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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자료]]특수부대의 원조!! SAS(Special Air Service) 이야기

작성자mirageknight [왕성국]|작성시간12.12.06|조회수1,908 목록 댓글 2

안녕하세요~~ 미라지나이트 입니다.

 

어제는 자동차의 혁명을 불러온 미국의 JEEP 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오늘은 그 지프를 가장 잘 활용한 인물들 그중 현대 특수부대의 기원이 된 SAS(Special Air Service)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지요.

 

 

 

 

 

 

 

 

 

 SAS(Special Air Service)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제2차 세계대전 당시
2.2 제2차 세계대전 이후~1960년대
3 대테러전술의 선구자
4 전투력을 입증한 사례
5 개판인 군기(...)
6 이름을 둘러싼 해프닝
7 SAS 출신 주요 인물 열람(가나다 순)
7.1 실존 인물
7.2 가공 인물

1 개요

Special Air Service, (특별 항공 서비스) SAS. 영국 육군 소속의 특수부대이다.
참고로 진짜 저 영어를 쓴다. 육군 소속이지만.

 

 

 

[Special Air Service, (특별 항공 서비스) SAS. 영국 육군 소속의 특수부대로 현대 특수부대의 기원이 된 전설적인 특수부대이다]

 


사실상 현대 특수부대의 시초 격으로, 오랜 역사 및 무수한 실전경험, 전 세계를 무대로 작전을 벌이며 쌓은 노하우를 통해 다른 나라 특수부대들의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으며, 스스로 쌓아올린 전설적인 전과들을 가지고 있다.

2 역사

2.1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운데 수염난 사람이 SAS의 창시자 데이비드스털링(David Stirling )대위다. 모험가이면서 군인이기도 한 그의 시도로 Special Air Service 즉 SAS 가 창설되었으며 현대 특수부대의 기원으로 불리우고 있다. SAS는 철저하게 사막부족민의 생활방식을 익혀 북아프리카의 사막가운데서 정확하게 독일군의 기지를 급습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로 롬펠군단을 지속적으로 괴롭혀왔다] 

그 시초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 아프리카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에게 매번 박살나며 막대한 전사자와 노획물자만 넘겨주던 영국군이 어떻게든 반격방법을 찾던 중, 육군 대위 데이비드 스털링이 '요즘 독일군의 공군력이 강력하니, 적 비행장에 직접 낙하산으로 병력을 떨궈 항공기들을 직접 공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잘못 배달된 낙하산을 갖고 놀다가, 실제로 비행기에서 낙하하다 허리를 다친 뒤 병원에서 요양 중에 그 생각을 떠올렸다. 원래 좀 무모한 기질을 가진 그는 영국군 사령관 어친렉 대장에게 직접 찾아가 그 계획을 말하려 했고, 사령부로 무조건 쳐들어간 그가 헌병을 피해 달아나다 운 좋게 중동 파견군 참모장인 리치 소장의 집무실로 들어가게 된다. 스털링은 리치 소장에게 자신의 구상을 열렬히 설명했고, 리치 소장 역시 그의 방법을 경청하며 결국 협조를 약속한다. 그 때문인지 현재도 SAS의 구호는 'Who dares wins' 대담한 자가 승리한다다.

 

 

 

 

[SAS 의 마크.. 가운데 'Who dares wins' 대담한 자가 승리한다' 라는 구호가 보인다 이는 1941년 창립이래 현재까지 내려오는 SAS의 자존심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첫 작전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간다. 한번도 이런 식의 작전경험이 없었기에 수송기는 엉뚱한 곳에 부대원들을 강하시켰고, 장비와 병력 대부분은 흩어져서 다시는 집결하지 못했다. 예정대로 실제로 진행된 것은 복귀를 위해 대기하던 장거리 정찰대(L.R.D.G)의 트럭 뿐이었는데, 이 트럭을 타고 복귀하던 중 스털링은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기관총을 여러 정 장착하고 냉각장치를 개조한 미국산 윌리스 지프와 시보레 트럭에 연료, 식량, 무기를 가득 싣고 항해를 하듯 사막을 가로질러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하고 다시 차를 타고 복귀하는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SAS의 스승으로 사막에서의 생존방법을 알려준 장거리 정찰대(L.R.D.G) 의 모습 2차대전중 사막에서의 정찰을 위해 만들어진 부대로 장거리정찰에 걸맞게 대형트럭 (주로 시보레 트럭을 이용) 을 이용한 작전을 많이펼쳤는데 이들은 사막부족이상의 사막에 관한 전문가로 SAS들은 이들과 함께 하면서 사막에 관한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또 작전은 SAS가 이동은 장거리 정찰대(L.R.D.G)들이 해주는등 협동작전을 많이 펼치게 되었다]

 

 

[LRDG 의 사령관으로 활약했던 John Richard Easonsmith DSO MC (1909–1943) 중위의 모습. 그의 마지막작전이 되었던   battle of Leros.에서의 모습이다. 1909년 4월12일 영국의 브리스톨에서 탄생한 그는  브리스톨의 Clifton College 와 영국의 lMill Hill School 등을 졸업후 잠시 와인수입회사에 취업후 근무하게 된다. 이후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군에 입대 영국왕립전차연대등에 배치되어 1940년부터 중동지역으로 발령 이후 그는 해외근무의 경험을 살려 뉴질랜드 병사들과 소수의 영국군으로 이루어진 장거리강행정찰부대이 지휘를 맡게되며 이후 영국공군의 특수부대인 SAS들과 합류 독일군은 상대로 수많은 전과를 올리게 된다] 

 

 

[LRDG 의 주차량은 시보레트럭으로 튼튼하고 대형인 이런 트럭은 장기간 작전임무가 대다수인  LRDG 에 딱맞는 차량이였다 여기에 사막에 맞게 사막색으로 칠해진 차량과 비커스사의 기관총으로 무장 사막을 항해하는 유목민처럼 생활하고 활동했으며 이런 특성을 잘 살려 북아프리카의 독일군을 상대로 막대한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이들은 사막유목민들에게 사막에서 생존할수 있는 많은 지식을 배웠으며 스스로도 유목민 이상의 사막지식을 가진 전문가 집단이자 모험가들이였다. SAS는 이들을 통해 사막전투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습득해나갔다] 

 

 

[SAS 와 LRDG 의 활동범위는 엄청났다. 때로는 비행기로 강하후 활동하기도 하였지만 드넓은 사막위를 자동차로 휭단하며 독일군이 예상치 못하는 곳에서 나타나 귀신같이 사라지는 전술을 주로 이용하여 독일군은 괴롭혀왔다]

 

 

[LRDG 들은 SAS들과 연합작전을 펼지며 1941~1943년까지 독일군을 상대로 막대한 전과를 올리게 된다. 이들은 사막은 마치 바다를 항해하듯 마음껏 누볏으며 별다른 지도도 없는 당시 이들만큰 북아프리카의 사막을 잘 아는 이들도 드물었다. 시보레 트럭을 이용 낮에는 동굴등에 은신하고 밤을 이용 생각치도 못한 장거리를 이동하여 독일군 기지를 급습하여 각종 물자와 비행기등을 폭발시키는것이 이들의 주임무로 사막의 여우로 불리던 롬멜조차 이들때문에 상당한 골치를 썩혔어야했다.]

 

 

 

 

 

   

 

[LRDG 들은 자기만들의 독특한 무기들을 애용했는데 사진의 루이스기관총 (좌측) 과 비커스사의 기관총(우측) 역시 그런무기중 하나였다. 이들 무장은 단시간이 많은 탄약을 뿌릴수 있었는데 치고빠지기식의 히트앤드런 작전에는 더할나위없는 좋은무기중 하나였다]

 

 

[위치를 알수있는 산이나 건물하나 없는 망망대해같은 사막에서 정확하게 길을 찾는 방법 역시 그들의 전매특허였는데 스스로 개발해낸 이런 해시계를 이용 기가막히게 적기지의 위치를 찾아내었으며 LRDG 들의 이런 생존기술들은 모두 SAS들에게 전수되어졌다]

 

 

[LRDG 들과 SAS들의 지휘차량에는 이런 해시계가 달려있어 해의 위치와 별의 위치로 적기지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낼수 있었다, 이런기술은 당시 독일군에게는 없던것으로 이들을 찾아 섬멸하려해도 망망대해같은 사막에서 이들을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찾기와 같았으며 낮에는 은신하고 밤에만 이동하는 이들을 찾는다는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LRDG들이 시보레 트럭과 더불어 애용했던것이 당시 미군으로부터 공여받은 JEEP로 비록 차체는 작았지반 튼튼하고 가벼워 사막의 이동수단으로 안성맞추이였다. 여기에 라지에이터의 수분을 재활용하는 과급기들을 개조해 달고 여러무장을 추가하여 그들만의 무기를 만들어내었는데 이는 훗날 SAS들의 주무기로 애용되기도 하였다]


적의 항공정찰을 피하고 피로를 막기 위해 뜨거운 낮에는 위장한 채 잠을 자고, 야간을 이용해 이동하는 식으로 사막을 멀리 돌아 적진 깊숙히 들어갈 수 있었고, 실제로 작전은 성공해 독일군은 그 이후로 공중전에서 잃는 전투기 숫자보다 SAS에 의해 파괴되는 전투기 숫자가 더 많을 지경이 된다. 심지어 SAS한테 털려 새로 받았는데 그 날 SAS가 와서 박살내버리는 자비심없는 일들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SAS는 적의 항공정찰을 피하고 피로를 막기 위해 뜨거운 낮에는 위장한 채 잠을 자고, 야간을 이용해 이동하는 식으로 사막을 멀리 돌아 적진 깊숙히 들어갈 수 있었고, 실제로 작전은 성공해 독일군은 그 이후로 공중전에서 잃는 전투기 숫자보다 SAS에 의해 파괴되는 전투기 숫자가 더 많을 지경이 된다. 심지어 SAS한테 털려 새로 받았는데 그 날 SAS가 와서 또 박살내버리는 자비심없는 일들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주 이동수단은 미국으로부터 공여받은 지프로 사진과 같이 정면의 라지에터그리를 잘라내고 바로 직결하여 큰통과 연결 한방불의 물이라도 재활용하는 과급기로 장시간 주행과 사막의 뜨거운 기후에서 엔진이 과열되는것을 막았으며 치고 빠지기에 좋은 비커스사의 기관총을 다수장착 빠른기동성과 기습으로 독일군을 괴롭혔다. 특히 이들의 주특기는 시한폭탄 설치로 독일군의 비행기지를 급습하여 몰래 시한폭판을 설치후 도망가는 전술릉 주로 이용했다. 기습받은것을 알고 추격했을때는 이들은 벌써 수백킬로밖의 사막속으로 유유히 빠져나간뒤라 독일군도 어찌해볼 방법이 없었다]

 

 

 

 

[현대에 와서 재현된 SAS JEEP의 모습 앞부분 그릴에 과급기와 장기간 작전에 이용하기 위한 가솔린통 그리고 주렁주렁 메달린 장비들이 특징이다. 특히 SAS는 LRDG 들이 전수해준 사막지역 운행의 필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자작한 해시계등을 이용해 넒은 사막에서 정확하게 길을 찾는것과 반쯤 바람을 뺀 타이어와 모래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듯 운전하는 사막운전술이였다. 이런 운전술은 연효를 최대한 아끼면서 먼거리까지 자동차를 운행하는데 필수운전기술이자 생존 기술중 하나였다] 

 

 

[앞부분 그릴에 과급기와 장기간 작전에 이용하기 위한 가솔린통은 사막작전에 필수장비인데 특히 SAS는 LRDG가 전수해준 사막생존기술을 작전이 그대로 이용했다 차체옆에 자작하여 장착한 대형통은 라지에이터의 냉각용 물을 외부에서 별도 공급하여 장시간 사막에서의 작전에서 엔진이 과열되는것을 막는 과급기이다 이는 사막생활에서 따로 터득한 생존기술중 하나였다]  

 

 


그러나 여기에 맛들인 영국군 사령부가 특수작전을 너무 확대한 나머지, 정규군의 보조를 맞추는 정도로 생각하고 무리하게 대규모 반격작전의 일부로 집어넣는다. 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는 보강된 독일군 진지들을 뚫지 못하고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이후, 결정적으로 엘 알라메인에서 정규군을 통한 지상전의 대승리가 영국군 수뇌부에서 비정규전에 집중할 필요를 굳이 못 느끼게 해서 도로 찬밥 신세가 된다.

 

 

 

 

 

[작전에 나가기전 스털링대위와 그의 부하들 머리에 쓴 흰두건은 사막의 뜨거운 햇볕아래 머리의 열을 차단해주는 역확을 하는것으로 현지인들의 장비를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장갑 역시 사막의 뜨거운 열사아래 차체가 가열되어 화상을 입기 쉽기 때문에 필수장비중 하나였다. 이처럼 SAS 들은 철저하게 사막생활에서 현지인의 지혜를 그대로 따랐으며 그로인해 작전을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영국이 주도권을 쥔 북아프리카 전장과는 달리 서유럽은 여전히 독일이 차지하고 있었고, SAS는 유럽으로 넘어가서[1] 계속 비정규전을 펼치며 꾸준히 성과를 거둔다.

 

 

[북아프리카전선에서 몇번의 전과에  맛들인 영국군 사령부가 특수작전을 너무 확대한 나머지, 정규군의 보조를 맞추는 정도로 생각하고 무리하게 대규모 반격작전의 일부로 집어넣는다. 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는 보강된 독일군 진지들을 뚫지 못하고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이후, 결정적으로 엘 알라메인에서 정규군을 통한 지상전의 대승리가 영국군 수뇌부에서 비정규전에 집중할 필요를 굳이 못 느끼게 해서 도로 찬밥 신세가 된다. 북아프리카전선에서 후퇴한 SAS들은 이후 유럽전선으로 옮겨 재집결하여 같은 전술로 독일군을 괴롭혀주었다 다만 LRDG들은 그 피해를 복구하지 못하고 1943년 팀이 전원해체되었다 (그보다는 LRDG들은 철저하게 사막에 적응된 부대라 유럽전선과는 맞지 않은경우 때문이도 하다)]

 

 

[유럽전선에서의 SAS의 모습 사막과는 작전지역도 다르고 환경도 달라 장비품도 변화가 있는것이 보인다 사막에서 구하기 어려운 식수나 연료대신 탄약을 많이 싣고 있는것을 볼수 있다]

 

 

2.2 제2차 세계대전 이후~196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잠시 해체되기도 했지만 이미 노쇠할대로 노쇠해진 "늙은 사자" 영국에게는 기존의 대규모 정규군을 존속할 여력이 없었고, 해체된 지 2년 만에 영국 본토의 국방의용군(Territorial Army)내에 SAS 21연대가 재창설된다.

1948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지원을 받는 말라야 민족해방군과 말라야 공산당에 의해 시작된 말라야 위기에는 식민지군에서 차출된 "말라야 정찰대(Malayan Scouts)"가 옛 SAS의 노하우를 살려 활약하는데 이들은 곧 SAS 22연대로 변신하게 된다. 이들은 반영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에 맞서 싸웠다.[2]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SAS들은 잠시 해체되기도 했지만 이미 노쇠할대로 노쇠해진 "늙은 사자" 영국에게는 기존의 대규모 정규군을 존속할 여력이 없었고, 결국 해체된지 2년 만에 영국 본토의 국방의용군(Territorial Army)내에 SAS 21연대가 재창설된다. 그리고 1948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지원을 받는 말라야 민족해방군과 말라야 공산당에 의해 시작된 말라야 위기에는 식민지군에서 차출된 "말라야 정찰대(Malayan Scouts)"가 옛 SAS의 노하우를 살려 활약하는데 이들은 곧 SAS 22연대로 변신하게 된다. 이들은 반영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에 맞서 싸웠다.[2]]


이후 친공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권이 반외세를 외치며 말레이시아공산당을 지원하며 벌어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전쟁에서도 공산 게릴라로 가장한 인도네시아 정규군과 싸웠다. 최종적으로 정부를 지키고 민심을 돌리는데 성공하며 이는 성공적인 게릴라전의 대명사로 여전히 거론된다.

 

 

[2차대전에서의 사막전과는 달리 정글전은 SAS들에세 또다른 시련이였지만 전원프로답게 정글에서도 맹위를 떨쳤다. 특히 SAS는 최초로 AR-15 (훗날 M16으로 불리는.) 를 특수부대중에서는 제식화기로 도입하여 사용하였으며 이는 당시 7.62mm 의 무겁고 긴 FAL 자동소총이 정글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경험에서였다. 결국 이 판단은 매우 현명했으며 다른 미군들도 곧 주력소총을 무겁고 긴 M14 에서 M16계열로 바꾸게 된다]  

 


훗날 월남전에서 미군이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소모하고도 결국 베트남의 민심을 얻지 못해 패배한 것에 비해 큰 교훈이 된다. SAS는 이 작전에서 FN FAL과 같은 고위력 자동소총이 특수임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 후에 영국군 최초로 M-16을 도입한다. 이후 M-16은 영국군 내에서 아말라이트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SAS의 상징이 되었다.[3]

 

 

 

[정글에서의 도입이후 SAS는 현재까지 열렬한 M16 소총의 팬들이며 영국군들이 최악의 자동소총으로 불리는 SA80을 사용하는 동안 유일하게 M16을 고집하는 영국군부대중 하나이다 (SAS들이 사용하는 소총은 자동연사가 가능한 캐나다산 M16A2 를 사용중에 있다 ) ]


한편 영연방 국가의 일원 중 하나인 호주에는 SASR이, 뉴질랜드에는 NZSAS가 있다. 이들의 기량이나 활약상은 원조 못지 않으며, 자세한 내용은 각 해당 항목에 서술되어 있다.

 

 

[한편 영연방 국가의 일원 중 하나인 호주에는 SASR이, 뉴질랜드에는 NZSAS가 있다. 이들의 기량이나 활약상은 원조 못지 않다. 사진이 호주의 SASR의 모습]

 

3 대테러전술의 선구자

한편, 이들은 60년대 이후로 테러리스트와 대테러전에 관한 개념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인질구출이나 테러 진압작전의 개념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특히 북아일랜드에서 IRA와의 시가전 경험을 쌓았다.[4][5]

 

 

 

 

 

[1960년대 이후 SAS는 대태러임무에 충실하게 되는데 이는 영국과 아일랜드와의 오랜 테러전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사진의 검정복장과 MP5 그리고 스텀탄(섬광탄) 으로 대변되는 대테러부대의 장비들의 시초는 SAS가 그 시발점이 되었다]  

 


북아일랜드에서의 실전경험 등을 통해 대테러전에서 최고급의 기량을 쌓았으며, 외국 대테러부대와의 잦은 교류를 통해 대테러전 노하우를 공유, 발전시켜 나갔다. GSG-9의 "마법의 불꽃" 작전 당시 SAS 고문관들이 섬광탄을 제공해줬다는건 유명한 이야기.

 

 

 

[SAS는 1980년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과감한 진압 작전을 통해 테러범들을 제압하고 인질들을 한 명 빼고 모두 성공적으로 구출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이때 이들이 사용한 장비들과 흑복, 방독면, MP5 같은 특징들은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는 SAS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고, 그들이 보여준 진압 작전 노하우와 장비들은 다른 나라 대테러부대들도 널리 받아들이는,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


1980년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과감한 진압 작전을 통해 테러범들을 제압하고 인질들을 한 명 빼고 모두 성공적으로 구출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이때 이들이 사용한 장비들과 흑복, 방독면, MP5 같은 특징들은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는 SAS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고, 그들이 보여준 진압 작전 노하우와 장비들은 다른 나라 대테러부대들도 널리 받아들이는,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4 전투력을 입증한 사례

포클랜드 전쟁 당시에도 여러 작전에서 맹활약했지만, 아르헨티나군의 기관포 진지 앞으로 쭉 펼쳐진 평야지대를 거슬러 올라가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한편으론, 영하의 날씨에 고산지대를 행군하고 적의 배후를 습격하는 임무에서 단 한 명의 동사자나 비전투 손실도 입지 않아 이후 다른 나라 군대의 동계작전의 모범이 되었다. 당시 사상최초로 고어텍스 재질의 야외상의와 전투화가 지급되었다고 하며, 꾸준히 휴식과 따뜻한 로 체력을 유지해 성공적으로 전투력을 유지했다고 한다.

 

 

 


걸프전에서도 역시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발사대 추적이나 전략목표 정찰, 연락선 차단 등의 임무에 투입되었다. 이때, 브라보 투 제로라는 암호명을 띄고 스커드 미사일 감시를 하러 간 일단의 SAS 부대가 어린 목동 소년에게 우연히 발견되어 위치가 발각되자 헬기로 이탈하려했지만, 헬기가 오지 않고 적의 추격이 계속되자 도보로 이라크를 횡단하여 거의 시리아 국경 앞에서 1명은 탈출에 성공하고 3명은 전사, 4명은 붙잡혀 포로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 포로가 되었던 한 대원이 그들의 희생과 작전 전체가 극비로 취급되는 것에 분개, 전역 후 브라보 투 제로라는 책을 써내며 이들의 활약상과 놀라운 희생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브라보 투 제로 작전팀의 경우 8명의 인원으로 장갑차를 가진 수백의 정규군과 민병대의 추격을 꾸준히 물리치면서, 너무 먼 사우디아라비아 쪽 국경보다는 가까운 시리아 쪽 국경을 택해, 실제로 시리아 국경에서 몇 킬로미터 남짓한 지점까지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다만 무사히 시리아로 도망친 사람은 1명 뿐이었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전투와 추위로 3명이 전사하고, 포로가 된 이후에도 몇개월에 걸쳐 무수한 고문과 심문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의 정체를 숨겼다. 이라크군이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나고 포로교환을 한 이후였다고...대원들의 기량은 그야말로 일당백이지만, 특수전 장비나 헬기 같은 지원요소가 부족했던 한계 때문에 대원들이 불가피한 희생을 치루었다고 평가된다.
또한 시에라리온에서는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되었다가 반정부군에 인질로 잡힌 영국군 장병들을 공수부대와 공군과의 협동작전으로 성공적으로 구출하기도 하였다.

 

 

 

 

[SAS는 1991년 걸프전에도 투입되었는데 그들의 임무는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발사대 추적이나 전략목표 정찰, 연락선 차단 등의 임무에 투입되었다. 이때, 브라보 투 제로라는 암호명을 띄고 스커드 미사일 감시를 하러 간 일단의 SAS 부대가 어린 목동 소년에게 우연히 발견되어 위치가 발각되자 헬기로 이탈하려했지만, 헬기가 오지 않고 적의 추격이 계속되자 도보로 이라크를 횡단하여 거의 시리아 국경 앞에서 1명은 탈출에 성공하고 3명은 전사, 4명은 붙잡혀 포로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 포로가 되었던 한 대원이 그들의 희생과 작전 전체가 극비로 취급되는 것에 분개, 전역 후 브라보 투 제로라는 책을 써내며 이들의 활약상과 놀라운 희생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진의 대원들이 그당시 투입된 SAS 대원사진이다. 이책으로 인해 SAS 의 활약과 존재가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물론 이 책을 쓴 저자는 기밀을 공개한 죄로 SAS 에서 영원한 퇴출..]


위와 같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기량이 매우 높은 특수부대로 한 명, 한 명의 신원 자체가 비밀로 다뤄질 정도로, 이들은 영국의 전략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달리는 프라이스 대위만 봐도 딱 나오지 않는가!!!

히틀러는 SAS에 대해서 "그들은 매우 위험한 존재이므로 발견 즉시 사살해야한다."라고까지 말했을 정도.

재미있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SAS는 적국 음악 릴리 마를렌을 상부의 반대를 무시하고 행진곡으로 채택하였는데, 그걸 21세기에 들어서까지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5 개판인 군기(...)

한편, 전시가 아닌 평상시의 훈련 강도와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라서 반대급부로 풀어줄 때는 군기가 거의 개판 5분전으로 흐트러진다고 한다. 물론 전문가들이라 어느 정도 선은 지키고, 쉴 때는 확 쉬고 할 때는 확 하는 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그 레벨이 다른 군인들이 보기엔 거의 똘끼에 가깝다는 것도 특징. 한 예로, 교환장교로 SAS에서 훈련을 받던 미군 장교 찰스 베크위드는 난장판이 된 내무실 바닥에 앉아서 휴대용 가스난로로 차를 끓이던 한 SAS 대원에게 '정리정돈 좀 해야 하지 않겠소?'라고 했다가 SAS 대원이 '나보고 뭘 어쩌란 거야!'라는 대답을 듣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력과 독특한 훈련군기 등을 접하고는 훗날 델타 포스 창설에 큰 기여를 한다. 미군 특수부대원들의 군기도 어느 정도는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 사실 베크위스의 사례도 당사자들에겐 별 일 아닐수 있는 것이, SAS는 대원들의 계급도 자기들 멋대로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SAS 멤버가 되는 순간부터 계급을 반납하고 SAS 자체적으로 소위, 중위, 대위 식으로 계급을 주기 때문. 때문에 원래 계급이 소령이던 중령이던 병사계급 부터 다시 시작해서 대원들이 인정하는 계급이 되야한다.

 

 

 

[SAS의 군기는 엄하면서도 개판(?)인걸로 유명한데..개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은 최대한 보장하지만 작전수행에 있어서는 팀이 혼연일체가 되어 작전을 완수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경향은 SAS로부터 기술을 배워간 미국의 델타포스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블랙호크다운에 보면 잘 나온다. 실총으로 돼지를 사냥해와서 바베큐 파티를 한다던지.. 총을 메고 식사를 하다 레인져 대위에게 지적당하는 부분등..)] 

 

6 이름을 둘러싼 해프닝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SAS라 불렸으나 현재의 정식명칭은 그냥 '제22연대'. 21연대와 23연대도 있긴 있는데 이들은 전시에 예비군으로 구성될 부대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은 22연대다. 때문에 자기네들은 그냥 'The Regiment'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진짜 SAS 출신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려면 이 사람이 자기네 부대를 '싸스'라고 발음하면 가짜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이름 탓에 사람들이 공군 소속으로 착각하거나, '특수공군연대'라는 해괴한 번역을 당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보통은 그냥 고유명사인 SAS를 그대로 쓰는게 낫다(미국의 델타포스 처럼...). 굳이 번역을 하자면 기원이나 역할을 고려할 때 '공수특전단'이 가장 적절한 번역명칭이다. 그런데 그렇게 번역할 경우 문제가 하나 더 생기는데, 영국은 공수부대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햇깔릴 수 있다.

 

 

 

[SAS들은 철저하게 개인의 비밀을 보장받는다]


7 SAS 출신 주요 인물 열람(가나다 순)

7.1 실존 인물

7.2 가공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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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AS와 함께 움직였던 LRDG는 사막특화형이었던데다 토브룩에서 입은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고 해체되고 만다.
[2] 22연대는 식민지군이었기에 오스트레일리아 중대, 로디지아 중대가 포함되어있었고 이들은 나중에 분리되어 베트남 전쟁과 로디지아 전쟁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이런 활약 때문에 본토의 21연대를 누르고 22연대가 정규군에 남게된 것이다.
[3] 다만 이때의 M-16은 대부분 인도네시아군으로부터 노획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이후에는 정식으로 들여오게 되었다.
[4] 그러나 이 과정에서 IRA 간부를 제거한답시고 IRA 간부의 승용차에 폭탄을 설치해놓고선 죄없는 간부 친척들까지 다 모였을때 "어 테러범 떼거지로 모였네" 하고 폭파시키는 등 여러가지 실수도 있었다고 한다.
[5] 아일랜드인 학살사건으로 가장 유명한 1972년 1월 30일의 "피의 일요일 사건"은 SAS가 아니라 1공수여단이 일으킨 사건이다.
[6] 하지만 모티브가 된 인물은 실제 SAS 소속

 

출처 엔하키미러 ( http://mirror.enha.kr/wiki/SAS) 일부사진과 내용은 추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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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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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레이(정호경) | 작성시간 12.12.06 SAS..걍 영국 특수부대 정도로만 알았는데 자세히 알게 되었네요.모던워페어의 프라이스대위의 카리스마가 떠오릅니다.(소프는 /애도 ㅠㅠ) 정말 무시무시한 팀이네요.그나저나 저거 SAS시보레트럭 킷트로 나온 것 있습니까?
  • 답댓글 작성자mirageknight [왕성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2.06 넵 타미야 제품으로 예전에 출시되었고..같은 제품이 이탈래리 제품으로도 있습니다. 물론 이번에 재판될듯.. 저도 애타게 기다리는 아이템중 하나~~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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