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백과: ≪시경(詩經)≫ 소아(小雅) 동궁편(彤弓篇)의 주석(註釋)에 따르면, 적궁(赤弓)•주궁(朱弓)이라 하였는데, 색깔을 붉게 칠하여 장식한 활임. 소(疏)에 따르면, 옛날 중국에서는 천자(天子)가 정벌(征伐)의 공(功)이 있거나, 여타의 유공(有功)이 있는 제후(諸侯)에게 하사하였으며[天子賜有功諸侯 諸侯有征伐之功 王以弓矢賜之也], 천자나 제후만이 사용한 활이었다고 하는데, 전쟁에 나갈 때에만 지니고 나갔다고 함.
홍재전서 제85권 경사강의(經史講義) 22 ○ 시(詩) 2 [동궁지십(彤弓之什)]
이 장에 대해 대지(大旨)에서는 “천자가 공이 있는 제후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고 활과 화살을 하사한 것이다.” 하였는데, 장(章) 안에서는 활만 말하고 화살을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집전》에 이르기를, “초(弨)라는 것은 풀어져 있는 모양이다.”고 했는데, 풀어진 것만 말하고 팽팽하게 맨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또한 어째서인가? 가빈(嘉賓)은 누구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고, ‘하루아침에 연향을 베푼다[一朝饗之]’는 것은 또한 무슨 뜻인가?
[이익운이 대답하였다.]
활을 말하고 화살을 말하지 않은 것은 바로 큰 것을 들어 작은 것까지 포괄한다는 뜻입니다. ‘초혜(弨兮)’의 초(弨) 자에 대해서는 선유(先儒)가, 활을 하사할 때에는 팽팽하게 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가빈(嘉賓)은 필시 공이 있는 제후일 것이며, ‘하루아침에 연향을 베푼다’는 것은 머뭇거리거나 애석하게 여기는 뜻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위의 네이버 배과를 보면 시경의 글을 인용 설명하고 있는데 천자(天子)가 정벌의 공 또는 여타의 공이 있는 제후에게 하사하는 활을 일컬어 "동궁(彤弓)"이라 한다고 합니다. 또 정조임금의 저작인 홍재전서의 기록 동궁지십편에서
(동궁의 의미가) “천자가 공이 있는 제후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고 활과 화살을 하사한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다음의 기록을 보면,
세조 4년 무인(1458,천순 2) 2월12일 (신축) 사정전에서 공신에게 중삭연(仲朔宴)을 베풀다. 어서와 이에 화답한 신하들의 시
윤자운(尹子雲)의 시에는,
“천과(天戈)는 당일에 요분(妖氛)을 물리치시니
반부(攀附)한 뭇 영웅들은 일찍이 책훈되었습니다.
작은 공을 돌보아 주며 대려(帶礪)에 참여하게 하시니
오직 대덕(大德)을 알아 해와 달과 같이 우러러봅니다.
일제히 만세 부르며 이미 배사하니 동궁(彤弓)을 주었고
이미 취하고 다시 노래하니 잠로(湛露)의 은혜입니다.
하물며 다시 정녕하게 성훈이 간절하시니
운잉(雲仍)은 영세토록 충근(忠勤)으로 복무하리이다.”
세조 6년 경진(1460,천순 4) 11월11일 (계미) 백관이 성절과 중궁의 탄일의 하례를 행하다
신숙주(申叔舟)에게 안구마(鞍具馬) 1필, 동궁(彤弓) 하나를 내려 주고, 홍윤성·곽연성(郭連城)·이극배(李克培)·김사우(金師禹)·허형손(許亨孫)·강효문(康孝文)·박대생(朴大生)에게는 각각 내구마(內廐馬) 1필, 활 하나를 내려 주었다.
성종 8년 정유(1477,성화 13) 11월2일 (을축) 평안도 순찰사 허종이 하직하니 인견하고 술을 내려 주다
허종에게 명하여 술잔[爵]을 올리게 하고, 도승지(都承旨) 김작(金碏)으로 하여금 종사관(從事官)과 군관(軍官)들에게 두루 술을 내려 주게 하고, 허종에게 동궁시(彤弓矢)와 초구(貂裘) 1령(領)을 내려 주게 하였다.
태종 5년 을유(1405,영락 3) 6월27일 (신묘) 영의정부사 평양 부원군 조준의 졸기
임신년 3월에 정몽주가, 태상왕이 말에서 떨어져 병이 위독할 때를 타서 대간(臺諫)을 시켜 준(浚)과 남은(南誾)·정도전(鄭道傳)·윤소종(尹紹宗)·남재(南在)·오사충(吳思忠)·조박(趙璞) 등을 탄핵하여, 붕당(朋黨)을 만들어서 정치를 어지럽게 한다고 지적하여 모두 외방으로 귀양보냈다가, 이내 수원부(水原府)로 잡아 올려 극형에 처하려고 하였다. 4월에 우리 주상(主上)께서 조영규(趙英珪)로 하여금 정몽주를 쳐 죽이게 하여, 준(浚)이 죽음을 면하고 찬성사(贊成事)에 복직되었다. 7월 신묘에 준(浚)이 여러 장상(將相)들을 거느리고 태상왕을 추대하였다. 태상왕이 즉위(卽位)하던 날 저녁에 준(浚)을 와내(臥內)로 불러들여 말하기를,
“한문제(漢文帝)가 대저(代邸)에서 들어와서 밤에 송창(宋昌)으로 위장군(衛將軍)을 삼아 남북군(南北軍)을 진무(鎭撫)하게 한 뜻을 경이 아는가?”
하고, 인하여 도통사(都統使) 은인(銀印)과 화각(畫角)·동궁(彤弓)을 하사하면서 이르기를,
“5도 병마(五道兵馬)를 모두 경에게 위임하여 통솔하게 한다.”
하고, 드디어 문하 우시중 평양백(門下右侍中平壤伯)을 제수하고, 1등(一等)의 훈작(勳爵)을 봉(封)하여 ‘동덕 분의 좌명 개국 공신(同德奮義佐命開國功臣)’의 호(號)를 주고, 식읍(食邑) 1천 호(戶), 식실봉(食實封) 3백 호(戶)와 전지(田地)·노비(奴婢) 등을 하사하였다.
위의 세조실록 4년의 기록에서 윤자운(尹子雲)의 시에서 (자신이) "동궁(彤弓)"을 하사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 세조실록 6년의 기록에서 신숙주가 "동궁(彤弓)"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성종실록의 기록에서 허종이 "동궁(彤弓)"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태종실록에서는 조준이 조선 태조에게 "동궁(彤弓)"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이 "동궁(彤弓)"의 의미를 모르는 나라가 아닙니다. "동궁(彤弓)"은 천자와 제후의 전유물이었으며 제후에게 있어 "동궁(彤弓)"은 천자에게 받은 공훈에 따른 포상인 것입니다.
임금의 저작인 홍재전서에서도 "동궁(彤弓)"의 의미는 천자가 공있는 제후에게 주는 것이다.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 조선의 임금들은 신하에게 "동궁(彤弓)"을 하사했습니다. 일개의 제후가 천자를 흉내내어 천자의 행위를 한다는 것은 소중화가 아닌 유교적인 질서를 문란케한 반역 행위 입니다. "동궁(彤弓)"의 의미로 알수 있는 사실은 조선의 임금들은 천자(天子)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