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함이 곧 경건함인가?
“하루는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시려고 나가셨습니다.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누가복음 9:18)
2026년 6월 14일
척 스윈돌 목사
제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동요가 하나 있습니다.
고양이야, 고양이야, 어디 다녀왔니?
런던에 가서 여왕님을 보고 왔지.
고양이야, 고양이야, 거기서 무엇을 했니?
의자 밑에 있는 작은 쥐를 놀라게 했지.
그 작은 고양이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런던 전체가 그녀 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수많은 역사적인 명소들을 구경할 수 있었지요. 웨스트민스터 사원, 트라팔가 광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영박물관도 있었습니다. 오래된 가로등 위로 올라가 근위병 교대식을 볼 수도 있었고, 옆문으로 살짝 들어가 런던 필하모닉의 연주를 즐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너무나도 “쥐 중독(mouseaholic)”이어서 휴가 중에도 늘 하던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쥐만 쫓아다니는 고양이는 오늘날의 일 중독자(workaholic) 들과 교회 활동 중독자(churchaholic) 들에게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과도한 책임에 짓눌리고, 늘 서두르며, 굳은 표정으로 결심한 채, 마치 증기기관차처럼 쉬지 않고 달려갑니다. 열정이 부족하면 근면함으로 그것을 보충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마치 “피곤함은 경건함 다음에 오는 덕목이다” 라고 믿도록 프로그램된 것 같습니다. 더 지치고 더 피곤해 보일수록 더 영적이며,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즐기려는 생각은 묻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정으로 헌신된 그리스도인은 일하고 또 일하고 또 일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강한 열정과 긴장감 속에서 말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일을 숭배하고, 놀이마저 일처럼 하며, 예배는 놀이처럼 하는 세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잠깐만요! 누가 그런 규칙을 만들었습니까? 왜 우리는 그런 철학을 받아들였습니까? 누가 그런 선언을 할 권리를 가졌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도전합니다. 그 생각을 성경으로 증명해 보십시오.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생활방식 속에서 그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를 찾아보십시오.
놀랍게도 신약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감정적으로 완전히 지칠 정도로 강도 높게 일하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쉬셨다는 기록은 여러 번 나옵니다. 사람들의 요구에서 벗어나 제자들과 함께 휴식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제가 예수님께서 사역을 대충 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위궤양에 걸릴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신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이 허둥지둥 조급하게 행동하시는 모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아름다운 균형의 삶이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완수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꼭 필요한 휴식과 여유의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사셨다면, 우리 역시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이 아닐까요?
묵상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바쁨”을 “신실함”과 혼동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와 사역, 섬김과 휴식, 헌신과 여유 사이의 균형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것을 기뻐하시기보다, 그분 안에서 쉼을 누리며 충성스럽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