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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정말 여러가지인가? This entry is part 1 of 2 in the series 복음을 돌아보라

작성자tabitha|작성시간26.06.06|조회수22 목록 댓글 0

This entry is part 1 of 2 in the series 복음을 돌아보라


복음을 돌아보라

복음은 기독교 신앙의 시작이자 중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 안에서 너무 익숙하게 사용되다 보니, 그 의미가 흐려지거나 왜곡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말하지만, 그것이 성경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지, 아니면 사람을 위로하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변형된 또 다른 메시지인지는 반드시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은 제가 출석하는 The Beacon Los Angeles Church의 피터 정 목사님의 설교를 바탕으로, 그 내용을 정리하고 각색한 것입니다.

부제: 성경이 말하는 단 하나의 복음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면서도 동시에 가장 쉽게 오해되는 단어가 있다면, 아마 ‘복음’일 것입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복음 중심”을 말하고, 많은 설교가 “복음 설교”를 표방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내용은 제각각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20여 년 전, 미국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복음으로 돌아가자”는 운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당시에는 교회의 설교가 도덕적 교훈이나 실천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보다 복음 중심적인 설교를 회복해야 한다는 강한 요구가 제기되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설교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고, 설교 속에 ‘복음이 얼마나 담겨 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도 점점 강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을 말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만을 전하라”는 요구가 커졌고, 죄를 지적하거나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는 쉽게 율법주의로 규정되기도 했습니다. 점차 ‘좋은 복음 설교’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받아들여졌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설교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설교자들은 본문이 직접적으로 복음을 다루지 않더라도, 반드시 복음 메시지와 연결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때로는 본문의 의미를 넘어서는 무리한 해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17장에서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손이 내려오면 밀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가 지치자 아론과 훌이 그의 팔을 붙들고, 그가 앉을 수 있도록 돌을 가져다줍니다. 어떤 설교자는 이 ‘돌’을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해석하며, 지친 성도가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앉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풀어냅니다.

물론 성경 전체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 자체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이며, 그 돌 역시 상징이 아니라 실제 돌이었을 가능성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다른 물건이 있었다면 그것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본문에 복음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해석은 오히려 본문의 의미를 흐릴 위험이 있습니다.

한편, 복음에 대한 이해 자체도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복음을 단순히 마음이 위로받는 메시지로 이해하고, 또 어떤 이는 삶을 더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만들어 주는 소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심지어 일부 교회는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교회’를 내세우며 복음을 인간의 필요와 감정에 맞게 재구성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복음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혼재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과연 복음은 여러 가지일 수 있는가, 아니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오직 하나뿐인가.

성경은 이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답합니다. 복음은 하나입니다. 신약에 네 권의 복음서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서로 다른 네 개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의 복음을 네 가지 관점에서 증언한 기록입니다. 전달 방식과 강조점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내용 자체는 결코 나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 문제를 단호하게 다룹니다. 그는 “다른 복음은 없다”고 선언하며, 복음을 변형하는 자들에 대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갈 1:9). 복음을 왜곡하는 일은 단순한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영원한 결과를 좌우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성경이 말하는 그 복음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듣고 전하는 메시지는 참된 복음인가, 아니면 다른 복음인가?”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무엇일까요.

복음은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고 원수가 되었던 인간에게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렸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 하도록 창조 되었지만, 죄로 인해 그 목적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듯 모든 사람은 죄를 범 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본질상 진노 아래 있는 존재가 되었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엡 2:1-3).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복음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먼저 행동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에 대한 진노를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5:21)는 말씀은 이 복음의 핵심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고,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이 놀라운 교환을 통해,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복음 전파란 바로 이 소식을 선포하며,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면하는 일입니다.

이제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복음은 조금이라도 변형되는 순간 더 이상 복음이 아닙니다. 죄의 심각성을 약화시키는 복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를 흐리는 복음, 회개 없는 위로만을 강조하는 복음은 모두 성경이 말하는 복음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복음을 잘못 이해하면 사람은 결국 이렇게 믿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도 하나님은 이해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 복음이 죄책감 없이 살 수 있는 면허와 같다는 착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죄를 덮어 두는 메시지가 아니라, 죄를 드러내고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하는 메시지입니다. 또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을 왜곡하는 일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사망을 가르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복음을 불편해합니다. 왜 기쁜 소식이 기쁘게 들리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살펴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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