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해
(Exegesis)
텍스트를 해석하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번역과 구별되고,
또 한편으로는 해석의 원리를 탐구하는 해석학과 구별된다(물론 이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기독교 신학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를 포함하고 있다는 확신
에 기초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주해는 항상 신학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신학자들은 텍스트 안에 있는 모호한 구절들과 명백한 모순들의 분명한 의미를
찾아 내려고 노력을 기울여 왔다. 최초의 조직적인 주석가는 오리겐(Origen
of Alexandria)이었다. 구약에 있는 모호한 구절들과 도덕률에 위배되는 구절
들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는 모든 믿음의 조항은 하나님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
라는 플라톤적 전제 위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몇 가지 단계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1) 역사적 자료들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분명한, 혹은 문자적 해석,
(2) 때로는 역사적 자료들에 예시 되어 있고, 때로는 어떤 본문 그 자체가 주제
가 되는 도덕적 해석, (3) 자주 모순되고 공격적인 구절들의 껍질의 배후에 숨
겨져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다루는 영적, 혹은 풍유적 해석. 일반적으로 이 세
가지 종류의 주해의 유형과 그것들의 강조점을 달리하고 수정을 가한 해석법들
이 종교개혁 시대까지의 학자들에 의하여 행해져 왔다.
풍유적 해석의 난점은 그 해석이 신학자들로 하여금 성경을 단지 교회의
도그마를 정당화 시켜주는 것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성
경에 의하여 교회의 도그마들이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풍유적
해석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이를 거부한 것이다. 루터(Luther)의 기본적인 원리
는, 성경은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하여 판단을 받아
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
고, 평범하게 읽었을 때 그리스도의 복음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성경도 하나님
의 말씀도 아니라는 것이다(그래서 그는 야고보서와 요한계시록을 거부하였다).
개혁자들의 풍유적 해석의 반대로 말미암아 과거 풍유적 해석이 해결하려 했던
문제들(부조리, 모순, 도덕률에 맞지 않는 것)이 되살아 나고, 후대 성경의 문
자적 무오성을 주장하는 개신교의 견해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다가 성
경 비평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개신교 주해에 위기를 맞게 되었다. 개신교 자유
주의 학자들은, 역사적 상황 속에서 텍스트를 읽고 원시 종교에서 예언자들과
예수의 윤리적 일신교에로 발전해 온 과정 속에서 종교적 가치를 찾으려 하는
비평적 방법을 통하여 그 위기에 대처하였다. 역사적 비평도, 문자적 의미도
거부하지 않는 신개혁주의 신학은, 개신교 자유주의자들이 성경 저자들의 진정
한 신학적 의도-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을 증거하는 것-를 보지 못하였다
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비평적 주해들은 최근에 출현하였고, 아직 해결 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