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열왕 25,1-12; 마태 8,1-4 /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2026.6.26.
오늘 독서에서는 남 유다 왕국이 바빌론의 군대에 의해서 멸망당하던 역사적 장면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바빌론 임금은 유다 임금 치드키야와 함께 도성에 남아 있던 자들 가운데 쓸모가 있을 법한 기술자, 지식인 등을 모두 끌고 갔고, 별 쓸모가 없어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만 일부 남겨서 농사를 짓게 하였습니다. 이 남은 자들이 ‘암하레츠’라고 불리우게 되며, 바빌론 유배가 끝난 후 이스라엘로 돌아온 아나빔들과 합해 민족의 멸망과 메시아의 도래를 내다본 예언자들의 예언을 보전한 민족의 또 다른 주류를 형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실 때, 주된 청중이 되었던 이들입니다.
“바빌론 강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그리며 눈물짓노라. …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예루살렘아,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굳어 버리리라. 내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으리라.” 오늘 미사의 화답송에서 들으신 시편 137편의 이 노래는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유다인들이 유배기간 내내 지녔던 절절한 그리움을 말해줍니다.
사실 바빌론에서 유배당하던 유다인들은 이집트 종살이에 비해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지낼 수 있기는 했으나 마음은 결코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을 마음 놓고 찬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빌론 궁정에 뽑혀 들어가서 불가마 화형을 당할 뻔 했다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도움을 겨우 살아났던 예언자 다니엘의 이야기라든지, 바빌론의 왕비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모함에 빠져 동족과 함께 죽임을 당할 뻔 했다가 목숨을 건 기도로 살아났던 에스테르가 남긴 수난 이야기에서도 보듯이, 유다인들은 못내 하느님과 고국 이스라엘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배생활 70년만에 내려진 해방령에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한 후에 즈루빠벨과 에즈라와 느헤미야 등의 지도자들이 발벗고 나섰고 돌아왔거나 남아있던 온 백성이 합심하여 노력한 결과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하고 신앙 공동체로서를 재건하기까지, 유다인들의 이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도록 이끌었던 힘은 자신들이 바로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유다인들의 의식이었습니다.
민족적 위기 속에서 유다인들의 집단적 정체성과 신앙심이 발휘한 힘은, 나병이라는 개인적 질병과 불행 속에서도 역시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만나신 나병 환자는 그분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엎드려 절한 데에서도 나타나듯이 그분께 대한 믿음을 깍듯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다른 병자에게는 “낫기를 원하느냐?”고 묻기도 하셨던 예수님이시지만, 이 나병 환자에게는 그 절박한 신앙심을 보시고는 묻지도 않으시고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는 한 말씀으로 당장 깨끗하게 고쳐 주셨습니다.(마태 8,2-3) 이렇게 유다인들의 정체성과 나병 환자의 신앙심에 공통으로 담긴 고갱이는 절박함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겨레 역시 올해로 80년이 넘도록 분단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6.25 전쟁이 휴전된 지도 70년이 넘었습니다. 강제로 갈라져 나라가 분단된, 지구상 마지막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민족이 통일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통일을 바라고 있을까요? 분단이 위기라는 의식은 지니고 있는 걸까요?
2012년에 「남북한 주민의 통일의식」을 비교 분석한 한 논문에 의하면, 남북한 주민의 통일의식은 통일의 당위성과 기대이익, 교류정책 등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반면 상호인식과 이질성, 인지도 등에서는 높은 유사성이 발견되었습니다. 통일 당위성에 대한 생각은 남한에 비해 북한주민이 월등히 높으며 통일이 가져다 줄 이익 기대감도 북한주민이 훨씬 높게 갖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남북 간 경제협력이나 정치대화, 인도적 협력 등 남북 간 교류정책이 통일에 기여할 것이라는 의식도 북한주민이 남한에 비해 월등히 높고 교류와 지원 정책에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은 여전히 서로 문화적 차이와 이질성이 심각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고 상호 간에 불신과 불안감이 높게 자리 잡고 있어서 협력대상으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적대하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대상이라는 양면적 의식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논문을 공동으로 발표한 연구자 김병로와 최경희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남북한은 남북주민의 이러한 통일의식의 현실을 토대로 대북·대남 및 통일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통일의 효과와 비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책개발이 필요하며, 남북한 주민 간에 형성되고 있는 상호불신과 불안의식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통일에 대한 비전과 전망을 앞당기고 젊은 세대의 통일의식을 제고하기 위한 남북관계 개선이 시급하다. 나아가 남한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남북대화 정책을 적극 개발하고 북한주민들의 대남 호감도를 증진할 수 있는 경제협력과 지원정책을 심도 있게 추진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결론에 입각하여 이 논문의 연구 성과가 말해주는 본질은 우리가 민족적 위기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겨레에게 같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얼마나 진하게 남아있는지? 부당하게 외세에 의해 갈라졌고 또 서로 원치 않은 전쟁까지 치르는 바람에 지니게 된 상호 증오심에 대한 뉘우침은 과연 얼마나 절절한지? 혹시 아직도 상호 증오심에 불타서 대북 적개심과 대남 적개심에 절어 있는 남북한 주민들은 또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 이런 질문을 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외침도 메아리 없는 독백이 되어 버립니다. 원하지 않으면, 그리고 절박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통일은 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