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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

정의철 주임 신부님 주일 미사 강론 원본 , 성령 강림 대축일 (2010-05-31)

작성자rome storyteller|작성시간20.06.05|조회수56 목록 댓글 0

성령강림대축일(2020.5.31)

복음말씀 (요한 복음 20장 19-23절)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신부님 강론말씀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로서 오순절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신 사건을 기념하고 경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지만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함으로써 확고한 믿음에 도달하기까지는 좌절과 의혹 그리고 불안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시자 제자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성령의 임하심은, 제자들이 진정한 사도로 다시 태어나는 전환점이 된 것이고 그래서 오늘은 교회의 창립일이 됩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포함해서 성서 안에 성령께 대한 언급이 꽤 많다는 것을 께닫게 되지만, 막상 성령이 누구신지를 생각해 보면 좀 막연하거나 그 분이 누구신지 보다는 성령의 은사나 열매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령을 이해하는 첫 걸음으로, 복음서 안에서 드러나고 있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의 제자들의 모습에서 찾아볼까 합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영광스럽게 부활하셨지만, 그분을 따르던 제자들의 모습은 결코 영광스럽지도, 승리의 기쁨에 차 있지도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왕이 되신 스승님 옆에서 영화를 누릴 줄 알았던 제자들은 스승의 처참한 죽음 앞에서 뿔뿔이 흩어졌고 자신들에게도 불똥이 튈까 두려워서 집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자들에게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심으로 불안에 떨던 제자들이 굳게 닫혀 있던 다락방 문을 박차고 거리로 뛰쳐 나갑니다. 그래서 일자 무식이던 그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라는 박사들 앞에서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 메시아’라고 선포를 하고 그들과 논쟁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 흘러 넘쳤으며, 사람들은 그들의 선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흩어졌던 그들이 다시 모였으며, 갈라졌던 그들이 한 목소리가 되었으며, 생기없고 죽을 상이던 그들이 신명 넘치는 사람들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자들의 이러한 변화에 놀라고, 그런 변화에 매료되어서 “저 죽을 일 밖에 남아있지 않던 사람들에게 도대체 모슨일이 벌어졌고,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하고 궁금해 합니다. 이처럼 변화된 제자들의 모습에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궁금증의 해답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바로 이렇게 구체적으로 한 사람을 바꾸어 놓으시는 변화입니다. ‘죽을 맛’에서 ‘살 맛’으로, ‘죽음의 기운’에서 ‘삶의 기운’으로 ‘막혀있던 문’에서 ‘활짝 열어 젖힌 문’이라는 구체적인 변화입니다. 한마디로 성령은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같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생기를, 다시금 온기를, 다시금 살 맛을 불어 넣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을 이해하는 두번째 단초는 복음서에 나오는 성령의 다른 이름에서 발견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요한 복음 14장 15-1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약속하시며 그분을 ‘빠라끌리토’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협조자 혹은 위로자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빠라클리토’란 법정에서 변호하는 역할을 맡은 증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재판관이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사탄은 우리를 고발하는 자로 나타나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또 다른 이름은 ‘진리의 영’입니다. 요한 복음사가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과 함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에서 볼 수 있듯이 진리는 바로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의 영’은 그리스도께 속한 영이고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결국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 마음 속에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시고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런 주님을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안에 사랑의 불을 지피며 그분께 응답하도록 해주시는 분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처럼 우리의 위로자이시며 변호인이고 교사이며 전구자이고 또한 우리 성화의 원동력이신 성령은 모든 교회생활 특히 우리 신앙생활의 원천이며 활력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행복한 신앙생활을 원한다면, 성령께,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의미를 새겨 주시기를, 주님께 대한 사랑의 불씨를 지펴주시기를, 그리고 나의 내면을 정화시켜 주시기를 빌며 내 삶과 공통체의 주도권을 성령께 넘겨드리도록 노력하는 바로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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