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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사 - 의미있는 전체를 강조한 학파 : 형태주의

작성자행복도움이|작성시간03.11.24|조회수1,067 목록 댓글 0
형태주의는 구성주의의 요소론적 심리학에 반대하면서 의미있는 전체를 강조한 심리학파다. 이 학파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베르트하이머의 논문을 계기로 독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형태주의는 1912년 이후 등장해 1930년대 미국으로 전파되었고, 미국 기능주의와 융화되면서 학파로서의 존재 의의는 퇴색했다.




형태주의의 출현 배경

형태주의는 행동주의에 반발해서 생긴 학파라기보다는 구성주의에 반발해서 생긴 학파다.
형태주의는 기존의 심리학이 내성을 다루었다고는 하나 추상적 분석과 기계적 결합으로 심리과정을 설명하는 것게 반대했다. 그리고 전체적 경험 중에는 요소가 갖지 못한 성질도 있음을 중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주의의 관점은 형태주의가 출현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형태주의와 비슷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형태주의가 출현하는 데 영향을 미친 사상은 크게 현상론과 그라아쯔 학파의 형태질이다.

먼저 형태주의의 영향을 준 학자들은 현상학적 연구의 대표들이라고 할 수 있는 옌슈(Jaensch, 1883-1940)와 캇츠(Katz, 1884-1953)다.
그들은 뮐러의 제자로 옌슈는 1908년 뮐러(Muller)에게 제출한 『시지각의 분석』, 1923년의 『지각세계의 구조』에서 이미 현상론적 연구를 주장했다. 또한 캇츠는 1911년 『색체의 출현법』에서 종전의 색채 연구가 물리적 특성에 얽매여 있음을 비판하고, 체험적 색채의 출현법을 강조하면서 색채를 표면색, 공간색, 평면색으로 구분했다.
이들은 그라아쯔(Grazer)학파의 마하가 주장한 체혐적 현상주의, 현상적 실증주의와 더불어 현상학적 심리학의 필요성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형태주의의 형태라는 말에 직접 영향을 준 것은 브렌타아노의 직계인 그라아쯔 학파에서 강조한 형태질(Grstalt quality)이다.
1890년에 에렌펠스(Ehrenfels)는 단순한 요소의 합(화一和) 이상의 것으로 다른 요소의 조합에도 전이될 수 있는 성질을 발견했는데, 그것을 형태질이라고 불렀다.
그라아쯔 학파의 지도자인 마이농(Meinong)도 기초를 두는 내용과 기초가 되는 내용을 구분하고, 전자는 요소 또는 하위의 것이며, 후자는 전체 또는 상위의 것, 즉 형태질이라고 불렀다.
결국 그라아쯔 학파는 전체를 요소와 형태질로 양분함으로써 형태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의미있는 전체를 강조

그라아쯔 학파는 요소와 형태질을 같은 선상에 놓고, 전체는 요소와 형태질로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형태주의와 다를 바 없지만, 형태주의 심리학에서의 형태는 요소의 단순한 결합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형태는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직접 부여된 체험이고, 요소는 이차적인 분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형태주의 사상이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형태주의 학파는 기존의 형태주의 사상에 이론적 체계를 부여하고, 실험을 통해 그 이론을 뒷받침하려고 시도했다.

형태주의 학파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분트(Wundt)의 요소론적 심리학에 반대하고 의미있는 전체를 중시하는 심리학파다.
의식은 요소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며, 부분에서 전체를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형태주의는 인간에게 직접 부여된 전체적 구조와 성질을 형태라고 명명하고, 그러한 형태를 중심 개념으로 삼고 있는 심리학의 흐름이다.

인간의 심리적 경험은 통일된 전체일 때 비로소 유의미해지는 것으로 추상적인 요소의 무의미한 결합에 의해 형성된 것도 아니며, 분석이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이차적인 문제다. 비록 분석을 통해 발견된 요소라고 할지라도 항상 불변하는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의해 부분의 성격이 규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형태주의는 부분보다는 전체적인 성질이 더욱 근본적인 것이도 중요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이 한 덩어리로 조직되어 유의미한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형태(Gestalt)다.
Gestalt를 영어로 표현할 때 적합한 단어는 없지만, shape, form, configuration을 조합한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3 인 학파

형태주의 심리학은 초기 행동주의를 왓슨의 1인 학파라고 한 것처럼 형태주의 학파는 베르트하이머(Wertheimer), 쾰러(Kohler, 1887-1967), 코프카(Koffkaa, 1886-1941)에 의한 3인 학파라고 할 수 있다.

형태주의는 경험적이고 현상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이다.
이러한 형태주의의 사상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라아쯔 학파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학파로서의 성립은 이들 3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특히 그 중에서도 형태주의 학파의 기본적인 착상과 계획은 베르트하이머에 의해 이루어졌다.

베르트하이머는 프라하 출생으로 법률을 공부한 후에 심리학에 흥미를 껴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하고, 뷔르쯔부르그 대학의 퀼페(Kulpe)의 지도로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10년 비인에서 라인 지방으로 기차 여행을 하던 중에 돌연히 시각 운동을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역에 내려 완구점에서 요지경(stroboscope)을 구해 여관방에서 도형을 그려 놓고는 운동시(運動視)를 연구했는데 그 연구가 형태주의 학파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후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슈만이 개발한 순간노출기(tachitoscope)를 사용해 실험을 하던 중 쾰러와 코프카가 찾아와 함께 연구를 하였고 마침내 형태주의 학설을 성립하였다. 쾰러와 코프카는 베르트하이머가 실험을 할 때 주로 피험자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베르트하이머는 1929년에 슈만 후임으로 프랑크푸르트의 교수가 되었으나 나찌(Nazis)의 박해를 피해 1934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신사회 연구소의 교수로 있다가 일생을 마쳤다.




파이 현상

베르트하이머는 1912년 『형태시에 관한 실험적 연구』라는 논문에서 소개한 소위 가현운동(apparent movement)을 통해 운동지각이 종래의 요소적 입장으로는 설명될 수 없음을 실증하였다.
이 실험의 결과와 논문은 형태주의 심리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암실에서 a, b 두 개의 선분을 보여주고, 이 두 선분을 적당한 간격(약 0.006초)으로 보여주면 a 선분이 점선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베르트하이머는 이 현상을 파이현상, 또는 가현운동이라고 불렀다.
이는 실제로 운동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마치 운동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곧 운동이 요소를 초월한 전체적 성질을 지지고 있으며, 하나의 형태(Grstalt)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실험 이후 베르트하이머, 쾰러, 코프카 3인은 구성주의를 비롯한 심리학의 요소주의와 감각주의, 연합주의에 강력한 도전을 시작했다.





유인원의 통찰 학습

베르트하이머와 함께 형태주의 학파를 형성한 쾰러(Kohler, 1887-1967)는 베를린 대학에서 1909년 슈톰프(Stumpf)의 지도로 학위를 받았고, 1915년까지 청각에 관한 연구를 했다. 1910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강사가 되면서 베르트하이머, 코프카와 더불어 공동 연구를 했다. 그 후 1913년 남서대양의 테네리페 섬에 있는 유인원 연구소장으로 근무 중에 1차 대전이 일어나 1920년까지 귀환하지 못하고 유인원 연구를 계속했다.

쾰러는 『유인원의 지능연구(1917)』를 통해 유인원이 장애에 봉착했을 경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연구하였다.
문제 해결이란 목적물 또는 상황과 도구의 관계성을 발견하는 것이며, 관계를 잘 발견할 수 있는 정도를 지능으로 보았다.
실험에서 원숭이가 상황과 도구 관계를 발견해 내는 과정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는데, 쾰러는 이런 현상을 통찰 학습(Insighting learning)이라고 불렀다.
사고(思考)는 앞서 살펴본 바 있는 쏜다이크의 시행착오 학습처럼 단편적인 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적 지각을 수반한 통찰에 의해 일어나고 있었다.

이 연구에서 쾰러는 베르트하이머와 같이 형태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임을 분명히 앴다. 또한 유인원과 닭이 개개의 절대 자극이 아니라 자극간의 상대적 관계를 파악한다는 사실도 발견햇다.
가령 100룩스의 조도와 150룩스의 조도인 두 가지 밝기를 구분해서 발든 쪽에 반응하는 것을 학습한다면, 다른 밝기인 150룩스와 200룩스에서는 200룩스의 조도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각의 상대성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역학적 상관관계가 이루어지는 장(場)

쾰러는 1922년에 베를린 대학의 교수가 되었는데 그것은 『물리적 형태(1920)』라는 책의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쾰러는 물리적 형태는 서로 연결된 관을 흐르는 물이나 자기장에 통하는 전류와도 같은 것으로 물리적인 힘의 분포는 물이나 자기장에 통하는 전류와도 같은 것으로 물리적인 힘의 분포는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관계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강도의 수준변화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쾰러의 주장을 수용해서 형태주의 심리학은 전체를 논하고, 전체는 각 부분에서, 그리고 각 부부은 다른 부분에 의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역학적 상관관계를 갖는아는 입장을 취했다.
마치 금속으로 이루어진 망에 전류를 통한 것과 같이 일부의 변화는 다른 전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역학적 상호관계가 이루어지는 영역을 장(field)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장의 개념은 레빈(Lewin)에 의해 사회적 장의 개념으로 확장되어 집단역학, 사회심리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쾰러는 지각과정의 기초로서 신경학적 이론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뇌의 형태적 기능은 전류에 의하며 전류는 연속적 전도체인 뇌조직에 분포되어 지각의 조직적 과정에 특수한 영향을 미친다. 뇌의 물리적 형태와 생리적 기능의 형태, 심리적 과정의 형태가 서로 대응한다는 이런 관점은 동형이질설(同型異質設-isomorphism)이라 한다.

쾰러는 형태의 관계성, 지각의 상대성, 역학적 장의 개념을 통해 형태주의의 발전에 공헌했다.




형태주의의 미국 전파

코프카(Koffa, 1886-1941)는 3인 학파 중에서 형태주의를 처음으로 미국에 소개하였다. 독일의 형태주의자 3인 모두 나찌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코프카는 1924년에 미국으로 와서 1927년에는 스미스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에 앞서 1922년에 코프카는 독일에서 형태주의 심리학을 미국에 소개하는 논문을 쓴 바 있다. 베르트하이머와 쾰러는 코프카보다 10년이나 늦은 1934년 미국에 망명했다.

코프카는 쾰러와 마찬가지로 베를린 대학의 슈톰프에게서 1909년 학위를 받았고, 1909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심리학 연구실 조교가 되어 베르트하이며, 쾰러와 공동연구를 하게 되었다.

코프카의 최초 저서는 1912년 『표상에 관한 연구』로 형태주의 학파의 고등 정신과정에 관한 설명에 불만을 품고 베르트하이머의 새로운 실험과 설명이 지각뿐만 아니라 사고과정에도 적용되기를 기대하였다. 이러한 기대는 미국으로 이주한 후인 1935년 『형태심리학의 원리(Principle of Grstalt Psychology)』로 나타났고, 코프카는 형태 지각의 장에서 나타나는 형태의 법칙을 제안했다.

형태의 법칙은 유사한 것끼리 묶여 지각하는 유사성의 법칙, 가까운 것끼리 묶여 지각되는 근접성의 법칙, 미완의 것이 완결되어 지각되는 완결성의 법칙, 좋게 연속된 것으로 묶여 지각되는 좋은 연속성의 법칙을 말한다.




전경과 배경의 원리

코프카는 형태의 법칙 이외에 지각에 있어서 전경과 배경의 원리를 주장했다. 지각은 구조 또는 조직을 가지며, 그 구조의 첫번째 원리가 바로 전경(figure)배경(ground)이다.
전경은 배경을 바탕으로 형태를 갖추고 지각의 전면에 나와 있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윤곽(contour)으로 둘러 쌓여 있다.

전경과 배경의 구분에 있어서 형태가 될 수 있는 것은 충분한 형태, 강한 형태, 폐쇄 형태이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앞에서 살펴본 형태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형태는 안정성을 갖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감각적 정보와 감각적 인상에 구애받지 않고 대상을 지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가령 반포에서 바라보는 남산과 광화문에서 바라보는 남산의 감각은 달그지만 사람들은 같은 남산으로 지각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코프카는 지각의 항상성(constancy)이라고 표현했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항상적인 감각은 없지만 항상적인 자극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각은 전체적 구조의 상호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상대성(realtivity)에 의해 지배되며, 쾰러의 조명 실험과 같이 지각의 상대적 차이는 요소의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유지된다.

코프카는 특히 전체 구조는 서로 역동적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쾰러의 주장을 보다 발전시킨 개념으로 이것을 장 역학(field dynamic)이라고 불렀다.
쾰러의 개념을 발전시킨 또 다른 개념으로 심리적 경험의 장 역학과 신체적 과정인 뇌의 장 역학이 서로 대응한다는 심신 동형이질설(Psychopsysical isomorphism)을 실험적으로 뒷받침했다.

코프카는 형태를 사고에까지 확장시켰고, 형태의 법칙, 전경과 배경의 분리, 형태주의의 미국 전파, 쾰러 연구를 확장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생활공간 속의 행동

형태주의의 베르트하이머, 쾰러, 코프카 이외에 독일 출신으로 형태주의의 입장에서 아동심리학, 사회심리학, 집단역학 등에 많은 공헌을 한 심리학자가 있다. 그가 바로 레빈(Lewin, 1890-1947)이다.

레빈은 형태주의 입장에서 동기를 연구했다.
그는 베를린 대학에서 1914년에 학위를 받았다. 1차 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와 베를린 대학에서 강사로 있다가 1932년에 미국으로 망명해 스텐포드, 코넬, 아이오아 대학에 재직했으며, 1945년부터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심리학의 사회적 응용을 위해 부설된 집단역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베를린 대학의 형태주의 흐름 속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행동의 동기였다. 레빈은 형태주의자들처럼 '장(field)'의 개념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인간이 환경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전체적인 상황이며, 행동은 그 상황 속에서 발생한다. 즉 행동은 그 상황 중에 있는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B = f (P. E) ( P=인간, E=환경, f=함수)



레빈은 어느 순간 개인의 행동을 규정하는 상황 전체를 생활공간(life space)이라고 보았다.
생활공간은 앞서 살펴보았던 역학적 장과 유사한 개념인데, 레빈은 생활공간을 위상학(Topology) 개념과 결부시켜 설명하려고 하였다.
위상이라는 개념은 수적 개념이 아니라 순서를 규정하는 공간개념이다. 그래서 위상은 수적이지 않은 수학이다. 마치 고무판에 도형을 그리고 불규칙하게 잡아 늘리면 방향과 거리는 변하더라도 위치의 순서는 변함 없는 것과 같은 원리다.




벡터에 의한 인간 행동의 설명

위상적 생활공간에서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하는 거리는 그 두 점간에 몇 개의 중간적 사상이 있느냐로 결정된다. 객관적으로 짧은 거리도 그 사이에 물리적 혹은 정신적 장애물들이 많으며 실리적으로는 멀게 느껴진다. 이는 곧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으로 결정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생활공간 속에는 어떤 곳은 가고 싶지만, 어떤 곳은 가고 싶지 않으며, 바람직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존재한다. 즉 주위의 사물과 대상들은 정적 혹은 부적 유인가(positive or negative valence)를 가지고 있다. 이때 유인가로 작용하면서 일정한 방향을 갖는 힘을 레빈은 벡터(vector)라고 하였다. 이 벡터가 인간의 생활공간 내에서 움직임(locomotion)을 일으키는 것이다. 움직일 때 각종의 방해가 일어나는데 이것을 장애물(barrire)이라고 한다. 장애물에는 통과하기 쉬운 부드러운 것과 통과하기 어려운 딱딱한 것이 있다.

생활공간의 구조 속에서 어느 순간 행동이 일어날 것이지와 같은 가능성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위상심리학(topological psychology)이며,
현실적으로 어느 방향, 어느 강도의 행동이 일어나느냐를 연구하는 것이 바로 벡터심리학(vector psychology)이다.

레빈의 역학적 개념을 이은 제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도 미완성작업이 완성한 작업보다 기억효과가 크고(Zeigarnik), 중단된 작업을 다시 시도하려는 경향이 있으며(Ovsiankina), 미완성의 긴장을 비슷한 곳에서 보충하려 하고(Lissner), 개인 욕망에도 개인차가 있다(Frank) 등과 같은 심리학 실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레빈의 평가

레빈은 형태주의 분위기 속에서 심리학을 공부하였고, 형태주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동기와 사회적 장면에서의 인간 행동을 이해하려 하였다. 또한 사회적 장의 개념을 통해 집단역학 등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레빈의 위상심리학, 벡터심리학과 같은 수학적 심리학에 대해서는 평가가 찬반 양론으로 갈라진다. 하지만 인간을 실험하기 위해 인간과 인간의 행동을 단편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사회 장면 속에서의 사회적 행동과 정서, 사고 등을 전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보도록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레빈의 심리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레빈 심리학의 수학적 애매성을 지적하고, 그의 주장들이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예리한 관찰력과 창의성,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은 그의 심리학이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심리학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비록 레빈은 형태주의 학파의 3인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형태주의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독일 출신인 레빈이 미국 심리학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형태주의의 평가

형태주의는 구성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심리학파로서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 있다.

첫째, 형태주의는 구성주의를 비롯한 요소론적 심리학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둘째,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는지에 대해 많은 지각적 연구를 바탕으로 기여했다.

셋째, 인간 심리와 행동의 의미있는 단위를 연구대상으로 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과학적 연구를 위해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무의미한 단위로 나누던 심리학의 풍토에 자극을 주었다.

넷째, 인간의 지각,사고,사회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논리적 방법과 과학적 방법을 사용했다.

다섯째,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상대적인 것이며, 자극이나 요소도 상재적일 수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여섯째, 형태주의 사상과 연구업적은 이후 심리학의 흐름과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특히 사회심리학, 집단역학, 지각심리학, 인지심리학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형태주의는 심리학에 많은 공헌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성주의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대립할 학파가 사라지면서 학파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채 그 당시 미국의 주된 심리학 흐름인 기능주의 사상과 통합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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