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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아 울지 마라

작성자요나짱|작성시간21.09.01|조회수11 목록 댓글 0

가을아 울지 마라

 

이요나

 

 

가을이다. 너 가을은 높은 하늘을 타고 햇살을 쏟으며 산들을 물감 드리고 들판으로 내달려 고추밭으로 호박넝쿨 사이로 치닫고, 가로수길 은행나무 잎에 앉았다. 그 열매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신작로로 내딩굴든지 개구쟁이 발에 사정없이 밟히든지 노오란 은행잎은 곱고 이쁜데 너는 나에게 계륵이다.

 

스물일곱의 새파란 하늘이 멎던 그날 추석을 열흘저미고 나의 하늘은 주저앉았다. 어미는 세찬 갈바람 사이로 내딩구는 은행 잎사귀를 밟고 아들을 떠나셨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아차 순간만이라도 멈출 수 있다면 나의 가을은 울지 않았을 것이다.

 

소망을 잃고 방바닥에 머리들 젊으나 어린 아들을 깨우며‘아들아 밥 먹자’하신 어머니의 밥상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소고기 무국과 조기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육십평생 한결 같은 맹복님표 배추김치는 붉은 손맛을 드러내었고 무국에 넣은 소고기 덩어리는 만석꾼 며느리의 큰 손다웠다.

 

밥상에는 어머니의 밥그릇이 없었다. 국그릇도 없었다. 수저도 없었다. 김이 모락한 굴비에 젓가락을 저며 하얀 살을 솜씨 좋게 끊어 아들의 밥숫갈 위에 얹으며, 아들아 밥 먹고 힘내라, 아직 미장가 전인데, 삼십은 아직 먼데 뭘 그리 넋을 놓나. 네 앞에 좋은 일만 있을 것이니 아들아 밥 먹고 힘내라.

 

아들은 말없이 반상기 뚜껑에 밥을 반을 덜어내고 소고기 묵국에 밥을 말았다. 밥 수저 위에 얹어 주는 굴비가 밉상이지만 엄중한 어미의 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아들이 상을 물린 후 어미는 뚜껑에 덜은 밥술에 굴비 대가리와 꼬리에 붙은 살을 떼시며 어두일미라 웃으시며 아들과 마주한 밥상을 만족해 하셨다.(나의 가을은 이렇게 멎었다)

 

오 가을아, 너는 어미라 천년의 세월을 품은 어머니니라. 봄의 꽃들과 여름의 무성함을 품고 온유한 열매를 맺은 이 땅의 어미니라. 겨울의 북풍 바람과 눈보라를 견디어 낼 인내의 어머니요. 많은 자식의 어미니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사54:1) 하셨느니라.

 

오 가을아! 너는 울지 마라. 설혹 만석의 품삯을 얻지 못하였어도 너의 손을 서글퍼 마라.

하늘은 너를 탓하지도 너를 버리지도 않은 것이니 너는 오직 삼년을 기다리라. (이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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