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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게시판

라후족

작성자이호근|작성시간13.10.30|조회수590 목록 댓글 0

http://c.hani.co.kr/hantoma/1019847

 

태국 북부도시 치앙라이 시내에서 3시간정도 떨어진 산속에 거주하는 민족. 태국 북부와 중국 운남성 등지에 넒게 퍼져 분포하고 있다.

- 라 후족은 원래 티벳과 가까운 중국의 운남성일대에서 살았다. 후에 중국 정부당국과의 분쟁에 휘말리게 되어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한족의 압제에 견디다 못한 대부분의 라후족은 미얀마로 넘어갔고, 그 일부는 태국과 라오스로 넘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라후족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태국으로 넘어왔다. 오늘 날 대부분의 라후족은 북부지방인 치앙라이, 치앙마이, 매홍손 등지에 살고 있다.


- 라후족의 태국식 명칭은 '무서 (또는 무수르)' 인데 이는 "사냥꾼"이라는 뜻의 미얀마어에서 따온 말이다. 하지만 모든 라후족은 무수르라는 명칭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라후"라고 부르고 있다. 라후족에는 라후 니(붉은 라후), 라후 나(검은 라후) 라후 시(노란 라후) 라후 푸(흰 라후) 및 라후 셸레 등의 하위부족이 있다. 그런데 이들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언어구조가 우리와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다.

 

라후족 언어

우리말

나(1인칭)

너(2인칭)

나흐(1인칭복수,We)

우리

너흐(2인칭복수, You)

너희(당신들)

 

이현복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명예교수의 말

"라후족의 언어는 우리의 언어구조와 매우 비슷하다. 미국의 마티소프교수가 라후족의 말의 문장구조가 한국이나 일본의 문장구조와 아주 유사하다고 이미 밝힌 적이 있다. "  

라후족의 생활의 유사점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절미 만들기


절구통에 찐 찹쌀을 넣고 깨를 묻힌 덕방아를 넣고 찧는 것이 우리의 인절미 만들기과 똑같다.

둘째, 어린이의 놀이(공기놀이)

공기놀이라는 것을 하는데, 작은돌들을 던지며 노는 것이 우리의 공기놀이와 아주 똑같으며, 1단에서 5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동일하다.

셋째, 비석치기(사방치기)
우 선 손 바닥 뒤집기로 편을 정하고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한다. 편이 정해지면 손으로 정교하게 굴려서 맞추면 이기는 놀이로 우리의 비석치기(사방치기)와 동일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편평한 돌을 이용하여 놀이를 하는데 비하여 이들은 열대의 납작한 열매를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이들은 우리의 전통 팽이치기와 같은 놀이를 하면서 논다.

넷째, 라 후는 고생을 해서라도 부슬부슬한 안남미보다는 찰기가 있는 찹쌀로 지은 밥을 먹으려 든다. 때문에 라후족의 마을에서는 항상 찰기진 밥을 먹을 수 있기도 하다. 라후족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된장이나 김치 등도 있다. (물론, 고춧가루가 없는 하얀 배추절임같은 것이다. 한국의 김치가 붉은 것은 고춧가루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부터이다.)

 

   

다른 참고할 만한 글

 

라 후의 여인네들 역시 어릴때부터 자수를 비롯한 뜨개질을 배운다. 처녀들은 부지런하여, 자신이 입을 옷 이외에 미래의 신랑이 될 사람의 옷까지도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남자들 역시 부지런하여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 일을 시작한다.

- 라후족에게 있어 음악과 춤은 생활속에 배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상 즐거운 노래소리가 울려퍼지는 마을에는 축제도 자주 벌어진다. 축제날이 되면, 여자들은 그동안 준비해 두었던 예쁜 옷을 입고나와 춤을 추고, 남자들은 풀잎으로 피리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한다. 대나무를 이용해 '여러개의 관이 달린 스코틀랜드식의 피리'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불기도 한다.


- 마을 사람중에 한명이 병이 나면, 사람들은 그 주위에 모여 춤과 노래를 부르는 의식을 하여, 악귀를 쫓아 낸다. 마을의 부족장은 제사장의 역할을 함께 하여 결혼이나 장례를 주관하고,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부족장의 권한은 막강하여, 마을은 부족장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 따라서 부족장이 죽거나 새로운 부족장이 들어서면, 마을의 이름도 바뀌게 된다.

- 라후족은 콩을 쑤어서 만든 된장을 먹는다. 우리나라의 된장과 거의 흡사한 것이며, 야채를 소금에 절인 '와찌' 라는 것도 먹는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김치와 비슷한 것이다. 명절이 되면, 찹쌀을 대나무통에 넣고, 숯불속에 넣어 밥을 쪄 먹는다.

- 라후족의 음식은 김치·된장 등 우리 음식과 비슷한 것이 많아 잘만 찾아 먹으면 식사때 고민스럽지 않다.불편한 점은 무엇보다 고도가 높아 도착해 며칠동안은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머리가 띵하고 무기력해진다.

 

 


★ 잊혀진 우리 핏줄 아카 라후 리수


- 소수 민족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태국의 고산족이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 군사에게 포로가 되어 잡혀가 오지에 버려졌던 고구려의 후손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구려 본기에 의하면 당나라 고종이 고구려인 3만 8천 3백호를 잡아가 중국 남쪽 광막한 땅에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학자들뿐 아니라 소수민족 출신의 호례극이라는 중국 학자도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 이들 고산족들은 고구려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고, 결혼 때 닭을 옆에 두고 식을 올린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은 것도 우연으로 돌릴 수만 없는 고구려 옛 풍습 그대로다. 아카족 같은 경우는 구슬을 머리에 달고 장식하기를 좋아하는데 이 또한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중국 후한서에 '동이족은 구슬 장식을 즐긴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 북한 사투리 '나 메홍손 가메'


학자들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한국 여행자들이라면 이들이 우리 핏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절 때 색동옷을 입는 것이 그렇고 태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끈기있는 찰벼를 산간에서 재배하는 것도 그렇다.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먹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무엇보다 신비한 것은 이들의 말이 중국이나 태국말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 아니고 우리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라는 것이다. 라후족이이나 아카 리수족이 한결같이 나를 '나'라고 하고 너를 '너'라고 하는 것을 들으면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지구상에 한국인 말고 어느 민족이 "나"를 "나"라고 하고 "너"를 "너"라고 할 것인가 말이다."나 매홍손 가이메이" 라후족의 말로 "나 매홍손에 간다"는 뜻이다. 이 말을 어찌 들어보면 "나 매홍손 가메" 라는 이북 사투리만 같지 않은가? 어쨋든 이들을 만나면 우리와 같은 핏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들을 우리 민족이 아니고는 세계의 어떤 민족과도 동일시할 수 없을 것이다.

 

★ 우리와의 유사점


- 외모도 태국보다는 우리네와 더 비슷했다.
- 집안의 아궁이를 쓰는 것도 우리네와 닮았다.
- 명절 때 색동옷을 입는 것
- 태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끈기있는 찰벼를 산간에서 재배하는 것.
-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먹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 이들의 말이 중국이나 태국말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 아니고 우리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라는 것이다.


- 고구려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고, 결혼 때 닭을 옆에 두고 식을 올린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은 것도 우연으로 돌릴 수만 없는 고구려 옛 풍습 그대로다. (형사취수제)
- 라후족·아카족 등이 개고기를 먹는다.
- 라후족도 아기를 낳으면 문밖에 인줄을 쳐 일정기간 외부 사람이 집안으로 못 들어오게 한다고 했다.라후족의 인줄은 지푸라기를 사용해 왼새끼를 꼰 후 새끼줄 사이사이에 창호지·숯·빨간고추(사내아이의 경우)·푸성귀를 꽂아 놓는다.그런데 탐사팀을 놀라게 한 것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인줄에 푸성귀를 꽂았다고 하는데 라후족은 지금도 푸성귀를 꽂는다는 사실이었다


- 라후족의 명절이나 제사에서 찾을수 있는 유사성


라 후족의 설은 우리나라 처럼 1년중 가장 큰 명절로 떨어져있던 가족과 만나고 이웃 부락과의 교류를 통해 한해동안의 풍년과 평온을 기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특정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농사에 적절한 시점에 따라 부락마다 해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명절을 보내는 일반적인 모습에는 많은 유사성이 보인다.
'까끄뵈'라는 라후족의 새해 첫날 아침에는 세심하게 만든 색동옷을 입으며, 마을한가운데 제사음식을 올려두고 발을 엇갈리면서 주변을 도는 것은 땅을 밟아 땅의 신을 자극하여 한해의 평온과 풍년을 기원하는 단체 의식을 치르는 데 이것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고대 마한의 제천의식을 연상시키는 지신밟기와 비슷하다.

 

 

 

★ 관련글과 말

 

- 실크로드, 길 위의 노래/전인평 지음/398쪽 소나무
"‘고구려 유민의 후손’설이 제기되고 있는 태국 라후족의 노래가 강원도 민요와 유사하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 소설 치망마이 / 김병호

 

라후족

우리말

나래 너 서울로 까이요?

나와 너 서울로 갈래?

나래너 타 도죠베요

나는 너 좋아해

나터 너터

나도 너도

서울에 방콕까가 까이요

서울에서 방콕까지 가요

나래 서울로 까이요

나는 서울로 가요

까이라 라베라

가려나 오려나

오빠

아빠

나흐 어이언니

우리 언니

나게 라오

나에게 와요

 

분명 히 우리와 많이 닮았다. 또다른 우리와 닮은 사실. 그들이 마련한 고사상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 고사 음식으로 찹쌀과 깨를 섞어서 만든 인절미와 웃는 돼지머리를 사용한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고사상에 돼지 머리가 놓이면 마을의 최고령 노인이 축복의 메시지를 전한다.그러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어울려 춤과 노래로 즐겁게 마무리를 한다.

 

서울대 이현복 교수의 말

"일설에는 고구려가 망할 때, 당나라에서 고구려 유민 10만명을 포로로 끌고 갔는데 이들이 중국을 거쳐서 태국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으나, 자세한 것은 연구가 이루워져야 한다. " 

 

라후 족이 우리말과 유사한 문장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모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은 태국말과 라후족언어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서울대 이현복교수가 이들의 우리민족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생각이나, 그들의 기원에는 다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우리민족의 일부인지는 생물학적, 유전학적연구와 사료에 대한 검증이 있어야 하겠지만. 이 들이 우리말을 지니며 살아 왔던 것은 이들이 오지에 고립되어 살다보니 기존의 언어와의 충돌이 상대적으로 적어 고유의 언어를 간직하며 살아 왔을 것이다. 또한, 고구려의 유민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역사스페셜에서 방송된 바와 같이 백제의 유민이 아니었을까?

 

백제 22담로의 비밀에서 방송한 바와 같이 백제는 동남아지방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또한, 중국 남부에는 아직도, 백제마을, 백제현등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연구의 대상이라고 본다. 백제가 동남아등지에 건설했다는 담로등에 거주하던 모두 백제인이 하루아침에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원주민에 동화되어 더 이상 순수성은 찾아보기 어렵겠지만, 라후족과 같이 오지에 고립되어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일부 남아 간직하고 있지 않은 것인지 진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스 라엘은 얼마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유태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이스라엘로 이주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그들이 이전에 성서에 기록된 바를 토대로 추적하여 고대에 이주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인 면도 고려하여야 하고 등등 반드시 우리가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 만, 우리는 너무도 간단하게 잊어 버리고 있다. 위의 사실을 모두 단지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이후에 연구가 이루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데 대해서 연구하지도, 한 바도 없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거꾸로 제공하는데도 우리의 관심에는 변화조차 없다. 물론, 연구를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계승자인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20여년 전에  일간지 신문에 실렸던 내용.

 

탐험가였는지 관광객이였는지 태국 치앙마이에 갔다가 산중에서 정신을 잃었는데

원주민에 의해 구조되어 며칠을 그곳에 기거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삼일 있으니 말이 통하고 생활 방식이나 애들의 놀이가

우리네 어렸을 때와 똑 같다는 것이였다.

나는 깜짝 놀랐는데,  수 년전에 한글날을 맞이하여 우리글을 세계속에 심는다는

프로그램에서 한글을 배우는 태국 치앙마이 라후족이 나왔다.

라후족은 중국 남부에도 많은데 우리 언론이나 여러 봉사 단체들은 치앙마이로 몰린다.

  

한민족 후손임이 분명한 라후족 []

 

 

 

 

 

라 후 족 - LAHU (무서, 무수르 Musur)

전체촌락수 421

전체가구수 13,307

전체인구수 73,252



* 이동경로


- 라후족들이 자신들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농우는 어디며 또 북방 흰 눈이 내리는 나라는 어디일까?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가 망한 다음해 당나라는 20만 명이 넘는 고구려 사람들을 붙잡아 갔다가 돌려보냈는데 또 다시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당나라는 수만 명의 고구려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중국 서북쪽의 불모지 농우에 내팽개쳐 버렸던 것이다.


그 러니까 농우는 지금의 청해성 동남부와 감숙성 남부, 한때 라후족들이 살았다는 전설 속의 장소 농우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흰눈이 오는 나라는 한반도와 만주 벌판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지금도 한국 사람이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 흔적처럼 남아 있다.


- 라후족은 원래 티벳과 가까운 중국의 운남성일대에서 살았다. 후에 중국 정부당국과의 분쟁에 휘말리게 되어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한족의 압제에 견디다 못한 대부분의 라후족은 미얀마로 넘어갔고, 그 일부는 태국과 라오스로 넘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라후족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태국으로 넘어왔다. 오늘 날 대부분의 라후족은 북부지방인 치앙라이, 치앙마이, 매홍손 등지에 살고 있다.


- 라후족의 태국식 명칭은 '무서 (또는 무수르)' 인데 이는 사냥꾼이라는 뜻의 미얀마어에서 따온 말이다. 하지만 모든 라후족은 무수르라는 명칭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라후라고 부르고 있다. 라후족에는 라후 니(붉은 라후), 라후 나(검은 라후) 라후 시(노란 라후) 라후 푸(흰 라후) 및 라후 셸레 등의 하위부족이 있다.



* 언어


- 라후족 언어는 아카족과 리수족 언어와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으므로, 통역하는 사람이 없어도 서로의 언어를 알아 들을 수 있을 정도이다. 라후의 언어중에는 고대 중국어에서 차용한 단어도 있다. (이경우 중국에서 차용한것이 아니라 중국이 차용해서 쓰는것임)


- 라후족 사람들은 대부분 라오타이어와 라오어를 할 줄 안다. 연안어를 할 줄 아는 라후족도 있고, 미얀마에서 이주해온 이들은 미얀마어를 할 수도 있다. 1920년대 이후 라후 나(검은 라후)족의 문자는 기독교 공동체 사이에서 발전하여 확산되고 있다.                              
 


* 촌락 및 가옥


- 라후족은 전통적으로 산의 중턱에 촌락을 이루고 산다. 촌락은 대체로 규모가 작으며, 가옥은 마을의 도로변에 짓는 경우가 많다. 촌락의 어떤 지점에서는 세로로 반을 쪼갠 대나무 줄기로 수로를 만들어 물을 멀리까지 보내기도 한다. 이 대나무 수로는 기둥을 세워 지탱한다.


- 촌락마다 눈에 띄는 장소에 제례를 치르는 곳을 두고 있다. 라후 셸레의 마을에서 이런 장소는 축제나 행사때 신성한 춤을 추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라후 니(붉은 라후) 촌락에는 이 장소에 자신들이 믿는 신의 제단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기독교를 믿는 라후 나(검은 라후) 와 라후 시(노란 라후) 의 촌락에는 교회가 서 있다.


- 라후족 가옥은 작고 가볍게 지어진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은 대나무와 야자수 잎을 이용하고, 통나무로 기둥을 세워 단 하룻만에 후딱 집을 만들어 버린다. 주택내부에는 한 두 개의 침실과 거실이 있으며 난로가 적어도 하나씩은 마련되어 있다. 방 한가운데 난로를 두어 취사에 이용한다.


- 라후는 고생을 해서라도 부슬부슬한 안남미보다는 찰기가 있는 찹쌀로 지은 밥을 먹으려 든다. 때문에 라후족의 마을에서는 항상 찰기진 밥을 먹을 수 있기도 하다. 라후족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된장이나 김치 등도 있다. (물론, 고춧가루가 없는 하얀 배추절임같은 것이다. 한국의 김치가 붉은 것은 고춧가루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부터이다.)



* 경제와 풍습


- 라후니(붉은 라후) 와 라후나(검은 라후) 는 주로 아편을 재배하며 이는 고추 및 야생조류고기 말린 것과 더불어 중요한 현금수입원이 된다. 또한 벼와 옥수수와 그밖의 다양한 채소류를 재배한다. 게다가 돼지와 닭도 키우는데 이것은 팔기 보다는 먹기 위한 것이다.


- 농사는 주로 화전을 이용해 짓는다. 대부분의 경지는 기껏해야 삼년정도만 곡식을 심고 그 후엔 내버려두어 갈대숲이 된다. 수렵 또한 라후족 경제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한다. 사냥한 짐승은 식용으로 쓰기도 하고 평지에 사는 이들에게 팔기도 한다. 라후 셸레족도 화전민이며 2차 현금수입원으로 돼지를 기른다. 고추도 환금작물로서 점점 중요해 지고 있다.


- 라후의 여인네들 역시 어릴때부터 자수를 비롯한 뜨개질을 배운다. 처녀들은 부지런하여, 자신이 입을 옷 이외에 미래의 신랑이 될 사람의 옷까지도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남자들 역시 부지런하여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 일을 시작한다.


- 라후족에게 있어 음악과 춤은 생활속에 배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상 즐거운 노래소리가 울려퍼지는 마을에는 축제도 자주 벌어진다. 축제날이 되면, 여자들은 그동안 준비해 두었던 예쁜 옷을 입고나와 춤을 추고, 남자들은 풀잎으로 피리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한다. 대나무를 이용해 '여러개의 관이 달린 스코틀랜드식의 피리'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불기도 한다.


- 마을 사람중에 한명이 병이 나면, 사람들은 그 주위에 모여 춤과 노래를 부르는 의식을 하여, 악귀를 쫓아 낸다. 마을의 부족장은 제사장의 역할을 함께 하여 결혼이나 장례를 주관하고,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부족장의 권한은 막강하여, 마을은 부족장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 따라서 부족장이 죽거나 새로운 부족장이 들어서면, 마을의 이름도 바뀌게 된다.


- 라후족은 콩을 쑤어서 만든 된장을 먹는다. 우리나라의 된장과 거의 흡사한 것이며, 야채를 소금에 절인 '와찌' 라는 것도 먹는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김치와 비슷한 것이다. 명절이 되면, 찹쌀을 대나무통에 넣고, 숯불속에 넣어 밥을 쪄 먹는다.


- 라후족의 음식은 김치·된장 등 우리 음식과 비슷한 것이 많아 잘만 찾아 먹으면 식사때 고민스럽지 않다.불편한 점은 무엇보다 고도가 높아 도착해 며칠동안은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머리가 띵하고 무기력해진다.



* 잊혀진 우리 핏줄 아카 라후 리수


- 소수 민족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태국의 고산족이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 군사에게 포로가 되어 잡혀가 오지에 버려졌던 고구려의 후손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구려 본기에 의하면 당나라 고종이 고구려인 3만 8천 3백호를 잡아가 중국 남쪽 광막한 땅에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학자들뿐 아니라 소수민족 출신의 호례극이라는 중국 학자도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

 

이들 고산족들은 고구려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고, 결혼 때 닭을 옆에 두고 식을 올린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은 것도 우연으로 돌릴 수만 없는 고구려 옛 풍습 그대로다.


아카족 같은 경우는 구슬을 머리에 달고 장식하기를 좋아하는데 이 또한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중국 후한서에 '동이족은 구슬 장식을 즐긴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 북한 사투리 '나 메홍손 가메'

학 자들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한국 여행자들이라면 이들이 우리 핏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절 때 색동옷을 입는 것이 그렇고 태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끈기있는 찰벼를 산간에서 재배하는 것도 그렇다.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먹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무 엇보다 신비한 것은 이들의 말이 중국이나 태국말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 아니고 우리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라는 것이다. 라후족이이나 아카 리수족이 한결같이 나를 '나'라고 하고 너를 '너'라고 하는 것을 들으면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지구상에 한국인 말고 어느 민족이 나를 나라고 하고 너늘 너라고 할 것인가 말이다."나 매홍손 가이메이" 라후족의 말로 나 매홍손에 간다는 뜻이다. 이 말을 어찌 들어보면 "나 매홍손 가메" 라는 북한 사투리만 같지 않은가? 어쨋든 이들을 만나면 우리와 같은 핏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들을 우리 민족이 아니고는 세계의 어떤 민족과도 동일시할 수 없을 것이다. <최승언(자유기고가)



* 우리와의 유사점


- 외모도 태국보다는 우리네와 더 비슷했다.

- 집안의 아궁이를 쓰는 것도 우리네와 닮았다.

- 명절 때 색동옷을 입는 것

- 태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끈기있는 찰벼를 산간에서 재배하는 것.

-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먹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 이들의 말이 중국이나 태국말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 아니고 우리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이라는 것이다.


- 고구려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고, 결혼 때 닭을 옆에 두고 식을 올린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은 것도 우연으로 돌릴 수만 없는 고구려 옛 풍습 그대로다.

- 라후족·아카족 등이 개고기를 먹는다.


- 라후족도 아기를 낳으면 문밖에 인줄을 쳐 일정기간 외부 사람들이 집안으로 못 들어오게 한다고 했다.라후족의 인줄은 지푸라기를 사용해 왼새끼를 꼰 후 새끼줄 사이사이에 창호지·숯·빨간고추(사내아이의 경우)·푸성귀를 꽂아 놓는다.


그런데 탐사팀을 놀라게 한 것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인줄에 푸성귀를 꽂았다고 하는데 라후족은 지금도 푸성귀를 꽂는다는 사실이었다


- 라후족의 명절이나 제사에서 찾을수 있는 유사성

라후족의 설은 우리나라 처럼 1년중 가장 큰 명절로 떨어져있던 가족과 만나고 이웃 부락과의 교류를 통해 한해동안의 풍년과 평온을 기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특정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농사에 적절한 시점에 따라 부락마다 해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명절을 보내는 일반적인 모습에는 많은 유사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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