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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인 보화 - 척 스미스

작성자지저스월드|작성시간21.11.04|조회수49 목록 댓글 0

“감추인 보화”

(The Hidden Treasure)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천국이란?

오늘밤 우리들은 성경 속으로의 여행을 계속하면서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여러 가지 천국비유들에 대해 공부하게 될 것이다. 특별히 이 시간에는 이 일곱 가지 천국 비유 중 하나인 13장 44절의 비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말씀하셨다.

 

이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의 네 가지를 이 비유 속에서 찾아내 알고 있어야만 한다. 우선 ‘천국’이 있고, ‘보화’가 있고, 또 ‘밭’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 ‘사람’이 있다.

 

두 개의 왕국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을 뜻한다. 우리는 온 우주가 서로 대립하고 있는 두 개의 세력에 의해 양분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이 두 세계를 각각 어두움의 왕국과 빛의 왕국이라 할 수 있겠는데, 사탄은 바로 어두움의 왕국을 통치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빛의 왕국을 통치하고 계신다.

 

이 두 왕국들은 빛과 어두움이 그러하듯이 피차간에 서로 배타적이어서 겹치는 부분이 없고, 부단히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선과 악의 싸움이다. 또한 이 싸움은 서로 간에 누가 인간을 차지하느냐, 또 누가 인간의 마음을 빼앗느냐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셨다. 그리고 사람은 그 지으심을 받을 때에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부여받았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꼬여서 악을 행하게 하는 주변 환경과, 또 우리들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는 좋은 영향들이 우리 주변에 공존하게 되었다.

 

악의 선택과 선의 선택을 요구하는 여건들이 우리들에게 쉬지 않고 찾아온다. 우리는 열띤 전투의 현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였다.

 

사탄은 사람들을 자신의 지배 아래에 두려고 정욕과 탐욕을 사용하여 유혹한다. 일단 그의 지배하에 들어오면 사탄은 우리들을 그 강한 힘으로 사로잡아 오직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절대로 그의 나라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붙들어 놓는다.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구원의 어려움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시니까 제자들이 듣고 놀라서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말씀하셨다. 구원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없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여러분의 구속, 여러분의 구원, 어두움의 왕국으로부터 여러분을 해방시키는 일을 여러분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어 여러분은 사탄의 지배하에 붙들려 있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모든 일을 다 하실 수가 있으므로 사탄의 힘에 사로잡힌 처지의 여러분을 그 힘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성경은 사탄과 세상의 공격이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 첫 번째 공격, 혹은 유혹의 경로는 안목의 정욕이요,

- 둘째는 육체의 정욕이고, 셋째 경로는 이생의 자랑이다.

 

이것들은 모두 강력한 동기 부여자가 되어 이 세상은 결국 안목의 정욕, 육체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의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고, 온 세상이 정욕과 탐욕으로 넘치게 되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의 시민임을 선언한다면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이 어두움의 왕국에 속해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니, 이는 어두움의 왕국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노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하늘나라의 시민이요, 거기로서 구원하시는 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 속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하셨다.

 

오늘날 여러분은 두 왕국 중 하나 안에 살고 있다. 그곳에 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여러분 자신의 선택이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 인생의 주님으로 모시고 모든 것을 그분 앞에 바친 후 그분을 따르기로 했다면 여러분은 천국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아직도 예수님께 여러분 자신을 드리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지금도 어두움의 왕국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어두움의 왕국에 거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신 사실이다.

 

여러분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저 어두움의 왕국을 예수님께서 바깥 어두운 곳이라고 표현하셨던 우주의 바깥쪽 끝으로 쫓아내시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사람이 빛을 사랑하지 않고 빛보다 어두움을 더 선호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그 사람이 선택한 대로 그를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아낼 것이다. 그 때 어두움의 왕국은 빛의 왕국으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추방되고 말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이 우주에는 단 하나의 왕국, 즉 하나님의 나라만이 남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이를 유토피아로 묘사하고 있다.. 죽음도, 고통도, 슬픔도, 질병도, 죄도 없을 그곳의 대표적 특징은 의와 평강과 희락, 그리고 사랑일 것이다.

 

이와 같이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는 곳이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신다면 여러분들은 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여러분들의 삶을 다스리고 계시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어두움의 왕국에 살고 있는 셈이다.

 

밭과 세상

 

비유의 두 번째 부분은 ‘밭’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여러 천국비유 중 먼저 나온 한 비유에서 예수님은 이미 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말씀하시기를 ‘밭은 세상이요’라 하셨다. 타락한 인간들의 가엾은 무리가 어두움의 권세 아래 신음하며 살고 있는, 전쟁과, 범죄와, 폭력과, 미움과, 진노와, 질투와, 다툼으로 가득찬 세상을 말한다.

 

태초에는 지구가 하나님께 속해 있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이 지구 위에 두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온 지구를 사람에게 주셔서 그것을 돌보고 가꾸어 동산으로 꾸미고, 그곳에 담긴 모든 좋은 것들을 활용하도록 명령하셨다.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놓고 참으로 엉뚱한 논리를 펴기를, 크리스천들이야말로 이 같은 성경말씀을 실행하기 위해 많은 지구환경의 손상을 초래한 장본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지구를 돌보고, 가꾸며,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잠재력을 활용하여 보살피라고 하였는데도 말이다.

 

기독교적 자연관이 환경의 훼손을 가져온 것이 결코 아니다. 사실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분석해 보면, 환경의 파괴는 오직 인간의 탐욕에 의해 자행되고 있을 뿐임을 알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아마존 정글의 열대림들을 무참히 파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재벌 세력들이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열대림의 수목들을 베어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 정글 속으로 들어간 크리스천들은 오히려 아무 소망도 없이 흑암 속에서 유리방황하고 있던 원주민들, 결핵으로 죽어가면서도 아무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던 저들 토착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빛과 은혜를 나눠주고, 농토를 개간하여 농장을 만들며, 마을을 세워 질병을 퇴치하는 등, 원주민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위해 열대림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어디를 가든 주변에 해를 끼치기는커녕 항상 주변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인류와 사회에 이바지해왔다. 얼마나 많은 병원, 고아원, 그리고 대학 등 사회적으로 필요한 기관들이 무신론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는가? 그런 기관을 세운 무신론자를 여러분들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무신론자들이 더러 기독교 계열의 대학들을 인수했던 사례는 있었어도, 그것들을 처음 설립한 것은 대부분 크리스천들이다.

 

이제 나도 더 이상 터무니없는 크리스천 때려잡기를 참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한 마디 해야 하겠다. 지구환경 파괴의 책임을 크리스천들에게 전가하려는 사람들, 참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억지인가?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에게 지구를 맡기시면서 그 지구를 돌보고, 가꾸며, 잘 보살피라고 명령하셨다. 그 태초에 아담은 하나님과 완벽한 조화와 교제를 누렸고, 사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들을 넘치도록 풍요롭게 공급해 주었던 낙원동산을 마음껏 즐기며 살았다. 그러나 언제인가 이 낙원 안으로 들어온 사탄은 아담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떠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저 생명과 빛의 왕국에 반기를 들고 세워진 어두움의 왕국에 가담하게 만들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도구로 삼아 그 일을 도모했던 사탄은 이 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실컷 충족시키면 사람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거짓약속을 하였다.

 

마침내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면 좋게 되리라는 사탄의 제안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바쳤던 복종과 충성을 버리고 사탄에게 복종과 충성을 맹세하고 말았다. 그리함으로써 그가 다스리던 지구도 그와 함께 빛의 왕국으로부터 어두움의 왕국으로, 하늘나라로부터 사탄의 나라로 옮겨지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던 사건으로써, 그후로는 아직까지도 세상이 사탄의 지배하에 놓여있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밭은 세상이요’라 하셨다. 우리는 이 비유 속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 ‘사람’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같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밭과 그 안에 감추인 보화를 산 사람이 누구인가는 바로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질문을 던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세상을 값주고 사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준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성경은 말한다. 우리가 이전에 살던 망령되고 허망한 삶에서 우리를 구속하신(redeemed, 값주고 되사신)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그러한 예수님께서는 어두움의 왕국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어두움에 지치고 시달려 온 모든 사람들, 무언가 나은 것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모든 사람들을 찾아 부르셨다. 그리하여 그들을 당신에게로 오라 하시며 초대하셨고, 그리하면 그들을 쉬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또,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오신 이유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ransom, 몸값)로 내어주시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우리는 사탄에게 인질로 붙잡혀 있던 몸이었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그 인질들의 몸값(ransom)을 치루시고 인질들이 석방될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속전(ransom)으로 주셨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이야말로 그 숨겨둔 보화를 얻을 기쁨을 위해 자기의 모든 소유, 즉 자신의 생명을 바쳐 그 밭, 아니 온 세상을 사신 바로 그 ‘사람’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자기 앞에 놓여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적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후 그 보화를 얻을 즐거움을 위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았던 한 사람, 인류를 죄로부터 구속하실 그 즐거움을 위하여 어두움의 권세에 자신의 생명을 인질들의 몸값으로 팔아넘긴 한 사람, 곧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바로 여러분들의 몸값으로 자신의 모든 소유,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주셨다.

 

 

보화, 그리스도의 교회

이제 아직도 한 가지 설명되지 않은 것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보화’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 보화가 무엇이길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이 숨겨진 이 세상을 사려고 하셨던 것인가?

 

그 보화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성경에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당부하기를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잘 돌보아 달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얼마나 귀한 보화로 여기고 계시는지를 여러분들이 알기 원하신다. 사도 바울은 훗날 위에 말한 에베소 교회로 보냈던 편지 속에서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그들에게 주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 눈을 밝히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 눈을 밝히사 그들로 하여금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시기를 구한다고 증거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그(his, 그분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라 한 것은 성도들이 받을 기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이 받을 기업에 대하여는 그 전에 이미 언급된 바가 있으며, 여기서는 성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높이 사고 계시며 얼마나 귀한 보화로 여기시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인간의 생명을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는 인명경시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어젯밤 내 아내는 최근 들어 T.V.에 방영되었던 어떤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제게 해주었는데, 그것은 어떤 세 남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살인을 위한 살인을 자행하며 다닌다는 그런 스토리였다. 요즈음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즉흥살인, 예컨대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며 가다가 이유없이 사람을 쏴 죽이는 등의 뉴스를 흔히 접할 수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나는가? 모두 인간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풍조 때문이다.

 

이러한 인명경시 풍조는 원시문화, 그 중에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 하나님의 존재가 결핍된 사회의 문화적 배경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영원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고, 그러다 보면 인명을 경시하게 된다. 반대로 인명을 귀하게 여기는 경향은 세상에 퍼진 기독교의 영향이 그 주된 원인이다.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기독교의 영향이 미미한 곳에서는 인명이 하찮은 것으로 경시되고 있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기독교가 들어가 영향을 끼친 곳에서는 영생이라는 관점에서 생명을 봄으로써 인명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월등히 고양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미국 내에서 기독교가 그 영향력을 상실해감에 다라, 우리들은 점점 더 위험한 삶을 영위해 나가야만 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인명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렸고 또 점점 더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별 생각없이 빼앗곤 하는 것이 우리 주변의 현실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욕심,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세상이 되었다. 심지어는 100달러, 150달러에 청부살인이 자행되기도 한다. 이 얼마나 흉악한 세상인가?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속물이 되사 우리들의 몸값을 치루셨으므로 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어두움의 왕국을 떠나 빛의 왕국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천국으로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통치하시는 나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계신다.

 

과연 여러분은 세상이 가고 있는 방향에 만족하고 있는가? 혹시 자신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들이 여러분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는 않는가? 거리에 만연한 폭력이 여러분을 흥분시키곤 하는가? 백화점에 갔다가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강도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스릴을 느끼는가? 혹시 카지노에서 잭팟이 터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있는가? 아니면 때때로, 할 수만 있다면 이 타락한 세상과 그 속에 가득한 다툼, 폭력, 증오, 질시, 그리고 방황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이 어두움의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세상임금과 그가 휘두르는 사망권세로부터 여러분들이 풀려날 수 있도록 이미 여러분들의 몸값을 지불해 주셨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제 여러분들의 삶을 그분께 맡기고,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곧 어두움의 왕국을 떠나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두 나라는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서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으므로 여러분들이 두 곳에 동시에 있을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였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 두 나라에 동시에 있을 수도 없다. 한 나라에 있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나왔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곳이면 그 어디든 하늘나라, 곧 천국이다. 여러분의 마음속을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신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요, 천국이 여러분에게 임한 것이다.

 

나는 제가 천국에 들어와 있으며, 더 이상 어두움이 나의 삶을 주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기쁘기 한량없다. 주님께서 나를 값주고 사셨고, 그 피로 내가 구속되었으며, 이 모든 변화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므로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고자 한다.

 

기도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담긴 능력으로 우리가 어두움의 권세로부터 구속받아 풀려나게 된 것을 참으로 감사합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라는 찬송처럼 내 입술이 항상 주를 찬송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셨으므로 우리가 이 영광된 천국, 빛과 생명의 나라, 평강과 기쁨의 나라, 의와 진리의 나라에 살 수 있게 되었음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주님, 주님은 오늘도 수많은 지친 영혼들을 보고 계십니다. 죄의 얽매임 아래서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는 영혼들, 어두움의 왕국 안에서 사망의 무덤 속에 갇힌 영혼들이 죄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저들로 하여금 그 팔을 뻗어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들을 향해 펼쳐져 있는 주님의 손을 붙들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저들이 주님의 손을 잡을 때에 주님의 크신 팔로 저들을 어두움의 왕국에서 천국으로 끌어올려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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