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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교리

알고 긋는 십자성호 7

작성자기쁨과 자유|작성시간10.08.10|조회수61 목록 댓글 0

하느님의 현존 속으로 들어가기

 

   '이름'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사용된 이후에 그 용도의 비중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성경에서 이름은 지금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써 풍성한 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성경에서 하느님의 이름이 함축하고 있는 많은 것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이름을 라벨쯤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 시대의 유다인들에게 이름은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이나 실체와 관련이 있었다. 두 가지 예를 생각해 보자. 하나는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신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야곱이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을 대, 하느님은 그의 본성을 나타내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셨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창세 32,29).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과 겨룬 사람'이란 뜻이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시몬을 만나셨을 때, 곧바로 그의 실체를 나타내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요한 1,42).

   아람어인 케파는 그리스어로 베드로, 곧 바위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이름은 그분의 본성과 실체를 함축하고 있다.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느님은 "나는 곧 나다." 하고 대답하셨다. 또한 하느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탈출 3,14).

   예수님이 유다인 지도자들과 대면하여 예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에 관해 말씀하실 때, 당신의 신성한 이름을 알려주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 8,58).

   이렇게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우리에게 드러내셨다. 그 이름은 하느님이 무한한 존재이심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우리가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

   하느님의 이름에 대해 이렇게 성서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십자성호의 영적인 힘을 받기 위해 마음으 더욱 활짝 열 수 있고, 성삼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성호를 그을 때, 하느님의 신성한 본성과 실체와 함게 기도하게 된다. 참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기도하는 것이다.

   성삼위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우리를 주님의 현존 속으로 데려가 그분의 힘을 얻게 함으로써 기도를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 준다. 그러므로 십자성호는 기도의 시작과 끝에 긋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느님께 가까이 이끌어주고 그분과 함께 걷고 기도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신성한 행위이다. 아주 작은 동작이지만 그 결과는 대단히 놀라운 것이다(pp. 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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