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조선은 일본에 제2차 수신사를 파견한다. 예조참의 김홍집을 정사로 한 58명 규모의 인원이었다. 이 수행원들 중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종두법을 시행한 것으로 유명한 지석영도 있었다. 지석영은 그의 스승인 박영선이 1차 수신사로 다녀오면서 종두법에 관한 책을 가지고 오자 관심을 가져 부산에서 일본 의사에게 종두법에 쓸 두묘를 얻어 예방접종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완화군이 천연두에 걸려 죽으며 종두법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져 2차 수신사에 참여하여 두묘의 배양법을 배워 와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종두법을 실시하게 된다.
이 대 수신사 일행은 종부법 말고도 조선정국을 뒤흔들 책 한 권을 가지고 귀국하는데 바로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이하 조선책략)이란 제목의 책이었다. 이 책은 주일청국참사관으로 있던 청국인 황준헌이 저술한 책으로 그 내용은 요약하자면 조 ·일 ·청 3국은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배워야 한다는 것, 러시아의 남진 세력을 막기 위해서는 동양 3국이 수호하여야 하며, 미국과 연합하는 것, 즉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의 논리가 나타나 있다.
조선을 위하여 시급히 힘써야 할 일은 러시아에 대한 방비로, 그것은 '親中國 結日本 聯美國'하여 자강을 도모함이다. '親淸國'해야 하는 이유는 중국은 동서북으로 러시아 국과 국경이 연하여 있고 땅이 넓고 물자가 풍부해서 아시아의 형승을 차지하고 있어서 천하에 러시아를 제어할 자가 중국만한 나라가 없겠고, 중국이 친한 나라가 조선만한 나라도 없다.…금일 조선이 중국과 가까운 것을 옛 보다 더 힘을 써서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조선이 중국과 가까운 것을 옛 보다 더 힘을 써서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조선이 중국과 '一家의 誼'가 있는 것을 알게 한 연후에야 러시아 인이 그 형세가 외롭지 않음을 보고 조심하게 될 것이고…나라의 근본이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結日本'해야 하는 이유는 중국 이외에 조선과 가장 가까운 나라는 일본이니 오늘날 와서는 북방의 豹虎가 마찬가지로 어깨 뒤에 걸터앉아 있다.…일본과 조선은 輔車相依之勢에 있으며 脣齒之交를 맺으려 하고 있다. 조서는 마땅히 적은 미움을 버리고 대계를 도모하여 옛날의 친선을 닦고 밖으로 손을 잡는다면 타일 양국의 기선, 철선이 일본해 중에 종횡하여 外侮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聯美國'하는 이유는 그 나라가 독립한 이래 워싱턴의 유훈을 지켜 예의로 나라를 세웠고 타국의 토지와 인민을 탐하거나 정치에 간여하려 하지 않는다. 청국과 조약을 맺은 지 수십 년인데 아직 티끌만한 틈이 생기지 않았고 일본과 왕래하면서도 통상으로 달래고 練兵을 권하며 조약 개정을 도와주는 것은 만국이 다 아는 바이다. 나라의 강성함은 유럽의 강대국과 같으며, 동서 대양에 연결하고 있어서 늘 약소국을 도우며 公義를 유지하여 유럽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고 있고, 더욱 상업의 이해관계에서 동양의 평화를 바라고 있고 최근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선과 조약을 맺을 것을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과 연결한다면 가히 화를 막을 수 있다. 모름지기 조선은 3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소식을 통해야 할 것이다.
({修信使記錄}2, 黃遵憲의{朝鮮策略}) *교학사 {국사교육자료집} 재인용
귀국한 김홍집은 저자 황준헌에게 직접 받은 이 책을 고종에게 바치고 고종은 이를 읽고 대신들에게 내용을 검토하게 하였다.
김홍집이 귀국하자 조선 책략 책자를 헌납하였고 이날 次對에서 왕이 이 책자의 시비 및 러시아 세력의 방지책을 下詢하다. 영의정 李最應이 계언하여 이 책의 내용이 믿을 만한 것은 이를 믿어 채용해야 할 것이다.…소위 邪學이라고 하는 것은 마당히 척퇴해야 할 것이지만 國規, 기계, 재용이 한결같이 옛과 같지 아니하므로 러시아 방지책은 제신과 상의하여 함께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하다.…청국과는 다시 더할 것이 없고 일본과는 근년 수신사가 왕래하고…우리나라가 해로 요충에 자리잡고 있어서 미국과 聯交하는 것은 좋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들이 문서를 보내오면 좋은 말로 이에 답하고 그들이 해난을 고하였을 때 이를 구휼한다면 그것으로 먼 나라와의 사이가 좋아지고 상통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承政院日記} 高宗17년 9월 8일) *교학사 {국사교육자료집} 재인용
하지만 이는 곧 유생들의 대대적인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이듬해 2월 26일 마침내 영남 남인계열 유생들의 <영남만인소>가 대궐에 접수된 것이다. 유생들은 조선책략의 내용이 위험한 사사이라 여겨 이를 조선에 가져온 김홍집을 극렬히 비난하며 조선책략에 나오는 외국과의 교류는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라 주장하며 조정의 개화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일본은 이미 우리의 수륙 요충 지대를 점거하고 있어 그들이 우리의 허술함을 알고 충돌을 자행할 경우 이를 제지할 길이 없다.…미국을 끌어들일 경우 만약 그들이 재물을 요구하고 우리의 약점을 알아 차려 어려운 청을 하거나 과도한 경우를 떠맡긴다면 거기에 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러시아는 우리와 혐의가 없는바, 이제 공연히 남의 말만 들어 틈이 생기게 된다면 우리의 위신이 손상될 뿐만 아니라 만약 이를 구실로 침략해 온다면 이를 구제할 길이 없다.…서학에 종사하여 재화를 이루고 농, 공을 일으킨다 하고 있지만 원래 우리에게도 옛 부터 재용과 농공에 대한 훌륭한 법규들이 있는 바로써 그것은 서학에 종사함으로써 있었던 것은 아니다.…야소교 전래가 해롭지 않다고 한 것은 사교를 조선에 유포시키려는 간계이니 周(周公), 孔(孔子), 程(程子), 朱(朱子)의 교를 더욱 밝힘으로서 온 백성이 단결하여 그 사람 귀류들을 물리쳐야 한다.
({日省錄} 高宗18년 2월 3일, 萬人疏) *교학사 {국사교육자료집} 재인용
이에 고종은 상소를 올린 이만손, 강진규를 의금부에 하옥시키고 황재현, 홍사중 등을 유배시키는 한편 규탄의 대상이 된 김홍집을 파직시키고 유생들의 상소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생들은 계속적으로 외세배척의 입장을 보이며 그 해7월에는 경기, 충청, 강원, 전라의 유생들이 총궐기하여 상경해 대궐 앞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기까지 하였다. 이에 고증은 이만손에게 귀향을 명하지만 그가 다시 상소를 올리려 하자 결국 유배 조치를 하고 만다.
이런 가운데 이항로의 제자 홍재학은 대신들에 대하여 왜국을 끌어들인 주모자이며 조선책략 역시 그들이 의도적으로 쓴 책이라고 하는 등 강한 비난을 가하였다. 이는 조정 대신들의 분노를 사 결국 홍재학은 대역죄로 처형당하고 만다. 이어 유생들에 대한 유배 등의 각종 탄압이 뒤를 잇는다.
결국 조선책략은 결과적으로 조선 정국에 있어서 매우 큰 파장을 몰고 온 원인이 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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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운영자]yemac 작성시간 07.03.03 지난 1회 3급시험의 기억이 새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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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운영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03.05 저도 기억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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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세종별 작성시간 07.04.17 이만손은 위정척사파입니다. 위정척사는 나라를 지키고 외세를 배척하는 봉건,反외세의 가치관을 말합니다. 이만손의 제자인 강진규가 영남만인소를 작성하게 됩니다. 또 한 사람 최익현의 개항 5불가소론이 있으며, 최익현은 단발령을 반대하였고, 1906년 병오의병에 주도하다가 이듬해 6월 체포되어 대마도(쓰시마섬)에서 운명하게 됩니다. 참고로 위정척사파는 을미사변(민비시해사건)이후에 꾸준히 의병 활동에 가담하며 군대해산을 계기로 더 많은 활동을 재개합니다. 후에 독립운동에 가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