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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끓게 하나니!

작성자최두환|작성시간10.12.16|조회수930 목록 댓글 0
충무공 리순신의 시조 한편 속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한산섬"이고, 그 끝줄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가(대竹변 아래에 加)]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고 알고 있다.
지난 번에 한번 소개한 글이지만, 여기서는 지난번에 "강적(羌笛)"인데, 오늘은 "호가"이다.
"호적"과 "호가"는 무슨 뜻인가? 같은가? 다른가?
뜻이 같다면 이래 쓰나, 저래 쓰나 상관없겠지만, 다르다면 참으로 우스운 꼴이다. 이 뜻을 알아보기 위하여 "당시(唐詩)" 한 편을 보기로 하자.

"古意"(옛 생각)
遼東小婦年十五(료동 땅 젊은 계집애 나이는 열다섯)
慣彈琵琶解歌舞(비파도 잘 타고 노래도 춤도 잘도 하더니)
今爲羌笛出塞聲(지금은 강적으로 출색곡을 불러주니)
使我三軍淚如雨(우리 군대 모두가 눈물이 비오듯하네.)

이 시는 리기[李기(項의 工변 대신에 斤)] 사천성(四川省) 삼대현(三臺縣) 동천(東川) 사람이다. 이 사람이 읊은 시에 "강적(羌笛)"이 있다.
이 "강적"을 <한어대사전>9, (상해, 1992)에서 찾아보면, "古代的管樂器. 長2尺4寸 三孔或四孔. 因出于羌中故名."이라 했다. 퉁소/피리처럼 입으로 불어서 소리내는 악기이다. 이 구멍이 3/4이라는 말은 손가락으로 막았다 열었다하는 것이 아니라, 2雙管/3雙管을 말한다.
그리고 "羌中"이란 "羌 지방 안"을 말하는데, "羌"은 "감숙(甘肅), 청해(靑海), 사천(四川) 일대이며, 무(茂), 문(汶), 강(羌)族 자치현(自治縣)과 송반현(松潘縣) 남부"이며, 지금의 인구는 19만 8천명이다. 티베트 지방이 된다.
그러면 "호가"는 어떤 것인가?
이것은 <한어대사전>에 보면, "我國古代北方民族的管樂器."라 하였다. 즉 중국대륙의 북쪽 지방 사람들의 관악기라고 했다. 그런데 "호인(胡人)"은 그 설명이 좀 다르다. 즉 "我國古代對北方邊地及西域各國人民的稱呼"라고 했다. 호인은 중국대륙의 북쪽 지방과 서쪽 지방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 악기의 그림을 보면, 입으로 불어서 나오는 구멍은 물론 하나이지만, 손가락으로 막았다 열었다 하는 구멍은 오직 3개뿐이다. 규격은 나와있지 않지만, 그림 모양으로 보아서 분명 서로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강적"과 "호가"는 일단 중국대륙의 서쪽 내지 그 서북쪽에 사는 사람들의 악기를 가리킨다. 즉 지금의 티베트[西藏] 지역과 녕하(寧夏)지역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것은 서쪽 오랑캐로 풀이가 된다. "강적"이니, "호가"는 한반도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런 관악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서쪽 오랑캐와 조선의 임진왜란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명사(明史)>권20 본기(本紀)20 신종(神宗)1에 보면 "1592년 3월무진에 녕하에서 부총병 발배가 난을 일으킨다. 여기에 리여송(李如松)이 9월임신에 이들을 평정하고나서 "提督계遼保定山東軍務充防海禦總兵官"이 된다.
<임진왜란사>(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p.147에 보면, "명나라 부총병 발배가 그해(1592) 3월에 녕하 지방에서 일으킨 반란(녕하의 변)이 미쳐 수습되지 않아 많은 병력이 이 반란평정에 동원되었다. 그래서 조선파병이 지연되어, '명의 조정은 녕하지방의 반란이 평정될 때까지 시간적 여유를 얻기 위하여 절강(浙江)출신의 심유경(沈惟敬)을 유격장군으로 삼아 8월에 조선에 급파하여 외교적으로 일본군의 북진을 지연시키려 했다. 명나라 조정은 9월에 녕하지방 반란이 평정되어, '조선과 료동은 입술[脣]과 이[齒]의 형세이므로 평양을 지키지 못하면 료동도 지킬 수 없다.'는 판단하에 료동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선행단계로서 평양수복을 목적으로 재출병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병부시장 송응창이 동정군경략, 제독 리여송이 지휘책임을 맡아 동정군은 9월부터 출병준비에 박차를 가하여, 압록강이 결빙하는 12월하순에 조선에 진입했다."고 적고 있다.
이런 력사 해설을 한반도에 아무리 맞추어본들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해설도 그 지리적 위치를 중국대륙 녕하지역으로 맞추고, 의주를 위화(威化), 즉 중위(中衛)에 맞추고, 평양을 섬서성 호경으로 맞추어서 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러면, 그 "강적"이니, "호가"니 하는 피리도 어디서 유래되어 어떤 사람들이 많이 불어대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리여송이 조선출병의 동정군 직함에 지명이 나오는 것은 모두 녕하지방의 동쪽이 료동이고, 그 동쪽이 계주이고, 그 동쪽이 하북성 보정이며, 그 동쪽이 산동성이다. 이것은 오르도스 지역과 산서성, 하북성, 산동성 지역임을 말하며, 바로 이 지역에 일본 왜적들이 침범했음을 알 수 있다.
처음 일본 침략군은 산동성과 강소성에서 황하를 타고 섬서성 장안으로 쳐들오 온 것이다.
당시(唐詩)에 나온 "古意(옛생각)"에 나오는 시를 충무공 리순신의 "한산도가"에 빗대어보면 야릇한 미소가 입가에 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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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대륙 조선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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