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주민 마을에 간 이유는?」
(오렌 긴즈버그 지음, 임영신 옮김, 초록개구리, 2015)
원주민을 돕겠다고 찾아간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개발’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돕습니다.
원주민에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여
당사자와 지역사회의 자원으로, 당사자와 지역사회의 강점과 역량으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사회복지사의 관점으로 판단 진단 심판하면서, 사회복지사 쪽의 기준으로 일방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그 결과,
결국 소수민족에게 개발의 결과는 풍요가 아닌 빈곤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국제 사회의 원조는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처지에서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주민 마을에 간 이유는?」 표지 가운데
우리가 원주민 마을에 간 이유는 내 욕심 때문은 아닐까요?
동화는 이런 일방적 개발 지원이 누구를 위한 일인지 묻습니다.
지역사회 개발이 돈 벌기 좋은 사업이 되어 이익을 얻는 ‘꾼’들이 있습니다.
꾼들에게는 누군가의 어려움이 좋은 일감입니다.
“늘 그랬듯이 우리가 이 원주민 마을을 찾아온 이유는,
사람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마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움에 부딪혔다.
아무리 봐도 이 마을 사람들은 자기네 나름의 방식으로 이미 잘 살고 있었다.”
마을의 강점(자원)은 보지도 않고 내가 옳다는 방식으로,
내 쪽 강점(자원)으로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마을 사업.
그 결과, 웃음과 인정이 있던 마을이 외부 활동가들이 떠나온 곳과 같은 오염된 도시로 변합니다.
그들에게는 마을공동체 사업은 그저 일감이고 실적입니다. 돈벌이입니다.
이 책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이루어지지만 점점 피폐해지는 아마존의 어느 원주민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왜 관광지에서 마주하는 소수 민족의 모습은 늘 가난하고 불쌍해 보일까?
해외여행이 활발해지면서 우리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오지도 마다하지 않고 세계 구석구석을 다녀옵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여행이나 탐험 프로그램도 난생 처음 보는 지역의 낯선 민족을 이웃처럼 생생하게 소개합니다.
옷차림이나 생활 방식이 낯선 소수 민족을 직접 만나거나 매체를 통해 접하면서
우리는 그들이 가난하고 문화적으로 뒤떨어졌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됩니다.
부모나 교사를 따라 나선 아이들조차 어른들이 무심코 그들을 폄하하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여행지나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 말고도 여행 책이나 영화 속에서,
또 뉴스에서 마주하는 소수 민족의 모습은 늘 가난하고 불쌍해 보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소수 민족을 미개인이라고,
교육받지 못했으니 가르치고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라고 단정 짓게 만들까요?
우리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누군가가 개발의 대가가 치른다면?
유엔은 토착 원주민의 규모가 70개 나라에 걸쳐 3억 7000만 명에 이르고,
이들의 70퍼센트는 아시아에 살고 있다고 집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휴가에 쉽게 찾는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는 소수 민족을 상품화한 관광 상품이 많습니다.
그들은 관광을 위해 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전시하고, 민속을 값싼 공연으로 보여주며, 기념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갑니다.
소수 민족이라는 편견에 시달리고 산업 사회에도 편입하지 못하다 보니
그들의 삶은 희망을 찾지 못해 쉽게 자포자기로 흐릅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관광객 눈에 게으르고 미개하게만 비칩니다.
그것은 소수 민족이 아니라 우리 중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개발을 한다고 누군가 우리가 사는 마을을 찾아와 집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몰아낸다면,
직장을 폐쇄하고 보호구역을 선포한다면, 마을 밖으로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도록 거주 지역을 설정한다면,
오랫동안 익숙했던 음식과 옷 대신 낯선 음식과 문화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면,
그 모든 것이 개발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깊은 절망감에 삶의 의욕마저 잃고 말 것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 벌어지는 개발의 대가로
누군가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출판사 책 소개 글 가운데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고 있어도) 그래도 더 잘 살게 하려면 개발을 해야 한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딴전만 피웠다. 그래서 우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이 없어도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생기가 넘쳤다.
어째든 우리는 계획대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마을로 불러들였다.
우리는 전문가들과 함께 마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 개발의 결과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진 이들에게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 복지 혜택을 마련했다.
- 동화 가운데
지금 세계의 몇몇 기업이나 정부가 소수 민족과 원주민을 상대로 벌이는 개발은
19세기 유럽 여러 나라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였던 식민지 쟁탈전에 그 뿌리가 닿아 있습니다.
오늘날 그저 ‘개발’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된 것일 뿐,
실제로는 여전히 소수 민족의 땅과 자원을 몇몇 기업이나 정부가 빼앗아 가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소수 민족은 미개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독립적이고 활기찬 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변화하는 세계에서 우리처럼 끊임없이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 스테판 코리의 추천사 가운데
탈란디그 부족의 지도자인 ‘다투빅’은 단호하게 외칩니다.
“우리 땅을 뺏으려는 이들은 늘 ‘개발’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가지고 찾아와요.
심지어 정부에선 시원한 고산 지대에 헬기로만 올 수 있는 고급 별장 마을을 만들고,
우리에겐 돈을 많이 버는 일자리를 주겠다고 해요.
하지만 우린 이미 우리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충분히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걸요.
모두 힘을 합쳐 나무로 집을 짓고, 토종 씨앗으로 밭을 일구고, 저녁이면 모여서 함께 음악을 나누고,
우리의 전통 춤과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부족 이야기를 흙 그림으로 보존하면서
공동체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삶을 버리고 호텔 청소부가 되라고요?
그들이 말하는 ‘개발’은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니에요.
그들 중 누군가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우리 땅이 필요한 거겠죠.”
(…)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삶이 이미 우리 마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 “생태계에 생물 종 다양성이 필요하듯, 인간 사회에서도 인종 다양성은 소중한 것입니다.”
- 임영신, 옮긴이의 말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