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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에게 있어 아시아 조선이란!

작성자최두환|작성시간10.11.07|조회수231 목록 댓글 1

나에게 있어 아시아 조선이란!

 

  많은 분들께서 본 중앙아를 고려/조선의 중앙/중국으로 주장하는 견해에 대해 ‘유럽조선’이나, ‘중앙아 조선’라는 표현을 하신다. 또한, 아직도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혼동이 되시는 분들이 계실 줄로 충분히 짐작이 간다. “첨엔 중국대륙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중앙아시아! 참 정신 못 차리는구만.“ 이라고 하실 수 도 있다.

 

 필자는 비록 아마추어에 불과한 력사학자도 아닌 일개 시민이지만 실제로 15년이상을 력사에 관심을 두고 중국사와 한국사를 섭렵했다는 오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여년 이상을 유럽사와 중앙 아시아사를 공부하는데에 미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던 것이 조선사를 새롭게 이해하는데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특히 때때로 미아처럼 헤맬 때 마다 진심어린 격려와 비평을 해주신 회원여러분의 도움이 정말로 컸다. 이를 테면 ‘흑룡강의 위치’라든가 ‘조선중앙의 위치’, ‘왜의 지리적 위치비정’문제 등등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실크로드에 대한 지식과 중앙아시아사의 접근은 신선하고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짬짬히 틈을 내어 책을 보고, 때로는 구글어스에 매달려 밤을 지새우기도 하면서 하다못해 유럽사 및 여러 중앙아 관련사와 고대 조선, 중국사를 다시 살펴보면서 지난 10여년 이상의 본인이 쌓아왔던 중국사에 대한 견해와 지식이 송두리째 이 바뀌어졌음은 물론이며, 인생을 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시야가 달라졌다.

 

 그렇다면 왜 본인은 력사학자도 아닌 것이 어떻게 보면 터무니 없고 황당하며 과대망상이라는 비판까지 들어가면서도 아시아 조선을 주장하는 리유는 무엇인가? 그저 두음법칙이 먼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문도 제대로 모르고 독해력도 딸리는데, 그저 조선이 아시아를 지배했다는 허황된 환타지 소설을 통해 나 자신의 소설을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인가?아니면 전문가들의 말을 신주단지로 모시고 그냥 앵무새처럼 그렇게 외쳤던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아니다. 결단코 그러한 것은 필자 자신의 허황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 대륙조선사연구회를 통하여 력사만 접한 것이 아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부터는 올바른 인생관을 정립할 수 있었고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기초를 다질 수 가 있었다.

 

 력사는 인간사이면서, 하나의 서사시이며, 그 서사시속에 나의 마음, 나의 인생이 모두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인생을 한 인간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진실된 력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왜 력사가 왜곡이 되었는지 자각하며, 그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을 알면, 참으로 알게만 되면, 알아서 내 몸으로 직접 실천만 할 수 있다면 세상은 행복이라는 열매를 나에게 안겨 줄 것이다.

 

  그럼 아시아 조선이라는 틀에서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사관이 무엇인가? 바로 ‘아시아 조선’이다. (굳이 여러 문헌을 들고 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이미 최두환 선생님의 저서 <충무공 리순신 대한민국에 고함 (최두환) 서울, 푸른솔, 2008> 을 읽고 계시고 또한 이미 읽었을 것이기에 필자의 말이 무슨 말인지 쉽게 리해가 가리라 생각한다.)

 

 조선사를 아는데 있어 조대명 (朝 代 名) 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조대명은 하/은/주/진/한/당 등등의 현 중국의 력사로 재편이 되어있다. 그러나 여러 주요 필진들의 칼럼과 본인의 공부를 통해서 판단한 결론은 이 중국의 주체가 조선이라는 것이다. 이 중국/중조/천조의 주체는 누가 머래도 조선이다. 이것은 필자의 글 뿐 아니라, 조선왕조실록과 25사 신증동국여지승람/해동역사/동사강목/삼국유사 등등이 말해주고 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그렇게 나와 있는 것(일부 왜곡부분이 있긴 하지만)을 ‘21세의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다고 자부하여 오만에 빠져 있는 우리가 객관적이고 실증적이지도 못하게 사료를 고정관념으로 혹은 반도사관이라는 망령된 사관에 의하여 접근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오류에 그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복잡하게 말을 안해도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는 조선은 중조(중앙조정)와 동국조선이 섞여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제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명제 앞에 우리는 그 력사의 주체를 분명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부산포가 있는 임진왜란 아니 만력의 난을 처음 직격탄으로 맞은 곳은 천자가 있는 조선인가? 과연 그런 것인가? 혹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필자는 감히 그것은 착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최두환박사의 이번 저서에도 그 내용을 소경왕과 선조로 구분하여 설명하셨습니다.) 소경왕은 朝鮮東國의 왕이다. 그가 있는 곳은 王都이지 皇都가 아니다. 그는 서쪽으로 피난을 갔다. 그러면서 황제에게 천군/중앙군을 요청한다. 그 중앙군을 요청한 소경왕이 있었던 중심지역은 현재의 중국대륙이다. 그 지리적 위치는 바로 현 낙양/개봉일대 이다.

 

  이것은 기존의 대륙사관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과연 조선이 당시에 현 서안과 낙양을 중심으로 있었는데 과연 제후가 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후가 맞다. 그 실상을 보면 그 제후는 소경왕이고 진짜 황제 선조는 지금의 신강성 투르판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황제/천자를 우리주군/우리임금 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현 낙양중심의 제후는 바로 해동/동국/조선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 동국조선만 남겨놓고 새롭게 만든 력사조작질의 장난질에 동국이 조선의 전부인양 꾸며져 우리는 그 장난에 이제껏 속아왔던 것이다..

 

 만력의 난 당시 기록된 왕조실록에 조선의 황상이 없었다면 내가 아무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분명히 명은 조선의 중앙정부이며, 명조를 이끄는 사람은 선조이다. 이것은 하늘이 두쪽이 나도 확실한 력사적 명제이다. 즉 이 진짜 황제 선조를 명 선종으로 바꿔놓고 다시 선조를 제후로 바꾸어 놓았다. 그에 따라 햇갈리게 조선을 東國만 남겨 놓은 것으로 위조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하며, 그래서 그토록 명조와 동국조선이 의리와 형제/以小事大와 以大事小/脣亡齒寒 들먹이며 왜적들이 료동으로 가지 못하게 죽기 살기로 조선제후를 모아 막은 것이다. 그 풍신수길이 가려했던 료동은 오늘날의 감숙서부으로 판단되며 감숙성 소륵하(혹은 감숙성 천수지역)가 그 동국의 압록강이며, 날조된 의주가 있는 곳이다.

 

 본시 력사조작자들은 신강성과 중앙아 특히 신강성의 지명을 동국으로 이식하는 작업을 초반에 하였다. 그것이 바로 중국고금지명대산전과 중국25사의 재 편찬이었으며, 그 후에 다시 중국대륙을 중국/중조으로 지명이식/조작하고 조선을 동국만 남겨놓고 반도로 다시 집어넣은 것이 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반도에 있는 지명들은 신강성과 중앙아의 어름과 그 중앙에 있었던 것들이 된다. 이 일을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들의 잔인한 살육 앞에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필자의 조부나 외조부의 말씀에 의하면, 당시 글 좀 읽는 사람은 죄다 잡아 죽였다고 했다. 그래서 하도 많이 죽으니까 필자의 외조부는 본인의 이모님들과 삼촌 어머님께 학교도 가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 리유도 말씀하시지 않고 돌아가셨다.

 

  우리는 조선이라는 한폭의 산수화를 그리기 전에 밑그림을 잘 그려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붓질이 중구난방이 되어서 그리다만 그 종이는 반드시 버려지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조선의 산수를 적어놓은 산해경을 잘 이해하고 사료의 모순을 파악하여, 옥석을 가려내 조선이라는 진경산수화 한 폭을 만들어 내야한다. 반드시 만들어 내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의 자존심이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을 내세운다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살림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진실은 역시 진정으로 찾으려는 지극한 성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하늘 또한 그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게 되어있다.

 

  그것이 내가 력사를 공부하는 리유이고, 산해경을 조선지리의 중심으로 잡고 부족한 실력이지만 글을 쓸때마다. 산해경의 해내경 첫머리를 지겹도록 인용하는 리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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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Living Reminder | 작성시간 24.03.14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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