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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앞에 사는 삶

작성자tabitha|작성시간26.06.15|조회수18 목록 댓글 0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앞에 사는 삶

우리는 먼저 복음의 개념이 얼마나 쉽게 사람 중심으로 바뀌는지,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두 번째 글에서는 그 참된 복음이 왜 우리의 기대와 충돌하며, 때로는 왜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려 합니다. 첫 번째 글에서 말했던 복음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교회 안에서 널리 쓰였습니다. 사실 이 표현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선 두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복음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날마다 복음을 전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복음을 말하는 것은, 결국 왜곡된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주입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 중심으로 변형된 복음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날마다 자신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글에서는, 그 복음을 자신에게 전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복음은 ‘기분 좋은 자기암시’가 아닙니다.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은 곧 “스스로에게 복음을 들려주라”는 뜻입니다. 이 말 자체는 매우 중요하고 옳은 권면입니다. 문제는, 많은 경우 이 표현이 사실상 “날마다 나 자신에게 ‘넌 괜찮다, 이미 용서받았다’고 말해 줘라” 정도로 축소되어 이해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복음은 우리에게 분명한 위로를 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정죄에서 해방되었고,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주는 위로는 단순한 “괜찮다”라는 말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다”는 객관적인 사실 위에 세워진 위로입니다.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흔들리는 나의 감정과 상황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단번에 완성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위에 서겠다는 결단입니다. 다시 말해, 복음은 내 감정을 확인하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선포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이루신 일입니다.

히브리서 4장 14–16절은, 날마다 복음을 자신에게 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 말씀은 세 가지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하늘을 지나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큰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바로 이 세 가지 사실을 매일 다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 죄의 대가는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전히 지불되었다.”
“오늘도 나의 연약함과 유혹을 아시는 대제사장께서 하늘 보좌에서 나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도망치지 않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간다.”

이 고백이 바로 복음을 자신에게 전하는 삶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자신에게 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이미 끝난 것”과 “아직 진행 중인 것”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은 이미 단번에 끝났습니다(롬 8:1). 더 이상 추가로 치러야 할 대가는 없습니다. 이것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롬 8:1; 히 10:12, 14). 그러나 우리의 성화, 곧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죄의 정죄는 끝났지만, 죄와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빌 2:12). 이것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짓고, 실수하고, 넘어지고, 낙심합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두 가지 극단으로 기울어지기 쉽습니다. “나는 안 되겠다, 포기하고 싶다”라며 절망하거나, “어차피 다 용서받았으니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방종입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 생각은 틀렸습니다. 절망과 방종 그 사이에서 우리를 붙들어 주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너는 스스로 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다. 그러니 다시 일어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라.”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넘어질 때마다 이 복음을 다시 자신에게 들려주는 일입니다. “나는 여전히 죄와 싸우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나의 대제사장은 오늘도 변함없이 나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분명히 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높이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높이는 말입니다.

오늘날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많은 메시지는 사실상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소중합니다. 당신은 귀합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입니다.”

이 말들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지만, 복음의 중심은 “나는 괜찮다”가 아니라 “그리스도만이 나의 소망이다”입니다. 참된 복음의 핵심은 요한복음 3장 30절의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매일 아침 이렇게 자신을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중심에 서야 할 분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오늘도 나의 명예, 나의 평가, 나의 체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오늘도 나의 편안함보다 그의 뜻이 먼저이다.”

이렇게 복음을 자신에게 선포할 때, 우리는 점점 “나를 높이는 삶”에서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이 실제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방식입니다.

마지막으로,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복음으로 되돌아가는 습관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형편이 좋을 때에는, 교만과 자기 의를 내려놓고 “이 모든 것이 은혜일 뿐이다”라는 복음을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 형편이 어려울 때에는, 낙심과 원망을 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셨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다시 스스로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죄에 넘어졌을 때에는, 자기 정죄나 자기 합리화 속에 숨어 머무르지 않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로 돌이켜 회개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풍족할 때에도, 가난할 때에도, 배부를 때도 배고플 때도, 그 모든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배우고 훈련 되었다고 고백합니다(빌 4:11-13).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잘될 때에도 복음을 잊지 않고, 잘 안 될 때에도 복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다시 말해,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며, 내 삶 속에서 언제나 나를 높이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높이는 말을 내 심령에 다시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그리고 매일, 스스로에게 이렇게 복음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셨다.
그분은 나의 죄를 짊어지시고, 나에게 자신의 의를 입혀 주셨다.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간다.
나의 삶의 목적은 나의 영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이것이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이며,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참된 복음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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