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숨 / 박병기
철선 위로 바람이 스쳐 가니
녹슨 숨결은 마른 풀잎을 흔들고
달빛은 경계를 넘으며
잠든 강을 뒤집는다
서쪽 구름이 옛이야기를 풀면
동쪽 산마루가 귀 기울이고
서로의 그림자가 천천히 섞이고
돌담의 심장도 늦게 뛴다
아직 닿지 못한 땅 위에서
바람은 손끝을 내밀고
찢긴 강물 위에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난다
어디선가 부서진 날개가
새벽을 건너와
우리 눈 속에 고요히 머문다
그 순간, 하늘은 하나의 숨을 쉰다.
***
시의 주체와 대상이 하나가 되는 것을 ‘동일화’라 한다. 동일화에 이르는 길에는 두 갈래가 있다. 시의 주체가 시의 대상 안으로 들어가는 ‘투사’와 대상이 주체 안으로 들어오는 ‘동화’가 그것이다. 어떤 길을 걸어서든 결국 주체와 대상이 만나 하나가 된 지점. 나는 그곳을 ‘나와 그가 동일화’된 세계라고 부른다. 그곳이야말로 시, 특히 좋은(잘된) 서정시가 탄생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면서.
‘나와 그가 동일화’된 세계에서 시어는 새롭게 일어선다. 생명 없는 “철선 위로 바람이 스쳐 가”며 생명의 “숨결”을 내뿜고, 인격 없는 “구름”과 “산마루”는 사람이 되어 “옛이야기를 풀”고 또 “귀”를 “기울”인다. 이뿐인가? 무생물의 사물에 불과한 “돌담”은 생명체의 “심장”을 얻어 “뛴다”. 이토록 생명력이 약동하는 ‘나와 그가 동일화’된 세계에서, 어찌 “찢긴 강물”인들 구속과 두려움을 걱정하랴. 그곳에서 쉬는 “경계의 숨”은 “이름 모를 꽃이”라도 마음껏 제멋을 뽐내며 피는 숨결. 자유와 평화의 기운이 아니겠는가.
서정시는 화자 ‘나’를 통해 보여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세계다. 화자인 ‘나’는 직접 시의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이 시처럼 숨어 있기도 한다(숨은 ‘나’). 또한 이 시에서 설정한 ‘경계’가 어떤 것인지 직접 제시한 바 없다. 그런데 이런 언술은 의도적인 배치로 보인다. 그 까닭은 “우리(4연)”라는 시어에서 속내를 감지할 수 있다. “우리”는 시인이 그려낸 경계의 “고요”와 “하나의 숨”이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 우리 모두의 보편적 서정으로 확대되기를 소망하는 이미지로 비치기 때문이다. ‘나와 그가 동일화’된 세계로 우리가 함께 갈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처럼.
-나와 그가 동일화된 세계 / 차용국
* 월간 신문예 136호 시인의 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