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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

정의철 주임 신부님 주일 미사 강론 원본 ,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 (2019-12-24)

작성자rome storyteller|작성시간19.12.28|조회수70 목록 댓글 0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2019. 12. 24)


제1독서말씀 (이사야서 9장 1-6절)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당신 앞에서 기뻐합니다,

수확할 때 기뻐하듯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 정녕 당신께서는 그들이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를 미디안을 치신 그날처럼 부수십니다.

땅을 흔들며 저벅거리는 군화도 피 속에 뒹군 군복도 모조리 화염에 싸여 불꽃의 먹이가 됩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놓인 그 왕권은 강대하고 그 평화는 끝이 없으리이다.

그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공정과 정의로 그 왕국을 굳게 세우고 지켜 가리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복음말씀 (루카 복음2장 1-14절)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주님의 말씀입니다.

신부님 강론말씀

이 거룩한 밤, 주님의 성탄을 거행하고 경축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바로 오늘을 위해 4주간의 대림시기를 지냈고, 이제 우리 마음 속에 한

아기의 탄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천상 아기의 탄생의 의미는 우리 각자에게 있어, 그 준비 여하에 따라 크게 다를

것입니다. 우리에게 탄생하시는 이 아기는 과연 어떤 아기입니까?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 다윗의 왕조와 그의 왕국 위에 놓인

그 왕권은 강대하고, 그 평화는 끝이 없으리이다. 그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공정과 정의로 그

왕국을 굳게 세우고 지켜 가리이다.”

이 예언을 보면 그 아기에게 주어질 엄청난 권력과 위풍 당당함이 묘사되어 있는데, 약속된 이

아기의 탄생을 말해주는 오늘 복음의 분위기는 이와는 너무도 다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태어나신 그 아기는 세상의 주인이시고 인류의 구세주이신데, 마구간에 태어나시고 짐승들의

여물 통에 누어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임마누엘」이 되시기 위해, 즉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아니 절망의

어두움에서 탄식하고 아파 울고 있는 인간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가장 가난하고 가장 연약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교만을 치유하기 위해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

「임마누엘」의 신비를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외람된 마음으로 감히

이렇게 비유해 봅니다. 「임마누엘」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과 눈을 맞추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위치 더구나 우리 가운데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에 오셨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구약시대에서는 감히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고, 그 분의 얼굴을 직접 뵙는 이는

죽으리라고 하시던 하느님이십니다. 주님께서 태어나시기 500여년 전에 이사야 예언자가

‘처녀가 아기를 낳아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라고 예언하였을 때, 그리고 그 예언을 들은 후대의 유다인들에게는

‘하느님께서 도대체 어떻게 인간과 함께 계실 수 있겠는가?’하는 문제가 커다란 수수께끼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인간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방식으로 오셨습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우주의 주인이신 분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여물통 안에 누워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천한 목자들도 그분께 찾아가 눈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오늘 태어나신 그 분은

어느 누구와도 눈을 맞출 수 있고 맞추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감히 쳐다보기 힘든 저 높은 곳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내려다 볼

수 있게끔 낮은 구유에 계십니다. 그분의 숨소리를 직접 느낄 수 있고, 그 분의 미소를 자세히 볼

수 있는 곳에 계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이신 그 분은 인간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 오심으로써,

어떠한 처지에 있는 사람과도 하나가 되셨습니다.

이처럼 오늘 탄생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고,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더욱더 그분에게서 사랑을 느끼게 되고 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 가운데

탄생하신 이 아기를 통해,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 인간들 속에 깊이 들어와 계시는지, 인간을

얼마나 아끼시는지가 분명히 드러났고, 우리 모두는 피부적으로 아주 생생하게 깊이 느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제외 하시지 않고 인간을 찾아 주셨고 함께 사시며,

아무도 소외되거나 멸시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성탄을 통해 강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처럼 우리 가운데 탄생하신 그 분은 아래로 직접 내려 오셨습니다.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계속해서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려고만 하는 오늘날의 시대에, 생존의

길은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밑으로 내려감에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대한 힘이나 화려하고 부유함이 우리 생명이나 우리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이 보여주신 가난과 겸손, 낮춤과 비움, 그러면서도 정의와 진리에 대한 확신과

그에 대한 투신이야말로 세상을 밝게 비추어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임을, 또한 우리가 참

인간으로서 굳게 서는 길임을 몸소 알려주셨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육화,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신앙인의 모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즉, 하느님께서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고, 고귀하게 만드시어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묵상하면서 비록 작으나마 다른 사람들에게 오늘 탄생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주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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