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고후3:1-11절, 350.372.355장.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편지는 소식을 전하거나 사상을 나눌 수 있는 중요한 통신 수단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본문에서 성도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소식이나 사상 등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성도를 보고 그리스도를 평가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볼 수 없으나 그의 편지 된 성도를 보고 평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성도의 행실이 바르고 깨끗하면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편지인 우리를 보고 그리스도를 평가하니 이는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편지를 쓰셨다는 것입니다. 종이에 쓴 편지는 세월이 흐르면 낡아지고 흐려지기 쉬우나 육의 심비(心秘)에 새긴 편지는 날마다 새롭고 영원히 흐려지지 않습니다. 1-2절에서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튼饔?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새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 곧 그리스도의 편지인데 이 편지를 쓴 분은 예루살렘의 사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시오. 이 편지를 쓴 재료는 먹이 아니라 곧 성령이시오. 이 글을 쓰고 용지는 돌비가 아니고 육의 심비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쓴 편지(便紙)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심령(心靈)에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敎會)는 우체국과 같습니다. 하늘에서 온 편지에 도장을 찍어 세상으로 보냅니다. 목회자는 우체부와 같습니다.
이 편지(便紙)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靈)으로 쓴 것입니다. 영으로 썼다는 말은 하나님의 피 묻은 잉크로 하나님의 영이신 주님의 사랑의 잉크로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여야 합니다.
만약 주님의 영(靈)이 우리 심령(心靈)에 써주시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편지(便紙)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겸손(謙遜)하게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의 손이 우리 마음에 써주시는 영(靈)의 편지(便紙)를 받아야 합니다.
2.친서의 편지를 받으면 회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편지를 보내시고 회답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편지를 보냈는데 회답이 없으면 참으로 궁금합니다. 멸망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편지라면 더욱 궁금한 것입니다.
편지(便紙)를 받으면 반드시 회답(回答)을 하는 것이 예의요 인사일 것입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을 답답하게 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편지를 받았다면 반드시 회답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편지(便紙)를 들고 있으나 자기(自己)에게 임하는 친서(親書)로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회답(回答)을 쓰지 못하고 있는 줄 압니다. 받은 것이 있어야 회답을 할 것인데 받은 것이 없으니 회답이 없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고 그 안에 가족들과 하나님께서 명하신 짐승을 싣고 홍수의 심판을 면하여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40일 홍수가 나고 150일이 지난 후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먼저 까마귀를 내어놓았으나 영영 돌아오지,
않고 바다 위에서 왕래하였습니다. 다시 비둘기를 내어놓아 창 밖으로 보냈더니 처음에는 온몸에 오물이 묻은 채 돌아왔으나 다음에는 그 입에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왔습니다. 비둘기는 자기를 구원해 준 노아에게 회답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 된 회답을 가지고 돌아와야 합니다. 교회는 감람나무 잎을 기다리는 노아의 방주입니다.
돈을 버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아버지께 감사해서 회답의 소식을 가지고 오는 것이 축복이요 받은 은혜를 알고 회답하는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3.예수의 편지를 세상에 전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필요한 자에게 배달되어야 합니다. 형편과 처지에 따라 배달됩니다. 병들어 고생하는 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위로의 편지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정의 불화 때문에 괴로워하는 형제들에게 화목케 하는 말씀으로 저들을 만나는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편지를 받는 순간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우리는 세상으로 돌아갑시다. 가정으로 직장으로 일터로 편지가 되어 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슴속에 영으로 새겨주셨기에 이제 편지가 되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우리는 편지로 서있는 것입니다.
불신자(不信者)들이 우리를 볼 때 하늘의 편지가 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낙심한 자에게 용기의 편지로 갈 것이며 절망한 자에게는 소망의 편지로 갈 것이며 가난한 자에게는 믿음의 부요(富饒)한 편지로 가야 합니다.
이 땅의 메마른 심령마다 희망과 부요를 심는 편지로 형제의 가슴에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어느 곳이든 필요한 자를 찾아 배달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편지(便紙)를 받아야 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편지(便紙)되어 가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편지가 되어 이 지구(地球)상(上)을 도는 것입니다. 이 편지가 돌고 돌면서 발을 사람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4.그리스도만 존귀케 하는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편지는 소식을 전달하는 방편인 동시에 사람을 소개하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편지는 추천서나 소개장이 됩니다. 당시 사역자들 가운데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추천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소개장(紹介狀)을 갖지 않았습니다. 자기 교인(敎人)들이 곧 자기를 소개하는 편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더 자신을 추천한 그리스도에게 영광이 되도록 합당한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이러한 생활(生活)은 그리스도와 같이 세상(世上)을 구원(救援)하는 생활이요, 복음(福音)을 전달하는 선한 삶을 사는 생활 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자신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통신 시설이 발달해서 별로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즐겨 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일은 정말 큰 기쁨이었습니다. 또한 집안 어른들에게도 안부를 묻는 편지들을 많이 썼습니다.
아마 편지만큼 오래 전해내려 오는 통신 수단은 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좀 특이한 형태의 편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성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의 비에 새겨진 편지라고 합니다(3절).
편지는 상대방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상대방에게 기쁨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를 편지라고 하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건 다름이 아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들에게 전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마음이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바울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감히 생각지 못할 비유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그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마음을 순전하게 드러내 놓는 샘물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성도는 뜻과 경륜을 세상에 밝히 드러내는 가장 아름다운 도구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기쁨을 주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진정 성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달하는 생명의 편지인 것입니다.
5.주님이 요구하시는 편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장의 글로 써서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마음속에 글을 새겼습니다. 곧 먹으로 쓰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피로 성령의 능력으로 쓰신 것입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불변의 진리에 관한 내용입니다. 죄인을 위한 복음이요 영생(永生)을 위한 도며 천국 시민이 행할 도덕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취하여 너로 인을 삼으리라"(학개서 2:23절)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도장이요 편지로 불신자에게는 산 성경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소식입니다. 그래서 요한을 보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었고 베드로를 본 자는 천국 소망을 바울을 본 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성도의 손과 발과 말과 행위를 보고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편지를,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보내기를 원하십니다(행 1:8). 그래서 그 편지를 온 세상 사람들이 읽고 구원의 기쁜 소식이 두루 퍼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편지 된 성도들은 입술에 인격에,
행실(行實)에 복(福)을 싣고 땅 끝까지 가야 합니다. 가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비에 새기신 구원(救援)의 복음(福音)만을 전해야 합니다. 인간(人間)의 자랑 자기 사상 인생 경험이 아니라 복된 구원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들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쓰임 받지 못하고 버림받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장의 글을 써 남기지도 아니하셨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글을 새겼으니 곧 먹으로 쓰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피로 성령의 능력으로 쓰신 것입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죄인의 복음이요 영생의 도이며 천국 시민의 행할 도덕이요 천국의 의로운 정기입니다.
6.그리스도의 뜻을 분명하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친구와 서신을 주고받아도 그 안에는 받는 이에게 나타내고자 하는 보내는 이의 사랑과 성품과 뜻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바울이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보내는 편지라고 했을 때는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시고자 하는 그분의 사랑과 인격과 뜻을 분명하게 대변해 주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냉정히 반성해 봅시다. 그리스도의 편지인 성도 안에는 과연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충만히 채워져 있습니까? 과연 세상 사람이 볼 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가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보내신 주님의 뜻을 바로 전달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랑과 그 거룩한 뜻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주의 말씀으로 옷 입음으로(엡 6:14) 올바른 그리스도의 인격과 뜻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에 힘쓰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절에서 "너희는 우리의 편지니" 한 말씀은 신자는 그리스도의 편지일 뿐 아니라 또한 전도인의 편지요 그 천서도 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그리스도가 쓰시는 것인데 전도인은 예수의 말씀을 받아서 대서하는 제 2저자입니다. 바울은 먼저 저가 마음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새김을 받고 그 본대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제1, 제2, 수백 통의 그리스도의 편지를 복사하는 대서 자였습니다.
그래서 또한 2절에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자기 마음에 새긴 복음을 주님의 원하시는 대로 바로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뜻을 이루려고 우리들에게 전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7.편지를 전함에 있어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편지란 보내는 이가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전달될 때에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편지란 단순히 보내는 이의 계획과 지시에 따를 뿐 그 계획과 지시를 무시하고 제 뜻대로
아무 곳에나 간다든지 자기 뜻에 따라 지체한다거나 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편지된 우리 성도들 역시 우리를 보내시는 그리스도의 계획과 지시에만 충실히 따를 뿐입니다. 가기 힘든 곳이라고 마음대로,
포기하거나 가기 싫다고 하여 제멋대로 받는 이를 바꾼다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가기를 미룬다거나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면 언제라도 그 어느 곳이라도 가야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편지인 성도의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보내신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실히 깨달아 알기도 할 것이고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뜨거운 사랑과 의로운 성품과 거룩하신 뜻을 우리들의 행실로 뚜렷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뜻을 보여 주되 제 기분과 판단에 따라 하지 말고 오직 보내신 이의 뜻에 충실히 복종하며 언제라도 어느 곳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편지(便紙)로써의 사명(使命)을 잘 감당하셨습니까? 잘 감당(勘當)하지 못하였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들음으로 깨닫게 되었으니 앞으로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要請)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實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擴張)하는 데 귀하게 쓰임 받는 하늘나라 복음(福音)의 도구(徒口)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祝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