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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장 25-26절, 제목 : 왜 성령으로 살아야 하나.

작성자고백지기|작성시간21.01.20|조회수1,145 목록 댓글 0

성경 : 갈라디아서 525-26, 제목 : 왜 성령으로 살아야 하나.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믿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라고 했습니다.

 

25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성령으로 살라고 했습니다.

 

그럼 왜 성령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살아야 예수가 구주가 되심을 바르게 고백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 있으면 진리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바르게 알고, 악인의 꾀에 넘어가지 않고, 오만한 삶을 살지 않으면 죄의 길로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육체를 소욕(갈5:17) 거스린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육체의 소욕을 거스린다. 는 것은 지난 주에도 잠시 말씀을 드렸듯이 육체는 죄 성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소욕은 탐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죄 성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자기가 원하는 욕심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모습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육체의 소욕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야 이런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는 탐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바르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드러내고 이웃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할 수가 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육체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9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에서 현저하니’(파네라)라는 말은 ‘눈에 띄게 드러나다’는 뜻입니다.

 

또한 ’(타 에르가) 복수로써 아래에 언급된 여러 가지 죄상을 포괄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성령을 따르지 않고 육체를 따라 사는 인간이 도모하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행해졌음과 그러한 패역한 행위는 반드시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표현한다고 봅니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란 말은 성령의 법을 떠나 육체의 소욕대로 행하게 될 때, 범할 수밖에 없는 죄악들을 열거하고 있는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성적 죄악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음행’ 이란 성적인 부도덕을 의미하며, ‘더러운 것’은 보다 광범위한 성적인 죄악, 즉 행동적 측면에서의 성적 범죄뿐만 아니라 내면적 측면에서의 성에 대한 범죄를 포함해서 가리키는 말이도 합니다.

 

그리고 ‘호색’이란 음행을 행하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하고 자신의 행위를 자랑삼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20우상 숭배와 술수와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의 죄악, 즉 종교적 범죄를 언급합니다.

 

특히 ‘우상 숭배’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인정은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도 의지하고 자신만의 유익을 위하여 다른 존재를 만들어 거기에도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서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또한 ‘술수’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르마케이아’는 원래 ‘약을 제조하다’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상 숭배 의식에 있어 그 숭배자들이 조작해 내는 마술이나 술책 등을 이용하여 병을 낫게 하는 행위와 관련된 제반적인 미신 행위를 가리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행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계9:20,21. 20.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계18: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에서 ‘원수를 맺는 것’(에크드라이)이란 말이 복수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여러 사람과 집단들, 즉 민족이나 계층 사이에서 서로 적대감을 갖고 갈등을 야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아울러 ‘분쟁’은 서로 원수를 맺는 행위에서 유래되는 당연한 결과로써 항상 다툼을 유발하는 것을 뜻합니다.

 

‘시기’는 경건한 열정과 달리 육체의 정욕에 따라 형성되는 자기 이기심의 충족을 이루기 위한 열심인데, 이것이 마침내 그 절정에 달하면 ‘분’을 내게 된다는 것이고 이런 상태에서 끔찍한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가인을 통해 알 수도 있습니다.(창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에서 ‘당 짓는 것’을 나타내는 헬라어 ‘에리데이아이’라는 말은 본래 ‘삯꾼’(에리도스)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인데, 이는 어떤 논쟁의 객관성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조직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분리’(딕소스타시아이)는 당 짓는 행동에 따른 결과이며, 이 말 가운데는 자기가 속한 당파를 위해 분쟁을 일으킨다는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다.

 

한편 여기서 ‘이단’(하이레세이스)이란 말은 단순히 정통 교리에 반대하는 특정 집단이라는 교의적(敎義的) 의미보다는 문자적 의미 그대로 자신들의 입장만을 옳다고 주장하며 분쟁과 다툼을 일삼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21, ‘투기와 술 칠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앞 절에 나오는 ‘시기’가 타인을 질시하여 멀리하는 성향인데 반해, ‘투기’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어떤 지위나 소유를 빼앗으려는 보다 적극적인 마음인데,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동기도 바로 이것에서 비롯되었음 다시말씀 드립니다.

 

아울러 ‘술 취함’(메다이)이란 말은 본래 ‘지나친 폭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술에 위해 자신의 감정과 이성을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분별력이 없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무엇보다도 이에 대한 경고가 자주 주어졌다(잠31:5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엡5: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또한 ‘방탕함’(코모스)은 ‘술에 취해 마구 떠들고 무절제하게 행동하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이는 육체의 정욕에 빠져 헤매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나열한 이러한 행동들은 인간의 타락상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써, 성령을 거스리는 육체의 소욕이 얼마나 악한 것인가를 잘 입증하고 있습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19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육체의 일과 분명한 대조를 이루는 표현입니다.

 

특히 본 절에서 바울은 ‘일’이란 낱말 대신에 ‘열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성도가 삶 속에서 맺어야 할 열매가 성도에게 성령의 권능을 부여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된 은혜로 맺어지는 것이며, 또한 다른 일면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가 마땅히 그 은혜에 보답하여 생활 속에서 맺어드려야 하는 것임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이 전제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성령의 9가지 열매라고 불리는 이 덕목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한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할 삶의 열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22절. ‘사랑과 희락과’에서 ‘사랑’(아가페)은 단순히 이성의 사랑이나(에로스), 형제나 동족간의 사랑(스톨게), 그리고 우정(필리아)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자기 생명을 버리신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이고 희생적 사랑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성령을 좇아 사는 성도들이 가장 먼저 드러내야 할 덕목은 바로 사랑인데, 성령의 나머지 열매들의 초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희락’(카라)은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기쁜 마음인데, 이는 성령을 좇아 사는 성도들에게 삶의 소망을 주고 더 나아가서는 원동력을 만들어 줍니다.

 

화평과 오래 참음과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린 십자가는 전적 타락한 죄인으로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들에게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이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성도들은 복음의 그 정신에 따라 이웃과 화평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 화평은 사랑의 실천에 따른 결과 관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오래 참음’(마크로뒤미아)이란 말은 ‘긴’(마크로스)과 ‘마음’(뒤모스)의 합성어로서, 문자적 의미는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을 견뎌내는 인내를 가리킵니다.

 

이는 성도의 생활에 있어서의 단순한 인내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며, 평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을 뜻합니다(2: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5: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8.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에서 ‘자비’는 남에 대하여 인자하고 관대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뜻하는데, ‘자비’(크레스토테스)란 말이 ‘선’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한편 ‘양선’(아가도쉬네)이라는 말은 ‘자비’보다 적극적으로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을 강조한 말입니다.

 

아울러 충성’(피스티스)은 근본적으로 ‘믿음’과 같은 단어인데 이는 성경에서 대부분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태도를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웃과의 대인 관계에 있어서 신실성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23, ‘온유와 절제니서 ‘온유’(프라오테스)란 자기중심적이고 완고한 태도와 상반된 개념으로 남에 대하여 상냥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진리 안에서 상대방을 품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말하여 줍니다.

 

또한 ‘절제’(엥크라테이아)라는 말은 ‘자제하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육체적 충동들을 억제하며 성도로서의 균형 있는 삶을 유지하는 상태를 나타낼 때 사용한 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바울이 ‘이 같은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을 통해 성령을 좇아 사는 성도들에게는 더 풍성한 열매들이 맺어질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금지할 법이 없다’는 표현은 율법을 비롯한 세상의 그 어떠한 법이라 할지라도 복음의 진리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 말씀을 직역하면 이런 말씀이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그의 본성이 죄성과 정욕 그리고 탐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느니라 뜻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분별력이 있는 삶이 되어 자기만족을 위 탐욕을 부리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라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진리 안에서 예수가 구주가 되심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해 그리스도인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아버지의 뜻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며 진리 안에서 바르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자의 삶이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헛된 영광에 사로잡혀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헛된 영광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신 이유는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해 열국을 복되게 하시는 것 같이 믿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어 성령님을 통해 믿는 사람들에게 진리 안에서 바르게 살도록 하고 그 바르게 사는 것은 곧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믿는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다투고 서로 투기하고 시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2절에 보면 이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받아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천국 소망 속에서 오늘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은혜를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는 복음의 증거자가 되기 위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강력하게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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