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그 재질에 따라, 용도에 따라, 모양에 따라 이름이 다르게 붙여진다.
목선은 나무로, 철선은 쇠로, 나무 하나를 통째로 만든 배는 통나무배, 또는 매생이라고, ....
짐승의 가죽을 뱃전에 대어 만든 배가 있기도 했고, 판자로 만든 배는 삼판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무껍질로 만든 배는 뭐라고 할까?
고전번역원에서는 '화(樺)'를 '벚나무'라고 새기고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자작나무'이다. 그래서 '화피(樺皮)'는 '자작나무 껍질'이다.
<세종실록>의 1437년 6월 18일과 1438년 4월 8일에 '화피선(樺皮船)'이 나오며, 전자에는 평안도애, 후자에는 함경도에 각각 나온다.
그렇다면 화피선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배임에 분명하다. 아마도 통나무 배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며, 가죽배와 비슷한 크기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번역을 '樺皮'는 한결같이 '벚나무'로 새겼고, '자작나무'는 한자로 '自作'이라고 하였다. 이 자작나무는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에 토산물로 자란다고 했고,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는 경기도의 금천현에 무성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글은 함경도와 평안도에는 자작나무가 없다는 말이다.
자작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평안도와 함경도에 자라지 않거나, 없을 리가 없다.
'樺皮', 즉 자작나무 껍질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평안도에는 벽동군 강계도호부 귀성도호부에, 함경도에는 북청도호부 부녕도호부 명천현 길성현 삼수군 갑산군 단천군에 있다고 나온다.
이렇게 평안도와 함경도에 자작나무 껍질[화피(樺皮)]가 있다는 것은 <세졸실록 지리지>에 화피선으로 도적들이 들어와 도둑질을 하는 것과 관계는 없을까?
그런데 <조선일보>(2015. 12. 16. 수요일. 제295229호 A24)에 '인제 토박이 조남명과 원대리 자작나무숲"이란 글이 있다. 자작나무를 1974년에 처음 심었다고 했고, 1988년에 솔잎흑파리의 피해로 이듬해 1989년 4월 8일에 베루코사 자작나무를 심었고, 그 뒤에 시베리아 자작나무를 심어 이제는 자작나무의 전설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한반도에는 1974년 이전에는 자작나무가 없었다고 보아야 옳다.
그런데 <세종실록 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자작나무[自作樺皮]가 토산물로 무성하게 자란다고 했다. 게다가 평안도와 함경도에는 화피선이 있다고 했다.
이 자작나무는 베루코사든 시베리아든 그 종이 스칸디나비아 및 시베리아 지역에 잘 자라며, 특히 북유럽에는 엄청나게 많다. 대충 북위 60도 이북에서 자라는 나무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 자작나무의 용도를 찾아보면, 'Slabs of barks'나 '지붕널(roof shingles) '로도 쓰인다고 했다. 지붕의 널로 쓴다는 것은 뱃전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나무껍질은 기름기가 많아 물기를 잘 흡수하지 않아 뱃전으로 쓰기에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옛날에 북유럽에서 이 자작나무 껍질로 배를 만들어 썼을 것이며, 바이킹들이 도적질을 많이 했을 적에 이 화피선, 즉 자작나무 배니 자작나무껍질 배를 이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종실록 지리지>의 화피선은 바이킹 배가 아닐까?
현재의 한반도의 평안도와 함결도에는 자작나무가 없다. 지금 백두산에 자작나무가 있다. 모두 해방된 뒤에 뒤늦게 심은 것이다. 수령이 몇 년 되지 않는다.
조선의 옛 문헌에는 자작나무가 충청도와 강원도 이북으로는 자작나무가 무성하였다. 게다가 자작나무껍질로 만든 배도 있었다. 도둑들이 타고 온 배다.
북유럽과 시베리아 지역에는 자작나무가 많다. 이 자작나무는 조선을 밝히는 좋은 먹잇감이라고 본다. 이 자작나무 가지로 사우나를 하면서 물뿌리개로도 쓰인다.
혹시 야백제니 야흑제를 할 때에도 썼을 것이다. 오로라를 감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