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는 넓은 바다가 있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조선의 바다에서는 외국배들을 포함해서 많은 배들이 표류하여 왔고, 그 때마다 “中國”에 송환하였던 기록을 많이 본다.
이 까페의 “기본 자료실”에 《朝鮮漂流日記》(KOBE UNIVERSITY LIBRARY ROKKO BRANCH: 登錄番號 157846, 受入月日 昭和 40. 2. 24.)가 표지 포함하여 48장(실제로는 95면)이 올려져 있다.
그 동안 다른 사료를 보았으므로, 이에 대해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꼼꼼히 보게 되었다. 참으로 귀한 사료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온전한 표류체험담의 진실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는 상당한 거짓과 진실 때문에 오히려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쓰여진 내용의 기간은 1817년부터로 되어 있지만, 표류한 기간은 1819년 6월 14일부터 7월 4일까지 20일간이다.
그런데 그 내용으로 보면 표류자의 체험담을 표류자의 글이 아니고 아마도 받아쓴 글인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아닌 아예 누군가에 의해 표류자의 글을 완전 각색한 것 같다는 것이 문제로 제기된다. 왜냐하면, 자연현상 가운데서 우리들이 인식하고 있는 사실의 하나는 풍향과 조류 방향은 반대의 현상이다.
즉 풍향은 북풍이라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며, 조류는 북향이라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배가 북풍을 받게 되면, 남쪽으로 밀려가고, 조류를 북조류를 받게 되면 북쪽으로 밀려간다.
이러한 현상은 돛대에 돛을 달아서 바람을 받으면 바로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되며 북풍을 뱃머리로 받게 되면 직진항해를 할 수가 없다. 이 때의 순풍을 받는다는 말은 바람을 등 뒤에서, 즉 배꼬리에서 받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조류는 노를 젓든, 돛을 사용하든 조류를 뒤에서, 즉 배꼬리에서 받아 앞으로 진행한다. 이것은 뱃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상식으로 통하는 뱃놈들의 지식이다.
그런데 이《조선표류일기》는 그 34면에 “風自東南則船向東南 風自西北則舟向西北也”라 했다. 이것은 “바람이 동남쪽에서 불면 배는 동남쪽으로 향하고, 바람이 서북쪽에서 불면 배는 서북쪽으로 향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동남풍이면 배는 서북쪽으로 가고, 서북풍이면 동남쪽으로 진행하게 된다는 사실의 반대로 기록했기 때문에 이것은 결코 뱃사람의 글이라고 할 수 없다. 뒤에도 이런 글이 비슷하게 몇 차례 나온다. 이런 사실은 사료의 진실성을 의심케 하고도 남는다.
이제부터 그 내용에서 표류현장의 진실을 캐어보자.
표류자의 처음 위치는 “沖永良部島(오키노에라부 섬)”이다. 이곳은 오키나와 동북쪽 60km[북위27.4도 동경 128.15도), “薩摩(사쓰마)”남쪽 300리(=113.4km)에 있다.
이것은 현재의 지도와 동일하다.
그런데 이 배가 동남풍과 동풍을 받았고, 6월 18일에 북풍을, 19일과 20일에는 동풍을 받았는데, 그러다가 “釣魚島(조어도)”에까지 이르렀다. 6월 25일, 26일, 27일은 줄곧 북풍을 받다가 28일에 남풍을 받았다. 6얼 30일에 북풍을 받았는데, 이튿날 7월 1일에는 북서풍을 받았는데, 일본의 서북쪽 바다에 큰산(大山)을 보게 되었고, 그것이 조선국(朝鮮國)이라는 것이다.
그 조선이 있는 곳에 “釜山浦(부산포)”란 명칭도 나오는데, 지도까지 곁들여있다. 마치 한반도 부산앞바다처럼 보인다. 그림이니까.
그런데 그 배가 “朝鮮國公淸道庇仁屬馬梁鎭(조선국 충청도 비인현이며 마량진이 속해 있다)”고 했다. 물론 여기에도 지도가 천연색으로 잘 그려져 있다. 그 포구 안에서 바깥의 방향이 “東”이고 포구 깊숙한 안쪽이 “西”이다.[A1-24면]
자! 여기서 우리는 이런 사료를 보고서도 진실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그 또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일단 한반도에서는 비인현을 찾아보고, 마량을 찾아보면, 충청도 서부지역에 비인반도 끝에 비슥한 포구가 있고, 같은 지명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형의 방향을 보면, 반도의 방향이 서쪽으로 뻗어져 나와 있기 때문에 포구 안쪽은 “北”, 포구 입구 쪽은 “南”쪽이 된다.《조선표류일기》의 지도와는 90도 회전이 필요한 현상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 이제까지 간단한 설명에서 보면, 그 배가 출항했을 때의 위치는 열대지방에 속하는 북위 27.4도이고 동경으로 128.15도이다.
이러한 위치에서 밀려간 것이 대만의 동북부에 있는 조어도를 지나, 북위 36도에 있는 한반도 서쪽 비인반도에까지 밀려온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거리도 만만찮을 뿐 아니라, 그런 풍향을 받아서 이 한반도 족으로 밀려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북쪽으로 밀려가더라도 양자강 북쪽으로는 불가능하다.
큰산이 있고, 큰섬을 지나 동쪽이 트이고 서쪽이 포구 안쪽이며, 북쪽에 산으로 둘러싸인 포구는 중국대륙의 복건성 이남의 해안에는 수두룩하게 많다.
충청도 비인현의 마량진이라고 했으니, 이는 충청도 지방까지 항해했다는 말이다. 비인현(庇仁縣)이 “비중현(比衆縣)”이었다고 했으니, 이는 아마도 광서성(廣西省) 서림현(西林縣)에 소속했던 어느 지역일 것이며, 이것은 어떤 경로이든 운남성 남쪽, 월남 동북쪽의 광서성의 강까지 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정말 바닷가라면 해남도(海南島) 서쪽 북부만(北部灣), 즉 룡문만(龍門灣)의 어느 포구일 것이다.
도대체 오키나와 바로 북쪽에 있는 배가 거의 동풍을 많이 받아 표류한 것이 1200km나 되는 한반도 서쪽 충청도 비인만으로 닿게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는 상식이 없는 사람이다. 더구나 오키나와의 서남쪽, 대만섬의 동북쪽에서 동남풍을 받았으면, 대만 서남쪽으로 표류되어야 마땅하며, 중국대륙의 남부에 닿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것이《조선표류일기》이다. 그 사람들이 몇 명이든, 어떤 배이든, 상관할 바가 없다. 문제는 처음과 마지막의 지리적 위치의 상관관계와 그 과정이다.
여기서 많은 뱃사람들이 살주(薩州), 또는 살마주(薩摩州)라고 하였다. 그것은 일본렬도 큐슈에 있는 것이 아니라,《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다 믿을 건 없지만, “薩州=薛州(설주)”라 되어있다. 이 설주는 사천성 장강 남쪽 유역의 공현(珙縣)이다. 일본과의 거리를 아무리 멀리 잡든, 가까이 잡든, 그것은 그 일본이 중국대륙의 바닷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조선표류일기》의 앞부분에서 설명된 지명들은 현재의 력사관에서 편재된 력사왜곡의 현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 내용에서는 상당한 부분이 한반도니, 일본렬도와는 전혀 다른 이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824년(文政甲申) 6월에 기록했다는 이 사료는 그 내용에는 일본을 자랑 내지 홍보하는 내용으로 일관되어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이 1868년에 명치유신을 하여 일본을 개국하였으니, 이《조선표류일기》가 그런 정체성 확보를 위한 글일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