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거울이고 존재의 가치이며, 명분이다. 그래서 이름은 분명하여야 한다.
우리는 '조선'은 고대의 조선, 즉 '조선'이 있고, 근세의 '조선'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 구분을 위하여 '고조선' 근세조선'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조선'이 어떻게 '고려'가 어떻고 하면서 한 문장에 두 낱말이 나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1) ... 그 글은 곧 청황(淸皇)이 각신(閣臣) 장옥서(張玉瑞)에게 유시(諭示)한 것이었는데, 다만 그 조목만 쓰여 있었고, 그 8단(段)에 이르기를, ‘조선(朝鮮)이 비록 이심(異心)이 없다 하나, 봉황성(鳳凰城) 등지에 중병(重兵)을 베풀어 공로(貢路)를 고칠 것을 요구하고, 현능(賢能)한 관리를 가려서 고려(高麗)에 보내어 민풍(民風)·토속(土俗)을 채탐(採探)하여 그 얕고 깊은 사의(事宜)를 알아야 한다.’ 하였다.
[其書, 卽淸皇諭閣臣張玉瑞者, 而只書其條目, 其第八段言: "朝鮮雖無異心, 要鳳凰城等處, 設重兵改貢路, 擇賢能官, 到高麗採探民風、士俗, 識其淺深事宜, 又頻加試放云云。" ][숙종실록 숙종 36년 (경인, 1710, 강희 49) 4월 20일(을묘)]
이것은 호조 판서(戶曹判書) 리인엽(李寅燁)이 청조에 갔다가 돌아온 사신이 얻은 등지(謄紙)를 소매에서 꺼내어 바치고 임금 숙종에게 말한 것이다.
1710년 4월 20일의 기록이다.
청조에서 이심하지 않는 것은 '조선'이다.
그래도 미심쩍은 바가 있다며 '고려'를 들먹였다. 그들의 민심을 파악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는 1392년에 끝난 왕조이다. 3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조선에 대해서는 믿을만한데, 고려는 믿지 못하겠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조선은 무엇이며, 고려는 무엇인가?
고려는 조선의 중앙정부여야 이 문장이 통할 것 같다.
그렇다면 '청황(淸皇)'은 청조(淸朝)의 황제'이며, 조선의 중앙정부 명칭일진대, 고려 또한 조선의 중앙정부 명칭이라면 모순이 아닌가?
청조는 현재의 집행부이며, 고려는 고려 때의 중앙정부였으며, 조선 때에 현실 정치에 나서지 않은 명칭뿐인 제2의 중앙정부격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이 청조의 집권세력은 서북면, 즉 평안도 지역 출신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고려는 황해도 송악(松嶽), 즉 서아시아에서 장악하여 집권한 세력을 떨친 사람들로 이루어졌다고 하면 어떨까. 평안도는 유럽 지역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평안도 집권세력과 황해도 집권세력의 갈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