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CHURCHILL MK3 AVRE [1/32 AFV CLUB MADE IN TIWAN]
작성자mirageknight [왕성국]작성시간09.02.11조회수862 목록 댓글 10안녕하세요~ 미라지나이트 입니다.
올 2월말 출시예정인 CHURCHILL MK3 AVRE 가 발표되었습니다.
처칠 전차(Churchill tank)는 2차 대전에서 활약한 영국 전차로, 1차 대전이후 개발에 관여해온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영국 수상의 이름에서 따왔다.
최초의 구상(A20)은 마틸다 II(Matilda II)와 발렌타인(Valentine) 같은 보병 전차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1차 대전의 참호전을 겪은 영국은 폭발로 인한 구덩이나 철조망과 같은 장애물에 구애받지 않고 기동하여 적의 방어 거점을 타격할 수 있는 전차의 개발을 원하였고, 이 때문에 기동성이나 강한 화력은 우선 고려 순위가 아니었다.
A20 ProtoType
A20은 할랜드 앤 울프(Harland and Wolff)사에 제작이 의뢰되어 1940년 6월 4대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는데, 양 측면과 포탑에 각각 하나씩의 2 파운드 포를 장비한 형태였다.
그러나 프랑스가 독일의 수중에 떨어지고, 영국 원정군(British Expeditionary Force)은 덩케르크(Dunkirk)로부터 본국으로 급히 철수해야만 했다.
프랑스가 함락됨으로써 더 이상 참호전에 대비할 필요성이 없어졌기에 A20의 디자인은 폐기되었고, 전차 설계사 메리트 박사(Dr. H. E. Merritt)는 폴란드와 프랑스에서의 전투를 목격한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A20의 디자인에 혁신을 가하였다.
이렇게 새로 디자인된 A22 전차의 생산은 복스홀(Vauxhall)사에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독일의 빠른 진격으로 인하여 퇴각을 서두른 덕에 영국군은 대부분의 장비들을 프랑스에 버려두었고, 따라서 A22의 생산이 급했기 때문에 군은 1년의 기한만을 제시하였다.
1940년 7월 디자인이 완성되자마자 12월 A22의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고, 다음해 6월 최초의 양산형 처칠 전차들이 생산 라인에서 쏟아져나왔다.
A22 ProtoType
그러나 생산을 서두른 덕분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음에도, 충분한 테스트를 거치지 못한 까닭에 처칠 전차는 무수한 기계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엔진의 출력이 낮고 고장이 잦았으며, 더욱 큰 문제는 엔진의 생산량이 모자랐다는 점이다.
엔진 외에도 처칠의 큰 결함중 하나는 차체에 고정된 3인치 곡사포가 대 보병용 HE 포탄을 직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영국은 처칠 Mk1과 Mk2가 투입된 1942년 8월의 디에프 상륙작전(Dieppe Raid)에서 재난을 당하게 되었다.
Dieppe Raid - 프랑스의 디에프에서 엉성무쌍한 상륙작전을 벌인 영국군은 대실패를 한다.
독일군에 노획된 처칠!
처칠 전차는 형편없는 성능 때문에 생산이 거의 중단되었고, 그 공백을 새 전차인 크롬웰(Cromwell)이 메꾸기 시작하였다.
처칠 전차는 개량을 거쳐 1942년 3월 Mk3으로 다시 전선에 등장하게 되었으며 10월 엘 알라메인(El Alamein)의 두번째 전투에 동원되었다.
Mk3는 기존의 Mk2까지 발생했던 기계적 결함을 고치고, 주포를 6 파운드 57 mm 포로 교체하였다.
이후 다시금 대대적인 개수가 진행되었고 1944년 처칠 Mk7은 넓은 차체와 중장갑, Mk6때 도입된 75 mm 주포를 채용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Mk7, A22F는 전쟁이 끝나는 시점까지 전장에서 활약하였고, 1945년 A42로 다시 명명되었다.
이탈리아 포글리아강 근처의 영국군 51 전차연대(Royal Tank Regiment)
처칠의 차대는 다양한 용도의 특수 차량에 사용되었으며, 1944년 중반 영국 전쟁성의 요청으로 오스트레일리아군에서 이루어진 시험 결과에 따르면 처칠은 미국의 셔먼(Sherman) 전차보다 정글에서의 전투에 적합한 것으로 밝혀졌다.
소련군은 영국으로부터 301 대의 Mk3 및 Mk4를 공여받았으며, 처칠은 1952년까지 영국 육군에서 사용되었다.
소련군에서 사용된 처칠 MK4,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도 사용했다고 한다.
처칠의 차체 장갑은 평평한 강판을 볼트로 조립하는 형식이었으나 이후 용접 방법으로 변경되었다.
서스펜션은 차체의 양 끝쪽 상부에 위치하였으며 양측에 각각 22개씩(2개 1조) 총 44개의 10인치 보기륜이 있었지만 이중 36개만이 실제 차체의 중량을 감당하였고, 맨 앞의 보기륜 4개는 차체가 앞으로 기울어질 때나 장애물을 넘어가는 경우에만 사용되었으며, 맨 뒤의 보기륜 4개는 트랙의 탄성을 유지하는 목적에 사용되었다.
덕분에 처칠은 어느정도 보기륜을 잃어도 작동이 가능하였다.
처칠의 쌍발 엔진은 크랭크에 의하여 연결되었으며, 원형 운전대나 지레형 조향장치가 아닌 키 형태의 막대에 의하여 조종되었다. 처칠은 메리트-브라운(Merritt-Brown) 기어박스를 적용한 최초의 전차였으며 양 트랙의 속도를 조절하여 차체를 선회시키는 방식이었다.
한쪽의 기어를 낮게 설정할수록 선회반경은 작아졌으며, 중립에 놓을 경우 거의 제자리 선회가 가능하였다.
Churchill의 단면도
포탑은 당초 2 파운드 포에 적합한 크기의 원형 주조제였으며, 차체에는 프랑스의 CHAR B 전차와 같은 위치에 보병 지원용 3인치 곡사포가 장착되었다.
이로써 포탑이 대전차 임무를 담당하는 동안 차체의 포가 보병 지원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지만, 다른 다포탑 전차와 같이 차체 포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차체를 선회시켜야만 하였다.
결국 Mk2에서는 차체 포가 기관총으로 대체되었으며 Mk3에서는 포탑의 2 파운드 포가 6 파운드로 교체되어 대전차 성능을 향상시켰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많은 처칠 전차들이 현장 개수되어 파괴된 M4 셔먼의 75 mm 주포를 장비하였으며 이러한 NA75 형은 이탈리아 전선에서도 사용되었다.
75 mm 주포는 대전차 성능만을 놓고 본다면 기존 6 파운드 포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대신 다목적포로써 널리 사랑받게 되었다.
처칠 전차의 포탑에는 관측을 위하여 비커스 전차용 페리스코프(Vickers Tank Periscope) Mk4가 장비되었다.
처칠 전차의 장갑은 기본적으로 부위에 따라 최소 16 mm 에서 최대 102 mm 에 달하였으나 Mk3에 이르러 25~152 mm 로 변경되었다.
처칠의 장갑은 두께만 놓고 본다면 독일의 티거(Tiger) 전차보다 두꺼웠지만 경사가 없었기 때문에 방어 효용성은 극히 낮았다. 처칠 전차의 초기 버전의 경우에는 증가 장갑을 따로 부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처칠 전차는 많은 개량이 이루어졌지만 엔진 자체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장갑과 무장이 변경됨에 따라 점점 느려졌다.
Mk1의 경우 26 km/h 의 속도를 낼 수 있었던 반면 Mk7은 20.5 km/h 의 속도밖에 내지 못하였는데, 이는 무게가 39,118 kg 에서 40,643 kg 으로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엔진은 기계적으로 완성도가 높지 못하였다.
처칠 전차가 가진 또다른 문제점은 작은 포탑에 있었다.
이 포탑에는 75 mm 전차포 이상의 강력한 무기를 장착할 수 없었지만 이 75 mm 포의 화력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처칠의 장갑은 독일의 대전차포 공격을 수차례 버텨낼 수 있었으며 심지어 유명한 88 mm 대전차포의 공격에서도 어느 정도 방어력을 지탱하여 주었지만 반격 화력은 그만큼 좋지 못하였다.
초기 처칠들은 6 파운드 포로 독일 4호 전차(Panzer IV) 75 mm 단포신 버전들과 3호 전차(Panzer III) 50 mm 전차포 화력을 상회할 수 있었지만, 대전 후반으로 가면서 처칠의 75 mm 주포는 초구 속도가 빨라진 독일의 장포신 75 mm 에 밀리기 시작하였다.
처칠은 무수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어떠한 전차들보다 장애물 돌파 능력이 뛰어났으며, 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빛을 발하였다.
다음은 처칠 전차의 종류이다. 괄호 안의 숫자는 생산댓수를 의미한다.
- Mk1 (303)
2 파운드 포(포탑, 150 발), 베사(Besa) 동축 기관총, 3인치 곡사포(차체, 58 발) 장착.
빈약한 기계적 신뢰성으로 유명했고, 디에프 상륙작전 당시 캐나다군이 사용했다.
- Mk2 (1,127)
차체 곡사포를 기관총으로 변경하여 단순화.
Mk1a 라고도 불림.
- Mk2CS
차체에 대전차포를, 포탑에 곡사포를 장착한 형태로 극소량만이 제작되었다고 함.
Mk2라고도 불림.
- Mk3 (675)
Mk2의 쓸모없던 차체포를 없애고, 포탑의 주포를 6 파운드(포탑, 84 발)로 교체. 용접 포탑을 사용함.
- Mk4 (1,622)
가장 많은 수가 생산됨. 포탑을 용접제에서 주조제로 바꾸어 생산 비용 경감.
- Mk5CS (241)
Mk3 또는 Mk4의 주포를 95 mm 곡사포(47 발)로 변경한 근접지원용 모델.
- Mk6 (200)
75 mm Mk5 주포를 장착. Mk3/Mk4의 업그레이드형으로 소량 생산.
- Mk7, A22F (1,600)
주포를 75 mm 으로 교체하고 장갑을 증강, 헤비 처칠(Heavy Churchill)이라고도 함.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첫 투입되었으며 1945년 이후 A42로 개명.
- Mk8
Mk7의 주포를 95 mm 곡사포(47 발)로 변경한 형태.
- Mk9
Mk3 또는 Mk4의 차체에 증가장갑을 부착하고 Mk7의 포탑을 사용, 기어 및 서스펜션 개량.
6 파운드 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LT(Light Turret)라는 식별자를 붙임.
- Mk10
Mk9와 같은 개수 방식을 Mk6에 적용한 형태.
- Mk11
Mk5에 증가장갑을 추가하고 Mk8의 포탑을 적용.
- Oke (3)
Mk2에 론슨(Ronson) 화염방사기 장착. 디자이너 오크(J.M. Oke) 소령의 이름을 사용.
화염방사기 연료는 후방에 장착하여 파이프를 통해 차체 기관총 자리로 공급.
3대가 생산되었으나 디에프에서 모두 격파되거나 유기되었다.
- NA75 (120)
Mk3 또는 Mk4에 미군 M4 셔먼의 주포(75밀리포)를 장착.
- AVRE, Armoured Vehicle Royal Engineers
Mk3 차체에 290 mm 대구경 스피곳(Spigot) 박격포를 장착, 28 파운드 탄두가 달린 40 파운드 포탄을 발사.
디에프 상륙작전 이후 고안되어 지뢰 제거나 폭파 임무 등에 사용됨.
전후 장전수에게 보다 안전한 165 mm 폭파용 포로 교체됨.
- ARV, Armoured Recovery Vehicle
Mk1의 포탑을 제거하고 기중기를 부착하거나 Mk2의 포탑 대신 가짜 포탑을 부탁한 형태.
전장에서 고장나거나 파괴된 전차를 회수하는 임무에 사용됨.
전방 기중기는 7.5 톤, 후방 기중기는 15 톤의 무게를 들 수 있으며, 25 톤의 무게를 밀 수 있음.
승무원 3명에 베사 기관총 1정 장착.
- ARK, Armoured Ramp Karrier
포탑을 제거한 처칠 양편에 진입로를 부착하여 가교 전차로 활용.
Mk1은 트랙 위에 가교용 구조물을 설치한 반면 Mk2는 트랙 상면을 그대로 가교로 사용함.
- Crocodile
Mk7의 차체 기관총 대신 화염방사기를 설치.
화염방사 연료는 장갑 트레일러를 견인하여 조달, 1초 간격으로 발사하여 150 야드를 불사를 수 있었다.
- Mk1 3in Gun Carrier, A22D (50)
볼마운트에 포를 장착한 구조물을 설치함.
- 프레일(Flail) FV3902 / 토드(Toad)
처칠 차대에 지뢰제거용 끌개를 장착. 1950년대에 사용됨.
출처 http://necrosant.oranc.co.kr/zbxe/?mid=Home&category=3478&document_srl=5081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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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처음처럼[최현근] 작성시간 09.02.12 미라지님, 근데 비밀방은 어떻게 들어가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분들은 다들 아시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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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mirageknight [왕성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2.12 한메일 주소 쪽지로 알려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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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로로 [김홍광] 작성시간 09.02.12 아... 이거 뽐쁘오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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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초이날다 [최승수] 작성시간 09.02.12 독특한 외관에서 오는 매력이 은근한... 녀석이네요. ^^ 역시 영국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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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썬라이트(서동현) 작성시간 09.02.23 희안하게 생긴거라 질러봅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