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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파스카의 기쁨과 복음 선포

작성자이기우|작성시간25.06.29|조회수116 목록 댓글 0

파스카의 기쁨과 복음 선포

-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창세 41,55-42,24; 마태 10,1-7 /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2025.7.9.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본기도). 

 

  아주 오랜 옛날 인류가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며 하늘의 뜻을 찾았던 이유는 자신의 존재가 현세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며 의미 있기를 바랐던 까닭이고, 죽은 이들의 시신을 방치하지 않고 장례를 치루어 온 까닭은 내세의 영원한 삶을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문명이 일어나던 시대 이래로 과거 종교의 이름으로 하느님을 흠숭하거나 현재 과학의 이름으로 하느님을 멀리하거나 간에, 결국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관심사는 인간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종교가 절대적이었던 과거에나 과학이 성행하는 현재에도 변함없는 것은, ‘타락한 세상’이라는 인류의 현실과 ‘성자의 수난’으로 인간을 다시 일으키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섭리의 일관성과 함께, 욕망으로 뒤틀린 인류 역사의 무방향성을 일깨워줍니다. 

 

  이즈음 우리가 듣고 있는 창세기의 말씀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히브리족을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 그들의 복잡다단한 역정에 함께 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브라함에게는 축복을 내려주시며 믿음을 요청하셨고, 집념을 타고난 야곱에게는 집념을 성취하기 위한 성실한 성품과 함께 역경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열두 아들을 얻었는데, 서열상 열한 번째 아들이지만 사실상으로는 맏아들인 요셉이 아버지 야곱에게서 성실한 믿음을 물려받기는 했는데 아버지의 편애로 말미암은 형들의 질투를 받아 이집트로 팔려가게 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이하지만 이집트에서의 출세로 온 집안을 이집트로 불러들이는 역할까지 수행합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

  이 과정을 섭리적 시선으로 돌아보면 이렇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수메르 문명권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시어 일가를 이루게 하신 다음 역시 우상을 숭배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종교적 관용을 베푼 이집트 문명권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자라나도록 기르시는 대략 6백 년 동안의 하느님의 계획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고 물려주게 하신 것은 단 하나, 하느님께 충실한 믿음뿐이었고, 나머지 온갖 복잡하고 나약하며 때로는 죄스러운 인간 정서와 사회적 환경을 다 허락하셨습니다. 이사악과 야곱의 편애, 에사우와 레아와 형제들의 질투, 라반의 사기, 형제들의 협잡, 파라오의 기지와 관용과 공포심 등등입니다. 이 과정에서 히브리족이 집단적으로 겪을 수 있었던 하느님 체험은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다시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해방의 체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모세 시대로부터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는 해방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만 작용했던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과 하느님을 떼어 놓으려는 마귀의 간계도 기승을 부렸기에,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제자들에게도 당부하신 것은 단 두 가지 일뿐이었으니,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계승하는 것과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마귀의 희생자들을 도와주는 것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를 일컬어, 복음선포의 사도직, 구마의 사도직 그리고 치유의 사도직이라 합니다.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 주어라."

 

  성경이 알려주는 이러한 역사적 교훈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치입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겪었던 하느님의 원체험은 신앙을 거부하는 자들이 가한 끔찍한 박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우촌을 이루어 믿음을 지켜냄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최고선과 공동선의 가치로 구현하고 있는 과정이 지난 2백여 년의 근현대 한국사입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이 증거한 하느님 신앙과 그들이 추구했던 하늘 나라의 가치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마음 놓고 하느님을 믿으며 하늘 나라가 다가올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하느님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믿지 않거나, 믿으면서도 소홀히 취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오늘날에도 마귀 들려 양심을 마비시킨 채 죄를 저지르고 사람들을 괴롭히며 세상을 타락시키는 자들 또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 나라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복음선포 활동은 타락한 세상에서 악과 맞서고 그 희생자들을 돌보는 일과 맞물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대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구마(驅魔) 사도직에 대해서는 정의평화 활동으로, 부마자(付魔者) 돌봄 사명에 대해서 사회복지 활동과 의료 및 원목 활동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문제들이 하느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저지른 죄의 결과이며 인간의 불행과 질병 또한 절제하지 않고 쾌락을 추구한 결과로 나타나는 생활 습관 탓임을 알게 되면, 이러한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길 역시 문제를 일으키고 질병을 불러들이는 인간 자신의 태도가 달라져야 함도 알게 됩니다. 즉, 인간 자신에 대한 관심은 하느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비로소 올바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파스카의 기쁨’입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파스카의 기쁨을 위한 정의평화 활동의 지침이다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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