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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은 것 (히브리서 6:9)

작성자요나짱|작성시간22.10.29|조회수12 목록 댓글 0

이보다 더 좋은 것

 

(히브리서 6: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을 향하여 달려간다.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집, 더 좋은 자동차,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설교에 대하여는 귀에 달콤한 설교를 원한다. 성경을 전체를 잘 가르치는 것보다, 자기 기분에 좋은 메시지를 더 원한다. 그 결과 성도들은 장로가 되어도 영적 지각이 없어 의의 말씀을 경험치 못한 어린아이가 되어 선악을 분변하지 못한다.

 

오늘 바울은 서두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 6:1-3) 경고하였다. 이 말씀은 성도의 네 번째 위험으로, 설교자를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많은 목회자들이 죽은 행실의 회개와 믿음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설교를 선호한다. 물론 이런 설교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교리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대로 나아가라 권고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3) 하였다. 다시 말하여 초보적인 교리에 속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므로 우리가 열심을 낸다고 되는 일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계속하여 바울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4-6) 기록하였다.

 

이 말씀은 매우 어려운 말씀이다. 만약 어느 목사가 이 구절을 택하여 저주의 설교를 한다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이런 설교는 앞뒤 설명 없이 동성애자는 저주받아서 지옥 간다는 것과 같다. 이는 사탄의 좋아하는 설교법이다.

 

사탄은 예수께 시편에서 한 구절을 떼어 “기록되었으되 그가 그의 천사들에게 명하여 너를 모든 길로 인도하게 하사 네가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말하였다. 이때 예수님은 “기록하였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성경 전체의 균형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7,8) 증거하여, 충분한 성경 공부의 중요성을 비유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말하여야 할까? 바울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9) 선언하였다.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라는 말속에는 설령 저주에 관한 말씀이라도 실상은 더 좋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 어머니들은 속을 썩이는 자식들에게 차라리 나가 죽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미의 마음에는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부지런함과 오래 참음으로 성도를 사랑하고 섬김으로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성도들로 하여 약속하신 기업을 받는 자들을 본받게 하여야 할 것이라 권고하였다.

 

끝으로 바울은 성경 말씀의 중요성을 말하여,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두 가지 약속 곧 “자기보다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13)하신 것과 “내가 반듯이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14) 하였다. 이는 오직 성경을 전하는 교회에 임할 축복과 번성을 말한 것이다.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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