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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물 심판의 기적

작성자백두-바나바|작성시간09.04.29|조회수22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물 심판의 기적
창7:6-12절, 383.390.403장.&

하나님께서 홍수의 심판을 내리시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노아가 600세 되던 해이고 창세로부터 1656년이고 아담의 8대손의 노아가 살던 때이니 당시 홍수로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1)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이요(창6:5)

(2)인간들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였고(창6:11) (3)결혼관이 문란해졌고(창6:2) (4)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이었고(창6:4) (5)성령의 감화를 거부하며(창6:3) (6)하나님을 슬프게만 하였고(창6:6),

(7)하나님에 한탄을 자아케 하였고(창6:6) 아담 이후로 1,600여년이 지나는 동안 모든 사람들은 창조주를 기억 못하고 하나님이 창조한 풍성한 대자연을 만끽하면서도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그에 대한 감사치 못하고 죄만 지으면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사고 팔고 하는 일에만 치우치면서 인간들에 근본 도리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홍수의 심판을 하신 것입니다. 한데 그 사람중에도 하나님을 경천하면서 살아온 노아가 있어 이 죄인들과 같이 멸하심을 옳지 않으심이라,

그에게는 방주를 예비케 하사 그 홍수의 멸망에서 구원의 도리를 마련케 하여 그와 그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1.인간의 가장 유용한 것이 가장 해로운 것이 되었습니다. 인체의 70%가 액체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물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에 십자가의 죽으심에 과정에는 피와 물이 다 흘리시므로 운명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물은 생명을 좌우함을 의미합니다. 이만큼 귀하고 보배로운 물이 도리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장 귀한 것이 가장 해로운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 편에서는 장족 보옥같이 아끼고 보호하는게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때문에 생명을 잃을 경우가 허다합니다. 근자에 주변에 살인 사건들을 보면 돈 때문에 생명을 잃고 보석 때문에 생명을 잃고 처녀가 귀하게 여기는 정조 때문에 생명을 잃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다고서 돈이나 보석 처녀의 정조를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간수를 함으로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이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며 사용하심에 따라 가치가 나는 것이지 인간의 임의로 보옥이 되어 귀하다고 해서 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들어 쓰임에 따라서 귀하고 천한 것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물매돌이 강력한 적장 골리앗을 물리치는 도구가 되었고(삼상 17:50) 삼손에게는 나귀 턱뼈가 손에 들려지니 천명을 죽이는 도구가(삿 15:9-15)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작은 보리떡 다섯개와 두마리 생선으로 5천 군중을 먹이시는 기적이(마 14:13-21) 일어났습니다. 모세는 양치던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 물이 솟았고(민 20:11) 이같이 세상의 사물은 주님이 쓰심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물은 귀한 반면에 여기에서는 인간들을 멸망케 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물에 지나치게 애착을 두지 맙시다. 롯의 처가 망한 원인은 세상 재물에 지나친 애착심을 둔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설명합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자랑이 되는 것은 다 배설물로 여기며 주님이 쓰시는 도구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 정신을 배워서 신앙 생활에 활용합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에 심판을 죄인으로서는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많은 사람가운데 범죄를 하고 위기가 닥쳐올 때에는 일시적이나마 감시망을 벗어나서 은닉처를 전전하면서 처벌을 면하려고 노력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죄를 범하고서는 그 진노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시139:7-10절에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다윗은 그가 하늘에 올라가거나 음부에 내려간다 할찌라도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한다 할찌라도 결코 하나님의 시선을 피할 수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 하시는 하나님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쳤으나 하나님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탕자가 멀리 다른 나라에 갔다고 해도 그가 아주 아버지 품을 벗어날 수가 없이 회개하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세상의 어떤 은밀한 곳으로 숨는다 하더라도 결코 하나님의
시선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 심판을 받게 되었으니 심판을 면하고 구원받기 위해 늘 회개하여 성결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69:5절에 하나님이여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내 죄가 주의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139:15절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했으니 죄를 범하고 숨기고 우물거린다고서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노아 때의 사람들처럼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다가 심판을 받았으니 우리는 이 일에 재판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3.공적에 대한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살고 순종하며 외롭게 살아온 노아에게 보상이 있었으니 이는 곧 방주에 의한 구원이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그에 해당하는 보상을 주심을 알 수가 있다.

마귀로부터 큰 시험을 당한 욥이 재축복을 받은 것은 그 수많은 환난 가운데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입술로나 맘으로부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운명을 하나님에 뜻에 맡기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온 가정이 구원을 받고 그 가정에서 예수님이 유하게 된 것은 (눅18:1-10) 삭개오가 예수님에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열망의 때문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고, 베드로가 두배에 가득차게 고기를 잡은 것은 (눅5:1-7) 예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한 12년간의 장기의 혈루병을 앓는 여인이(막5:25-34) 병을 고친 것은 예수님에 옷자락이라도 만져보고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3:16절에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저를 믿지 아니하면 영원히 멸망을 받는다고 하셨고 마10:42절에는,

소자중 하나에게 냉수 한그릇이라도 주는 자에게는 그 사람의 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노아가 막연히 운좋게 구원을 받은게 아니고 그나름 대로의 다른 사람과의 구별된 생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노아와 같은 남다른 신앙의 공적을 행하며 살아갈 때에 노아 해당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4.의인을 죄인들과 같이 멸하지 아니하심입니다. 창6:5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이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는 혼합의 결과요 하나님의 신이 떠난 결과요 침략자 폭군들이 되어 버린 결과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창6:11절에 땅에서 모든 혈육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다라 했고 13절에는 모든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하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땅위에 사는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죄악이 하나님께서 한탄하시기까지 극치에 도달하였지만 그중에 한사람 노아는 이들과 다른 성결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창6:9절에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흠없고 무죄한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경건하며 완전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노아가 의인이며 완전한 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앞선 에녹의 경우와 같이(창5:22)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그당시 노아가 주변의 화려한 문명과 인간들에게 깊은 관심을 두고 살았다면 분명히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온 관심을 하나님께 돌리고 날마다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하려고 애쓰며 살았던 것입니다.

(1)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도 롯은 죄인들과 같이 멸망을 받지 아니하고, (2)홍해바다를 도강할 때도 애굽인은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죄인들과 같이 멸망을 당할수는 없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오니 지금의 세상은 죄악이 관영하다고 이구동성입니다.

우리 성도는 저들과 같이 죄를 지으며 저들이 망할 때 같이 망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노아 같이 성결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5.영과 육신이 사는 길은 오직 한길 뿐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구원의 길은 오직 노아의 방주뿐이었습니다. 달리 구원을 받는 길이 없었습니다. 각종 종파에서는 자기들 나름대로의 교리를 만들어 포교하기를 자기들의 종교만이 유일의 종교요 내세와

금생의 기복이 있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심판주로 오실적에는 달리 구원의 여망이 없음을 실감케 될 것입니다. 요나의 탄 배가 폭풍을 만났을 적에(욘 1:4),

선장으로부터 선원 전원이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했으나 그들의 신이 그 역경을 해결해 주시지를 못했습니다. 행27:1절에 보면 이탈리아로 향하던 배에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 할 때도 선장과 선원 전부가 구원을 받으려고 심지어 가진 보침까지 다 바다에 던지며 살길을 찾았으나 그들이 소원한대로 되지를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그들에게 새 소망(素望)을 주시었던 것입니다. 현 세상은 죄악이 극심하여 이제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해 지고 있는 이 때 구세주는 오직 예수 뿐입니다. 예수를 영접지 아니하고는 구원의 여망이 없는 것입니다.

행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습니다.

6.말씀에 순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22절에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지어라 할 때 그대로 준비하였습니다. 5절에도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순종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순종이라고 다 좋은 순종은 아닙니다. 그 순종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좇는 순종이어야 합니다. 사실 방주를 준비하고 식량을 비축하는 일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웃에게 조롱까지 당하면서 이 일을 모두 수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이런 노아의 행동이야 말로 신앙생활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노아에게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신앙표본은 단순히 사고하는 신앙이 아니라 행동하는 신앙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약2:17-26).

7.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4절에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노아는 이 말씀대로 홍수를 대비하는 방주를 지어 멸망을 사전에 받지 아니하려고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방주를 준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알아서 사랑을 베푸시리라고 믿기만 했더라도 저는 의인이요 믿음이 있는 자라고 하였지만 저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출애굽 직전에 모세의 명을 따라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가정은 보호를 받았습니다.(출 12:22).

이들도 선민이라고 하며 모세로써 구원을 받게 하려는 계획은 있었다고 하지만 양피를 준비하여 명령대로 문설주에 피를 바른 가정만 보호를 받은 것입니다. 마25:1-13절에 신랑을 기다리는 10처녀가 있었는데 그중에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였고,

기름을 준비하지 아니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다 신자들이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한 교훈들입니다. 자기의 현재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준비의 시기가 지나면 실패합니다.

고후6:2절에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오늘에 사는 모든 성도들은 은혜받아 재림에 주님을 맞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준비만이 주님을 맞을 지름길입니다.

노아 당시 세상인구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다 멸망을 당한 가운데 유독 살아난 노아와 같이 될 수는 없다고 하지만 이제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구원을 받아야 하는 숙제가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이 영혼이 구원을 받는 길은 우리들에게이며 구원에 소식을 사역자들로써 들려주시고 계신 것이니, 들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노아가 구원받기 위해 방주를 지은 것같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진리를 탈선하지 말고 재림에 주를 대망하며 하루하루 삶속에,

말씀의 두루마리를 먹으며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지말고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에 충성을 다할 때 재림하시는 주님을 담대하게 맞아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재림의 주님을 소망하면서 경건의 삶이 계속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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