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째 - 시카르, 야곱의 우물, 사마리아 사람

작성자띵신부예용..*^^*|작성시간10.08.12|조회수714 목록 댓글 0

11일째

      지난 주에 함께 바닷가의 카이사리아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필립보가 지어서 로마 황제에게 봉헌한 카이사리아 필리피와 구분하기 위해서 바닷가의 카이사리아라고 부른다고 했는데요. 필립보의 아버지 헤로대 대왕이 지은 엄청나게 큰 도시입니다. 어찌보면 로마 입장에서 볼 때 당시 팔레스타인 전체를 다스리는 도읍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곳에 로마 총독이 머물면서 팔레스타인을 감시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곳은 이방인들의 문화가 가득한 곳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바로 코르넬리우스가 세례를 받은 사건인데요. 유다인들 안에 머물던 그리스도교가 본격적으로 이방인들에게 팔을 벌려 그들을 받아들이게 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바로 이방인의 사도로써 활동하다가 유다인들의 분노를 사서 재판을 받게 되어 또 이 곳에서 자신을 변론하기도 하였지요.

 

1) 시카르의 위치

      오늘은 이제 갈릴레아 지역을 떠나서 사마리아 지역에 있는 시카르라는 곳으로 넘어갈까 합니다. 이 곳 시카르는 갈릴레아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데요. 갈릴레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갈릴레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직선도로로 이곳 사마리아를 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 취급을 했기 때문에 이곳 마을들을 지나가기 꺼려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요르단 강가를 따라서 예리고라는 곳 까지 내려간 다음에 산악 지역으로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던지, 아니면 바닷가 쪽으로 나가서 바닷가를 따라 내려온 뒤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로 쳐서 갈릴레아를 경기도 강원도라고 치고 사마리아를 충청도 쯤으로 치자면 유다는 전라도 경상도인데요. 예루살렘이 창원쯤이라고 한다면 경기도 경상도에서 창원을 오는데 충청도 지나면 바로인데, 그걸 못 지나고 낙동강 따라 부산까지 내려와서 올라가던지, 아니면 서해로 나가서 바닷길 따라 저기 목포까지 간 다음에 다시 창원으로 올라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요한 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다 땅에서 활동하시다가 다시 갈릴래아로 올라가시면서 바로 이곳 사마리아의 시카르를 지나가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2) 야곱의 우물

      요한 복음에 따르면 이곳 시카르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라고 전하고,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던 곳이라고 전합니다. 바로 이 야곱의 우물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생명의 물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데요. 사실 이 우물에 관해서 구약성경은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유다인들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전승에 따르면 이 야곱의 우물은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사악의 아들인 야곱이 이곳에 우물을 팠다고 전해집니다.

      지금도 이곳 시카르에 가면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것을 기념하는 기념성당이 있습니다. 이곳 기념성당 문은 조그만 아치형으로 되어 있는데요. 그 문을 들어서면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찬 정원이 나옵니다.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길을 따라 이 정원을 지나 정원 반대쪽 끝으로 가서 계단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성전이 있는데요. 이 성전 안으로 들어가면 성전 한 가운데 유서 깊은 우물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우물은 아주 오래된 우물인데요. 이 우물물의 수원은 분명 야곱시대에도 있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현재 우물은 대략 30미터 가량 되는데 조그만 돌을 떨어뜨려서 물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면 어느 정도의 깊이인지 대략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퍼 올리는 물은 매우 신선하며 마시기에도 좋아 이 지방 사람들이 살아있는 물, 곧 땅의 깊은 곳에서 샘솟는 물이라고 부르며 지금까지 잘 관리해 오고 있습니다. 대개 이곳 지방 사람들은 비가 온 뒤 수조에 물을 받아 사용하곤 했는데 이렇게 모아둔 물은 맛도 없고 또 오래 두면 섞은 내가 나기 때문에 이 우물물과 아주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우물 옆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당신이 바로 생명의 물을 주겠다고 하신 것이지요.

      지금 성당 대부분은 1900년대 초반기에 지은 것으로 매우 현대적인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4세기 예로니모 성인이 살던 시기에도 이곳에는 성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세례당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주 초세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이곳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사건을 기념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3) 사마리아 사람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장면에 관하여 이야기하기에 앞서 잠시 사마리아 사람들에 관해서 잠시 다루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야곱의 12아들들에게서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약속의 땅을 점령한 뒤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 시대를 거쳐 수세기 동안 그 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931년 경 솔로몬 왕이 죽자 이스라엘 왕국은 두 나라로 갈라지는데, 남쪽 왕국 유다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했고, 북쪽 왕국 이스라엘은 사마리아에 그 수도를 정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722년 당시 중동 지방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의 북쪽 왕국을 점령하게 되는데요. 거칠고 모진 그들의 성향에 걸맞게 앗시리아인들은 막 점령한 북쪽 왕국의 사람들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고 이곳에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들을 이주시키게 됩니다. 그리고는 도시 이름 사마리아를 팔레스타인의 위쪽 지방 전체의 이름으로 삼았는데요. 팔레스타인은 이제 북쪽의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남쪽의 유대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신약성경이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면 이렇게 이주한 이방인들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전 세계에 600명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남아 있는데요, 그 가운데 300명은 이스라엘 땅, 옛 사마리아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원에 관해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전하는데요. 그들은 유다인들이 참된 하느님을 거슬렀을 때마저도 모세의 가르침에 충실한 참된 유다인들의 후손이라고 여깁니다. 기록 그들은 오직 모세가 적은 것으로 여겨지는 다섯 권의 책, 곧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만을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충실한 자녀들이고 다른 모든 유대인들은 죄인들이라 여깁니다.

      어째튼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인들과 아주 오랜 적대관계를 가져왔는데요. 특별히 남쪽 유다왕국 사람들이 바빌론에 끌려갔다가 돌아왔을 때 예루살렘 성벽을 건설하는 것을 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방해한 것부터 시작해서, 북쪽 사마리아의 수도인 사마리아가 예루살렘에서 딱 6.5키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잦은 전투를 벌여왔던 것 까지 그들 간의 오래된 반목은 서로를 더 이상 화해할 수 없는 상대로 만들어 놓았는데요. 예수님이 탄생하기 약 100년 전에는 유다인들이 그리짐 산에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성전을 파괴하면서 이러한 반목은 그 정점에 달하게 됩니다. 빌라도는 기원후 36년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대량 학살하는데요, 그가 사마리아와 유다를 다스리던 지방장관에서 물러난 것은 예수님을 죽여서가 아니라 바로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대략학살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 간에 항상 찾아볼 수 있었던 그 증오심을 염두에 둔다면 성경본문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기억나세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있잖아요. 유다인 형제가 강도를 만나서 반쯤 죽어가게 되었을 때, 유다인 사제와 레위인은 자기 갈 길을 가 버리는데 사마리아 사람 하나가 그를 살려 주었다는 이야기말입니다(루가 10,29-37). 또 나병을 치유 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 이야기에서 아홉 명의 유다인은 자기 길을 떠나 버리는데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사람 역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루가 17,11-19). 그리고 예수님이 요한 복음 4장에서 생명의 물 이야기를 나눈 여인도 바로 이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어째튼 예수님은 사람들 간을 구분하지 않으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유다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시면서 그들의 선입견에 따라 그들을 만족시켜 주시기보다 진리에 따라서 살아가시는 모습. 하느님 앞에 모두는 같은 자녀라는 진리에 따라 행동하시는 모습, 욕을 먹어도 그렇게 하시는 모습에서 참 많은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4) 성경구절 ~ 요한 4,4-43 ~

      어느 날 정오 쯤 예수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이곳에서 잠시 쉬게 되는데 먹을 것을 구해오라고 제자들을 마을로 내려 보냅니다. 혼자서 쉬면서 예수는 우물물을 기르러 오는 여인을 만나는데요, 그녀가 물을 기르기 시작했을 때 예수는 그녀에게 마실 물을 청한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4장에서 우물가에서 일어난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그 유명한 만남이 시작되는 장면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생명의 물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참 하느님 경배는 더 이상 사마리아 사람들이 찾는 게리짐 산에서도 이루어지지 않고, 유다 사람들이 찾는 시온산, 곧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곧 참 하느님 경배가 이루어지는 곳은 바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며 성령으로 세례 받는 이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예수가 이 사마리아 마을을 방문한 유명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초대 교회시대부터 우리는 사마리아가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을 받아들이는데 대단히 개방적이었음을 전해 듣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곳 사람들에게 남겨준 강렬한 인상 덕분임이 분명합니다. 어째튼 예수님은 이곳에서 그곳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마음의 장벽을 깨뜨려 버리십니다. 정말 인간이 쌓아 놓은 어떤 장벽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예수님은 모든 장벽을 깨뜨려 버리시는 듯 합니다.

 

5) 마치면서

       오늘 함께 사마리아의 시카르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에는 항상 신선한 물을 공급해 주는 야곱의 우물이 있는데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이야 말로 참된 생명의 물을 공급해주는 우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또한 사마리아라는 곳을 지나가시면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편견이라는 벽을 허물어 뜨리십니다. 서로 철천지 원수처럼 살아가며 서로 서로를 하느님의 적이라며 비난하던 이들 틈에 끼어서 그 벽을 허물어 뜨리십니다. 결국 그들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서로 한 형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어째튼 사마리아 사람을 떠올릴 때면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들 각자가 만들어 놓은 편견과 반목의 벽을 허물어 주시는 평화의 주님이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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