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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요(西遼)는 어디에 있었나?

작성자천상희|작성시간14.08.19|조회수554 목록 댓글 1

 

아시아의 역사에서 말하는 철문관(鐵門關)이 있었던 지역을 역사에서 살마아한(撒馬兒罕)으로 표기되며 현재의 역사에서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Samarkand)를 말하는 것이며 우즈베키스탄의 수도로,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리아강 유역에 있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본인이 살펴본바 현재의 역사해설은 완전한 역사왜곡 입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서유록주(西遊錄註)

 

《明世法錄》曰:「撒馬兒幹,古撏賓國,在懸度山西。唐以其地為修鮮都督府,拜其五都督。元駙馬帖木兒主其國。

 

명세법록에서 말하길 살마아한은 옛날의 잠빈국이며 현도산의 서쪽에 있으며 당조때 그 지역을 수선도호부가 되었으며 그 오도독에게 벼슬을 내렸다. 원조때 원조 부마 첩목아가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

 

위의 서유록의 기록에 의하면 살마아한은 옛날의 잠빈국이라고 하는데 이 잠빈국은 역사에서 북인도 계빈국(罽賓國)을 말하는 것이며, 이 나라 살마아한(撒馬兒罕)이 현도산의 서쪽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살마아한(撒馬兒罕)을 찾기위한 중요한 단서이자 실마리는 현도산(懸度山) 입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태평어람(太平御覽)  卷七百九十三.四夷部十四

 

《通典》曰:渴槃陀,後魏時通焉。亦名漢陀國,亦名渴槃羅陀國。理蔥嶺中,在朱俱波國西,西至護密國,北至疏勒國。其王本疏勒人,累代相承居此。國有戶二千余。有懸度山,在國南四百里。懸度者,名山也,溪谷不通,以繩索相引而度,其間四百里,中往往有棧道,因以為名。今按,懸度、蔥嶺,邐迆相屬,郵置所絕,道阻且長,故行人由之,莫能分別。然法明、宋云所經,即懸度山也。又有頭痛山,在國西南,向賓,曆大頭痛、小頭痛之山,赤土身熱之阪。

朱膺《異物志》曰:大頭痛、小頭痛山,皆渠搜之東,疏勒之西。經之者,身熱頭痛。夏不可行,行則至死。唯冬可行,尚嘔吐

 

통전에서 말하길 갈반타는 후위때 소통 되었다. 또한 한타국,갈반라타국이라 하며, (이 나라는)총령의 중앙에서 통치했으며, 주구파국의 서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호밀국에 이르며,북쪽으로 소륵국에 이른다.

그 왕은 본래 소륵인이며 누대에 걸쳐 이 지역에 살아왔다. 그 나라에는 2000여의 가구가 있으며,그 나라의 남쪽 400여리의 거리에 현도산이 있다. 현도라는 것은 산의 이름이다. (그 산의) 계곡은 길이 없어,

밧줄을 이용해 서로 끌어주어 건너 간다. 400여리 간격으로 가다보면 가는 중에 잔도가 있다. (현도산(懸度山)은) 이러한 연유로 해서 된 이름이다.

지금 살펴보건데 현도와 총령은 구불구불 서로 이어져 있고, 길이 멀고 험해 역참을 두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이 길을 가는) 행인이 (이 길을)능히 분별해 갈수가 없었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송조때의 불경에서 법명은 (이 산을) 즉 현도산이라 했다. 또 두통산이 있는데 (그 두통산은) 그 나라의 서남쪽에 있으며, 계빈을 향해 가면,대두통산,소두통산이 있으며,(그 산은) 붉은 흙으로 된 지역으로 몸에 열이나게 하는 큰 언덕이다.

주응의 이물지에서 말하길, 대두통,소두통산은 다 거수의 동쪽,소륵의 서쪽에 있다. (이 대통산,소두통산)을 지나는 행인은 (이 대통산,소두통산 지역에서) 몸에 열이나며,두통이 일어난다.

여름에 이 길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가게되면 죽게 된다. 오직 겨울에만 갈수 있는데 (겨울에 가더라도) 구토를 하게 된다.

 

신당서(新唐書)  /卷221上

 

喝盤陀,或曰漢陀,曰渴館檀,亦謂渴羅陀,由疏勒西南入劍末谷、不忍領六百裏,其國也。距瓜州四千五百裏,直朱俱波西,南距懸度山,北抵疏勒,西護密,西北判汗國也。

治蔥嶺中,都城負徙多河。勝兵千人。其王本疏勒人,世相承為之。西南即頭痛山也。蔥嶺俗號極嶷山,環其國。人勁悍,貌、言如於闐。其法,殺人剽劫者死,餘得贖。賦必輸服飾,王坐人床。後魏太延中,始通中國。貞觀九年,遣使者來朝。開元中破平其國,置蔥嶺守捉,安西極邊戍也。

 

갈반타는 혹 한타,갈관단 이라하며 또 이르기를 갈라타라 한다. 소륵에서 서남쪽으로 검말곡에 들어가면 불인령 600리가 그 나라 이다. ( 이 나라는) 과주에서 4500리의 거리에 있으며 주구파국의 정서(正西)에 있으며 남쪽으로 현도산과 떨어져 있으며,

북쪽으로 소륵,서쪽으로 호밀,서북쪽으로 판한국에 이른다. (이 나라는) 총령의 중앙에서 통치하며 도성은 사다하에 의지해 있다. 병력은 1000명이며 그 왕은 본래 소륵인이며,세세토록 이땅을 이어왔다.

(이 나라의) 남쪽은 곧 두통산이다. 총령지역에서는 극의산 이라 부르며,(이 산은) 그 나라를 둘러 싸고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용모는 우전국에서 말하는 것처럼 강하고 날세다. 그나라의 법에 살인과 강도를 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며,

(그 밖의 다른 죄는) 죄를 씻기 위하여 재물을 바치고 죄를 면제 받는다.  그 나라에서 공물은 필히 의복을 바치게 하여 왕이 있는곳을 치장한다. 이 나라는 후위 태정 중에 처음으로 중국과 통교를 했으며 당조 정관 9년에 사신으로 조회를 했으며,

개원 중에 그 나라를 평정하여 총령수를 두어 안서 극변의 국경을 지켰다.

 

해국도지(海國圖志)/卷074

 

今歐羅巴、利未亞之山,皆發脈蔥嶺,邐迤而盡於西海。

 

(지금의 유럽,아프리카의 산은 다 총령에서 발원하며 (그 산 줄기가) 구불구불 이어져 서해에서 끝난다.)

 

해국도지의 기록에 의하면 총령(蔥嶺)이 유럽,아프리카의 산의 근간이 되는 산 이므로 역사에서 말하는 총령(蔥嶺)은 오늘날 코카사스 산맥 일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관련하여 태평어람에서 인용한 통전의 기록에 의하면 총령(蔥嶺)과 현도산(懸度山)이 서로 이어져 있으므로 현도산(懸度山)의 그 위치는 오늘날 흑해와 카스피해 일대를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위의 태평어럼,신당서의 기록에 의하면, 현도산(懸度山)이 있는 갈반타국(喝盤陀國)의 서쪽에 호밀국(護密國)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조때 도선(道宣)의 석가방지(釋迦方誌)의 기록에 의하면, 이 호밀국(護密國)이 覩貨羅之故地 (도화라의 옛땅)이라 했습니다. 이 도화라(覩貨羅)의 또 다른 표기가 토화라(吐火羅)이며 이 토화라가

명조때 조법아(祖法兒)로 지금의 아라비아 반도 오만 지역 입니다. 즉 아라비아 반도 그 주변 지역에 즉 중동 지역에 현도산(懸度山)이 있는 갈반타국(喝盤陀國)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갈반타국(喝盤陀國)에 있었던 현도산(懸度山)은 특이한 자연 현상이 일어나는 지역 입니다. 이 현도산은 길 자체가 없어 밧줄과 잔도를 통해서만 갈수 있는 지역이며, 현도산이 있는 이 나라의 대두통,소두통산에 오르면,

심한 두통과 발열,구토에 시달리며,심지어 여름에 이 산에 오르면 죽게되며 오직 겨울에만 오를수 있으나 겨울에 가도 구토를 하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심한 두통과 발열,구토를 일으키기에 그 산의 이름마저 대두통산,소두통산이 될까요?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 산이 높아 고산병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고산병은 계절에 구분없이 일어나는 것인데,즉 여름에 이 산에 오르면 죽게되며 오직 겨울에만 오를수 있는산으로

심한 두통과 발열,구토에 시달리는 산은 그 일대가 화산(火山)지역 이라는 것입니다. 세계테마기행을 보면, 화산지대에서 분출되는 엄청난 열기와 유황가스는 두통과 구토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며,

화산지대의 엄청난 열기로 인해 화산지대를 오르는 좋은 계절은 여름보다 겨울이라고 합니다. 이를 기점으로 해서 보면 총령(蔥嶺)이 유럽,아프리카의 산의 근간이 되는 산 이므로 또한 오늘날의 코카사스 산맥을 말하는 것이므로

심한 두통과 발열,구토를 유발하게 하는 화산(火山)지역이 있는 산은 오늘날 터키 에르지에스산 (Erciyas Mt., 3,916m)을 말하는 것입니다. 에르지에스산은 여전히 간헐적인 소규모 화산 분출을 일으키는 활화산 이라고 합니다.

이 에르지에스산이 있는 그 주변 지역이 역사에서 말하는 현도산(懸度山)이 있는 갈반타국(喝盤陀國)이 있었습니다. 이 갈반타국에 있었던 대두통산,소두통산이 곧 터키 에르지에스산 (Erciyas Mt., 3,916m)을 말하는 것이며

이 지역 현도산(懸度山)의 서쪽에 옛날의 계빈(罽賓)이자 살마아한(撒馬兒幹)이 있었습니다. 즉 오늘날의 터키지역에 옛날의 계빈(罽賓)이자 살마아한(撒馬兒幹)이며 사마르칸트(Samarkand)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또 다른 기록을 보면,

 

해국도지(海國圖志)  /卷076

 

蔥嶺以西之水,莫大於佛經之縳芻河,元史謂之阿母河,乃出龍池入裏海之正幹,即懷圖中之阿書河也。阿母、阿書皆縛芻之音轉 

 

(총령 이서의 물은 불경에서 말하는 박추하가 가장 크며 (이는) 원사에서 말하는 아모하를 말하는 것이며,곧 대룡지에서 나와 카스피해로 들어가는 것이 올바른 줄기이며 이는 즉 남회인의 도에서 아서하를 말하는 것이다.

아모,아서는 박추하의 전음이다.)

 

해국도지(海國圖志)  /卷029

 

鐵門在縳芻河北,納林河南,迫近賽馬爾罕,當在今敖罕南境。

 

(철문관은 박추하의 북쪽 납림하의 남쪽에 있으며 새마이한=살마아한과 아주 가까우며 지금의 오한 남쪽 경계에 있다. )

 

위의 기록을 살펴보면, 불경에서 말하는 박추하(縳芻河)가 원사(元史)에서의 아모하(阿母河)이며,남회인이 말한 아서하(阿書河) 입니다.

이 물줄기가 총령(蔥嶺)의 서쪽 물줄기로 이 강이 유입되는 곳은 리해(裏海) 즉 카스피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박추하(縳芻河)는 오늘날 카스피해의 서쪽에 있는 강 이라는 것입니다.

카스피해의 서쪽에서 유입되는 박추하(縳芻河)의 북쪽은 오늘날 그루지아,러시아,터키 일대를 말하는 것이며, 이 지역에 역사에서 말하는 철문관(鐵門關)이 있었습니다.

즉 오늘날 그루지아,러시아에 걸쳐 있었다는 알렉산더 철문관이 역사에서 말하는 철문관(鐵門關)이었던 것입니다. 이 지역을 기점으로 해서 그 주변지역에  현도산(懸度山)이 있었으며,

옛날의 계빈(罽賓)이자 살마아한(撒馬兒幹)이 있었습니다. 위의 기록들은 위에서 본인이 고증한 사실과 아주 일맥상통 하는 기록들 입니다.

오늘날의 터키와 그루지아,러시아의 접경 일대에 옛날의 계빈(罽賓)이자 살마아한(撒馬兒幹)이 있었는데 이 지역에 또 다른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해국도지(海國圖志)  /卷032

 

太祖之用兵西域也,專為回回興師。回回即西契丹,其地奄有天山南路及蔥嶺西敖罕境,若天山北路之回鶻,一名畏吾(畏吾,一作畏兀,皆回鶻之音轉),其時畏吾國王,亦都護,已降。故太祖於北路回鶻,未嚐煩兵。而直攻回回國都於蔥嶺以西,又遣諸皇子分兵攻回回諸城於天山以南,皆於回鶻無涉也。回回西契丹,乃遼之後裔,於金初率眾西奔。初居於漠北乃蠻部內(見《契丹國誌》),後假道回鶻,南攻回回,盡有其地。其國都有二,一在蔥嶺西之尋思幹城,即賽馬爾罕城,在今敖罕境。一在蔥嶺東之布魯特,當伊犁西境。其地南界印度,北界阿速,西抵裏海,東抵伊犁,袤數千裏。

 

(원태조가 서역에 군사를 보내어 오로지 회회에 군사를 일으켰다. 회회는 즉 서거란으로 그 땅은 천산남로 및 총령 서쪽의 오한(애오한=터키)의 경계에 있으며 마침내 이 땅을 다스리게 되었다. 더불어 천산북로의 회골은 일명 외오(오올로 표기도 하며 다 회골의 전음이다.)이며,

그 당시 외오국왕은 이미 항복을 하여 역시 도읍을 지키고 있었다. (회골이 이미 항복하였으므로) 이런 이유로 해서 북로의 회골은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았다. 총령이서에서 회회국의 도성을 바로 공격하였다. 또 천산 이남에서 여러 황자들이 병력을 나누어 보내 회회의 여러

성곽을 공격했다. 이는 다 회골과 관련이 없는 지역이다. 회회 서거란은 곧 금조 초기에 무리를 이끌고 서쪽으로 패주한 요의 후예 이다. 처음에 막북 곧 만부 안에서 살았고,후에 회골의 도움으로 남쪽으로 회회를 공격하여, 그 땅에서 살았다.

그 나라의 도읍은 2개로 하나는 총령 서쪽의 심사간성으로 즉 새마이한성=살마아한 이며,지금의 오한 경계에 있다. 또 하나는 총령 동쪽의 포로특으로 이간의 서쪽 경계로 그 땅의 남쪽 경계는 인도이며 북쪽 경계는 아속,서쪽으로 리해에 다다르며

동쪽으로 이간에 다다르며 남북으로 수천리 이다. )

 

 

소정잡록(嘯亭雜錄) /卷二

 

按《遼史》,西遼耶律大石自天祚被擒後,遂率眾西移凡萬余裏,自稱西遼。其後為愛烏罕所滅

 

요사를 살펴보건데,서요의 야율대석은 천조제가 사로잡힌후 무리를 이끌고 서쪽 만여리를 이주해와서 자칭 서요라 했다. 그후 애오한에서 멸망했다.

 

해국도지 권28

南都魯機國沿革(漢唐皆為安息、大食西北境,有西女國亦在境內,元為哈烈國,明為度爾格,今為南都魯機。

(남도로기국 연혁: 한,당조때 안식,대식국의 서북경계이며,서쪽의 여국 역시 경내에 있으며 원조때에 합렬국이 되었으며,명조때에 도이격이 되었으며 지금의 남도로기 이다.)

 

해국도지 권29

 

《明史》或曰哈烈,即愛烏罕 (합렬은 곧 애오한이다.)

 

해국도지 권32

 

漢時大月氏、大夏境域,即賽馬爾罕之域,兼今敖罕、布哈爾、愛烏罕諸部地。

(한조때 대월씨,대하의 강역은 곧 새마이한성이며,겸하여 지금의 오한,포합이,애오한 제부의 땅이다.)

 

역사에서 말하는 징기즈칸의 서역 정벌의 그 실체는 아랍을 정벌하는 것인데, 그 아랍의 실체는 위의 기록처럼 서거란(西契丹) 이었습니다. 이 서거란(西契丹)이 역사에서 서요(西遼)를 말하는 것이며,

이 나라를 건국한 사람은 야율대석(耶律大石) 이었습니다. 이 서요(西遼)=서거란(西契丹)의 수도는 2개인데 하나는 옛날의 계빈(罽賓)이자 살마아한(撒馬兒幹)=심사간(尋思幹)=새마이한(賽馬爾罕) 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포로특(布魯特) 입니다. 위의 기록에서 원조(元朝)때 합렬국(哈烈國)은 명조(明朝)때 도이격(度爾格)이며, 또 명사(明史)에서 합렬(哈烈)이 애오한(愛烏罕)이라 했고,이 지역이 지금의 남도로기=터키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관련 소정잡록의 기록에서 서요(西遼)=서거란(西契丹)은 애오한(愛烏罕)에서 멸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야율대석(耶律大石)이 세운 서요(西遼)=서거란(西契丹)이 애오한(愛烏罕)에서 멸망했으므로,

 서요(西遼)=서거란(西契丹)이 있었던 지역은 오늘날의 터키 일대라는 것입니다. 또한 위의 해국도지의 기록에서 옛날의 계빈(罽賓)이자 살마아한(撒馬兒幹)=심사간(尋思幹)=새마이한(賽馬爾罕)이

지금의 오한,포합이,애오한 제부의 땅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한,포합이,애오한 그 이전에는 야율대석(耶律大石)이 세운 서요(西遼)=서거란(西契丹)의 수도가 있었던 지역 입니다. 즉 터키땅 일대는 몽고의 침략 그 이전에는

야율대석(耶律大石)이 세운 서요(西遼)=서거란(西契丹)이 지역을 통치하였던 것입니다.  야율대석(耶律大石)이 세운 서요(西遼)=서거란(西契丹) 이 당대에 이 땅의 역사는 서구에서 말하는 셀주크 투르크의 역사와 쌍동이 처럼 겹칩니다.

심지어 셀주크 투르크도 몽고에게 망했는데 셀주크 투르크가 망한 지역은 아나톨리아 지역 입니다. 소정잡록의 기록에 의거해서 보면  야율대석(耶律大石)이 세운 서요(西遼)=서거란(西契丹) 또한 남도로기 즉 아나톨리아에서 망했습니다.

또한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망했습니다. 즉 셀주크 투르크의 그 정체가  야율대석(耶律大石)이 세운 서요(西遼)=서거란(西契丹) 이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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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명선 | 작성시간 14.08.20 투르크가 서요.거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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