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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TIGER-I "Gruppe Fehrmann, Essel 1945" #13299 [1/35th ACADEMY MADE IN KOREA] PT1

작성자mirageknight [왕성국]|작성시간15.11.24|조회수1,318 목록 댓글 2

안녕하세요~~ 미라지나이트 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고 있습니다. 겨울이 오나 봅니다.

 

미라지는 감기에 걸려 거의 일주일째 고생하고 있네요.. 한동안 안 앓다 감기 걸리리 엄청 고생하고 있습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아카데미 11월 신제품이 13299번 1/35 TIGER-I "Gruppe Fehrmann, Essel 1945" 페르햄 전투단 1945년 버젼이 어제 전격적으로 출시되었습니다.

 




티거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E)

[티거(Tiger -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E)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을 대표하는 지상 병기로서, 무수한 전설과 신화를 남긴 걸작 重戰車이다]

 

Contents

1 독일어
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독일군 중전차
2.1 개요
2.1.1 개발
2.2 장점
2.3 호랑이를 잡아라!
2.4 생산량에 대한 말들
2.5 운용상의 문제에 대한 말들
2.6 전쟁이 끝난 후에는...
2.7 티거피벨
2.8 파생형
2.9 총평
2.10 매체 속의 티거
3 곰돌이 푸에 나오는 호랑이

tiger

1 독일어

독일어로 호랑이.
남부식 발음은 티게르.

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독일군 중전차

 

[현재 유일하게 작동이 가능한 TIGER-I 영국 보빙턴 전차박물관에서 복구한 전차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고장으로 버려진것을 나포해 수리해서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작동 가능한 티거전차이다]



몇 안 되는 대전 당시의 컬러사진.

<티거 제원>

 

전체길이 8.24m
차체길이 6.20m
전체너비 3.73m
전체높이 2.86m
주포높이 2.19m
전비중량 56.9t
탑승인원 5명
엔진 마이바흐-HL230 P45 수랭식 V형 12기통 가솔린엔진
엔진출력 - 회전수 700HP - 3000rpm // 600HP - 2500rpm
배기량 21.35L
연료적재량 534L
연료소비량 535L / 100Km (도로)
최고속력 45km/h(도로), 20km/h(야지)
항속거리 100km(도로), 60km(야지)
중량당 마력 12.3Ps/t
현가장치 토션 바
변속기 Olvar 401216 (전진8단 후진4단)
조향장치 // 구동륜 위치 메리트 마이바흐 // 전방
선회반경 7.00m
무한궤도 폭 // 매수 72.5cm // 좌,우 각 96매
접지길이 // 접지압력 3.51m // 1.04Kg/㎠
초호능력 2.30m
초월능력 79cm
등판능력 35도
도하능력 1.20m
주포조준장치 TZF 9b
포탑회전방식 수동 및 유압겸용
무장 36식 56구경장 88mm 전차포×1 (92발)
7.92mm 기관총 MG34×2 (4,200발)[1]
9mm 기관단총 MP40×1 (전차병 휴대용)
장갑 차체 전면 100mm / 66도
차체 측면 상부 80mm / 90도
차체 측면 하부 60mm / 90도
차체 후면 82mm / 82도
차체 상면 26mm / 0도
차체 바닥 26mm / 0도
포탑 방패 최대 110mm
포탑 전면 100mm / 90도
포탑 측면 80mm / 90도
포탑 후면 80mm / 90도
포탑 상면 26mm / 0도 ~ 9도

Contents

1 독일어
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독일군 중전차
2.1 개요
2.1.1 개발
2.2 장점
2.3 호랑이를 잡아라!
2.4 생산량에 대한 말들
2.5 운용상의 문제에 대한 말들
2.6 전쟁이 끝난 후에는...
2.7 티거피벨
2.8 파생형
2.9 총평
2.10 매체 속의 티거
3 곰돌이 푸에 나오는 호랑이

2.1 개요

 

 

- Tiger의 외관 -

 

 

[현재 유일하게 가동 가능한 티거전차인 영국 보빙턴 전차박물관에 보관중인 티거 전기형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버려진것을 노획하여 복구한것이다. 티거 전차를 1930년대 개발이 시작된것으로 판터 같이 경사장갑 설계가 도입되지 않고 직각설계를 가진 외형을 하고 있다]

전장에 나간 타이거는 마치 맹수처럼 상대를 잔인하게 학살하는 사냥꾼이었다.
- 영국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독일 전차의 완성, 타이거' 편

제2차 세계대전독일군공돌이를 마구 갈아넣고 외계인들의 코에 맥주를 퍼부으며 개발/운용한 헤비전차. 정식 명칭은 '6호 전차'(Panzerkampfwagen VI)지만 그보다는 역시 Tiger-I[2]이라는 별칭으로 더욱 유명하다. 어원은 당연히 1번 항목. 무기 역사상 별칭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녀석도 드물다.

 

 

 [티거 전차의 장갑은 당시 어떤 전차도 뚫을수 없는 전명장갑 100밀리 달했다]


잡설이지만, 국내매체에서는 이 전차 이름의 한글 표기를 놓고 좀 혼동이 있다. 1980년대까지는 영어식 발음인 타이거로 많이 불리다가, 1991년 등장한 호비스트에서는 '오리지널 독일어식 발음'이라면서 티이거라고 불렀다. (이건 왠지 일본어식 장음처리를 곧이곧대로 한글로 옮긴 티가 난다[3][4]. 아니면 타이거라고 다 써 놓고, 한 글자만 바꿔 편집했거나). '티이거' 표기는 호비스트에서 싸우고 뛰쳐나와 만든 사람들이 만든 책인 모델러 2000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2006년 호비스트에서는 표기법을 티거로 바꾸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형 메이커인 아카데미과학에서는 2012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자사의 해당 전차 모형 상품명에 타이거 표기를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타이거', '티이거', '티거' 3가지 표기가 난무하고 있다(사실 취미가 내부에서도 표기가 오락가락했다).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노획된  영국 보빙턴 전차박물관의 Tiger- 1 현재 유일하게 가동되는 진짜 티기전차이다]


형식번호가 6호 전차라곤 하지만 5호 전차인 판터보다도 앞서 개발 배치되었기에, 경사장갑 대신 전통적인 독일전차의 수직방향 장갑을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티거를 보면 상자곽 혹은 꼭 책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942 ~ 1943년의 기간중 티거에 사용된 위장패턴은 매우 다양하지만 올리브 그린(RAL 7008) 과 레드 브라운(RAL 8017)이 주로 쓰였다.

 

 

 

1943 6 - 505 전차 대대

 

 

 

1943 7 - 그로스 도이칠란트 사단 제 1연대 - 치타델 작전시

 


1942년 초반에 생산을 개시하여 1942년 9월 23일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데뷔하게 된다. 하지만 데뷔전을 치른 티거는 소련군의 대전차포에 격파되거나 기계적 결함 때문에 가다가 주저앉아 버렸다(이중 1대는 소련군에 노획된다).

 

 

 

[최초로 레닌그라드 방면에 투입된 티거 ..아직 준비가 안되었지만 히틀러의 독촉으로 502 중전차대대(sPz.Abt.502) 1942 8월 레닌그라드 방면에 4대를 투입했다.4대 모두 기관고장으로 제대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관통된 전차는 없었고 이중 1대가 소련군에 나포되어 연구하는데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티거의 진가가 드러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북아프리카에 투입된 티거를 장비한 501중전차대대는 티거를 완편 장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등장 초기부터 100여대의 미군 전차를 날려버리더니 카세린 전투에서 미1기갑사단을 격파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거기다 티거의 불썽 사나운 데뷔전을 만들었던 502중전차대대는 42년 말부터 계속된 레닌그라드를 해방시키려는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내며 독일 중전차 대대 중에서도 특출난 활약으로 수백대의 소련군 전차를 날려버리며 이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거기다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선 중대 단위로 투입된 티거가 하르코프 북방에서 펼쳐진 소련군 기갑부대의 반격을 분쇄해 내며 티거의 위력을 톡톡히 보였고[5], 여기서 티거는 설원에서의 기동전까지 수행해 내는 능력을 보였다.[6]

 

 

[패색이 짙어진 전장말엽에는 공장에서 출고된채 위장색도 채 칠해지지 않은 삼산화이철 그대로 전장으로 보내지는 일도 많았다 그만큼 한대의 티거라도 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 중반기 이후 각 전선의 독일군이 끝없이 패퇴하던 무렵에도 노련한 전차병의 경험과 맞물려 다대한 전과를 기록했다.

워낙 강력한 포스를 보여준 덕분에 티거는 제2차 세계대전의 지상전 그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관련분야에서 유명하고 인기도 많다.

 

 

[1943년 쿠르스트전은 티거전치의 본격적인 데뷔전이라 할수 있다. 쿠르스크 전투에 무려 150여대의 티거 전차가 참전하여 소련의 t-34전차를 상대로 맹활약을 하였다]

 


티거 전차 에이스 중 유명한 사람으로서는 무장친위대 소속 미하엘 비트만과 육군 소속 오토 카리우스가 있다. 오토 카리우스는 전후에는 티거약국을 운영하면서 노년기를 보내고 있다 . 이 영감님은 아직 살아 계시다.(…) 생각보다 정정하시다

 

 

 

전설의 호랑이 사냥꾼!! 미하일비트만 (Michael Wittmann)

 

 

 

 

 

 

 

1914 4 22 ~ 1944 8 8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무장친위대 소속 군인. 가장 많이 적 전차를 격파했던 전차병 중 한 명이자, 전설적인 티거 에이스로 유명하다.

 

 

 

 

 

 

 

 

[미하일 비트만 중위는 티거를 이용 혁혁한 전과를 올린 티거에이스로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한뒤 비트만의 2중대가 전장에 도착한 다음날인 1944 6 13, 비트만은 숙영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마을인 빌레르-보카즈(Viller-Vocage)에서 6호 전차 티거I 한 대로 영국 7기갑사단의 선봉 전차부대에 괴멸적인 타격을 주어 그 이력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그는 티거 한대로 적진에 침투해 무려 25대의 각종 전차와 장갑차를 때려부수었다]

 

 

 

최종 계급은 SS대위로, 그가 격파한 전차 수는 138대이고 대전차포는 132문이었다. 독일군 전차 에이스 순위에서는 5[1]지만, 대전차포와 합계를 내면 1. 사실 전차보다 대전차포가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기 때문에, 그런 대전차포를 130문이나 때려잡았다는 점에서 2차 세계대전 최고의 전차 에이스로 간주하는 견해도 있다.[2]

 

 

 

 

 [히틀러로 부터 백엽검기사철십자훈장을 수여받는 모습]

 

 

본격적인 활약은 독소전쟁 중인 1941 7월 우만 포위전에서 LSSAH사단 소속으로 당시 탑승차였던 3호 돌격포 A형으로 6대의 T-26 경전차를 격파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1942년 초까지 돌격포를 타고 싸우다가 부상으로 후송, 완쾌 후 사관후보생 과정을 거쳐 42년 겨울에 3호 전차 전차장으로 전선에 돌아왔다. 이후 사단에 티거 중전차소대가 배치되면서 소대장으로 선발, 43 2월의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티거 에이스로서의 활약을 시작했다. 티거 소대는 곧 중대로 확대, 1SS전차연대 13중대로 명명되어 쿠르스크 전투를 시작으로 일련의 활약을 거듭했으며, 비트만은 13중대 3소대장으로서 43년 중반~44년 초반을 보냈다. 특히 44 1월의 체르카시 포위전에서 비트만은 단 3주 만에 50대에 달하는 적 전차를 격파, 100대 격파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때의 공적으로 44 2월에 중위가 되었다.

 

 

 

 

 

 [그가 보카빌레주에서 홀로 25대의 적 전차와 장갑차를 때려부셨다는 그의 전차의 위장을 재현한 레플리카의 모습]

 

 

 

 

원래 13중대는 1943 10월에 제101SS중전차대대로 개편이 예정[3] 되어 있었으나, 급박한 전황 때문에 제대로 개편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체르카시 포위전이 끝난 후 독일로 이동, 본격적으로 대대 재편성을 받았다. 이때 비트만은 2중대장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1944 4월부터 6월까지 프랑스에 머물렀고 결국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면서 전장으로 이동했다.

 

 

 

 

 

 

[포신에 새겨진 100대가 넘는 화려한 전과들 미하일 비트만 대위에게는 4명의 다른 승무원들이 있엇으며 그들의 환상적인 호홉으로 수퍼에이스로 등극할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같은날 모두 전사하게 된다]

 

 

비트만의 2중대가 전장에 도착한 다음날인 1944 6 13, 비트만은 숙영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마을인 빌레르-보카즈(Viller-Vocage)에서 6호 전차 티거I 한 대로 영국 7기갑사단의 선봉 전차부대에 괴멸적인 타격을 주어 그 이력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4] 빌레르-보카즈 전투에서의 눈부신 활약에 아돌프 히틀러는 직접 그를 관저로 불러 공적을 치하하고 백엽검기사철십자훈장을 수여하였다. 또한, 이 공적으로 대위로 승진하게 된다.

 

 

 

[비트만과 그의 부하들 특히 비트만을 있게한 일등부하로 포수의 볼 이 있었기에 일격필살의 그의 전설을 만들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탑승차량중 하나인 205번 차량 비트만과 그의 부하들은 하나늬 티거전차에만 탑승한것이 아닌 최소 3대이상의 각기 다른 티거 차량이 목격되고 있다]

 

이후 대대는 계속 전투에 참여했으나 비트만은 특별히 추가 전과를 올리지 못했고 대대의 전력은 계속해서 감소했다. 그러다가 1944 8 8, 대대 지휘전차인 007호에 탑승하고 캉 남쪽 Saint-Aignan-de-Cramesnil 부근에서 캐나다 제4기갑사단과 교전을 벌이면서 최후의 전과인 전차 3대 격파를 기록하지만, 그 직후 적의 공격을 받고 비트만을 포함한 탑승자 전원이 전사하였다.

 

 

 

[영웅의 최후.. 호랑이도 밀물같이 달려드는 적의 전차 앞에서는 불멸할수 없었나 보다. 피격후 유폭으로 차체와 포탑이 날아간 그의 전차로 그의 최후가 얼마차 처참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그에게 일격을 가한 것이 누구냐는 데에는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의 설이 분분하다. 캐나다군 파이어플라이 전차의 협공설, 영국군의 공격기 호커 타이푼의 지상공격 로켓 피탄설 등이 있으나, 현재는 파이어플라이의 공격에 의한 피탄, 전사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이 전투의 전개 당시 비트만은 부상을 입고 후송된 대대장 대신 대대장 대리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이 전투의 경과를 두고 전차장으로서는 유능했으나 중대장으로서나 대대장으로서는 그다지 유능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최후에 탑승했던 차량으로 알려진 007번 차량의 모습]

 

 

어쨌든 전사한 비트만과 동료들의 유해는 전사한 곳 근처에 가매장되었으나 전후 그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이장하지 못했고, 1983년에 프랑스 연구자 에릭 르페브르와 그의 동료들에게 발견되어 라 캉브의 독일군 전몰자 묘지로 이장되었다.

 

 

 

 

 

[영웅의 묘.. 전사한 비트만과 동료들의 유해는 전사한 곳 근처에 가매장되었으나 전후 그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이장하지 못했고, 1983년에 프랑스 연구자 에릭 르페브르와 그의 동료들에게 발견되어 라 캉브의 독일군 전몰자 묘지로 이장되었다.]

 

 

 

이 사람 뿐이 아니라, 나치 독일의 수많은 에이스들은 대부분이 씁쓸한 최후를 맞이하여, 아랫것들이 X빠지게 고생해서 엄청난 업적을 이뤄봐야 윗대가리가 멍청하면 말짱 황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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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S만으로는 1위이다.

[2] 하지만 육군이 아닌 SS소속이었던 이유로 오토 카리우스와는 달리 현재 독일육군의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3] 당시 SS는 기갑군단 직할 독립중전차대대를 편성하기 위해 각 사단의 중전차중대를 차출해서 대대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었다.

[4] 이 전투에서 27대의 전차를 격파했다.

 

출처 엔하키미러

http://mirror.enha.kr/wiki/%EB%AF%B8%ED%95%98%EC%9D%BC%20%EB%B9%84%ED%8A%B8%EB%A7%8C

 

 

 

 

작지만 용맹한 호랑이!! 오토 카리우스 (Otto Carius)

 

 

 

 

[오토카리우스의 젊었을때의 모습]

 

 

1922 5 27~[1]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육군의 전차 에이스. 150~200대의 적 전차를 격파하며 맹활약했다.

 

 

쯔바이브르켄 출생. 군인을 동경하여 1940년 젊은 나이(18)로 자원입대하게 된다. 왜소한 체격과 그로 인한 저체중으로 인해 입대가 2번 거부되지만, 근성(?)끝에 육군에 들어가게 된다. 의외로 병과지망을 대전차로 골랐는데 TO가 비질 않아 일단 보병이 되었다.

 

 

 

[작전회의 중인 오토카리우스 중위의 모습 그는 그리 잘 생긴것도 그렇다고 기골이 장대한 타입도 아니지만 한치의 오차도 인정하지 않는 철저함과 일단 전투에 들어서면 무모하리만큼 용맹성이 대단했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동기들에 비하면 나이도 적고 체격이 왜소해 큰 스트레스를 받은 듯 하다. 오죽하면 사내답게 보이기 위해 수염을 기르려 했는데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나서 더 큰 좌절에 빠진적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행군간 기관총을 짊어지고 가다가 동료의 부축을 받아 복귀하는등 보병으로서는 그리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중대장이 기갑부대로의 전출을 희망하는 지원자를 모집할때 참가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카리우스 옹의 아버지(이 분도 현역 군인)가 아들이 기갑병과에 들어가는걸 극력 반대했다는 것이다. 아마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었다면 전설은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위의 사진은 유명한 타미야 킷으로 제품화되어있다  Item #35202번

ws('1','10')
German Tiger I Mid Production - "Commander Otto Carius" 제품이 바로 그것! 한정판이라 지금은 거의 없다]

 

 

전차병 훈련을 거친후 제20기갑사단 제21기갑연대에 배속되어 소련 침공에 참전한다.

 

 

사단 특성상 체코제 38(t) 전차[2]에 탑승(탄약수)했으며, 숱한 역경과 위기상황, 기본적으로 떨어지는 전차의 성능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실력과 팀워크로 혁혁한 전과를 달성, 1941 8월에는 간부 후보로 추천받기에 이른다.

 

 

이후 본국으로 돌아와 장교훈련을 받은 오토 카리우스는 1942년 봄, 다시 21기갑연대에 원대 복귀하여 한동안은 전차의 부족으로 제설작업에 투입되었다가 새로이 보충차량이 들어오며 자기의 소대를 책임지게 되었다. 하지만 소대장으로서의 첫 임무에서 각 전차의 조종수와 탄약수들이 식사추진을 나간사이에 소련군이 공격을 해오자 공황상태에 빠져 달아났다.(....) 이로 인해 체면을 크게 구기고 본부 중대의 공병소대장으로 잠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온 기회[3]를 잡아 때마침 신형 중전차로 맹위를 떨치고 있던 티거 중대의 소대장으로 부임하게 되니…. 날개달린 호랑이이자 전설의 시작이었다.

 

 

 

 

[오토 카리우스가 소속된 부대는 제502중전차대대(그 중 제2중대의 소대장)로써, 1942년 겨울 레닌그라드 방면에서 최초로 티거를 실전에 운용한 부대이기도 했다.]

 

오토 카리우스가 소속된 부대는 제502중전차대대(그 중 제2중대의 소대장)로써, 1942년 겨울 레닌그라드 방면에서 최초로 티거를 실전에 운용한 부대이기도 했다. 오토 카리우스에 대한 부대원들의 첫 반응은, 그들의 티거에 대한 인상 만큼이나 좋지 않았는데[4], 한마디로 "이렇게 허약하게 생긴 새퀴가 대장노릇하며 제대로 싸울 수 있겠어?"였다. 그러나 이후 먼치킨급 실력을 과시하며 모두를 순식간에 닥버로우하게 만든다.(…) 그런데 502 중전차대대 2중대의 경우 중대장들이 너무 자주 바뀌거나 혹은 지휘력에 문제가 있어 카리우스가 한동안 중대장 대리로 사실상 지휘를 책임졌다.[5]

 

 

 

[오토카리우스는 보기에는 왜소해 보여도 일단 전투에 들어가면 어떤 전차장보다 용맹했는데 가장 유명한 전투로는 나르바 방어전과 "오토 카리우스판 빌레르-보카쥬 활극"이라 일컬어지는 마르나파 전투가 있다. 이 전투에서 카리우스는 단 8대의 티거로 선발대인 소련전차 22대를(JS-2 17, T34/85 5) 격파하고, 적 여단장의 시신에서 기동계획이 표시된 지도를 노획하고는 후속하던 본대 28대의 적전차를 매복으로 섬멸, 소련군 일개 전차여단을 쓸어버렸다. 이 전과로 오토 카리우스는 백엽 기사검 철십자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자칫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그의 행동은 그의 명성을 천하에 알리는 전설과 같은 일화가 되었다]

 

 

502중전차대대가 주로 동부전선의 북부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발트 3국에서의 지연전에서 활약을 펼쳤는데, 가장 유명한 전투로는 나르바 방어전과 "오토 카리우스판 빌레르-보카쥬 활극"이라 일컬어지는 마르나파 전투가 있다. 이 전투에서 카리우스는 단 8대의 티거로 선발대인 소련전차 22대를(JS-2 17, T34/85 5) 격파하고, 적 여단장의 시신에서 기동계획이 표시된 지도를 노획하고는 후속하던 본대 28대의 적전차를 매복으로 섬멸, 소련군 일개 전차여단을 쓸어버렸다. 이 전과로 오토 카리우스는 백엽 기사검 철십자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1943,휘하 하사와 함께 IL-2를 티거로 잡으신 전적도 있으시다고 한다. [6]

 

 

1944년 우크라이나에서는 단 두대의 티거로 30분만에 근거리 난타전으로 소련군의 IS-2로 구성된 1개 중전차연대를 30분만에 전멸시킨 괴수짓을 벌였다. 그리고 그들의 피해는 헤드라이트 하나...(이런 괴물.. 뭐 두 티거의 전차장들이 둘다 100기 이상의 전차격파대수를 자랑하는 괴물들이었다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오토카리우스는 티거만 탄게 아니다..1944 7월 말, 전선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중 매복한 적의 공격에 의해 모터사이클이 피격되면서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되었으며, 두달 뒤에는 신형 구축전차 야크트 티거를 운용하는 제512중구축전차대대 소속 중대장으로 부임하여 서부전선의 미영군을 상대로 한 방어전을 전개하게 된다. 비교적 날렵하고 기동성이 좋았던 티거에 익숙했던 오토 카리우스는 느리고 육중한 야크트티거를 매우 싫어했으며, 특히 고정식 전투실(포탑)의 전투력 한계와 엄청난 무게에서 오는 변속기와 서스펜션의 고장빈도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1944 7월 말, 전선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중 매복한 적의 공격에 의해 모터사이클이 피격되면서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되었으며, 두달 뒤에는 신형 구축전차 야크트 티거를 운용하는 제512중구축전차대대 소속 중대장으로 부임하여 서부전선의 미영군을 상대로 한 방어전을 전개하게 된다. 비교적 날렵하고 기동성이 좋았던 티거에 익숙했던 오토 카리우스는 느리고 육중한 야크트티거를 매우 싫어했으며, 특히 고정식 전투실(포탑)의 전투력 한계와 엄청난 무게에서 오는 변속기와 서스펜션의 고장빈도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오토카리우스가 탔었던 야크르티거도 타미야에서 제품화 되어 있다  Item No:35307 German Heavy Tank Destroyer Jagdtiger Mid Production Commander Otto Carius 가 바로 그것이다]


 

 

1945 4 15일에 미군에게 항복하였고, 이로써 2차 세계대전에서 그의 역할은 끝났다. 전쟁 기간동안 약 150대의 연합군 전차를 격파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것은 당시 독일군 전차 에이스들 전체에서 2[7]였다. 주로 티거-1에 의해 달성된 전과였다.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도 비교적 젊었던 그는 약사자격증을 취득하여 약국을 차렸다. 전장에서 자신과 함께했던 전차를 기리는 뜻에서 '호랑이 약국'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9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인 지금도 계속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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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카리우스 영감의 최근 모습 독일에서 그가 한때 탔던 타이거의 이름을 딴 호랑이 약국에 약사로 일하고 있는 그의 모습 오토카리우스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전쟁에 참여했었고 종전시에도 불과 그의 나이 25세였기 때문에 형기를 마치고 약사공부에 도전하여 약사로 일했다고 한다]

 

 

전쟁 회고록으로 "진흙탕 속의 호랑이"가 있으며 일본의 유명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책을 바탕으로 동명의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참고로 지금까지도 자신이 티거에 탑승했다는 사실에 매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1992년에 있었던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선 "현대 독일연방군의 레오파르트 전차는 승무원에 대한 배려가 티거보다 떨어진다"며 까기도 했다. (…) [9]

 

 

 

[미아쟈카 하야오 감독과 오토카리우스의 노후의 모습]

 

 

 

이거 내가 현역때 타던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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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 사망했다는 미확인 보도가 있었으나, 아직 살아계신다.

[2] 2차 대전 초기 10개 사단 중 3개 사단(6, 7, 8기갑사단)에 이어서, 1940년 후반에서 41년 사이에 추가 창설한 4개 기갑사단(12, 19, 20, 22기갑사단)은 독일의 전차공급능력 문제로 체코제 전차로 무장했다. 다른 사단들도 기갑사단의 확대개편 과정에서 전차 정수를 절반까지 줄였다.

[3] 진짜 우연한 기회다. 어쩌다보니 잠시 파데보른의 장교클럽 관리관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마침 중대원들과 종종 술자리를 열던 502 중전차 대대 2중대장과 의기투합(...)해서 합류했다.

[4] 티거가 처음 보급되었을 때, 독일 전차병들 대부분의 반응은 "고놈 참 딥다리 못생겼다"였다고 한다. (…)

[5] 다른 소대장들은 부사관이었다. 본래 독일군은 간부 부족으로 부사관 또는 준사관이 소대장을 맡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다.

[6] 소련기가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고도, 같은 방향에서 매일 날아오자 '포만 잘쏘면 맞출수 있겠는대?' 라고 생각하고 매복하여 실제로 격추(...). 전차포로 대공 사격을 해서 실제 격추기록을 새운 매우드문 사례다.

[7] 공인격파기록 150+@. 1위는 쿠르트 크니스펠 상사로 공인격파기록 168+@지만, 비공인 격파기록을 포함하면 카리우스가 200대까지 계산할 수 있어서 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

[8] 호랑이 약국 홈페이지 : http://www.tiger-apotheke.de 현재 파트타임 근무라고

[9] 심지어 회고록의 한 챕터 제목은 "티거 찬양" 이며, 전차의 공격력과 장갑, 기동성의 밸런스가 티거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드러났다고 쓰셨다!

 

출처 엔하키미러

http://mirror.enha.kr/wiki/%EB%AF%B8%ED%95%98%EC%9D%BC%20%EB%B9%84%ED%8A%B8%EB%A7%8C

 

 



두 사람은 각각 연합군 전차 113대, 150대씩을 자신의 티거 1대로 격파해냈다. 야! 신난다~ 단, 비트만의 경우에는 그가 SS소속이었기 때문에 현 독일 연방군에서는 그런거 없다 처리되었다.

2.1.1 개발

포르쉐사와 헨셸사의 경쟁을 통해 개발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헨셸의 안이 채택되어 우리가 아는 모습의 티거가 되었다.

 

 

 

 

[티거전차가 등장하기까지 시험전차들의 모습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수 있다]

 


이때 포르셰사의 책임자였던 포르셰 박사는 당연히 포르셰의 안이 채택될 거라 굳게 믿고, 최종발표가 나기도 전에 총 90대 이상의 차체를 미리 생산해두는(…) 짓을 했다. 결국 이때 생산됐다가 악성재고로 전락한 포르셰 차체는 후에 대구경 대전차포를 얹은 구축전차 '페르디난트/엘레판트'로 나름 이름을 떨치게 된다.

 

 

[포르쉐 박사팀이 개발중이였던 티거전차의 또다른 원형 VK4501(P)의 모습 차체 중앙에 공랭식 디젤엔진을 두어 발전기를 돌리고, 다시 모터를 구동시켜 drive wheel을 회전시키는 electro-mechanical transmission 방식이 적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기존 방식보다 중량이 더 나가게 되었다. 결국 이방식은 복잡한 구동방식으로 최종경합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이때 만들어진 차체를 이용 페르디란트를 제작하는데 이용되었다]


그런데 이 차량들의 경우 구동계에 관한 포르셰 박사의 취향이 좀 독특한 것이, 연료를 태우고 그 에너지로 발전기를 돌려, 발전기가 생산한 전기로 전기모터를 돌려 차량이 굴러가는 방식, 즉 하이브리드 기관이었다. [7]

 

 

 

[드디어 완성된 티거의 시제품   VK4501(H) 의 모습 티거의 전형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는 모습이다]

 

 

[VK4501(P) ProtoType 의 모습 헨셀타입과 는 꽤 다른 형태로 포탑이 앞쪽으로 쏠린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가솔린 엔진을 이용 전지를 총전하고 충전된 전지를 이용 모터를 돌린다는 상당히 복잡한 방식으로 결국 복잡한 방식으로 최종 경합에서 탈락하게 된다]

 


요즘에야 연비 때문에 주목받는 기관이지만, 당시엔 사실 기계식 트랜스미션의 신뢰성 확보가 어려워서 50톤 이상 전차를 움직이려면 부득이하게 이것 이외의 방법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이 방식은 기계식 트랜스미션보다 속도 제어에 유리하며 효율 측면에서도 나름 유리하다. 또한, 얼간이짓으로 악명 높은 마우스 초중전차도 포르셰 설계답게 같은 방식의 동력계통을 채택했는데, 사실 이놈 정도 되면 이 방법이 아니면 제대로 기동시키기도 어려웠다..

 

 

[결국 포르쉐팀과 헨셀팀의 경합의 승자는 헨셀팀의 차량으로 결정나게 되었다. 사진은 막 공장에서 출시되고 있는 시제품 티거 전차의 모습]

2.2 장점

 

 

[새로운 중전차의 정식명칭은 6호전차 H(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H, 열대용 필터 장착)였으나, 6호전차 E(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E)으로 변경된다.]

 

티거는 사각 형태의 전통적인 독일 전차 디자인을 따랐지만 방어력이 아주 사기적이라 연합군의 교전기록을 보면 지근거리에서 발사한 75mm 철갑탄이 수백m씩 하늘로 튕겨져나가는 목격담이 아주 많다.

 

 

 

[새로운 6호전차는 당시의 어떤 전차와도 1:1 상태에서 지지 않을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가진 전차였다]



  • 76.2mm 포탄 11발, 45~57mm 대전차포14발, 14.5mm 대전차총탄 227발, 대전차지뢰 3발... 을 다 맞고도 적을 유린한 후 살아 달아난 티거가 있을 정도다(…). 즉 "괜찮아! 튕겨냈다!" 전설의 원조인 셈.
  • 1943년 1월 10일, 503 중전차 대대의 121호차와 141호차는 각각 적 전차포와 대전차포 250발 이상(....)을 맞고도 버틴 사례가 있다. 소련군이 공포탄만 쐈나.
  • 1943년 7월 12일, 시칠리아에 배치된 504 중전차대대 2중대의 티거 2대는 적탄 100발 이상씩 맞고도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으나 연료가 없어 자폭해야 했다.
사실 찾아보면 이런 예는 일일이 적기가 귀찮을 정도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더구나 생존성 역시 상당해서, 전투불능이 되어도 일단 회수만 된다면 정비 후 재투입이 가능한 경우도 허다했다. 이와 같은 생존성의 확보는 티거는 그 거대한 덩치 때문에 기계적으로 무리가 가는 곳이 많다는 점이 감안되어 대대 단위에 상당히 우수한 정비반이 항상 편성돼 있었던 탓도 크며, 또한 중전차의 가치 때문에라도 부품 생산 및 보급 우선순위가 높았던 탓이다.[8]

화력 또한 최상급으로 당시 최강의 대전차포로 칭송받던 88mm(56구경장)포까지 장착하고 있다. 88mm는 원래는 대공포로 쓰이던 물건인데, 독일군은 이걸로 온갖 걸 다 잡았다. 외계인을 고문하면 원래 이런 물건이 나온다. 직격탄 한 방이면 M4 셔먼 따위야 고철덩이로 만드는 것쯤 식은 죽 먹기.[9]

 

 

 

[티거전차의 주포인 주포인 'KwK 36'은 88밀리 대공포를 전차용으로 개조한것으로 2천미터 거리에서 연합군의 전차를 간단히 격파할수 있었다]

 


포탑의 안정성도 높아서 1,000m 이내에서는 6발 전부를 명중시키는데다가 5발은 연속으로 발사해도 정확한 명중이 가능하다. 24km로 달리면서 1,320m거리의 표적에 5발을 발사했는데 3발이 명중하기도 했다. 이 강력한 88mm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칼 자이스社의 조준기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독일 광학기술이 축적된 조준기 덕분에 티거의 88mm 포탄이 셔먼이나 T-34에게 정확하게 명중시켜서 고철로 만들 수 있었다(아무리 위력이 높아도 안 맞으면 소용없으니…).

 

 

[포수는 주포의 좌측에 앉아 TZF9b 쌍안경식 조준기를 사용했다. 포의 회전은 유압을 이용했으나 미세한 조정은 수동식 핸들을 사용했다]


더군다나 격파 교환비는 기겁할 만한 수준으로 동부 전선의 경우 격파교환율이 10:1을 훨씬 웃돌았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서 티거 하나 잡으려면 T-34KV-1 등이 심하면 10대 이상, 적어도 3~5대는 박살이 나야했다는 소리.(…)

 

 

 

[이후 문제점을 해결한 티거는 크루스크 전투에 150여대가 투입되어 소련의 최신 전차 t-34-76형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치게 된다]



더 처절한 것은 교환비와 실제 교전 격파비율이 다르다는 것.

연료 부족, 기동불능상태에서 견인불가(적군이 밀고 들어오는 등의 사유로) 등으로 자폭시킨 차량수가 더 많은 사례가 부지기수... 실제로 순수한 전투손실비는 가장 전과가 나쁜 부대도 5:1 이상, 가장 전과가 좋은 부대 중에는 20:1을 넘은 곳도 있다고 한다. 아래의 수치에서는 전차만 기록하지만 덤으로 대전차포 수천문도 때려잡았다. 특히 502, 503, 504 중전차 대대의 전과만 합해도 5000문(!)에 달한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서도 티거의 활약은 대단했는데 당시 이에 맞설 전차가 없었다 영국군및 미군등 연합군은 공식적으로 티거를 만나면 도망쳐도 좋다는 아이젠아워 당시 총 사령관의 허락을 받기에 이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젠하워 원수는 아예 대놓고 "독일군 전차, 특히 티거 시리즈의 손실은 대부분 항공공격, 혹은 독일 전차병들이 직접 파괴시킨 경우에 한한다. 우리의 전차는 티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연합군 최고 사령관까지 이런 평가를 했으니…….

 

 

 

[회의중인 전차장들 이때부터 일부 전차병들은 유보트용 가죽자킷을 입기도 하였는데 이는 멋이라기 보다는 피탄시 가죽캐칫이 화염으로 부터 승무원을 보호해주는 역활을 탁월했기 때문이다]


가격 대비 성능 비율로 보자면, 티거는 대당 30만 라이히스마르크로 4호 전차(12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비하면 대략 세 배, 판터(15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비해 2배에 조금 못 미치는 가격이다. 그러나 티거가 1943년 한 해동안 때려잡은 적 전차 및 자주포는 약 5천여 대, 같은 기간 소련군이 잃은 전차 및 자주포는 총 2만 2천 대로 티거가 독일군 전차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생각하면 가격 대비 성능 또한 매우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한가지 유의할 것은 이 티거의 가격은 평균가라는 점이다. 티거 극초기형은 80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달했는데, 소량생산[10]과 노동자 숙련도 부족 등이 원인이었다. 이후 생산량이 늘고, 노동자들이 숙련된 중, 후기형까지 합쳐지면서 평균가가 하락하였다.[11]

 



모든 티거 운용 부대의 전체 교환비

이 표에서 제시하고 있는 티거의 손실(Losses)은 연합군 전차 뿐만 아니라 항공기 폭격, 야포 등에 의한 다른 전투손실을 비롯해 유기, 승무원에 의한 자폭까지 포함한 티거 총손실이다. 전차 대 전차의 순수한 교환비는 앞서 말했듯 1:10을 넘는다.

 

 

 



또한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유압식 조향장치, 반자동 트랜스미션 그리고 효율적인 토션바 서스펜션의 도입으로 56톤 덩치에 비해 사기적으로 경쾌한 조작성능을 보여주었다.

 

 

 

 

 

 

[티거전차는 전통적인 토션바방식과 오버랩 방식의 현가장치를 이용하였는데 이것은 바퀴를 여러개 겹쳐 전차의 하중을 지탱하는것으로 57톤이 넘는 티거의 경우 당시 기술로는 적합한 방식이였으나 이로인해 차체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제작단가나 방법도 복잡해지는 이유가 되었다]


참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4호 전차(28톤)보다 오히려 더 기동성이 좋은 면도 많았고, 처음 T-34와 동계전투에서 교전한 전차병들은 심지어 T-34보다도 기동성이 좋다고 느꼈을 정도다. 얼마 안 되는 42년 동계전투 티거 운용 경험자 거의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느낀 탓에, 이런 느낌이 반영된 보고서가 공식적으로 상부에 올라갔다고.

사실 티거의 최고속도는 이론상 45km/h로, 사실 최고속도는 T-34에 별로 안 꿀린다. 야지 기동성에서도 무리해서 굴리면 비슷한 속도를 낼 수도 있다.[12]다만 그 뒷감당을 해야 하는 정비병들은 조종수와 차장을 진짜로 때려죽이고 싶어질 정도가 되는 게 문제였을 뿐이다(…). 더군다나 전차전은 카 레이싱이 아닌지라 단순히 최고속도나 중량대비 출력이 전부가 아니다. 광폭의 궤도로 회전반경이 적었고 조향장치가 훨씬 고급이었으며,(무려 유압식 파워핸들이다!) 전/후진 기어도 더 다양했다. T-34의 조향능력이 어찌나 한심했는지 독일군 사이에선 "오리 궁뎅이(…)"라고 불릴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부분..[13]

 

 

 

 

[티거 1 초기형은 마이바하 HL 210 P45 650마력 엔진을 장착했다. 이 엔진은 배기량 21,000cc V 12기통 가솔린엔진으로 당시 전차용 엔진으로는 강력한 엔진이였으나 무게57톤의 티거를 움직이기에는 다소 출력이 모자른 엔진이였다]

 

 

[대전중반부터는 출력이 강화된 HL 230 P45로 교체되었는데 이후 출력부족 문제는 조금 나아지긴 했다]


심지어 오토 카리우스 영감님은 그의 회고록에서 전차의 화력과 방호력, 기동성의 이상적인 조합은 티거에서 현실화되었다고 기록했다. 사실 카리우스 영감님은 티거를 타기 이전까지 대전차총에도 숭숭 뚫리는 38(t)에서 생사를 넘나들었으니 티거에 감탄하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전설의 전차에이스의 평이다. 판단은 자유.

2.3 호랑이를 잡아라!

 

 

[동부전선에 급파된 티거의 모습 티거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전차였으나 히틀러의 고집으로 동부전선에 3량이 투입되어 격파되거나 노획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당시 미군의 對티거 교전 전술은 거의 반쯤 카미카제 수준으로 셔먼 또는 대전차 자주포를 최소 5대 투입하여 4대가 떡밥이 되어 티거의 시선을 끌고, 그 사이 한 대가 티거의 배후나 측면으로 숨어 들어가서 지근거리에서 기습하는 것이었다.

 

 

 

[티거를 정면에서 맞설 전차는 연합군에 거의 없었다. 물론 대전 후반에는 이를 맞설 전차들이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티거들은 연합군의 공중지원에 의한 피해가 막심했다]


문제는 이 방법도 티거가 달랑 한 대 있을 때나 가능한 수법이다. 소대급이라면 상호 엄호가 되기 때문에 투입되어야 할 전차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우회거리 역시 수 배 이상 늘어난다. 그러고도 기껏 돌고 보니 적 전차 몇 대가 이쪽으로 딱 정면 드러내고 씩 웃는 일이 일상다반사티거 잡으려고 돌아갔더니 판터가 날보고 웃고 있네?. 게다가 독일군의 대전차전 능력은 연합군보다 더 뛰어나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orz

 

 

 

[57톤에 달하는 티거가 바박을 위로하고 뒤집어진 모습 이는 공중에서 공격외에는 이 육중한 전차를 뒤집어 놓을 방법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방법은 티거가 혼자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만사가 다 잘된다는 최상의 경우라도 최소한 셔먼 1대 이상이 손실되는 것은 일상다반사였고, 이렇게 하고도 한 대도 잡지 못하고 5대가 다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물론 셔먼을 타고 단독으로 티거를 몇 대씩 때려잡은 미군 전차장도 존재한다. 다만 이 경우 교전거리는 아무리 멀었어도 90미터 이내(…)였다.

게다가 독일군도 바보는 아닌지라, 나중에는 티거를 앞에다 세워놓고 이걸 잡으려고 달려드는 셔먼을 양옆에 매복시켜놓은 판처파우스트로 박살내버리는 낚시까지 선보이게 되었다. 결국 최종수단은 공군의 야보(Jabo)를 소환해서 뚜껑을 딸 수밖에...없었지만, 그나마도 둔중한 차체에 비해 기동성 자체는 좋은 편이니 항공기 공격을 제대로 받기 전에 어디론가 싹 숨어버리니 이것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특히 완전한 개활지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지형에선 공군으로 두들겨 패기도 쉽지 않았다.[14]

 

 


따라서 티거와 싸우고 싶다면 보병, 포병, 전차, 항공까지 총망라된 제병연합작전이 필요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면 살았든 죽었든 영웅이 대량으로 나오든가.(...) 그나마 76.2mm탑재형 셔먼이나 파이어플라이는 티거를 잡을 수 있었지만, 전자가 대량으로 나올 때쯤에는 이미 독일군 장갑 부대 자체가 거의 씨가 말랐고 여전히 전반적인 공수주에서 밀렸으며 후자는 이론상 관통력은 매우 뛰어났지만 그래봐야 맷집은 론슨 라이터인데다 명중률이 쓰레기 수준인지라 연합군 전차병들한테 공포의 존재라는 건 변함없었다.

 

 

 

[초기 티거 전차는 이를 격파할 전차가 거의 없을정도로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였지만 대전중빈에 이르면 티거전차를 위협하는 전차포가 개발된다. 영국군의 17파운드포가 그중 하나로 영국국은 이 포를 셔먼전차에 장착하여 운용하였는데 긴포신을 가진 이 전차를  파이어플라이라 불렀다 .파이어플라이가 장비한 영국제 17파운드 포는 보통의 APCBC탄을 쏘면, 1,000미터 이상에서 티거의 정면을 뚫을 수 있었으나 이 포는 탄도변화가 심해 명중률이 극히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덤으로 셔먼을 학살해대는 티거 때문에 너무너무 뿔난 (유럽 전선의)연합군 측은 티거와 맞서 싸울 M26 퍼싱 전차를 들고 오긴 했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에나 배치되는 바람에 실전을 많이는 치르지 못했다. 영국은 센추리온을 준비했지만 개발이 늦어져 2차대전에 투입하지는 못했고 결국 남은 건 파이어플라이 뿐. 43년부터 45년까지 2100~2200대 정도가 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되었고. 1945년 5월 경에 남아있는 파이어플라이는 1,350대 정도였다.

 

 

 

[파이어플라이가 장비한 영국제 17파운드 포는 보통의 APCBC탄을 쏘면, 1,000미터 이상에서 티거의 정면을 뚫을 수 있었으나 이 포는 탄도변화가 심해 명중률이 극히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어찌되었던 티거전차를 원거리에서 격파할수 있는 전차가 있다는 소문이 돌자 독일군은 포신이 긴 셔먼전차는 보는즉시 우선 격파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이를 막기위해 연합군은 위장을 하던지 포신 부분에 백색 페인트를 칧 포신을 짧게 보이게 하려는 노력등 각고의 노력을 하기에 이른다]

 

[티거를 무적의 전차라 부르지만 따지고 보면 완벽한 무적이지는 않았다  이 전차 역시 근거리에서 피격되면 관통디거나 격파가 가능했으며 이처럼 관통 가능한 위치를 책자로 만들어 보급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퍼싱의 경우 늦게 투입된 것에 비해 교전은 자주 일어난 편이라서, 티거와 정면으로 격돌해 격파한 사례가 있다.

 

 

 [대전후반에 이르면 엽합군에서도 티거에 맞설 전차를 개발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미군의 M26 퍼싱 전차였다 강력한 90mm 주포를 탑재한 이전차는 유일하게 티거를 정면에서 맞서 이길수 있는 전차로 대전 후반에 티거와 맞붙기도 했다. 결과는 판정승.. 티거의 88밀리 주포에 맞은 퍼싱전차를 이처럼 주포가 나가고 포방패의 일부가 파손되었다, 이 전차와 맞선 전차는 이어 동료전차에 의해 피격되어 불타올랐다고 한다]

2.4 생산량에 대한 말들

단 한 가지 형식만 사소한 개량을 거쳐가며 생산된 티거의 총 생산대수는 약 1,350대로서, 중전차임을 감안해도 연합군의 동급 차량 생산에 비해 부족한 편이었다. 모든 차종의 전차 생산량을 합계할 경우 독일이 5만, 소련이 7~8만이다. 그런데 중전차만은 독일이 2천, 소련이 1만을 넘는다. 소련이 중전차를 독일보다 2년 정도 먼저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해도 확실히 생산량 격차가 특히 큰 편이다. 하지만 당시의 양 군의 편제를 고려해 보면 독일군은 GD사단이나 무장SS의 극소수 정예를 제외하면 중전차를 독립 전차대대에 집중 배치한 반면 소련군은 41년도 편제상 KV중전차를 전차사단 당 63대를 보유하게 되어 있었으며, 이들이 해체되고 전차부대가 여단 단위로 재편되는 와중에도 편제상 중전차의 비중이 상당했다. 따라서 애초에 요구하는 수요가 다른 만큼 단순히 생산 대수로 따질 문제는 아니다.

 

 

 


더군다나 전쟁에 쓸 장비의 대량생산은 그 장비의 생산성 자체보다는 오히려 해당 국가의 중공업규모와 자원, 생산 설비 및 노동력의 수급과 배분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나머지는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

물론 티거가 당시의 전차중에서 가장 크고(많은 원자재 소모), 매우 고급 차량(생산 인시가 큰)인 것은 확실하지만, 애당초 독일의 산업능력은 다른 상대국, 특히 미국에 비하면 매우 열세했다. 더구나 상호간의 협력이 비교적 원활했고 다들 한가락 하는 강대국인 연합국과는 달리 독일의 동맹국들은 잉여거나 나름 열심히 싸워도 세력에 한계가 있는 중소국가라 도움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자기네 사정도 안습인데 형식상으로나마 지원을 해줘야 했다. 당장 독일이 아프리카에 발을 들여놓은 건 원래 괜히 사자의 콧털을 건드렸다가 엉덩이에 불이 난 이탈리아를 도와주려던 거였다. 어떤 사막의 여우 아저씨가 닥돌을 해서 일이 커진 거였지...

 

 

 

[152mm Howitzer-gun M1937 (ML-20)를 장착한 구축전차는 KV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SU-152와 IS 전차를 이용한 ISU-152로 구분되는데 두 전차다 장갑은 뛰어났으나 엄청나게 느리고 거의 좌우 회전이 어려어 매복 공격하는 방어적 전술을 주로 썼다. 특히 포탄과 장약이 분리되어 장착되는  152mm Howitzer-gun M1937 (ML-20) 포의 특성산 분당 3~4발 (실제로는 분당 2발도 쏘기 힘들었다)밖에 발사할수 없었고 그나마 대전차용으로 개발된 포도 아니여서 탄속이 느리고 거의 곡선을 그리며 발사되어 한번에 명중시키기가 여간어려운게 아니였다고.. 다만 구경이 구경이니만큼 일단 맞기만 하면 어떤 전차로 한방에 보내는건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 독일은 육군과 공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해군에도 매우 많은 자원을 투자했다. 당장 유보트가 1000 척 이상 건조되었는데, 이중 거의 70%를 차지하는 유보트타입 VII 1척의 가격은 티거 5대에 육박한다! 더구나 어뢰 한 발당 가격은 당시 기준으로 약 2만 5천 마르크였는데, 판터 한대가 얼추 10만 마르크를 약간 넘는다는 생각해보면 해군에 투입한 자원은 절대 무시할 수 있을 수준이 아니다.

결국 티거의 생산량이 적은 원인은 그저 비싸고 복잡한 사치품이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열세한 생산 역량[15]과, 그런 상황에서 전 지구적 소모전을 자초한데다, 그나마 있는 여력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한 나치 독일의 정치력 문제다. 당장 티거보다 훨씬 저렴한 4호 전차는 파생형을 모두 합쳐도 1만대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다 이래서 윗물이 맑아야 한다는 거다.

2.5 운용상의 문제에 대한 말들

티거의 경우 운용상 난점에 대한 말이 많고 가동률 자체가 낮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한데 이런 자료를 보면 아예 여타 독일 전차들보다 티거의 가동률이 높을 때까지 있을 정도로 세간의 인식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즉 총 차량 숫자 대비 운용가능 차량 숫자를 따져보면 무난한 수준. 전시 가동율이라는 통계가 갖는 허상 때문에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게 퍼졌는데, 사실 티거의 가동율이 낮다고 까이는 시기를 보면 다른 전차들의 가동율은 훨씬 낮고 이중 대부분은 애초에 정원조차 채우지 못한 상태인 탓이 크다. 아예 대파돼서 회수, 공장에 들어간 장기수리 차량도 대대/연대 보유 차량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되었는가 하니, 티거는 56톤이라는 현대의 주력 전차급 무게를 가지고 있었지만 수냉 V형 12기통 마이바흐 HL210(650)마력을 장착하면서 톤당 마력 비율은 4호전차보다 더 나은 수준이었고, 배기량을 늘린 수냉 V형 12기통 마이바흐 HL230(700마력)으로 바꿔 장착하면서 톤당 마력은 4호전차를 완전히 상회할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티거는 무거웠으나 외려 접지압 면에선 M4셔면보다도 수치가 낮다. 즉 무게는 무거우나 엔진과 차체에 걸리는 하중은 충분히 커버 가능하고 남는 수준이었던 것.

거기다 티거는 제작 당시 트랜스미션부터 엔진까지 여러 모로 품질 면에서 공을 들여 만들어졌고, 이는 험한 운용 상황에서도 티거가 견뎌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티거가 운용하기 쉬운 전차인 건 아니다. 티거의 경우 필수 정비가 상당히 어려웠다. 기계적으로만 복잡한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힘들었다. 오버랩되어 있는 전륜의 경우에는 하나의 교체를 위해 최대 9장까지 제거 해야되는 경우도 빈번하고 무게를 받칠 잭과 크레인이 흔치 않은 관계로(혹은 동부전선에 많았던 진흙탕의 경우 잭과 크레인이 있어도) 차체 밑으로 땅을 파고 내려가서(…) 정비를 해야 하며, 트랜스미션 점검만 하려고 해도 포탑을 들어내고 트랜스미션을 통째로 꺼내야 하는 등, 중장비 없이는 정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정비병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게다가 티거는 악화되는 전황속에서 소방대로 끊임없이 여기저기에 불끄러 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다른 전차들에 비해서 소수가 혹사당하는 와중에 유지/보수/점검에 할애할 시간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저쪽에서는 T-34나 M4들이 꾸역꾸역 몰려오는 상황.

 

 

 

 

 

 

 

 

 

 

[티거는 특유의 오버랩 방식의 현가장치를 이용하엿기 때문에 독일의 철도에는 규격이상으로 사용할수 없었는데  티거의 캐터필러는 725mm에 달하는 광폭이었으므로, 이것을 실을 경우 화차보다 폭이 넓어지게 되었고, 따라서 520mm짜리 수송용 캐터필러가 별도로 필요했다. 이때는 또 바깥쪽의 로드휠 8(한쪽 4개씩)를 떼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것을 떼어내고 장착하는 일은 일일히 손으로 해야했기 때문에 승무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중 하나였다]


거기다 무게가 있다 보니 퍼진 티거를 같은 티거로 견인하려 들면 견인하던 티거도 퍼질 확률이 있기에 티거로 티거를 견인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했다. 운용 교범상에는 정비대 표준장비인 18톤 트럭 3대를 이어서 견인토록 했으며 후기에는 베르게판터 등의 중전차 회수차량으로 견인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18톤 트럭 숫자도 적은데다 방어력의 문제로 전선 가까이까지 끌고 오기는 좀 골룸했고, 베르게판터는 수가 적은지라 그냥 다른 티거로 견인하는 사진이 많다. 빌레르 보카쥬 전투 직후 231호차를 다른 티거로 견인하는 유명한 사진도 있고... 동부전선 한정으로 전투시 파손된 티거의 포탑을 떼어 견인차량으로 사용한 베르게 티거도 있었으나 페르디난트/엘레판트 운용대대의 포르쉐 타입 티거를 개조한 베르게 티거 외에는 전부 현지 개조품으로 육군에서는 이를 엄격히 금지했다. 전쟁 말기가 되면 마땅히 견인할 수단과 시간이 없어 고장난 티거는 바로 방치/유기되기 일쑤였다.

 

 

 

 [티거를 정면에서 맞설 전차는 연합군에 거의 없었다. 물론 대전 후반에는 이를 맞설 전차들이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티거들은 연합군의 공중지원에 의한 피해가 막심했다]

 


  • 이 고증을 따라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테일즈 오브 밸러의 캠페인중 하나인 '티거 에이스' 첫 미션에서 엔진이 고장나서 가만히 앉아서 수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툭하면 발생한다. 오죽하면 미션 도중에 "슬슬 엔진 나갈 때가 됐는데..."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행히도 승무원이 나가거나 하진 않고 차내에서 수리하는데다가 이 캠페인에서 티거는 전차 무쌍을 찍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독일은 티거 생산 과정에서 철저하게 품질 관리를 함과 더불어 중전차 대대 정비대에 최대한의 지원을 해서 운용상의 난점들을 가지고도 티거가 버틸 수 있게 했고, 그것이 좋은 가동률의 이유가 되었다. 사실 4호 전차나 판터라면 연대까지 가야 있는 정비중대가 티거는 대대급부터 붙고, 훨씬 높은 우선순위로 정비부품 및 기타 소요 물자를 지급받을 수 있으니 가동율이 올라가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만큼 더 혹사당했다

 

 

 

 

[티거전차는 전통적인 토션바방식과 오버랩 방식의 현가장치를 이용하였는데 이것은 바퀴를 여러개 겹쳐 전차의 하중을 지탱하는것으로 57톤이 넘는 티거의 경우 당시 기술로는 적합한 방식이였으나 이로인해 차체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제작단가나 방법도 복잡해지는 이유가 되었다]

2.6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전후에는 판터4호 전차처럼 주변국/신생국에 보상 공여되지도 못했는데, 이는 티거 아인스의 경우 1945년 4월 이전에 가동 가능한 차량 자체가 거의 남지 않을 정도로 계속 소모에 소모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베를린 전투에 참가한 차량도 있는 등, 최후의 한 대까지 전투가 가능한 상태라면 어떻게든 전투에 투입하고 봤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1942년말 북아프리카에 파견된 501중전차대대소속의 차량들은 데저트옐로루 (RAL 8020)으로 도색되었다. 데져트옐로우는 티거전차의 거의 표준도색으로 불리는 색으로 여기에 녹색의 거느다란 선이 더해지거나 갈색이 추가되기도 하면서 점차 다양한 위장패턴이 등장하게 된다]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노획된  영국 보빙턴 전차박물관의 Tiger- 1 현재 유일하게 가동되는 진짜 티기전차이다]


그나마 노획 후 전시된 차량들이 미국과 영국, 러시아에 각 1대씩 있다. 미국과 영국은 티거는 북아프리카에서 노획한 이후 추가 노획하지 못했고, 소련은 1942년부터 줄줄이 노획했지만, 보존 중인 것은 단 1대 뿐이고 나머지는 노획할 때마다 실험 및 선전용으로서 각종 화포의 표적판으로 써먹은 탓에 원형 자체를 유지 못 했다고 한다. 물론 독일 군사박물관에도 1대가 전시 중이다. 한편 영국의 보빙턴 전차 박물관은 전 세계에서 오리지널 부품을 긁어모으는 근성과 눈물의 복구 작업으로 보유한 티거 초기 생산분(북아프리카에서 노획한 바로 그놈!)을 가동 상태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이 차량은 매년 전시회 등에서 공개, 거기까지 찾아올 정도로 그 쪽 바닥을 잘 아는 인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단, 원래 북아프리카에서 노획했던 상태를 완벽하게 재현한 건 아니다.[16]

2.7 티거피벨

Tigerfiebel

 

 

Tigerfibel

 


티거에 탑승할 전차병들을 위해 만들어진 메뉴얼로. 티거에 모에선을 쬐면 나오는 엘비라 티거라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 여성의 비위를 맞추는 법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서, 티거 전차를 다루는 법에 숙달되도록 이끄는 것이 이 책자의 목적이다. 농담같지만 정식 채용된 진짜 매뉴얼이다.[17]

모에! 전차학교 3권에는 티거피벨의 현대판이 수록되어 있으며, 티거피벨을 공식적으로 채용한 하인츠 구데리안의 위업을 찬양하고 있다. 과연 덕국. 독일의 메뉴얼은 세계 제이이이이이일!

2.8 파생형

 

 

 

슈투름티거(sturmtiger) : 티거의 차체에 큼지막한 전투실을 얹고, 여기에 해군에서 대잠폭뢰발사기로 쓰던 380mm 로켓포를 장착한 시가전용 돌격전차. 티거 이상의 두꺼운 장갑을 갖고 있어서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꿈쩍하지도 않으며, 38cm 로켓발사기는 애초에 포격 대응 목적으로 구축한 장갑화 강화콘크리트 요새를 제외하면 포격에 가장 강한 구조물인 적벽돌을 두껍게 쌓아 만든 거대한 건물도 일격에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전훈에 따라 이와 같은 시가전용 돌격전차의 개발에 비교적 적극적이었는데, 그 결과물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것이 바로 이 슈투름티거.

 

 

 

 


일단 티거 섀시의 생산량 자체가 적어 조달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에 전선에서 파괴되어 포탑이 날아간 티거만 회수해서 개조하기로 결정되었고, 그 덕에 생산량은 18대에 그쳤다. 여기에 박차를 가한 것은 이 녀석이 나올 당시에 독일군은 후퇴 중이었다는 점으로, 덕분에 공격전에 쓰려고 만들어진 이 돌격전차를 써먹을 곳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이 놈은 티거보다도 무거워서 고장이 빈발했고, 38cm 로켓발사기를 재장전하려면 상판을 열고 크레인을 써서 포탄을 들어올려야 했기에 10분씩이나 걸렸다. 그리고 전장에서 상판을 열 경우 연합군의 반응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래도 로켓포의 화력만큼은 대단했기에 전장에서 일격으로 셔먼 전차 3대를 날리기도 했지만, 수가 너무 적고 느린 데다가 연료도 부족했고 고장도 잦은 탓에 거의 모두 자폭했다.

 

 

2.9 총평

이래저래 문제도 많았지만, 한마디로 전차의 로망이 실체화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다른 병과의 강력한 지원을 받기는 커녕 기본적인 연료와 탄약마저 부족하고 아군은 전반적으로 무너지는 상황속에서 당시 세계 최강급 강대국들이 보유한 대다수의 전차들을 일방적으로 때려잡은 물건이다. 그런 주제에 57톤에 달하는 거대한 중전차의 기동성이 30톤급 중형 전차와 비슷하거나 더 우월하다! 이러니 외계인 고문 드립이 나오는게다. 그저 조국을 잘못 만나 침략자의 편에서 최악의 전쟁에 투입된게 불행이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유사한 외모 덕 좀 봤다는 4호 전차 H]



1990년대에 생존한 2차대전 참전 전차병 100명을 무작위로 고른 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때 어떤 전차를 골라서 돌아가겠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100명 모두 티거를 골랐다는 도시전설이 전해진다. 러시아인은 물어볼 것도 없다는 투로, 미국인은 당연한 걸 물어본다고 째려봤다고.

 

 

 

 

 

 

 

[오토 카리우스가 소속된 부대는 제502중전차대대(그 중 제2중대의 소대장)로써, 1942년 겨울 레닌그라드 방면에서 최초로 티거를 실전에 운용한 부대이기도 했다.]

 

 

 

[오토카리우스는 보기에는 왜소해 보여도 일단 전투에 들어가면 어떤 전차장보다 용맹했는데 가장 유명한 전투로는 나르바 방어전과 "오토 카리우스판 빌레르-보카쥬 활극"이라 일컬어지는 마르나파 전투가 있다. 이 전투에서 카리우스는 단 8대의 티거로 선발대인 소련전차 22대를(JS-2 17, T34/85 5) 격파하고, 적 여단장의 시신에서 기동계획이 표시된 지도를 노획하고는 후속하던 본대 28대의 적전차를 매복으로 섬멸, 소련군 일개 전차여단을 쓸어버렸다. 이 전과로 오토 카리우스는 백엽 기사검 철십자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자칫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그의 행동은 그의 명성을 천하에 알리는 전설과 같은 일화가 되었다]

 

2.10 매체 속의 티거

Fate/stay night타이가 도장에서는 제자 1호가 몰고 나온다.

제로의 사역마에서는 간달브의 창으로 소환된것으로 등장. 스퀘어급 골렘조차 상대가 안되는 초강력 골렘 요르문간드 수기를 간단히 떡실신 시켜버렸다. "지구를 얕보지마 판타지!"'[18][19]

문명 5에서 팬저의 기본 모델로 등장한다. 4에서는 판터가 팬저모델이었는데.... 진화? (기본 탱크가 티거라니?)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후반부 다리 사수 작전에 2대가 등장한다.[20] 1대는 양말 폭탄(...)을 맞고 무한궤도가 끊어진다. 다른 1대는 다리를 건너는가 싶다가 밀러 대위의 권총을 P-51의 폭격을 맞고 폭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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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휘 전차는 공축기관총을 제거하고 추가 무전기를 장착했으며 탄약수가 조작한다.
[2] 독일어로는 '티거 아인스'
[3] 근데 일본에서는 어째서인지 티게르라는 표현이 더 많다.
[4] 원어 발음은 티이거에 근접하지만, 한글외래어 표기법장음 표기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티거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다.
[5] 미하엘 비트만이 티거 에이스로서의 능력을 처음 보인 게 이 때.
[6] 한 예로 이 무렵 티거 2대가 T-34 수십여대와 교전하여 16대를 격파하자 나머지 소련 전차들이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을 추격하여 18대를 추가로 격파했다.
[7] 사실 이양반은 1901년에 이미 하이브리드 기관을 이용한 자동차를 만든 바 있다. 괸히 천재 엔지니어로 불리는게 아니다.
[8] 덕분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판터만 밀린다.(1945년 1월 가동률은 티거가 58%, 판터가 45%이고. 그 외 듣보잡들은 지못미)
[9] 3.000m 대 에서도 관통당한다.(그 당시 원시적인(현대에 비해서) 조준장치로는 2.500m대는 거의 럭키샷 이라는걸 생각하면 대단한거다.) 그리고 T-35/85는 포탑 후면을 제외하고도, 2,000m 이내에 관통 당한다.
[10] 티거 초기형은 1942년 8월부터 1943년 6월까지 347대가 생산, 중기형은 1943년 7월~1944년 1월 동안 478대 생산, 후기형은 1944년 2월~1944년 8월 동안 530대 생산.
[11] 당대 독일의 야금 기술과 차량 기술의 정점인 티거나 판터가 싼 이유는. 당시 독일은 전시준비를 위해 1930년대 후반부터 철저한 배급제를 유지를 했고, 본국이나 동맹국 국민에게 강제적인 노동을 시킨 덕분에 돈(임금)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12] 야지 기동성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수준, 즉 20km/h 정도였다. 다만 트랜스미션 및 종감속기에 가해지는 부하의 강도는 전차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큰 편이었고, 그런 점에서 이론상으로는 T-34보다 티거의 야지 기동시 부담이 더 큰 게 정상이었다. KV라면 티거보다 더 사정이 나쁘기 십상이고... 그런데 현실은 부품의 품질유지 및 설계상 배려 문제, 그리고 승무원들의 숙련도 때문에라도 티거가 T-34보다도 나은 편이었다. 물론 제대로 정비가 될 때 한정으로.
[13] 모에! 전차학교에서는 속도와 기동성을 하나의 개념으로 뭉뚱그려서 표현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티거의 기동성이 낮다고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헛소리.사실 속도=기동성으로 싸잡아 표현한 듯 하다.
[14] 물론 티거를 전술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몰아낼 수 있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셔먼이 우세해진다고 보기는 어려웠다.오히려 티거를 빡치게 만들수도
[15] 미국과 소련이 셔먼과 T-34생산을 위해서 십여 개가 넘는 공장을 가동한 것과는 달리 독일은 6천량 남짓한 판터 생산을 위해 3개 공장을 가동했고, 티거에 이르면 단 1개 공장만 가동했다. 만약 티거 생산공장이 3개였다면 티거의 총생산수는 최소한 4천대에 이를 것이다.
[16] 엔진이 다르다. 노획 당시엔 HL210이었지만 당장 가동 가능한 엔진은 전부 티거II용 HL230이었어서 부득이하게 HL230을 탑재했고, 원래 탑재돼 있던 HL210 엔진은 컷오프 전시물로 전용했다.
[17] 탈것(배, 자동차 등)을 여성화시켜 부르는 서양 문화에서는 모에화(?) 자체는 특별할 것 없지만, 이런 매뉴얼이 군에서 정식 채용된 매뉴얼이란 것이 놀라운 점이다.
[18] 13권 일러스트에서는 헨셀형 포탑의 티거 2가 그려져 있지만 14권 일러스트에서는 티거가 그려져 있다. 어느것이 진짜?
[19] 파이퍼 전투단으로 유명한 SS 501 중전차 대대에서 314, 324, 334 세 대의 티거 2가 탑승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일러스트의 324호차가 어쩌면 혹시나...
[20] 라이언 일병 구하기켈리의 영웅들에서 등장하는 티거 전차들은 T-34전차의 외형을 개조해서 만든 모조품들이다. 오리지널에 비해서 포탑이 약간 앞에 달려 있는 점이 포인트.
[21] 이 부분은 의역이다. bounce는 '통통 튄다'와 '활기가 넘치다'라는 뜻이 있고, trounce는 '완파하다', flounce는 '여봐란 듯하다', pounce는 '공격하려고 덮치다'라는 뜻.

 

출처 http://mirror.enha.kr/wiki/%ED%8B%B0%EA%B1%B0

 

실차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를 이용해보자..!!

 

 

 

 

 

 

 

 

Gruppe Fehrmann, Essel 1945 페르만 교도대는 독일의 페망이 가까웟던 1945년 독일 전차 교도단 (전차병을 가르치는 학교인듯..) 소속 부대원들이 물밑듯이 쳐들어오는 연합군을 막기 위해 급조된 부대였습니다.









이 부대는 전선에서 피탄되거나 고장난 티거를 조합하여 하이브리드 타입으로 제작된 티거 전차를 사용했음을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습니다.


이를 재현한 제품이 바로 이번 제품입니다.

 

 

 

1.박스 및 외형

 

 

[약 43X39X7 센티 가량의 제법 큰 박스 입니다. 박스아트는 상당히 예술적으로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이 제품은 한정판 입니다. 나중에 구할려도 없어요.. 얼른 구해두세요..]

 

[박스 측면에는 하이브리드 타입이라는 일러스트가 선명합니다.] 

 

 

[이번제품은 정말 박스디자인이 잘 나온것 같습니다. 박스만 봐도 하나 지르고 싶은 마음이...]

 

2.내용 및 특징

 

[제법 큰 박스인데 내용물이 가득합니다.]

 

 

[구성품은 앞서 소개했듯 중기형에 후기형 그리고 1996년에 나온 초기형 부품의 올스타 구성 입니다.]

 

 

부품구성은 11개 런너에 약 290여개 부품구성 입니다.

 

(1) 휠 및 궤도

 

[휠은 기존부품 (96년도 출시된 전기형) 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후 드래곤에서 결정판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빛이 바램감이 없지 않치만 형태나 디테일은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원판이 타미야 제품이라 그런지 디테일이나 사출상태는 꽤 좋은편

 

 

 

[스프로켓 휠 아이딜러 휠의 디테일도 좋습니다.]

 

 

 

[현가장치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작동상태로 만들수 있습니다.]

 

 

 

 

[궤도는 아쉽게도 수지 궤도가 들어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연결식 궤도가 있지만 아마 전기형 궤도일겁니다.  단가 때문에라도 연결식 궤도를 안넣어주겠지만..]  

 

 

수지궤도이지만 디테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탄성도 예전 그 수지궤도와는 달리 그리 쎄지 않은편 이지만 역시 드래곤의 DS 궤도와는 다릅니다.] 

 

 

현가장치는 구형제품에 들어있는 현가장치외에 중기형 제품용 현가장치가 따로 있습니다.


 

(2) 차체

 

 차체는 슬라이드 금형으로 통사출되어 있습니다.


 

 

 

 차체는 1996년 내부재현용으로 나온 전기형 부품을 그대로 유용하고 있습니다.



 

 차체 상판은 별도 런너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차체 상판 역시 1996년 출시된 전기형 부품을 유용하고 있습니다. 원래가 엔진까지 재현된 제품이라 엔진테크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사이드 스커트와 차체 부품도 구형제품을 그대로 유용중~~



 

 

이 제품이 첫 출시된게 1995년 20년전 제품인데도 디테일이나 사출상태가 살아 있습니다. 살아있네~` 살아있어~~



 

 


PT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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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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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서누기 [이선욱] | 작성시간 15.11.26 멋지네요
    근데 티거2, 킹타1이 집에서 아직도 잠자고 있어서...
  • 답댓글 작성자mirageknight [왕성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1.26 def 모델에서 나오는 찌메릿 스티커가 별매로 판매예정이라 이것만 있어도 후딱 만들겁니다. 아카데미 티거는 조립성이 아주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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