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문자에는 한자가 있고, 늦게 훈민정음, 즉 한글이 있다.
그런데 조선에는 역관들이 참 많았다. 녀진어, 몽고어, 회어, 일본어, 등등.
진문이니, 언문이니 하는 말도 있고, 이두니, 이두문이니 하기도 하고, ...
문어체니, 구어체니 하는 말도 있다. 때에 따라, 시기에 따라 여러 언어와 문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한문 혼용이라는 말에는 뭔가 의심이 간다.
한문이라면 하나의 그림판으로 보고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규칙적인 원칙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것이며, 의사전달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것이다.
언문의, 특히 한글만의 글은 거의 대화체, 구어체로써 의사전달이 매우 정확할 것이다.
(1) 戊辰元年이라 (唐堯의 二十五年이라) 民을 敎하야 髮을 編하야 首를 盖하다.[朝鮮歷史 권1 檀君紀, 學部, 1895 仲秋]
(2) 元年(唐堯二十五年) 敎民編髮盖首.[朝鮮歷代史略 권1 檀君紀, 學部, 1895 孟冬]
위의 책들은 조선말기이고, 대한제국이 일어서기 2년전에 학부(요즘의 문교부)에서 교과서로 편찬한 력사책이며, 위의 (1)은 초등용 국사교과서이고, 위의 (2)는 고등용국사교과서이다. 學部編輯局新刊 大朝鮮開國五百四年이라고 했으니, 1895년이 맞다.
같은 내용이다. 위의 (1)을 국한문 혼용이라고 하고, 위의 (2)를 한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위의 (1)을 그대로 입으로 말을 하면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이것을 정말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글을 쓴다면, 다음과 같이 해야 옳다. 물론 요즘의 문장이다.
(3) 무진 원년이다. (당의 요임금 25년이다) 단군임금께서 백성을 가르치고, 머리카락을 땋아서 늘어뜨려서 머리를 덮었다.
적어도 이와 같이 풀어서 쓰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고, 말이 되지 않으면 소리내어서 알 수 없다. 글로써는 단지 읽어 눈으로써 알아볼 따름일 것이다.
그래서 위의 (1)은 오직 위의 (2)를 한글식으로 바꾼데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구어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분명 말하지만, 이것은 대화로써는 불가능한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면 불필요한 문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1895년의 경우에는 훈민정음이 만들어진지도 매우 오래되었기 때문에 대화체로서 썼어야 마땅하다.
사람들은 한번 각인되고 나면 다시 고쳐 쓰려고 하지 않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또 남들이 잘 알아듣거나, 잘 알아 보지 못하게 자기만의 독특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도 그랬다.
한창 한자를 배울 적에 이두문 식으로 썼다. 아니 한글을 한자로 바꾸어 쓰기를 즐겼던 적이 있다.
"아버지"를 "阿父支"와 같은 형태로 말이다.
이두문은 한글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글로 쓸 수 있다고 하니까, 남따라 장에 간다고 그렇게 써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문에다 토를 달아 썼다고 한다. 설총 때부터 말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한글이, 아니 훈민정음이 없었을 적에는 그랬을지라도, 조선말기에 오면서도 그런 이두문으로, 또는 한문을 겨우 토나 갖다 붙여서 쓴 것을 국한문혼용이라고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한문으로 된 글, 이두문으로 된 글은 한자의 뜻과 소리를 잘 판단하고, 가능한 소리로만 읽어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고유명사의 경우에는 더 그래야 한다.
"涅般"을 [열반]으로 읽으면 안되고, 적어도 [녈반]이라고 하되, 반드시 [니르반][니르바나]라고 읽어야 옳다. 한자의 소리는 아시아=조선 연구에 참으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