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에서 “번병(藩屛)”이 정말 “울타리”인가?

작성자최두환|작성시간15.12.22|조회수413 목록 댓글 0

 우리는 력사의 의미를 정말로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그렇게 동감하며, 줄기차게 주장하고 그렇게 번역하고, 그렇게 인식해버린 사실의 한 가지는 무엇보다 “藩”(번)이라는 낱말이다.

 

이 한 가지 사실로써 “대한민국 국민들은 조선의 지리정치사(地理政治史)의 개념이 없다고 단언한다.

 

우선 대개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지리정치사의 개념은 무엇인가?

 

한 국가에서 임금이 대신을 거느리고 전국 지방행정 장관을 통해 통치한다는 것으로 알고, 세자, 왕자, 공주들은 모두 서울 안에 우루루 모여 살면서 파당을 만들며, 권력 다툼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으로 다큐멘터리가 이루어지고, 대하드라마가 만들어져서 안방을 누비고 있다.

 

이런 개념이 중국대륙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선의 통치개념은 이원체제(二元體制) 내지는 이중구조(二重構造) 형태를 지니며, 전국에 대해 황제[천자]는 중국에 군림하며 친왕(親王), 즉 제왕(諸王: 왕자들)은 지방에서 번왕(藩王), 즉 제후(諸侯)로서 군림한다. 중국이라는 경기(京畿)에는 경조윤(京兆尹)이, 지방에는 관찰사(觀察使), 포정사(布政司) 등의 지방 수령이 다스린다. 이 중앙과 지방을 통틀어 황제가 통치한다.

 

이런 제도는 현재에도 일본렬도에서 천황(天皇)제도와 매우 흡사하다. 다만 지금의 일본천황은 “정책결정권”이 제외된 것이 옛날 조선의 종치체제와 다를 뿐이다.

 

여기서 이런 체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藩”이 어떤 개념으로 쓰이며, 무슨 뜻인지를 알아보자. 그래서 먼저《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번역된 내용을 고치지 않고 몇 가지 사례를 보자.[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 : e-실록]

 


 

(1) 그 조서는 이러하였다. ... 동쪽 나라를 화합하게 하고, 중국의 번병(藩屛)이 되어, ... 칙서(勅書)는 이러하였다. ... 동쪽 나라로 하여금 백성이 편하고 재물이 성하여 길이 중국의 울타리와 방패가 되도록 하라.[其詔曰: ...用輯和東土, 藩屛中國, ... 勅曰: ... 俾東土民物康阜, 永爲中國藩輔之重。[성종 5권 1년 5월 1일(무인)]

 

(2) 조선의 국왕이의 주문은 다음과 같다. ...조선이 편안하면 중국의 울타리도 튼튼해질 것입니다.[朝鮮國王謹奏... 朝鮮安則中國之藩籬固矣。][선조 54권 27년 8월 20일(을축)]

 

(3) 영의정 유성룡, 행 판중추부사 윤두수, 좌의정 김응남이 아뢰기를, ... 중조에서 누차 출병하는 것은 단지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서인데도 조선 사람들은 「조선은 중국의 울타리이니, 중국에서 구원해 주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있다.[領議政柳成龍、行判中樞府事尹斗壽、左議政金應南啓曰: ... 只爲救援朝鮮, 而朝鮮之人以爲: 朝鮮, 乃中國藩蘺, 不得不救云。][선조 88권 30년 5월 11일(신축)]

 

(4) 병부(兵部) 등 아문(衙門)이 황제에게 올린 주본은 다음과 같다. ... 이부 상서(吏部尙書) 이(李) 등은 조선은 우리를 섬겨 대대로 공순하다고 불리었고, ... 호부 상서(戶部尙書) 양(楊) 등은 ‘국가가 조선을 울타리로 알고 200년 동안 위덕(威德)을 끼쳤으며, 조선 또한 대대로 신절을 지켜 예의와 충순(忠順)의 나라가 되었다. ... 형부 시랑(刑部侍郞) 동(董) 등의 게첩(揭帖)에 조선은 국가의 동쪽 울타리로 옛날부터 공순하다고 불렸는데, 그 나라가 왜국과 인접해 있어 왜와 서로 무역한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兵部等衙門一本題爲奉職無狀, ... 又該吏部尙書李等看得, 朝鮮奉事中國, 世稱恭順, ... 又該戶部尙書楊等看得, 國家爲朝鮮爲外藩, 二百年來, 威德遠暢, 而朝鮮亦世守臣節, 爲禮義、忠順之邦。... 該刑部侍郞董等揭稱, 朝鮮爲國家東藩, 夙稱恭順, 其國隣倭, 與互市, 亦非一日。][선조 109권 32년 2월 19일(기사)]

 

(5) 낭중(郞中) 가유약(賈維鑰)의 접반사 한술(韓述)이 장계하였는데, 낭중이 지은 부산 평왜비명(釜山平倭碑銘)의 초고(草稿)을 베껴서 올려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 명(銘)은 다음과 같다. ... 대개 조선이 명나라의 속국이 되어 번국이라고 칭하면서 서로 우호를 맺어온 지 오래이다.[賈郞中接伴使韓述狀啓。 大槪郞中所製釜山平倭碑銘草, 今始謄書上送云。 其銘曰: ... 蓋惟朝鮮, 內附稱藩, 與國同久。][선조 118권 32년 10월 1일(정축)]

 


 

이것은 조선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취급해도 될 것이다.

 

낱말을 보면, “藩屛/藩輔/藩籬/外藩/東藩”이 나오는데, 이것을 한결같이 번역에는 “울타리”라고 하였다.

 

이것들은 다 같은 말인데, “藩”이 과연 “울타리”의 역할을 하는 것인가? “울타리”인가?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더 한심하다. 설명된 글들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왕실을 지키는 제후

 

② 보위하다.

 

③ 번리(藩籬)와 문병(門屛). fence in front of the door.

 

④ 감영(監營)과 병영(兵營)을 일컫는 말.

 

⑤ 궁전을 지키는 먼 밖의 감영(監營).

 


 

이런 설명으로 보면 한글학자는, 력사학자도 포함되겠지만, 조선의 력사와 지리정치사에 간하여 아는 것이 없다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1)〜(4)은 모두 그 중심에 “中國”이요, 그 “중국의 울타리”식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끝의 (5)은 본문에도 없는 말을 “명나라의 속국”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전자와 후자는 전혀 그 의미가 다르다. 결코 조선은 “명나라”의 속국이 된 적이 없으며, 오직 “중국”의 속국이었다.

 

속국이니, 제후국이니, 번국이라는 말은 천자국이니, 황제국이니, 중국이라는 개념과 상대되는 말이다. “명(明)”이란 나라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명나라는 중국이 아니므로 제후국인 것이다. “조선”은 중국이 아니므로, 제후를 두고 있는 나라다.

 

이 의미를 명확히 알기 위하여 다른 사료를 보자. 《명사(明史)》권100 표1 제왕세표(諸王世表)1에 이른 글이 있다.

 


 

“明太祖建藩, 子孫世系預錫嘉名, 以示傳世久遠.”[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번국(藩國)을 두었으며, 자손대대로 가명(嘉名: 잘 지은 이름)을 미리 내려주어서 후세에 오래도록 전하게 하였다.]

 


 

여기서 “藩”이 나오는데, 그 뜻은 ‘藩國“이며, 제후국(諸侯國), 속국(屬國)이라는 말이다.

 

이런 번국을 둔 것은 제왕(諸王), 즉 친왕(親王)을 모두 지방에 보내어 제후로 두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제후국도 주/부/군/현(州府郡縣)에 따라 세자니 다른 왕자들이 차지하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언제나 왕자들은 서울에 우루루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지방에 나가 지방을 다스렸던 것이다.

 

이런 개념에서 력사를 다시 보면, “我自固 亦所以固朝鮮”[우리 스스로 견고히 하는 것은 또한 조선을 견고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明史》권320 列傳208 外國1 朝鮮 ‘經督條陳七事]는 말도 “우리”를 그저 “명나라”로 번역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중국”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 “중국”이란 의미가 조선의 중앙조정, 중앙정부임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요약하면, 조선의 정치사는 지리를 빼놓을 수 없으며, 황제와 왕족을 위한 통치체제로서 천자, 황제는 천자국, 중국, 상국, 신주(神州)라 불리는 이름의 지역에서 군림하며, 그의 아들[황태자, 태자, 세자, 공주 등 친왕]들과 공신(功臣)들은 제국(諸國), 제후국, 번국(藩國), 왕국(王國)이라 불리는 지방에서 군림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번(藩)”을 “울타리”라고 번역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제후”를 의미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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