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18 - (올린날: 2002년 2월 22일 금요일 , 조회수: 37 ) 이 글은 예수회 신부 알레니(Julio Aleni, 1582∼1649)의 『직방외기』 서문들을 번역한 것이다. 알레니 신부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610년 중국에 들어와서 1649년 죽을 때까지 중국에서 전도하였는데, 중국인들은 그를 ‘서양의 공자(西來孔子)’로 추앙했다. 『직방외기』는 알레니 신부가 편찬한 27종의 한역서학서 가운데 하나이다. [http://history.catb.kr/new_sabo/edu_view.asp?h_id=254]
주 제직방외기(職方外紀)1
부 제
저 자알레니
번 역천기철(동아대 강사, 한문학)
이 책은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職方司’의 관할에서 벗어난 나라들에 대해 풍토, 민정, 기후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세계 인문·지리서이다.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가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면, 알레니의 『직방외기』는 서양 세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인문 지리적·세계 지리적인 지식을 전하여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과 일본의 지식인들에게도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후기 이후 한국사회에도 전래되어 다른 西學書와 더불어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므로 이른바 ‘職方’에 속한 조선의 지식인들이 ‘職方外 文化’의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는 것은 조선후기 한국사회의 지성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논제일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천문학 및 지리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과학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하다.
다만 이 책의 한문이 매우 난해하다는 점에서 그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널리 활용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연구소에서 기획한 『職方外紀』의 번역은 이 방면의 연구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이러한 류의 논저가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번역되어 나오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하여 보다 좋은 번역본이 될 수 있도록 정확한 번역과 철저한 주석을 지표로 삼아 번역 작업을 수행하였다. 여기에는 한문의 원문도 활자화하여 이를 수록함으로써 내용 대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필요한 경우 원문에 대한 문법 분석도 첨부하였다. 이렇듯 철저한 역주 작업에 덧붙여 보다 친숙한 문체로 글을 풀어씀으로써 전문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번역 과정에서 많은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먼저 번역을 제의하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서 제고하는 등 도움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부산교회사연구소의 손숙경 연구원에게 감사드린다. 아울러 좋은 번역이 되도록 끊임없이 글을 고쳐주고 매만져 주신 동아대학교 한문학과의 박유리 교수님과 사학과의 이훈상 교수님에게도 감사드린다. 앞으로 번역은 나누어서 계속 수록할 예정이다. 보다 좋은 번역을 위하여 번역상의 오류와 문제점, 나아가 관련 지식에 대하여 해당 분야 연구자들의 비판과 조언을 진심으로 기대한다. (역자주)
-목차-
○ 일러두기
○ 서문
Ⅰ. 刻職方外紀序
Ⅱ. 職方外紀自序
Ⅲ. 職方外紀序
Ⅳ. 職方外紀小言
Ⅴ. 職方外紀首
○ 본문
1. 職方外紀卷之一
1) 亞細亞總說
2. 職方外紀卷之二
1) 歐羅巴總設
3. 職方外紀卷之三
1) 利未亞總說
4. 職方外紀卷之四
1) 亞墨利加總說
2) 墨瓦蠟尼加總說
5). 職方外紀卷之五
1) 四海總說
【일러두기】
○ 역자는 『天學初函』1)版을 底本으로 번역하였으나 『四庫全書』2) 및 『叢書集成簡編』3)에 실려 있는 원문도 참고하였다. 이들이 서로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天學初函』의 원문을 따르고, 각주에서 각 판본의 글자들을 대조할 수 있도록 하였다.
○ ( ) 안에는 독자들이 번역문과 비교할 수 있도록 원문의 한자를 그대로 넣었다. 또 필요한 경우 역자의 주를 대신하여 원문의 내용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 [ ] 안은 역자가 원문에서 생략되었다고 생각한 것을 추론해서 넣은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중국의 인명·지명 등은 한자로 표기하였고, 서양의 그것은 대부분 외국 人名·地名 中西對照表4) 및 中國關係西洋人名錄5)을 참고하여 그에 해당하는 것을 영문으로 표기했다. 또한 필요한 경우에는 각주에서 설명을 더했다. 원문의 글을 각주에서 설명할 때 문장은 “ ”로 표시하였고, 단어는 그같은 표시를 하지 않았다.
Ⅰ. 刻職方外紀1)序
〔1〕 萬曆辛丑 利氏來賓 余從寮友數輩訪之 其壁間懸有大地全圖 畵線分度甚悉 利氏曰 此吾西來路程也 其山川形勝土俗之詳 別有鉅冊 已藉手進大內矣
만력(萬曆)2) 신축(辛丑)년(1601)에 마테오 리치(利氏: Matteo Ricci)3)가 와서 머물렀다.4) [그래서] 나는 동료 몇 사람과 함께 그를 방문했다. 그가 머물고 있는 방의 벽에는 대지를 그린 지도5)가 걸려 있었는데, 선을 그어서 눈금을 나누어 놓은 것이 매우 자세하였다.
마테오 리치는 “이것은 내가 서쪽에서부터 올 때의 여행 경로이다. 그 산천의 모습(形勝)과 지역의 습속(土俗)에 대한 상세한 것은 따로 방대한 분량의 책(鉅冊)6)이 있었는데, [그 책은] 이미 가지고 가서 황제에게 바쳤다.”고 하였다.
〔2〕 因爲余說地 以小圓處天 大圓中度數相應 俱作三百六十度 凡地南北距二百五十里 卽日星晷 必差一度 其東西則交食可驗 每相距三十度者則交食差一時也 余依法測驗 良然道悟 唐人畵方分里其術尙疎 遂爲譯以華文 刻爲萬國圖屛風
그리고 [그는] 나를 위해서 지도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다. [그 지도는] 하늘을 작은 원으로 처리하고, 큰 원 속에는 도수를 서로 통하게 하여 모두 360도를 그려 놓았다. 지도상으로 남북의 거리가 250리이면, 수평면과 북극성 사이에 생기는 각도(日星晷)7)는 반드시 1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고, 그 동서로는 일식과 월식(交食)을 시험할 수 있었는데, 서로의 거리가 30도가 될 때마다 일식과 월식은 한 시간의 차이가 있었다.8)
나는 법칙에 따라 측량해 보고서는 唐나라 사람들이 지도를 그린 그 기술(畵方分里其術)이 아직까지 정밀하지 못했다는 것을 실제로(良然)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중국 문자로 번역을 하였고, [이를] 판각하여 만국 지도가 그려진 병풍을 만들었다.9)
〔3〕 居久之 有瀆呈御覽者 旋奉宣索 因其版已携而南 中貴人飜刻以應 會 稅 又馳獻地圖四幅 皆歐羅巴文字 得之海舶者 而是時利已卽世 龐熊二友留京 奉旨 繹 龐附奏言地全形 凡五大州 今其一不可不補 乃先譯原幅以進 別又制屛八扇 載所聞見附 及土風物産 楷書貼說甚細 余以甲寅赴補 幸獲覩焉
얼마 뒤에 [그것을] 임금께 올린 이가 있었다.10) 이에 임금께서는 원래의 판각(板刻)을 찾아오라고 분부(宣索)를 내리셨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내가] 가지고서 남쪽으로 가버렸으므로, 환관(中貴人)이 판각(板刻)을 그대로 다시 새겨서 [임금의 분부에] 응하였다.11) 마침 민 ( )의 세당(稅 )12)이 또 급히 지도 네 폭을 올렸는데, 그것들은 모두 유럽 문자로 되어 있었으며, 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이 때 마테오 리치(利)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빤또하(龐: Pantoja, Didace de)13)와 우르시스(熊: Ursis, Sabbathinus de)14) 두 벗이 북경에 머물면서 황제의 뜻을 받들어 그 지도에 대해서 연구하였고, 빤또하(龐)가 [세당이 올린 지도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서 지도의 전체 모습을 황제께 아뢰었다.15)
[그것은] 모두 오대주이었는데, 지금 그 가운데 한 주에 대해서는 보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16) 그래서 원래의 것을 먼저 번역하여 올리고, 따로 다시 8폭 병풍을 만들었다.
[그 병풍에는]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하여 보태어 두었고, 지방의 풍속(土風)과 특산물(物産)에 대해서는 바른 글씨체(楷書)로 설명을 덧붙여 매우 자세하였다.17) 그런데 나는 명(明) 신종(神宗) 40년(1614)에 관직에 부임하여 다행히 그것을 볼 기회가 있었다.
〔4〕 此圖延久未竟 會放歸 齎投通政司 弗納則奉致大明門外 叩頭而去 今尙 中城察院云 而龐熊旋卒於途 其底本則京紳有傳寫者 然皆碎玉遺璣 未成條貫
이 지도는 시간이 오래 흘렀는데도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18) 그런데 마침 [그들은] 추방되어 돌아가게 되었다.19) 그래서 통정사(通政司)20)에게 [그것을] 주었으나 받아 주지 않았다. 이에 대명문(大明門)21) 밖에 [그것을] 놓아두고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고서] 떠났는데,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성안(中城)의 도찰원(都察院)22)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23)
빤또하(龐)와 우르시스(熊) 두 신부는 얼마 뒤에 객지에서 죽었다. 수도의 벼슬아치들 중에서 그들의 원고(底本)를 옮겨 베낀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모두 [두 사람이 만들어 놓은] 원래의 지도 모습에 흠을 내어, 앞뒤가 들어맞게 완성하지는 못하였다.24)
〔5〕 今年夏 余友楊仲堅氏 與西士艾子爲增輯焉 凡系在職方朝貢附近諸國 俱不錄 錄其絶遠舊未通中國者 故名職方外紀 種種咸出 仁詭可喜可愕 令人聞所未聞 然語必據所涉歷 或彼國舊聞徵信者 世傳貫胸反踵龍伯伯僥之屬 以爲荒誕弗收也 艾子語余是役也 吾嫂聞也與哉
올해 여름 나의 벗 양정균(字: 楊仲堅)씨와 서양에서 온 선교사 알레니(艾子: Julio Aleni)25)가 기록을 모으고 더하여 책을 엮었다. 그런데 [그 책에는] 직방(職方)26)에 소속되어 조공(朝貢)을 하는 부근의 여러 나라들은 모두 기록하지 않고,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 오랫동안 중국과 서로 왕래가 없었던 나라들만을 적었기 때문에, ‘직방외기(職方外紀)’라고 이름지었다. [그 책에는] 여러 가지 사물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기이하여 즐길 만하였고, 놀랄 만하였으며,27)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들을 듣게 하였다. 그러나 이야기한 것은 반드시 경험했거나 실제로 겪었던 것에 근거를 두었고, 혹 그 나라들은 예로부터 전해와서 있을 법하고 믿을 만한 것들이었다. [곧] 세간에 전해 오는 ‘관흉(貫胸)’, ‘반종(反踵)’, ‘용백(龍伯)’, ‘초요(仁僥)’와 같은 나라들로서28), 허황하다고 여겨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들인데, 알레니(艾子)가 이들에 대하여 말해 주었으므로 나는 조금은 알고 있었다.29)
〔6〕 地如此其大也 而其在天中一粟耳 吾州吾鄕 又一粟中之毫末 吾更芷焉中處 而爭名競利於蠻觸之角也與哉 則性爲形役 實錯厥履 夫誇쫤其耳目思想以自錮 而孰知耳目思想之外 有如此殊方異俗地靈物産眞實不虛者 此見人識有限 而造物者之無盡藏也 而又窮變極備 隨處悉供人類之用 兼賦人以最靈之性 仁能通天徹地 不與草木鳥獸同類同朽
땅이 이와 같이 넓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늘 가운데에서는 한 톨 좁쌀일 뿐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고을과 마을들은 또한 좁쌀 속의 매우 작은 부분이며, 우리들은 다시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芷焉)일 뿐이다. 그런데도 하찮은 일에30) 명예를 다투고 이익을 차지하려고 하여, 마음은 육신의 노예가 되어 어긋난 행위를 하고 있고, 모두 그의 귀와 눈으로 듣고 본 것을 지나치게 믿어誇毗)31) 스스로 그것에 속박되어 있으니, 그 누가 귀와 눈이 듣고 본 것밖에, 이와 같이 낯선 땅과 풍속 그리고 참되고 거짓이 없는 신기하고 영묘한 지역과 특산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
이로써 [우리들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유한하나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것은 끝이 없음을 알 수 있고,32) 또 [조물주가] 변화를 다하여 모든 것을 갖추어서 곳에 따라 인간이 쓸 것을 모두 제공해 주었고, 아울러 사람들에게 가장 영묘한 본성을 부여해 주어, 그들이 하늘과 땅을 막힘 없이 꿰뚫어 볼 수 있게 하였으며, [인간은] 초목(草木), 조수(鳥獸)와 함께 썩어 없어지는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7〕 明乎 造物主之於人獨厚也 人可不克己昭事 以期復命歸根 作如是觀 庶吾仁未闡天道 先語地員 不治先後倒置之紫也乎 而艾子之友 金子則又曰 此姑以綴屛上之圖也云爾 吾欲引伸其說 作諸國山川經緯度數圖十卷 風俗政敎武衛物産技藝又十卷 而後可以當職方之一鏡也 金子者齎彼國書籍七千餘部 欲貢之蘭臺麟室 以參會東西聖賢之學術者也
명확하도다! 조물주가 인간에게만은 특별히 두텁게 대해 주었다는 것은.33) 그런데 [어찌] 사람이 사욕을 이겨내어 상제를 밝게 섬겨,34) 근본으로 돌아갈 것을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35) 그리고 이렇게 본다면, 우리들이 아직 천도를 밝히지도 못했으면서 먼저 땅이 둥글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앞뒤가 바뀌었다는 허물을 남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알레니의 친구 트리고(金子: Nicolaous Trigault)36)는 또 “이는 다만 병풍에 있는 지도를 짜 맞춘 것일 뿐이다.”고 하였다. 이에 나는 그의 말을 늘이고 펴서37) 여러 나라들의 자연경관(山川), 위치(經緯), 제도(度數)에 대한 그림 10권과 풍속, 정치와 교육(政敎), 방위 태세(武衛), 특산물(物産), 공예·미술품(技藝)에 대해 또 10권의 책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것은 그렇게 한] 뒤에야 직방(職方)의 온 영역을 감쌀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트리고(金子)는 저희 나라의 서적 7천여 부를 가져와 그것을 난대(蘭臺)·린실(麟室)38)에 바쳐 동·서양 성현의 학술을 섞어 모으려고 하였던 사람이다.
〔8〕 德之床明 奎路炳瑞時 則有異國異書 梯航九萬里而來 蓋曠古於今 爲烈聖主崇文 第令得廣致群英 分曹摘梨以盡傾海嶽之奇乎 將河洛未足誇 鳳鳥不虛至 而謂 所拾一屛一冊 臥遊之具 尙足爲咫聞炫哉
덕(德)으로 감싸줌이 밝고,39) 규전(奎路)40)이 빛나 상서러울 때에는 낯선 나라의 기이한 책이 아주 먼 곳을 지나서 오는 일이 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41) 훌륭한 일을 한 임금들은 문예를 숭상하였다. 그런데 [그 임금들이] 가령 여러 영재들을 널리 모아서, 동아리를 나누어서 책을 쓰게 하여42) 세상(海嶽)의 기이한 것들을 남김없이 다하게 하였다면, [어떠하였겠는가?] 아마 하락(河洛)43)도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닐 것이며, 봉황도 헛되이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 번에 주운 한 권의 책과 병풍, 누워서 즐길 만한 용구를 오히려 조그마한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9〕 余聞西域天文 洪武中曾譯之 右文家法固然矣 禮樂盛百年 聲敎敷四海 儒有涵醇飢蹠 播頌於無窮 知必不與鳩摩玄奬輩所致書同類而竝抵44)之也
天啓癸亥 日路天駟 浙西 李之藻書於龍泓精舍
내가 듣건대 서역의 천문은 일찍이 홍무(洪武)45)년간에 그것을 번역하였다고 한다. [이는] 문예를 숭상하는 가법(家法)이 본디부터 그러하였던 것이다. 예악(禮樂)은 백년 동안 성대했고, 백성을 교화하는 덕은 온 세상에 베풀어졌다. 그러니 순일함에 흠뻑 젖어서 무궁한 지혜를 베풀어 칭송하는 선비들이 있다면, 결코 이 책을 반드시 구마(鳩摩)46)와 현장(玄奬)47)과 같은 무리들이 전해 왔던 책과 같은 종류로서 아울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명(明) 희종 3년(熹宗 3年: 1623) 늦가을48) 절강성(浙江省) 이지조(李之藻)가 용홍정사(龍泓精舍)에서 쓰다.
Ⅱ. 職方外紀自序
[1] 造物主之生我人類于世也 如進之大庭中 令饗豊嚥 又娛歌舞之樂也 嘗試仰觀天象 而有日月五星列宿之麗 則天似室廬 列象似玹寶之飾垣壁者然
조물주가 우리 인류를 세상에 살게 한 것은 그들을 큰 뜰 속에 나가게 하여 풍성한 잔치를 즐기게 하고, 또 노래하고 춤추는 기쁨을 맛보게 한 것과 같다. [내가] 일찍이 시험하여 고개를 들어 천체의 현상(天象)을 살펴보았더니, 일월과 오성49), 그리고 줄을 지어 늘어서 있는 별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는데, 하늘은 마치 집과 같았고, 일월과 오성 그리고 [줄을 지어 있는] 여러 별들은 마치 진귀한 보석(玹寶)이 담장(垣壁)을 꾸미고 있는 듯하였다.
[2] 俯察地形 而有山川草木之羅列芬芳 則猶劇戱之當場者然 其地空中飛鳥 江海潛鱗 地上百穀果實 則集五齊八珍之薦 列肌筵者然 然則造物主之恩厚亦極矣 胡爲乎 人每日用不知 若將謂固然宜然 而曾莫究其所以然也
그리고 [다시] 머리를 숙여 땅의 모습을 살펴보았더니, 산천과 초목들이 아름답게 늘어서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광대들이 연극을 연출하고 있는 듯하였다. 또 그 땅의 공중의 하늘을 나는 새들, 강과 바다의 물 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 그리고 지상의 온갖 과실들은 [마치] 여러 향기로운 술들(五齊)50)과 갖가지 음식들(八珍)51)을 모아서 제사상(肌筵)52) 위에 차려 놓은 것 같았다. 그러므로 조물주의 두터운 은혜는 참으로 지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날마다 [그것들을] 쓰면서도 [이를] 알지 못하여, 마치 본디부터 그렇다고 하고,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하며, 일찍이 그것이 그러한 까닭을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인가?
[3] 昔 神皇盛際 聖化翔洽 無遠弗賓 吾友利氏 齎進萬國圖誌已 而吾友龐氏 又奉絲譯西刻地圖之命 據所聞見 譯爲圖說以獻 都人士多樂道之者 但未經刻本以傳道至
지난날 훌륭한 황제께서 다스려 나라가 번성하였을 때 성스러운 덕과 교화가 백성들에게 두루 젖어 들었고, 먼 곳에 있는 나라들까지 복종하여 조공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 때] 나의 벗 마테오 리치(利)는 만국도지(萬國圖誌)를 가져 왔고 나의 벗 빤또하(龐)는 서양에서 새긴 지도를 번역하라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근거하여 그 책들을 번역하여 [황제께] 바쳤다. 그런데 왕도의 교양 있는 선비들(都人士)53) 가운데 이것을 즐겨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은] 지금까지도 각본(刻本)54)이 되지 않은 채 전해 오고 있다.
[4] 今上御極而民物重新 侵侵乎王會萬方之盛矣 儒略不敏 幸床觀光 旣慕前床 誠不忍其久而煙滅也 偶從#簡 得覩所遺舊藁 乃更竊取西來所授 手輯方域梗槪 爲增補以成一編 名曰職方外紀 私竊自嘔 殆不過如匠氏竹頭木屑之陳 床人芷芷芷藻之獻 優伶雜劇百戱之搬演 無當大觀 非關實學 惟用以供有識臥游之萬一 則亦或者小有補云
지금의 황제55)께서 자리에 앉으시면서(御極) 백성들의 문물(文物)은 거듭 새로워졌다. [그리고 황제께서는] 서둘러 만방의 아름다운 것들을 왕성하게 모으셨다.56) [그래서] 나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도 요행히 외국의 낯선 풍경들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선인들이 이룩해 놓은 훌륭한 업적들(前床)에 감탄하면서 마음속으로 흠모하였는데,57) 세월이 흘러 그것들이 연기처럼 사라져 가는 것을 참으로 안타깝게 여겼다.
[그런데] 우연히 좀먹은 서류 속에서 [그들이] 남겨 놓은 옛 원고들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이에 [나는] 다시 [내가] 서양에서부터 가지고 온 것들을 바탕으로 하고 [그것에] 영역(方域)의 대강(梗槪)을 모아 [이를] 보충하여, 한편의 책을 완성하고, 이를 ‘직방외기(職方外紀)’라고 이름지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스스로 웃음을 지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어쩌면 장인이 버린 댓조각이나 대팻밥 같이 쓸데없는 물건들(匠氏竹頭木屑)을 늘어놓는 일, 또는 요리사가 개구리밥과 같은 변변치 못한 재료로 만든 거친 나물(床人芷芷芷藻)58)을 올리는 일, 아니면 광대들이 여러 가지의 유희를 하면서 정신없이 하는 말이나 행동(優伶雜劇百戱之搬演)59)에 지나지 않아, 사물의 도리를 깊이 이해함(大觀)에 맞는 것이 없고, 실학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건데 [이를] 학식이 있는 이들에게 제공해 주어서 누워서 그림 속의 경치를 보고 즐기는 일에 쓰게 한다면, 아마도 조금은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5] 且夫士抱雅志 將以周遊四遠 或爲采風問俗以弘60)敎化 或爲搜珍覓寶以充美觀 或窮此疆爾界以察地形 或訪聖賢名流以資師友 或通有無貿遷以求瀛羨 或考群方萬國山川形勝 以證經傳子史之載紀 或探奇覽秀以富襟懷以開神智諸
선비가 고상한 뜻을 품었다면, 장차 사방의 먼 곳까지 두루 돌아다녀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때로는 민간의 노래 가사를 모으고(采風) 백성들의 생활상을 알아서(問俗) 교화를 널리 펴기도 하고, 때로는 진귀한 것을 탐문해 보고, 소중한 것을 찾아 아름다운 것들을 가득 채워 보기도 하며, 때로는 여기 저기의 경계와 국경들61)을 다하여 지형을 살펴보기도 하고, 때로는 옛 성현들과 명사들62)을 찾아 스승으로 삼고, 벗으로 삼기도 하며, 때로는 물자를 유통시키고(通有無)63) 교역하여, 넉넉히 될 방법(瀛羨)을 모색하기도 하고, 때로는 여러 나라들의 산천의 모습을 살펴 제가의 기록들64)을 이해하기도 하며, 때로는 기이한 것을 찾고 빼어난 경치를 보아서 회포를 풍요롭게 하고 슬기와 지혜를 열어야 할 것이다.
[6] 如此類卽有志焉 而勢不能無道里跋涉之勞疾 舟車紫費之經營 以至寇賊風波意外之警 又往往足爲我虞矢引人壽之幾何 勢非假羽豆羽以翔遊 或莫能偏歷八荒 以畢吾一生壯游之願也 玆賴後先同志出 宇 合聞合見以成此書 不出戶庭 可以周知遐遠在創聞者 固未免或駭爲奇然 而非奇實常 或疑爲虛然 而非虛皆實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뜻이 있다고 하더라고, 실제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돌아다녀야 하는(跋涉) 여행 일정(道里)의 피곤함이 없을 수가 없고, 배나 수레에 드는 비용에서부터 도적들이나 그리고 풍파에 이르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 또한 나를 근심스럽게 하였다. 하물며 사람의 수명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날개를 빌어서 날아다니지 않는다면, 아마 팔방을 두루 돌아다녀서 한 평생 큰 뜻을 품고서 멀리 노닐겠다는 나의 염원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다행히 여러 뜻을 같이한 선배와 후배들이 천하(宇宇)65)를 돌아다님에 힘입어, [그들이] 보고 들을 것을 한데 모아 이 책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로써 집에서 나가지 않고서도 아득히 멀어서 처음 듣는 것들을 두루 알 수 있게 되었다.66) 어떤 사람은 놀라며 기이하다고 여기겠지만, [그것은] 기이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은 의심스러워하면서 사실이 아니라고 여기기도 하겠지만 거짓이 아니라 모두 사실이다.
[7] 夫惟造物主之神化無量 是故五方萬國之奇詭不窮67)仁一轉念 思厥所繇 反本還原 徑固不遠 區區之愚良有見於此耳 而淇園楊公雅相孚賞 又爲訂其蕪拙 梓以行焉 要亦契余不忘 昔者 吾友芹曝自獻之夙志 而代終有成所願
조물주의 신묘한 조화는 한량이 없다. 그러니 온 세상(五方)68) 여러 나라들에는 기이한 것들(奇詭)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仁) 한 번 생각을 돌려서(一轉) 그것들이 나온 곳(厥所繇)을 깊이 생각하여 근원을 돌이켜 본다면, 길은 결코 멀지 않을 것이며, 어리석은 사람(區區之愚)이라고 하더라도 참으로 이에 대해서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양기원(楊淇園)69) 공이 분에 넘치게 좋게 보아주시고(雅相孚賞)70) 또 거칠고 서투른 것들을 바로잡아 판목에 새겨서 간행해 주셨다.71) 요컨대 [이는] 참으로 친구에 대한 우의를 잊지 않은 것이다.72) 전날 내 벗들이 미나리 한 묶음과 같은 소박한 선물(芹曝)73)을 [황제께] 올리려고 했었는데, [이제] 그들을 대신하여 마침내 [그들이] 염원했던 것을 이루게 되었도다.74)
[8] 共戴天履地者 旣幸宅是庭 饗是嚥觀是樂 因而遡流窮源 循末求本 言念創設萬有一大主宰而呪然昭事之 是性則辰言芷萃庶其不貽設鈴之 乎 若曰異聞異見姑以炫燿耳目 則儒略何人 而敢于學海名區呈此伎倆 是又與於75)玩物喪志之甚者也
天啓三年歲在癸亥八月望日西海艾儒略識
함께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행히 이 뜰에 집을 짓고서, 이 잔치를 누리고 있으며, 이 즐거움을 살펴보고 있다. 따라서 [이에] 말미암아 거슬러 올라가서 근원을 깊이 연구해 보고, 본체에서 갈려져 나간 끝에서부터 바탕이 되는 것을 찾아서 천지간의 온갖 물건(萬有)을 창조하여 베풀어주신 한 분 위대한 주재자를 생각하여76) 그를 탄미하며 밝게 섬겨야 할 것이다. 염려스러운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77)을 늘어놓은 이 책(芷萃)78)으로 어쩌면 호된 꾸지람79)을 듣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다만 이상한 것을 듣고, 보고서 그것으로 남들의 귀와 눈을 현혹시키려(炫燿)고 했다.’80)고 한다면 내(儒略)가 어떤 사람이기에 학계(學界)의 명망 있는 분들께 이 보잘것없는 잔재주를 올리려고 하였겠는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이는 쓸데없는 물건을 가지고 노는 데 팔려 자신의 본 마음을 크게 잃어버린 사람과 같은 무리가 되는 것이다.81)
1623년 계해년 팔월 보름 서해(西海) 애유략이 쓰다.
1) 李之藻, 『天學初函』, 1628, 影印, 서울: 亞細亞文化社, 1976.
2) 文淵閣. 『四庫全書』. 1772. 影印. 臺北: 臺灣商務印書館, 1966.
3) 王雲五. 『叢書集成簡編』. 影印. 臺北: 臺灣商務印書館, 1966.
4) 朱文 . 『天文學小史』. 影印. 上海: 商務印書館, 1935.
5) 崔韶子, 『東洋史學硏究』3, 「中國關係西洋人名錄」, 1980.
1) 職方外紀: 예수회 선교사 알레니(Julio Aleni, 중국명: 艾儒略)가 저술한 한역 세계인문지리서로 1623년 중국 杭州에서 6권으로 간행되었다. 한편 ‘職方外紀’라는 이름은 李之藻가 序文에서 밝혔듯이, 職方에 소속되어 중국과 조공하는 부근의 여러 나라들을 제외한 기록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그 내용은 오대주의 역사·기후·풍토·민속 등과 육대양의 해로·산물·섬·남극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고, 천주교 교리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2) 萬曆: 萬曆은 明 神宗代의 年號이다. 이 연호는 1573년부터 1620년까지 47년간 사용되었다. 한편 萬曆 辛丑은 明나라 神宗 29年에 해당한다.
3)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신부. 1582년 마카오(澳門)에 와서 ‘利瑪竇’라는 중국식 이름과 ‘西泰’라는 字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원문에는 ‘利氏’로 명명하고 있다. 그는 한문에 숙달하였고, 北京으로의 진출 기회를 엿보던 중 1586년 韶州로, 1595년 南昌으로 옮겨가게 되고, 1598년에는 北京에 입성하였다. 그 후 北京에서 철수하여 蘇州, 鎭江을 거쳐 南昌에 체류하였다. 1601년 1월에 北京에 다시 들어가 神宗의 허가를 얻어 그곳에 거주하다가 1610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4) 마테오 리치는 1601년 두 번째로 북경에 왔는데, 이를 두고 말한 것임. 마테오 리치는 1600년 5월에 남경을 떠나 다음해 1601년 1월 24일에 두 번째로 北京에 들어가 많은 文人들과 사귀었다. 그 중 世界地圖와 관련된 者가 둘 있는데 바로 馮應京과 李之藻이다. 張保雄, 「利瑪竇의 世界地圖에 關한 硏究」, 『東國史學』 13, 東國歷史硏究會, 1976, p. 101.
5) 마테오 리치는 1583년 처음으로 肇慶(Chao-ch’ing; 광동성 서쪽에 위치한 도시)에 도착했다. 그는 서양에서 가지고 온 세계지도를 벽에 걸어 두었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이 이 신기한 지도를 보기 위해 줄을 지어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한다. 그는 肇慶에서와 마찬가지로 북경에 왔을 때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지도를 벽에 걸었을 것이다. 李之藻가 마테오 리치를 방문했을 때 걸려 있었다는 이 지도는, 漢譯 지도가 아니라 마테오 리치가 서양에서 가지고 온 원본 세계지도임이 확실하다. 아래 글에서 李之藻가 이를 중국 문자로 번역했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6) 마테오 리치는 북경에 들어오기 전에 肇慶에서 『天主十經』, 『天主經』, 『聖母經』 등의 천주교 교리 서적들과 서양의 지리, 수학, 역법 등에 관한 서적들을 한역하였는데, ‘방대한 분량의 책’은 이들 가운데에서 지리에 관한 책을 이르는 듯하지만 정확히 알 수 없다.
7) 日星晷: ‘日晷’는 ‘해시계’이고, ‘星晷’는 ‘별시계’이므로, 이는 문자 그대로 ‘해시계’와 ‘별시계’로 알기 쉽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보아 수평선과 북극성과의 각도를 이른다고 생각한다. 수평선과 북극성과의 각도는 지면이나 지도상에서 250里를 이동할 때마다 1도씩 높아진다.
8) “每相距三十度者 則交食差一時也” 이 구절과 관련하여 『明史 3』 「天文」, ‘東西偏度’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而東方見日早 西方見日遲 東西相距三十度則差一時 相距九十度則差三時 相距一百八十度則晝 夜時刻俱反對矣(동쪽에서는 해를 빨리 볼 수 있고, 서쪽에서는 해를 보는 것이 늦다. 동서의 거리가 30도이면 1시간의 차이가 생기고, 90도이면 3시간의 차이가 난다. 서로 180도의 거리가 있으면 낮과 밤은 서로 반대가 될 것이다).” 이상의 문맥으로 미루어 이 구절은 ‘경도가 30도 차이나면 일식과 월식은 1시간의 차이가 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9) 마테오 리치가 가지고 온 원본 세계지도는 여러 차례 漢譯 세계지도로 판각되었는데, 李之藻가 병풍으로 판각했다는 이 지도가 北京第1版(1602년, 李之藻刻刊)인 「坤輿萬國全圖」이다. 참고로 한역 세계 지도의 판각본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해 보면, 최초의 漢譯 세계지도로 필경 총독 王泮의 요청으로 利瑪竇가 1584년에 漢譯 刻刊한 筆慶版 「山海輿地全圖」를 들 수 있다. 이를 필두로 ① 趙心堂版(1595∼1598년, 趙可懷刻刊), ② 南京版(1600년, 吳中明刻刊), ③ 北京第1版(1602년, 李之藻刻刊), ④ 北京第2版(1602년, 刻工刻刊), ④ 獻上版(1608년, 利瑪竇·龐迪我補修刻刊), ⑤ 繪入 「坤輿萬國全圖」(1608년 利瑪竇·龐迪我 共寫), ⑥ 「萬國地海全圖」(1612년, 龐迪我·熊三拔 共寫), ⑦ 淸朝版 「坤輿萬國全圖」(1644년, 刻刊者 未詳), ⑧ 「坤輿全圖」(1674년, 南懷仁 製作), ⑩ 「兩儀玄覽圖」(1693, 李應試·馮應京 共刊) 등 많은 한역 지도가 간행되었다. 상세한 것은 ‘金良善, 「明末淸初耶蘇會 宣敎師들이 제작한 世界地圖」, 『梅山國學散稿』, 1972’를 참고 할 것.
10)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는 오랫동안 神宗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1608년 환관 1명이 신종에게 헌상했는데, 신종은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11) 당시 환관들이 神宗에게 李之藻가 만든 北京 第1版, 「坤輿萬國全圖」(1602년)를 獻上하자 神宗은 12부를 명주 천에 인쇄하여 가져오라는 분부를 내렸다. 그러나 이때 李之藻는 판본을 가지고 북경에서 멀리 떨어진 향리에 은퇴해 있었다. 한편 「坤輿萬國全圖」는 李之藻가 가지고 있던 판본 외에 판본을 제작한 각공이 기이하게 여겨 몰래 똑같은 판목 하나를 더 만들어 두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北京第2版(1602년, 刻工刻刊) 세계지도이다. 그런데 그 판본은 수해로 크게 파손되어 있었다. 利瑪竇는 황제에게 호의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보고, 1개월 이내에 새로 제작해 바칠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神宗은 刻工 소유 판본 가운데 파손된 부분을 보충하여 전과 같은 6幅 1組의 판을 만들어 제작할 것을 命하였다. 이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1608년 利瑪竇·龐迪我가 補修 刻刊한 獻上版 「坤輿萬國全圖」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할 것. 金良善, 「明末淸初耶蘇會 宣敎師들이 製作한 世界地圖」, 『梅山國學散稿』, 崇田大學校博物館, 1972.
12) 稅 : 金良善은 그의 논문에서 ‘ ’을 지역명(福建省)으로, ‘稅 ’은 인명으로 보고 있다. 金良善, 앞의 책, p. 189. 한편 李元淳은 이를 ‘福建稅關’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 ’을 지역명(福建省)으로 보고 ‘稅 ’은 ‘稅關’으로 풀이한 것이다. 한국교회사 연구소, 『교회사연구』 2집, 1979, p. 150.
역자는 ‘ ’은 지명, 그리고 ‘稅 ’은 인명으로 풀이하였다. 그 이유로 ‘ ’은 福建省의 間稱이므로 이는 글의 구조상 ‘ ’의 ‘稅 ’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지명 뒤에 대부분 인명이 온다. 또한 ‘ 稅 ’ 뒤에 ‘又’가 나오는데, ‘又’ 앞에 주어가 위치할 때는 사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3) 빤또하(Pantoja, Didace de, 1571∼1618):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신부. 중국 명은 ‘龐迪我’ 字는 ‘順陽’ 1600년 마테오 리치를 따라 북경에 가서 전교하였고, 明나라 황실의 요청에 의해 天文曆算書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616년 남경에서 박해가 일어나 그 여파가 북경에까지 미치자 마카오로 피신, 2년 뒤 마카오에서 사망하였다.
14) 우르시스(Ursis, Sabatinus de 1575∼1620):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신부. 중국 명은 熊三拔, 字는 有綱. 1606년 중국에 입국, 북경에 들어가 마테오 리치 신부에게 중국어와 한문을 배운 뒤 명 황실에서 天文曆算書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616년 남경에서 박해가 일어나 북경에까지 그 여파가 미치자 마카오로 피신, 1620년 마카오에서 사망하였다.
15) 1612년 福建省의 稅 이 지도 2폭을 올렸는데, 그것은 본래 4폭으로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중국도와 서남아제국도 2폭이 없었기 때문에 神宗은 두 선교사에게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상세한 것은 김양선, 앞의 책, p. 189, 참조.
16) 이는 ‘마젤리니카(墨瓦蠟厄加)’를 이르는 듯하다. 마젤리니카는 마젤란이 발견했다고 하여 당시에 ‘마젤리니카’로 불렀다. 그러나 후에 그런 대륙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五大州總圖界度解」 항목에서 “墨瓦蠟厄加 則國土未詳 圖不別立(墨瓦蠟厄加는 국토가 아직은 상세하지 않아서 지도를 정확히 확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을 보아도 ‘그 가운데 한 洲’라고 한 것은 마젤리니카가 분명하다.
17) 이 지도가 1612년에 제작된 ‘萬國地海全圖’이다. 1612년에 의 稅 이 洋船에서 구라파 문자로 된 지도 한 장을 구해 神宗에게 獻上했다. 神宗은 이것을 빤또하와 우르시스 두 선교사에게 빠진 부분을 보충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萬國地海全圖’이다. 李元淳, 「星湖 李瀷의 西學世界」, 『敎會史硏究』 1, 韓國敎會史硏究所, 1977, p. 16.
18) 끝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刻刊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함.
19) 1616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어 서양인이 체포되고, 선교사들은 북경에서 추방되었는데, 이를 두고 말한 것임.
20) 通政司: 明, 淸대에 내외의 문서를 관장하는 관리.
21) 大明門: 자세히 알 수 없음.
22) 都察院: 明淸代 ‘都察院’을 ‘察院’이라 略稱함. 都察院은 각부에 대한 감찰 기관임(中文大辭典編纂委員會, 『中文大辭典』九. 臺北: 中國文化大出版部, 1973, p. 358).
23) 이는 李之藻가 부임해 갔을 때,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으로 보임.
24) “碎玉遺璣”: 옥을 부수고 구슬을 깨뜨림. 곧 선교사들이 만들었던 지도의 본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임.
25) 알레니(Julio Aleni, 1582∼1649):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신부로 이 책의 저자. 중국명은 ‘艾儒略’ 字는 ‘思及’ 중국 사람들에 의해 ‘서양의 공자(西來孔子)’로 추앙 받았다. 1610년 마카오에 도착하여 1649년 사망할 때까지 활발한 전교 활동을 하였다.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가톨릭대사전』, 1985.
26) 職方: 職方은 官名임. 『周禮』 「夏官」 ‘職方氏’에 “有職方氏 掌天下之地圖 主四方之職貢(職方氏가 천하의 지도와 사방의 공물을 맡아보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明·淸代에도 ‘職方司’가 천하의 문서와 지도를 파악하여 3년에 한 번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이에 대한 것은 앞의 『中文大辭典』七, p. 941. ‘職方’에 대한 풀이를 참고할 것.
27) “種種咸出 仁詭可喜可愕”의 ‘種種’은 ‘여러 가지의 일이나 사물들’을 뜻하고, ‘仁詭’는 ‘기이하다’는 뜻이다. 이 글은 ‘[거기에는] 여러 가지의 사물들이 모두 나왔다. 그것들은 기이하여 즐길 만하고, 놀랄 만하였다.’로 풀이할 수 있다.
28) 貫胸: 옛날 나라 이름, 貫匈과 같음. 『山海經』 「海內南經」에는 “貫胸國 其爲人胸有竅(貫胸國의 사람들은 가슴에 귀, 눈, 입, 코가 있다).”고 하였다. 反踵: 옛날 나라 이름, 『淮南子』 「氾允訓」에는 “丹穴, 大蒙, 反踵, 穴同, 大夏, 北戶, 奇肱, 脩股之民, 是非 各異, 習俗相反(단혈, 대몽, 반종, 혈동, 대하, 북호, 기굉, 수고의 백성들은 시비가 각각 다르고 습속이 서로 반대이다).” 그 注에는 “反踵 國名 其人南行 其迹北向(反踵은 나라 이름인데 그곳의 사람들은 남쪽으로 가는데, 발자국은 북으로 향한다).”이라 하였다. 龍伯: 옛날 나라 이름. 『列子』 「湯問」에는 “龍伯之國 有大人…(龍伯에 몸집이 큰 사람이 있다. …).”고 하였다. 仁僥: 옛날 나라 이름. 『國語』 「晉語四」에는 “仁僥不可使擧(仁僥는 근거를 들 수 없다).”라고 하였다.
29) “艾子語余是役也 吾嫂聞也與哉”의 ‘役’은 글자 그대로의 뜻인 ‘勞役之事(힘들여 종사해 본 일)’로 풀이하였다. 이는 『中文大辭典』(臺北: 文化大學出版部, 1976)의 ‘役’字에 대한 7번째 풀이다. 그리고 ‘嫂聞’은 ‘조금 알고 있다.’의 뜻이다.
30) “蠻觸之角也”: ‘달팽이의 왼쪽 뿔에 蠻氏, 오른쪽 뿔에 角氏가 있어 서로 싸웠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하찮은 일로 서로 다투는 일을 이름.
31) “夫誇쫤其耳”: 이 글의 ‘쫤’ 안의 글자는 『天學初函』 판본에서는 매우 희미해서 글자를 판독하기 어렵다. 李之藻의 이 서문은 다른 판본에는 실려 있지 않으므로 『天學初函』 판본에서 보이는 부분과 앞뒤의 문맥으로 미루어 보아 ‘毗’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풀이했다. 이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도움을 기대한다.
32) “人識有限而造物者之無盡藏也”: 이 글에서 생략된 것을 ( )에 넣어 보충하면, ‘人(之)識有限而造物者之 (識)無盡藏也’가 된다. 이는 ‘사람의 지혜는 유한한데, 조물주의 지혜는 無盡藏하다’로 풀이할 수 있다.
33) “明乎 造物主之於人獨厚也”: 이 글은 ‘明乎 造物主獨厚於人也(틀림없구나! 조물주가 사람에게 유독 후하게 한 것은)’로 바꾸어 쓸 수 있다.
34) 昭事: 『詩經』 「大雅 大命」에 “昭事上帝 聿懷多福(상제를 밝게 섬겨 많은 복을 오게 하니)”라는 말이 있는데, ‘昭事’는 『시경』에 있는 이 뜻과 같다.
35) 『老子』 「十六」에 “夫物芸芸 各歸其根 歸根曰靜 是曰復命 復命曰常(만물은 무성히 자라지만 모두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靜’이라 하고, 이것을 본성으로 복귀한다고 하며, 다시 이를 ‘常’이라 한다.)”이라 하였다. 이를 미루어 보면 ‘歸根’은 道의 근원인 靜寂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리키며, 復命은 永遠不滅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이른다.
36) 트리고(Nicolaous Trigault, 1577∼1628): 중국명 金尼閣 신부, 字는 四表, 교무 연락을 위해 1618년 로마에 갔다가 교황 바오로 5세로부터 7천여 서양 서적을 하사 받아 돌아옴.
37) “引伸其說”: 직역하면, ‘나는 그의 말을 끌어다 펴서’이다.
38) 蘭臺·麟室: 漢나라 때 궁중에서 서적을 쌓아 두는 곳을 ‘蘭臺’라고 하였는데, 唐이후에는 ‘秘書省’을 ‘蘭臺’·’麟臺’라 하기도 하였다. ‘秘書省’은 文書의 보관에 관한 일을 한 것을 맡았다. 이를 미루어 보면, ‘蘭臺·麟室’은 南堂(왕립 도서관)의 부설 도서관을 이르는 듯하다. 한편 明·淸代에 중국 전도에 종사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은 北京 東·南·北의 세 천주당에 머물며 활동하였는데, 각 천주당에는 풍부한 장서를 가진 圖書館 시설이 있었다. 1601년 마테오 리치에 의하여 창건된 남당의 부설 도서관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마테오 리치가 서양에서 가져온 과학·종교서와 그밖에 1618년 트리고 신부가 교무 연락을 위해 로마에 갔다가 중국으로 돌아올 때 교황 바오로 5세로부터 하사 받은 7천여 서양 서적이 비치되어 있다. 李元淳, 『韓國天主敎會史硏究』,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 p. 17, 참조.
39) “德之床明”: ‘덕의 평판이 밝다.’로 직역할 수 있으나, 의역한 것임.
40) 奎路: ‘奎’는 28宿 가운데 하나로 文運을 맡은 별이고, ‘路’은 해·달·별이 운행하는 궤도를 뜻하므로 文運이 가는 궤도, 길.
41) “曠古於今”: 옛날부터 지금까지.
42) 摘梨: ‘摘’은 ‘鐫(새기다)’의 뜻이다. 따라서 ‘摘梨’의 원의는 ‘목판에 새기다’라는 뜻이지만 ‘책을 쓰다’는 뜻으로 의역하였다.
43) 河洛: ‘河圖’와 ‘洛書’, 곧 ‘河圖’는 복희씨 때에 길이 팔 척이 넘는 용마가 지고 나왔다는 그림이고, ‘洛書’는 하우씨의 구년 치수 때 낙수에서 나온 神龜의 등에 있었다는 글.
44) 抵: 이는 ‘告’와 같은 글자로 ‘말하다’의 뜻으로 쓰였다.
45) 洪武: 明 太祖의 年號, 1368∼1398까지 재위함.
46) 鳩摩: 複姓, <『通志』, 氏族略, 諸方複姓> “鳩摩氏 晉西域天竺人 鳩摩炎世爲國相 生羅什 爲僧入中國(鳩摩氏는 晉나라 서쪽 天竺國 사람이다. 鳩摩炎世가 나라의 재상이 되었는데, 그가 羅什을 낳았고, 羅什은 중이 되어 중국에 들어갔다.)” 이러한 풀이는 『中文大辭典』十, p. 694의 풀이를 따른 것임.
47) 玄奬: 貞觀 元年(627)에 서역을 경유하여 인도에 들어가서 불교를 연구하고 貞觀 18년(644)에 귀국한 唐나라의 고승.
48) 日路: 『中文大辭典』에는 “日所運行之宿度(태양이 운행하는 자리의 차례)”라고 했는데, 이는 단순히 계절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天駟: ‘天駟’는 별의 이름으로 ‘房星’이라고도 한다. 『曆法通志』 「二十八宿距度考」를 살펴보면, ‘房星’은 별자리로는 ‘天蝎’이며, 절기로는 ‘霜降, 立冬(음력 10월)’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세한 것은 朱文 , 『曆法通志』 「二十八宿距度考」, (上海: 商務印書館, 1934)를 참고할 것. 또한 『國語』의 「周語中」에서는 “駟見而隕霜(天駟가 나타나 서리를 내리게 한다)”이라 하고, 注)에 “駟天駟 房星(駟는 天駟이니 房星이다)”이라 하였다. 또한 『爾雅』 「釋天」에도 “天駟 房也(天駟는 房이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天駟는 28수의 하나인 房星인데, 계절로는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霜降)에 해당한다.
49) 五星: 다섯별. 곧 木星·火星·金星·水星·土星.
50) 五齊: 원래 술을 만들 때 청탁을 나누는 다섯 등급을 가리키나 문맥상 ‘향기로운 술’로 번역했다.
51) 八珍: 여덟 가지의 맛을 뜻하지만, ‘여러 가지 음식’으로 풀이했다.
52) 肌筵: 정성들여 차린 제사상을 뜻한다.
53) 都人士: ‘王都의 교양 있는 선비’라는 뜻이다. 『詩經』 「小雅 都人士」의 “彼都人士(저 왕도의 교양 있는 선비여!)”에서 온 말로 추정되는데, 朱憙는 그의 『詩經集傳』에서 “都 王都也(‘都’는 ‘王都’이다)라고 했다.”
54) 인쇄할 수 있도록 나무에 새김.
55) 今上: 神宗皇帝를 가리킨다. 그는 1572∼1619년까지 47년간 재위하였다.
56) “今上御極而民物重新 侵侵乎王會萬方之盛矣”: 이에 대해서는 “지금의 황제께서 즉위하셔서 백성들의 재물은 거듭 새로워졌고, 빠르고 왕성하게 만방의 문물을 모았다”로 직역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 侵侵乎’는 글의 구조상 첩자서 뒤에 ‘乎’가 붙은 것으로 ‘王會’를 꾸며 주고 있다. 이는 원래 『詩經』 「小雅 四牡」에서 “駕彼四駱 載驟 侵侵(저 네팔의 駱馬를 멍에 하여 빨리 달려)”이라 하여 사신의 도착을 위로하여 부른 노래에서 나온 말이라 생각된다. 곧 은연중에 明나라 神宗이 외국의 선교사들을 잘 대접하고 있다는 것을 칭송하고 있기도 하다.
57) 이 대목은 알레니 자신이 이탈리아로부터 중국에 와서 앞의 선교사들이 이룩해 놓은 기초 자료를 정리하라는 왕명을 받기까지의 감회를 술회한 것으로 보인다.
58) “芷芷芷藻”: ‘芷芷’은 변변치 못한 제물이고, ‘芷藻’은 거친 나물임.
59) “優伶雜劇百戱之搬演”: ‘優伶’은 광대를 가리키고, ‘搬演’은 정신없는 말과 행동을 이름.
60) 弘: ‘叢書集成簡編’과 四庫全書 본에는 ‘宏’으로 되어 있다.
61) “此疆爾界”: ‘爾’는 ‘彼’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여기 저기 경계’로 풀이할 수 있다.
62) “訪聖賢名流”: ‘訪’은 찾아 배운다는 뜻임. ‘聖人名流’는 ‘옛 성인과 명사들’로 풀이했음.
63) “通有無”: 『鹽鐵論校注』에서 『白虎通』 「商賈」의 글을 인용하여 “度其有無 通四方之物(있는 것과 없는 것을 헤아려 사방의 물건을 유통시킨다)”이라 하였다. 이 때 ‘有無’는 물자를 뜻함. 盧仁龍, 『鹽鐵論校注』 二, (北京: 中華書局, 1992), p. 44.
64) “經傳子史”: ‘經傳’은 경서와 그에 따른 주석서를 가리키며, ‘子史’는 『장자』·『열자』 등 제자의 책과 『사기』·『한서』 등 역사책을 일컬음.
宇宇: 임금이 다스리는 영토 전체라는 뜻으로 ‘천하’ 또는 ‘세계’를 이르는 말.
66) “可以周知遐遠在創聞者”: ‘遐遠’은 ‘아득하여’의 뜻이며, ‘在’는 전치사로 ‘∼에 대하여’의 뜻을 가진다. 이 때 전치사의 목적어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역하면, ‘아득하여 그것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것을 두루 알 수 있었다.’이다.
67) 不窮: ‘叢書集成簡編’ 本에는 ‘不寧’으로 되어 있음.
68) 五方: 東·西·南·北·中央의 다섯 방면 또는, 중국과 사방에 있는 夷狄의 나라.
69) “淇園楊公”: ‘淇園’은 楊廷筠의 號임. 그는 명나라 말기의 문신으로 세례명은 미카엘, 자는 仲堅, 별호로는 鄭圃居士·泌園居士 등을 쓰기도 하였다. 杭州의 仁和에서 태어났으며 徐光啓, 李之藻와 함께 중국 천주교의 3대 支柱로 추앙 받고 있음.
70) “雅相孚賞”: ‘우아하고 미쁘게 보아주었다.’는 뜻이나 이는 겸양으로 말한 것임.
71) “又爲訂其蕪拙 梓以行焉”: 이 구절의 ‘行’은 ‘간행하다’의 뜻을 가진다.
72) 契: ‘金蘭之契(둘이 합심하면 그 단단하기가 쇠를 자를 수 있고, 우정의 아름다움은 난의 향기와 같다는 뜻)’의 줄임말.
73) 芹曝: 옛날 시골 사람 가운데 구운 고기를 싫어하고 미나리를 달게 여기는 이가 있었는데, 자신이 미나리를 즐겼으므로 임금에게 그것을 올렸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곧 이는 시골 사람의 작은 속마음을 비유한다.
74) 이 구절은 알레니보다 앞서 빤또하와 우르시스가 神宗황제의 명으로 기초 자료를 정리하여 책으로 편찬하려다가 선교사들에 대한 추방령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던 것을 언급하고 있는 듯하다.
75) 於: ‘叢書集成簡編’ 본에는 ‘于’로 되어 있음.
76) “言念創設萬有一大主宰”: 여기서 ‘言’은 동사의 앞에 오는 접사로써 뜻을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言’자는 주로 『詩經』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小雅 秦風」의 “言念君子 溫其如玉(군자를 생각하니 온화하여 옥과 같네).”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 더 상세한 것은 拙稿, 「『詩經』의 接辭 硏究」, 釜山大 碩士論文, 1997, 참조.
77) 辰言: 잔에서 술이 쏟아지듯이 유창하게 나오는 임기응변의 말, 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
78) 芷萃: 난잡하게 만든 책. 곧, 자신이 만든 책에 대한 겸칭.
79) “設鈴之梢“: 호령하듯 명령하는 꾸지람.
80) 炫燿: ‘광채를 발하다.’는 뜻이지만 의역하였음.
81) “是又與於玩物喪志之甚者也”: ‘與’는 동사로서 ‘같다’는 뜻이다. 이러한 비교문에서는 형용사성 술어가 쓰이고, 그 뒤에 <‘於’, ‘乎’, ‘于’ + 비교 대상>이 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