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Ⅱ AERO & Chopper

[[FREEVIEW]]Mikoyan-Gurevich MiG-15 bis Fagot-B #02806 [1/48th TRUMPETER MADE IN CHINA] PT1

작성자mirageknight [왕성국]|작성시간15.04.27|조회수585 목록 댓글 1

안녕하세요~ 미라지나이트 입니다.

 

기분좋은 월요일 아침 입니다. 이번주는 주말에 근로자의 날이 끼어있어 웬지 설레는 한주네요..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도 미그-15 에 제품에 대해 다루어 봅니다.

 

지난번에 MIG-15 의 결정판 제품으로 불리는 타미야 61080번 MiG-15 bis (Clear Edition) 제품을 소개했는데요.. 오늘은 그와 쌍벽을 이루는 트럼페터 02806번 Mikoyan-Gurevich MiG-15 bis Fagot-B 제품을 소개합니다.

 

 

 

 

 

Mikoyan-Gurevich MiG-15 (Russian: Микоян и Гуревич МиГ-15; NATO reporting name: "Fagot")

 

 

러시아(소련)의 제트 전투기
도입/개발 미그기 수호이 야코블레프 라보슈킨 알렉세예브 투폴레프
1940년대 MiG-9 MiG-15
파곳
Su-9(1946) Su-15(1949) Su-17(1949) Yak-15 Yak-19 Yak-17 Yak-23
플로라
La-150 La-15
팬테일
La-168 I-211/215  
Yak-25(1947) Yak-30(1948) Yak-50(1949)
1950년대 MiG-17
프레스코
MiG-19
파머(농부)
MiG-21
피쉬배드
Su-7 Su-9
피쉬포트
Yak-25
1960년대 Ye-150/151/152 Ye-8 Su-11
피쉬포트
Su-15
플라곤
Su-17
피터
Yak-28
파이어바
Yak-32 Tu-28
1970년대 MiG-23
플로거B
MiG-25
폭스배트
MiG-27
플로거D
Yak-38 Yak-45
1980년대 MiG-31
폭스하운드
MiG-29
펄크럼
MiG-21bis MiG-33
슈퍼 펄크럼
Su-20 Su-22 Su-27
플랭커
1990년대 MiG-MFI
(Project 1.44)
Su-32 Su-33 Yak-141
(Yak-41)
2000년대 Su-47
베르쿠트
Su-37
터미네이터
Su-35
슈퍼 플랭커
2010년대 MiG-35
펄크럼F
Su-34 수호이 T-50 Yak-130
2020년대 MiG-LMFS Su-FGFA

 

 

 


 
(북한 공군 도장의 미그-15. 북한군은 1990년대까지 미그-15를 운용했다고 한다.)

MiG기 계보
MiG-9 MiG-15 MiG-17

NATO 코드는 <Fagot>게이제트기. 혹은 알루미늄 토끼(Aluminum Rabbit)[1].

 

 

 



목차

[-]
1. 개발사
2. 설명
3. 실전
4. 여담

 


1. 개발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에서 입수한 후퇴익 기술과 제트기 기술처칠이 2차 대전 후 연합국간 우호 유지의 과시를 위해 무상으로 소련에 넘겨준 미티어계열의 영국제 제트엔진을 데드카피하여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상황을 따져 보면 적어도 기술 제휴였지 데드 카피는 아니었다.

 

 

 

 

 

 

 

 

 

 

 

 

 

 

영국과 소련의 제트엔진 거래는 1946년에 이뤄졌다. 이당시 영국의 노동당(좌파) 정권의 수상인 클리멘트 애틀리는 소련에 우호적이었고[2], 제트엔진 기술 이전을 해달라는 소련의 요청을 승인했다. 소련은 무단 복제가 아니라 1946년 영국정부의 허가 아래 정식으로 영국 롤스로이스사와 계약을 했고, 라이센스와 설계도, 시제품을 들여와서 카피를 했다.[3]

이러한 기술 제휴는 당시 처칠이 수상에서 물러난지 오래된 상황이라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4] 사실 처칠은 우파인 사람이라 절대로 소련에 우호적인 사람이 아니었다.[5] 그는 처음부터 소련을 믿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처칠은 1945년 독일 항복후, 언씽커블 작전(Operation Unthinkable)을 통해 영국군과 미군이 유럽에 전개한 소련군을 공격, 동유럽에서 소련군을 몰아내려고 했으나 당시 작전수립의 요청을 받은 영국 육군참모부가 "3:1로 병력면에서 열세이기 때문에 소련군을 이길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포기.

 

 

 

 

 

 

 

 

 

 

 

 

 

 

 

 

 

 



독일의 기술(포케불프 Ta183)이 대폭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냉전 이후 러시아에서 발표된 자세한 개발사를 보면 소련의 독자적인 디자인에 독일의 기술이 참고해 들어간 정도다. 이미 소련은 MiG-8로 전쟁전에 후퇴익을 성공적으로 시험했고, 1946년에 제트엔진을 장비한 MiG-9를 개발했다[6]. 겉모양을 보면 MiG-15가 Ta-183과 매우 비슷하기는 하지만, MiG-15의 맞수였던 F-86뿐만 아니라 F-84도, 프랑스의 닷소 우라강, 미스테르 IV도 여러가지로 매우 비슷하다. 당시 항공기술이나 유체역학 수준에서 개발할 수 있는 전투기의 모양은 어느나라나 비슷했다.

 

 

 



2. 설명

미그 설계국의 제트 전투기. 역시나 주 생산국은 소련이지만 중국에서도 카피판을 생산했다.

 

 

 

 

 

 

 

 

 

 

 

 

 

 

 

 

 



 



강력한 N-37 기관포와 NR-23 기관포 2정을 장착[7]하였으며, 우수한 상승력, 속도와 기동성으로 매우 위협적인 기종이었다.

 

 

 

 

 

 

 

 



6.25 전쟁Yak-9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북한 조선인민군에 대량으로 지원되어 우리에게 악연이 깊은 기종이기도 하다. 당시 북한군은 파일럿이 모자랐기 때문에 많은 소련군 조종사들이 북한 라운델을 단 MiG-15를 타고 참전하였다.

 

 

 

 

 

 

 

 

 


당시 미 공군의 주력기인 F-80 슈팅스타, F-84 등은 이 기체를 상대조차 할 수 없었고, 최신형인 F-86 세이버조차도 일부 성능에서 열세였다.[8] 여기에 당시 해군항공대의 주력기인 F9F 팬서(Panther) 역시 성능 열세여서 해군의 경우 가급적이면 교전을 피하려 하였다. 때문에 한국전쟁에서 B-29가 개털리는 결과를 낳았다.

 

 

 

 

 



MiG-15의 등장 당시 미국의 충격은 상당하여 이 기종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기체를 통째로 가져오는 사람이 있으면 10만 달러를 주겠다고 현상금을 내건 적도 있었다. 다행히 1953년 폴란드의 조종사와 북한의 조종사 노금석 대위가 각각 MiG-15를 몰고 귀순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캐낼 수 있었다.

 

 

 


노획한 MiG-15를 몰아본 미군 파일럿들은 전투의 승패를 가른 것은 조종석의 시야와 유압계통의 반응속도, 조준장치 같은 사소한 부분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참고로 MiG-17은 사실상 MiG-15의 개량형이나 다름 없었기에 MiG-15는 4~50년대를 관통한 소련 전투기의 역사가 된다.

 

 

 

 


여담이지만 MiG-17이 사실상 MiG-15의 개량형이나 다름 없는 기종이 된 것에는 사연이 있는데, 바로 냉전시대 당시의 소련의 독특한 군용기 개발방식 때문이었다. 당시 소련에서는 신형 군용기의 개발 및 시험을 하면서 장래의 유망성이 확인되면 개발 및 시험의 완료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해당 기종의 생산을 준비하기 시작한다는 관례가 있었고, 이후의 변경점은 생산이 시작되고 난 후 개수라는 형태로 적용한다는 방침을 취하고 있었다. 이는 신형기의 개발과 배치에 있어 서방권에게 조금이라도 뒤쳐지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발악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러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MiG-15의 경우 개발 및 시험이 완전히 완료된 것은 아예 형식번호 자체가 새롭게 변경된(…) MiG-17이 되고 나서부터였다고 한다. 따라서 데뷔전인 한국전쟁 당시의 MiG-15은 아직도 개발 및 시험이 안 끝나서 여전히 결함을 잡기 위한 테스트가 진행중인 미완성 기종인 채로 부랴부랴 급거 생산되어서 최전선에 투입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프로토타입을 실전에 무리하게 들이밀진 않아서 다행이다. 왠지 개발 및 시험과 생산이 동시에 진행되는 특유의 프로젝트 진행방식으로 인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F-35를 연상케 하는 대목.

 

 

 [미그17은 미그15와 비교해 3분할 된 주익으로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이는 미그15가 가진 후퇴익을 더욱 발전시킨 타입으로 경쾌한 선회능력과 도그파이터에 있어 미공군기체들이 따라올수 없는 운동성을 발휘하게 해준 훌륭한 설계였다]

 


3. 실전

한국전에서 10:1이라는 격추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실제로는 2.3:1 정도의 피해였다. 세이버의 무장은 기관총이었고 그걸로는 제트기인 MiG-15를 격추시키기에는 화력이 부족했었다는 것...[9] 게다가 중국군 파일럿들의 훈련도가 불충분해서 프로펠러기에도 격추당하는 예도 있었다.

 

 

 

 


 
(중국 공군 박물관에 전시된 6.25참전 "인민지원공군" 소속 MiG-15기. 기수에 한자로 소속을 적어놨지만, 라운델은 정규 인민해방군 공군 것을 그대로 썼다.
설마 지원병이 사비로 전투기를 사서 참전할리가 없지)

 

 

 

 

 

 

 



MiG-15와 F-86의 공중전은 주로 미그 앨리(MiG-alley)라고 불리던, 개마고원과 평안북도, 함경북도 상공에서 벌어지는 일이 많았다.

 

 

 

 

 

 

제공권이 미군측에 있었기 때문에 미그기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본거지에서만 출격했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출격하는 Mig-15는 만주기지에서 출동했는데, 당시 미국 공군의 전투기들은 조중 국경을 넘어 추격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다.

 

 

 

 

 

[10] 그래서 F-86의 M2 중기관총에 맞은 MiG-15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하강하여 만주 방면의 기지로 도주해버렸다. 미국 파일럿들은 이렇게 연기를 내품으며 만주방면으로 도주한 미그기들을 대개 격추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과장된 기록이 나온 경우가 많다.또 MiG-15 조종사들도 이런 기만전술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래야 확인사살을 당하지 않고 어쨌든 살아돌아갈수 있을테니...하지만 실제로는 무사히 살아돌아간 기체가 많다. 즉, 일부러 터무니 없이 과대포장을 한게 아니라 파일럿들이 격추했다고 생각하고 격추보고한 MiG-15중 많은 기체들이 실제로는 손상만을 입은채 어떻게든 기지로 돌아갔었다는 것이다. 어느정도 오차는 있더라도 전과확인은 최대한 엄중하게 하는게 상식이다. 외부에는 선전목적으로 어느정도 왜곡할수는 있어도 내부보고에서까지 전과보고가 엉망이면 지휘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10:1의 승률에 비하여 실제 교환비는 2내지 3:1로 F-86에 근소하게 열세. 그것도 소련 파일럿을 제외한 중국-북한군 파일럿 대부분은 조종사 훈련을 마치고 갓출전한 초보들이었지만 [11], 미군에는 상당수의 2차대전 베테랑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런 교환비로 기체자체의 성능을 따지는 건 어렵다. 사실 MiG-15 자체가 B-29를 요격하는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F-86보다 꼭 성능이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그러니까 순수 제공전투기 vs 폭격기 요격기... 어라?). 나중에 2차대전에 참전했던 베테랑 소련 조종사들이 탄 MiG-15는 F-86과 대등하게 싸웠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소련군 최고의 에이스는 예브게니 페펠랴에프 대령으로 22.5기 격추를 기록.[12] 니콜라이 슈탸긴 소령이 22기 격추로 그 뒤를 이었다.

 

 


 

 


좀 더 최근의 연구자료(2008년)에서는 Mig-15와 F-86의 교전비를 1.8:1 정도로 더욱 근소한 열세로 보고 있으며 소련군 파일럿이 탄 MiG-15의 경우에는 1.3:1 정도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http]pdf용량압박-85페이지 이점에 더해 Mig-15는 폭격기 요격임무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F-86과 동등한 성능의 기체라고 판단해도 무리가 없다. 때문에, AK47 VS M16 만큼은 아니라도 F-86 VS MiG-15도 상당한 떡밥이며, 외국의 밀리터리 사이트나 유투브 등지에서 치열한 댓글전쟁이 벌어진다.

 

 

 



참고로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10월에 건국되었고 그 전에는 공군이라고 할만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창설된지 1년도 안되는 중국공군이 세계 최강 미군에 도전한 것은 대단한 감투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북한에 전개된 중국공군은 MiG-15 54대로 시작했고, 이 수는 점차 늘었다. 3년간의 전투에서 자오바오퉁과 왕하이가 각각 9대를 격추하였고(이것은 미국도 인정한 기록) 에이스는 이들을 포함해 7명이 나왔다. 특기할만한 것은 당시 중공군 공군으로 참가한 조선족 출신 리영태 공군중장(예비역)은 MiG-15를 몰고 미군기 4대를 격추했다고 한다. [http]# 이 전과인지 몰라도 소수민족으로는 유례없이 중국 공군 부사령관까지 올랐다고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MiG-15 에이스는 김전덕 (Kim Den Dek) 대위와 김지산 (Kim Di San) 중위인데 각각 8대와 6대의 미군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들이 격추했다고 주장하는 날 미군기 출격기록이 없는 등 진위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여담이지만 소련이 중국에 참전하도록 꼬드겨서 MiG-15를 팔아먹었는데, 우방국 혜택을 주지 않고 거액을 중국에 청구하여[13] 후에 배신감을 느낀 중국은 소련측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는 훗날 중소분쟁의 한 원인이 되었다. 지금도 중국 사람한테 "러시아 사람들 어때요?"라고 물어보면 "욕심많은 작자들이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카더라. 욕심으로 말하자면 둘이 도찐개찐(..)

1958년 대만군과 중국군이 충돌한 진먼다오(금문도) 사태때도 중국군의 MiG-15[14]는 대만군의 F-86과 대결했는데, 이때 중국군은 전투기 11대[15]를 잃었고, 대만군은 3대를 잃었다. 이 결과는 중국군의 미그기들이 기관포만을 사용한데 반해, 대만군이 처음으로 실전배치된 적외선 유도방식의 사이드와인더 AIM-9 미사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중국군은 미그기의 동체에 명중했으나 불발하여 동체에 꽂힌 미사일을 소련에 넘겼고, 소련은 이를 역공학으로 카피하여 소련제 사이드와인더인 아톨 미사일(러시아 제식명 K-13)을 개발했다. 자국무기에 대한 다른 나라의 무기의 영향을 대체로 부정하는 러시아도 아톨 미사일 만큼은 사이드와인더를 베꼈다고 인정했다.

4. 여담

MiG-15의 테스트 파일럿 중에는 그 유명한 척 예거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노획한 미그기를 테스트한 것으로 몇 차례 목숨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실제 MiG-15에는 실속 경고기능이 없어 최대선회율을 유지하다가 스핀에 빠질 뻔하기도 했고 급강하 도중에 조종성을 상실하여 겨우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부분들이 애초에 설계를 잘못하여 발생하는 문제였기에 비행기를 살리는 것 자체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소련측 사람들은 척 예거의 이야기를 듣자 "헐, 님 뻥치지 마셈. 그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 아무도 없음"이란 반응을 보였다고. 그러나 역시 러시아제 답게 관리 측면에서는 매우 간단하고 빠르게 보수할 수 있는 기체였다고 한다. 구소련 군 내부에서는 'Soldier Aircraft'라는 별명도 붙여줄 정도로 유지 보수가 용이했다고 한다.

 

 

 



귀순한 미그기 테스트 영상#
----

출처 리그베다 위키 http://rigvedawiki.net/r1/wiki.php/MiG-15?action=show&redirect=Mig-15

 

실기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1.박스 및 외형

 

 

 

 

 

 

 

2. 내용 및 특징

 

 

 

 

 

 

 

 

 

 

 

 

 

 

 

 

 

 

 

 

 

 

 

 

 

 

 

 

 

 

 

 

 

 

 

 

 

 

 

 

 

 

 

PT2에 계속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phantom[박도] | 작성시간 15.04.28 완구같은 1/32에 비해 이 제품은 진짜 괜찮은 제품이죠!!! 항간에는 결정판이란 소리가 있었는데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