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무스탕 시리즈 중에서도 결정판으로 불리는 P-51D 무스탕이다.]
P-51B/C덕에 미 육군 항공대는 장거리 폭격기 호위라는, 매우 골치 아프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다. P-51B/C는 단순히 비행거리만 긴 것이 아니라 적 전투기로부터 충분히 폭격기 부대를 지켜줄 수 있을 만큼 공중전 성능 자체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스 아메리칸과 미 육군 항공대는 P-51B/C이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아쉬운 점을 고치기 위해 또 다시 새로운 P-51 무스탕의 개발을 시작했다.
P-51B/C가 안고 있던 제일 큰 문제점은 바로 뒤쪽 시야문제였다. 조종사가 뒤를 돌아보려 해도 조종석 뒤로 길게 뻗어 있는 동체 탓에 뒤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저번 화에서 보앗듯, 영국 공군의 일선 부대에서는 원래 스핏파이어용으로(P-51B/C와 마찬가지로 스핏파이어도 후방시야에 문제가 있었다) 개발된 말콤 후드를 P-51에 붙이는 개조를 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심지어 일부 미군 부대도 이 말콤 후드를 가져다 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이 말콤 후드 보다도 더 확실한 후방 시야 문제 해결 방안이 등장하였다.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영국은 1940년도에 독일 공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영국의 항공기 제작사인 마일즈 항공을 통해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M.20이란 이 전투기는 영국 본토만을 지키면 되었기에 비행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다만 숫적으로 영국 공군 보다 훨씬 우세했던 독일 공군을 막으려면,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수량을 생산해야 했기 때문에 기체는 금속이 아닌 나무로 제작되었다. 더불어 마일즈 항공은 이 M.20의 많은 부품을 자신들이 이전에 생산했던 ‘마스터’ 훈련기의 것과 같은 것을 써서 새로운 부품 개발 및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했다. M.20은 심지어 복잡한 부품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유압장치 마저 없었으며, 착륙장치는 외부에 고정되는 형태로 개발 될 정도로 급조된 전투기였다(당시에는 착륙장치를 조종사가 크랭크 축을 돌려 수동으로 접어들이는 전투기도 있었으나 아마 영국 공군 입장에선 이 접었다 폈다 하는 기구물 마저 불필요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M.20 전투기의 비행성능은 영국의 주력 전투기인 스핏파이어 보다는 못 하지만 허리케인 전투기 보다는 더 나은 수준이었다. 다만 허리케인에 비해 탄약 탑재량이 더 적었고 비행거리도 짧았다(애초 개발 컨셉이 단거리 전투기였지만). 결국 독일 공군이 영국에서 물러나기 시작해자 영국 공군으로선 굳이 M.20을 쓸 이유가 없어졌고, 이 전투기는 시제기 2대만 제작된 채로 개발 사업이 종료되었다.
영국 공군에게는 이렇게 개발이 중단 되어버린 M.20에서 건질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캐노피였다. M.20은 조종사에게 좋은 시야(특히 후방)를 제공하기 위해 물방울 형태로 조종석 사방을 덮는 캐노피를 사용했다. 당시 일반적인 전투기들의 캐노피는 뒤쪽이 동체에 막혀있던 것에 비하면 M.20의 이 캐노피는 매우 독특한 물건이었다.
[마일즈의 M.20 전투기. 값을 싸게 만들기 위해 랜딩기어마저 외부에 고정한 전투기였다. 그러나 물방울형 캐노피만은 당시 다른 전투기에서 쉽게 볼 수 없던 독특한 설계였다.]
영국 공군은 신형 전투기인 타이푼, 템페스트 등에 이 물방울 캐노피를 사용했으며 이후 스핏파이어 후기형에도 적용했다.
[영국의 호커 항공이 만든 타이푼 전투기. 물방울 형 캐노피를 사용했다. 타이푼 전투기 자체는 공중전 성능이 예상보다 떨어져서 전투기 대신 지항공격기로 많이 활약했다(참고로 최근 영국/독일/스페인/이탈리아 합작으로 만든 신예 전투기, 유로파이터의 이름도 타이푼이다. 이 이름 때문에 독일이 좀 거북해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50년 전에는 바로 독일군을 열심히 두들기던 전투기의 이름이니...). 템페스트 전투기는 이 타이푼 전투기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새로 설계한 물건으로, 스핏파이어와 함께 영국 공군 최강의 전투기의 자리를 다퉜다. ]
영국이 이렇게 물방울 캐노피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미국도 여기에 큰 관심을 보였고, 곧 관련자들을 보내서 이에 대해 알아오도록 했다. 먼저 미국은 P-47D 썬더볼트에 물방울 캐노피를 장착하는 실험을 했다(물론 후방 시야를 가리던 동체 뒤쪽, 등처럼 솟아 오른 부분은 제거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고 P-47D를 제작하던 리퍼블릭은 곧 P-47D 블록25부터 이 물방울 캐노피를 정식 채용했다.
[저번 편에도 잠시 등장했던, 거대한 덩치의 P-47D 썬더볼트 전투기. 사진과 같이 물방울형 캐노피를 사용했다.]
노스아메리칸 역시 P-51B 한 대를 개조, XP-51D라 이름 붙이면서 이것의 후방 동체 형상을 수정하고 물방울 캐노피를 사용해보았다. 이와 동시에 각종 실험을 통해 캐노피와 후방 동체 형상을 어떻게 수정해야 공기저항을 줄이면서도 조종사의 시야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을지도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XP-51D는 조종사에게 왜곡 현상 없이 매우 좋은 시야를 제공하면서도 비행성능이나 안정성 등에 있어서도 기존 P-51B와 큰 차이가 없었다(둥근 캐노피의 제작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이 둥근 부분을 통해 바깥을 볼 경우 외부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거나 더 멀리, 혹은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비행중인 XP-51D. 원래는 P-51B로 제작된 기체였으나 동체를 수정해서 물방울 캐노피를 장착하고 XP-51D로 이름이 바뀌었다.]
노스 아메리칸은 두 대의 P-51B를 더 개조, 마찬가지로 캐노피를 물방울 형태로 바꾸었다. 이 두 대의 P-51도 P-51D로 이름이 바뀌었다. 노스 아메리칸은 이 전투기들을 P-51D로 바꾸면서 후방 동체 상당 부분을 제거해야 했지만 생각보다 개조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P-51D는 P-51B의 또 다른 고질적인 문제, 즉 기관총의 잦은 고장과 화력문제도 동시에 해결했다. P-51B의 무장 즉 4자루의 12.7mm 기관총은 당시 기준으로 화력이 약간 부족한 편이었는데, 게다가 앞서 보았듯 P-51B는 자주 기관총이 고장 나서 실제 전투에서는 그나마 이 4자루의 기관총마저도 다 못 쓸 때 가 종종 있었다…
노스 아메리칸은 먼저 P-51D의 기관총을 6자루로 바꿔서 화력을 더 높였다. 더불어 종전의 기울어진 채 장착되던 기관총의 배치를 변경, 지면에 수평으로 똑바로 놓이도록 바꿨으며 탄을 공급하는 급탄장치도 개량하여 탄이 걸리거나 하는 문제를 없앴다. 뿐만 아니라 P-51D는 전체 탄약 탑재량 자체도 더 늘어났다.
[P-51D의 기관총 배치도. 한쪽 날개에 3자루씩, 총 6자루의 기관총을 가졌다. 또한 P-51B와 달리, P-51D는 기관총을 똑바로 배치하여 고질적인 기관총 고장 문제를 해결했다.]
다만 조종사가 원한다면 기관총 2자루를 제거한 채 P-51D에 총 4자루만 탑재할 수도 있었다. 일부 조종사들은 화력을 늘리는 것 보다는 무게를 줄여 기동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는 편이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P-51D 역시 P-51B/C와 마찬가지로 동체 뒤쪽에 연료탱크가 있다 보니 이것이 채워졌을 때는 기체가 불안정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기에 생산된 P-51D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P-51D는 수직꼬리날개의 앞쪽이 더 늘어난 부분인 등지느러미(Dorsal fin)를 가졌다. P-51D는 이 등지느러미만으로는 기체가 불안정해지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기체가 매우 위험한 비행불능 상태(스핀 같은)에 빠질 가능성은 좀 더 줄어 들었다.
[초기형 P-51D. 수직꼬리날개 부분은 종전의 P-51B와 마찬가지로 등지느러미가 없다.]
[초기형을 제외하면, P-51D는 대부분 사진과 같이 등지느러미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P-51B/C에 비해 안정성 부족 문제가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기체가 불안정해지는 이유는 수직꼬리날개가 아니라 연료 때문에 무게중심이 뒤로 이동하는 것이었으므로 ,여전히 동체 후방의 연료가 채워진 상태에서는 급기동을 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한편 P-51D는 종전의 무스탕에 비해 기체가 무거워짐에 따라 타이어도 좀 더 큰 모델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원래의 P-51B/C보다 타이어를 집어넣는 공간이 커져야했고, 이 때문에 주날개 뿌리의 앞부분이 좀 더 앞으로 튀어나오게 되었다.
주날개 밑에는 P-51B/C와 마찬가지로 좌우 각각 1개씩, 총 2개의 파일런이 장착되었다. 여기에는 최대 1000파운드(450kg)짜리 폭탄을 달 수 있었으며, 폭탄 대신 장거리 비행을 위해서 연료탱크를 달 수도 있었다.
P-51D 무스탕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감행되기 3달 전인, 1944년 3월부터 유럽에 있는 미 육군 항공대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처음 이 전투기를 받은 것은 제 55 전대로 원래 이 부대는 쌍발 전투기인 P-38을 운용했다. 조종사들은 워낙에 비행특성이 다른 전투기를 갑자기 조종하게 되자 처음에는 조금 어려움을 겪었다(이를 테면 P-51 같은 단발 전투기는 프로펠러의 회전 반동에 의해 기체가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으나, P-38 같은 쌍발 전투기는좌우 프로펠러의 회전 방향이 서로 다름에 따라 그 반동이 서로 상쇄되어서 쏠림현상 같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제 55전대의 조종사들은 곧 이 전투기에 익숙해졌고 특히 뛰어난 고고도 비행성능에 반했다.
일부 무스탕 조종사들은 말콤 후드를 사용해서 후방 시야 문제를 해결하고, 기관총 고장 문제를 해결한 P-51B/C가 P-51D 보다 더 좋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는 P-51B/C가 P-51D에 비해 더 가볍기 때문에 기동성이 좀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더 화력이 좋고 안정성도 좋으며 후방이 탁 트인 P-51D를 선호했다.
P-51D는 P-51B/C와 마찬가지로 폭격기를 호위하며 독일 공군의 전투기들과 맞서 싸웠다. 심지어 몇 명의 조종사들은 단 하루 만에 에이스(적기 5대 격추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가 되기도 했다.
P-51D가 공중전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인 것은 물론 P-51B보다 좋아진 시야나 안정성 및 화력의 증가 같은 요인도 있고, 독일 공군 조종사들의 실력이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나빠진 것도 있었겠지만 새로운 광학조준기도 P-51D의 공중전 성능을 높여주는데 한 몫 했다.
P-51D에 추가된 K-14는 조종사들이 어느 방향을 조준하면 적기를 맞출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즉 예측사격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현대의 전투기들이 사용하는 기관총의 예측 방향을 표시해주는 HUD (전방시현장치)에 비하면 매우 원시적인 물건이었으나 이 K-14는 당시 조종사들에게는 획기적인 물건이었으며, 곧 조종사들은 이 조준기를 ‘에이스 제조기’라 불렀다.
P-51B와 똑같지만 다른 공장에서 만들어진 기체는 P-51C라 불렸듯, P-51D도 달라스에 있던 공장에서 제작된 것은 P-51K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만 P-51B/C의 경우와 달리 P-51K는 P-51D와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먼저 캐노피 부분이 약간 더 커져서 조종사가 고개를 뒤로 돌려 주변을 살피기 더 좋아졌다. P-51D는 에어로프로덕트의 프로펠러를 사용한 반면, P-51K는 해밀턴사의 프로펠러를 사용한 점도 달랐다. 두 프로펠러는 성능면에서 큰 차이는 없었으며, 다만 해밀턴 프로펠러가 수급이 더 쉽다 보니 P-51K에 이것이 달린 것이었다.
[P-51D와 P-51K의 차이점을 설명한 그림들. 약간씩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P-51D와 P-51K는 성능상 큰 차이는 없었다.]
일부 P-51D는 2인승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전방석과 후방석의 조종간은 하나로 연결되어 어느 쪽에 탄 조종사건 조종이 가능했다. 이는 TP-51D란 이름이 붙였으며 P-51 조종사 훈련용으로 사용되었다(T는 Trainer(훈련기)의 약자).
2차대전 중에는 적지 않은 항공기가 주재료로 나무를 사용했다. 나무는 제대로 된 전투기나폭격기를 만들기에는 썩 좋은 소재는 아니다. 얼핏 생각하면 금속 보다 가벼운 것 같지만, 문제는 금속과 비슷한 수준의 강도를 유지하려면 훨씬 더 많은 보강을 해야한다. 결과적으로 똑같은 강도를 유지하는 구조물을 만들려면 금속보다 나무로 만든 것이 더 무거워진다. 그렇지만 알루미늄은 제법 비싼 금속이기 때문에 전쟁중에는 크게 부족하기 마련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차 대전 중에도 몇 몇 전투기나 폭격기는 알루미늄 대신 금속으로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목재 항공기로 영국의 모스키토가 있다. 제작사인 드 하빌랜드는 폭격기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방어기총을 설치하기 보다는 빠른 속도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이들은 물론 대형 폭격기라면 이것이 어렵지만 소형 경폭격기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영국 공군은 이들의 생각을 반신반의하면서 귀한 알루미늄 대신 나무를 쓴다는 조건으로 개발을 허락했다. 결과는 놀라와서 개발 당시 영국의 주력 전투기인 스핏파이어 Mk.V 보다도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물론 이후 더 빠른 전투기들이 등장하면서 ‘영국에서 가장 빠른 항공기’라는 타이틀은 도로 반납해야 했지만). 이 때문에 모스키토는 폭격기뿐만 아니라 전폭기나 야간 전투기로도 활약했다.
[모스키토 경폭격기. 처음 등장했던 당시에는 주력 전투기들보다도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모스키토 부대는 이 고속 비행능력을 살려 빠르게 주요 목표물에 폭탄을 쏟아 붇고 도망치는 전술을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전방에 기관총이 달린 전폭기 버전은 독일 전투기에 맞서 직접 공중전을 벌이기도 했으며 이 외에도 야간전투기 버전이나 정찰기 버전의 모스키토가 등장했다. ]
[제작중인 모스키토 동체. 나무로 된 동체 뼈대에 합판으로 된 바깥껍데기를 씌웠으며 각 부품은 접착제와 나무못 등으로 결함되었다. 사진처럼 동체를 좌우 반쪽씩 만들었는데, 제작자들은 이런 좌우 동체는 접착제로 붙인 다음 금속 띠 같은 것으로 단단히 고정시켜서 굳을 때까지 기다렸다. 제작방식이 흡사 프라모델 같다....한편 태평양 전선에 배치되었던 일부 모스키토는 습도가 높은 환경 탓에 접착제가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곧 습기에 강한 새 접착제가 개발되어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소련의 특히 목재자원이 풍부해서 다양한 목재 전투기들을 개발했다. 소련 전투기의 쌍두 마차인 Yak 시리즈와 La 시리즈 모두 초반에는 대부분 목재를 사용했다. 전쟁 후반에는 자원사정이 좋아지면서 (미국, 영국으로부터 지원을 받기도 했다) 금속을 사용한 전투기들도 속속 등장했으나 La-7처럼 내부 골조는 금속으로 만들되 외부의 표피 부분은 나무합판으로 제작한 전투기도 있었다. 이 목재 전투기 La-7는 당대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꽤나 까다로운 상대였으며 특히 저고도에서는 이 전투기를 당해낼 만한 독일 전투기가 없었다(영/미와 독일이 맞붙던 서부 전선과 달리 소련과 독일이 맞붙던 동부전선에서는 저고도에서 공중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소련 라보치킨에서 제작한 LA-7. 초기의 소련 전투기들과 달리 제법 여기저기 금속을 많이 사용한 전투기지만, 그래도 바깥 껍데기 부분은 대부분 합판을 사용했다. 소련은 수많은 전투기를 찍어내기 위해 나무의 방부처리를 확실히 하지 못했는데, 덕분에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가서 목재전투기들의 목재 부품이 썩는 사태가 속출했다.]
독일도 전쟁 말엽에 자원 부족을 겪으면서 목재 전투기를 개발했다. 심지어 He162 같은 제트 전투기도 나무로 만들었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폭격을 피해가며 가구 공장에서 He162의 부품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와중에서도 제법 많은 숫자의 He162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He162가 막 전투에 투입될 때 즈음 이미 독일은 항복해버려서 He163는 크게 활약하진 못했다. He162는 본문에 언급한 Me262 만큼 빠르지는 않았으나 P-51D 등 보다는 더 빠른 편이었다. 다만 조종이 까다롭고 급조하여 제작된 탓에 품질이 고르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한편 독일의 로켓 전투기 Me163 역시 기체의 많은 부분이 나무합판으로 제작되었다.
[박물관에 전시 중인 He162 제트 전투기. 등에 엔진을 짊어진 독특한 형태의 전투기다. 독일은 물자 부족을 겪으면서 이런 제트 전투기마저 나무로 만들기 시작했다. He162는 워낙 전쟁 후반에 등장해서 큰 활약은 못했다. 게다가 독일의 패색이 짙던 시절 등장해서 제작시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정비도 잘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He162는 공중에서 엔진이 꺼지거나 접착제가 떨어져서 구조물이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실제로 전쟁 기간 도중 추락한 He162 13대 중 단 2대만이 적기에 격추 당한 것이었고 나머지는 이런 사고로 추락한 것이었다.]
미국은 일선 전투기 중에는 목재항공기가 없었으나, 목재항공기를 만들 계획은 있었다. 독일의 잠수함 탓에 미국에서 영국으로 물자수송이 어려워지자 휴즈 항공사의 사장이자 백만장자였던 하워드 휴즈는 대형 항공기를 만들어 잠수함의 위협 없이 물자를 수송하는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그러나 왠만한 크기로는 그 당시 영국에서 쓸 물자를 수송하기에 턱 없이 모자랐기 때문에 하워드 휴즈는 당시 누구도 상상해본 적 없는 엄청난 거인기를 만들 생각을 했다. 다만 미 군부는 이 항공기를 만드는데 드는 알루미늄이 지나치게 많이 드는 것을 걱정했으며(게다가 정말 성공적으로 비행할지 조차 의심스러운 물건이고) 그래서 알루미늄 대신 가급적 목재로 항공기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그러다가 효과적으로 독일의 잠수함을 제압하는 방법을 개발해나가면서 잠수함에 의한 피해가 크게 줄게 되자, 미 군부는 하워드 휴즈의 계획에 별 관심과 지원을 주지 않았고 결국 하워드 휴즈가 만든 대형 항공기, H-4 스프루스 구스는 전쟁이 끝나고도 2년 뒤인 1947년에야 완성되었다. 현대의 대형 제트여객기 만한 이 H-4는 물 위로 70 미터 가량 떠서 약 1~2km 정도 비행해본 것이 시험비행의 전부였으며, 결국 한 번도 제대로 비행해보지 못한 채 물 위에 떠 있다가 박물관으로 가게 되었다(이 이야기는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애비에이터’에서도 잘 나온다)
[하워드 휴즈의 H-4 스프루스 구스(Spruce Goose). 스푸르스는 가문비나무를 뜻하는데, 당시 항공기 제작용 목재로 많이 쓰이던 소재였다. 즉 스푸르스 구스는 ‘나무 기러기’쯤 되는 별명으로 당시 이 항공기가 나무로 된 것을 조롱하던 이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하워드 휴즈는 당연히 이 별명을 매우 싫어했으며,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붙이길 원했다. 한편, 실제로 H-4의 제작에는 가문비나무가 아니라 자작나무를 주로 쓰였다. ]
본문에 나온 K-14 조준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2차대전 중에 주로 사용된 조준기는 조종석 중앙에 위치한 작은 유리판처럼 생긴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유리판 바닥 쪽에서는 일정한 도형이 불빛으로 나오며, 유리창에는 그 도형이 비치게 된다. 그러면 차창에 자기 얼굴이 비치는 것 너머로 풍경이 보이듯, 조준경 가운데에 있는 도형 너머로 적기가 보인다. 조준경에 있는 도형은 일반적으로 적기의 거리를 대략 가늠할 수 있는 동그라미와, 거리에 따라 어느 지점을 조준하면 좋을지 알수있는 몇 가지 점선 같은 것으로 이뤄져 있다(일반적으로 크기를 이미 알고 있는 적기라면, 동그라미에 비해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에 따라 현재 거리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알 수 있다).
[2차 대전때 많이 쓰였던 전투기 조준기로 적기를 바라보면, 대략 이런 형태로 보이게 된다. ]
K-14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적기의 예상 위치를 알려준다.
먼저 조종사는 적기의 크기를 선택한다. 적기의 기종을 확인했다면 조준기의 다이얼을 돌려서 해당 적기 기종을 선택한다. 그러면 조준기는 알고 있는 적기의 날개폭을 통해서 계산을 할 준비가 된다.
그리고 쓰로틀 레버(엔진 출력 조절 레버, 조종석 왼쪽에 위치함)의 손잡이 부분을 비틀 듯 돌린다(쓰로틀 자체를 앞뒤로 밀어서 출력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조준기의 바깥쪽 다이아몬드가 중심에서 멀어지거나, 혹은 가까워진다. 즉 다이아몬드가 그리는 가상의 원이 커지거나 작아지는데, 이 크기를 현재 눈앞에 보이는 적기의 날개폭에 맞춘다.
그리고 적기가 선회를 하고 있다면 따라 선회하면서 따라 선회하면서 계속 조준기 한 가운데에 적기가 위치하도록 한다. 이렇게 조준하면 조준기에 표시되는 다이아몬드들의 위치가 바뀐다. 그러나 이 다이아몬드의 위치는 대부분 정중앙이 아니다. 이 다이아몬드들 한 가운데에 적기가 오도록 조준한 다음 기총을 발사하면, 기총에서 발사된 탄환은 적기의 예상경로를 향하게 된다. 즉 조종사는 K-14를 조작한 뒤에 적기를 조준한 다음 발사하면, 자동적으로 적기의 움직임에 맞춰 예측 사격을 하게 되는 셈이다.
[영국의 허리케인 전투기가 320m 앞의 독일 전투기, Fw190를 추적하고 있다. 사진에서 표적 주변에 잘 보면 몇 가지 점들이 표적을 둘러싼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사진 오른쪽 위의 다이아몬드와 점으로 구성된 조준점으로, 조준기가 적기의 거리와 각도를 계산한 상태에서, 이 다이아몬드 안쪽 원에 적기의 날개가 가득 차도록 조준한 다음 발사하면 적기에게 예측 사격을 하게 된다. 사진을 잘 보면 조준기의 마크가 중앙이 아니라 옆으로 치우쳐 있다. 즉 현재 상황에서 기총은 적기보다 훨씬 앞쪽을 향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이 상태에서 기총을 발사하면 총알들은 적기와 만나게 된다. 즉 조종사는 자연스레 예측 사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속의 조준기는 영국의 Mk.II이나, 무스탕이 사용한 K-14와 거의 유사하다.]
사실 이 K-14는 복잡한 컴퓨터 같은 것이 아닌, 간단한 아날로그식 계산기 같은 것으로 작동했다.
K-14가 사용하는 방식은 전투기의 선회율(Turn Rate, 1초에 몇 도나 선회하는가를 나타내는 수치)을 알기 위해 자이로 장치를 썼는데, 이러한 물건들을 자이로 조준기라 불렀다. 사실 K-14는 영국이 먼저 개발한 다음 발전시킨 Mk.II라는 자이로 조준기를 미 육군 항공대가 가져가서 약간 자신들이 사용하기 알맞게 바꾼 다음 채용한 것이다(미 해군도 Mk.II를 Mk.18이란 이름으로 채용)
P-51D는 대부분의 독일군 주력 전투기(즉 Bf109와 Fw190)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였으나, 독일군도 곧 새로운 전투기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P-51D가 먼저 마주친 신형 전투기는 Me163 로켓 전투기로, 이것은 로켓을 이용해 최대 960km/h까지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크기도 매우 작은데다 꼬리는 없고 날개는 뒤로 크게 젖혀진 이 전투기를 처음 본 연합군의 조종사들은, 그 믿을 수 없는 속도에 매우 놀랐다. 결국 미 육군 항공대는 1944년 8월 5일, 이 전투기의 공격으로 인해 폭격기 3대와 P-51D 3대를 잃었다. 다만 이 Me163의 로켓연료는 매우 폭발하기 쉬운 물건이어서 P-51이나 폭격기 방어총좌의 기관총을 단 몇 발만 맞아도 폭발해버렸다. 즉 Me163은 무적의 전투기가 아니었으며 실제로 1944년 8월 16일에 Me163 한 대가 P-51D에 의해 격추당했다.
하지만 Me163의 가장 큰 약점은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엔진 가동시간이 10분도 안될 정도로 매우 짧았다는 점이다.
[Me163B 코멧(Komet : 독일어로 혜성). 엄청나게 빠른 속력 탓에 연합군은 처음 이 전투기를 보고 크게 당황했으나 몇 번 공중전을 치른 결과 곧 Me163의 약점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Me163은 공중전에서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문제가 많았다. 이 전투기의 로켓 연료는 쉽게 폭발했고 로켓용 산화제는 부식성이 강해서 조금만 새어나와도 주변 기자재를 녹여버렸기 때문에 굉장히 취급이 어려운 전투기였다(로켓연료가 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륙 전에 반드시 물을 부어서 새는 곳이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게다가 이륙한 뒤에는 동체 밑쪽 랜딩기어를 떼어버리고 착륙시에는 바퀴 대신 동체 밑에 있는 스키드(썰매)로 땅바닥에 끌리며 착륙해야 했다. Me163은 적에게 격추당한 숫자 보다 자체 고장이나 사고로 손실된 숫자가 더 많아서 독일군은 곧 이 Me163이 실패작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통상 Me163 조종사들은 폭격기 편대를 향해 솟구치면서 한 번, 그리고 폭격기들보다 훨씬 높은 고도로 올라갔다가 다시 강하하면서 또 한 번 폭격기를 공격했다. 이런 식으로 2번 정도 오르락내리락 하면 Me163 조종사는 연합군 폭격기에 대해 총 4번의 공격기회가 있었다. 이렇게 비행을 하고나면 로켓 연료는 바닥이 나므로 Me163 조종사는 기지로 귀환해야 했다. 다만 이 4번 밖의 공격기회도 매우 이상적인 경우였으며, 보통은 한 두 번 공격기회를 잡는 것이 다였다. 게다가 Me163 스스로가 너무 빠르다 보니 적기와 순식간에 가까이 접근해 버려서 사격기회를 놓치기 십상이었다(적기와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빨리 피하지 못하면 적기와 충돌할 위험이 있었다.).
그나마 짧은 엔진 가동시간 탓에 Me163은 이륙한 기지로부터 잘해야 40km 정도밖에 벗어날 수 없었으므로, 이 사실을 알아낸 연합군 전투기/폭격기 부대는 Me163이 있을 법한 기지를 피한 우회 경로를 택해서 간단하게 Me163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P-51D에게 나타난 또 다른 위협은 Me262 제트 전투기였다. 세계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Me262는 P-51D 보다 100km/h 정도는 더 빠른 속력을 갖고 있었기에 Me163 만큼이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상대였다. 게다가 이 Me262는 Me163과 달리 비행거리도 제법 되었으므로 기지를 피해가는 식으로 간단하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나마 연합군에게 있어 다행이었던 점은, 이미 독일은 패망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이 Me262를 제대로 만들 여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독일의 또 다른 신무기, Me262 슈발베(독일어로 제비). 2개의 제트엔진을 날개 밑에 단 이 제트전투기는 Me163보다는 훨씬 연합군에게 까다로운 상대였다. 영국은 Me262에 대항할 만한 제트 전투기, 미티어를 개발했으나 그 성능이 Me262에 한참 못 미쳤다. 미국이 개발중이던 P-80 슈팅스타 제트전투기는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다(이 전투기는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실전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패색이 짙은 독일은 이 Me262를 제대로 다룰 숙련된 조종사도 부족했으며 Me262의 엔진을 제대로 만들 특수금속도 부족했다. ]
Me262의 엔진은 독일의 자원 부족으로 인해 고열에 잘 견디는 좋은 소재를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엔진 수명이 매우 짧았으며(이상적인 상황에서는 80시간 정도 비행하고 나면 엔진을 교환해야 했으며 심한 경우에는 10시간만 쓰고 나면 엔진을 교환해야 하기도 했다) 그래서 가동률이 높지 않았다. 또 Me262는 최대속도 자체는 빨랐으나 속도를 높이는 가속성능은 좋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느리게 나는 이륙, 착륙 직후에는 프롭 전투기에게 속수무책이었고 실제로 많은 Me262가 이착륙 중에 격추당했다. 연합군의 전투기를 상대로 빠르게 속도를 높여서 도망가거나 맞서 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Me262가 있는 부대 근처에 이들을 지켜줄 별도의 프로펠러 전투기 부대를 둬야 했을 정도였다.
더불어 Me262는 느린 가속 성능 탓에 만약 P-51D 같은 프로펠러 전투기와 선회전에 휘말리면 곧 느려진 속도를 빠르게 회복하지 못하여 격추당해버리곤 했다. 당연히 Me262 부대의 지휘관들은 선회전에 휘말리지 말 것을 강조했으나 실전에서는 그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독일 공군에는 이미 이 Me262를 제대로 다룰 만한 실력 있는 전투기 조종사들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계속 되는 전쟁 속에 조종사들을 잃어갔으나(독일은 서쪽에서 영국/미국을 상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쪽에서 소련과도 싸우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다른 연합군 보다 부족한 인적 자원 탓에 그 손실을 채울 만큼 빠르게 숙련된 조종사를 양성해내지 못했다. 심지어 어떤 Me262 조종사는 본래 전투기 조종사가 아니라 폭격기를 몰던 조종사였던지라 마치 폭격기를 몰 듯 Me262를 가지고 천천히 선회하다가 P-51D와 선회전에 휘말려 격추당하기도 했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독일 공군이 빠르게 와해되어갔다. 신형 전투기로도 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고 독일 공군은 점차 전투기를 이륙시켜 적기와 맞서 싸우기보다는 전투기를 격납고 속에 꼭꼭 숨겨두기 시작했다. 연합군 전투기/폭격기들은 독일 공군이 제공권을 잃자 독일 공군 기지 머리 위까지 날아와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독일군은 이제 전투기를 제대로 된 기지에 두는 것조차 어려워져서 이것들을 숲이나 헛간 같은 곳에 숨겨두었다.
독일군은 이제 “알록달록한 위장색을 칠했다면 그것은 영국 전투기다. 반짝반짝 은빛이 난다면 그것은 미국 전투기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독일 전투기다.” 라는 자조적인 농담을 해야 할 정도로 하늘에 전투기를 띄우기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연합군은 공중의 적보다 지상의 적을 파괴하는데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한 뒤로는 지상의 연합군을 지원하기 위해 전투기 부대가 출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독일 지상군은 이렇게 공중지원에 나선 연합군의 전투기들을 야보(Jabo : 전투기+폭격기, 즉 전폭기를 부르는 독일말)라 불렀으며, 야보가 나타나면 근처 도랑이나 수풀 속으로 숨기 바빴다. 일선의 지상군도 지상군이지만, 이 지상군에게 탄약과 기름, 기타 보급품을 실어 날라야 하는 트럭과 기차들도 연합군 전투기의 기관총과 로켓세례를 받고 불타올랐으며, 독일군은 이를 피하기 위해 야간에만 트럭부대를 운용해야 했다. 당연히 일선의 독일군 지상군은 보급품이 모자라서 싸우기가 더 힘들어졌다.
P-51D도 이런 상황에 걸맞게 몇 가지 개조가 진행되었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P-51D는 기본적으로 날개 밑에 두 개의 폭탄을 달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는 500파운드(230kg)폭탄이나 1000파운드(450kg)폭탄을 두 발 달고 지상공격을 할 수 있었는데, 1000파운드 폭탄은 P-51D에게 약간 부담스러운 크기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지상공격에는 500파운드 폭탄이 자주 사용되었다. 이정도 무장 탑재능력은 미군 전투기 중에는 뛰어난 편이라 할 수 없으나, 다른 나라의 전투기들에 비하면 상당힌 수준이었다(사실 미군 전투기들은 대부분 2차 대전 후반 무렵에 P-51D 수준, 혹은 그 이상의 폭탄을 달 수 있었는데 2차 대전 후반 무렵 연합군이 제공권을 장악함에 따라 미군 전투기들은 지상공격임무에 더 자주 투입되어서 지상공격능력을 강화시키는 형태로 개조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기본적으로 미군의 전투기들이 다른 나라의 전투기들에 비해 꽤 기체가 커서 이정도 폭탄을 탑재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점도 그 이유라 할 수 있다).
[쌓여 있는 폭탄들은 1000파운드급 폭탄들이다. 폭탄에는 노란색 띠가 그려져져 있는데, 이는 이 폭탄들이 실탄이란 의미다(훈련탄은 파란색). 은색으로 빛나는 물체들은 P-51의 75갤런 연료탱크다. 한편 사진 오른쪽 위의 정비사는 P-51D의 기총에 쓰일 0.50인치(12.7mm)탄약을 다루고 있다.]
[당시 전투기에 장착할 폭탄은 사진과 같은 바퀴가 달린 유압잭에 실려다녔다. 전투기 날개 밑의 폭탄 장착용 파일런 밑에 폭탄을 밀어 넣은 다음, 잭을 들어 올려 폭탄을 파일런에 장착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폭탄을 탑재하면 P-51D는 연료탱크는 탑재할 수 없게 되었으나 무스탕은 외부연료탱크가 없더라도 기본적으로 비행가능 거리가 긴 전투기였고, 또 적 지상군을 공격할 때는 아군의 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공격하므로 연료탱크를 달지 못하는 것이 문제시 되지는 않았다.
P-51D는 75갤런(280리터)들이 연료탱크와 110갤런(420리터)들이 연료탱크를 날개 밑에 달 수 있었는데, 이중 110갤런 연료탱크는 특이하게도 종이를 특수처리하여 만들어졌다. 이러한 종이로 된 연료탱크는 당시 부족한 금속자원을 아끼기 위해 탄생한 물건으로, 원래 영국이 개발하여 사용하던 것이지만 미국도 P-51D에 맞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P-51D가 75갤런 연료탱크를 달고 비행중이다. 이 연료탱크는 금속재질이며, 만약 공중전에 돌입하면 무게와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떼어버릴 수 있었다.]
[P-51D 밑에 달려 있는 110갤런 연료탱크. 은색으로 칠해져 있지만 사실 재질은 금속이 아니라 압축종이다. 75갤런 연료탱크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경우 떼어버릴 수 있다.]
[한 군인이 110갤런 연료탱크를 번쩍 들어 올려 보이고 있다. 이 연료탱크는 종이재질로 되어 있다 보니 이처럼 꽤 가벼웠다.]
한편 P-51B/C형 및 초기의 P-51D는 폭탄과 함께 3연장 4.5인치(114.3mm) 구경 로켓을 달 수 있었다. 이 로켓의 명칭은 M8로, 사거리는 1.5km에서 3km가량이었다. 로켓탄 하나하나는 약 4kg정도의 폭약을 가지고 있었으며, 960km/h의 속도로 날아갔다. 이 로켓은 M10이라는 3개 묶음 발사관에 탑재되어 있다가 발사되었는데, M10은 생김새 때문에 바주카라는 별명이 붙어있었다. 바주카는 보병들이 전차를 잡기 위해 사용하던 로켓무기로 실제로는 이 M10과는 관계없는 무기였다(이 보병용 바주카는 2.36인치(60mm) 구경이었으며 명칭도 M1으로 P-51D가 사용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다.).
[M10 3연장 로켓발사관과 500파운드 폭탄을 탑재중인 무스탕. 사진속의 기체는 P-51A버전이나 무장장착 방식은 P-51D도 동일하다.]
M10 로켓발사관은 6발의 로켓을 쏘고 나서도 그대로 P-51D 밑에 매달려 있게 되므로 필요 이상의 공기저항 및 중량의 증가가 생겼다. 그래서 P-51D 후기형 부터는 날개 밑에 별도의 발사관이 필요 없는 5인치(127mm) 로켓을 탑재했다.
5인치 HVAR(High-Velocity Aircraft Rocket : 항공기용 고속 로켓)라고 부르던 이 로켓은 사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종전 로켓보다 더 빠른 1530km/h(마하 1.2에 해당)라는 속도로 비행했다. 폭약이 21kg으로 늘어나 파괴력 역시 더 강해졌으며 사거리 역시 늘어나 최대 4.5km 떨어진 거리에서도 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미사일은 별도의 발사관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기 밑에 달려 있는 작은 장착대에 매달려 있다가 발사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M10 로켓발사관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었다. 즉 로켓을 발사하고 나서도 큰 발사대가 매달려 있던 종전방식에 비해, 이 미사일은 전투기 밑에 달려 있는 작은 발사대만이 남았던 것이다.
[P-51D의 오른쪽 날개 밑에 달려 있는 5발의 5인치 HVAR. 사실 P-51D는 이렇게 한쪽 날개당 HAVR을 5발씩이나 다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으며, 보통 연료탱크나 폭탄과 함께 달기 위해 한쪽 날개당 2~3발만 달았다.]
P-51D는 이 5인치 HAVR를 최대 10발까지 탑재할 수 있었으나, 보통 기체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외부연료탱크를 같이 탑재하면 로켓을 6발, 폭탄을 같이 탑재하면 로켓을 4발정도만 탑재했다.
이러한 로켓 무기는 유도가 되지 않기 때문에 목표물에 매우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한 명중시키기는 쉽지 않았다(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신 각각의 로켓이 폭발하면서 로켓을 다 쏘고 나면 넓은 범위에 피해를 주게 되므로 넓은 범위의 적을 제압하는데 효과가 있었다. 운이 특별히 좋지 않은 이상 전차와 같은 작은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시키기는 어려웠으며 전차에 정확히 명중하지 않고 근처에서 폭발하는 것만으로는 전차에게 피해를 주기 어려웠다. 대신 보병이나 보급용 트럭처럼 별도의 장갑이 없는 목표물에 대해서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특히 흰 연기와 소음을 뿌리며 날아와서 폭발하는 로켓은 보병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데 효과가 컸다.
일부 P-51D는 로켓 이외에도 4~6발 정도의 100파운드(45kg)폭탄을 탑재하도록 개조되었다. 이 폭탄들은 항공기에서 투하하는 것치곤 작은 편이었으나, 이렇게 작은 폭탄 여러 발을 여러 곳에 떨어트리면 로켓과 마찬가지로 넓은 범위의 적을 제압하는데 효과적이었다.
물론 P-51D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6자루의 12.7mm 기관총도 지상공격에 효과적이었다. 이런 기관총으로 전차를 잡지는 못했으나 (전차는 기관총 정도는 충분히 버틸 정도의 장갑을 두르고 있다) 기타 보병이나 트럭과 같은 목표물에는 효과적이었다.
전쟁말엽 무렵에는 P-51을 비롯한 대부분의 미군 항공기들이 외부에 위장색을 칠하지 않았다. 미군은 위장색을 칠하느니 수 십kg 이상 무게가 나가는 페인트를 없애버리고 기체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항공기에 칠해지는 페인트는 생각보다 꽤나 두껍기 때문에 무게가 제법 나가는 편이다).
[P-51D 사진을 보면 사진과 같이 별도의 페인트를 칠하지 않아 은빛 알루미늄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많다. 2차대전 말엽 미 육군 항공대는 대부분의 항공기에 위장색을 칠하지 않고 사진처럼 국적 및 부대를 상징하는 각종 도형만 칠해 넣었다. 한편 조종석 앞쪽 부분은 대부분 검정색이나 국방색의 어두운 색을 칠했는데, 이는 조종사 앞쪽 금속표면에 햇빛이 반사되어 조종사가 눈이 부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P-51D가 사용한 또 다른 특이한 장비는 G슈트였다. 전투기가 급기동을 하면 원심력 때문에 조종사의 피가 다리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다리쪽의 실핏줄이 터져서 멍이 드는것뿐만 아니라 뇌와 안구로 혈액공급이 잘되지 않아서 시야가 흐려지거나 아예 의식을 잃어버리는 일도 생긴다. G슈트란 전투기가 급기동을 하면 압축공기에 의해 부풀어 올라서 조종사의 하체 쪽을 꽉 죄어줌으로써, 이쪽으로 피가 쏠리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P-51D의 조종사들은 좀 더 급기동 상황에서도 시야가 흐려지거나 의식불명에 빠질 확률이 적었다.
M2/AN(M1919) 기관총
0.30인치(7.62mm) 구경의 기관총탄을 쓰기 때문에 흔히 Cal.30(Cal : Caliber는 구경이란 의미며 우리말로 하면 30구경이란 의미)이나 MG30(Machine Gun 30, 즉 0.30인치 기관총)등으로 불리는 기관총이다. 이것은 미국의 유명한 총기제작자인 브라우닝(John M. Browning)이 개발한 총기로 본래 마찬가지로 브라우닝이 개발했던 M1917 수랭식 기관총을 더 가볍게 공랭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이 기관총은 보병용 기관총은 물론 차량탑재용 기관총과 항공기용 기관총으로 성공한 기관총이다. 물론 각각의 버전이 전부 동일한 것은 아니며, 목적에 맞게 약간씩 개조가 되었다. 항공기용 M1919 기관총은 M2/AN(M2의 M은 Model, AN은 Army-Navy, 즉 육군/해군 공용이란 의미)이라는 명칭이 새로 붙었는데 종전 기관총보다 무게를 줄이면서도 신뢰성과 화력을 높인 버전이다. 항공기 버전은 항공기와 함께 고속으로 비행하면서 더 많은 바람을 받으므로 지상에서 쓰는 기관총에 비해 과열문제가 적었기에, 총신을 좀 더 얇게 만들 수 있었으며, 이 외에도 총의 부품 여기저기의 살을 빼서 지상용 버전보다 2/3정도 무게를 줄였다. 총의 발사속도는 최대 분당 1200발에서 1500발까지 나왔다.
이 총은 기본적으로 0.30인치 탄을 사용하도록 되어있으나, 영국을 위해 0.303인치(7.7mm) 탄을 사용하는 버전도 등장했다(두 총알은 호환은 안 되지만 크기가 비슷한 편이어서 개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무스탕 Mk.I은 0.30인치 탄을 사용하는 버전과 0.303인치 탄을 사용하는 버전을 장착한 기체가 모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 처음에는 0.30인치 탄을 사용하는 무스탕이 개발되었다가 영국에서 총탄 보급의 용이성을 위해 0.303탄을 사용하는 버전의 기관총으로 바꾼 듯하다.
[M1919를 잡고 있는 미 육군 보병. 사진은 한국전쟁 당시의 사진이다. 이 기관총은 이름처럼 1919년에 미 육군에 채택되었으며 1970년 베트남전 당시에도 일부 사용되었다(물론 1919년에 등장한 버전에 비해 베트남전까지 쓰였던 버전은 많은 부분이 개량된 모델이었다).]
M2 기관총
이 기관총은 0.50인치(12.7mm)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Cal.50이나 MG50등으로 불리나 정식 명칭은 M2다. 바로 위에서 설명한 항공기용 0.30인치 기관총 M2와 혼동하기 쉬운 이름이지만 보통 M2 기관총이라고 하면 으레 이 0.50인치 M2기관총을 말한다.
이 M2 역시 브라우닝이 설계한 것으로, M1919와 마찬가지로 수랭식 기관총을 공랭식으로 개량한 것이다. 같은 브라우닝이 만든 물건이다 보니, 사실 이 M2기관총의 기본적인 구조는 M1919와 매우 흡사하다. 공랭식 버전인 M2는 본래 항공기용으로만 쓰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곧 지상용으로도 쓰였다. 공랭식 M2는 수랭식에 비해 과열되기 쉬우므로 총열 자체는 두꺼워져서 M2 HB(Heavy Barrel : 무거운 총열)이라 부르기도 한다.
항공기용으로 개발된 버전은 특별히 AN/M2라고 불렀는데 앞서 0.30인치 M2와 마찬가지로 항공기의 맞바람을 이용해 과열문제를 해결, 무게를 더 줄인 버전이다. 발사속도는 분당 750에서 850발 정도였다. 2차대전 도중에는 총알 공급방식을 개선하여 분당 1200발까지 쏠 수 있었는데, 이 버전은 AN/M3라고 불렀으며 한국 전쟁 때 날아다닌 제트전투기부터 현대의 일부 항공기에도 쓰이고 있다.
M2는 지상용과 항공기용 모두 초창기의 모델에 비해 이런저런 부분이 개량이 되었으나 현대에도 차량이나 항공기용으로 쓰이고 있을 정도로 장수를 누리고 있는 기관총이다.
[M2 기관총은 1933년 미군이 사용한 이래 현재까지도 몇 군데 개량을 거쳐 사진처럼 현대에도 계속 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보통 차량에 탑재되어 쓰이지만 기지방어용으로도 종종 쓰이며, 심지어 여기에 스코프를 달고 저격총처럼 운용, 2.25km 밖의 표적을 맞춘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