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정 소설 <동백꽃> 아이러니와 사설시조 -문학박사 주영숙 Ⅰ. 김유정 작품의 생성 배경 김유정(1908~1937)이 활동한 193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는 식민지 후기에 해당하는 동시에 정치적 부자유와 경제적 궁핍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기다. 매우 어려운 농촌 현실을 허구화함으로써 이러한 시대 조건을 반영한 셈인 김유정은 그 과정에서 놀이와 게임의 즐거움을 십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소설에는 대체로 생활 능력을 잃고 방황하는 무력한 사회 계층, 예컨대 농촌의 빈농이나 도시의 빈민으로 설정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등장인물의 설정은 당시의 모습을 관념이 아니라 실상으로 파헤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보편적인 관점을 벗어나 김유정이 채택한 소설기법을 살펴보자면, 그의 일련의 소설들이 판소리 가락의 사설시조 구성요건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허구적 놀이 공간에서 연출되는 품위 있는 농담, 그것은 빠르고 날카로운 기지에 비해 느리고 부드러운 편이어서 더욱 한국적인 풍자와 해학이다. 그리고 김유정 소설의 진짜 얼굴이다. Ⅱ. <동백꽃>과 “동백꽃” 김유정 소설 수사학의 특징을 이루는 것들은 생동감 풍부한 구어체 문장, 경쾌한 리듬, 욕설과 해학, 반어 등이다. 그중에서도 ‘한국문학, 또는 한국 근 ․ 현대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감명받은 작품 하나를 택하라면 주저하지 않고 김유정의 <동백꽃>을 소개하겠다’라고 표백한 한용환의 말처럼 <동백꽃>은 김유정이 남긴 서른 편 남짓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작품이며 이른바 ‘첫사랑 소설’에 해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여러 소설에서 돈을 조건으로 한 부적절한 섹스의 소통은 볼 수 있어도 연애는 언제나 불통이었고, 단지 <동백꽃>에서만은 연애 가능성, 즉 점순과 ‘나’의 첫사랑이 암시된다. 그 발표 시기가 <두꺼비>와 <생의 반려> 사이에 끼인 <동백꽃>(1936.5)인데, 이 동백꽃의 향기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동백꽃> 내용을 시조(사설시조) 7수로 요약해본다. ①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그랴, 참말로! 소나무 삭정이 따다가 문득 고년을 벼르네. 불나게 나뭇짐 지고 헐레벌떡 내려와 ② 거지반 집에 다다르자 어인 호드기 소리 산기슭 바윗돌 틈새마다 소보록하니 깔린 노랑 무더기를 비집고 앉아 점순이가 청승맞게 불어대는 저 소리, 푸드득 소리도 들리는 걸 보니 필연코 요년이 또 닭을 집어내다가 내가 들 골목에다 닭쌈을 시켜놓고 저는 그 앞에 퍼질고 앉아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을 터. 부아가 치밀어 올라 눈물바다에 다이빙하네. ③ 나뭇지게도 안 벗겨져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 작대기 뻗치고서 허둥지둥 달려가 보니, 참말로, 내 짐작대로 우리 수탉이 빨간 동백꽃 같은 피를 흘려, 흘리며 다 죽어가네, 닭도 닭이려니와 왼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요년 눈깔이 꼭 여우 새낄세, ④나는 대뜸 달려들어 까짓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하고 주인집 큰 수탉을 단매로 엎었네. 닭이 푹 엎어지더니 뻗어버렸네. 혼을 빼고 섰다가, 점순이 매섭게 눈을 홉뜨고 들이닥치는 바람에 나는 또 뒤로 벌렁 나자빠졌네. 독 오른 점순이가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느냐고 바락바락 대들기에 그럼 어때? 하며 엉덩이 털고 일어나다가, 짜식아! 누구네 닭인데? 하고 떼밀려 또 벌렁 자빠졌네. ⑤분통 터지고 무안스럽고, 걱정도 태산에다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길 판이라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닭의 물찌똥, 울음 놓았네. 놓고 있는데 빠알간 동백꽃인지 점순인지가 다가와, 그럼 너, 이담부터는 안 그럴 테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길을 찾아, 눈물을 닦으며 뭘 안 그럴지도 모르면서 그러마 하고 대답하였네. 노오란 동백꽃 흐드러진 내 머릿속으로 점순이가 쫑알거리며 걸어오네. 요담에 또 그랬단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⑥닭은 염려 마라, 안 이를 테니, 해놓고 뭐 땜에 무엇에 떠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픽 쓰러지는 빨간 점순이,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 쓰러지며 한창 퍼드러진 진노랑 동백꽃 속에 폭 파묻혀버리네. 알싸한 동백꽃 향기에 정신이 고만 아찔했네. ⑦너, 말 마라. 그래! 그러자꾸나 하는데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느냐고 툴툴거리며, 어딜 갔다 온 점순엄니가 점순이를 찾고 난리네. 점순이 겁을 잔뜩 집어먹고 노랑 동백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 산 아래로 내려가기에 나도 새빨간 동백꽃을 마음속 깊이 숨긴 채로 기어서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치빼었네. 샛노란 첫사랑 딱지, 현기증을 패대기치고. —주영숙, <첫사랑과 김유정표 동백꽃> 전문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한다 ․ 겸손한 아름다움 ․ 신중 ․ 침착 ․ 자랑 등의 꽃말을 가진 동백꽃. 흰색은 당신은 나의 사랑을 경멸하는 것인가요? 붉은색은 나는 당신이 누구보다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복숭아 색깔 동백꽃은 나는 당신에게 사랑받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등등의 꽃말을 지닌 동백꽃. 이 동백꽃이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불타는 청춘의 ‘피꽃’ 동백꽃 여행>이란 타이틀 아래 짐짓 아이러니한 대접을 받고 있는데, 동백꽃에 향기가 없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풀 내음이라는 것이다. ‘동백꽃을 본 사람들이 하는 행동 중에서 꽃에다 코를 박고 향기를 맡으려 애쓰는 모습은 또 하나의 진풍경’이라는 지적은 동백꽃을 오래 조사하고 나서 쓴 것인지는 모르되 아무리 되짚어도 억지다. 예의 그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자면 ‘꽃에다 코를 박는 게 아니라 꽃의 꽁무니에 입술을 갖다 대는 것으로, 동백꽃 씨방에서 나오는 달콤한 꿀을 빨아 먹기 위함’이다. 알고 보면 동백꽃에 향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사실 제철에 핀 동백꽃의 향기는 낙화해서 며칠 지날 때까지도 무척이나 달콤하다고 할 수 있는데, ‘풀 내음’과는 차원이 다르다. 꽃이나 마찬가지로 도톰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끝이 항상 아래로 말려들어 있는 이 동백나무의 잎사귀는 햇빛에 반사되면 자잘한 잎맥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런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동양화 기법으로 동백나무의 잎사귀를 그릴 때는 다른 잎사귀들과는 달리 가운데의 굵은 잎맥 하나만 표함과 아울러 잎의 끝부분을 둥글게 묘사한다. 그러므로 ‘풀 내음’은 좀처럼 시들지 않는 동백나무 잎사귀에서 우러나는 싱그러운 냄새라고 봐야 한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나무이며 한자어로는 동백(冬柏), 산다화(山茶花)다. 이 나무는 다른 식물들이 활동하지 않는 겨울에 타는 듯한 붉은빛의 꽃을 피운다. 그러다가 다른 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꽃이 서서히 지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은 지는 한편으로 또 다른 봉오리들이 속속 피어난다는 묘사가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12월부터 4월까지 연이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활짝 핀 그대로 뚝뚝 떨어져 뒹구는 낙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한꺼번에 화르르 떨어지되 다섯 장 꽃잎이 낱낱이 분리되어 마치 눈송이처럼 날아가 버리고 마는 벚꽃과는 생리가 다르다. 질 때는 꽃송이가 통째 떨어지기는 하지만, 땅에 떨어진 이 꽃은 며칠이 지나도록 그 형체를 고이 간직한 채로 쉽사리 시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들고 꽁무니를 살짝 빨면 거기에선 놀랍게도 향긋한 꿀이 나온다. 꽃이 진(사실 진 것이 아니라 떨어진) 한 사나흘 뒤인데도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활짝 핀 채 떨어진 애달픔이 아니라 져서도 향긋한 황홀함을 맛볼 수 있으며, 그 근거로 황홀할 뿐 아니라 달콤하다고까지 표현해도 걸맞을 성싶다. 그런데 소설 속의 동백꽃은 위에 재구성해본 사설시조 작품에서 인식하듯이 노랑과 빨강, 두 가지 색깔의 동백꽃이다. 색깔은 차치하고 ‘황홀한 첫사랑’으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아래와 같다. 가령 <동백꽃>의 상황설정을 놓고 마름과 소작인의 대립처럼 이해하려는 발상이 있었지만, 그건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시대를 넘어선 소박한 첫사랑의 황홀한 동백꽃 냄새를 맡아내면 충분하다. (문성준, 《우리 소설 80선》중에서). 무조건 빨간 동백꽃만을 떠올려서 판단한 경우다. “<동백꽃>의 상황설정을 놓고 마름과 소작인의 대립이라고 이해하려는 발상”은 작품 해석에 장애가 되므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이 평자의 “소박한 첫사랑의 황홀한 동백꽃 냄새”라는 단언이다. 도대체 어느 독자가 이 소설 <동백꽃>에서 소박한 첫사랑의 ‘황홀한’ 동백꽃 냄새를 맡아낼 수 있단 말인가? 정작 첫사랑(?)을 시작하는 ‘나’와 ‘점순’이는 또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뜰락 말락 하는, 사랑이라면 자칭타칭 햇병아리인 주제인데 사랑이 무엇인 줄을 어떻게 알고 그토록 황홀해한단 말인가? 동백꽃 1) •책 표지 상단에 1946이라는 낙서로 보아 1946년 발간이 아닌가도 여겨지지만, 이 책이 《삼문사》발간(문헌기록은 《삼문사》1938)이라는 것 외에 구체적인 정보는 아직 얻지 못했다. (출처: 2003년 <여의도국제도서전시회>). 동백꽃2) •전쟁 중이던 1952년 10월 《왕문사》 간, 소녀가 동백꽃을 꺾어 든 표지 동백꽃3) •1957년 서울 《장문사》 간, 붉은 동백꽃에 나비 한 마리가 있는 표지 그림. 동백꽃 4) •《범우사》 간 《동백꽃》 표지. 동박새까지 삽입한, 전형적이고 극사실화인 동백꽃. 동백꽃 5) •《삼중당》‘베스트문고’김유정 단편집 《동백꽃》. 위 사진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38년 《삼문사》에서 발간된 김유정 단편집 《동백꽃》, 1952년 10월 《서울 왕문사》 간 김유정 단편집 《동백꽃》 표지, 1957년 《서울 장문사》 발행 김유정 단편집 《동백꽃》 표지, 《범우사》‘범우사르비아문고(67)’ 《동백꽃 ․ 소나기》, 《삼중당三中堂》‘베스트문고’ 김유정 단편집 《동백꽃》 등의 표지, 그리고 본 소설 <동백꽃>의 도입부는 완벽할 정도의 붉은 색깔(닭 벼슬, 고추장, 피)로 칠해져 있다. 사랑은, 더군다나 첫사랑이란 뜨거울 정도로 붉은 색깔이며 향내인가? 아니다. 굳이 프로이트가 주장한 무의식에 각인된 이드니 자아니 하는 설에 사로잡혀 원래부터 남성적인 파란 색깔 옷은 남자아기가 선호하고, 여성적인 분홍색깔 옷은 여자아기가 선호하더라 하며, 색깔에 대한 그 경직되고 고집스러운 인성 분석 위주의 무의식적 성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붉은색, 하면 누구나 피와 정열과 뜨거움, 그리고 황홀함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김유정의 인생(작품)에 있어서 황홀한 첫사랑은 있을 수가 없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첫사랑에 알맞은 향기는 오히려 그가 <동백꽃>에 소묘해놓은 그대로 ‘톡 쏘는 맛의 알싸한 동백꽃 냄새’가 제격이겠다. 동백꽃 냄새가 알싸하다는 점이 이외기는 해도 김유정은 그의 소설 <동백꽃>에서 첫사랑이란 바로 그런 거라고 진하게 밀고 나간다. 하지만 이러고 보면 이미자가 그녀의 천부의 목소리로 열창한‘동백꽃 잎에 새겨진 사랑’ 또한 첫사랑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이론이 성립될 수 있다. 큰일 날 일이다. 첫사랑이라고 해서 반드시 ‘햇사랑’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주장을 맹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빨간 동백꽃 일색인 이들 표지화에선 실제로 알싸함보다는 황홀함을 느끼게 해준다. 빨간색의 실체는 도입부에서부터 그 현란함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왕이면 사설시조로 구분하여 옮겨본다. 1-(초)①점순네 수탉(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②덩저리 작은 ③우리 수탉을 ④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중)⑤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⑥푸드덕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⑦좀 사이를 두고 푸드덕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⑧이렇게 멋을 부려가며 여지없이 닦아놓는다. (종)⑨그러면 ⑩이 못생긴 것은 ⑪쪼일 적마다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 뿐이다. ⑫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어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2-(초)①이걸 ②가만히 ③내려다④보자니 (중)⑤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⑥두 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⑦대뜸 지게막대기를 메고 달려들어 ⑧점순네 닭을 후려칠까 하다가 (종)⑨생각을 ⑩고쳐먹고 헛매질로 ⑪떼어만 ⑫놓았다. 3-(초)①이번에도 ②점순이가 ③쌈을 ④붙여놓았을 것이다. (중)⑤바짝바짝 ⑥내 기를 올리느라고 ⑦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⑧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서 (종)⑨왜 나를 ⑩못 먹겠다고 ⑪고렇게 ⑫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 제목에서 인식하는 그대로 우리가 언뜻 떠올리기 쉬운 전형적인 동백꽃을 연상시키는 위 대목에서 “1-그러면” “2-생각을” “3-왜 나를” 이 사설시조로 구분할 때의 3수 종장 첫걸음임을 알 수 있다.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쪼이며 붉은 선혈을 뚝뚝 떨어뜨리는 대목과 그것을 보고 있는 내 대강이가 터져 피가 흐르는 것 같다는 저런 표현들, 점순의 성질까지도 모두 붉은 색깔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김유정은 저 첫사랑을 붉은 동백꽃으로 상정했는가? 일본 전설에서처럼 불타는 빛깔의 넋이 되어 해마다 겨울이면 온 동산에 피어나는 그런 사랑, 또는 뒤마피스가 1848년에 발표한 소설 《춘희》에서처럼 목숨같이 뜨거운 색깔의 사랑, 당사자 소설에 등장하는 닭의 벼슬처럼, 닭이 흘리는 피처럼, 또는 꾸역꾸역 밀어 넣고서 화끈한 힘으로 적을 쳐부수어야 할 고추장처럼 새빨간, 붉디붉은 동백꽃인가? 그래서 삼문사 발간 단편집 《동백꽃》(1938) 표지에도 빨간 동백꽃을 그렸던 걸까? 그런데 여기 노란 동백꽃을 그린 표지가 있다. 김유정은 원병조의 표지 그림, 노란 색깔을 한 전형적인 동백꽃에서 보듯 그의 동백꽃 색깔을 이중으로 장치하였다. 그 꽃은 붉은 색깔이 아니라 정작은 노란 동백꽃이라는 걸 소설의 끝에 가서야 알싸한 향내와 함께 드러내 보인 것이다. 동백꽃 향내가 알싸하다니! 수상하지만, 어쨌든 점순이와 ‘나’가 픽 겹쳐 쓰러지듯이, 독자는 느닷없는 노란색과 알싸한 그 향내에 흠뻑 감전되어 반전의 묘미에 빠져드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동백꽃 6) • 《이가서》 간, 원병조 그림, ‘만화로 보는 한국문학대표작선’ 《봄봄 ․ 동백꽃》 표지. 김유정은 그의 소설 끄트머리에 분명히 새겨놓았다. 동백꽃의 형상과 냄새 등을 암시한 것인데, 아래 예문이 그것이다. •산기슭에 널려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소설 도입부에서 그게 틀림없는 붉은 동백꽃이라고 착각하도록 장치해놓았다가 끄트머리쯤에서야 비로소 노란색 동백꽃이라는 점을 밝힌, 바로 이 대목에서 그것이 짐작된다. 그러므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논문의 부분을 인용하거나 그 당시나 후에 출판된 《동백꽃》 표지 그림에서 연상하여 타성적인 글발로 ‘황홀한 첫사랑’ 냄새를 맡으라고 함이 사실은 오류”의 판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독자는 아직 그 오류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붉은 색깔로 대표되는 동백꽃을 김유정이 ‘노란 동백꽃’이라고 하였기는 해도, 원병조가 표지화에 동백꽃을 그리고 노랗게 칠한 것처럼, 이해하기에 따라서는 단지 상징성을 내포한 색깔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전적 의미에서조차 이 동백꽃은 전형적인 ‘동백꽃’이라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평면적 관점으로서 ‘동백꽃’에 ‘첫사랑’을 대입시켜보자. 붉기 마련인 동백꽃을 노란 색깔로 묘사하고 있는 이 대목에서 황홀한 첫사랑 냄새가 난다고? 황홀함은 붉은색이 아니라 노란색일까? 알싸한 향내의 노란색이라 황홀한 것일까? 노랑의 이미지를 엄밀히 보면 차가움이며 해맑음, 또는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 ‘아를르 시절’에 무수히 그렸던 그 노란색이다. 굶주리기를 밥 먹듯 했던 고흐의 작품들을 떠올려본다면 노란색은 오히려 빈혈…… 차라리 몸을 벗어버리고만 싶은, 영의 세계로 입문하고 싶었던 그 색깔이다. 노란 집이 마음에 들어 고갱을 초대하여 동거하다가 기어이 자기 귀를 잘라버린 고흐. 그 귀때기의 피를 깨끗이 씻어 포장하여 술집 작부에게 선물하고…… 결국 1890년에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노란 밀밭을 끝으로 이승을 버렸던 고흐. 그러고 보면 김유정의 노란 동백꽃은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와 일맥상통하며, 동시에 황홀함과 노랑의 대비는 ‘기름 위에 물’같이 나누어진다. 마그리트는 연극 첫날이라고 하면 빠지는 날이 없었고…(중략)…일층 전용 관람석 앞에는 다음 세 가지 물건이 언제나 나란히 놓여 있었다. 쌍안경, 봉봉, 그리고 동백꽃다발. 한 달 중 이십오일은 흰 동백꽃이고 나머지 닷새는 붉은 동백꽃이었다.… 뒤마피스가 소설 《춘희》(1848년)에서 두 가지 색깔의 동백꽃(이 두 가지 색깔의 동백꽃은 뒤의 오페라에서도 도입부에 등장한다)을 도입부에 등장시켰고, 반면에 김유정은(뒤마피스의 《춘희》보다 58년 뒤인 1936년에 발표한 소설 <동백꽃>) 소설의 끄트머리에 가서야 느닷없이 동백꽃 색깔을 노란 색깔로 밀어붙인다. 장편과 단편이라는 격차가 있으나, 둘 다 첫사랑 이야기다. 한편 뒤마피스는 순수를 상징(월경주기가 아님)하는 흰 동백과 열정(월경주기임)을 나타내는 붉은 동백을 기호화하였으나, 김유정은 햇것을 상징하는 노란 동백과 치열함을 나타내는 붉은 동백을 대비시키며 스스로가 동백꽃의 화신이 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예컨대, 뒤마피스는 도입부에 암시의 복선을 깔았고, 김유정은 제목에서부터 독자에게 최면을 걸었는가 하면, 닭의 벼슬이니 피니 고추장이니 하여 더욱 붉은 동백꽃을 연상시키도록 상징성 복선을 깔았다. 《춘희》에서는 열정과 화려함의 붉은 색깔과, 그 붉음을 더욱 순도 높게 치장하기 위한 일시적인 탈바꿈, 흰 동백의 기호가 짐짓 순수의 빛을 발하지만, 반면에 <동백꽃>은 그야말로 처절한 피 냄새를 버무린 붉은 색깔을 일시에 반전시켜 알싸한 냄새의 앙큼하고 노란 동백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겠다. 하면 아무리 화류계에서 몸을 굴려도 그 영혼만은 깨끗하다고 알리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비올레타(마그리트)의 흰 동백과는 전혀 다른 개념인 노란 동백꽃의 실체를 알아보자. 그런데 노란 동백꽃이라니, 동백꽃이란 으레 붉은색이라고 머리에 각인되어있는 독자에겐, 김유정 소설의 이 “동백꽃”이 노랗다는 것과 ‘소보록하게 깔리다’라고 묘사한 것이 아무래도 적절하지 않게 여겨진다.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라는 묘사에서는 얼토당토않은 표현이라며 김유정의 풍경묘사력에 의심까지 하게 되고, 동백나무의 특성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소설의 본문을 다시 훑어보게 된다. ‘계집애가 나물을 하러 갔으면 갔지’라는 대목과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라는 대목이 눈에 잡힌다. 그러면 이 소설의 계절적 배경은 봄이며, 이곳은 분명 강원도이다. 강원도에는 동백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산에 깔릴 정도의 야생 동백꽃이라면 우리나라 남부, 특히 해안지역에서 겨울에 그 꽃이 만개한다는 상식이 독자의 마음을 가득 메우게 되고, 그래서 우리는 그러면 이것은 혹 ‘진달래’ ‘철쭉’을 ‘참꽃’ ‘개꽃’이라 하는 식으로 전래했을 방언으로서의 ‘개동백’을 말함인가 하고 사전을 넘기다가 문득 「개동백나무(방언)-생강나무」라는 이름씨를 발견하게 된다. •생강나무꽃(김유정 소설에서의 ‘동백꽃’) : 2~3월에 꽃이 핌. •산수유나무꽃(원산지 : 중국) : 3~4월에 꽃이 핌. 소설 전체에 흐르는 알싸한 그 맛, 김유정의 <동백꽃>은 바로 생강나무의 꽃이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우리는 이제야 김유정이 소재로 삼은 “동백꽃”이 중국 등지가 원산지인 산수유꽃이 아닌, 산수유꽃과 흡사한 한국 토종의 생강나무꽃이었다는 점을 눈치채게 된 것이며, 첫사랑이란 김유정의 눈에만큼은 단연코 톡 쏘는 맛의 알싸한 냄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로 김유정표 아이러니의 극치이며, 이야말로 토종문학이 아닐 수 없다. 또 한편 판소리 가락의 미학 사설시조 역시 순수 토종의 우리 문학임을 알게 되기도 한다. 다시 보면 김유정은 마지막 순간까지 완벽한 토종이었다. 세상 뜨기(1937년 3월 29일) 11일 전에 쓴 마지막 편지를 사설시조 형식으로 배열해보면 사설시조 5수가 나타난다는 것이 증거다. (한문 표기를 국문으로 바꿈) (초)①필승아 ②나는 날로 ③몸이 ④꺼진다. (중)⑤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⑥자유롭지가 못하다. ⑦밤에는 불면증으로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있다. ⑧그리고 맹열이다. (종)⑨아무리 ⑩생각하여도 ⑪딱한 일이다. ⑫이러다는 안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종-반복)⑨이 몸을 ⑩다시 일으키기 ⑪어렵겠다. ⑫필승아 (초)①나는 ②참말로 ③일어나고 ④싶다. (중)⑤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⑥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있음을 ⑦내가 잘 안다. ⑧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종)⑨그 돈이 ⑩없는 것이다. ⑪필승아. ⑫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초)①동무를 ②사랑하는 마음으로 ③네가 좀 ④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중)⑤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보고 싶다. ⑥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⑦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⑧한 두어 권 보내주기 바란다. (종)⑨그러면 ⑩내 50일 이내로 역하여 ⑪너의 손으로 ⑫가게 해주마. (종-반복)⑨허거든 ⑩네가 극력주선하여 ⑪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⑫필승아. (초)①물론 ②이것이 ③무리임을 ④잘 안다. (중)⑤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⑥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거꾸로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⑦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먹겠다. ⑧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종)⑨그리고 ⑩궁둥이가 쏙쏘구리 ⑪돈을 잡아먹는다. ⑫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초)①나는 지금 ②막다른 ③골목에 ④맞닥뜨렸다. (중)⑤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⑥광명을 찾게 하여다우. ⑦나는 요즘 가끔 울고 ⑧누워있다. (종)⑨모두가 ⑩답답한 사정이다. ⑪반가운 소식 전해다우. ⑫기다리마. 3월 18일 金裕貞으로 김유정은 1937년 3월 29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바로 같은 해 《조광》2월호에 소설 <따라지>, 《여성》2월호에 <땡볕>, 《창공》3월호에 <연기>를 발표하고 서간문 <병상의 생각>을 《조광》3월호에 발표하였으며, 위 예문에서 보다시피 3월 18일엔 <필승 전>이라는 마지막 편지를 안회남에게 보냈다. <연기>와 <병상의 생각>이 발표된 바로 그달 3월 29일에 세상을 뜨게 되었던 상황에서도 살고자 몸부림친 그 흔적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피를 토하면서도 악바리같이 소설을 써냈던 천재 작가 김유정. 결핵균의 침식에 피폐해진 몸인데도 (닭 30마리와 살모사 10마리를 고아 먹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설을 썼을 김유정. 마지막 편지의 문체조차 판소리 가락으로 나오리라고는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을 순 한국식 문체의 소설가 김유정. 이 마지막 편지 바로 앞의 <병상의 생각>에서 한 문단 옮겨본다. 새롭다는 문자는 다만 시간과 공간의 전환 만에 그칠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아가 우리 인류사회에 적극적으로 역할을 가져오는데 그 의미를 두어야 한다. 《율리시스》보다는 저 봉건시대의 소산이던 《홍길동전》이 훨씬 뛰어나게 예술적 가치를 띄고 있는 것이다. 한국 토종의 문체만을 고집하겠다는 의지와 새롭게 해야만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술회하는 이러한 서간문을 쓰기 이전 <동백꽃>을 발표할 때 역시 그는 만성적인 늑막염과 치질, 폐결핵으로 서울 변두리의 어느 암자에서 휴양하고 있었다. ‘아프면 고향 생각이 난다’라는 현상은 인지상정이지만, 김유정은 유독 죽는 날까지 고향 생각을 소설로 토함으로써 고통을 달랬다. 이러하므로 우리는 전형적인 빨간 동백꽃을 표지화로 삼았던 것은 김유정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고, 그 표지 그림 탓에 평자들이 ‘황홀한 첫사랑 냄새’를 들먹이는 연쇄반응을 일으켰다는 현상을 알아챌 수 있다. 행여 저승에서 김유정이 자신의 책 《동백꽃》 표지를 보았다면 얼마나 배꼽을 잡았을까 싶을 만큼, 독자는 김유정이 설정해놓은 제목 <동백꽃> 덕분에 또 한 번 묘한 웃음을 선사 받은 셈이다. “생강나무꽃이 동백꽃이라니!” 그러나 그 장치가 바로 김유정 자신이 의도하였음을 깨달은 독자라면 거기에 속았던 사실에 또 한 번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되는데, 아무튼 생강나무꽃의 그 알싸한 향기를 맡고 나니 이 소설이 얼마나 생생하게 가슴에 차오르는가? 그러고 보면 점순이는 바로 그 생강나무꽃의 이미지가 아닌가. 김유정, 그는 아마도, 생강나무꽃이 ‘개동백꽃’이란 방언으로 불리니 앞의 ‘개’만 떼어내고 그냥 ‘동백꽃’이라고 제목을 붙이면 소설이 한층 맛나겠다 싶었던지도 모른다. Ⅲ. 맺으며 전형적인 동백꽃의 이미지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 떠도는 모종의 징크스론 대로 오히려 요절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김유정의 짧은 생애를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동백꽃>은 그의 생애가 아니라 그가 빚어낸 작품으로서의 소재(素材)이고 제재(題材)이며 주재(主材)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백꽃 그대로였더라면 김유정의 <동백꽃>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되새겨 생각해보아도 이름 그대로의 “동백꽃”이라면 그것은 진실로 첫사랑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직하고 순박한 소작인의 아들 ‘나’가 마름의 집 딸로 깜찍․조숙한 처녀 ‘점순’의 적극적인 구애 작전에 번번이 휘둘리는, 그러다가 닭싸움을 계기로 점순의 구애를 받아들이게 되는 이 <동백꽃>은, 애초부터 첫사랑이니 뭐니 하는 문제를 떠나서 산골 젊은 남녀의 순수한 사랑이라고 받아들이면 무난하다. 덤으로 ‘해학과 유머에 넘치는 문체로 그린’ 자기 작품의 제목에조차 희화화시킨 유머 감각을 동승시켜놓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김유정 소설들은 <소낙비>나 <동백꽃>뿐만 아니라 혀를 내두를 만큼의 긴 호흡이 역력히 드러난 소설도 있다. 소설 한 편이 단 한 단락의 통짜 구조인 <두꺼비>(1936.3.《詩와小說》/2008.12. 주영숙 박사학위논문 <사설시조의 변용 양상 연구> 부록)와 <슬픈 이야기>(1936.12.《女性》)로써, 이 두 편의 소설은 사설시조 형식으로 배열하고 정리하면 그대로 희곡이 되어버릴 정도이다. 또 한편 <슬픈 이야기>를 통짜 구조의 소설 그대로 사설시조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1-초)암만 때렸단대도 내 계집을 내가 쳤는데야 네가, 1-중)하고 덤비면 나는 참으로 할 말이 없다. 1-종)하지만 아무리 제 계집이기로 개 잡는 소리를 가끔 치게 해가지고 옆집 사람까지 불안스럽게 구는 이것은 넉넉히 내가 꾸짖을 수 있다는 말이다. 2-초)그것도 일테면 내가 아내를 가졌다 하고 2-중)그리고 나도 저와 같이 아내와 툭축거릴 수 있다면 혹 모르겠다. 장가를 들었어도 얼마든지 좋을 수 있을 만치 나이가 그토록 지났는데 어쩌는 수 없이 사글셋방에서 2-종)이렇게 홀로 둥글둥글 지내는 놈을 옆방에다 두고 저희끼리만 내외가 투닥투닥 하고 또 끼익, 끼익, 하고 이러는 것은 썩 잘못된 생각이다. 3-초)요즈음 같은 쓸쓸한 가을철에는 3-중)웬 셈인지 자꾸만 슬퍼지고 외로워지고 이래서 밤잠이 제대로 와주지 않는 것이 결코 나의 죄는 아니다. 자정을 넘어 새로 두 점이나 바라보련만도 그대로 고생고생 하다가 이제야 겨우 눈꺼풀이 어지간히 맞아 들어오려 하는 데다 갑작스리 3-종)쿵, 하고 방이 울리는 서슬에 잠을 그만 놓치고 마는 것이다. 4-초)이것은 재론할 필요 없이 4-중)요 뒷집의 건넌방과 세 들어있는 이내 방과를 구분하기 위하여 떡 막아놓은 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울섶으로 보아 좋을 듯 싶은 그 벽에 필연 육중한 몸이 되는대로 들이받고 나가떨어지는 소리일 것이 분명하다. 4-종)이렇게 벽을 들이받고, 떨어지고 하는 것은 일상 맡아놓고 그 아내가 해주므로 이번에도 그랬었음에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5-초)그러기에 들릴까 말까 한 나직한, 5-중)그러면서도 잡아먹을 듯이 앙크러뜯는 소리로 그 남편이 중얼거리다 5-종)퍽, 하는 이것이 발길이 허구리로 들어온 게고, 6-초)그래 아내가 어구구, 하니까 6-중)그 바람에 옆에서 자던 세 살짜리 아들이 어아, 하고 놀라 깨는 것이 두루 불안스럽다. 허 이놈 또 했구나 싶어서 나는 약이 안 오를 수 없으니까 벌떡 일어나서 큰일을 칠거라도 같이 제법 눈을 부라린 것만은 됐으나 그렇다고 벽 너머 저쪽을 향하여 꾸중을 한다든가 하는 것이 6-종)점잖은 나의 체면을 상하는 것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7-초)이렇게 되면 잠자리는 영 그른 공산인고로 7-중)궐련 하나를 피워 물었던 것이나 7-종1)아무리 생각하여도 놈의 소행이 괘씸하여 그냥 배기기 어려우므로 캐액, 하고 요강뚜껑을 괜스리 열었다가 깨지지 않을 만큼 아무렇게나 내리 닫으며 역정을 내본단대도 7-종2)저놈이 이것쯤으로 끄뻑 할 놈이 아닌 것은 전에 여러 번 겪었으니 소용없다. 8-초)마땅치 않게 골피를 접어 혼자서 끙끙거리고 앉아있자니까 8-중)아이놈이 깬 듯싶어서 점점 더하는 것이 급기야엔 아내가 아마 옷 궤짝에나 혹은 책상 모서리에나 그런 데다 머리를 부딪는 것 같더니 얼마든지 마냥 울 수 있는 그 설움이 남의 이목에 걸리어 겨우 목젖 밑에서만 끅, 끅, 하도록 만들어놓았다. 이놈이 사람을 잡을 작정인가, 하고 그대로 있기가 안심치가 않아서 내가 역정 난 몸을 불쑥 일으키어가지고 벽과 기둥이 맞붙은 쪽으로 헌 지 오래된 도배지가 너털너털 쪼개지고, 8-종)그래서 어쩌다 뽕 뚫린 하잘 것 없는 구멍으로 내외간의 싸움을 들여다보는 것은 좀 나의 실수도 되겠지만 이놈과 나와 예의니 뭐니 하고 찾기에는 제가 벌써 처신을 잃어놨거니와 그건 말고라도 이렇게 남 자는 걸 깨놓았으니까 나 좀 보는데 누가 뭐랠 테냐. 9-초)너털대는 벽지를 가만히 떠들고 들여다보니까 9-중)외양이 불밤송이같이 던적맞게 생긴 놈이 전기회사의 양복을 입은 채 또는 모자도 벗는 법 없이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서 저보다 엄장도 훨씬 크고 투실투실히 벌은 아내의 머리를 어떻게 하다 그리도 묘하게스리 좁은 책상 밑구멍에다 틀어박았는지 궁둥이만이 위로 불끈 솟은 이걸 노리고 미리 쥐고 있었던 황밤 주먹으로 한번 콕 쥐어박고는, 9-종)이년아 네가 어쩌고 중얼거리다 또 한 번 콕 쥐어박고 하는 것이다. 10-초)아내로 논지면 울려들었다면 벌써도 꽤 많이 울어두었겠지만 10-중)아마 시골서 조촐히 자란 계집인 듯싶어 여필종부의 매운 절개를 변치 않으려고 애초부터 남편 노는 대로만 맡겨두고 다만 가끔가다 10-종)조금씩 끽, 끽, 할 뿐이었으나 한편에 울룽이 놀래 앉았는 어린 아들은 저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잡는 줄 알고 때릴 때마다 소리를 빽빽 질러 우는 것이다. 11-초)그러면 놈은 송구스러운 그 악정에 다른 사람들이 깰까봐 겁 집어먹은 눈을 이리로 돌리어 아들을 된통 쏘아보고는 이 자식 울면 죽인다, 하고 제깐에는 위협을 하는 것이나 11-중)그래도 조금 있으면 또 끼익, 하는 데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막고서 따귀 한 대를 먹여놓았던 11-종)그것이 그 반대로 더욱 난장판이 되니까 저도 어처구니없는지 멀거니 바라보며 뒤통수를 긁는다. 12-초)놈이 워낙이 대담치가 못해서 12-중)낮 같은 때 여러 사람이 있는 앞에서는 제가 감히 아내를 치기커녕 외출에서 들어올 적마다 가장 금실이나 두터운 듯이 애기 엄마 저녁 자셨소 어쩌오, 하고 낯간지러운 소리를 해두었다가, 다들 자고 만 뒤 잠잠한 꼭 요맘때 야근에서 돌아와서는 무슨 대천지원수나 품은 듯이 울지 못하도록 미리 위협해 놓고는 은근히 치고, 차고, 이러는 이놈이다. 12-종)허기야 제 아내 제가 잡아먹는데 그야 뭐랄 게 아니겠지. 13-초)그렇지만 놈이 주먹으로 얼마고 콕콕 쥐어박아도 아내의 살찐 투실투실한 궁둥이에는 좀처럼 아플 성싶지 않으니까 14-초)이번에는 두 손가락을 집게 같이 꼬부려 가지고 그 허구리를 꼬집기 시작하는 것인데 14-중)아픈 것은 참아왔더라도 채신이 없이 요렇게 꼬집어 뜯는 데 있어서야 제아무리 춘향이기로 간지럼을 아니 타는 법은 없을 게다. 손가락이 들어올 적마다 구부려 있던 커다란 몸집이 우질근 하고 노는 바람에 머리 위에 거반 얹히다시피 된 조그만 책상마저 들먹들먹하는 걸 보면 저 괴로워도 요만조만한 괴롬이 아닐 텐데 저런저런 계집을 친다기로 숫제 뺨 한 번을 보기 좋게 쩔꺽 하고 치면 쳤지 난 참으로 저럴 수는 없으리라고, 아아 14-종)나쁜 놈, 하고 남의 일 같지 않게 울화가 터지려고 하였던 것이다. 15-초)그보다도 우선 아무리 남편이란대도 15-중)이토록 되면 그 뭐 낼쯤 두고 보아 괜찮으니까 15-종)그까짓 거 살팍한 살집에다 근력 좋겠다 달룽 들고 나와서 뒷간 같은 데다 틀어박고는 되는대로 두드려 주어도 아내가 두려워서 제가 감히 찍소리 한 번 못 할 텐데 그걸 못 하고 저런, 저런, 에이 분하다. 16-초)그럼 그것은 내외간의 찌들은 정이 막는다 하기로니 16-중)당장 그 무서운 궁둥이만 위로 번쩍 들 지경이면 그 통에 놈의 턱주가리가 쳐 받쳐서 뒤로 벌렁 나가떨어지는 꼴이 그런대로 해롭지 않을 텐데 글쎄 어쩌자고, 16-종1)그러나 좀 더 분을 돋워놓으면 혹 그럴는지도 모를듯해서 놈의 무참한 꼴을 상상하며 이제나저제나 하고 은근히 조를 비볐던 것이 이내 경만 치고 말므로 저런, 저런 하다가 16-종2)부지중 주먹이 불끈 쥐어졌던 것이나 놈이 휘둥그런 눈을 들어 이쪽을 바라볼 때에 16-종3)비로소 내 주먹이 벽을 울려 친 걸 알고 깜짝 놀랐다. 17-초)허물 벗겨진 주먹을 황망히 입에 들이대고 엉거주춤히 입김을 쏘이고 섰노라니까 17-중)잠 안 자고 게 서서 뭘 하오, 하고 변소에 다녀가는 듯싶은 심술궂은 주인 노파가 17-종)귀찮게 바라보더니 내 방 앞으로 주춤주춤 다가와서 눈을 찌긋하고 하는 소리가 왜 남의 계집을 자꾸 들여다보고 그류, 괜히 맘이 동하면 잠도 못 자고, 하고 거지반 비웃는 것이 아닌가. 18-초)내가 나이찬 홀몸이고 또 저쪽이 남편에게 소박 받는 계집이고 하니까 18-중)이런 경우에는 남모르게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이 사차불피(死且不避)의 일이라고 제멋대로 이렇게 생각한 그는 요즘으로 들어서 나의 일거일동, 일테면 뒷간에서 뒤를 보고 나온다든가 하는 쓸데적은 그런 행동이나마 유난히 주목하여두는 버릇이 생겨서 가끔 내가 어마어마하게 눈총을 겨누는 것도 무서운 줄 모르고 나중에는 심지어 저놈이 계집을 떼던지려고 지금 저렇게 못살게 구는 거라우, 이혼만 하거든 그저 두말말고 데꺽 꿰차면 그만 아니오, 하며 18-종)그러니 얼마나 좋으냐고 나는 별로 좋을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아주 좋다고 깔깔 웃는 것이다. 19-초)이 노파의 말을 들어보면 저놈이 13년 동안이나 전차 운전수로 있다가 올에서야 겨우 감독이 된 것이라는데 19-중)그까짓 걸 바로 무슨 정승 판서나 한 것같이 곤댓짓을 하며 동리로 돌아치는 건 그런대로 봐준다 하더라도 갑작스리 무슨 지랄병이 났는지 19-종)여학생 장가 좀 들겠다고 아내보고 시골뜨기하고 살면 내 낯이 깎인다하며 친정으로 가라고 줄청같이 들볶는 모양이니 이건 짜장 괘씸하다. 20-초)제가 시골서 처음 올라와서 전차 운전수가 되어가지고, 20-중)지금 사람이 원체 착실해서 돈도 무던히 모였다고 요 통안서 소문이 자자하게 난 20-종1)그 저금 8백 원이라나 얼마나를 모으기 시작할 때 어떻게 생각하면 밤일에서 늦게 돌아오다가 속이 후출하여 다른 동무들은 냉면을 먹고, 설렁탕을 먹고, 하는 것을 놈은 홀로 집으로 돌아와 이불 속에서 20-종2)언제나 잊지 않고 꼭 대추 두 개로만 요기를 하고는 그대로 자고자고 한 그 덕도 있거니와 엄동에 목도리, 장갑 하나 없이 20-종1)그리고 겹저고리로 떨면서 아침저녁 겨끔내기로 변또를 부치러 다니던 그 아내의 피땀이 안 들고야 그 7백~8백 원 돈이 어디서 떨어지는가. 21-초)그런 공로를 모르고 똥개 떨 거 다 떨고 나니까 놈이 계집을 내차는 것이지만 21-중)그렇게 되면 제놈 신세는 볼일 다 볼 게라고 입을 삐쭉이다가 21-종)아무튼 이혼만 하였다면야 내가 사이에서 중신을 서주기라도 할 게니 어디 한 번 데리구 살아 보구려, 하며 그 아내의 얼마큼이든가 남편에게 충실할 수 있는 미점을 들기에 야윈 손가락이 부질없이 폈다 접었다, 이리 수선이다. 22-초)이 신당리라는 데는 본시라 푼푼치 못한 잡동사니만이 옹기종기 몰킨 곳으로 22-중)점잖한 짓이라고는 전에 한 번도 해본 일 없이 오직 저 잘난 놈이 태반일진댄 감독 됐으니까 여학생 장가 좀 들어보자고 본처더러 물러서 달라는 것이 이상할 게 없고, 22-종1)또 한편 거리에서 말똥만 굴러도 동리로 돌아다니며 말을 드는 수다쟁이들이매 22-종2)밤마다 내가 벽틈으로 눈을 들여놓고 정신없이 서 있어서 저 남의 계집 보고 조갈이 나서 저런다는 것쯤 노해서는 아니 되겠지만 그래도 조금 심한 것 같다. 23-초)이놈의 늙은이가 남 곧잘 있는 놈 바람맞히지 않나 싶어서 23-중)할머니나 그리로 장가가시구려, 하고 빽 소리를 질렀던 것이나 23-종)실상은 밤낮 남편에게 주리경을 치는 그 아내가 가엾은 생각이 들길래 그럴 양이면 애초에 갈라서는 것이 좋지 않을까보지만은 부부간의 정이란 그 무엔지 짧지않은 세월에 찔기둥찔기둥이 맺어진 정은 일조일석에는 못 끊는 듯싶어 저러고 있는 것을 요즈음에는 그 동생으로 말미암아 더 매를 맞는다는 소문이었다. 24-초)한편에다 여학생 신가정을 꿈꾸는 놈에게 본처라는 것이 눈엣가시만치나 미운데다가 24-중)한 열흘 전에는 시골 처가에서 처남이 올라와서 농사 못 짓겠으니 나 월급 자리에 좀 넣어 달라고 어린애까지 세 사람을 재우기에도 옹색한 셋방에 깍짓똥[몸집이 몹시 뚱뚱한 것] 같은 커단 몸집이 널찍하게 터를 잡고는 늘큰히 묵새기고 있다면 그야 화도 조금 나겠지. 24-종)하지만 놈에게는 그게 아니라 하루에 세 그릇씩 없어지는 그 밥쌀에 필연 겁이 버럭 났을 것이다. 25-초)그렇다고 처남을 면대 놓고 밥쌀이 아까우니 너 갈 데로 가라고 내쫓을 수는 없을 만큼 놈도 소견이 되었던 것이다. 25-중)이것은 적실히 놈의 불행이라 안 할 수 없는 것으로 상 앞에서는, 아 여보게 고만 자시나, 물에 말아서 찬찬히 더 들어 봐, 하고 겉면을 꾸리다가 밤에 들어와서는 이러면 저두 생각이 있으려니, 확신하고 아내를 생트집으로 두드려 패자니 몇 푼어치 못 되는 근력에 허덕허덕 그만 지고 마는 것이다. 25-종)그러면 처남은 누이 맞는 것이 가엾기는 하나 그렇다고 어쩌는 수도 없는 고로 무색하여 밖으로 비슬비슬 피해 나가는 것이다. 26-초)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는 그 아내의 처지는 실로 딱한 것으로 26-중)이대로 내가 두고 보는 것은 인륜에 벗어나는 일이라 생각하고, 26-종)그 담날 부리나케 찾아가 놈을 꾸짖었단대도 그리 어줍잖은 일은 아닐 것이다. 27-초)내가 대문간에 가 서서 그 집 아이에게 건넌방에 세들은 키 쪼꼬만 감독 좀 나오래라, 해가지고 27-중)그동안 곁방에서 살았고 또 전자부터 잘났다는 성식은 익히 들었건만 내가 못나서 인사가 이렇게 늦었다고 나의 이름을 대니까 놈도 좋은 낯으로 피차없노라고 달랑달랑 쏟으며 27-종1)멋없이 빙긋 웃는 양이 내 무슨 저에게 소청이라도 있어 간 것같이 생각하는 듯하여 불쾌한 마음으로 나는 뭐 전기회사에서 오란대도 안 갈 사람이라고 오해를 풀어주고는 그 면상판을 27-종2)이윽히 들여다보며, 오 네가 매 밤의 대추 두 개로 8백원을 모은 놈이냐, 27-종3)하고는 그 지극한 정성에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28-초)비록 낯짝이 쪼글어들어 코, 눈, 입이 번뜻하게 제자리에 못 놓이고는 넝마전 물건같이 시들번이[여기저기] 게붙고 게붙고 하였을망정 28-중)사람이 제법 총기 있어보이는 맑은 두 눈이며 깝신깝신 굴러나오는 쇠명된[쇳소리 같은] 그 음성, 아하 돈은 결국 이런 사람이 갖는 게로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다 그럼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는 바람에 28-종)그제야 나의 이 심방의 목적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29-초)허나 그대로 네 계집 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게니까 29-중)아참 전기회사의 감독 되기가 무척 힘드나 보던데, 하며 그걸 어떻게 그다지도 쉽사리 네가 영예를 얻었느냐고 놈을 한창 구슬리다가, 뭐 그야 노력하면 될 수 있겠지요, 하며 흥청흥청 뻐기는 29-종1)이때가 좋을듯싶어서 그렇지만 그런 감독님의 체면으로 부인을 쿡쿡 쥐어박는 것은 좀 덜된 생각이니까 아예 그러지 마쇼, 29-종2)하니까 놈이 남의 충고는 듣는 법 없이 대번에 낯을 붉히더니 댁이 누굴 교훈하는 거요, 하고 볼멘소리를 치며 나를 얼마간 노리다가 남의 내간사에 웬 참견이요, 하는 데는 그만 어이가 없어서 29-종3)벙벙히 서 있었던 것이나 암만해도 놈에게 호령을 당한 것은 분한 듯싶어 그럼 옆집 사람까지 집을 쳐서 개 잡는 소리를 끼익 끼익 내게 해가지고 옆집 사람도 못 자게 하는 것이 잘했소, 하고 놈보다 좀 더 크게 질렀다. 30-초)그랬더니 놈이 빠안히 쳐다보다가 30-중)이건 또 무슨 의미인지 잠자코 한 옆으로 침을 탁 뱉어던지기가 무섭게, 이것이 필연 즈 여편네의 신이겠지, 30-종)커다란 고무신을 짤짤 끌며 안으로 들어갔으니 31-초)놈이 나를 모욕했는가 혹은 내가 무서워서 피했는가, 31-중)그걸 알 수가 없으니까 옆에서 구경하고 서 있던 아이에게 다시 한 번 그 감독을 나오라고 시키어보았던 것이나 인젠 안 나온대요, 하고 전갈만 해오는 데야 난들 어떻게 하겠는가. 31-종)망할 놈, 아주 겁쟁이로구나 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좀더 행위가 방정토록 꾸짖어 주지 못한 것이 유한이 되는 그대로 별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나 32-초)밤이 이슥하여 잠결에 두 내외의 소곤소곤하는 소리가 벽 너머로 들려 올 적에는 32-중)아하 그래도 나의 꾸중이 제법 컸구나, 싶어 맘으로 흡족했던 것이 웬일인가. 차츰차츰 어세가 돋아져서 결국에는 이년 하는 엄포와 아울러 제걱, 하고 김치 항아리라도 깨지는 소리가 요란히 나는 것이 아닌가. 32-종1)이놈이 또 무슨 방정이 나 이러나 싶어 성가스리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벽 틈으로 조사해 보았더니 놈이 방바닥에다 아내를 엎어 놓고 32-종2)그리고 그 허리를 껑충 타고 올라앉아서 이년아 말해, 바른 대로 말해 이년아, 하며 그 팔 한 짝을 뒤로 꺾어 올리는 그런 기술이었으나 32-종3)어쩌면 제 다리보다 더 굵은지 모르는 그 팔목이 호락호락이 꺾일 것도 아니거니와, 또 거기에 열을 내가지고 목침으로 뒤통수를 콕콕 쥐어박다가 32-종4)그것도 힘에 부치어 결국에는 양 옆구리를 두 손으로 꼬집는다 하더라도 그것쯤에는 뭣할 아내가 아닐 텐데 32-종5)오늘은 목을 놓아 울 수 있었던 만치 32-종6)남다른 벅찬 설움이 있는 모양이다. 33-초1)그렇게 들을 만치 타일렀건만 이놈이 또 초라니 방정을 떠는 것이 괘씸도 하고 일방 뭘 대라 하고 또 울고 하는 것이 33-중)심상치 않은 일인 듯도 하고 이래서 괜스리 언짢은 생각을 하느라고 새로 넉 점에서야 눈을 좀 붙인 것이 한나절쯤 일어났을 때에는 얻어맞은 몸같이 휘휘 둘리어 얼떨김에 세수를 하고 있노라니까 주인 노파가 부리나케 다가와서 내 귀에 입을 들이대고는 글쎄 어쩌자고 남 매를 맞히오. 무슨 매를 맞혀요, 하고 고개를 돌리니까, 33-종)당신이 어제 감독보고 뭐래지 않았소. 34-초)그래 저의 아내 역성을 들 때에는 필시 무슨 관계가 있을 게니 이년 서방질한 거 냉큼 대라고 어젯밤은 매로 밝혔다는 것인데, 34-중)아까 아침에 그 처남이 와서 몇 번이나 당부하기를 내가 찾아와 그런 짓을 하면 저 누님의 신세는 영영 망쳐 놓는 것이니 앞으론 아예 34-종)그러한 일이 없도록 삼가달라고 하였으니 글쎄 반했으면 속으로나 반했지 제 남편보고 때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소, 하고 매우 딱하게 눈살을 접는 것이다. 35-초)그리고 보니 그 아내를 동정한 것이 도리어 매를 맞기에 똑 알맞도록 만들어 놓은 폭이라 35-중)미안도 하려니와 한편 모든 걸 그렇게도 알알이 아내에게로만 들씌우려 드는 놈의 소행에는 참으로 의분심이 안 일 수 없으니까, 수건으로 낯도 씻을 줄 모르고 두 주먹만 불끈 쥐고는 그냥 뛰어나갔다. 가로지든 세로지든 이놈과 단판 씨름을 하리라고 결심을 하고는 대문간에 가 서서 커다랗게 35-종)박 감독, 하고 한 서너 번 불렀던 것이나 놈은 아니 나오고, 36-초)한 30여세 가량의 가슴이 떡 벌어지고 우람스런 것이 필연 이것이 그 처남일 듯싶은 시골친구가 나와서 뻔히 쳐다보더니 36-중)마침내 말없이도 제대로 알아차렸는지 어리눅는 어조로, 36-종)아 이거 글쎄 왜 이러십니까, 하며 답답한 상을 지어보이는 것이 아닌가. 37-초)그리고 넌지시 하는 사정의 말이 이러시면 우리 누님의 진정은 아주 망쳐놓으시는 겝니다. 38-초)그러니 아무쪼록 생각을 고치라고 38-중)촌뜨기의 분수로는 너무 능숙하게 널찍한 손뼉을 펴들고 안간다고 뻗디디는 나의 어깨를 왜 이러십니까, 하고 골문 밖으로 슬금슬금 밀어내는 것이었으나 주춤주춤 밀려나오며 38-종)가만히 생각해보니 변변히 초면 인사도 없는 이놈에게마저 내가 어린애로 대접받는 것은 참 너무도 슬픈 일이었다. 39-초)나중에는 약이 바짝 올라서 어깨로 그 손을 뿌리치며 홱 돌아선 것만은 썩 잘된 것 같은데, 39-중)시커먼 낯판대기와 떡 벌은 그 엄장에 이건 나하고 맞투드릴[맞닥뜨릴] 자리가 아님을 깨닫고는 어째보는 수 없이 그대로 돌아서고 마는 자신이 너무도 야속할 뿐으로 이렇게 밀려오느니 39-종)차라리 내 발로 걷는 것이 나을 듯싶어 집을 향하여 삐잉 오는 것이다. 40-초)내가 아내를 갖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놈이 신당리를 떠나든지 40-중)이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으리라고 마음을 먹고는 내 방으로 부루루 들어와 이부자리며 옷가지를 거듬거듬[대강대강] 뭉치고 있는 것을 한옆에서 수상히 보고 서 있던 주인 노파가 눈을 지그시 그 왜 짐을 묶소, 하고 묻는 것까지도 내 맘을 제대로 몰라주는 듯하여 오직 야속한 생각만이 들 뿐이므로 40-종)난 오늘 떠납니다, 하고 투박한 한마디로 끊어버렸다. 위에서 본대로 김유정 소설은 대부분 판소리 한마당을 왁자하게 벌일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의 소설 전반에는 풍부한 유머, 즉 해학과 풍자가 담겨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식민지인들의 비참한 현실이나 궁핍과 고난에 찬 삶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읽는 독자가 애정과 연민의 웃음을 머금게 되는 점이 김유정 소설을 한층 값지게 한다는 평가 또한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유정 소설을 순수 우리 가락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지금까지는 본 필자 외는 부재하다. 김유정 사후에 나온 그의 소설집 표지 그림(김유정이 말한 생강나무꽃이 아니라 붉은 동백꽃, 또는 노란 동백꽃)에서 알 수 있듯이, 문학적 현상으로서의 해학성을 가능케 하는 데는 작가의 수사적 능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데, 뛰어난 언어 감각과 능력만이 예상치도 못했던 독자의 기대감을 돌발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럼으로써 두고두고 유쾌하고 무해한 웃음을 발생시킬 수 있었던 김유정. 이러한 과정을 알고 난 우리가 새로이 주목할 사항은 김유정의 소설문체가 순수 우리 것인 판소리 가락이며 사설시조 형식이라는 점이다. 김유정의 그 해학성이 바로 사설시조 내용의 진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김유정 문학관에서 -주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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