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조일신(趙日新)의 난을 평정

작성자최두환|작성시간15.12.22|조회수271 목록 댓글 0

 기황후가 중앙조정에서 큰 힘을 행사하기 시작하자, 그 영향은 고려의 온 지방에 파문이 되어 넘쳐 들기에 이르렀다.
  다름아닌 기철 일당의 출현과 더불어 이를 본받은 권겸(權謙)·노척 등이 나타났다.
  권겸은 충목왕 때 판삼사사를 지냈고, 공민왕 즉위 초에 자기 딸을 자청하여 원나라 황태자에게 바쳐, 원나라의 태부감태감(太府監太監), 고려의 복안부원군(福安府院君)의 작위를 받았다.  그리고 노척은 평양공왕현(平陽公王眩)의 딸 경녕옹주(慶寧翁主)에게 장가들어 벼락 출세를 하고, 충목왕 때 좌정승(左政丞) 경양부원군의 작위를 받더니, 공민왕 4년에는 자기의 딸을 원나라 황실에 바쳐 집현전(集賢殿) 학사(學士)가 되었다.


<권공(權公)! 근간에 좋은 소식이 들리더군요. 원에서 말요.>
<뭘 그래요. 기공(奇公)의 은혜가 없으면 될 법이나 합니까?  부디 버리지 마시고 잘 이끌어 주십시요.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허 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 외려 권공이나 노공의 협조가 있어야지요.>

 

  그들은 이렇게 원나라 황실에 딸을 보내거나 누이를 보내어 그것으로 힘깨나 쓰고 있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실로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요, 얼굴조차 변변히 들고 다닐만한 일이 못되는 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뻔뻔스럽게도 개경거리가 제 땅인양 활보하며, 오히려 온갖 간악한 일들을 저지르고 다녔으므로, 백성들은 혀를 내두르면서 그 만행에 부르르 이를 떨었다.
  딸이나 누이를 보내는 것도 사실은 권력을 노려 팔아먹은 것(賣官買職)이나 마찬가지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때에 또 하나의 권신이 온갖 세도를 다 부리고 있었다.  바로 조일신(趙日新)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공민왕이 아직 임금이 되기 전에, 충혜왕2년 5월부터 세자로서 대원자(大元子)라는 칭호로 원나라에 있을 때, 그는 영민하고 재치가 있어, 역경에 놓인 강릉대군을 모시면서 숙위하는 손과 발이 되어 주었다.
  공민왕의 처음 이름은 기(祺)였으며, 몽고식 이름은 빠얀티무르(伯顔帖木兒)이며, 충혜왕의 아우이다.
  그런데, 강릉대군(1330-1374)이 1351년에 임금으로 즉위하여 공민왕이 되자, 그 해 12월 25일(경자)에 공주와 함께 귀국하였으며, 공민왕은 지난날의 일들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경이 없었다면, 어찌 짐의 오늘이 있겠소. 참으로 경이야 말로 짐에 있어서는 일등공신이오. 경에게 찬성사의 벼슬을 내리니, 앞으로도 변함없이 짐을 잘 보필해 주길 바라오.>

 

  이렇게 공민왕의 배려로 조일신이 찬성사의 벼슬에 오르게 되자, 그가 왕을 모시고 다닌 공로를 빙자하여 왕명을 거역하기도 하고, 제멋대로 날뛰었으나, 아무도 그에게 손을 대거나 제지하지를 못했다.
  조일신의 영화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어느 사이에 판삼사사(判三司事)의 중직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처음 얼마 동안 조일신은 그 충직함이 눈에 띄리만치 돋보이게 모든 일을 잘 처리하였으므로 그를 보고 `공평무사'하다는 인정을 받았었다.
  그래서 뭇사람들이 조일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직위가 높아지고 세월이 흐르게 되니, 그의 본바탕이 노출되었다.
  그는 당을 만들어 손발과 같이 부릴 사람을 구하고, 제 배 채우는 데 눈을 돌렸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그의 집 앞에는 벼슬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섰다.  뇌물이 횡행하여 그의 곳간에는 재물이 눈처럼 쌓였다. 이러한 부귀영화 속에서 살던 조일신에게도 불행은 소식없이 찾아 들었다. 공민왕의 제도개혁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방(政房)을 폐지하고 사전(私田)을 개혁한다는 개혁의 취지는 그의 권력에 철퇴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상감마마!  자금 상감께옵서 펼치시는 일은 온당치 못한 줄로 아뢰오.>
<무슨 말이오?>
<온나라가 화합하여 국권을 튼튼히 해야 할 지금에 정방(政房)을 폐지한다 하옴은...>
<조 판삼사사! 그 말이라면 그만 두시오. 과인이 알아서 할터이니.>

 

  조일신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조정을 물러 나왔다. 그는 옛날 원에서 있었던 일을 공민왕이 까마득히 잊고 있다고 비웃으면서 하루 이틀을 보내었으나,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밤을 새면서 묘한 꾀를 짜내기에 바빴다.

 

<그렇지 기철을 물고 들어가야 한다. 이 때 원나라 세력에 힘입어 날뛰는 기철 일당을 쳐서 임금의 마음에 들게 해두면, 그야말로 일거양득 아닌가. 언젠가 기철 일당을 없애야 할 판국이라면, 이 때에 없애 버려야 되겠다.>

 

  과연, 그는 머리가 잘 돌아갔다.  앞으로 적이 될 기철 일당을 쳐서 공민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자 했던 것이다.
  1352년 5월 원 순제가 기완저부카(奇完者不花)를 고려에 보내어, 기황후의 아버지를 경왕(敬王)으로 책봉하였다.
  이를 즈음에 조일신은 공민왕으로 하여금 이를 축하한다는 구실로 잔치를 베풀고, 공경대신(公卿大臣)을 모두 대궐로 모이게 하였다.
  판밀직 홍의(洪義), 태사 기철(奇轍), 찬성사 기유걸(奇有傑), 소감(小監) 기완저부카(奇完者不花), 태감(太監) 권겸(權謙), 만호(萬戶) 권항(權恒), 사인(舍人) 권화상(權和尙), 경양부원군 노척, 행성낭중 노저(行省郎中 盧渚) 등등 친원파 중심 인물을 잔치에 초대하였다.
  1352년 9월 29일(己亥) 밤이었다.
  조일신의 집에서는 몇몇 사람이 모여 또 모의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심복인 찬성사 정천기(鄭天起), 최화상(崔和尙), 장승량(張升亮), 고충절(高忠節), 림몰윤(林沒輪), 장강주(張降注), 한범(韓範), 손노개(孫奴介), 박서등(朴西 ), 염백안티무르(廉伯顔帖木兒), 리송경(李松景), 곽윤정(郭允正) 등 12여 명을 자기 집으로 불렀다.
  정천기가 먼저 들어오고, 최화상과 장승량이 속속들이 그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조일신은 은근히 앉은자리를 씩 둘러보고는 말했다.

 

<어차피 정치란 내가 살기 위한 나의 의지를 펴 나가는 것이요, 오늘 우리가 적을 친다는 것은 적이 우리를 치지 못하도록 하는 방비책이란 말이오.  우리는 오늘밤 기철의 세 형제와 고용보·박불화·평리 리수산(李壽山) 등의 친원 분자를 숙청하여 고려국을 좀먹는 당을 씨도 남지 않게 없애 버립시다. 이 손바닥을 보듯이 분명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겠기에 공들을 불렀던 것이요. 공들은 나의 뜻에 동의하시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최화상이 말하면서 조일신, 정천기, 장승량의 얼굴을 보면서
 
<찬동하다 뿐이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에 기철 일당의 친원반역자들을 숙청해야 조대감께서도 세도를 잡으시고 우리도 한 자리 할께 아닙니까?>

 

하고 염소털 같은 수염을 배배 꼬았다.
 
<그러나, 일을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해야 하오. 오늘밤 거사에 가담하는 우리 중에서 만약에 임금이나 기철 도당에게 내통이라도 하면 큰 일입니다.>

 

하고 정천기는 자못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걱정은 없습니다. 미리 두둑하게 먹여 놓았고, 성공을 한 뒤에는 벼슬까지 준다고 했으니까요.>

 

하면서 장승량은 조일신의 눈치를 살피면서 거드름을 피웠다.
 
<그렇소. 기철 도당이야말로 나라에 좀먹는 무리요. 쳐 없애지 않으면 후환이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밤 삼경(밤11-01시)을 기해서 우선 기철의 집을 습격합시다.>

 

  조일신은 일단 명분을 세웠다는 데에 안심을 하면서 이제는 명령조로 말하였다.
  드디어 삼경(밤11-01시)이 되었다.  장승량, 최화상은 그 마을의 폭력배들(惡小輩)을 불러 모았다.
 
<자. 지금부터 기철·기윤·기원 등 세 형제와 박불화·고용보·리수산 등 우리 고려를 원나라에 팔고 반역행위를 하는 친원 도당이다. 이들의 집을 습격하여 그 목을 베어 오도록 한다.>

 

  최화상이 이렇게 암살계획을 명령하니,
 
<약속은 틀림 없겠지요?>
<거야 걱정을 말라구.>
<일이 다 된 뒤에 약속을 어기면 우리로서의 생각이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한 젊은이가 다부지게 따지고 들었다.
 
<그런건 아예 걱정 말게나. 이미 말하지 않았나? 일이나 실패하지 않도록 해 달라니까 그러네.>

 

  밤 11시를 기하여 기철 등의 집을 포위하고서 왕명이라 하여 체포하고자 기습작전을 썼으나, 이들이 언제 눈치를 채었는지 벌써 도주하고 집에는 없었으며, 이날 밤 잡혀 죽은 것은 기철의 다음 동생인 기원(奇轅)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놓쳤으니, 이들이 꾀한 거사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실패한 조일신 일당은 이제 겁이 덜컹 났다. 기철 등의 보복이 눈앞에 선했다. 조일신은 펄펄 뛰며 꾸짖었으나,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오늘밤 이대로 실패하면, 우리의 목숨은 위태하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 밤이 새기 전에 도망간 놈들을 잡도록 하자!>

 

하고 조일신이 목에 힘을 주어 말하자, 장승량은,
 
<기철·고용보 등의 무리가 제 집을 빠져 나와 오늘밤 임금이 계신 성입동(星入洞) 리궁(離宮)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즉 이제부터 이궁을 포위하는 게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하고 말하면서, 최화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동조를 구하는 태도였다.

 

<그렇다면 리궁(離宮)을 치자는 말입니까?>
<하는 수가 없는 일이 아닙니까?  도리가 없지요.>

 

  장승량이 강경하게 밀고 나오니까, 정천기도 할 수 없다고 여기고 아무런 말이 없다.
  처음에 정천기는 왕궁 포위를 반대했으나, 장승량이 말문을 막듯이 다시
 
<할 수 없는 일이요. 죽이기 아니면, 죽음 뿐이요.>

 

하고 못박아 대꾸했다.
  결국 어느 누구도 지금에 와서 반대할 처지가 못 되었다. 죽음이 눈앞에 온 지금에 와서는 눈에 핏발이 서는 것 같았다.
 
<장공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임금이 계신 이궁이라도 습격하여 도적을 잡고자 하니, 나는 여러분이 하는 대로 따라 하겠습니다.>

 

하고 조일신은 이궁습격에 대하여 찬성하는 뜻을 나타내었다.
 
<그럼 결정이 되었습니다. 따르시오!>

 

  조일신 일당은 성입동 리궁을 포위하여 든 시각은 벌써 3일(庚子) 12시가 지나는 한밤중이었다.
  갑자기 성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마침 숙직을 하고 있던, 직숙판밀직사사(直宿判密直司事) 최덕림(崔德林)·상호군(上護軍) 정환(鄭桓)·호군(護軍) 정을상(鄭乙祥)이 밖으로 뛰어 나가 이들을 막으려 했다.
  조일신은 막아선 숙직요원들을 보고, 호위하는 군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겁내지 말라! 단지 악당들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그 순간 조일신 일당은 최덕림등 숙직요원을 칼로 찔러 죽였다.
  밀어닥친 조일신의 무리는 삽시간에 이궁을 점거하여 곤히 잠든 임금의 침전 앞에 다가 가서 임금을 불렀다.
 
<상감마마! 어보(御寶)를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리궁이 적당들에게 포위되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신에게 이들을 막도록 명하여 주옵소서!>

 

  조일신은 급히 임금 잎에 꿇어 엎드려 또 다시 아뢰었다.
 
<상감마마! 사태가 매우 급박하게 되었습니다. 신에게 우정승(右政丞)에 제수하시어 난을 평정하게 하여주소서!   신이 기필코 상감마마의 안위를 도모하겠습니다.>

 

  조일신의 이 말은 매우 강압적이며, 실제로 공민왕에게 옥새를 찍어라고 협박하였다. 이런 말은 조일신 자신이 판단할 때에 상황이 너무도 다급했기 때문이며, 이것이 오히려 기철 일당을 없애는 지름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공민왕은 현 사태로는 어찌할 다른 방도가 없었다. 공민왕은 부득이 조일신에게 우정승을 내리고, 정천기를 좌정승으로, 리권(李權)을 판삼사사로, 라영걸(羅英傑)을 판밀직으로, 장승량을 응양군 상호군으로 각각 임명하고, 다른 몇몇에게도 벼슬을 내였다.
  조일신은 자신이 저지른 죄가 탄로가 날까봐 그 도당에게 전가하고, 자기는 죄를 면하려고, 10월 1일(신축) 밤에는 최화상과 리궁에 입직하다가, 새벽녘에 최화상을 보고 조용히 말하기를,
 
<당신이 차고 있는 참 좋은 것 같소이다. 한번 보여줄 수 있겠오?>

 

라고 하니, 최화상은 말하기로,
 
<이 칼로 사람 깨나 죽였습니다.>

 

고 하면서 최화상은 차고 있던 칼을 보여 주었다.
  조일신은 그 때 잽싸게 최화상의 칼을 받아 쥐고 그를 죽이고 나서, 드디어 공민왕에게 가서 역적을 토벌하자고 권하였다.
  그러나, 공민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이것이 누구의 짓이 냐고 다시 물었다.

 

<상감마마. 오늘의 난은 최화상 무리의 소행이오니, 이미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장승량도 같은 일당이오니, 처벌하옵소서.>

 

  10월 4일(辛丑)이 되었다. 조일신으로서는 지난날 실패한 일이 있었고, 이제 와서 보니, 막강한 기철의 무리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기철의 무리와 자칫 잘못 대항하였다가는 생명이 위험할 뿐이었다.
  그래서 우선 자신의 무리 가운데 일부를 떼어 죄를 주고 목을 베었다.
  장승량과 최화상 등 아홉 명의 목은 개경 남문에 효수되었고, 정천기를 옥에 가두고, 그 아들 전 총랑 명도(明道)를 목베었다.
  그리고나서 홀치(忽赤; Khorchi: 활을 메고 궁전을 지키던 숙위병) 순군에게 명령하여 기철 등을 잡아오게 하여 옥에 가두었다.
  이렇게 하여 조일신은 스스로 찬화안화공신(贊化安社功臣)의 호를 더하고, 을보를 찬성사에, 고충절에게는 동지밀직에, 홍개도(洪開道)에게는 밀직부사를 임명하였다. 이들이 임금의 좌우에 있으면서 칼을 빼어두고 기세를 부리니, 사람마다 위태롭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니 이 소식이 최영 장군에게 전해졌으며, 최영은 최원에게도 연락을 하여 사태수습에 나서게 되었다.
  근위부대인 최영 장군은 군사를 모아 진군하였다.

 

<상감께서 아직 천동이궁(泉洞離宮)에 계시니까, 동정을 보아서 입궐을 합시다. 최원장군은 조일신의 동정을 살피시오. 나도 극력 염탐하여 보겠습니다.>

 

  이리하여 최영과 최원은 이 길로 헤어져서 조일신이 어떤 짓거리를 하는가 동정을 염탐하고 있었다.
  최영은 군사들을 이끌고 가는 길에 한 젊은 무관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그는 최영 장군에게 깎듯이 인사부터 했다.
 
<장군님! 이렇게 늦게 뵈어 송구스럽습니다.>
<누구신지요?>
<지난날 평주에 오셨을 때 뵈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데요?>
<최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 주신 돈으로 낚싯대를 사서 잘 썼습니다.>
<낚싯대, 낚싯대....>
<그렇습니다. 그것도 벌써 20년이 지난 일이지요. 장군께서 소년시절에 평주에 오셨을 대 낚시질하던 소년의 낚싯대를 친구분이 꺾은 일이 있습지요.  그리고 장군께서는 제게 낚싯대를 사라고 돈을 주시고.... 너무 오래되어 생각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 일을 잊지 못할 은혜로 생각하며 살아 왔습니다.>
<녜. 그러세요. 알만합니다. 그 때 장승량인가, 그 놈이 심술궂게 꺾었지요.  그렇다면 그대가 그 소년...?>
<녜. 제가 그 낚시질하던 소년이 지금 삼사좌사 이인복(李仁復)입니다.>
<녜. 그런데 무슨 일이지요.  어느 군 소속입니까?  오늘은 바쁜 일이 있는 데요.>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죄송스럽지만, 자리를 물려 주셨으면 합니다.>
<괜찮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들어서 안될 얘기라면 나도 듣지 않겠습니다.>
<하오나...>
<쓸데없는 고집부리지 말고 어디 얘기나 해보시오.>
<정 그러시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때 홀로 한 분 계시던 모친께서도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니, 저는 이리저리 떠돌며 사냥이나 하고 지내다가 눈에 들어 군졸이 되었습니다.>
<보시오. 바쁘다는데 사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요?>
<아닙니다. 마저 들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힘깨나 쓴다고 승진을 거듭하여 지금은 개경에 들어와서 하급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누구 아래에 ...?>
<조일신의 막하입니다. 전라도 해안에 왜구토벌대에 참가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오나 어제 저녁에 부대를 떠났습니다.>
<왜 진작 내게 연락을 주시 않았소?>
<댁을 몰랐습니다.  밤이라서 물을 사람도 없고...>
<그렇겠지.  이야기나 계속하시오?>

 

  최영은 조일신 일당의 짓이라는 예감을 하긴 했으나, 지금 듣는 말이 연루되어 있다고 판단되니, 입궐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계속 물었다.
 
<어제 밤의 반란은 모두 조일신의 짓입니다. 제가 그래도 조일신의 신임을 얻어 그의 직속부대에 있었으니,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멋도 모르고 조일신·정천기·최화상·장승량 등의 모의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지난 밤에는 기철 도당을 죽인다고 임금이 계신 이궁까지 습격한 악당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밤으로 도망을 쳐서 산속에 숨었다가 아침에 내려 왔습니다.>
<그럼 애초 목표는 기철?...>
<그렇습니다. 애초의 목표는 기철 일당이었는데, 중간에 일을 그르쳤던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기철 등을 적으로 삼을 수 없으니, 고육책(苦肉策)으로 자기의 일파인 최화상과 장승량에게 죄를 씌웠던 것입니다.
제가 최 장군님을 찾아 온 것은 역적 조일신 무리를 처단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굶어 죽어도 그런 악당들의 일에는 협력하지 않겠지만, 그대로 두고 볼 수도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소. 자! 그러면 나와 함께 대궐로 들어갑시다!>

 

  최원은 조일신의 행동을 염탐하고 오니, 최영과 리인복이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으며, 막 집을 나서려고 했다.
 
<어찌할려고 이러오?>
  최원은 최영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임금을 배알(拜謁)하려 합니다.>
<임금을?  하지만, 임금의 앞에는 조일신이 늘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조일신이 지금에 와서 우리를 어찌 하지는 못할 것이요. 지금의 그로서는 우선 살아남기에 급급할 뿐이며, 임금의 근위부대원에게 손을 대지는 못할 것이요.>
<그럴까요?>
<여부가 있습니까?>

 

  이리하여 최영은 최원·안우 등과 함께 공민왕이 연금상태에 있는 리궁으로 향하였다.
  그 때 전령으로 보냈던 군졸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줄만한 정보를 입수하여 들어왔다. 최영은 최원 등과 무사들을 대동하고 어전으로 갔다.
  어전에는 조일신과 정천기 등 몇몇 무리가 부복하여 있었다.  아마 사건의 전말을 그들이 꾸민 대로 거짓 아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때 최영은 임금 앞으로 다가가 읍했다.

 

<상감마마! 역적 조일신을 베게 해주십시요! 전일에 있었던 모든 일은 모두 저놈의 소행입니다.>

 

하고 최영 장군이 굵고 높은 억양으로 말하니, 대전(大殿)이 쩌렁쩌렁 울렸다.
  옆에 부복하여 있던 조일신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최영을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뭐! 뭐! 여 역적? 최 장군!  너가 나를 누구로 알고 그런 말을 해! 내가 우정승이다.  이 고연 놈!>

 


하고 조일신은 큰 소리치며 자못 노기를 띄었다.

 

<너가 감히 내가 누구라고, 우정승을 우롱하려 드느냐?>
<무슨 우롱같은 말을 하시오? 모든 일을 소상히 알고 있으니, 그대야 말로 임금을 우롱하지 마시오!>

 

  분위기가 매우 격앙된 이궁에서 최영 장군이 서슬이 퍼른 조일신에게 목부터 베겠다고 했으니, 그가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그러나, 최영 장군도 이에 맞서서 그가 대동하고 온 부대원도 이미 어전 주위에서 최영 장군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최영 장군은 소리를 높여 사건의 전모를 임금에게 아뢰었다.

 

<조일신! 그대는 친원분자(親元分子)를 소탕한다는 명분을 세워 기철 일당을 습격했다가 실패하게 되자, 무엄하게도 성상의 어소(御所)인 리궁(離宮)을 포위하여 적을 진압한다는 구실로 상감을 협박하여 스스로 우정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세가 이롭지 못하게 됨을 알고, 그 죄를 최화상·장승량 등에게 덮어 씌워, 너는 쏙 빠지고, 그들만 목베었다.
그들이 죄가 있어 죽음은 마땅하지만, 그 일의 주모자인 그대가 빠진 까닭은 무엇인가? 감히 그대가 무엄하게도 리궁을 범하고 궁궐을 수비하던 직숙판밀직사사 최덕림을 살해하고, 수비병들을 죽였으니, 그대의 죄는 마땅히 역적의 죄요 반란의 죄에 해당된다. 어찌 발뺌을 하려 하는가?>

 

  조일신은 사색이 되었고 구차한 항변을 하였다.

 

<그대는 무엇을 증거로 그 따위 허무맹랑한 말을 지껄이느냐? 감히 죽고 싶어서 그러느냐?>
<그래도 자백을 하지 않고 공연한 입만 놀리고 있구나! 자! 보아라! 저 사람이 산 증인이다. 저 청년 무사를 모른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최영 장군은 그가 대동하여 온 그 무사를 가리켰다.
 
<모 모른다. 난 모르는 놈이야! 그 놈이 누구냐?>
<조일신 이 놈! 너는 나와 함께 모의하고서도 모른다고 하느냐? 어제 저녁 너와 같이 동행한 나를 모른다고 말을 해?>

 

  옆에 서 있던 삼사좌사 이인복(李仁復)이 나서며 거들었다.
 
<상감마마! 조일신은 역적이며, 그 일당을 마땅히 목베어야 합니다.>

 

하고 또 말하니, 공민왕도 사태의 전말을 충분히 파악하고, 삼사좌사 이인복의 증언으로 내용을 충분히 알게 되었다.
 
<여봐라!  조일신을 즉시 포박하여라! 과인이 직접 국문하겠노라! 아니다. 당장 그 일당을 목베어라!>

 

  임금의 명령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최영 장군, 최원 장군, 안우 장군 등이 거느린 군사는 조일신의 군사를 쳐부수고, 조일신·정천기 등 일당을 모조리 목베었다.
  이 때 도성 일대에 계엄을 펴고, 달아난 자들을 수색했다.  기유걸과 기완저부카·노제(盧濟)·권화상도 끝내 체포되어 참수되었다.
  이로써 기철·권겸·노척의 세 가문은 멸족이 되고, 모든 재산은 몰수되었으며, 역모에 가담했던 일당도 남김없이 색출되어 처벌을 받았다.
  금녕군 김보(金寧君金甫), 동첨 홍익(同僉洪翊), 찬성 황하연(贊成黃河衍), 평리 리수산(評理李壽山), 밀직 왕중귀(密直王重貴), 대언 황하안(代言黃河晏), 호군 황하식(護軍黃河湜), 전대언 홍개도(前代言洪開道), 전우윤 전림(前右尹田霖) 선공령 김의렬(繕工令金義烈), 환자대호군 정용장(宦者大護軍鄭龍莊)등 13 명이 유배되었고, 이 가운데 홍익·황하연·정룡장은 여죄가 드러나 죽음을 당하고 가산도 몰수되었다.
  군사를 대치한 상황에서 실로 용맹스럽고 충성스러우며 주도면밀한 작전을 짜내어, 조일신 일당의 난을 최영 장군의 지혜와 용기로 평정하였다.
  공민왕은 최영의 공로를 기리어 호군(護軍 : 正四品 將軍)에 임명했다.
  이 때는 공민왕이 즉위한 원년(1351년)이며, 최영의 나이는 37살로서 이때부터 출세의 길이 트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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