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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 Arthur? 旅順?

작성자최두환|작성시간10.08.13|조회수443 목록 댓글 0

▲  1904년의 려순항 (Port Arthur)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려순항에 나타난 일본 함대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일함의 공격을 받고 있는 러시아 함대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려순항의 러시아 해안포대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차르    ©

 

 

▲  일본 메이지 천황  ©

 

 

▲ 노기 마레스케 장군   ©  

 

 

 ▲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

 

 

 ▲ 이토 히로부미 ©

 

 

▲ 안중근 장군  ©

 

▲ 일본에 주재하던 러시아 비숖과 통역관   © 

 

출처 : < 김지호 런던타임즈 발행인 www.londontimes.tv >

 

 

여순에서 피고 진 난세의 영웅들
대한제국, 그 격동의 순간들
 
김지호

공존할 수 없는 문명의 충돌은 난세를 낳고 난세는 영웅을 낳는다. 20세기 초 최대의 격전지가 되는 중국 요동(遼東 랴오둥)반도에 위치한 여순(旅順 뤼순 Port Arthur)은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었다.    
천혜의 아름다운 항구인 여순은 동방의 맹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해양으로 뻗으려는 러시아와 대륙으로 나아가려는 일본이 맞부딪히는 숙명의 혈전지가 되었다. 시베리아-만주 철도를 연결시키며 태평양함대를 정박시킬 부동항이 절실한 러시아와 대륙진출의 교두보가 시급한 일본에게 나라의 명운이 걸린 양보할 수 없는 요충지였던 것이다. 
야음을 틈타 어뢰를 기습 발사하여 적진을 교란시킨 일본함대가 해뜨는 동쪽 수평선위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제물포에서 비운의 러시아 함정 버략호와 카라에츠호가 격침되던 1904연 2월9일 새벽이었다.
이날 아침 러시아함 아스콜드 등에 하달되는 전문을 감청하고 러시아함대의 정박 사실을 확신한 도고제독은 전 함대에 공격명령을 하달하였다.
최대 2000야드인 해안포들의 사거리를 피해 6000야드 정도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해안포대와 러시아함대에 타격을 가하던 일함들은 진격을 멈추고 철수하였다. 여순은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위협적인 해안포대와 수많은 기뢰들로 인해 피해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후일 쓰시마해협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파하는 도고제독은 이순신제독 넬슨제독과 더불어 세계 해전사에 기록되는 3대 명제독이다. 러시아 함대에 많은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으나 민첩한 기동력과 우수한 화력을 갖춘 일본의 승리로 평가되고 있다.
여순에서의 첫 전투는 일본을 ‘노란난장이’라고 비웃던 러시아에게 심한 굴욕감을 안겨주었고 백인에 대해 상대적인 열등감을 느끼던 일본에게는 자신감을 심어 주게 되었다.
여순은 1895년 청일전쟁 승전의 대가로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일본에 조차 되었으나 서방 강대국들의 중재로 중국에 반환되었다. 이후 러시아가 1898년 랴오둥 반도의 조차권을 받고 시베리아 만주 철도와 연결하였고 태평양 함대를 위해 요새화 하였다.
따라서 일본은 여순을 러시아가 부당하게 훔쳐간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반드시 되찾아야만 할 국가적 자존심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후 러일 양측이 약 11개월 동안 지속된 20세기 최초의 대전투를 벌이며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여순은 일본군의 수중에 떨어진다. 
이렇듯 수많은 사상자가 나온 것은 이역만리 떨어져 있던 발틱함대의 위력 때문일 수도 있다.  ‘발틱함대가 오기 전에…. ‘ 와 ‘발틱함대가 올 때까지….’ 를 초조한 마음으로 염원하던 양측 지휘관들이 무리한 작전을 시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여순의 함락은 러시아의 몰락과 일본의 부상이라는 지축의 변동을 세상에 알린 신호탄이었다. 이후 일본은 전쟁경비를 위한 국채모집이 용이해 진 반면 러시아는 국제적 위신이 추락하였고 러시아 왕정의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훗날 레닌은 여순의 패배는 차르 체제 몰락의 서막이라고 말한바 있다. 
일본의 노기 마레스케 장군은 두 아들이 여순에서 전사하고 2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낸 처참한 싸움 끝에 여순을 탈환하였다. 그는 장병들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나를 용서하라, 모두 내 잘못이다"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노기장군이 일본으로 돌아오던 날 분노에 찬 유가족들은 손에 돌을 들고 나갔으나 두 아들의 관과 함께 돌아온 노기장군과 함께 울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메이지 천황에게 사죄의 자결을 청하였으나 천황으로 부터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자결하지 말라는 답을 들었다. 7년 후 천황이 사망하자 장례식 날 노기장군은 부인과 함께 할복 속죄하여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지켰다. 
여순은 대한제국의 의장 안중근 장군이 잠들어 곳이기도 하다. 대한의군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인 안중근 장군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작전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여순감옥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3월 26일 형장에서 의로운 생을 마감하였다.
함대도 기병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신생 대한제국의 장군은 총 한자루로 영웅적인 전투를 수행하였던 것이다.
격동기를 살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 비록 태어난 땅과 지향점은 달랐어도 조국을 위해 바쳤던 그들의 생애는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출처 : < 김지호 런던타임즈 발행인 www.londontimes.tv >

 

 

위의 글은 저작자의 글을 그대로 옮겼다.

이 글과 위의 사진을 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들이 아는 력사의 부분이다. 의문은 없는지?

 

(1) 왜 여순(旅順 뤼순)이 Port Arthur가 되어야 하는가?

(2) 러시아 함대와 싸워 이겼는데, 비록 피해가 많았고, 자기 두 아들과 2만명의 전사자가 행겼다고 하여 노기 마레스케 장군이 자결하려고 했는가? 그래도 승전아니었나?

(3) 차르의 사진과 메이지 천황과 노기 장군의 사진에서 그 얼굴 모습을 살펴볼 일이다. 동양인인가? 서양인인가?

(4)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살펴볼 일이다. 동양인임에 분명한데, 위의 (3)과 너무 다르다. 왜일까?

(5) 도고는 어떤 사람인가? 사진의 얼굴 모습이?

 

그리고 현재 중국이 료동반도 끝에 있는 旅順을 Pdrt Arthur이라고 한 그림들을 보자.

 

File:PortArthur.JPG

▲  No higher resolution available.
PortArthur.JPG‎ (448 × 336 pixels, file size: 47 KB, MIME type: image/jpeg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File:Battle of Port Arthur crop2.jpg

▲  Size of this preview: 800 × 580 pixels
Full resolution‎ (9,845 × 7,139 pixels, file size: 52.18 MB, MIME type: image/jpeg)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  Map of Port Arthur, 1912

 


 이제 다른 생각을 가져 와보자.

Port Arthur는 호주 타즈마니아(Tasmania)에 있다. 거기에는 감옥이 웅장하게 무시무시하게 있다.

 

 
 ▲ 교도소

 

▲ 감시탑


포트 아더(Port Arthur)

오스트레일리아의 호바트에서 남서쪽으로 100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포트 아더는 감옥의 마을로 유명하며, 1830년에 뉴사우스 웨일에서 이송된 상습범들에게 주거지를 제공할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본토로 부터의 죄수 이송은 1853년 중단되었지만 감옥은 1877년까지 계속 운영되었는데 대략 12000명의 죄수들은 이곳아 대영 제국의 가장 혹독한 감옥이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죄수들은 중앙 건물로 부터 격리된 모델감옥에 감금되기도 했다. 이곳에 수감된 죄수들은 감각기관을 상실하기도 했고 극심한 고립감을 경험해야 했는데 이러한 방법이 "도덕 개혁"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1979년에서 1986년까지 면적 40 - ha(100-acre)로 복구된 감옥은 현재 타스매니아의 가장 인기있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또 다른 곳의 이름을 보자.

 

  • Port Arthur, Battletech Universe's fictional planet

이렇게 Port Arthur이 많이 있다.

그래서 "旅順"이 "Port Arthur"이라는 말에는 새로운 검증이 필요하다.

어디인들 "감옥"이 없으랴마는 호주 타즈마니아의 Pert Arthur은 그 이름보다도 더 참으로 유명한 곳이다. 혹이 여기에 안중근 의사가?

그리고 한반도에는 "Port Arthur"란 이름이 지명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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