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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1:1-32 신앙의 금메달

작성자백두-바나바|작성시간10.04.14|조회수14 목록 댓글 0
창11:1-32 신앙의 금메달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려고 하면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주인이 짐을 실어주면 그것을 하루 내내
자기 등으로 그것을 짊어지고 갔다가
저녁때가 되면 또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주인은 그 짐을 낙타에서 내려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주인은 항상 낙타의 상태를 보고
낙타의 상태가 좋으면 짐을 더 싫어 주고
조금 몸이 안 좋는 것 같으면 짐을 좀 덜 쉬어주고
그리고 힘들어 하고 아프면 짐을 실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그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 마음대로 하시라고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바로 그 낙타는 그렇게 날마다 함으로 말미암아 주인 앞에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고 인정받는 낙타가 될 것입니다.
새도 날개가 무겁지만 그 날개 때문에 멀리 날아갑니다.
또 배도 돛을 올리려면 힘들지만 그 돛 때문에 배가 항해해 갈 수 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지는 것이 힘들지만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를 비롯하여 여러 선수들이 금메달을 땄습니다.
바로 금메달을 따는 그 과정을 가만히 보면
김연아 선수도 같은 경우에도 바로 앞에 마오 선수가 하고 나니까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인데 그것을 또 이기고
또 마음에 많은 부담이 있었겠지만 그 부담을 다 털고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또 모태범 선수나 이상화 선수 같은 그 선수들을 보니까
자전거를 탈 때도 꼭 타이어를 뒤에다가 끌고 다니면서 자전거를 타더라고요.
그리고 옆으로 가는 훈련을 할 때는 다른 코치가 큰 팰트를 가지고
가는 방향 반대편으로 끌고 자기는 온 힘을 다해서 반대편으로 가는 훈련을 하더라고요.
코치가 만들어 놓은 모든 훈련의 프로그램에 따라서
그 훈련을 잘 소화했기 때문에 결과가 금메달이 되어서
많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기쁨을 안겨 준 선수가 되듯이
우리도 하나님보시기에 정말로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창세기에서 네 번째에 잘못을 하는 그런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제일 먼저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선악과을 따 먹고 잘못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외의 것을 취하려고 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시기가 나서 아벨을 죽여서
그 죄가 더 커져서 살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은 창세기 6-8장에서 노아 때 경건한 사람들이 세상의 딸들과 결혼을 해서
죄사 관영하므로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을 해서 다 쓸어버립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 네 번째는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보다도 더 높아지려고 하는
그런 사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가 말을 못 알아듣게 했던 내용이 나오고
그리고는 뒤에는 셈부터 아브라함까지 10대를 한 걸음 한 걸음 걸으시면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에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시는
그 걸음 거리가 씌여져 있어서 구속의 역사를 여기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에 아버지 데라와 아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서 하란에 머무는 것까지 나옵니다.

바벨탑을 쌓는 그 일은 잘못된 것이지만
셈부터 아브라함까지 10대를 걸어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에게 다가오는 너무나 귀하게 쓰임받은 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10사람들은 신앙의 금메달을 딴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생이 언젠가는 마무리가 될 텐데
우리 일생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지 않고
정말로 저 분은 신앙생활을 잘 했다고 하는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신앙의 금메달을 딸 것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3절 4절입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우리가 어떻게 신앙의 금메달을 따야 할 것인지
첫 번째는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을 해서 신앙의 금메달을 따야 합니다.
지금 여기 백성들은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하느냐면
3절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고 말합니다.
그래서 벽돌을 돌을 대신하자.
지금 이 벽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람이 노력을 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돌을 주시려고 했고 보석을 주시려고 하셨는데
바로 자기가 어떻게 힘쓰고 애써서 하나님을 빼고 높아지려고 할 때
그 재료를 벽돌을 만들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만드려고 하느냐면
4절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땋게 하여
우리를 이름을 내자 그리고 흩어짐을 면하자 그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높혀준만큼 높아지면 되는데
그 위에 더 올라가려고 하나님의 이름을 내야 하는데
자기의 이름을 내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흩어짐을 면하자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을 다 보시고 하나님이 5절에 보면
어떻게 성과 대를 쌓는가 보시려고 강림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6절 하반부에 보면 이 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그래서 우리가 내려가서 언어를 혼잡케 해 가지고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도록 하자.
그래서 하나님이 흩어 버리신 고로 그 성 쌓기를 그쳤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그 이름을 바벨이라 했다.
바벨이란 말은 섞었다 그 말입니다.
혼란스럽다 란 그런 뜻입니다.
혼잡하게 만들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보다 더 높이 올라가려는 했던 잘못을 여기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해야 신앙의 금메달을 딸 수 있듯이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속에서
우리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되고
우리의 이름이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나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됩니다.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해서 신앙의 금메달을 따야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 8절에 보면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어야 된다는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도 바로 이 바벨탑을 쌓으려고 하는
이런 삶을 살게 되면 신앙의 금메달을 절대 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속에서 내 이름이 아니고 내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사나 죽으나 그 분의 권위를 인정하고 살 때
바로 그 분의 다스림을 우리가 받고 살 때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아서 신앙의 금메달을 딸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도 바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더 많이 인정해서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 5절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안에 머물러야
신앙의 금메달을 따고 많은 열매를 맺어 드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여기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도 내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면
즉 내가 무시를 당하는 것이고 그것이 가장 바로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제 속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주관하에서 내가 머물러서 그 분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 분의 뜻을 따라서 그 안에 머무를 때
아주 귀한 열매를 맺어서 그 분이 영광 받으시므로 말미암아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자기는 하나님의 잘 믿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이려고
영장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고 했는데
실상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살았었습니다.
그러다가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은 최고로 자기가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평가하시기를 핍박한다고 평가를 해서 바울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와 같이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그렇게 의기양양해서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는 형사 같이 갔는데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 있지 않다고
왜 핍박하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꼬구라지고
삼일동안 눈이 보이지 않아서 그 때 회개하고 눈에서 비늘이 벗겨져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기의 일생을 전도하는데 다 바쳤던
신앙의 금메달을 딴 사람이 바울이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을 해서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어떻게 신앙의 금메달을 따야 될 것인지
10절과 11절을 보겠습니다.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우리가 어떻게 신앙의 금메달을 따야 할 것인지
두 번째는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애쓰심을 깨달아서 신앙의 금메달을 따야 합니다.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경건 세력인 노아의 8식구를 살려놓고
10장에 보면 그들을 통해서 많은 자손을 퍼뜨리게 됩니다.
그런데 11장에 오니까 바벨탑을 쌓는 그 속에서도
10절에 셈의 후예는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 셈의 후예는 경건 계열입니다. 바벨탑을 쌓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셈을 통해서 경건 계열을 시작을 하면서 12절에 아르박삭, 14절에 셀라,
16절에 에벨, 18절에 벨렉, 20절에 르우, 22절에 스룩, 24절에 나홀,
26절에 데라, 27절 아브라함까지 열대의 족보를 쭉 써놓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이 우리를 향해서 걸어오시는 10번의 발걸음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려고 10걸음을 걸어오시는 발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감격스러워야 됩니다.
오늘 여기에 10절 이하에 바로 한 걸음 한 걸음 이렇게 걸어오는 이 발걸음이
너무나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6절은 에벨이라고 나옵니다.
이 에벨이라고 하는 이 말이 바로 10장 21절에 보면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그럽니다.
이 에벨이라는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히브리라는 그런 말입니다.
히브리인들의 근원이 거기서 시작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작은 민족이지만 이스라엘을 향해서 찾아 오셔서
그들을 셈플삼아 하나님의 애쓰심을 깨닫게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려고 찾아오시는 발걸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여 우리 대신 죄 값을 취르고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뚜벅 뚜벅 10걸음을
나를 향해서 걸어오시는 발걸음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깨달아야 신앙의 금메달을 딸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나를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신앙이 아니라 신념인 것입니다.
신앙은 나를 떠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을 위하여 찾아 오신 하나님의 애쓰심을
성경을 통해서도 발견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많이 발견해서
그것을 깨달으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아무 것도 아니지만 우리를 찾아 오셔서 하나님의 애쓰심을 깨닫게 하시는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가 이해하는 것 너무나 귀한 것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나같이 엉터리고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찾아오시는
그 하나님의 애쓰심을 더 많이 깨달아서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25장 4절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환난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같이 주께서 외인의 훤화를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리움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이스라엘의 원수의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이 이렇게 보호해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오시는 그 애쓰심 그 애쓰심을 깨달으면
하나님 앞에 너무나 너무나 귀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 속에서도 바로 하나님의 애쓰심 하나님의 그 심정을 알고
나를 향한 그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항상 편지할 때마다 편지 첫 머리에 은혜와 평강이 있을찌여다 라고
늘 편지를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은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향해서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받을 자격이 없지만 나를 향해서 베풀어 주신 것이 은혜인데
그것을 깨달으면 평강은 자연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평강이 먼저 오는게 아니라 은혜를 깨달아야 평강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나 같은 사람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애쓰심을 내가 깨달을 때
우리는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애쓰심을 깨달아서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라고 하는 사람은 출애굽기 1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고통 속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2장에서는 모세를 출생시킵니다.
그리고 바로 바로의 공주를 통해 공주의 아들이 되어서 왕궁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하려고 하다가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으로 쫓겨 가서 왕궁에서 40년 또 미디안에서 40년 80년을 훈련받고 나니까
3장에서 하나님이 찾아 오셨어 모세를 부릅니다.
모세야! 모세야!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는데 떨기나무가 탄 것 같은데
없어지지 않아서 홱 돌아서 떨기나무를 보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네 신발을 벗어라.
여기는 거룩하다.
네 방법을 다 버리라는 겁니다.
네 계획을 다 버리라는 겁니다.
네가 낳기 전에도 네가 낳고 지금까지 훈련한 것도
하나님께서 다 훈련시켰고 다 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이해를 못하니까 또 이적을 3가지를 베풀어서
하나님이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세에게 가르쳐 주니까
모세가 그것을 깨달고 하나님이 주신 그 지팡이를 들고
구원의 길로 나섰던 사람이 바로 모세였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아닌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애쓰심을 더 많이 깨달아서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27절 부터 29절까지 보면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우리가 어떻게 신앙의 금메달을 따야 할 것인지
세 번째는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신앙에 금메달을 따야 합니다.
지금 27절 이하에 보면 데라의 후예라 그렇게 나옵니다.
데라는 아브라함의 아버지입니다.
이제 히브리인들의 신앙의 시작은 아브라함부터 선택을 받아서 시작을 하는데
12장에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기 전에
11장에 데라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
그리고 바로 31절 이하에 보면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서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205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다.
그리고 12장에 아브람이 시작이 됩니다.
선민의 역사가 여기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이것은 다 무엇을 했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고 계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이 아브람은 그대로 하나님의 인도를 순종해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믿음의 조상으로
신앙의 금메달을 딴 사람이 바로 이 아브람이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무어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도 어떻게 될 줄을 몰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서 따라가다가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아브람이 갈 바를 모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인도하심에 순종해서 나갔다고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사람이라고
신앙의 금메달을 딴 사람이라고 기록을 하고 있듯이

우리도 새롭게 시작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서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리브가라고 하는 사람은 이삭의 아내인데
창세기 24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려고 나홀성으로 갑니다.
그런데 나홀성에 우물가 앉아서 엘리에셀이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여자들이 물을 길르러 올 때
내가 어떤 여자에게 나 물 좀 주세요 마실 물을 좀 주라고 할 때에
그 사람이 나에게 주는 물 뿐만 아니라 약대에게도 물을 주자고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인도한 사람으로 알고
하나님이 그 사람이 바로 이삭의 아내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겠습니다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는데 말을 마치지 못해서 리브가가 오게 됩니다.
그래서 물 좀 주라고 그랬어요.
리브가가 왔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예요.
물을 좀 주라 그랬어요.
그랬더니 물을 좀 마시라고 그러고는 바로 아래에 있는 구유에다가 물을 다 붓고
약대에게도 물을 좀 주세요 그러면서 물을 뜨려 가는 거예요.
사라가 죽고 아브라함이 서서히 뒤로 물려나고
이삭이 등장을 해서 구속의 역사가 두 번째로 이삭에게로 넘어가려고 하는 과정입니다.
어떻습니까?
그 여자가 여러 사람을 거느릴 수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실 물 뿐만 아니라 약대에게도 물을 주라고 하는 그것은
그 사람은 족장의 아내로서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리브라는 그 엘리에셀의 종의 기도로 말미암아 선택이 되었고
그리고 집으로 가서 엘리에셀이 데려가려고 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것을 알고
자기 부모들은 열흘만 같이 있다가 가라고 하는데도
리브가는 지금 떠나겠다고 엘리에셀의 그 인도를 따라서 이삭에게로 오게 됩니다.
지금 같으면 전화도 하고 또 무엇인가 보내기도 하고 만나기도 할 텐데
그 때에 한 번 떠나면 일생에 언제 만날지 한 번도 못 만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던 사람이 리브가였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새로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을 해서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말로 인정받고
하나님에게 영광 돌려 드리는 귀한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나에게 메이면 안 됩니다.
나를 떠나서 하나님에게로 가고 또 하나님에게 드려지고 또 하나님 것이 되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우리를 존재하신 이유를 이루어 드리는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어야 되는데

우리가 어떻게 신앙의 금메달을 따야 할 것인지
첫 번째는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권위를 인정을 해야 됩니다.
두 번째는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애쓰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새로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순종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가슴에 늘 기억되고
또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에 많이 쓰임받아
신앙의 금메달을 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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