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봉 고경명은 한반도에서 의병을 일으켰나? |

작성자최두환|작성시간15.12.22|조회수108 목록 댓글 0

 

"임진왜란"이 "만력의 란"가운데 왜적들이 일으킨 반란이라고 말하니 다들 시큰둥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임진왜란은 지역이 한반도이고, 만력의 란이란 중국대륙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 성격이 매우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나는 아시아=조선이라는 패러다임에서 충무공 리순신이 담당했던 방어지역이 황하와 장강 사이의 지역이라고 말한 바 있으니 새삼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 상세한 내용은《충무공 리순신, 대한민국에 告함: 미래지도자를 위한 李舜臣의 전략》(푸른솔, 2008)에 매우 상세하게 실려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전투지역은 어떻게 될까?
다른 장수니, 군사들은 한반도일까?
천만에요, 만만의 콩떡.
한 가지의 사례를 들기로 하자. 우리들이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을 가지고 사실을 확인해보면 더욱 선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의병장 제봉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이면 충분할 것이다.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이라면 당연히《국립 진주 박물관》이다. 거기에서 발행한 논문 특집이《임진왜란사 학술총서 고경명의 의병운동》(2008)이 있다. 그 논문 가운데 김정진 교수가 쓴「고경명 일가의 의병운동과 민족 주체 의식」(pp.111-139)에 다음과 같은 글이 소개되어 있다. 마상격서(馬上檄書)라는 것이다.

 

 

 

(1) 저 왜적에게 나라와 민족(군친君親)을 내맡기는 것이 인간으로 차마 할 짓이겠느냐? … 이로 인하여 장강(長江)은 천참(天塹)을 상실하고, 적군은 이미 성내에 육박하였다. … 그러나 공락(鞏洛)의 자욱한 먼지에 옥(屋) 안은 깊은 근심에 잠겨있고, 민아(岷峨)의 험난한 길에 취화(翠華)는 먼길을 뛰어야 했다.[위의 책, p.125]

 

 

 

이 글을 얼른 알아먹기에 쉽지 않다.
왜적과 조선군과의 전투에서 뭔가의 상황설명을 한 것 같은데, 용어들이 한반도로서는 참으로 생소하다.
장강(長江)/천참(天塹)/공락(鞏洛)/민아(岷峨)/취화(翠華)가 그렇다. 그래서 원문이 실려 있으니 만큼 한번 그 원문을 확인해보자.

 

 

 

(2) 以賊虜君親 是可忍也 … 長江 遞失其天塹 虜騎已薄於神京 … 鞏洛驚塵 玉色屢形於 軫 峨岷危機翠華 遠欲涉於修程.

 

 

 

여기서 원문을 보니 번역문의 "성내"가 "神京"(신경)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두 말할 것 없이 "천자/황제"가 계시는 곳이다. 대개 "長安"이라는 곳이다.
분명히 이 문장들은 조선에 있어서 왜란 지역인데, 그 지명들이 장안(長安) 신경(神京)을 포함하여 장강(長江)·공락(鞏洛)·민아(岷峨)가 있는데, 그 저자처럼 "공락"을 "낙읍을 칭함이요"라는 그런 해석으로 볼 수 없다.
"장강"이야 중국대륙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흐르는 최대의 강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공락(鞏洛)"은 "공현(鞏縣)"과 "락양(洛陽)"이며, 이곳은 하남성에 서로 가까이 있다. 물론 락양(洛陽)을 옛날엔 "락읍(洛邑)"이라고 하였다.
"민아(岷峨)"는 사천성 북쪽의 "민산(岷山)"과 사천성 중심부에 있는 "아미산(峨眉山)"이다.
이 정도면 왜란의 터가 어디임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더 확인 해보지 않은 것은 (1)의 번역문엔 "옥(屋)"인데, (2)의 원문에는 "玉"이다. 문장의 흐름을 보면 (2)의 글이 옳은 것 같다.
 제봉 고경명이 충의에 어린 "마상격서"에 한반도에 없는 지명을 이렇게도 많이 들먹이며 의병들을 독려했다. 그의 큰아들도 작은아들도 함께 전장에 나서서 6000명 남짓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했다. 참으로 장하다.
한반도의 왜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중국대륙의 동부지역에 격문을 보냈단 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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