용으로 판단됨.]는 고가(약 30년전 당시 경매가 오만원? 정도로 기억)로 경매에서 거래된 적 있슴.
국내인쇄견양은행권은 가가가000000의 기번호가 원칙
[통용권으로 발행후 필요시 은행이나 일반인에 의한 견양 가쇄는 아주쉬운 일이며, 요즘과 같이 견양권이 고가에 거래 될때는 통용권의 악의적인 견양권 가쇄변경도 아주 간단하(쉽)게 이루어 질 수 있슴.제조당시 견양권으로 만들어진 것 이외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견양권으로 볼 수없으며, 2,3차화폐개혁시 미국, 영국 제조 견양은행권도 한국은행에 의한 통용은행권의 단순한 가쇄임.]
이며, 1962년 화폐개혁시 영국 토마스 데라루에서 수입한것은 외국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제작처에 미처 별도의 000000기번호의 견양권 주문을 하지 못하여, 일반통용권을 권양권으로 전환 표시(비정상적으로)하여 홍보용으로 배포하였습니다.
2..북한의 경우는 약 20년전부터 외화획득을 위하여 요즘만든 종이를 이용하여 옛 인쇄원판으로 인쇄판을 새로만들어 화폐개혁전( 몇차례 화폐체계를 바꿨음.북한 현행권 아님)의 화폐들을 대량으로 새로만들어 수출 하였으며,현재 시중에 거래되고 있는 미사용 구권은 거의 100% 새로 만든 재현은행권(신형종이 사용)임.
현행권들도 견양은행권을 아주 대량으로 만들어 수출하고 있어 화폐로써 통용력도 전혀 없고, 수집가치도 아마 통용권의 절반가치이하(본인 판단은 그 가치를 인쇄비보다 약간 높을것으로 평하절하 할 정도)일 것임.
**옛날 화폐수집 이야기
3..수십년전에는 미사용은행권 만이 수집대상이 되었다면, 굉장한 수량의 깨끗한 상태의 사용제 구은행권들의 행방이 궁금하겠지요?
제가 수집하던 40여년 전에는 우리나라 진정한 수집가는 10명 정도 이었으며, 주로 미군 등 외국인(외국은 화폐수집이 우표수집과 같이 일반화되었슴)이 수집하였고, 미국 등 외국으로 대량으로 수출(소형차량으로 한차 가득, 요즘말로 차떼기로) 되었음.
1967년초에 서울에 올라와 보니 서울 인사동 고미술 골목에 유일하게 아취사
{후에 고금사로 개명. 친절하고 겸손하신 주인 젊은(당시) 김옥배[현재 몇 안되는 최고(最古:가장오래되고.最高:제일 높은)수준의 화폐전문가의 한분]사장님과 그동생 김충남님}
가 전문화폐상으로 있었슴.
1967년 이전에도 거의 유일한 외화 획득원인 가발원료(여자들의 긴머리카락 묶음) 수집상들(전국 방방곡곡을 돌아 다니는 떠돌이상인) 이 고은(古銀)을 수집하면서 일본 일원 은화 등을 수집[양은그릇파는사람 등,일부 엿장수들도 고은등 은화수집, 양은(洋銀,알루미늄)그릇을 고은화 등으로 물물교환]하여 최종적으로 일본으로 수출하였슴.
1970년초 강남(말죽거리) 개발붐*[ ]
*[강남 땅값 폭등, 개발 이익 환수 안함, 수많은 벼락부자 탄생.1970년대초 경제개발 수출붐,인플레와 더불어 땅 투기바람 시작됨.은행에서 돈을 빌려 땅을 사면 돈 벌던 시절 시작. 기업인이 아닌 개인은 은행 대출이 하늘의 별따기 시대 시작.1973년부터 각 기업 사원 대량 채용]
과 더불어, 일본은화의 폭등(일본에서 화폐수집 투기 바람)으로 한국에서도 화폐수집의 대중화의 여명기(黎明期,초창기)가 시작되어 미사용 지폐 극미품이상의 조선왕조 및 구한국주화와 상평통보 단자전 모전 일부 귀한엽전, 고려전, 열쇠패,별전 등이 수집대상이 됨. 화동양행이 중앙우체국 근처(인사동,정식품 근처,장충동근처,현위치: 예술의 전당 앞))에 개업하고, 금화사가 인사동, 한강사가 노량진 한강변에, 전문화폐상이 창업 되었슴.
4..후진국 지폐 고액권 수집시 참고사항
외환 사정이 나빴던 1970년 경은 외국 지폐수집이 어려워 지금은 폭파 철거되어 없어진 남산 한남동 외국인 아파트에 살던 외국인수집가를 통한 외국의 고지폐 또는 현행지폐 수집도 한 방법이었습니다. 당시에 후진국 고액권을 통용시가(당시 환율 비교가)인 고액에 수집한 결과 10년 내지 20년쯤 후에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휴지가격(시중에서 몇백원에 판매되는 화폐)으로 변해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요즈음 자유로운 외국여행을 통한 수집, 동호회원들이 협력하여 외국화폐수집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네요.
***꼬리말 답변***
세종오백 견양권의 현시가(現時價) 모름: 현재 견양권 수집 안함.(북러버)
30년전 거래가(경매) 견양권은 통용권의 절반가격 이하?(거의 절반가격 정도?)로 기억함.[통용권과 견양권 共히(모두) 미사용일때]
소량으로 제작되는 연혁(沿革)용,실험용, 교정용(작업용), 기타 용도? 등의 견양권으로 나눌 수 있겠지요.
여러분이 수집 대상으로 하는 것은 대량 제작 배포한 홍보용 이겠지요.
사실 통용권은 액면과 같은 가치를 보유하고 있으나,
견양권은 그액면가치를 소멸시키기 위해, 초기에는 (1)견본(見本)이라는 한자(漢字)를 가쇄(加刷)하고 여러군데에 천공(穿孔,구멍 뚫음)까지한 경우, (2)천공 없이 눈에띄는 색갈로 견본(見本)이란 한자(漢字)를 가쇄한 경우,또는 외국처럼 (3)스페시먼(SPECIMEN) 이라는 영자(英字)를 가쇄한 경우, 또는 (4)견양권(見樣券)의 한자(漢字), 또는(5)견양(見樣)이라는 한자(漢字) 또는(6)한글를 가쇄하여 통용권에 손상을 입힌 것, 또는 확실하게 구별시켜 화폐의 역할을 못하게 만든 것 등이며,
통용권의 참조품으로 태어난 것에 불과하므로 통용권 잔존량이 아주 적어 수집이 거의 불가능한 화폐에 한해서 할 수 없이 값싸고 흔한 견양권 수집을 하는 것이 전통적인 화폐수집의 정석 이었으나,
지금은 손상이 안된 멀쩡한 미사용 통용권이 수집대상으로 널려 있는데도 아주 고액을 지불하고 손상?(가쇄된 부분은 화폐가 손상된 것으로 판단, 즉 미사용화폐에 낙서하거나 도장을 찍는 것과 동일한 개념)된 통용력이 전무하였던 참조용으로 제조된 견양권을 수집한다는 것은 비상식적(북러버 개인적인 생각)인 것으로 생각 됨.
판매 가격이 통용권과 큰 차이가 없다면 몰라도!
이것(견양 수집)도 한 때의 유행인지!
이상(以上)은 요즘 대세에 벗어난, 옛책 좋아하는 사람(Booklover)의 개인적인 짧은 소견이므로 참고 하시지 마세요.
사실 현재의 흐름을 잘 읽는 것이 훨씬 더 중요 하니까요.
1..견양권은 화폐개혁 또는 화폐도안등이 변경된 신종 은행권이 최초 발행 될때 대량(1000장 또는 그 이상?)으로 제작되어 외국의 중앙은행 및 유명은행(?) 국내 은행(?) 등에 거의 전량 가까이 홍보용으로 배포 될 것으로 추측됩니다. 신규 발행되는 외국화폐도 몇 세트씩 한국은행으로 보내오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약 30년전에 이승만 초상의 6.25동란 중 발행(1952년 10월)의 기호(000)의 지폐가 100장 다발(준미사용내지 미사용 상태 1장당 700원? 정도로 기억)로 중간 상인이 헐값으로 팔려고 시도하였으나, 사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수십년 년에는 수십가들은 아주귀한 구한국지폐 을백 황색지백원 등의 희소도 정도의 것만 미사용이아닌 사용한 깨끗한 상태를 수집하였으며, 세종오백원이하희소도정도의 것은 미사용만이 수집 대상이 되었슴. (예를들면 그당시 세종오백 이상의) 귀한지폐견양권은 통용권지폐거래가격의 절반이하 가격 정도 였으며, 아주 흔한지폐 견양권은 통용권 미사용 보다 비싸게 거래 되었음.
아주굉장히 희소 하게나온 시작(試作)품 지폐[앞뒤 따로 단면(單面)으로 인쇄되고 지폐 가로가 더 길게하여 색도표시가 있고 발행은행권과는 다른색갈의 동일 도안 은행권, 즉,색상 선택 결재용으로 판단됨.]는 고가(약 30년전 당시 경매가 오만원? 정도로 기억)로 경매에서 거래된 적 있슴.
국내인쇄견양은행권은 가가가000000의 기번호가 원칙
[통용권으로 발행후 필요시 은행이나 일반인에 의한 견양 가쇄는 아주쉬운 일이며, 요즘과 같이 견양권이 고가에 거래 될때는 통용권의 악의적인 견양권 가쇄변경도 아주 간단하(쉽)게 이루어 질 수 있슴.제조당시 견양권으로 만들어진 것 이외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견양권으로 볼 수없으며, 2,3차화폐개혁시 미국, 영국 제조 견양은행권도 한국은행에 의한 통용은행권의 단순한 가쇄임.]
이며, 1962년 화폐개혁시 영국 토마스 데라루에서 수입한것은 외국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제작처에 미처 별도의 000000기번호의 견양권 주문을 하지 못하여, 일반통용권을 권양권으로 전환 표시(비정상적으로)하여 홍보용으로 배포하였습니다.
2..북한의 경우는 약 20년전부터 외화획득을 위하여 요즘만든 종이를 이용하여 옛 인쇄원판으로 인쇄판을 새로만들어 화폐개혁전( 몇차례 화폐체계를 바꿨음.북한 현행권 아님)의 화폐들을 대량으로 새로만들어 수출 하였으며,현재 시중에 거래되고 있는 미사용 구권은 거의 100% 새로 만든 재현은행권(신형종이 사용)임.
현행권들도 견양은행권을 아주 대량으로 만들어 수출하고 있어 화폐로써 통용력도 전혀 없고, 수집가치도 아마 통용권의 절반가치이하(본인 판단은 그 가치를 인쇄비보다 약간 높을것으로 평하절하 할 정도)일 것임.
**옛날 화폐수집 이야기
3..수십년전에는 미사용은행권 만이 수집대상이 되었다면, 굉장한 수량의 깨끗한 상태의 사용제 구은행권들의 행방이 궁금하겠지요?
제가 수집하던 40여년 전에는 우리나라 진정한 수집가는 10명 정도 이었으며, 주로 미군 등 외국인(외국은 화폐수집이 우표수집과 같이 일반화되었슴)이 수집하였고, 미국 등 외국으로 대량으로 수출(소형차량으로 한차 가득, 요즘말로 차떼기로) 되었음.
1967년초에 서울에 올라와 보니 서울 인사동 고미술 골목에 유일하게 아취사
{후에 고금사로 개명. 친절하고 겸손하신 주인 젊은(당시) 김옥배[현재 몇 안되는 최고(最古:가장오래되고.最高:제일 높은)수준의 화폐전문가의 한분]사장님과 그동생 김충남님}
가 전문화폐상으로 있었슴.
1967년 이전에도 거의 유일한 외화 획득원인 가발원료(여자들의 긴머리카락 묶음) 수집상들(전국 방방곡곡을 돌아 다니는 떠돌이상인) 이 고은(古銀)을 수집하면서 일본 일원 은화 등을 수집[양은그릇파는사람 등,일부 엿장수들도 고은등 은화수집, 양은(洋銀,알루미늄)그릇을 고은화 등으로 물물교환]하여 최종적으로 일본으로 수출하였슴.
1970년초 강남(말죽거리) 개발붐*[ ]
*[강남 땅값 폭등, 개발 이익 환수 안함, 수많은 벼락부자 탄생.1970년대초 경제개발 수출붐,인플레와 더불어 땅 투기바람 시작됨.은행에서 돈을 빌려 땅을 사면 돈 벌던 시절 시작. 기업인이 아닌 개인은 은행 대출이 하늘의 별따기 시대 시작.1973년부터 각 기업 사원 대량 채용]
과 더불어, 일본은화의 폭등(일본에서 화폐수집 투기 바람)으로 한국에서도 화폐수집의 대중화의 여명기(黎明期,초창기)가 시작되어 미사용 지폐 극미품이상의 조선왕조 및 구한국주화와 상평통보 단자전 모전 일부 귀한엽전, 고려전, 열쇠패,별전 등이 수집대상이 됨. 화동양행이 중앙우체국 근처(인사동,정식품 근처,장충동근처,현위치: 예술의 전당 앞))에 개업하고, 금화사가 인사동, 한강사가 노량진 한강변에, 전문화폐상이 창업 되었슴.
4..후진국 지폐 고액권 수집시 참고사항
외환 사정이 나빴던 1970년 경은 외국 지폐수집이 어려워 지금은 폭파 철거되어 없어진 남산 한남동 외국인 아파트에 살던 외국인수집가를 통한 외국의 고지폐 또는 현행지폐 수집도 한 방법이었습니다. 당시에 후진국 고액권을 통용시가(당시 환율 비교가)인 고액에 수집한 결과 10년 내지 20년쯤 후에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휴지가격(시중에서 몇백원에 판매되는 화폐)으로 변해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요즈음 자유로운 외국여행을 통한 수집, 동호회원들이 협력하여 외국화폐수집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네요.
***꼬리말 답변***
세종오백 견양권의 현시가(現時價) 모름: 현재 견양권 수집 안함.(북러버)
30년전 거래가(경매) 견양권은 통용권의 절반가격 이하?(거의 절반가격 정도?)로 기억함.[통용권과 견양권 共히(모두) 미사용일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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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내년엔 작성시간 04.01.24 미사용으로 보기힘든 조선은행 을백원,미발행천원등도 예전에도 귀한 지폐들이었는데. 상기지폐의 견양권은 당시 어떠했는지요..참고로 자료실 돈자료실 726번에 사진올려놓았습니다. 보시고 설명(지폐설명 및 당시희소도등)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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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unter 작성시간 04.01.24 좋은 말씀 잘 들었읍니다. 앞으로도 후진들을 위하여 좋은 말씀과 질책 부탁 드림니다. 원로님들을 인터넷에서 뵙기 힘든데 다행히 북러버님이 계셔 저희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겠읍니다. 건강하시고,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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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연리지비익조 작성시간 04.01.24 입이 쩍 벌어지는 강연(?) 잘 봤습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 좋은정보 많이 많이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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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머시기 작성시간 04.01.24 저 오늘 새삼 이 카폐 가입한걸 정말 다행이라 생각 될정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북한 화폐와 견양권에대한 정보는 뒷통수가 어지러울정도였습니다. 이런 정보들을 여러사랍들에게 더욱더 많이 공개하시여 요즘 가열되고있는 화폐 수집시장을 조금이라도 식힐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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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훈이 작성시간 04.01.28 북리버님 은 정발 대단한 분 이시군요.화폐계 을 모두 석권 하고 계시는분 이라믿읍니다.누구인지 많이 궁굼하군요.앞으로도 많은 지도 부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