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인용 문헌은 한국고전번역원의 글을 참조,인용하였습니다.)
동문선 제23권 교서(敎書) 사신을 보내어 김부식에게 집을 주는 교서[降使金富軾賜第敎書] 최유청(崔惟淸)
모(某)에게 교하노라. 하늘을 감동시키니 이것을 일덕(一德)의 보필이라 이르는 것이요, 그대의 큰 공적이 가상하니 실로 만세의 아름다움이다. 신임하는 것이 더욱 깊으니 은전이 의당 달라야 할 것이다.
경은 크고 넓은 도량으로 경륜의 재주를 품었다. 선조(先朝) 때부터 경연(經筵)의 신하로 있었고 과인의 시종(侍從) 중에 으뜸이 되었다. 험한 것을 겪어도 그 지조를 바꾸지 않았고, 몸을 바쳐서 더욱 아름다운 계책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추밀원으로부터 승진하여 정승의 자리에 올랐다. 서토(西土)에서 난이 일어남에 미쳐 원수(元帥)로서 출정하였다. 역적들의 소굴을 뒤엎어서 종자를 퍼뜨릴 곳이 없게 하였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은 건져서 안도하여 옮기지 않게 하였다. 이에 이적(夷狄)과 화하(華夏)가 장성(長城)같이 바라보고, 조정을 구정(九鼎)보다 더 중하게 하였다. 나가면 장수요 들어오면 정승으로서 이미 공을 이루었고,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여 짐과 함께 덕을 닦았다.
큰 일이 성취되었으니 크게 상주는 것을 어찌 늦추리오. 이에 집을 주는 은혜를 베풀면서, 특별히 사신을 달려 보내는 은총을 보인다. 동궁(彤弓)주는 것을 궐한다고 하더라도 공(功)이 일컬어지지 못하는 것인 바, 명복(命服 높은 벼슬의 관복)의 아름다움으로 더해 주는 것은 대개 그 덕을 표창하는 것이다. 마땅히 극진한 나의 뜻을 잘 알아 더욱 네 마음을 힘쓸지어다.
위의 기록을 상세히 살펴보면 참으로 놀라운 기록 입니다. 위의 기록은 고려의 임금이 고려의 역사에서 말하는 "묘청의 난"을 김부식이 평정한 것에 대해 감사의 의미로 집을 준다는 기록 입니다.
위의 기록은 형식상 제후를 의미하는 교서(敎書)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본문에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교서(敎書)가 아닌 조서(詔書)입니다. 즉 황제 천자(天子)가 말하는 기록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의 기록에서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여 짐과 함께 덕을 닦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제후라면 자기 자신을 짐(朕)이라 해서는 않됩니다. 위의 기록의 원문을 보아도 짐(朕)이라 되어 있습니다.
또 위의 기록에서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진압한 결과 "역적들의 소굴을 뒤엎어서 종자를 퍼뜨릴 곳이 없게 하였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은 건져서 안도하여 옮기지 않게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또다른 결과는 "이적(夷狄)과 화하(華夏)가 장성(長城)같이 바라보고, 조정을 구정(九鼎)보다 더 중하게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은 참으로 놀라운 기록 입니다.
도대체 고려의 "묘청의 난"과 이적(夷狄)과 화하(華夏)가 무슨 관련이 있길래 "묘청의 난" 진압 결과로 이적(夷狄)과 화하(華夏)가 고려의 조정을 "하우(夏禹)가 구정을 만들어서 나라를 전하는 중기(重器)인 구정"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겼을까요?
이 기록으로 알수 있는 사실은 고려가 이 당대의 천자국(天子國)이었으며 이 당대의 이적(夷狄)은 거란,여진등이며 화하(華夏)는 고려의 중국 즉 수도였던 것이며 즉 천하가 "묘청의 난" 진압 결과 고려를 두려워 하며 복종했다는 기록인 것입니다.
또 위의 기록을 보면 고려의 임금이 천자이므로 천자가 사신을 김부식에게 보내면서 "동궁(彤弓)을 준다고 해도 공(功)이 일컬어지지 못하는 것인 바"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동궁은 "붉은 활인데, 공이 있는 제후"에게 주는 활 입니다.
즉 김부식의 신분이 고려의 신하이면서 고려의 제후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위의 기록은 고려가 대륙의 진정한 천자국임을 알수 있는 기록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사관에서 사대주의자로 악명이 높은 김부식은 참으로 억울한 사람 입니다.
위의 기록과 더불어 동문선의 또 다른 김부식 관련글을 세심히 살펴보면 김부식이 진정으로 사대를 한곳은 고려임을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